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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장편《반도의 혈》
18.
의병들을 안전하게 월경시키고나서 마을로 돌아오면서 박기호가 이제 우에서 기찰이 내려와 누가 추격받는 의병의 월경을 도와주었느냐고 추궁할텐데 이 일을 어쩌면 좋을가고 근심했다. 불보듯이 빤한 일이였다. 조사를 받으면 그들만 받지 않을 것이다. 의병들을 먹여주고 재워주었으니 온 마을이 걸려들어 당연히 조사받고 닥달을 받을 수 있는 일이였다. 그러니 사전에 무슨 대책이든 세워야 할 것이였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서일은 기호와 함께 마을로 돌아오자 곧장 최풍헌을 찾아갔다.
최풍헌은 그러잖아 이홍래가 가면서 이제 우에서 기찰이 내려와 조사할텐데 그러거든 내보이라면서 주고갓다면서 인쇄한 전단(傳單) 한장을 내놓았다. 받아 보니 그것은 다른게 아니라 작금 의병들의 손에 처단된 친일관리들의 명단을 일목료연하게 쭉 라렬해놓은것이였다.
<<우리 의병대는 악질 관리와 친일분자들의 후환을 덜어주고자 의병운동이래 이미 처단된 자 몇을 아래와 같이 공개하니 이를 잘 보고 조처하기바란다.
춘천 관찰사ㅡ 조인승 영덕군수ㅡ 정재관
안동 관찰사ㅡ 김석중 의성군수ㅡ 이광영
충주 관찰사ㅡ 김규식 례천군수ㅡ 유인형
안동 경무관ㅡ 임병원 단양군수ㅡ 권 축
우체주사ㅡ 김재담 천안군수ㅡ 김병숙
라주 참사관ㅡ안종수 청풍군수ㅡ 서상기
총수ㅡ 박희호 양양군수ㅡ 양명학
강릉 경무관ㅡ 고준식 고성군수ㅡ 홍종헌
함흥 참사관ㅡ 목유신 삼수군수ㅡ 유관수
주사ㅡ 피상국, 홍병찬 지평군수ㅡ 맹영재
해주 경무관ㅡ 이경선 광주부윤ㅡ 박기인
총순ㅡ 황 목 세무시찰ㅡ 인석보
충주부사ㅡ 홍유정 ( )
의병을 도와준 사람을 죄인처럼 여기면서 함부로 잡아 심문하는 자는 똑똑히 기억해두라. 우리가 돌아오면 아래의 빈자리에다 네 이름을 꼭 적어 넣을것이다.
월경의병장 이홍래>>
《그거참 묘한 계교로구나!》
서일은 낯빛이 확 밝아졌다. 그 누구나 다 제 목숨은 잃으려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을 보고서야 누군들 주저하지 않으랴!
최풍헌이도 기호도 웃으며 감탄했다.
의병을 도와준 사람이면 관청의 조사를 받기마련인지라 이홍래는 어떻게 하면 후환을 없애줄가 궁리하다가 자기가 믿고 존경하는 라인영(羅寅永)을 찾아갔던 것이다.
라인영은 휘(諱)가 철(喆)이요 초휘(初諱)는 인영인데 어려서부터 제자백가서(諸子百家書)를 탐독해 과거에 급제했고 훈련원(訓練院) 권지부정자(權知副正字)직에 있으면서 학문이 높다고 소문난 사람이다. 이홍래가 그를 만나서 외국으로 망명하는 의병을 도와주자니 가끔 당하는 고충이 있다고 말하고는 무슨 수라도 대줄수 없느냐고 조언을 바랐다. 그랬더니 라철은 수라는거야 사람이 머리를 쓰기에 달린게 아니냐면서 그에게 조승상(曹丞相)이 지혜로 조지부(曹知府)를 대처한 이야기를 해주었던 것이다.
그 이야기는 이러했다.
