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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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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울고 웃는 고향(43)
2016년 06월 08일 16시 25분  조회:2002  추천:0  작성자: 김장혁




          7. 큰물
       최구장의 집은 쑥밭처럼 됐고 어덴가 모르게 살기가 스미어 들었다.
       “이제 일본 헌병 놈들이 쳐들어오겠는데. 아, 이 일을 어쩐단 말이요?”
최구장은 집안에 들어와 김빠진 공처럼 풀썩 물앉았다.
경인은 상순을 나무랐다.
“에끼, 이 사람아, 좀 참지 못하고 그게 뭐요? 일본 놈들과 맞서서야 되오?”
그는 몸을 돌려 상을 찌푸리면서 어두커니 서있는 아버지를 위안했다.
“아버지, 괜찮습구마. 먼저 처남을 만주국에 보내고 아버지네도 숨었다가 함흥촌에 달아 납소. 내 뒤처리를 싹 해가지구 동생들을 데리고 들어가겠습구마.”
어금도 오랍동생의 팔을 붙들고 말리었다.
“얘, 어쩌면 참지 못해? 옛날에 아버지도 한길수를 떴다가 여기서 못 배기고 만주에 달아나지 않았니?”
상순은 그제야 가마뚜껑을 가마 위에 놓으면서 씩씩거렸다.
“그래 가시할머니와 각시를 다 붙잡아 가자는데도 놔 두라오? 내 잘 못한 게 하나도 없소. 그 놈들이 우리를 한심하게 업신여기고 날뛴단 말이요. 자기 고향의 딸기와 버섯을 뜯었는데 무슨 죄를 졌단 말이요?”
경인은 “설마 죽겠소? 극상해서 매를 맞고 벌금이나 하면 되겠지?”라고 하면서 도리머리를 절레절레 가로 흔들었다.
성단은 계순의 팔을 붙잡고 열 당부를 했다.
“얘, 시집에서 기다리겠다. 이젠 온지 일주일도 됐으니 어서 집에 가라. 여기 있다간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몰라.”
그러고 나서 성단은 죽순과 상순이네 쪽으로 얼굴을 돌리더니 “자네들도 어서 만주로 빨리 달아나오. 일본 놈들에게 붙잡히면 죽는 길 밖에 없소.” 라고 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런데도 계순은 “야, 엄마도, 더 놀고 가겠소. 이래 보면 언제 또 보겠소? 난 가기 싫소.” 라고 하면서 흥기를 끌어안았다.
“이것아, 날이 개였을 때 집에 피해 있다가 정서방과 의론해서 저 죽순이네 함흥촌으로 달아나라. 우리도 들어가야겠다.”
계순은 가기 싫어하면서도 일본 놈들이 쳐들어올 것 같아 흥기를 들춰 업고 빨갛게 익은 살구 반 바가지를 천에 싸든 채 꿀꿀이를 이끌고 가마골로 떠나는 길에 들어섰다.
그녀가 울 밖에 나가서 가마골로 가는 길에 들어섰을 때였다. 앞에 숱한 까마귀들이 날아내려 앉아 “까지 마오! 까지 마오!” 하고 울어대였다.
그러자 몇 발자국 떼지 않은 계순은 바래러 나온 엄마 쪽으로 되돌아오더니 몸을 비틀면서 떼를 썼다.
“엄마, 난 가지 말까? 저 까마귀들을 보오. ‘가지 마오, 가지 마오.’ 하고 울지 않소?”
그때 또 까마귀들이 참말로 그렇게 우는 것이었다.
“까욱! 까욱!”
“까지마욱!”
“까지 마우! 까지 마우!”
그 까마귀들의 울음소리는 정말로 “가지 마우, 가지 마우.” 하고 우는 상 싶었다.
순금은 돌멩이를 쥐여 까마귀무리에 뿌리면서 “닭 수리야, 우~씨! 닭 수리야, 우~씨!” 하고 쫓았다.
그러자 까마귀들은 후닥닥 날아났다가도 또 길 앞에 내려와 앉으면서 울어댔다.
“까지 마욱!”
“까지 마우!”
"가지 마우!"
계순은 우는 까마귀를 보고 또 되돌아서서 “어디로 갈 때 까마귀가 울면 나쁘다던데 엄마, 난 가지 말개.”라고 하면서 한발자국도 내딛지 않고 되돌아왔다.
성단은 애를 업은 계순의 잔등을 어루만지면서 달래였다.
“저 까마귀들은 네가 여기 있으면 일본 놈들에게 붙잡혀가서 죽을까봐 우는 게야. 빨리 이곳에서 달아나라.”
“엄마와 명옥은 어쩌겠소?”
“우리도 여기서 달아나겠어. 언니네 마을에 가서 만나자. 우리 거기 가서 잘 살자.”
그제야 계순은 가기 싫은 걸음으로 마지못해 가마골로 향했다. 그는 가기 싫어서 몇 번이고 몇 발자국을 가다가도 뒤를 돌아보고 되돌아오려고 하군 했다. 그럴 때면 성단이가 어서 가라고 손짓하군 했다. 그리하여 계순은 마지못해 흥기를 춰 업고 느릿느릿 마을 어귀로 걸어갔다.
계순이가 마을 어귀를 벗어나 가마골 쪽으로 굽어들자 모두들 집안에 들어와 대책을 상론했다.
