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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추격
민주연군은 휴식정돈을 한 후 호호탕탕하게 묘령에로 추격했다. 상순과 성수, 태수는 기관총을 메고 부대를 따라 묘령으로 강행군했다.
민주연군 선두부대가 묘령 동쪽과 서쪽 산을 점령하자 묘령에 둥지를 틀고 있던 토비들은 혼비백산해 전투준비를 하느라고 전호를 따라 올리 뛰고 내리 뛰며 들볶아댔다.
한 군관 놈이 권총을 빼들고 뭐라고 꽥꽥 고함치는 모습도 보였다.
상순은 기관총반을 령솔해 높은 둔덕에 급히 은페호를 파고 기관총 여섯정이나 걸어놓았다. 그런데 허백호 련장은 뒤에서 두덜거렸다.
"김지도원은 뭐야? 사상공작이나 할게지. 항상 련장 앞에서 기관총반을 이래라 저래라 한다니까."
상순은 못들은척 했다. 적정이 긴급한데 네냐 내냐 따질새 없었다.
갑자기 말 발자국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난데 없는 수십명 기병이 먼지를 새뽀얗게 일구면서 달려왔다. 철갑모를 쓰고 록색군복을 입고 돌격총으로 무장한 것을 보아 검정솜옷에 개털모자를 쓴 토비는 아니었다.
"우린 쏘련홍군이야!"
통역인듯한 쏘련 홍군이 고함쳤다.
당시 묘령에는 한개 영이나 되는 쏘련 홍군이 주둔해 있던 쏘련 홍군 기병이 토비들과 민주련군 사이에 달려왔던 것이다.
뒤이어 뚱뚱하고 엄청 훤칠한 꺽다리장교가 통역관과 몇몇 경호원을 데리고 민주련군 진지에 다가왔다.
자지러진 말 호용소리와 함께 통역관은 민주련군 진지 앞에서 말을 멈춰세우고 말에서 내렸다.
"누가 최고장교인가?"
최퇀장이 진지에서 나가려고 했다.
'"잠간!"
지도원 상순이 나서 막았다.
"최퇀장, 위험합니다. 토비들이 총구를 겨누고 있습니다. 제가 나가 보겠습니다."
"또또또, 퇀장 할 일에 앞서기를? 쯧쯧쯧,"
허백호 련장이 눈을 흘겼다.
"어째 사람이 앉을 자리 설 자리도 모르고 헤덤비오."
최퇀장은 진지에서 나가려다가 주춤 멈춰서더니 상순한테 머리를 돌렸다.
상순은 최퇀장한테 다가왔다.
"저 뚜뚜마위치란 쏘련 홍군 장교 면목 있습니다. 항일전쟁 때 일제 거점을 칠 때부터 룡정해방때까지 쭉 친분이 있습니다."
"그래?"
"제 가보겠습니다."
"좋소. 가보오."
상순은 경호원도 부르지 않고 단독으로 쏘련 홍군 장교한테 다가갔다.
"쩨뜨라스뜨워이체(안녕하십니까)? 뚜뚜마위치 상교님.)"
상순이 군례를 올리며 서투른 로어로 인사했다.
그러자 홍군 장교는 뜻밖에 자기를 알아보고 로어인사를 하자 어깨를 어쓱하며 반색했다.
"하라쇼(좋아 )!"
통역은 상순을 데리고 장교 앞에 다가갔다.
상순은 한어로 인사했다.
"뚜뚜마위치 상교님, 안녕하십니까?"
통역이 통역하자 뚜뚜마위치 상교는 상순의 아래 위를 훑어보더니
"오첸 하라쇼(很好)! 에따 킴(이게 김씨구만)!"
뚜뚜마위치 상교는 반색하며 말에서 뛰여내러 두 팔을 벌리더니 사순을 와락 포옹했다.
그는 상순의 손을 잡더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당신들 뭔가? 항일전쟁도 끝났는데 중국 사람들끼리 싸우다니? 우린 내전을 반대해!"
상순은 토비들의 만행을 말하면서 내심하게 민주련군의 전투 정당상을 설명했다.
"뚜뚜마위치 상교, 우린 항일전쟁 때부터 전우입니다. 우리 일본 놈들과 싸울 때 저놈들은 낯짝도 내밀지 않고 우리 백성들을 해치고 항일전쟁 승리과일을 따먹으려고 합니다. "
"건 그래. 저 토비놈들 산에 둥지를 틀고 들어앉아 우릴 도와 총 한방도 쏘지 않았어. 괘씸한 것들."
그라나 뚜뚜마위치는 두 팔을 쫙 벌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우린 중립이야. 량군은 서로 싸우지 말라. 우린 전투를 말리러 왔어!"
그러자 상순은 쐐기를 콱 박았다.
"우릴 도와 저 놈들을 투항하게 해주십시오. 그럼 우린 싸울 필요없습니다. 저놈들이 우리 백성들을 살해하고 략탈하며 못 살게 굴기에 싸우게 됐습니다."
"그래? 하라쇼(좋아). 량군이 담판하게나."
"저놈들을 투항하라고 압박해주십시오."
뚜뚜마위치는 상순의 어깨를 툭 쳤다.
"알았어."
"하라쇼(좋습니다). 쓰빠시바(감사합니다)."
상순 항전시기 쏘련 홍군과 함께 북만으로부터 용정까지 쳐나간 기나긴 로정에 로어 통역에게서 배운 보리로어를 꽤나 잘 써먹었다. 그의 보리로어인사말이 아마 뚜뚜마위치와의 거리도 쭉 줄일 수 있은 것 같았다.
"담판하러 오게나!"
"예. 투항하겠다면 가지."
"다스비따냐(다시 만납세)!"
"다스비따냐(다시 만납시다).)"
뚜뚜마위치는 상순과 작별인사를 한 후 말을 타고 기병대를 이끌고 토비 진지로 달려갔다.
그는 기병대 장병들을 데리고 토비무리와 민주연군 사이에서 앞뒤로 왔다 갔다 하면서 서로 싸우지 말라고 재삼 말리었다. 그는 일본 놈들을 몰아낸 후 민주연군과 토비들이 싸우는 것에 반감을 가진 나머지 양 군이 담판하여 문제를 해결하라고 했다.
.뚜뚜마위치 상교의 노력 밑에 끝내 민주련군 간부와 토비 두목의 담판이 열리게 되였다. 량군은 쏘련 홍군의 감독하에 원 진지에서 2리씩 철거하고 담판하기로 하였다. 물론 량군 중간에는 쏘련 홍군이 막아섰다.
담판에는 민주련군 방락권 퇀장과 최낙련 퇀장, 그리고 김상순 지도원이 참가하였고 토비쪽에서는 두목 셋이 참가하였다. 쌍방은 모두 쏘련 홍군의 규정에 따라 무기는 휴대하지 못하였지만 담판 석상에서 서로 잡아먹을듯 눈을 뚝 부릅뜨고 서로 쏘아보며 씩씩거렸다.
담판석상에서 뚜뚜마위치 상교는 책상을 꽝 치더니 량군에 명령하듯 을러멨다.
"우린 중국 내전을 반대한다. 량군은 전투를 그만두고 화해하라."
그러자 토비두목은 코방귀를 뀌였다.
뚜뚜마위치는 토비두목을 쏘아보았다.
"누가 불복해 계속 싸우면 쏘련 홍군이 가만놔두지 않을 거야!"
최낙현 퇀장은 토비두목들을 보고 투항하라고 권고했다.
"투항하라. 투항하면 살려준다."
