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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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지에 묻힌 비밀(54)
2011년 03월 31일 18시 25분  조회:4035  추천:20  작성자: 김송죽
             음지에 묻힌 비밀(54)      

(1)강청은 “마수”를 군대에 뻗쳤다 하마터면 림표손에 죽을번
  
(2)림표를 "계승자"라 당장에 써넣게한것은 강청   

“군내의 한줌도 못되는 자를 뽑아버려야한다”
        

1967년 1월 14일, 중앙문혁소조는 “군내의 한줌도 못되는 자를 뽑아버려야 한다”고 제출하여 군대가 일시 혼란에 빠졌다. 이것이 강청과 림표사이의 모순으로 되였거니와 첨예해져서 림표는 강청이 “제1부인”이건말건 한바탕 욕을 퍼질렀고 나는 안하겠다며 밸을 쓰기까지 한 것이다.
    
1966년 5월 16일, 모택동이 문화혁명을 일으켜 진백달(조장), 강청(부조장) 등을 위수로 한 중앙문혁소조를 성립한 것이다. 1967년 초에는 문화운동이 만연되다보니 그것이 군대에 까지 미치였다. 
   
1967년 1월 14일, 중앙문혁소조는 “군내의 한줌도 못되는 자를 뽑아버려야한다”고 제출하여 군대가 일시 혼란해졌는데 “군내의 한줌도 못되는 자”란 말을 완정하게 하면 그것은 “군내의 자본주의길로 나아가는 집권파”라는 것으로서 이 구호를 누가 내놓았는가에 대해서는 중공력사에 설법이 많았다. 림표가 죽은 후 관방은 림표 등이 “반란파”의 탈권투쟁과 배합하느라고 제출한 것이라 했지만 후에 학자들은 이 구호의 근원이 기실은 모택동에게 있은것이라 밝히였다.  
   
구호를 누가 내놓았던지간에 그것은 당시 문혁소조의 투쟁이 이미 군방의 고층인물에 까지 미쳤음을 설명하는 것이다. 당시 강청은 상장인 소화(蕭華)를 붙잡으려고 해서 군대측과 모순이 격화되였을 뿐만아니라 림표를 대단히 격노시켰던 것이다.  
   

진백달, 강청은 소화를 타도하려했다. 
   <

<徐向前傳>>에 기재된 것을 보면 그해의 1월중순에 진백달과 강청은 소화를 혼내우려고 모략했다. 진백달은 군중조직을 접견했을 때 공개적으로 말했던 것이다. 
   
“소화는 전사같은게 아니라 신사같다.”
   
 진백달의 이런 선동에 의하여 총정치부기관에는 소화를 타도하자는 “대자보”가 가득나붙었다. 주은래가 소식을 듣고 나서서 요언을 물리쳤다. 
   
1월 19일오후, 군위의 만나는 회의에서 군대의 “네가지 큰문제”를 둘러싸고 엽검영, 서향전, 섭영진 세 오랜통수와 강청, 진백달, 강생, 요문원지간에는 격렬한 쟁론이 벌어졌던 것이다. 강청무리는 군대라해서 “특수화를 부리지 말라”고 했다. 이쪽의 세 통수는 군대는 무산계급전정의 기둥인것 만큼 군대의 “문화대혁명”은 응당 지방과 구별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 측의 쟁의는 대처하여 서로 양보가 없었다. 
   
진백달, 강청 등은 소화를 돌연습격했다. 강청이 말했다. 
   
“소화는 총정주임인데 문건을 총정과 군위에 같이 보내니 이건 무슨 뜻인가? ”하면서 “해방군은 이미 수정주의가까이에 걸려 넘어졌다”거 말했고 엽군은 호주머니에서 미리준비해갖고 온 원고를 꺼내여 들고 소화는 림표를 반대하고 “문화대혁명”을 파괴한다며서 당장 이날밤으로 자기들이 이미 통지를 내여 10만명이 모여 열기로 한 공인체육장대회에 나가서 검사해야한다고 했다. 
   