최구장은 한참이나 담배를 피우면서 궁리하더니 입을 무겁게 열었다.
“명옥이 네는 죽순과 함께 먼저 떠나거라. 우리도 애들을 다 데리고 만주국에 들어가야 하겠어. 저 한길수 놈과 응삼이랑 우리를 여기서 살게 하니? 일본 놈들까지 득실거리는 여기서 하루도 삐치기 힘들구나. 공부도 배워주지 말라지, 밭에다 곡식을 심지 말라지. 이젠 버섯이구 딸기마저 뜯어먹지 말라지. 뭘 먹고 살아?”
그는 경인을 보면서 “너희들도 동생들과 함께 떠나도록 해라.” 하고 말했다.
경인은 “알았습니다.”라고 하며 머리를 숙였다.
경인과 어금은 근현과 두 살 밖에 안 되는 해옥을 각기 업고 집으로 먼저 떠나갔다.
한편 계순은 홍기를 업고 가마골에 마지못해 돌아왔다.
계순이 삐뚤게 달린 정지 문을 열고 집에 들어섰다. 그러자 열흘 만에 아내를 보는 정형만은 반가와 애를 업은 계순을 덥석 안아 빙빙 돌렸다.
“이걸 놓소. 위방에서 시아버지 웃겠소.”
형만은 아내를 내려놓으면서 “그래 가시부모랑 모두 무사하오? 처형이랑 처조카네랑 만주에서 잘 보낸다오?” 하고 이것저것 물었다.
“예, 우리도 언니네 사는 만주에 가서 잘 살아보기요. 이 가마골에서 어떻게 사오?”
그러자 형만은 계순을 꼭 끌어안으면서 “응, 그래. 우리 만주에 가서 잘 살아보자.”라고 하며 계순의 이마에 흘러내린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주었다.
“이번에 우리 엄마와 명옥이 강가에 가서 버섯하구 딸기를 따 왔다고 일본 놈들이 붙잡아가려고 하지 않겠소. 그래서 조카사위가 글쎄 가마뚜껑과 식칼을 들고 덮쳐들어 일본 놈과 응삼이 그 구장 놈을 찍어놓았소.”
그들이 이런 얘기를 주고받는데 바깥에서 꽹과리소리가 쟁쟁 울렸다.
“야마다 면장님의 명령이야! 모두 저수지 둑막이를 나왓!”
형만은 아내 계순과 더 재미없는 말을 하지도 못하고 둑막이를 나가게 됐다.
계순은 문 밖에 나서는 남편을 보고 신신당부했다.
“여보, 내 본가집에서 떠나는 길 앞에 별나게 까마귀들이 울더군요. 어찌나 불길하던지. 둑 막으러 가면 어찌나 물을 주의하오.”
형만은 문 밖에까지 따라 나온 아내의 근심어린 얼굴을 돌아보며 “근심하지 마오. 자네나 주의하오.”라고 말하고는 떨어지지 않는 걸음으로 떠나갔다.
형만은 또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산골짜기 막바지에 둑막이에 끌려 나갔다. 그러나 형만은 그것이 아내와의 생리별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한참 후 바깥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무슨 소릴까?)
계순은 이상해서 흥기를 업고 바깥에 나가보았다. 다른 집들에서도 비행기가 날아오는 소린가 하여 비행기를 구경하려고 바깥에 나왔다. 모두들 소리 나는 골짜기 막바지 쪽 구름 덮인 하늘을 쳐다보았다. 먹장구름이 뒤덮인 하늘에 비행기는 보이지 않고 대신 골짜기막바지에 온통 누런 것이 덮쳐오는 것이 보일뿐이었다.
우르르 쓰~와~
골짜기를 메우면서 누런 흙물이 기세 사납게 덮쳐 오고 있었다.
이때 우에서 정형만이 달려 내려오면서 고함쳤다.
“큰물이다! 사람 살리오! 큰물이다!”
“큰물?”
계순이 골짜기를 올려다보니 정말 큰물이 어느 결에 북쪽 마을어구지의 집을 휩쓸더니 곧추 덮쳐 오고 있었다.
“에구머니!”
계순은 애를 업은 채로 내뛰기 시작했다. 그런데 물을 피해 높은 곳으로 달려가도 모르겠는데 글쎄 물 앞에서 아래쪽으로 내달렸다. 그러나 우로 뛰나 아래로 뛰나 매 한가진 것은 불 보듯이 뻔했다. 코앞에까지 덮쳐온 큰물은 사정없이 온 마을을 덮치면서 집들과 마을 사람들을 덮쳤다. 파도치면서 덮쳐온 누런 흙탕물은 흥기를 업은 계순을 훌 파묻으면서 스쳐지나갔다. 시형은 시아버지를 업고 집에서 나오자마자 흙탕물에 휩쓸려 자취를 감추었다.
형만은 령 길을 따라 마을 쪽으로 달려오다가 그 광경을 보고 훌렁 진흙탕에 물앉아 손바닥으로 땅을 탁탁 치면서 울었다.
“아이고, 계순아, 흥기야, 너네 어디로 가니? 에이고, 하느님도 무심하지. 내 계순과 흥기를 데려가다니?”
형만은 땅을 치면서 대성통곡 쳤다. 형만의 삼촌 석수가 달려와 형만을 위안했다.