뚜뚜마위치도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옳아. 토비들은 민주련군에 력량대비도 안되니깐. 너희 토비들 투항하는 게 상책이야. "
그는 엄지를 내둘렀다.
"그럼 전투 안하고 평화야, 평화!"
그러나 토비 두목은 순순히 투항하려고 하지 않았다.
"우리 묘령과 아주 가까운 천교령에 800여명 토비 있어. 그들이 이제 지원하러 올건데."
방락권 퇀장은 책상을 치며 위협했다.
"우리 민주연군 2천여 명이 묘령을 물샘틈없이 포위했다. 네놈들은 독안에 든 쥐야."
뚜뚜마위치 상교가 벌떡 일어나 권총을 빼들고 을러멨다.
"어서 투항해라! 투항하지 않으면 우리 쏘련홍군이 네놈들 천당에 보낼테야!"
깡굴깡굴한 양머리 밑에서 데굴데굴 부라리는 새파란 눈알에서 불꽃이 튕겼다. 당장 토비두목들을 잡아먹을 상이었다.
그제야 토비 두목들은 목을 움츠러뜨리며 입장을 바꿨다.
토비 두목은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뚜뚜마위치 상교 앞에 가서 굽신거리며 말했다.
"우린 즉시 무장기의를 일으키겠습니다."
뚜뚜마위치 상교는 권총을 허리에 차더니 토비 두목의 낯을 쥐여 비틀며 지껄였다.
"하라쇼(좋아)! 이제야 대가리 제대로 돌아가는구만. 당신들 살았어, 살아. 허허허."
그때 상순이 최퇀장한테 귀속말을 하더니 토비두목을 보고 물었다.
"전보흥과 조학구 너희들 소굴에 갔지?"
"누굴 그러오?"
"시치미를 따지 말고 먼저 두 놈부터 내놔라. 그래야 기의성의를 보이는 거야."
토비두목은 난처해했다.
"기의하면 살려준다고 해놓고 이러면 어쩝니까?"
"당신들은 살려줄 수 있소. 그러나 전보흥과 지학구는 우리 김지도원과 10여명 전사들을 살해한 놈이기에 살려둘 수 없다."
토비두목은 나머지 두 놈에게 눈길을 주었다.
그러자 두 놈은 벌떡 일어나 결단했다.
"그 놈들을 우리 손으로 결박해오겠수다."
"히라쇼(좋아). 당신들 기의를 환영하네."
뚜뚜마위치는 량군 수장들이 서로 악수하게까지 하였다. 뒤이어 투비도목을 돌아보았다.
"따스비따냐(안녕히). 허허허."
그 말에 토비두목은 깜짝 놀라 무릎을 털썩 꿇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금방 기의하면 살려준다고 해놓고 때려죽이겠다고 하면 어쩝니까?"
통역의 말을 듣고 뚜뚜마위치는 험상궂은 얼굴에서 웃음기를 거두었다.
"뭐라고?!"
토비두목은 뚜뚜마위치 상교를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고 중얼거렸다.
"금방 장군께선 뭐? 死吧死吧(쓰바씨바.), 打死必打你啊( 따쓰비따니아)하던데..."
통역은 그 장마도깨비 너을 건너가는 소리 같은 말을 듣고 웃음보를 터뜨렸다.
“핫하하.”
로어를 모르는 토비두목들은 뚜뚜마위치 상교의 말을 오해했던 것이다.
통역은 토비두목에게 일일이 해석해주었다.
"'쓰빠씨바'는 '감사하다'는 말이지 '죽어라'거나 '죽이겠다'는 말이 아니네. '따쓰비따냐'는 '안녕히'라는 말이지 "때려죽이겠다'거나 '널 꼭 때리겠다.'는 말이 아니네."
통역은 시름이 놓이지 않는지 한마디 덧보탰다.
"오해말게. 뚜뚜마위치 상교는 작별인사를 한 거네."
그제야 투비두목은 천천히 일어나면서 굳어졌던 낯을 풀었다.
"오- 알았소. 우린 꼭 기의하겠습니다."
토비 두목은 자기 대오로 돌아가자 토비들을 몽땅 데리고 무장기의를 일으켰다.
토비 두목들은 총상을 입어 다리를 쩔뚝거리는 지학구를 결박해 끌고 왔다.
지학구는 상순을 보자 애걸복걸했다.
"상순이, 자넨 알잖나? 난 충국이랑 데리고 기의했는데. 장관과 말해 제발 살려주게나."
상순이 세귀눈을 부릅떴다.
"이놈 가짜로 기의한 끝장이 뭔지 아는가?"
최낙현 퇀장이 다가와 호통쳤다.
"네놈은 우리 민주련군 대부대에 겁 먹고 가짜로 기의했고 전보흥을 따라 토비굴에 재차 들어간 놈이야. 네놈은 일제 때도 해동파출소 소장질한 친일주구야. 네놈은 우리 김지도원과 10여명 전사들을 악독하게 살해한 놈이야. 천만번 죽어도 마땅하다."
지학구는 대가리를 툭 떨어뜨렸다. 그는 상순을 쳐다보며 애걸했다.
"상순이, 난 그래도 사촌형 지학사가 네 할아버지 괭이로 찍어놨다고 300원을 배상하게 하잖았는가. 그 은공을 봐서라도 살려주게나."
상순은 지학구를 보자 눈에 복수의 불길이 일었다. 그러나 억지로 눅잦히며 물었다.
"충국은 어디 있어?"
"충국은 나와 함께 기의를 일으켰다가 마룡이란 자가 전소교한테 고발하는 바람에 들켰네. 충국은 당장에서 마룡을 쏘아죽였네. 뒤이어 그는 나와 함께 전소교를 암살하려다가 실패하자 어디로 도망쳤는지 몰라. 이만하면 날 살려줄만 하지?"
"퉤!"
상순은 지학구의 낯빤대기에 침을 퉥 뱉었다.
"더러운 친일주구놈, 살기를 바라느냐! 네놈은 가짜기의해 목숨을 부지했다가 재차 전소흥을 따라 묘령 토비소굴에 도망쳐 반변했다."
최낙연 퇀장은 상순에게 손을 홱 휘둘렀다.
"끌어내가 총살해라!"
"옛!"
상순 지도원은 전사들에게 손을 홱 휘둘렀다. 전사들은 지학구를 진지에서 끌고 산꼴짜기로 나갔다.
상순은 허리춤에서 권총을 빼들고 고래고래 고함다.
"김지도원과 전사들의 원쑤를 갚는다. 인민을 대표해 친일주구 네놈을 처단한다!"
땅!땅! 땅!
총소리와 함께 친일주구, 토비 패장 지학구는 산꼴짜기로 굴러내려갔다. 전사들이 달려내려가 생사를 확인하었다.
토비들은 지학구가 총살당하는 걸 보고 와들와들 떨며 수군거렸다.
상순은 토비들을 보고 지학구의 가짜투항한 것과 그의 죄악을 렬거하면서 진심으로 기의한 자들을 죽이지 않기에 겁나하지 말라고 하였다.
최낙현 퇀장은 토비두목을 보고 물었다.
"전보흥놈은?"
"그 놈, 눈치 빠릅니다. 우리 담판한다는 걸 알고 우리 셋이 없는 틈에 지학구를 쏘고 경호반 놈들을 데리고 천교령 쪽으로 도망쳤습디다."
"음,"
최낙현 퇀장은 머리를 끄덕였다.
"또 놓쳤군."
상순이 토비두목에게 물었다.
"그 놈이 무전기도 가지고 달아났는가?"
"예."그랬습니다."
최퇀장이 다그쳐 물었다.