엽검영은 회의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퇴장했다. 항의를 표시한 것이다. 섭영진도 퇴장했다. 앞당겨 퇴장한 엽검영은 이 일을 즉각 주은래에게 보고했다. 
   
그날밤에 전우문공단의 반란파가 소화의 집을 수색했는데 소화는 뒷문으로 나가 담을 뛰여넘어 서산으로 피했길래 붙잡히우지 않았거니와 투쟁도 받지 않았다. 
  
 20일오전, 군위의 만나는 회의가 경서호텔에서 계속열리였다. 강청이 캐물었다.
   
 “총정치부주임이 왜 안보이나요? 그가 어디에 숨어버렸나요?”
    
소화가 나타났다. 그는 전날밤에 습격받은 경과를 말했다. 
   서향전이 그 소리를 듣더니 밸이 나서 상을 쳤고 엽검영은 분노하여 말했다.    
“소화는 내가 보호해줬다, 그한테 죄가 있다면 내가 맡을테다!”
    
엽검영은 또 엄한 목청으로 중앙문혁이 “문혁”의 화근을 군대에 까지 끌어들이는 작법을 규탄하면서 경고했다. 
   
“그 누구든 군대를 혼란하게 했다간 좋은 끝장이 없다는 걸 알라!”
    
회의가 끝난 후에 엽검영은 군위의 일상사업을 장악하고있는 신분으로 꼭대기상급인 림표에게 강청, 진백달이 노는 꼴을 고해바치면서 중앙문혁이 그같이 한무리를 지어 군대를 공격하는 건 결국 군대의 총책인 림표를 질책하는게 아니고 뭔가고 했다. 
  

림표는 대노하여 강청을 욕했다.                   

오법헌의 회억록을 보면 엽검영의 회보를 받은 후, 림표는 비서보고 전화를 쳐라해서 강청을 당장오게 했다. 오후 3시정각에 강청이 림표의 집에 발을 들여놓다. 림표는 그녀가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노기충천하여 욕사발을 퍼부었다. 그가 련주포를 쏘듯하였기에 강청은 입을 열어 볼 사이도 없었다. 
   
“너희들이 해방군은 이미 수정주의가까이에 걸려 넘어졌다고 한다는데, 우리가 이끌고 자산계급궤도에 올랐다는데, 그래 근거가 뭐냐?.... 너희들은 너무나 방자하게 놀아댄다. 이건 완전히 군대와 군위의 령도를 모욕하는 거다.”
      
림표는 그때 군내와 당내에 위망이 아주높았거니와 류소기가 세력을 잃음에 따라 모택동의 계승자로 한창 물망에 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이러했거니와 림표는 믿는데가 있어서 두려움을 모르고 강청을 향해 그같이 대갈일성을 한 것이다.       
                  
림표는 모택동을 거들면서 공개적으로 말했다.
    
“해방군은 모주석이 창건하고 령도한 것이며 모주석이 지휘한 것인데 이제와서 군대가 수정주의가까이에 걸려넘어졌다고 하면 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너희들이 군대를 이같이 미워하고 군위의 령도를 미워하면 나는 안하겠다, 안하겠어! 내가 사직하는거야 되겠지. 나는 모주석께 보고할테다, 너희들은 나하고 말도 없이 소화를 욕했지, 집을 수색했지, 당안을 빼앗아갔지, 왜서 그 모양이냐? 너희들은 군위도 통과하지 않고 군대의 사업에 직접손을 대면서 총정을 없애치우려하니 그래 그게 모주석의 지시에 부합되는거냐? 내가 모주석을 찾아 갈 테다, 모주석보고 나의 일체직무를 해임시키라고 할테다.”
   
