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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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동네골목길
2013년 08월 09일 10시 16분  조회:2296  추천:3  작성자: 김인덕
그리운 동네골목길
 
김인덕
 

우리 마을은 백여호가 넘는 꽤 큰 마을이였다. 게딱지만한 초가집들이 질서없이 옹기종기 들어앉다보니 달이 없는 밤에 오불꼬불하고 울퉁불퉁한 길을 걷다보면 넘어지기가 일쑤였다. 동네 골목길은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나의 어린 령혼을 품어주기에는 족했다. 세상과의 소통이 시작된 동네골목길은 나의 동년과 함께 아련하게 간직되여있다.

동네골목길 풍경의 백미는 울바자라고 할수 있다. 여름이면 열콩줄기가 푸른색으로 울바자를 장식했다. 남자애들은 열콩잎을 따다가 견장처럼 어깨에 달고 군대놀이를 즐겼고 녀자애들은 삼삼오오 바자굽그늘에 앉아 공기놀이를 즐겼으며 심심한 동네 나그네들은 길을 가다가 무심하게 열콩잎을 따다가 탕 내리쳐 소리를 내는것으로 울적한 심사를 달랬다.

울바자는 또 잠자리들의 천국이였다. 애들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잠자리를 바라보면서 노래를 불렀다. “소곰재(잠자리) 꽁꽁, 앉은 자리에 앉아라. 먼데 가면 죽는다.” 나는 큰 애들한테서 그 노래를 처음 들으면서 매우 의아해했다. 먼데 가면 살겠는데 왜 죽는다고 할가.

나는 일곱살에 어머니의 손목을 잡고 마당앞 울바자를 떠나 마을남쪽 학교곁에 있는 유치원에 갔다. 개학 첫날, 박정희선생님(후날 연변텔레비죤방송국에서 유명 아나운서로 일함)이 모주석의 어깨가 교실벽보다 더 넓다고 하셨다. 여태까지 범인들의 어깨만 보아오던 나로서는 신기한 이야기가 아닐수 없었다.

열둬살때부터 남자애들은 쇠파이프로 만든 화약총 하나쯤을 갖는것을 자랑으로 여겼다. 그날 밖에 눈이 내리는지라 나는 혼자서 집에서 딱지를 접고있는데 웅걸이와 경철이가 화약총 한자루씩 들고 참새를 잡으러 가자고 하였다. 우리 셋은 온 오후 동네골목길을 누비며 참새사냥을 했지만 한마리도 잡지 못했다. 날이 어둑어둑해질무렵 저쪽 바자굽에 웅크리고있던 경철이가 갑자기 “어이구.” 하고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나와 웅걸이가 웬일인가 경철이한테 다가가보니 경철이가 두손으로 배를 붙들고있었고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총구를 배에다 대고 총을 손질하다가 오발했던것이다. 마을병원에 가보니 경철이의 배에 피딱지가 한방울 말라붙어있었는데 결국 현병원에 도착하기도전에 숨지고말았다.

어느덧 초중 2학년이 되였다. 나보다 두살 많지만 심한 뇨독증을 앓는 성국이는 우리 학급에 류급되였다. 어느날 점심, 나와 성국이는 학교앞 둔덕에 앉아있었다. 성국이는 자신은 예술학교에 진학하는것이 꿈이라고 말하면서 나에게 무슨 꿈을 갖고있는가 물었다. 사실 그때까지 나는 자신의 진로에 대해 생각해본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이 세상에 대학이란게 있는줄도 모를 정도였다. 나는 아무 대답도 못하고 멀거니 마을앞에 펼쳐진 논을 바라보았다. 대지는 새봄의 기운으로 약동하고있었다. 모내기를 위해 방금 갈아엎은 논에는 물이 넘실거렸고 들에서는 귀맛 좋은 종달새소리가 들렸다. 이때 한반에 다니는 태만이가 논 중간에 있는 전선대로 기여오르고있었다. 전선대꼭대기에 있는 새둥지를 들춰 새알을 얻기 위해서였다. 옆에 있던 성국이가 “저놈 봐라. 아버지가 전공일을 하더니 저놈도 전공일을 할셈인가. 얼마나 위험한데…” 전선대 꼭대기까지 오른 태만이가 한손을 전기줄우로 뻗어 새둥지에 넣으려는 찰나 고압전압에 감전되여 눈 깜짝할 사이에 돌멩이처럼 논바닥으로 추락했다. 나와 성국이는 정신없이 태만이한테로 달려갔다. 성국이는 정면으로 코를 논바닥에 틀어박고 대자로 꽂혀있었는데 사시나무 떨듯 온몸이 경련을 일으키고있었다. 결국 태만이는 목숨을 건졌지만 감전사고로 다리를 잃었다. 성국이가 학교로 돌아오면서 무겁게 입을 열었다. “넌 공부를 잘하니 조금만 더 노력하면 중점고중에 입학할거야.”

나는 열여섯살에 운이 좋게도 중점고중에 입학하게 되였다. 어머니는 뻐스에 오르려는 나에게 말씀했다. “휴, 호구까지 옮겨가게 됐으니 넌 이젠 우리 집 사람이 아니다.” 일자무식인 부모님들이 나더러 공부를 잘해 대학에 가라는 말씀을 한번도 하지 않으셔 못내 서운했었는데 이제 부모님들을 떠날 생각을 하니 눈물이 앞을 가리웠다. 거기에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도 포함되여있었다.

오불꼬불한 동네골목길에서 넘어지지 않으려고 고향을 떠났다. 물론 가로등이 환히 비추는 도회지의 골목길에선 넘어질 념려는 없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도회지에서 살면서 오늘도 오불꼬불한 인생의 골목길을 무수하게 만들어가고있지 않는가. 고향의 울퉁불퉁한 동네 골목길에서 넘어지면 기껏해야 발목이 삐끗하겠지만 도회지의 “골목길”에서 넘어지면 마음에 상처를 입어 치유하기 힘들다.

“소곰재 꽁꽁, 앉은 자리에 앉아라. 먼데 가면 죽는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쩌면 이 동요가 맞는것인지도 모르겠다. 개인의 영달을 위해 먼데를 향해 줄기차게 달려왔지만 남은것이 무엇인가. 돌이켜보면 살기 힘들다는 핑게로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시는 부모님들에게 생전에 챙겨드린것이 아무것도 없다. 부모님곁에서 살았더라면 랭수 한 대접이라도 올렸을텐데. 누구를 원망할것인가. 어디에 가서 안위를 얻을것인가. 이젠 고향에 가도 어제날의 고향이 아니다. 모두가 떠나가고 텅 비여있는 고향에 내가 먼저 한몫 했으니 오래도록 도회지에서 상처를 입으며 살아야 할가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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