한참 후 그는 혹시나 하여 파도치면서 흘러내려간 싯누런 흙탕물을 눈이 뚫어지게 들여다보았다.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예쁜 아내 계순과 아들 흥기가 보이지 않았다. 흙탕물 쪽으로 저벅저벅 걸어가던 형만은 대성통곡 치면서 고함쳤다.
“계순아, 흥기야, 너희들이 없이 살아서 뭘 하겠니? 옳다. 나도 너희들 따라 갈게! 기다려라.”
형만은 휘청거리더니 물에 뛰어들려고 했다.
그때 뒤따라 걷던 삼촌 석수도 울면서 형만을 꽉 껴안았다.
“야, 정신 나갔니? 간 사람이 돌아오겠니?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형만아- 어엉엉.”
그러나 형만은 몸부림치면서 기어이 물에 뛰어들려 했다. 바빠 맞은 석수는 형만을 바 줄로 허리를 묶어 나무에 매놓았다. 싯누런 흙탕물은 마을을 툭 쳐 밀고 간 다음 차차 가라앉기 시작했다. 파도치던 물도 잔잔히 흐르기 시작했다.
이때 저수지 둑을 막으려고 산골짜기막바지로 올라갔던 마을 사람들이 달려 내려왔다. 그들도 모두 자기 늙은 부모와 처자를 잃고 무릎을 꿇거나 흙탕물에 뒹굴면서 대성통곡 쳤다.
야마다 면장은 우산을 들고 내려와 지껄였다.
“이 바보들아, 이젠 물귀신이 돼버렸는데 살아나겠어? 올라가 물막이나 해! 둑을 잘 막았더라면 이런 일이 있었겠어? 내 말을 잘 듣지 않더니 죽어 싸지.”
그 말에 열이 오른 형만은 바줄을 풀면서 두덜거렸다.
“네놈이 마을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아 이렇게 됐다. 비 내릴 때 저수지 물을 조금씩 빼버렸더라면 둑이 터졌겠어?”
그는 몸을 빼자마자 물 옆에 서있는 야마다 가까이 다가가더니 불시에 흙탕물에 훌 밀어 처넣었다.
“네 놈도 죽어봐라.”
야마다는 흙탕물에 빠져 떠내려갔다. 다행히도 야마다는 헤염칠 줄 알아서 살겠다고 허우적거리면서 구해달라고 손을 물 밖으로 내밀었다. 석수가 황급히 달려 내려가면서 바 줄을 들이 뿌렸다. 야마다는 바 줄을 덥썩 잡고 끌리어 뭍으로 올라왔다.
금방까지도 죽은 돼지 눈 같던 야마다의 눈에는 복수의 불길이 이글거렸다.
“이 놈, 황군을 물에 빠지어 죽게 하고서도 살 거 같아?”
야마다는 지휘도를 쑥 뽑아 들고 형만에게 덮쳐들었다.
형만은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고 못 박힌 듯이 서서 도끼눈으로 야마다를 쏘아보았다. 야마다가 지휘도로 내리찍는 순간 옆에 서있던 석수가 지휘도를 바 줄을 들어 막았다. 그러나 그때는 늦었다. 지휘도가 바 줄을 몇 토막 내고 석수의 왼쪽팔목을 내리찍었다. 석수의 손가락이 몇 대 흙탕물에 철썩 떨어졌다. 뻘건 피가 떨어진 손에서 흘러 흙탕물에 퍼져나갔다.
그 광경을 본 형만은 더는 참지 못하고 와락 달려 들어 바 줄로 야마모도의 목에 올가미를 걸었다. 석수도 힘을 합쳐 외손으로 야마모도의 추켜든 지휘도를 꽉 잡았다. 웃집의 용기가 야마다의 팔목을 붙잡고 군도를 빼앗아냈다.
“네 놈 때문에 우리 온 가족이 몽땅 죽었다.”
“에잇, 죽어봐라!”
석수와 형만이 세길 네길 뛰면서 야마모도의 두 팔을 바로 한데 옭아맸다. 그것도 모자라 형만은 옆집 용기의 손에서 지휘도를 빼앗아 야마다의 다리를 내리찍었다. 야마다의 왼다리가 보기 좋게 썩 뚝 잘리어 나갔다.
연약한 마을사람들은 옆에서 말리였다.
“자네들이 어쩔 셈이요?”
“이러다가 온 마을 사람들이 몰살당하겠소.”
그러나 형만과 석수는 끝내 야마다를 흙탕물 속에 처넣었다. 야마다는 허우적거리며 꽥꽥 고함치다가 흙탕물속에 가라앉아 자취를 감추었다. 뒤이어 야마다가 사라진 흙탕물에서 피가 뻘겋게 퍼져 올라 아래로 둥둥 떠내려갔다.
마을 사람들이 야단났다고 수군거릴 때였다. 가마골의 구장 림호라는 억대우 같은 사내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그는 호랑이도 맨 손으로 꼬꼬리를 잡아당겨 껍질을 다 벗겨놨다는 사내였다.
그는 오자마자 고래고래 고함쳤다.
“석수, 어째 죽고 싶은가! 이게 무슨 짓이냐?”
석수와 형만은 피발이 선 눈길로 림 구장을 쏘아보았다. 그러자 림구장은 형만의 살기에 찬 눈길을 보고 뒤로 주춤주춤 멈춰섰다.
