홧홧 달아오르는 삼복지간 무더위는 진짜 찜통더위였다. 종호는 반토굴 셋집에서 나와 무더위를 무릎쓰고 대림시장 부근으로 걸어갔다. 나영과 지영을 불러 저녁 한끼를 대접하려고 냉면부로 가는 길이었다.
대림시장은 한국 시장 같지 않게 한어로 사구려를 부르는 소리 여기저기서 들리었다. 한족 여성들은 순대, 만두기를 파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여기저기 매대를 살펴 봐도 맨 한족들이 득실거렸다. 진짜 한국에서 본 기괴한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종호가 대림시장 부근을 지나갈 때였다. 소학교 대문 앞에서 성림의 손을 잡고 걸어오는 나영과 딱 마주쳤다.
“리사장님, 안녕하세요? 이리 일찍이 나오셨는가요?”
종호는 마주 인사하면서 지갑을 꺼내더니 5만원권 두장을 송림의 손에 쥐어주었다.
성림은 엄마 눈치를 할끔 쳐다보았다.
“옛다. 맛있는 거 사 먹어라.”
종호 말에 나영은 종호를 쳐다보면서 완곡하게 사양했다.
“어린애한테 뭘 이리 많이 주는가요? 한장만 줘도 돼요.”
종호는 지전을 성림의 손에 기어이 쥐어주었다.
“요 귀염둥이한테 돈을 준적도 없는데. 어서 받으라고 하오.”
나영은 마지못해 성림한테 머리를 끄덕여 보이었다.
“감사해요.”
성림은 돈을 받아 인차 엄마한테 주었다. 성림도 이젠 한국에 나온지 한 일년 돼 제법 한국 말투로 말했다.
나영은 돈을 받아 지갑에 넣으면서 수척한 볼에 볼우물을 옴폭 파면서 인사드렸다.
“리사장님, 잘 쓰겠어요.”
고 놈의 볼우물에 정호도 홀딱 반해 풍덩 뛰여들었지. ㅋㅋ
종호는 나영과 함께 량쪽에서 성림의 손을 하나씩 잡고 걸으면서 물었다.
“무더운데 저녁에 랭면이나 먹을까?”
나영은 도리머리를 저었다.
그녀는 머리를 들어 종호를 쳐다보면서 인사치례를 했다.
“전번에도 숱한 돈을 팔았는데요. 오늘 또 무슨 돈을 파는가요?”
종호는 길죽한 얼굴에 정색한 표정을 지었다.
“나영하구 지영한테 숱한 신세를 졌는데 국수 한그릇을 대접못하겠소?”
나영은 얼굴에 환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눈을 치켜뜨며 물었다.
“지영도 불렀는가요?”
“불렀소. 마침 요즘 간병할 환자도 없는 모양이오.”
“잘 됐어요.”
이때 성림이 종호와 나영의 손을 홱 뿌리치고 놀이터로 뛰어가며 환성을 질렀다.
“엄마, 난 그네 뛰개.”
종호와 나영은 아직 시간이 있기에 놀이터로 가서 성림이 노는 걸 구경했다.
성림은 쇠사슬그네를 신나게 타면서 놀았다.
한참 후 종호는 미끄럼대에서 주르르 미끌면서 노는 성림한테 손짓했다.
“성림아, 이젠 냉면 먹으러 가자. 려향 누나 냉면부에서 기다릴 거야. 누나하고 안 놀개?”
“좀 더 놀구.”
성림은 미끄럼대에 또 올라가며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나영은 종호의 너부죽한 잔등을 쳐다보며 상을 찡그리었다.
(뭐? 려향 누나? 촌수 개판이구나. 려향은 날 언니라는데. 리사장님은 왜 려향을 성림의 누나라고 해? 혹시 걔들을 오누이로 엮자고 그래는가? 참.)
녀자들은 문턱을 넘으면서도 열두가지 생각을 한다더니 나영도 례외가 아니었다.
나영은 종호를 쳐다보면서 슬며시 속뽀리를 해 볼 겸 한마디 충고해 보았다.
“리사장님, 이젠 혹시 그 한족 안해하구 리혼하고 재혼할 생각은 없는가요? 새 출발하는게 어때요?”