명나라초기에 지부(知府)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성이 조씨(曹氏)여서 늘 자기는 삼국시기 조조(字ㅡ孟德)의 후대라고 자랑했다. 하루는 조지부가 극을 보러 극장에 갔더니 마침 《착방조(捉放曹)》(조조를 잡았다가 놓아주다)라는 극을 놀고 있었다. 극이 고조에 이르렀을 때였다. 조조 역을 맡은 배우가 이름이 조생(趙生)인데 연기술이 높은 그가 조조의 음험하고도 교활한 행동을 하도 생동하게 표연해서 진짜같은지아 관중들은 갈채를 보내였다. 앞자리에 앉아 극을 보고있던 조지부(曹知府)는 극장안을 들썽하게 울리는 박수소리에 놀라 이건 바로 선조를 모욕하고 자기를 놀려주는것이라 여기고는 노하여 펄펄 뛰면서 극을 못놀게했을뿐만아니라 연기자인 조생을 당장 관부에 잡아들이라고 공차(公差)에게 명령했다. 공차는 무대에 올라가 조생을 체포하였다. 조생은 웬 영문인지를 몰라 공차와 대체 왜 이러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공차는 그에게 사실을 말했다. 조생은 듣고나서 웃으면서 통쾌하게 공차를 따라 관부로 갔다.
한편 기다리던 조지부(曹知府)는 고개를 뻣뻣이 쳐들고 들어서는 조생을 보자 대노하여 을러멧다.
《발칙한 놈! 어르신님앞에서도 꿇어 엎드리지 않아?》
그러자 조생은 두눈을 지릅뜨면서 되잡아 호통쳤다.
《담통 큰 놈, 조승상이 왕림하셨는데도 네놈은 냉큼 내려와 맞을 념을 안한단말이냐, 그래?》
성이 머리끝까지 오른 조지부는 상판이 퍼러딩딩해서 웨쳐댔다.
《네, 네가 어쩜 조승상이 된단말이냐, 이놈!》
이에 조생은 랭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대감, 나는 방금 연극을 놀았는데 그걸 진짜로 보고 노여워하실건 뭡니까?》
조지부(曹知府)는 그만 할 말이 없어서 그를 놓아주었다.
머리만 잘쓰면 그 어떤 역경에서든 벗어날 수 있다는거다.
과연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서 의병의 행적을 찾는다며 오는 자가 있었다. 키가 꺼두룩하고 감때사납게 생긴 중년의 사나이였는데 이 마을에다 발을 들여놓기 전에 벌써 린근마을의 누군가를 붙잡아놓고 얼리고 닥치고 옴니암니 캐물어 의병들이 여기 이 금희동(金熙洞)까지 왔다는 것을 알아냈고, 그렇다면 틀림없이 먹고 자고는 월경을 했을것이라 긍정하고 뒤를 밟아 온 것이다.
그는 곧장 마을의 학교부터 찾아왔다. 이때는 학생들이 한창 시간을 보고있어서 랑랑 글읽는 소리가 서당밖까지 퍼지고 있었다. 교실이 두 개여였는데 저쪽의 교실에서는 박기호가 초급생들에게 산술을 배워주고 있었다.
육감이란 과연 있는모양이다. 서일은 고개를 들어 열려진 창가로 돌렸다가 웬 더부룩한 머리가 숨어버리는 것을 피끗 발견했다.
《두억시니같은 녀석이 어디서 냄새를 맡구 왔구나!》
서일은 혼자소리로 내뱉고는 짐을 교실안을 몇걸음 뚜벅뚜벅 걸으면서 불청객을 대처할 궁리를 했다.
애들의 긁읽는 소리가 문득 끊어졌다. 바깥에 있는 자가 서당안을 다시금 들여다봤던 것이다. 할말이 있으면 불러내다가 할것이지 례모없이 비겁스레 노는 꼴이 보기실어 서일은 랭소했다.
《선생님! 저기 에비주지왔슴다.》
어린생도 하나가 바깥쪽을 손가락질하며 일러바쳤다.
《뭐나냐? 미친개가 왔느냐?》
《아님다, 사람같애요.》
《그게 사람이면 례모를 아네라.》
서일의 이 한마디가 벌써 불순한 마음갖고 온 그자의 정수리를 때렸다.
바깥에서 가래를 내뱉는 소리났다. 자기를 힐난하는지라 화를 내는 꼴이다.