"그 놈이 무전기로 누구와 련계하던가?"
"뭐, 왕특파원이란 자와 자주 무전기로 련계하는 거 같습디다."
"왕특파원? 그놈 어디 있는 놈인가?"
"국자가에 있다던가?"
최퇀장과 방락권 퇀장은 서로 눈길을 마주쳤다. 상순은 땅이 꺼지게 한숨을 후- 내쉬었다.
극악무도한 전보흥 놈은 놓쳤지만 묘령 토비숙청은 쏘련 홍군의 방조를 받아 간단히 담판을 통해 승리적으로 끝났다.
민주연군은 숨을 돌릴 새도 없이 초봄이 돼 잔설이 깔린 길을 따라 천교령의 토비를 숙청하려고 진군했다.
상순이랑 성수랑 기관총을 마차에 싣고 천교령으로 들어가는 태평령에 이르렀을 때었다. 골짜기에서 피물로 벌겋게 물든 눈썩임물이 주절주절 흘러 내렸다. 길옆 여기저기잔설 속에 부서진 박격포와 포탄 깍지 그리고 유골들이 가득 널려 있었다. 이쪽 산비탈에는 왜소한 뼈가 널려 있었는데 그것은 일본 놈들의 유골이었다. 저쪽 산비탈의 잔설 속에는 좀 키 큰 뼈가 널려있었는데 그것은 소련 홍군의 유골인 것 같았다.
상순이랑 마차를 몰고 부대를 따라 태평령 요자구에 이르렀을 때다.
천교령의 토비 두목 류무경이 졸개를 보내 우리 민주연군 최낙현 퇀장을 찾아 왔다.
그 놈은 “우린 투항하겠소.”라고 말하면서 흘끔흘끔 여기저기 살피는 것이었다.
최 퇀장은 대뜸 이 놈이 아군의 무기정황을 정탐하려고 왔다는 것을 간파했다.
“기의하겠으면 자네들의 류무경 두목이 마중 나와서 우리 잠자리나 마련해 줘야지. 날이 어두워지는데 말만 하면 되는가?”
상순도 한마디 했다.
"전보흥이란 놈을 생포해 오라. 그럼 너희들 기의를 믿을 수 있다."
그 놈은 자기 두목의 음모를 들여다 본 것 같아 “예, 예. 돌아가 전하겠습니다.”라고 하며 황급히 돌아갔다.
최 퇀장은 부대에 명령을 내렸다.
“적들은 기의에 성의가 없습니다. 저 놈들은 가능하게 오늘 저녁에 야습하러 올 것입니다. 요자구에 주둔하되 모두 옷을 입고 신을 신은 채로 시시각각 전투준비를 하시오.”
“옛!”
부대 장병들은 모두 옷을 입은 채 요자구 개인 집들에 들어가 쪽잠을 잤다.
아니나 다를까!
밤 11시 쯤 되자 천여 명이나 되는 토비들이 대포산(포대산)에 진을 치고 요자구 마을에 포를 쏘며 기관총으로 소사했다.
쿵! 쿵! 쾅! 쾅!
따르륵! 따르륵!
포탄이 작렬하고 자지러진 총소리가 들리자 민주연군 장병들은 재빨리 마을에서 뛰어나가 산 둔덕에 진을 쳤다.
민주연군 전사들은 박격포를 걸어놓고 대포산을 향해 맹렬히 쏘았다.
“딱!” “쿵!”
쾅! 쾅! 쾅!
포탄이 죽음의 노래를 부르며 적진으로 날아갔다. 뒤이어 적진에서 검붉은 버섯불길이 무수히 피요오르고 화광이 하늘을 :찔렀다.맹렬한 포화에 토비들은 무리로 쓰러졌다.
상순 지도원은 이성수와 이태수 등 기관총사수들을 영솔해 산 둔덕에 기관총을 걸어놓고 불길이 마을 쪽으로 번쩍번쩍 날아오는 곳의 적들을 향해 맹렬한 사격을 가했다. 무수한 빨간 불줄기가 적진으로 보기좋게 날아가 꽂혔다. 적들은 비명을 지르며 삼대 쓰러지듯 뒈지었다.
적들은 민주연군이 마을에서 잠을 자려니 오산하였었다. 그런데 민주연군 장병들이 신속히 산 둔덕에서 박격포와 기관총 소사를 하며 반격하자 질겁하여 싸울 마음조차 없어지었다. 박격포 탄알이 씽씽 날아와 쾅쾅 작렬하는데다가 기관총알이 비발 치듯이 날아와 숱한 토비들이 싸워도 보지 못하고 삼대 쓰러지듯 했다. 토비들은 병력이나 무기나 모든 것이 열세에 처한 것을 직감하고 밤도와 어둠 속에서 도망쳐 버렸다.
전보흥은 무전기로 왕특파원에게 천교령항거가 실패했다는 것을 회보하고는 전소광 등을 데리고 도망쳤다. 그는 그 길로 령길을 타고 돈화와 교하를 거쳐 길림에 도망쳤다. 후에 그는 신개령전투에서 중국인민해방군에 저격되였다. 그가 가지고 달아난 무전기를 로획하지 못하고 국민당 정규군 손에 들어가는 바람에 국자가에 있는 왕특파원이란 자의 단서가 잠시 끊어나 그 놈을 잠시 나포하지 못하였다.
전보흥의 동생 전소광은 패잔병을 따라 장춘을 거쳐 심양으로 도망쳤다.
천교령의 토비 패잔병놈들은 그 길로 흑룡강성 녕안현에 도망쳐 마희산을 두목으로 한 토비무리에 가담한 후 목단강을 거쳐 해림 쪽으로 도망쳤던 것이다.
민주연군 부대는 그 기세로 왕청현 로흑산 토비들을 소멸하러 출발했다.
로흑산은 라자구와 중소 국경선과 각각 150리나 떨어진 심심산골이었다. 민주연군이 영길을 타고 쏜살같이 쳐들어갔다. 그러자 300여명 토비 놈들은 싸울 념도 하지 못했다. 아마 토비 놈들은 삼도만과 묘령, 천교령 일대의 토비들이 몽땅 숙청당한 소식을 듣고 혼비백산한 것 같았다.
그 놈들은 일본 놈들에게서 빼앗은 십 여대의 자동차에 시루 속의 콩나물 대가리처럼 꽉 박아 앉아 녕안과 동녕 쪽으로 부릉부릉 엔징 소리를 내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상순은 최 퇀장의 명령에 따라 기관총 반을 영솔하여 로흑산 산마루에 기관총을 걸어놓고 맹사격을 가했다.
“사격!”
뚜르륵 뚜르륵!
태수랑 성수랑 병수랑 기관총으로 자동차를 타고 도망치는 토비들을 향해 몰사격을 가했다.
기관총알은 비발 치듯 하며 날아가 자동차를 타고 달아나는 적들을 보기 좋게 쓰러 눕혔다. 순간 도주하는 자동차 우에서 토비들의 아우성소리와 비명소리가 하늘땅을 뒤흔들 지경이었다.
맹렬한기관총 소사에 자동차 한 대가 휘발유통에 불이 확 달렸다. 토비 놈들이 자동차에서 비명을 지르며 뛰어 내리었다. 그 놈들은 태수랑의 기관총 소사에 삼대 쓰러지듯 뒈지었다.
꽝!
불을 달고 달려가던 자동차가 삽시에 요란한 폭발굉음과 함께 폭파되었다. 숱한 토비 놈들이 하늘로 날아났다.