그제야 석수는 질척질척한 땅바닥에서 자기 손가락을 주어 보다가 흙탕물에 훌 쥐어뿌리고 손을 잡고 상을 찡그렸다.
형만은 석수의 손목에서 아직도 피가 흐른 것을 보고 “야, 오줌을 팔목에 누오. 피가 멎게.”라고 권했다.
“그게 뭐 약이야?”
형만은 우두커니 서 있다가 석수를 재촉했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오줌을 빨리 누오. 손이 썩어 들어가겠소.”
석수는 마지못해 손에 오줌을 누웠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손목의 피가 멎었다.
마을사람들은 “석수, 빨리 도망치오. 이제 구장이 일본 놈들을 데리고 덮쳐올게요.”라고 말했다.
형만은 가라앉는 흙탕물을 멍해 바라보면서 “아내 시신을 거두지도 않고 어디로 간단 말이요?”라고 말하면서 떡 못 박힌 듯이 서서 좀처럼 떠나려고 하지 않았다.
“빨리 달아나자! 이제 구장이 우시장헌병대에 알리면 영낙없이 죽어!”
그제야 형만은 마지못해 몇 발자국을 뗐다.
“용기도 함께 달아나라.”
마을 사람들이 극구 권고하였다.
하지만 용기는 “내 어째 달아난단 말이요?” 라고 말하면서 떡 버티고 서있었다.
       석수는 형만을 데리고 정처 없이 달아났다. 형만은 달아나면서도 자꾸 고향 마을과 아내가 떠내려간 물을 되돌아다보았다.
       기운봉 쪽에 먹장구름이 몰려왔다. 번개가 산중턱을 번쩍 내리치더니 하늘땅을 진동하는 우레 소리가 울리었다. 뒤이어 장대 같은 소낙비가 창창 억수로 쏟아졌다.
                                                   
                                         8.
먹장하늘

번개 불이 사무실 안에까지 번쩍 들어왔다가 나가더니 꽈르릉 요란한 우레 소리가 울렸다.
야마모도 소장은 상우남면 사무소에서 우시장 헌병대에 전화를 걸어 운주동 사건을 보고하고 헌병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창밖에서는 또다시 소낙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갑자기 면사무소 소장 사무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림호가 뛰어 들어왔다.
야마모도 소장은 그의 출현에 이상해 엉거주춤 의자에서 일어났다.
“아니, 가마골 림 구장, 둑막이 하지 않고 웬 일인가?”
몸에 비를 흠뻑 맞은 림호는 헐레벌떡거리면서 두덜거렸다.
“야마모도 소장, 큰, 큰일 났습니다. 야마다 면장이 살, 살해됐습니다.”
조선 말을 잘 모르는 야마모도 소장은 림호가 뭐라는지 통 알아듣지 못했다. 옆에 서있던 응삼은 자기 귀를 의심했다.
“뭐라고? 야마다 면장이 살해되다니?”
갑갑해난 야마모도 소장은 안경을 춰올리면서 “니혼고데 하나세(일본말로 말하게)!” 하고 버럭 고함쳤다.
응삼이 보리 일본 말이라도 알아서 목구멍으로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전해주었다.
야마모도 소장은 자기 형을 잃은 것으로 해 펄쩍 뛰었다.
그는 림호 구장의 멱살을 틀어쥐고 흔들면서 꽥꽥 고함쳤다.
“다시 말해봐! 내 형님이 어떤 놈에게 살해됐소까?”
숨을 돌릴 새도 없이 림호는 자초지종을 죽 이야기했다.
야마모도 소장은 비보를 다 듣고 군도를 쑥 뽑아들더니 책상을 탁 내리찍었다. 그 바람에 책상이 두 동강이 나고 말았다.
“원수놈!"
야마모도는 이를 쁘득쁘득 갈았다. 
"가자!”
응삼은 야마모도를 뒤따라 가면서도 운주동에서 당한 일이 있어 슬그머니 겁을 집어먹었다.
“야마모도 소장, 우리 힘으론 그 놈들을 붙잡지 못합니다. 괜히 갔다가 우리까지 목숨을 잃겠습니다.”
성이 꼭뒤까지 치밀어 오른 야마모도 소장은 응삼의 멱살을 틀어쥐면서 안경알 밑으로 사발 눈깔을 희번덕거리었다.
“겁쟁이 같은 놈, 네놈부터 죽여치우겠어!"
“에이, 에이! 이러지 마십쇼. 이제 황군헌병이 오면 가마골과 운주동 그리고 최구장까지 싹 쓸어버립시다. 헤헤헤."
야마모도는 그 소리에 귀가 번쩍 띄어 운주동에서 상순에게 당한 일을 생각하고 치를 떨며 군도를 내리웠다.
그도 몇몇의 힘으로는 운주동과 가마골의 “불온분자”들을 어쩌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는 인차 한길수에게 알려 우시장의 깡패들이라도 데리고 오라고 한 후 헌병대에 다시 전화를 쳐 헌병을 보내달라고 했다.
우시장의 헌병대에서는 다른 곳에서도 불온분자들의 소동이 있어서 못 간다고 했다. 사실 다른 곳에 소동이 있은 것이 아니라 헌병들은 소낙비가 쏟아지는데다가 물이 불어 빠져 죽을까봐 오기 싫었던 것이다.