《애들아, 과목을 읽거라. 다 외워야 집에 보낸다.》
선생의 이 한마디에 애들은 목청을 빼가면서 책을 다시읽기시작하는데 귀가 따가와 날 지경이다.
서일은 그 자를 마주대하고푼 생각이 없는지라 배짱을 부렸다.
바깥에 있는 그 불청객은 갑갑함을 못견데겠는지 견뎌내지 또다시 안쪽을 살폈다. 아이들을 오줌도 뉘우고 운동도 시켜야 했다. 서일은 하학을 선포했다.
아이들은 마치 초롱에 갗힌 새모양으로 얼싸좋다고 와ㅡ소리를 치면서 밖으로 달려나갔다. 달려나가서는 그 낯선 사나이를 둘러쌌다.
저쪽교실에서도 하학을 해서 애들이 밖으로 쓸어나왔다.
서일이 밖으로 나오면서 볼라니 그 불청객의 사나이는 한뼘되나마나하는 까만 태머리가 뒤통수에 대롱대롱한 계집애를 세워놓고는 허리를 꾸부정하게 구부린채 입술을 너불거리고 있었다. 무언가를 캐묻는건데 계집애는《난몰라!》하면서 달아나는 것이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다른 사내애와 또 물었다. 그 사내애역시 자기는 모른다며 돌아섯다. 그러자 그를 둘러쌋던 애들 모두가 마치 문둥이환자를 피하듯이 와ㅡ 흩어졌다. 형세가 이러니 그 사나이는 낯색이 흐려지면서 독을 쓰는 것이였다.
《망할자식들!》
이때 상급반의 키큰 남자애가 뒤늦게 교실에서 나와 변소로 가느라 그의 곁을 지나는데 사나이는 그를 불러 세워놓고 물어보는 것이였다.
《얘야, 어제 총가진 사람들이 이 마을에 들렸지? 바른대로말해.》
서일은 그 소리를 잡아듣고는 혼자소리로 욕했다.
《야 이 사박스런 놈아! 어른은 감히 건드리지 못하고 애들이나 얼려서 말을 받으려해?》
학생이 함구무언이니 저쪽은 그만 울화가 나는지 가려고 몸을 홱 돌렸다. 그래서 다시보니 그 중년의 사나이가 면목이 있었다.
《저치를 내가 어디서 봤더라?...》
서일은 성큼 다가가 먼저 입을 열어 물었다.
《손님은 뉘신데 학생하구 그럽니까?》
저쪽은 서일을 곱지 않게 흡떠보더니 되묻는것이였다.
《임자가 여기훈장인가? 좀 봐, 무슨눔의 학생들이 이래, 불손스레 례모짝 하나 없이?》
《피장파장이죠.》
서일은 한마디 까주고나서 다시 입을 열어 물어봤다.
《대체 무슨일을 갖고 그럽니까? 시끄럽게 자꾸캐물으면야 당연히 불손스레놀지요.》
《내 묻겠어. 어제 이 마을에 의병이 안들렸는가?》
말솜씨가 버드러지는게 위엄을 빼서 어째보자는 수작이였다.
흩어졌던 애들이 다시금 욱 모여들었다.
어느결에 기호도 곁에 다가왔다.
서일은 너는 입을 다물라 눈짓하고나서 알려주었다.
《들렸습니다. 헌데 그건알아서 뭘하는겁니까?》
《얼마던가?》
《그건조사해 뭘하는가구 내가 물었습니다.》
《밤을 자고갔다지, 안그래?》
《자고갔습니다. 내가 교실을 내놔서...건데 뭐가 잘못됐습니까?》
《선생이 학교에다재웠다? 잘ㅡ한ㅡ다!》
사나이는 이젠 꼬리를 단단히 잡았노라 기고만장해지기 시작했다.
《누가 재우라구했나, 누가? 그들은 십악대죄를 진 자들이야, 십악대죄를!》
《이 무슨 망탕소린가! 십악대죄라니? 아무험 그들이 죄를 지었을가? 그도 그저죄면 몰라도 십악대죄라니, 원!》
서일은 절레절레 머리를 저었다.