자동차 잔해에는 삼단 같은 불길이 활활 타 번졌다. 살아남은 몇몇 놈들이 몸에 불이 달린 채 자동차 우에서 뛰어내려 꽥꽥 비명을 지르며 데굴데굴 굴다가 뒈졌다.
상순은 성수와 태수를 돌아보며 “제일 앞의 자동차 휘발유통을 조준해 사격!”하고 고함쳤다.
“알았소!”
그들 셋은 기관총으로 제일 앞의 자동차 휘발유통을 조준해 맹렬히 사격했다.
뚜르륵 뚜르륵
쾅!
요란한 폭발굉음과 함께 제일 앞의 자동차에 불이 활 달렸다.
토비 놈들의 아우성 소리가 어지럽게 들리었다. 어떤 놈들은 비명을 지르면서 불이 달린 채 달리는 자동차에서 뛰어내려 개죽음을 당했다. 어떤 놈들은 미처 뛰어내리지 못하고 자동차 폭발의 굉음과 함께 하늘로 날아나고 말았다.
뒤의 자동차 놈들은 앞의 자동차가 길을 막아 도망치지 못해 아우성쳤다.
이때 상순은 “1조는 두 번째 자동차를 갈겨라!‘
“예!”
“2조와 3조는 젤 뒤 자동차를 사격하라!”
“옛!”
기관총반의 여섯 정의 기관총은 몽땅 그 자리에서 부릉부릉 맴도는 토비들의 자동차를 조준해 사격을 가했다. 어떤 토비 놈들은 자동차에서 뛰어내려 길옆에 엎드려 이쪽에 대고 사격했다. 어떤 놈들은 자동차에서 뛰어내려 산비탈로 달아나다가 민주연군의 사격에 즉살했다.
이때 최퇀장의 명령에 따라 민주연군 박격포도 입을 열었다.
“딱!” “쿵!” “쾅!”
박격포 탄알과 기관총알이 자동차의 토비들을 향해 우박 치듯 날아갔다. 토비들은 화가마 우에 오른 개미들처럼 맴 돌아치다가 염라대왕을 보러 떠나갔다.
그런데 두 번째 자동차가 불이 달린 채 제일 앞의 자동차 잔해를 마구 떠밀어 길옆에 처박고 꼬리 빳빳해 도망쳤다. 그러나 얼마 달아나지 못하고 “꽝” 하는 요란한 폭파 굉음과 함께 하늘로 날아났다.
민주연군 장병들은 통쾌해 환성을 질렀다.
토비 놈들은 숱한 주검을 남기고 서너 대 자동차 밖에 도망치지 못했다.
전투가 끝난 후 최낙현 퇀장은 상순을 불렀다.
상순이 기관총을 메고 통신원을 따라 스적스적 최 퇀장이 있는 절벽 밑으로 다가갔다.
최 퇀장은 상순의 어깨에서 기관총을 받아 내리워 놓고 말했다.
“김지도원, 아주 잘 싸웠소. 전번에도 말했지만 동무는 영장을 해야겠소.”
그러나 상순은 덜미를 긁적거리면서 사양했다.
“전 아직도 실전경험이 부족합니다. 지휘재간도 없는데 지도원도 너무 과분합니다. 이제 전투지휘와 대포쏘기재간을 배운 후 다시 봅시다.”
최 퇀장은 이해되지 않아 했다.
“또 그 말이군. 김지도원은 이미 훌륭한 지휘재능을 발휘했소. 전쟁 속에서 전쟁을 배우라는데 왜 자꾸 그러오?”
상순은 속심의 말을 했다.
“전 영장을 할 재간도 없습니다. 이젠 토비숙청도 다 했는데 부대에서 뭘 하겠습니까? 진수해 구위 서기 이계삼 동지는 저를 보고 동만의 토비를 다 몰아낸 후 함흥 촌에 돌아와 지방 사업을 하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지방 당 조직에 한 약속을 어길 수 없습니다. 마을에 돌아가 농사를 지으면서 지방 당 조직을 도와 민병공작을 할 예산입니다.”
최 퇀장은 상순을 쉽게 놓지 않았다.
“상순 동무, 아직 국민당과의 전쟁은 시작에 불과하오. 삼도만의 전보흥도 나포하지 못했잖소? 지금 장개석 국민당 반동파들은 동북의 대도시를 거의 다 점령하였소. 그 놈들은 당장 교하를 친후 할바령을 넘어 우리 동만으로 쳐나올 망년된 꿈을 꾸고 있소. 중국에서 국민당 반동파를 철저히 소멸하기 전에는 우린 절대 발편잠을 잘 수 없소. 우린 계속 국민당 반동파와 싸워야 하오. 우리 부대에는 상순동무와 같은 전투지휘능력이 있는 군사인재가 필요하오.”
그러나 상순은 기어이 부대를 떠날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만약 국민당 반동파들이 교하를 넘어 우리 동만으로 쳐나올 때면 다르죠. 그때 다시 부대로 돌아와 본때 나게 싸우겠습니다.”
최 퇀장은 도리머리 질 했다.
“참 답답하오. 동무는 후에 꼭 후회할 거요.”
그래도 상순은 자기 생각을 고집했다.
민주연군 부대는 라자구를 거쳐 왕청에 돌아와 휴식정돈하게 되었다. 상순은 최 퇀장의 비준을 받고 함흥 촌으로 돌아가게 됐다. 최퇀장은 소개신과 상부 영장임명장을 상순한테 주면서 말했다.
"지방당조직에 바치오."
"이건?"
"꼭 바쳐야 하오. 동무는 지방에 가서도 이 직급의 사업을 해야 하오."
상순은 정이 폭 밴 기관총을 매만지면서 메고 떠나나가려고 청을 들었다.
최 퇀장은 상순이 기관총을 애지중지하는 마음을 읽은 듯이 기관총을 되 상순의 어깨에 메워 주면서 말했다.
“김지도원, 지방에 아직도 국민당 잔여특무들이 있소. 이 기관총은 동무가 입대할 때 가지고 온 거니까 가지고 가오. 마을에 돌아가서 기관총사수를 많이 양성해 우리 부대에 보내주오.”
상순은 입이 함박만 해 싱글벙글 웃으면서 군례를 척 붙였다.
“감사합니다. 최퇀장, 꼭 기관총사수를 수태 양성해 부대에 데리고 오겠습니다.”
최퇀장과 허련장은 아쉬운 대로 상순을 보내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이때 한 마을의 성수도 나섰다.
“최퇀장, 나도 상순 반장과 함께 함흥 촌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최퇀장은 도리머리 질 했다.
“이거 우리 퇀의 기관총사수들이 다 마을로 돌아가면 어쩌지. 성수동무는 기관총을 두고 가야겠소.”
“옛!”
성수는 기관총을 내려놓고 상순을 따라 나섰다.
그러나 이태수는 최 퇀장의 눈치만 보면서 아무 말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이태수만은 계속 부대에 남아 있게 됐다.
상순은 승리의 희열에 넘쳐 기관총을 메고 성수와 함께 영길에 올라 함흥 촌으로 떠났다.
제21장 두번째 고향
1. 첫봄
기다리고 기다리던 새 봄이 왔다. 빼앗겼던 나라를 되찾은 첫 봄이 왔다. 하늘에는 종달새가 지종지종 노래하며 날아옌다.
산과 들의 밭에는 땅의 주인이 된 농민들이 흥겹게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있었다.
상순은 마을에서 참군한 용사들을 데리고 마을에 돌아왔다. 마을 사람들은 왁짝거리며 집에서 뛰여나와 그들을 반겨맞았다. 그런데 상순이 야마꼬와 어린애까지 데리고 온 것을 보고 아낙네들이 쑤군거렸다.