창밖에서는 닭알만큼 한 우박이 쏟아져 사무실지붕 기와에 따 당 따 당 부딪쳐 요란한 소리를 냈다.
야마모도가 사무실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애타게 기다릴 때, 그래도 늙은 한길수가 말을 타고 건달들을 일여덟 데리고 헐레벌떡 달려왔다. 그가 든 기름종이우산은 총알을 맞은 듯이 빈대만 남고 기름종이는 구멍이 펑펑 뚫려 너덜거렸다.
비를 폭 맞은 늙다리 한길수는 야마모도 앞에서 굽은 허리를 굽신거리었다.
“참 안됐습니다. 야마다 면장께서 그런 봉변을 당하다니.”
한길수는 림호에게 낯을 돌리더니 이렇게 훈계했다.
“구장이라는 게, 참, 면장 어른도 잘 보호하지 못하다니.”
림호는 상전의 앞에서 억대우 같이 구척이나 되는 몸뚱이를 굽실거리었다.
“정말 죽을죄를 졌습니다. 한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가마골의 놈들을 한 놈도 남기지 않고 몽땅 죽여 버리겠습니다.”
통역이 번역해주자 야마모도는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그는 부하들 앞에서 약한 속심지를 보이는 것 같아 인차 안경을 벗고 손수건으로 눈물을 쓱 씻더니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요로씨이(좋아), 그래도 한상이 제일이야. 가자, 먼저 가마골에 가서 불온분자들을 처단하고 우리 형님의 시신을 거두자.”
한길수는 야마모도를 따라 면사무소에 준비해둔 군용방수포비옷을 입고 가마골로 쏜살같이 덮쳐갔다.
그들은 말배까지 치는 운주강을 겨우 건너 가마골 어귀에 들어섰다. 누런 흙탕물은 강바닥이 다 드러나게 가라앉았고 다만 누른 흙탕물이 탁 치고 지나간 흔적을 알리는듯 산골짜기중턱에까지 누런 진흙탕이 묻어있고 온 마을에 밭이라고는 산중턱에 강냉이 밭 세 고랑 밖에 남지 않았다. 산골짜기 막바지는 산사태가 무너지면서 골짜기를 껍질을 한번 벗긴 듯이 무너져 내렸고 여기저기에 시체들과 죽은 가축들이 지저분하게 널려있었다.
야마모도는 시체들을 보자 혹시 자기 형이 있겠는가고 살피였다. 그러자 한길수가와 가마골 구장 림호도 자기 상전을 찾느라고 세 귀 눈을 희번덕거리었다.
그래도 혈육이 혈육인가 본다. 야마모도는 누런 진흙탕 속에서 건뜻 쳐들린 군화를 발견했다. 그는 진흙탕 속에서 군화를 신은채로 있는 왼쪽 다리를 쥐여 쳐들고 이리저리 보더니 결론을 내렸다.
“조선 사람들은 이런 군화를 신지 못하네. 꼭  형님의 군화 같애. 이 근처에 내 형님이 있을 것 같네. 흩어져서 잘 찾아봐!”
“옛!”
한길수와  졸개들은 말에서 내려 사처로 흩어져서 야마다의 시신을 찾기 시작했다.
이때 야마모도는 군화를 신은 왼쪽다리를 쥐고 꿇어앉아 땅을 치면서 대성통곡 쳤다.
“아이고, 형님, 이게 무슨 일이요? 조선에 와서 잘 살자고 하던 노릇이 이게 뭐요? 형님, 동생이 왔소. 형님, 어, 허, 헉, 흐, 흑, 흑.”
실 돌피 같은 응삼이 그래도 여기저기 널린 시체 속에서 진흙탕 속에 쓰러진 야마다의 시체를 찾아냈다. 늙은 버드나무가지에 팔과목이 바 줄로 꽁꽁 묶인 것이 야마모도의 시체가 분명했다.
“여, 여기 있습니다.”
그러자 야마모도와 한길수는 황급히 그리로 달려갔다. 야마모도는 우두커니 서서 왼쪽다리가 썩 둑 잘린 형의 시체를 바라보다가 털썩 꿇어앉았다.
“아니상(형님)! 아니상(형님)!”
       일본 말을 잘 모르는 한길수는 다가가서 야마모도를 보고 “당신 형님이 옳습니다. 어째 아니라고 그럽니까?” 라고 말했다.
       번역관은 코웃음이 났지만 겨우 참고 번역해주지 않았다.
야마모도는 꺼이꺼이 울다가 와락 야마다의 품에 쓰러져 낯을 만지면서 흑흑 흐느껴 울었다.
(저러다간 가마골의 흉수들을 다 놓치겠어.)
한길수는 개화장을 홱 휘두르더니 응삼과 수길에게 명령했다.
“자네들은 가마골의 림 구장과 함께 빨리 가서 흉수들을 잡아오게나. 야마다면장의 원수를 꼭 갚아야 하네.”
“예이!”
응삼과 수길, 영팔 등이 림호 구장과 함께 떠나려는데 야마모도가 벌떡 일어났다.
“이이에(아니야)! 내 손으로 그 놈들을 잡아 칼 탕을 쳐 놓을 테다! 가자!”
그리하여 한길수 등 졸개들은 야마모도를 따라 말을 타고 곧추 가마골 막바지 쪽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올라가면서 보니 집이라고는 한 채도 보이지 않고 큰물에 밀대를 맞아 없고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다. 집도 없고 창대같은 비가 쏟아지는데 모두들 비를 피해 어디를 갔는지 찾아볼 길이 없었다.