려향과 똑같은 충고를 하였다.
종호는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였다.
“이젠 륙십대 중반인데 무슨 재혼이오?”
나영은 흠칫 놀라 주춤 멈춰 섰다.
“지금은 백세시대인데요. 지금 한창 사랑하면서 행복을 누리면서 살 년세지요. 왜 벌써 그렇게 자포자기하는가요? 그래 리혼할 생각 없는가요?”
“아니, 그건 아니오. 그런 악처하구 어떻게 살겠소. 이젠 리혼해야지.”
종호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이젠 악처하구 결렬할 때도 됐소. 전번에 려향이 면회하러 갔을 때 류려평도 리혼하겠다고 하더라오.”
그러자 나영은 종호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잘 생각했어요. 리사장님도 사랑스런 젊은 안해를 만나 황혼을 행복하게 보내야죠.”
종호는 대답하기 난감해했다.
“빨리 가자! 더워 죽겠다.”
갑자기 성림이 달려와 나영의 손을 잡고 발을 동동 구르며 떼질썼다.
종호는 대답하기 어려운데 때마침 발뺌하기 잘 됐다고 성림을 내려다보면서 피씩 웃었다.
“오- 그래. 어서 가자. 지영 이모도 왔는지 모르겠다.”
성림은 종호를 말똥말똥 쳐다보면서 물었다.
“박선생님도 오는가요?”
“그래.”
“와- 좋다! 빨리 가자!”
성림은 나영의 손을 잡아 끌었다.
나영은 성림의 손을 잡고 앞으로 걸어나가면서 부드럽게 타일렀다.
“오늘 박선생님이랑 말하는데 떼를 쓰지 말고 알만 하지?”
성림은 입이 뾰로통해 몸을 뒤탈며 울먹울먹했다.
종호는 성림을 와락 껴안아 추켜 올렸다.
“귀염둥아, 어서 가서 냉면이나 먹자.”
성림은 엄마를 건네다보면서 더는 떼를 못 썼다. 그러나 조꼬만 입만은 계속 뾰로통해 있었다.
나영은 지영이랑 오기 전에 종호와 충고를 더 하고 싶었다.
“리사장님, 사랑에 나이 차 무슨 큰 관계 있는가요? 둘이 서로 사랑하면 그만이죠. 리사장님한테 젊고 이쁜 색시감을 소개해드릴가요?”
종호는 나영의 말에 흠칠 놀랐다. 이전에 나영이 병실에서 려향한테 하던 말이 피뜩 떠올랐다.
"제면 아빠 같은 늙은이한테 시집가겠소?"
(건데 지금 혼사말을 해?)
이젠 큰길 저 앞에 대림에서 젤 랭면부 간판이 환히 보이었다.
그는 좀 사색하다가 슬그머니 이런 말을 흘리었다
“나처럼 돈도 없고 셋집도 온전한게 없는 늙은이한테 어떤 눈먼 여자 시집오자 하겠소?”
나영은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어 발끝을 내려다보다가 머리를 천천히 들었다.
“리사장님은 행복지수가 높은 분이여서 재혼하자는 젊은 녀성 얼마든지 있을 거예요. 리사장님은 마음씨도 착하고 의리심도 있는 아주 좋은 분인데요. 조건도 아주 좋아요. 지금 정교수 퇴직로임 타지 않는가요?”
“그렇소. 한 9천여원 타오.”
나영은 입이 함박만해졌다.
“어마나. 한화로 170여만원은 되는군요. 그게면 한국에서도 기본생활유지금은 돼요. 이젠 출판비용도 크게 들 일도 없지. 근심할게 있는가요?”
종호는 씨무룩이 웃었다.
"그렇다고 책이야 어찌 내잖겠소?"
나영은 핸드폰을 들더니 뭘 찾아 종호 앞에 쳐들어 보였다.
"보세요. 나영이 숱한 위챗그룹에 리사장님 항일투쟁사 책 내용을 올렸던데요. 조회수가 몇천회나 돼요. 책을 몇백부 내서야 어떻게 위챗 조회수만큼 보겠습니까?"