 림표가 어찌나 노하여 풀풀거리는지 강청은 변명 할 사이도 없었다. 림표는 네같은 년은 욕이나 처먹어라고 대방이 해석한대도 아예 들어주지  않을 태세였다. 림표가 잠시 말을 끊은 사이 강청은 제꺽 입을 열었다.
    “
림부주석, 화를 참으시고 제 말을 좀 들어주십시오. 말해도 되겠지요? 군대가 수정주의가까이에 걸려 넘어졌다고 말한건 제가 아닙니다. 나는 회의에 참가하지 않았어요. 진백달이 조장이니까요. 저는 부조장이얘요. 나는 그의 발언을 제지할 권리가 없는거얘요.”
    
하지만 림표는 그녀를 가만두려하지 않았다. 그가 말했다.
    
“‘문혁’의 일은 네맘대로정하는게 아닌가! 실제상 네가 독차지하고있잖은가말이다. 진백달이 군위회의에 출석한걸 네가몰라? 그가 무슨 말을 한다는걸 네가몰라? 너의 동의가 없이 그가 감히 마음대로말해, 그래?”
   
 강청이 변명했다. 
   
“그가 뭐라고 말했는지 난 정말 몰라요, 그 말은 내가 진백달보고 하라고 한게 아니라니까요. 진백달이 총정에 대해서, 소화에 대해서 비평했을 수는 있어요. 중앙군위에는 무산계급문화대혁명을 속박하는 번잡하고 불합리한 규률이 좀 있는것도 사실이니까요.”
    
림표는 강청의 이런 말을 듣자 뜻밖에 더 분노하면서 가까이에 있는 차그릇을 쥐여 번쩍들기까지 했다. 그가 말했다.
   
 “뭐가 번잡하고 불합리한 규률이란말인가, 여덟가지 명령은 모주석이 친히 지시한건데 너희들이 그래 군대를 꼭 란잡하게 만들고야 말테란말인가? 군대를 란잡하게 하면 구경 누구에게 유리한가? 모주석이 비준한 여덟가지를 그래 너희들이 뒤집자는거냐? ”
    
림표는 높은 목청으로 경위부관더러 차를 준비하라해놓고는 말했다. 
   
“우리 둘이 당장 모주석을 찾아가자. 이 일을 밝혀야지, 내가 문제면 내가 사직하겠다, 난 안하겠다.”
    
이러자 엽군이 황급히 나서서 중간에 끼여들었다. 그녀는 울면서 두사람 제발 다투지 말라고 애발대발 빌었다. 이런 상황에 림표가 랭정해지지 않고 모택동을 찾아간다면 일이 더 복잡하게 커질것만은 사실이였다. 하여 그녀는 림표앞에 꿇어 엎디여 제발 가지 말라고 그의 다리를 꽉 부둥켜 안았다. 그녀는 울면서 남편에게 권유했다. 
   “당신은 강청동지와 오랜 친구간이 아닌가요. 중임을 같이 떠메고 나가야지 이같이 곤난한 시기에 의견이 맞지 않는다고 다투면 어떻게 되나요. 할 말이있으면 좋게 해야지. 안그래요. 서로 량해해얄건 량해하고. 안그러면 영향이 나빠 둘 다 불리할 뿐인데 떠들면 어떻게 되나요.”    
엽군은 강청에게 권고했다.
    
“강청동지, 달리생각말아요. 우리 집 애아버진 성질이 좋지 않아요. 지금 분이 올라서 그러니 랭정해진 다음 좋게 잘 말해봐요. 문제를 지금당장해결하려고는 말고. 모주석을 찾아가지 못하게 해요, 그분의 휴식에 영향이 미칠테니. 그이의 정력을 분산시키지 말아야죠.”
    강청이 뒷이어 잘못을 빌었다.    
“거기는 중앙부주석, 군위부주석이얘요. 제가 착오있어요. 나를 비평해요, 질책해요, 욕해요, 내가 다 접수할테니. 주석을 꼭 찾아가잘건 뭔가요? 그 말은 정말 내가 한게 아니얘요. 소화를 욕하고 붙잡자고 하면서 집을 수색한건 잘못이지요. 내가 지지한건 절대아니얘요. 조사해봐요. 난 이 일을 이미 모주석께 보고한거얘요. 내가 잘못했어요. 검토해요.”  
   