《그걸 몰라서 이러는건가?》
그자는 도끼눈을 해가면서 기염을 뺏다.
《네가 여기 학교의 교장이겠지? 어디 너부터 그걸 외워봐!》
서일은 여직 학생하고도 이같이 무리하게 독촉해본적이 없었다. 비루먹은 늙은 개 강아지하고나 위엄부리듯 대방을 깔보고 꺼들거리는 꼴이라 보기가 과연눈꼴시였다. 하지만 밸이 난다고 대들고 해낼 일도 아닌지라 서일은 우선 그것을 외웠다.
《외웁지요. 첫째는 모반, 둘째는 대역, 셋째는 모반, 네 번째는 악역, 다섯 번째는 부도, 여섯 번째는 대불경, 일곱 번째는 불효, 여덟 번째는 불목, 아홉번째는 불의, 열번째는 내란.》
《봐, 내란이 그래 십악대죄가 아녀?》
《의병은 반일을 하느라 들구일어났지 내란을 일으킨건 아니잖아. 그런데도 그걸 내란죄로 취급하다니원, 어디말이 되는가?》
《이런! 미친소리를 한다.》
《아니 내가 미친 소리하는가 네가 미친소리하는가?》
서일일은맛받서 반말질했다.
《재우지않아서야 되는가, 그들은 저마다 총을 쥐였는데. 게다가 사납기가 어떻다구. 밉게보고 반대하면 이거야.》
서일은 손으로 제 목을 썩뚝 따버리는 시늉을 하고나서 동을 달았다.
《난 아직 어려서 더살고싶은걸.》
《더살고싶다면서 그런짓을 해? 이건 범인은닉죄야, 알았어? 범인은닉죄! 사형감으로도 되는거다!》
박기호가 옆에서 그자가 놀아대는 모양을 보고있다가 전단을 내놓으면서 되잡아 으름장을 놓았다.
《너 이놈아, 무슨 개소리 괴소리 그리도 많으냐? 대체 누가 사형감인지 청맹과니 아니거든 이걸 똑똑히 보거라, 더 지껄이지 말구!》
그 중년사나이는 어마뚝하여 전단을 받더니 내리보고 올리보고 내리보더니 예기가 단통 꺾어지면서 두 눈이 퉁사발이 되더니만 그만 부들부들 떨기시작했다. 그 꼴이 과연 보기희한한지라 애들이 왁작 소리내여 웃었다.
이번에는 되려 서일쪽에서 기선을 제하고 그자의 꼭두를 눌러놨다.
《참 인제보니 경원서 사는 최기완이구만! 맞지? 한때 싸전차려 잘살다가 감투놀음에 쫄딱망했다는 그 꼴뚜기장수 최기완이!》
《잘 봤겠지. 의병을 도와준 사람 죄인취급하면서 함부로 잡아 심문했다가는 어떻게 되리라는걸?...그 목숨 아까운줄을 알면 고스란히 돌아감만 못할거야. 그리구 주의해. 다시 이꼴루 놀다가는 정말없어. 내 말을 알아듣겟지?》
마을 사람들이 웬 일이냐고 꾸역꾸역 모여들었다. 여기 금희동에서도 어느 해인가 작황이 좋지 않아 경원까지 가서 싸전의 쌀을 고가(高價)로 사먹은 적이 있는지라 이 사나이의 낯을 기억하고있는 이가 적잖않았다.
서일은 겁에 질려서 부들부들 떨기시작하는 그자에게 한번다시 눈총을 놓고나서 마을사람들을 향해 이 사람이 경원에서 사는 바로 그 최기완이라면서 싸전차려 돈벌고 감투놀음에 쫄딱망하더니 이제는 경병의 끄나블이 되어 누가 의병을 도와주었는가를 조사를 다닌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경병은 건양기간 친일파가 지휘하는 국가의 군대였다.(조선 왕조 고종(高宗)의 년호인 건양(建陽) 즉 개국 505년 즉위 33년인 1896~1897년 7월까지)
마을 사람들은 어찌된 영문인걸 알아채고는 격분해서 너 한마디 나 한마디 그자를 꾸짓기시작했다. 그 꾸짖음이 어느덧 분노한 사람의 호된 질타와 과격스러운 욕지걸이로 변져지는지라 최기완은 어물거리다가는 이들의 손에 매를 맞아 죽을 것 같아 그만 걸음아 날살려라 줄행랑을 놓고말았다.