      사실 형만과 석수는 어디론가 달아났고 용기랑 마을사람들은 살길을 찾아 머나먼 다른 마을의 친척집으로 가 버렸던 것이다.
       야마모도는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말을 타고 막바지 터진 둑이 있는 데까지 달려가 보았다. 그러나 사람이라고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늙은 한길수는 더는 말을 타고 달리기 싫어서 야마모도 소장을 보고 “원수는 십년을 갚아도 늦지 않습니다. 후에 그 놈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려 감쪽같이 없애버립시다.”
통역이 그 말을 번역해주자 야마모도는 군도를 뽑아 옆에 서있던 나무 가지를 탁 쳤다.
“가자! 운주동에 가서 최구장의 년 놈들을 몽땅 붙잡아가자!”
“예이!”
한길수 등은 야마모도를 따라 말머리를 돌려 운주동쪽을 달려갔다.
그들이 억수로 쏟아지는 비를 무릅쓰고 가마골과 운주동 골짜기가 한데합친 목에 이르렀을 때였다. 운주동 마을 어구에서 몇 사람이 울며 불면서 기름종이우산을 쓰고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한길수가랑 말을 타고 달려 점점 가까이 다가갔지만 기름종이우산에 가리어 누군지 똑똑히 볼 수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사람들의 울음소리가 둑 끊어진데다가 슬금슬금 신흥동으로 난 길 쪽으로 굽어드는 것이었다.
뱁새눈 응삼이 그래도 눈치 빨랐다.
“저 놈들이 가능하게 최구장의 무리인지도 모릅니다.”
그 소리에 야마모도는 군도를 쓱 뽑아들고 말에 박차를 가했다.
“하야꾸 쯔이게끼(빨리 추격)!”
“빨리 추격해!”
한길수 등은 일제히 말에 채찍을 안기며 쇠방망이와 시퍼런 칼을 빼들고 짓쳐나갔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굽어든 곳으로 덮쳐갔을 때는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고 대신 버드나무와 낙엽송들이 억수로 퍼붓는 소낙비에 몸부림 치고 있었다.
그들은 말을 타고 비바람 치는 수림 속으로 헤매기도 싫었지만 야마모도의 눈치를 봐서 마지못해 이리저리 수색하는 척 했다.
한참 후 응삼이 야마모도 앞에 가서 말에서 내려 실 돌피 같은 허리를 굽실거리면서 상전의 귀에 대고 이런 잔꾀를 대주었다.
“속담에 중놈은 달아나도 절은 달아나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 놈들은 달아났지만 집이야 달아 날수 있겠습니까? 집에 쳐들어가면 한 놈이라도 붙잡을 수 있을 겁니다.”
그 말에 뭔가 피뜩 떠오른 것이 있었던지 야마모도는 군도로 운주동을 가리켰다.
“이께(가자)!”
그리하여 그들은 말을 타고 운주동으로 짓쳐 들어갔다. 영팔과 수길은 개를 잡은 포수처럼 최구장네 집 울안에 들어서자마자 문을 박차고 쇠방망이를 쳐들고 뛰어 들어갔다. 그런데 집안에는 아무도 없이 조용했다.
“제길 할!”
수길은 쇠방망이로 물독을 땅 쳤다.
쏴- 물독의 물이 온 부엌바닥에 질벅하게 쏟아졌다.
야마모도도 뒤따라 들어왔다.
그는 텅 빈 집안을 휘둘러보더니 “개놈새끼들이 몽땅 어디로 달아갔단 말인가?” 하고 고함치면서 군도로 대들보를 탁 찍었다.
우수수 흙이 구들에 떨어졌다. 그것이 명령이기라도 한 듯이 영팔과 수길이 등 망나니들은 집안의 가정기물을 쇠방망이와 칼로 마구 쳐 부시고 찍었다.
영팔이 라이터를 꺼내들고 당장 칠상을 하면서 “아예 이 놈의 개굴에 불을 콱 지르고 말기요.” 하고 고함쳤다.
“가만!”
이때 응삼이 손을 쳐들어 영팔의 손에서 라이터를 내리웠다. 그는 실눈을 가슴츠레 뜨고 야마모도와 한길수의 앞에 가서 입에 손을 대고 목소리를 죽여가면서 지껄였다.
“이 집을 놔두고 갑시다. 한 두 사람을 남겨 집주위에 매복시켰다가 그자들이 이 집에 다시 기여들 때 일망타진하는 게 상책입니다.”
그러자 야마모도는 응삼의 코끝에 엄지손가락을 내들면서 “리상 요로씨이(리군 좋아), 가에로(돌아가자)!” 하고 고함치며 손을 홱 바깥으로 내저었다.
영팔 등은 통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이 머리를 절레절레 저면서 쇠방망이를 들고 문밖으로 나갔다. 수길은 문을 나서면서 시퍼런 칼로 문풍지를 쭉 내리그었다. 그 바람에 문풍지는 사람몸뚱이가 통 채로 나들게 구멍이 펑 뚫렸다. 림호는 사립짝문을 발로 걷어차서 번져놓고 가버렸다. 그자들이 우르르 쓸어나가자 말들이 대가리를 흔들면서 투레질했다.
