강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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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미국땅의 이모저모 (5)
2009년 12월 18일 07시 43분  조회:7697  추천:58  작성자: 강순화

 

      내가 본 미국땅의 이모저모 (5)


                                                              글 / 강순화

 

상업정신:

1. 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미국이고 미국을 움직이는 것은 유태인이라고 한다. 미국 전체 인구의 2%(600만)가 미국 50대 기업중의 17개를 차지하고 세계 7대 메이저 석유회사 중 6개가 유태인계 소유다. 그리고 현재 미국에서의 아세아계 평균 가구 소득은 6만 6.103달러로 미국내 인종그룹 중 가장 높다. 유태인들은 하루 25시간 로동하고 한국인들은 하루 26시간 로동한다고 한다. 그와같이 악착스레 일한다는 뜻이다. 1965년 10월 죤슨대통령이 새로운 이민법을 반포하여 미국은 구라파 백인위주의 이민사회로부터 비구라파 비백인위주의 이민사회로 전변되였다. 미국시민권을 가진 지금의 한인1세들은 바로 그때에 대거 이주해 온 이민들이였다. 그들은 처음 이 아메리카대륙에 건너와 말을 모르고 법을 몰라 온갖 기시와 고생을 밥먹듯하며 싸우고 일하여 오늘의 가계들을 이루어 온 것이다.

그리고 뉴욕 플레싱에서 반가웠던 것은 그 미국 땅에 우리 연길의 <진달래식당>과 <풍무꼬치구이> 집이 큰길 옆에 붉은 간판을 환히 걸고 있는 것이였다. 한번 찾아들어가 보아야지 하는데 마침 돌아 올때 친구들이 그 식당에서 나를 환송한다고 연회를 베풀어 맛있는 연변음식을 다시 맛볼 수 있었다. 음식맛이 고유의 우리맛이여서 좋았고 더우기 타향살이 설음을 안고 사는 우리 동포들의 따뜻한 사랑방이 되어주어서 더욱 좋았다. 주말이면 자연히 우리 조선족 동포들의 모임터가 되어서 한방 가득이 모여 서로 반기고 권하고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워가는 정에 넘치는 풍경을 흔히 볼수 있다한다.

뉴욕 맨하탄의 32가는 선에서 말하다시피 번창한 상업과 서비스업의 시장으로 되었다. 그런데 어쩌면 민족의 근성이라할가 한인 가계들은 서로 경쟁하고 경계할 뿐 서로 단합하지 못하는것 같다. 그래서인지 원래는 한인가계들로 꽉 찼던 플레싱거리가 지금은 중국인들에게 다 먹히고 겨우 몇 골목밖에 남겨지지 않았다. 몇해 아니면 그 골목들도 사라질듯 싶어 서 서글프다. 듣는 말에 의하면 한상들은 10년이면 흑인들 속에 들어가 장사하고, 백인들 속에 가서 산다고 한다. 흑인들은 이런 한인들을《흑인동네에서 돈을 번 노랑 병아리들이 백인동네에 가서 돈을 펑펑 쓴다》고 불만한단다.

2. 미국 뉴욕에 간 중국상인들은 대부분이 대만이나 중국남방 복건성에서 건너간듯 하였다. 거리 도처에는 대만 혹은 복건인들의 모임광고와 활동장소들이 있었고 당인거리에 세워진 민족영웅 림측서동상도 복건인들이 세웠다고 한다. 중국상인들은 우선 단결심이 강하여 한사람의 힘이 안되면 여럿이 돈을 모여서라도 한개 빌딩을 몽땅 사서 타민족가계들을 밀어내고 그 지반을 차지해 버린다고 한다. 플레싱이 한국거리에서 중국거리로 변한것도 대만과 복건상인들이 단합하여 한인거리를 점령하였기 때문이였다. 지금은 온 시내가 중국인 천지이다. 중국은행, 중국상점, 중국식당, 중국병원, 중국마켓, 중국여행사, 심지어 지하철 매표구 컴프터 장치에까지도 중국글이 들어있어 영어를 못하는 중국인들께는 매우 편리하였다. 그래서 같은 미국 땅에서라도 로산젤레스 코리아타운이 한국어만 알면 살 수 있듯이 뉴욕의 당인거리와 플레싱만은 영어 한마디 몰라도 중국인들에게는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않고 살수 있는 곳인것 같았다.