"아니, 친일주구 일본첩년을 데려오다니?"
"저런 애까지?"
"정신 있소?"
상순의 무서운 세귀눈과 마주친 아낙네들은 입을 딱 다물어버렸다.
"야마꼬를 들먹이지 마오. 야마꼬도 일제 침략전쟁과 지주들의 피해자오. 그를 기시해선 절대 안되오."
"기생년 아니오?"
"무슨 소리오? 일제 놈들한테 끌려온 일본군 위안부오. 일본 놈들의 피해자라니깐. 야마꼬는 의지가지 없는 불쌍한 여자오.절대 놀리지 말어야 하오. 언닌 토비놈들한테 참혹하게 살해됐소. 오빠 야마가와는 우리 민주련군을 도와 탱크를 몰고 삼도만토비소굴에 진공해 숱한 토비들을 소멸하고 장렬하게 희생되였소. 언니 요시꼬와 오빠 야마가와는 모두 토비들의 손에 희생돼 삼도만에 묻혔소."
그제야 마을 아낙네들은 측은한 눈길로 야마꼬를 바라보았다. 야마꼬는 돌아서서 애를 안고 어깨를 가늘게 들먹이며 눈물을 훔쳤다.
상순은 야마꼬를 충국의 부탁대로 지학사네 집에 보내지 않고 장학산네 집에 보냈다. 지학사 첩이지만 친일주구네 집에 가면 기를 펴고 살 것 같지 못했다. 그런 점을 고려해 상순이 아량있게 처리한 것이다.
그런데 상순이 야마꼬를 데리고 장학산네 토성안 집에 들어서자 장리국과 장미란이 야마꼬한테 아니꼬운 눈길을 보냈다. 상순과 장학산이 친척아주머닌데다가 의지가지 없는 여자라고 설득해서야 그들의 눈길이 겨우 좀 달라졌다. 기실 장학산이나 장충국이나 만나서 토론한 적은 없었지만 똑같이 엉뚱한 궁리를 하고 있었다. 충국은 상순을 보고 야마꼬를 자기 집에 뎌려가 기다리게 했다가 돌아가면 데리고 살 궁리를 하고 있었다. 너무 하얀 얼굴이 마음에 걸렸지만 화복치마 밑에서 비뚤거리는 터질듯이 펑퍼짐한 엉덩이가 퍽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다. 장학산은 더욱 엉큼한 궁리를 하고 있었다.
"그래, 충국은 어데 있느냐?"
장학산의 물음에 상순은 대뜸 장학산이 진작 충국이 토비에 들어간 걸 알고 있었음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상순은 대답하기 아주 난처한데도 별수없이 곧이곧대로 쭉 알려주었다.
"평강촌에서 기의해 전보홍을 암살하려다가 실패한 후 어디로 도망쳤는지 모르겠습니다. 충국은 삼도만 토비숙청에 큰 공을 세웠습니다. 이젠 토비들이 다 숙청됐으니깐. 언제든지 마을로 돌아와도 되오."
뒤이어 상순은 장학산에게 경고했다.
"당신도 이젠 구사회를 꿈꾸지 말고 로동개조에 잘 참가해 사상을 개조해야 하오. 그러잖고 다른 꿈을 꾸면 안되오."
장학산은 상순에게서 그간 충국의 이왕지사를 다 들었기에 머리를 끄덕이며 한숨을 땅이 꺼지게 후- 내쉬었다.
상순이 떠나가자 야마꼬는 장학산 일가의 눈치를 할끔할끔 보면서 불편해하였다. 그러자 장학산은 탄련있고 풍만한 야마꼬의 가슴을 노려보면서 마른 군침을 꿀꺽 삼켰다.
"충국이 서른이 거의 되도록 장가도 못갔는데 일본 년이라도 마주세워야지. 흐흐흐. 좌우간 지학사는 죽었으니 우리 집안에 들어온 일본 여자를 우리 마음대지. 허허허."
그는 희죽이 웃으면서 요시꼬를 서쪽 방에 데리고 갔다.
"자넨 오늘부터 우리 집 식구야. 아무 근심도 하지 말고 여기 서쪽 방에서 살게나."
야마꼬는 외씨 같은 얼굴에 희색을 띠우며 자그마한 앵두입을 쫑긋했다.
"요씨!"
"요씨(要死)라니? 뭐, 죽겠다고?"
장학산은 일어를 모르다나니 의아해했다.
"남은 우리 집에서 잘 살라고 했는데 죽겠다니?"
"호호호. 好(좋아)"
아니, 절대 죽어선 안돼. 우리 아들 오면 함께 살아. 알았어?"
야마꼬는 뜻밖의 말에 애를 안고 입을 하 벌리며 우스워했다. 그러나 그녀가 무슨 수가 있겠는가. 이젠 모자가 장학산에게 매운 목숨인데야.
“아링아도 고자이마쓰(감사해요)."
장학산은 더욱더 오리무중에 빠졌다.
"뭘? 이번엔.马死야? 허, 이거라구? '요쓰', '요쓰' 하더니, 자꾸 马死, 마쓰하면 어쩌느냐? 우리 집엔 말도 없는데. 흐흐흐.”
장학산은 음충한 눈길로 야마꼬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다가섰다. 그는 칡넝쿨 같이 메마른 손을 능구렁이처럼 뻗쳐 야마꼬의 허리를 슬쩍 건드리며 지껄여댔다.
"넌 죽어선 안돼. 내겐 보배야."
장학산은 더는 참지 못하고 그 탐나는 요시꼬의 살진 엉덩이를 스리슬쩍 만졌다.
"아이, 야라나이데 꾸다싸이(이러지 마세요)!"
야마꼬는 엉덩이를 비틀며 우는 애를 돌려대 장학산을 밀막았다.
"하긴 잘해! 불여우 같은 년!"
그때 충씨와 장미란이 나타나 허연눈깔을 표독스레 희번뜩였다.
"어디서 꼬리쳐!"
"아니예요."
야마꼬는 어깨를 들먹이면서도 입이 열개라도 사실대로 까밝힐 수 없었다...
한편, 병완은 가래짝 같은 손으로 돌을 주어들더니 촌공소 마당 늙은 비술나무에 걸어 놓은 종을 댕, 댕, 댕 두드렸다.
함흥 촌 사람들은 촌공소의 종이 울리기만 하면 또 병완 촌장이 또 회의를 부른다는 것을 알고 모여 들곤 했다.
병완은 마루 위에 서서 마을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러분, 우리는 일본 놈들의 핍박에 의해 고향을 떠나 간도에 왔습니다. 이젠 일본 놈들을 몰아내고 나라도 되찾았습니다. 우리 고향에서도 일본 놈들이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허나 일본 놈들의 수십 년 동안 약탈적인 통치에 의해 우리 고향은 사람이 살 수 없고 밭을 개간하기 힘든 수림으로 돼버렸습니다. 그 수림을 몇 십 년 후에 채벌해 쓴다면 나라의 훌륭한 재목으로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두 번째 고향을 건설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웅성거렸다.
“제 고향을 두고 돌아가서 살지 못하고 어떻게 여기다 고향을 건설한다고 그러오?”
“그러게 말이오. 여기 간도 함흥 촌이 어디 고향이오?”
“두 번째 고향이란 말은 듣다 첫소리요.”