종호도 조회수에 놀라하며 머리를 끄덕이었다.
나영은 아주 자신심이 생겨 종호를 정답게 쳐다보면서 물었다.
“지금은 온라인시대 아닙니까? 이젠 책 출판에 신경을 너무 쓰지 말고 위챗그룹과 인터넷홈페이지에 올리게 려향한테 맡기세요."
종호도 선선히 대답했다.
"알았소. 온라인이 이렇게 무서운 파급력을 넓을줄은 몰랐소. 이젠 늙어서 시대에 떨어졌소."
나영은 화제를 되돌렸다.
"이젠 새 가정을 차릴 거나 탐구하세요. 호호호."
그녀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더니 종호를 쳐다보며 진지하게 물었다.
"40대 초반 녀성이면 어때요?”
종호는 성림을 안은 채 주춤 멈춰섰다.
“에이, 무슨 말이오? 안될 소리.”
그러나 나영은 계속 뒷말을 이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애가 딸려서 좀 부담스러울 수도 있죠. 허나 리사장님은 집 안에 젊은 현처량모를 두면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일도 잘 할 수 있죠.”
종호는 저도 몰래 가슴이 설레이는 감이 들었다. 오랜만에, 아니, 수십년만에 이성한테서 들어보는 충격적인 짜릿짜릿한 말이 아닌가.
(나영은 지금 자기를 말하고 있잖는가? 허우, 이 일을 어쩌는가?)
종호는 갑자기 뜻밖의 말에 충격을 받아 어쩌면 좋을지 몰라 망설이었다.
그는 젊음의 생기가 풍겨나는 나영의 탄력있는 몸매를 보면서 저으기 심리부담을 느꼈다. 마음의 상처를 입은 나영한테 상처를 입히기 싫었다.
이윽고 그는 이렇게 완곡하게 사양했다.
“난 아직 재혼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소. 첫 결혼에 너무나도 처참한 고배를 마시고나니 사실 말해 진짜 재혼할 생각이 하나도 없소.”
나영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그래요. 저도 같은 심정인데요. 저도 첫 결혼에 실망했지요. 그래서 이성의 찐 사랑을 받으려고 헤맸는데요. 결국 혼외련도 고배를 마셨지요.”
그녀는 이렇게 뒷말을 이으려다가 그만두었다.
“혼외련 해서 애까지 배서 락태하고. 참 말하기도 망신스러운데요. 저는 너무나도 타격을 받고 재혼할 생각이 꼬물만치도 없어졌지요.”
종호도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우린 계속 이렇게 따뜻한 가정도 없이 살 수야 없지 않는가요? 사랑도 없이 한뉘 아득바득 고독한 하루하루룰 보낼 수야 없지요.”
랭면집에 거의 이르러 나영은 주춤 멈춰서며 성림을 받아안아 내리워 놓았다.
그녀는 볼우물을 옴폭 파며 종호를 빤히 쳐다보면서 용기를 내 뒷말을 이었다.
“리사장님은 살뜰한 젊은 현처량모를 만나 아들을 낳고 대를 이어야죠. 그게 종신대사가 아닌가요? 리사장님의 민족을 위한 성스러운 력사정리 사업도 대를 이을 후대가 있어야죠. 지금 40대 초반 녀성은 얼마든지 애를 몇이라도 무우 뽑듯 할 수 있어요.”
나영은 종호의 한을 젤 잘 알고 있었다. 종호는 아들을 낳지 못해 전주 리씨 가문의 대를 끊은 것을 젤 마음이 아파했다. 그것이 바로 종호의 평생 한이었다.
때문에 나영의 말은 해일처럼 파도치며 종호에게 크나큰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나영이 도대체 어째 이런 말을 하는지 통 오리무중에 빠졌다.
종호는 그저 한숨을 후- 길게 내쉴뿐이었다.
뿔은 단김에 뺀다고 나영은 계속 공격해왔다.
“리사장님, 시간이 많습니다. 충분히 곰곰히 생각해보고 행복과 사랑으로 통한 길을 선택하길 기대해요.”
종호는 씨무룩이 웃었다.
“나영인들 이런 카시모도 같은 사람하구 재혼하겠소?”