3. 뉴욕관광을 하면서 나는 중국인들의 경영정신에 또 한번 놀랐다. 내가 중국여행사에 신청한 관광일이 마침 주중이라 우리 차에는 두 중국류학생과 산동제남대학에서 온 녀선생 한분에 나까지 모두 4명 관광객 뿐이였다. 중국 같으면 차가 차지않아 후에 가라던지 취소하던지 할것이지만 그들은 아니였다. 12명이 타는 소형 버스에 4명 고객 뿐 이어도 가이드는 똑같은 서비스로 수많은 관광지들을 열심히 설명해 가면서 <뉴욕하루관광>을 순리롭게 마친 것이다. 정말로《1$라도 벌려하며》적게 벌지라도 자기들 회사의 신용과 의미지만은 목숨처럼 지키는 그들의 경영정신은 참으로 탐복할만하였다.

4. 또 희안한 것은 한인 택시기사 90%가 불법 운영이라 한다. 매달 400달러씩 내야하는 영업세를 회피하기 위해서란다. 택시기사 아저씨들은 자기들의 고급 자가용차를 가지고 보증금 2000$-3000$를 내고 기사들끼리 모여서 매일 24시간 련락을 끈지 않고 영업하는데 중계료 100$를 제하고도 한달에 3000-4000$는 쉽게 번다고 한다. 한 택시기사 부부는 함께 한달에 만달러도 벌었다고 하며 하와이 같은 유람지에서는 혼자서도 한달에 만달러는 잘 번다고 한다. 그런데 경찰에게 걸리면 첫번에는 400$, 두번째는 1000$의 벌금을 내야하며 세번 걸리면 차량을 압수한다고 하나 택시패쪽을 걸지 않은 수백대(뉴욕에만 500대)의 콜택시들이 밤낮으로 온 거리를 누비고 있었고 전화 한통만 걸면 즉시 달려오는 코레안택시들이 우리고객들에게는 참으로 편리한 서비스업이 되고 있었다.

차에 앉아 택시기사아저씨들과 이야기해 보면 재미있는 일들이 많았다. 그들에게는 공항이 제일 불안전한 곳이라 한다. 일단 돈을 주고받는 것이 경찰에게 발각되기만 하면 붙잡히니 말이다. 그런데 마음씨 고운 당지의 손님들은 곧 알아 차리고《택시비가 아니다. 내가 고용한 운전사한테 휘발유 값을 준다.》고 하면서 변명도 해주고 녀성손님일 경우《이분은 나의 누님입니다. 공항에 전송해요.》라고 하면 경찰은 두말없이 물러간다고 한다. 그들로의 영업방식은 이미 이렇게 굳어져 있었다.

5. 근년의 한국인 무비자 입국 정책은 많은 한국 로무일군들의 미국입국을 초래하였다. 우선 허용된 3개월의 체류를 마치고 돌아갔다가 재 입국시에는 더 긴 시간의 비자가 나올수 있다니 말이다. 또 중국조선족 아줌마들과는 달리 한국녀성들은 산후조리, 맛사지, 네일 등 업체에서 여러 가지《자격증》을 따 가지고 오기에 취직에서도 조선족만 우세였다. 때문에 한국인의 미국 무비자 입국은 한국 로무인들과 극소수의 한국국적을 취득한 조선족 아줌마들에게는 좋은 기회이나 다수의 재미 조선족동포들에 한해서는 취업의 길이 더 졻아진 셈이다. 한국 베이비시터(애기보기 한국할머니)들의 매달 공자도 2000$ 좌우되니 반년이면 그 할머니들도 만달러씩은 거의 벌어가군 하였다.

(다음에 계속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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