병완은 손을 들어 흔들고 연설을 계속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고향을 잊으라거나 돌아가지 말라는 건 아니오. 돌아 갈 사람들은 돌아가오. 성칠과 통사정을 하면 한두 집이 돌아갈 순 있을 거요. 허나 어떻게 이 많은 사람들이 다 돌아가 살겠습니까? 우리는 다 함께 돌아가지 못할 바엔 조선에 나간 성칠이나 칠백을 비롯한 자식들과 나라에 부담을 주지 말고 함흥 촌에 정을 붙이고 삽시다. 정이 들면 아무데나 고향입니다. 우린 여기를 우리 두 번째 고향으로 생각하고 발을 붙이고 살자는 겁니다. 우리가 여기 와서 어떻게 일군 저 밭입니까? 우린 피땀을 흘려 일군 저 밭을 절대 버리고 돌아갈 수 없습니다. 우린 지주를 청산하여 집과 밭을 나눠 가지고 잘 사는 날을 맞이했습니다. 이 땅을 보호하기 위해 피를 흘리며 삼도만 등지의 토비들을 몽땅 숙청해버렸습니다. 우린 위대한 중국 공산당의 령도 아래 새 중국에서 소작료도 내지 않는 진정한 이 나라 땅의 주인이 됐습니다.”
그 말에는 모두들 머리를 끄덕이었다.
그러자 병완의 연설은 점점 격정으로 차 넘쳤다.
“우리는 공산당을 따라 나라와 지역이란 비좁은 마음에서 벗어나 온 세상에서 지주와 자본가들을 때려 엎고 압박과 착취가 없는 사회주의를 건설해야 하오. 그런데 무슨 내 고향 네 고향 할 게 있소? 우린 이 땅에 정을 붙이면서 뿌리를 박고 두 번째 고향을 건설하고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세상을 건설해야 하오.”
모두들 머리를 끄덕이면서 웅성거렸다.
“빨리 사회주의를 건설했으면 좋겠소.”
“그렇게 좋은 세상에서 하루라도 살았으면 좋겠다이.”
“어느 날엔가 그런 날이 오겠지.”
병완은 마지막으로 힘주어 연설을 마무리했다.
“사회주의는 스스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요. 우리가 힘써 여기에 두 번째 고향을 건설해야 사회주의 앞날을 앞당길 수 있소. 우리 모두 이 두 번째 고향에서 힘써 황무지를 개간하고 양곡을 많이 거둬야 배불리 먹으면서 잘 살 수 있소. 우리는 농사를 잘 지어 국민당군과 싸우는 인민해방군에 군량을 푼푼히 지원해야 하오. 국민당군을 물리쳐야 우리 이 땅을 지킬 수 있소. 절대 다시 지주놈들한테 이 땅을 빼앗겨선 안 되오!”
모두들 우레와 같은 박수를 쳤다.
“듣다 듣다 그래도 배불리 먹고 잘 살수 있다는 말이 제일 좋소.”
모두들 집에 돌아가 괭이를 메고 황무지를 개간하러 떠나갔다.
사람들은 한 무라도 자기 땅을 만드느라고 씨뿌리기 보다 황무지 개간에 열을 올렸다. 그런데 이젠 지주가 없다나니 누가 어느 황무지를 개간하든 말리는 사람도 없었다. 어떤 때에는 황무지를 서로 빼앗을 내기 하다가 말썽이 생겼고 지어 주먹다짐도 생겼다.
병완은 황무지분쟁을 막으려고 회의를 열고 모두들 자기가 붙이던 밭 옆의 황무지를 개간하여 밭을 만들라고 했다. 그래도 분쟁이 생기면 병완은 촌공소에 분쟁 쌍방을 불러다 정황을 알아보고 조해를 시켰다.
병완은 마을 사람들이 황무지 분쟁 없이 황무지를 개간하게 하려고 한데 몰려 황무지를 개간하지 말고 장개골안과 조개덕, 패용천산 칼산 주위 산비탈과 들판에 마을 사람들을 골고루 배치해 황무지를 개간하게 했다. 하여 무질서한 황무지개간으로 하여 생긴 분쟁이 없어졌다.
마을 사람들은 토지분쟁을 막고 제일 개간하기 힘든 패용천산 비탈 중턱 황무지를 개간하는 병완을 두고 엄지를 내둘렀다.
“공산당 영감이 다르긴 다르오. 경사도가 높은 저 산비탈에 황무지를 개간하고 어떻게 곡식을 실어들이겠다고 저러오?”
득호의 말에 태연은 머리를 끄덕이었다.
“그러게 말이오. 김 촌장은 다루기 좋은 황무지는 우리한테 주고 다루기 힘든 황무지를 개간하니 말이오.”
장학산은 병완이 자손들을 데리고 자기 황무지 자리를 마구 개간하는 것을 멀찍이 서서 보면서 배 아파 도리머리 질 했다.
“어떻게 하다나니 세상이 이렇게 뒤바뀌었단 말인가? 저 놈들에게 내 땅을 다 빼앗기겠다.”
장학산은 염치를 불구하고 괭이를 메고 병완을 찾아갔다.
“김 촌장, 나도 황무지를 개간하면 안 되오?”
병완은 괭이를 짚고 장학산을 내려다보면서 “되오.”라고 했다.
그러자 장학산은 괭이를 짚고 두루 천지꽃산을 둘러보더니 말했다.
“여긴 자네들이 다 개간하는데 난 어디를 개간해야 되오?”
그 당돌한 물음에 병완이나 창준이나 모두 괭이를 짚고 서서 장학산을 쏘아보았다.
그런데도 장학산은 별 능청을 다 떨었다.
“나도 사람이 아니오? 당신들이 조선에서 와서 내 땅을 다 빼앗아가니 난 밭이 없어 어디에 뭘 심어 먹고 살겠소?”
병완은 참다가 언성을 높였다.
“이 지주 영감이, 옛정을 봐서 집을 청산하지 않고 놔둔 건 모르고 아무 소리나 다 하겠는가?”
장학산은 병완을 믿는 턱에 지분거렸다.
“고래 등 같은 집만 있어 뭘 하오? 밭이 없어 입에 풀칠도 하지 못하겠는데.”
장학산은 희죽이 웃기까지 하면서 계속 지분거렸다.
“나도 별나게 지주로 된 게 아니오. 아껴 먹고 돈만 있으면 땅을 샀지. 지금 자네들이 내 황무지를 빼앗아 숱한 밭을 일구는데 거꾸로 자네가 새 지주로 되겠어. 이전에 상순이 우리 충국이 하구 조선과 길림, 교하로 다니면서 약 담배 장사를 해서 몇 천원 번 걸로 땅을 샀더라면 당신도 영낙없이 지주로 됐을 거요. 허허허.”
병완은 그 소리에 억이 막혀 코웃음이 나갔다.
“이보게나. 근심하지 말게나. 난 자네처럼 소작농사군을 하나도 두지 않고 소작료를 받아 살지 않을 거요. 우린 제 두 손으로 황무지를 개간했소. 밭이 아무리 많아도 제 손으로 농사를 지으면서 살 거네. 자네도 이제부터 자기 손으로 황무지를 개간해 농사를 지으면서 살게나.”
장학산은 눈에 이상한 빛이 번쩍이더니 물었다.
“그럼 나도 자네처럼 농사를 지으면서 살면 지주가 아니지?”
병완은 도리머리 질 했다.
“장 지주, 당신은 전생에 우리 집 식구와 주현경 네를 착취했기에 영원히 지주라는 모자를 벗지 못하네. 남을 착취했기에 영원히 죄를 진 지주요. 허나 이제부터 노실하게 노동개조를 잘 하면 당신은 유격대를 도와준 적이 있기에 좀 다르게 처리해줄 순 있네.”
장학산은 맥이 풀려 김이 빠진 괭이자루를 안고 황무지 마른 풀 위에 풀썩 물앉았다.