나영은 볼에 볼우물을 옴폭 파며 웃었다.
“호호호. 카시모도? 참 웃겨요. 어떻게 보면 리사장님은 불쌍한 여성들을 보호한 어리무던한 카시모도 같군요. 카시모도는 참 마음씨 착한 사람이죠. 허나 리사장님은 카시모도처럼 등곱쟁이 아니죠. 인물체격이 쭉 빠진 미남자지요. 성숙미가 다분한 지성인이죠.”
그 말에 종호는 용기를 얻고 능청스레 간을 보았다.
“려향도 날 카시모도라고 나영일 에메랄드라고 하지 않겠소. 무슨 카시모도하구 에메랄드 사랑이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말도 안돼요. 려항인 웃겨도 한두가지 아니군요.”
나영은 자기 정체를 아직 잘 모르는 종호의 말을 중도무이했다.
“전 재가를 안해요. 전 가정이란 정신감옥에서 금방 해탈됐는데요. 또 그 정신감옥에 들어가겠는가요? 상상도 못할 일인데요.”
나영은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난 이젠 남자들이라면 다 발정난 수캐로 보여요. 왜 또 끌데없는 남자를 사귀겠어요?”
종호는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나영인 혼나긴 혼났구나.)
나영은 너무 한 것 같아 어조를 낮추며 부드럽게 말하려고 애썼다.
“금방 한 말은 절대 리사장님을 두고 한 말이 아닙니다. 리사장님이야 좋은 분이죠.”
그는 병 주고 약 주는 나영이 슬그머니 얄미웠다. 더구나 살짝 남의 마음을 뚜장질해 놓고 미꾸라지처럼 스리살짝 빠져나가는 나영이 더욱 얄미웠다.
“그걸 보오. 나영인 재혼하는 걸 싫어하면서, 허허, 어떤 눈 먼 바보 여성이 아무 쓸모 없는 늙은 카시모도한테 시집오겠소?"
그때 성림이 환성을 질렀다.
“저기 박선생님이 온다!”
“선생님이라니?”
종호는 의아해 성림이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았다.
“오, 박선생님이 오는구나.”
나영이 성림의 손을 잡으며 뒷말을 이었다.
얘는 지영이 고향에서 속산을 배워준 선생님이라고 계속 박선생님이라고 불러요.”
저쪽 골목길에서 지영이 양산을 쓰고 걀쭉한 얼굴에 환한 웃음을 지으면서 선녀처럼 이쪽으로 디똥디똥 걸어오고 있었다.
아, 사뿐사뿐 사람들 속을 걸어오는 지영이, 파란 와이샤쯔를 입고 무릎을 가린 연두색치마자락를 휘날리면서 걸어오는 지영이, 그녀의 몸매는 이쁘기만 했다.
나영은 밤중에 홍두깨 내밀듯이중뿔나게 이런 말을 뿔쑥 꺼냈다.
“리사장님, 저 지영이 어때요?”
“뭐?”
종호는 외까풀눈이 화등잔만큼 데꾼졌다. 입도 함박만큼 쫙 벌렸다.
“지영이야 좋은 여자지.”
종호는 어망간에 나간 말에 인차 한마디 덧붙였다.
“장난 치지 마오.”
그러나 나영은 정색했다.
“지영은 중국에서 남편과 함께 속산학원 꾸렸는데요. 남편이 바람 피워서 애고 뭐고 다 뿌리치고 한국에 훌 나와 버렸어요.”
나영은 지영의 남편이 자기 여동생 춘영과 바람피운 일은 능청스레 제대로 밝히지도 않았다.
종호는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는 나영의 말에 종호는 기쁘기는커녕 속이 비길데 없이 볶이었다.
“그만, 그만.”
그는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그때 지영이 다가와 종호한테 허리 굽히며 깎듯이 인사했다.
“리사장님, 건강 괜찮지요?”
종호는 황망히 인사를 받았다.
“오- 그래, 덕분에 이젠 건강이 완전히 회복됐소. 그래. 지영도 그간 잘 있었소?”
그는 손으로 냉면부 문을 가리켰다.
“어서 들어가기오.”
그들은 희희닥거리며 냉면부로 우르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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