《감사하다! 마을의 호위를 너들이 했구나!》
최풍헌은 서일과 기호가 경병끄나블을 시원스레 쫓아버렸으니 적시에 처사를 잘했다면서 대단히 만족스러워했다.
《이홍래가 풍헌어른께 드리고 간 전단이 은을 냈지요 뭐.》
서일은 이번일을 자기나 기호의 공으로 여기지 않았다.
세상인연이 이렇게 맺아지는 모양이다. 그들은 이홍래와 그가 데리고 왔던 의병들을 다시금 그리면서 생각했다. 지금 어디서 어떻게들 보내는지? 이홍래는 집이 여기 함경도에 있다니 되건너왔더라도 편히 보내지를 않고 흩어진 의병을 월경시키려고 동분서주를 할 것이다.
<<오늘 경병 1개중대를 포천에 파견하였고 선유사를 보내여 국왕의 명령을 가지고 란민을 타일러 해산시키려고 하였으나 이 란당들은 평시에 란을 즐겨하는 믿을수 없는 무리들로서 때를 타서 서로 호응하며 척왜양의 이름밑에 들고일어난 무리들이니 아마도 해산할 것 같지 않다.>>
이때의 의병형편에 대해서 <<매천야록>>은 이같이 기록해놓았다.
사실 그러했다. 의지와 투지가 선유에 팔리지도 굽히지도 않는 뼈굳은 의병대는 동산재기(東山再起)를 꾀하거나 권토중래(捲土重來)하기 위해서 고향을 등지고 이국땅에 건너가 풍찬로숙을 할지언정 리유없이 해산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삼강오상(三綱五常)은 왕도의 삼강은 하늘에서 찾을수 있으며 하늘은 변하지 않으며 도도 변하지 않으니 군신(君臣)간의 례의를 지켜야한다고 가르치고있지만 국왕이 바보짓을 하는데야 그래 눈을 펀히 뜨고 보면서 굴종한단말인가? 그럴수는 없는 일이였다.
7월에 송진영, 홍현철 등이 정부를 전복하려고 하가다 음모가 탈로나 성사못하고 사형된 소식이 퍼져서 사람들을 또 한 번 놀래웠다.
한편 8월에 압록강을 건너갔던 유인석이 임금의 부름을 받고 입국하였으나 초산에서 상소만 보내고 알현은 하지 않았다. 그의 의병진은 전해의 7월에 초산(楚山) 아성(阿城)에 도착하여 백관에게 격문을 보냈고, 동월 20일 압록강을 건너갔던거다. 한데 거기서 의병진은 국제법상의 관계로 청나라 장군 왕모염(王模閻)에게 무장해제를 당하였다. 왕모염은 조선에서 건너온 의병진을 무장해제시키면서도 대의(大義)를 흠모하는데서 본토의 유지 손홍영(孫鴻榮)을 시켜 대우만은 륭숭하게 하게했던 것이다.
유인석은 대접을 받고나서 파저강변(波猪江邊)에서 의병을 해산했는데 219명의 의병은 종일토록 통곡했다.....
조국에 돌아온 유인석이 임금을 알현(謁見)하지 않으니 사람들은 시야비야했다. 말장단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또 하나의 소일거리가 생긴 것이다.
《아무튼 임금님이 별고없으면 나라 형편이 좋아지겠지.》
최풍헌이 입밖으로 내던진 말이였다. 백성의 념원은 이같이 소박하고 단순했던 것이다.
한데 아직도 이 나라의 순박한 백성들로부터 만수무강과 축복을 받고있는 왕님은 성근한 천자가 아니여서 나라꼴을 이지경으로 만들어놓고서도 명예욕은 잔뜩 자라나 지금은 황제꿈을 꾸고있다는것을 백성들이 어찌알기나했으랴! 그것도 제 궁궐에서면 또 몰라도 로씨야공사관에서 더부살이를 할 때부터 그따위꿈을 키운것이다. 병신이 다른겐가. 고종은 주제넘게도 그따위 황제몽이나 꾸었으니 그야말로 가소롭기 짝이 없는 일이요 비루먹은 개가 다 비웃을일이였다.