병완과 창준이 자손들과 함께 괭이로 나무뿌리를 찍어내는데 장학산은 괭이자루를 쥐고 개여 올리는 말을 하면서 자리를 떴다.
“에이구, 그래도 내 전생에 어쩌다 김 촌장한테 황무지를 줘서 밭을 일궈 살게 했는지 모르겠다. 그러찮았더라면 집도 빼앗기고 총살 당했겠는데.”
병완은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틀렸네. 당신 전생에 유격대가 제일 어려울 때 양식을 대준 일이 당신을 살린 거네. 지금도 노실하게 노동개조를 하고 국민당을 돕는 일을 하지 마오. 집에 돌아가 곰곰이 생각해 보오. 우리한테 무슨 미안한 일 없었는가? 우린 손금 보듯 다 알고 있으니깐. 속일 궁리는 하지도 말게.”
그 말에 장학산은 속이 섬찍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괭이를 둘러메고 비틀거리면서 허둥지둥 토성 안 집으로 내려갔다.
이튿날 이른 아침에 야마꼬가 애를 안고 부랴부랴 상순네 집으로 찾아왔다.
"웬 일이오? 야마꼬."
야마꼬는 애를 안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울고 불며 야단쳤다.
"저 장학산네 집에서 하루도 못 살겠어요."
"엉?"
상순은 야마꼬를 보고 구들에 올라오라고 했다. 그러나 야마꼬는 바닥에 선채로 장학산을 공소했다.
"장학산의 처자들은 나를 밥도 온전히 안줘요. 령감태기는, 흐흑흑, 흑흑. 밤이면 내 자는 방에 뛰여들어 못살게 굴어요."
사태의 엄중성을 느낀 상순은 야마꼬를 보고 구들에 올라오라고 해 밥부터 먹으라고 했다. 꽤나 수척해진 야마꼬는 명옥의 눈치를 보면서 밥사발을 받아 게눈 감추듯 했다.
(얼마나 굶었으면 저 지경이겠는가.)
상순은 야마꼬를 계속 장학산네 집에 두지 못하겠다고 생각하였다.
야마꼬가 식사를 마치자 상순은 그녀 모자를 데리고 촌공소로 나갔다. 때마침 병완이 나와 있었다.
"할아버지, 내 진수해에 한반 가봐야겠습구마."
"어째?"
"구위 리계삼 서기랑 찾아보구 조직증명서도 바치고 야마꼬 때문에 겸사겸사해 가봐야겠습구마."
병완은 상순한테서 사연을 들은 후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었다.
"가봐라."
상순은 급급히 진수해에 내려가 구위정부로 찾아갔다.
"허, 우리 전투영웅이 왔구만. 들을라니 상순 동문 참 잘 싸웠더구만."
그는 리계삼 서기와 허영주 구장을 만나 최퇀장이 보낸 소개신을 꺼내 주었다.
리계삼 서기는 소개신을 받아보고 의아한 눈길로 상순을 쳐다보았다.
"임명장은 어쨌소?"
상순은 뒤더수기를 긁적거리었다.
"상부의 임명장도 바쳐야 하오. 이건 조직기률이오."
"지방에 돌아왔는데 뭐 필요합니까?"
"아니오. 이건 다 조직서류에 들어가오."
그제야 상순은 마지못해 임명장을 바쳤다.
리계삼은 임명장을 받아보더니 허영주 구장한테 넘겨주었다. 그들 둘은 상순을 대견하게 보며 환담을 했다.
"보라니깐. 우리 상순동문 아주 전도 유망한 간부요."
리계삼 서기는 상순의 두 손을 잡고 말했다.
"상순 동무, 우린 상부로부터 상순동무가 아주 지혜롭고 용감하게 토비숙청전투에서 수많은 공훈을 세웠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르오. 상급 당위의 비준을 받고 상순 동무를 우리 구정부 민병영 영장으로 임명하오."
상순은 자기 어깨가 무거운 감을 온 몸으로 느꼈다.
"조직의 신임은 감사합니다. 그러나 전 영장을 할 자격이 없습니다."
"또, 또, 또."
허영주 구장이 혀끝을 찼다.
"민주련군 영장이 민병영장도 못하겠소? 해방전쟁은 시작에 불과하오. "
리서기도 동을 달았다.
"동만의 토비는 숙청했지만 도처에 국민당 특무들이 욱실거리고 국민당군이 언제든지 할바령을 넘어 우리 동만을 쳐들어올 수도 있소. 그 놈들이 지금 교하 라법까지 쳐들어왔소. 악패 지주들은 항상 복벽을 꿈꾸오. 아차, 알려줄게 하나 있소. 김영장이 정규상한테 구해달라고 부탁한 삼도만 토비 문서 조소호 있잖소?"
"예. 그가 살아났습니까?"
허영주 구장이 머리를 끄덕였다.
"양, 그런데 그 자는 구해주자마자 어디론가 도망쳤소.도망치면서 쪽지를 남겼소. '기의한 지학구를 죽인 걸 다 안다. 어깨에 총을 맞고 쓰러져서 죽은 척하면서 그를 죽이려는 걸 다 들었다. 나라고 민주련군에서 죽이지 않겠는가. 날 찾지 말라. 난 반동도 하지 않겠다. 내 가족을 살려달라.' 이런 쪽지를 병원에 남기고 달아났소. 얼마나 인심은 난측이오?"
상순은 어이없어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아니, 도망치다니? 그는 기의했기에 관대처분 받겠는데. 참."
리계삼 서기가 뒷말을 이었다.
"지주나 토비들은 국민당군이 쳐들어오기만 하면 또 들고 일어날 수도 있소. 지금 전시상태에서 후방의 민병공작도 아주 중요한 공작이오. 상순동무는 너무 겸손하지 말고 조직의 신임을 저버리지 말고 우리 구 민병건설을 잘 하오."
상순은 별 수 없이 군례를 척 붙이면서 우렁차게 대답했다.
"옛! 꼭 임무를 완수하겠습니다."
뒤이어 상순은 야마꼬 모자의 불행한 처지를 말하고나서 해결방법이 없는가고 문의하였다.
리계삼 서기는 창밖을 한참 내다보더니 상순한테 머리를 돌렸다.
"여기에 야마꼬를 두는 게 장원한 방법이 아닌 거 같소. 이제라도 일본에 보내는게 옳은 거 같소."
"예? 돌아가면 좋겠는데.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
"되오. 지금 조선반도 북쪽엔 쏘련 홍군이 점령해 있고 남쪽에는 미군이 점령해 있소. 건데 일본 인들을 몽땅 일본에 보내주고 있소."
"그럼 잘 됐습니다."
허영주 구장이 보충했다.
"우린 야마꼬 모자를 조선 인민군 측에 호송해보내면 그들의 방조을 받아 일본에 보낼 수 있소."
상순은 피뜩 성칠 큰아버지가 떠올랐다.
"저의 큰아버지를 찾아가면 어떨까요?"
리계삼 서기는 희죽이 웃었다.
"찾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리 쉽겠소. 조선인민군에 위탁하면 되오. 야마꼬 오빠는 토비숙청을 위해 희생된 렬사오. 그의 일가는 모두 일제 침략전쟁의 피해자오 꼭 책임지고 일본에 보내줘야 하오."
"예, 제가 꼭 책임지고 호송하겠습니다."
그러나 리계삼은 머리를 저었다.
"안되오. 우리 구정부에서 무장일군을 파견하겠소. 동무는 민병영 건설을 하는게 급선무요."
"옛! 알겠습니다."