한참 후 집안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그때까지 중 천정에 숨어 숨을 죽이고 엎뎌 있은 근형은 천천히 일어나 앉았다. 그는 옆에 엎뎌 있는 새단을 툭툭 치고 나서 입을 그녀의 귀에 가져다대였다.
“여보, 저 놈들이 집주위에 숨어서 살피는 줄도 모르고 할아버지랑 이 집에 들어오면 어찌 하겠소. 내 가마골에 가서 할아버지께 놈들의 간계를 알려줘야겠소.”
그러자 새단은 신랑의 팔을 더듬어 잡으면서 “아이고, 당신이 가면 나는 어찌 하라오?” 하고 말하면서 부들부들 떨었다.
“내 올 때까지 여기 까딱 말고 엎뎌 있소.”
근형은 각시의 귀에 대고 뭐라고 열 당부를 하고 나서 천정구멍 쪽으로 살금살금 기어가서 뚜껑 한쪽을 빠금히 열고 숨을 죽인 채 아래 동정을 한참이나 엿들었다.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가 다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
그제야 근형은 뚜껑을 열고 중 천정에 끌어올려놓았던 사닥다리를 구멍으로 끌어다가 내려놓고 고방으로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내려갔다. 그가 사다리를 옮기려고 들 때 구멍을 올려다보니 어느새 새단이 뚜껑을 꼭 닫아놓지 않았겠는가?
근형은 사닥다리를 들고 고방 뒷문 쪽으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그는 고방 문을 살며시 열고 뒤울안으로 나가 사다리를 내려놓았다.
밖에서는 아직도 대살 같은 소낙비가 비바람 속에 쏟아졌고 기와 추녀 끝에서는 숱한 실 폭포들이 쏟아져 내려오고 있었다. 이따금 번개가 번쩍 하고 우레가 천지를 진동했다.
근형은 우산이고 뭐고 들새 없이 비바람 치는 뒤울안 바자를 뛰어넘어 몸부림치는 수림 속으로 숨어 들어갔다.
사실 야마모도와 응삼이 행패를 부리다가 간 후 상순과 명옥이 그리고 죽순은 최구장과 성단의 분부대로 먼저 떠나가 버렸다. 그런데 점심쯤에 형만과 석수 그리고 용기가 헐레벌떡거리면서 최구장네 집으로 달려왔던 것이다. 형만에게서 계순과 흥기가 잘못된 자초지종을 듣고 최구장과 성단은 백사불구하고 형만과 함께 가마골로 가서 계순과 흥기의 시신이라도 찾아 거둬주려고 떠났다. 근형과 새단은 뒤에 남아서 집을 지켰던 것이다. 그런데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그들은 마을도 채 벗어나지 못하고 야마모도와 한길수의 무리들을 만났던 것이다.
근형은 수림 속을 헤매다가 신흥동으로 가려고 제방 둑에 나섰다. 그런데 제방둑 저쪽에 웬 사람이 얼씬거렸다. 분명 한길수가 남긴 감시군것 같았다. 근형은 인차 제방 둑 아래 버드나무숲속에 몸을 숨기었다. 소낙비에 큰물이 질대로 진 강물은 세찬 파도를 일구면서 제방 둑을 당장이라도 치고 넘어올 듯 했다.
(신흥동으로 못 가겠구나. 그럼 아버지랑 응삼 등이 집에 뛰여들어 야단치는 새에 산기슭을 에돌아 가마골로 다 간 게 아닐까? 저 놈을 다른 데로 유인해야겠다.)
근형은 인차 비바람을 무릅쓰고 버드나무숲 속으로 허리를 굽히고 살금살금 가마골과 반대방향으로 달아났다. 그러자 또 다른 자가 이쪽으로 따라오는 것이었다. 근형은 그자에게 잡힐까봐 양손에 주먹만 한 돌멩이를 주어들고 버드나무숲속으로 숨어 들어가 버렸다. 그자는 버드나무숲속을 헤치면서 슬금슬금 다가오다가 살기 넘치는 버드나무숲속이 싫은지 빠져나가더니 제방 둑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이쪽을 살폈다. 그러자 근형은 그자를 제방 둑에 따돌리고 다리야 날 살리라고 버드나무숲속으로 하여 이번에는 가마골 쪽으로 도망쳤다.
근형의 추측이 맞았다. 최구장 등은 버드나무숲 속에서 한참 한길수 무리와 숨바꼭질하다가 그 놈들이 집으로 쳐들어간 새에 버드나무숲속에서 나와 곧추 가마골 쪽으로 굽어들어 달아갔던 것이다.
근형이 가마골로 가보니 진짜 살풍경이었다. 고모네 집이고 마을이고 곡식이고 몽땅 누런 흙탕물이 쫄 밀어가고 아무것도 없었다. 여기 저기 몇몇 마을사람들이 집식구들의 시체를 붙안고 울고 있었다. 저 멀리 할아버지 최구장과 할머니 순금이가 고모부 형만과 함께 작은 고모의 시체를 찾느라고 흩어져 돌아다닌 것이 보였다.
그가 산골짜기중턱 버드나무 밭에서 할아버지를 부르며 달려가려다가 무엇엔가 걸려 넘어갔다. 찬찬히 보니 진흙탕에 반 넘어 묻힌 웬 검정무명치마였다. 발을 빼면서 보니 웬 허벅다리가 누런 진흙탕 속에 알릴락 말락 드러났다.