그는 전에 벌서 웨베르공사에게 자기는 조선을 황제국으로 만들기싶다고 말한적이 있었던 것이다.
《아니됩니다. 황제는 마음대로 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때 웨베르가 한 말이다. 그가 어리숙한 조선왕을 속으로 얼마나 비웃었겠는가.
고종은 다시 말을 꺼내지 못하고 참고있다가 환궁하자 황제꿈을 다시꾸기시작했다. 그는 로씨야공사관에서 제정해준 건양(建陽)이라는 년호가 맘에 들지 않아 버리기로 맘먹고는 원로대신 심순택을 불러다 새로운 년호를 짖게끔 했고 심순택이 어명을 받고 광무(光武)와 경덕(慶德)이라는 두가지를 지어 바치자 고종은 그중 광무를 택했던 것이다. 그가 그렇게 하는 리유인즉은 중국에서 한나라때 광무라는 년호를 써서 한실의 중흥을 이룩했으니 자기도 그 본때로 하면 리조왕실의 중흥이 자기 대에 이뤄지리라 여겨져서였다.
고종은 이같이 년호부터 계획해놓고서는 홍종우(洪種宇)를 불러다가 서양형편에 대해서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홍종우(洪種宇)는 프랑스 등 여러나라를 돌아다닌 부랑배라 부패한 정권이 고균 김옥균선생을 죽이면 변조판서(兵曹判書)를 시켜주겠다니 그런 죄악적은 살인을 했던 것이다.
고종은 조정의 신임을 받은 그에게 서양에는 황제도 있고 대통령도 있다하니 어찌된 일인가고 물었다. 이에 홍종우는 프랑스같은 나라에는 대통령이 있고 에스빠냐같은 나라에는 녀왕이 있고 로씨야나 독일같은 나라에는 황제가 있다면서 그것은 그 나라에서 할따름이라고 알려줬다.
이에 고종은 낯빛이 활짝 밝아졌다.
《그렇다면 우리 조선도 백성들이 원하기만 한다면 황제국으로 만들수있다는 말인가!》
눈치약은 홍종우는 그의 내심을 알아맞히고는 비위를 맟추느라 그렇구말구요 그것은 자유입니다 했던 것이다.
기분이 좋아진 고종은 그에게 외사과장의 벼슬을 주었다.
홍종우는 왕명을 받고 은밀히 각국 공사들의 공작을 했다. 낯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비밀이 있을가. 얼마안가서 고종이 황제가 될 꿈을 꾼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아첨은 간교한자의 권모술수였다.
먼저 농상공부대신 권재형 등이 지체없이 고종에게 황제를 칭할 것을 진언했다.
<<....원래 황제라고 하는 것은 중국에서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한 후에 처음으로 생겼소. 진시황도 처음에는 왕이라 하였소. 현하 성상께서는 오백년의 대운으로 삼천리강토를 다스리고있사옵고 이제 자주독립의 기초가 튼튼해지였으니 황제로 칭해도 부족함이 없소. 항간에서는 외국이 찬성하지 않으리라는 말도 있으나 이는 만국의 공법을 모르고 하는 말이요. 성상께서는 주저마시고 속히 칭제건원(?帝建元)하시여 이 나라 억만년의 기초를 닦으시오.>>
이 얼마나 그럴듯한 상소인가!
고종은 체면상 양보하는 것 처럼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의정 심순택과 특진관 조병세 등이 백관을 거느리고 상주하는 판이다.
<<덕이 천지같은 사람을 황제라 하오. 성상의 총명과 지혜는 백왕보다 탁월하여 천자(天姿)는 량의(兩儀)에 합치되고 현덕은 신명에 통하여 삼황의 도를 베풀고 오제의 마음을 이어받았으니 즉시 황제의 위(位)에 오를만하오.>>
모두들 제 낯 간지러운것도 모르는지 꿀발린 좋은 소리는 빠짐없이 늘여놓았다.