이렇게 되여 야마꼬는 안전하게 일본으로 돌아가게 되였다.
쉼에 기준이 온 몸이 땀벌창이 되어 소서구 북쪽 산비탈에 있는 아버지한테로 찾아 와 볼 부은 소리를 했다.
“아버지, 저 상순이 저게, 제 노릇을 하구 살 거 같지 않습꾸마. 민병 영장 해서 밥이 나옵둥? 집에 엉치를 붙힐 새 없습구마. 날마다 '싸,싸(杀,杀)해서 밥이 생깁둥? 그럴 게면 부대를 따라 국민당 군을 무찌르러 가지. 집에 노동력이 없어 죽겠는데 집일에는 근본 관심도 없습니다. 봄비에 집에 간장 물 같은 게 줄줄 흘러내리는데도 이영을 이을 궁리도 없습니다. ”
학실히 상순은 구에 민병영을 세운 후 함흥촌, 일성촌, 해동촌 등 구내 여러 촌을 돌아다니면서 민병련을 세우고 강화하고 민병들을 훈련시키느라고 집 일을 돌볼 새 없이 채바퀴 돌듯 맴돌았다.
병완은 손을 탁탁 털면서 셋째아들에게 말했다.
“우리 이 지방의 토비들은 거의 숙청됐다. 허나 지금 장개석 국민당 반동파들은 8백만 대군으로 우리 공산군 해방구를 진공하고 동북에도 백만 대군이 쳐들어왔다. 그 놈들은 할빈과 심양, 장춘, 길림 등 대중도시를 거의 다 점령했다. 이제 길림의 국민당 군이 교하를 치고 할바령을 넘어 동만으로 쳐나올 위험도 있다. 우리 동만은 후비군양성기지나 다름없다. 동만을 보위하고 우리 마을을 보위하려면 상순처럼 민병들을 훈련시켜 전선에 우리 아들딸들을 많이 내보내야 한다. 한족 형제들과 함께 어깨 겯고 국민당 군을 깡그리 소멸해야 우리가 시름 놓고 살 수 있다. 그러니 네가 좀 바쁘더라도 상순을 민병훈련을 시키게 놔둬라.”
기준은 한숨을 땅이 꺼지게 내쉬면서 두덜거렸다.
“언제 전쟁이 끝나겠소. 일본 놈들을 몰아내구 토지개혁을 해서 지주를 청산하고 땅을 나눠가졌으면 잘 살겠는가 했더니. 그 많은 국민당 군을 언제 다 소멸하겠습니까?”
병완은 그간 당의 교육을 받았기에 셋째아들을 교양할 수 있었다.
“우리는 사회주의를 건설할 때까지 계속 혁명해야 한다. 지금 우리 주위에는 아직도 우리에게 땅과 집을 빼앗긴 지주들과 그들의 처자들이 살아 있다. 그 놈들은 국민당 군이 쳐들어오기를 기다리면서 호시탐탐 우리를 노려보고 있다. 절대 시름 놓을 수 없지. 금방 장학산이 왔다 갔는데 우리가 자기네 밭을 빼앗아 새 지주로 되겠다고 집적거리더라. 그들은 토지개혁을 달가워하지 않고 언제든지 자기들의 세상을 복벽하려고 한다. 우린 항상 그 놈들에게 경각성을 높이고 살아야 한다.”
기준은 아버지 손을 쥐고 매만지면서 간곡히 말했다.
“아버지, 아예 조선에 나가면 어떻습니까? 우리 할아버지 산소랑 어쩝니까? 여기에 엄마 산소를 두고 조선에 나간다는 것도 말은 아니지만. 국민당과 몇 해 싸워야 하겠는지 조선에 나가면 싸울 필요도 없잖습니까?”
그 말에 병완은 한숨을 후 내쉬였다.
“내 전번에 너를 데리고 아버지와 엄마, 할아버지 산소에 가서 제를 지내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지금 중국이나 조선이나 국제 공산주의 운동을 하기에 형제나라여서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지 않고 뭐냐? 장차 해마다 고향에 돌아가 부모 산소를 정성껏 모시고 제를 지낼 수도 있다.”
기준은 그 말에 머리를 숙이었다.
“너네 봐라, 우린 여기 황무지를 마음대로 개간하면 아마 밭이 거의 백여 무는 나올 거 같다. 우리 여기 와서 20여 년 동안 황무지를 개간했는데 훌 던지고 가겠느냐? 고향에 돌아가서 그 수림을 채벌하고 이만한 밭을 개간하자면 또 몇 십 년이 걸리겠느냐?”
창준은 아버지 말에 동감을 표시했다.
“아버지 말씀이 옳습니다. 아무데서나 배불리 먹고 살면 되지.”
상우도 동을 달았다.
“내 어떻게 20여년 일군 상우지를 버리고 간다고 그럽니까?”
상길도 머리를 끄덕였다.
“소서구는 이젠 장학산이 게 아니고 우리 땅이 됐는데 여기서 삽시다.”
병완은 자손들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옳다. 우린 20여 년 동안 피땀으로 일군 황무지를 개간해 일군 이 땅을 버리고 갈 수 없다. 우린 여기서 두 번째 고향을 개척하고 건설하자. 옛날에 우리 조상들이 살아 온 걸 보면 다 그랬다. 신라 마지막왕 경순대왕 김부 할아버지도 천년 동안 살아온 경주를 떠나 개성에 왔댔고 김려생 할아버지도 단종을 보호한 죄를 쓰고 명천에 도망쳐 와서 살았다. 우리도 함흥 촌에 와서 정을 붙이고 살면 그 후대부터는 여기가 고향이 되는 게다. 전번에 기준과 함께 고향에 가서 부모와 조부모 산소에 제를 지낼 때 난 조상님들께 말씀 드렸다. 이제 불효자식은 가능하게 고향에 돌아오지 못하고 간도의 귀신이 될 것 같다고. 허나 해마다 부모님의 산소를 찾아뵙겠다고 했다. 너희들은 이후에 조선에 나가면 꼭 조상들의 산소를 찾아가 보고 제를 지내라.”
병완의 그 말에 자손들은 “예.” 하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면서 모두 머리를 끄덕였다.
병완은 마을의 들뜬 인심을 안정시키려면 집안부터 다져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성칠한테서도 기별이 없다. 그 애도 정황이 여의치 않은 모양이다. 설사 그 애가 우리 고향 명천 우시장에서 한자리 한다고 해도 우리가 성칠을 믿고 사리사욕부터 채워서야 되겠니? 그럼 성칠한테도 불편하게 될 게 아니야?”
병완의 말에 여기저기서 한숨 소리가 들렸다. 기준은 좋다, 나쁘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훌 일어나 머리를 숙인 채 상우와 함께 천지꽃산 쪽으로 일 하러 떠나갔다. 상훈과 상길도 아버지를 따라 일어나 괭이를 쥐고 나무뿌리를 파 재꼈다.
병완은 침울해진 자손들을 돌아보면서 속으로 고함쳤다.
(이 놈 자식들아, 내라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겠느냐? 허나 돌아갈 형편이 되지 못하는 걸 어쩌겠느냐? 우린 여기를 두 번째 고향으로 생각하고 살아야 한다. 알만하냐?)
병완이가 남쪽을 내다보았다.
기준과 상우가 일하는 남산 천지꽃산에 첫봄을 맞아 연분홍 진달래가 활짝 피여 온 산을 연보라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맑은 하늘에는 까치와 제비들이 날아예고 까치들이 마른 나무 잎사귀를 물어다가 백양나무 가지 사이에 알을 낳을 둥지를 틀기에 여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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