“이크, 이게 뭐야? 막내고모 무명치마가 아니냐?”
근형은 바삐 손으로 진흙탕을 마구 파헤치고 시체의 얼굴을 보았다. 분명 막내고모 계순이었다.
“막내고모! 아이고, 이게 웬 일이요? 고모!”
근형이 대성통곡 치면서 진흙탕을 손으로 마구파고시체를 끌어안아 일으켜 앉혔다. 계순의 잔등에는 포대기에 싸 업은 흥기가 업히어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 여기 있습구마! 엉, 엉, 엉.”
최구장과 성단, 형만 등이 황급히 뛰어왔다.
최구장은 뛰어오자마자 막내딸을 붙안고 가슴을 치면서 불렀다.
“야, 계순아, 우리 왔다. 깨나라. 응? 야, 이게 무슨 일이야?”
성단은 굳어버린 흥기를 껴안고 손바닥으로 진흙탕을 치면서 통곡했다.
“흥기야, 흥기야, 다 할미 내 잘못이다. 딸이 그렇게 가기 싫어하는 걸 내 너 네를 죽였구나. 자꾸 가라고 해서 너를 죽였구나. 죽순아 내가 너를 죽였구나. 길에서 까마귀가 ‘가지 마우.’ 하구 운다면서 가지 않겠다는 걸 내가 가라 해서 이렇게 죽였구나. 어이구, 나는 어쩌겠니?”
형만은 처자를 가시부모에게서 빼앗아내듯이 와락 끌어안더니 계순의 낯에 볼을 마구 비비면서 황소소리로 온 골짜기가 울릴 지경으로 처량하게 대성통곡 쳤다.
“계순이, 내 어데 가서 계순 같은 각시를 얻겠소? 계순이 없으면 난 못 사오. 나도 같이 죽기요. 어 허 헉, 헉헉.”
석수도 근형도 눈물을 줄줄 흘리었다. 용기도 손등으로 눈물을 씻었다.
이윽고 최구장이 일어났다.
“그만들 하오. 어쩌겠소. 다 제 명이 그만한 걸. 응삼과 림호랑 또 쫓아올지 모르니까 빨리 시체를 파묻어주고 떠나기요.”
개똥도 약으로 쓰자면 없다고 불시에 관은커녕 널판자도 쓰려고 하니 큰물에 다 떠가서 하나도 없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여기저기 널린 가마니를 주어다가 모자의 시체를 싼 후 산등성이에 메여갔다.
그들은 삽도 없어 손으로 대충 시체를 파묻을 구덩이를 파고 두 모자 시체를 나란히 내려놓았다. 그러자 형만은 죽순이를 파묻기 아쉬워 마구 구덩이에 뛰어들어가 가마니를 싼 계순과 흥기, 꿀꿀이를 끌어안고 드러누웠다.
“나를 계순과 함께 파묻어주오. 어서 파묻소. 파묻어!”
그러자 석수가 엉엉 울면서 “야, 나오라. 이러면 못쓴다.”라고 하면서 형만을 겨우 뜯어 안아 내왔다.
최구장과 근형은 피눈물과 함께 계순과 흥기를 나란히 파묻어주었다.
성단은 애기 산소같이 손으로 파묻어놓은 계순의 묘를 치면서 계속 대성통곡 쳤다.
“에이유, 계순아, 내가 너를 죽였구나. 이게 무슨 일이냐? 그렇게 떠나기 싫어하는 걸 내 너를 쫓아 보낼 게 뭐냐? 에이고, 아이고. 꿀꿀아, 네 이름을 돼지이름으로 지으면 앓지 않고 튼튼하게 자라겠는가구 했는데. 이게 뭐냐? 이 외할미 먼저 죽어야 하는데 너 네를 먼저 죽였구나. 에이고, 내 먼저 죽어야 하는데 새파란 너 네를 죽였구나. 흐 흐 흑. 흑흑. 흥기야!”
“됐소. 우린 여길 빨리 떠나야 하오. 일본 헌병 놈들이 들이닥칠지도 모르오.”
최구장은 성단의 팔을 끌어당기었지만 끌리어 일어나면서도 발을 떼려고 하지 않았다.
“에이고, 내 막내딸을 여기다 두고 어떻게 제만 살겠다고 간단 말이요?”
최구장과 근형은 성단을 끌어당기면서 울지 말라고 말리였다. 형만도 석수와 용기가 끌어안고 밀고 해서야 겨우 몇 발자국 떼였다.
아, 왜 슬프지 않겠는가? 친혈육을 잃은 그 고통이야 이루다 헤아릴수 있겠는가!
자기 혈육을 이런 누런 진흙탕에 묻고 떠나야 하는 마음이야 오죽 하랴! 사랑하는 처자를 고향 땅에 묻고 떠나는 형만의 마음은 참말로 칼로 심장을 도려내듯이 아팠다. 최구장도 성단도 형만도 모두 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비칠거렸다.
먹장구름이 뒤덮인 하늘에서는 소낙비가 쏟아졌다.
우르릉 꽝꽝!
우레가 지동치고 번개가 번쩍였다. 먹장하늘에서는 대살 같은 소낙비가 끊임없이 쏟아진다.
아니, 아니야. 한 많은 이 고향 산천에, 처자를 묻은 고향의 진흙탕에 피눈물을 휘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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