이번에도 고종은 체면상 과인이 덕이 없이 어찌 황제로 칭하느냐고 그건 불가하다고 거절하는척 했다.
조정의 로회한 대신들만 고종을 황제로 칭할 것을 진언한게 아니다. 서재필을 위수로 한독립협회에서도 칭제(稱帝)할 것을 극성스레 진언했던 것이다.
고종은 그제야 못이기는척 칭제를 승낙한다는 조서를 내렸다.
<<짐이 박덕하여 림어한지 34년에 다난한 시절을 맞아 만고에 없는 변을 당하였으니 생각할수록 등골에서 땀이 날 지경이나 이에 막대한 존호를 여러 사람이 청하고 또 대신들이 청하매 부득히 면종(勉從)하노라.>>
남별궁터에다 국구단(國丘壇)을 쌓고 그 주변과 경운궁안팍을 모두 황색으로 장식해놓았다. 그리고나서는 1897년 10월 12일(음력 9월 17일)에 고종은 황색곤룡포를 입고 황색연에 앉아 국구단으로 향했다. 그 뒤에는 황태자가 따르고 다음에는 원로들과 만조백관과 궁인들이 장사진을 치고 따랐다. 그야말로 굉장히 요란스러운 행렬이였다!
고종은 국구단에 올라 상제(上帝)께 제사(祭祀)를 지내고나서 즉석에서 이미 갖추어 놓은 멋진 룡상에 앉았다.
《황제페하만세!》
만조백관이 웨치면서 엎디여 절을 올리니 황제로 받들리게 되였다.
조선은 삼한의 땅에서 나온것이니 이를 합쳐 국호를 대한제국(大韓帝國)이라 칭하고 년호는 광무(光武)라 한다고 선포했다. 력사상 구한국(舊韓國)이니 한말(韓末)이니 하는 것은 여기에서 온 것이다.
《기둥이 썩고 대들보가 썩어버린 집에다 금칠을 해선 뭘하는가.》
서일은 소식을 듣고 랭소했다.
조선이 이같이 황제국이 됨과 동시에 배일사상을 갖고 독립자유를 부르짖는 독립협회가 활약이 강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를 질시(嫉視)하기로 가장 유명한 군부대신 민영기(閔泳綺)가 이를 박멸하려는 술책으로 홍종우, 길영수, 이기동 등 도배를 사주(使嗾)하여 보부상(褓負商) 패거리를 놓아서 소위 황국협회(皇國協會)라는것을 조직하여 독립협회와 대치케했다. 그러면서 민영기는 이기동, 조병식과 함께 독립협회의 중진 17명을 임금에게 모함(謀陷)하여 투옥하고 살해하려했다. 허나 검사들의 법에 의한 항쟁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니 곤봉을 휘두르며 궐문밖에서 독립협회와 충돌하여 류혈의 란극을 연출하였다. 이로 하여 많은 살상자를 내게되였다. 이에 격분한 민중들은 이기동 등의 주택을 습격하고 소동을 일으켜 임금을 놀라게 만들었다. 임금은 인화문밖에서 독립, 황국 량대표자들을 소집하여 내각갱질(內閣更迭)과 시정유신(施政維新)을 면약(面約)하고 군중들을 해산케하였다.
내무대신 민영환(閔泳煥)은 민권을 존중하며 독립협회를 싸고돌다가 민영기의 공격을 받아 체임되고 기타 구당세력(舊黨勢力)에 반항하거나 혹은 다소라도 자기들 당에 불리하다고 보는 자는 모두 쫓아냈는데 그 배후에는 일본인의 모략도 있었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데는 자유민권의 발전이 일본의 장래정책에 큰 장애가 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민중의 지지를 받던 독립협회도 동인들이 한사람 두사람씩 해외로 가버리였고 정부당국자들의 방해로 많이 발전을 보지 못하고 여론은 침체되였다. 이로부터 관료배의 전횡만 치성(熾盛)하여 국운(國運)은 날로 더 험악하게되였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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