강청이 말을 다 하기기를 기다렸다가 엽군이 림표에게 권했다.
    
“강청동지는 비평을 접수한다고 태도표시를 하지 않는가요. 이젠 제발 떠들지 말아요.”
    
림표는 그제야 말이 더 없이 쏘파에 앉았고 엽군도 강청의 손을 잡고 조용히 쏘파에 앉았다. 엽군은 강청과 좋은 말을 많이했다. 그리고는 강청을 배동하여 차를 타고 조어대로 갔다. 
   
훗날 오법헌이 말했다. 
   
“그번에 대판떠들고 나서 생긴 균열이 점점 더 커졌으니 그것이 분렬의 종자였다고 할 수 있다. 림표는 강청에 대해 불만이 있었지만 모택동의 미움을 살까봐 과분하게 더 견책하지 않았다. 쌍방의 투쟁은 줄곧 9차대화와 로산회에 까지 지속되였던 것이다. 중앙상위에서 모택동을 내놓고는 강청을 이같이 꾸짓는 사람은 림표밖에 없었다. 
   
이상의 정절은 오법헌본신이 친히 겪은 것이다. 그의 회억록을 보면 이왕의 매체들에 소화를 타도한 죄를 림표에게 씌웠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림표는 줄곧 소화를 보호했다. 하여 그는 강청에게 화를 낸 것이다. 
     

림표를 “계승자”라 당장에 써넣게 건의 한 사람은 강청이였다
   

4월 1일, “9대”는 모택동의 장악하에 개막되였다. 림표가 제8기중앙위원회를 대표하여 정치보고를 했다. 4월 2일부터 시작하여 이 정치보고와 중국공산당장정수정초안을 놓고 분조토론을 시작했다. 당장수개과정에 사람의 주목을 제일 끄는 것이 “림표는 모택동동지의 가장 친밀한전우며 계승자다”라는 대목이였다. 이는 당의 조직원칙을 엄중히 위반하였을 뿐만아니라 황당하기 짝이 없는 짓이라는것이 인차밝혀졌다. 
   
1968년 10월 17일, 중공8기 12중전회에서 당장을 토론할적에 강청이 돌연히 발언했는데 그는 림표를 모택동의 계승자라고 당장에다 써넣자고 제출했다. 그녀가 말했다.
   
 “림표동지는 무산계급혁명가의 풍도가 있습니다. 그가 그처럼 겸허하니 응당 당장에 써넣어야 합니다. 당장에 계승자라 써넣자는 겁니다.”
    
그녀는 한마디 더 강조했다.
   
 “꼭 써넣읍시다.”
    
10월 27일에 당장을 다시토론할적에 강청은 의연히 림표는 모택동의 계승자라는 이 한 조목을 당장에 써넣자고 하면서 제 주장을 견지했다. 
   
1969년 4월, 중공중앙에서 당장수개를 놓고 토론하는 회의에서 강청은 또 말했다.
    
“림표의 이름을 그래도 써넣어야 합니다. 우리가 써넣는다면 다른사람은 엿보지 못해 전국인민은 시름을 놓게 될 것입니다.”
    
장춘교가 제일먼저 찬성했다. 그가 말했다.
    
“그렇게 당장에 써넣으면 시름놓습니다.”
    
강생이 림표를 힘껏 불어댔다. 
  
 “8기 11중전회에서 림표동지를 모주석의 계승자라고 확정했는데 그건 우리 당, 우리 국가가 금후의 운명과 관계되거니와 우리 나라혁명과 세계혁명대사에도 관계되는 것입니다. 림표동지는 매우 겸허하게 당장초안의 그 부분은 지워야 한다고 제기했습니다. 우리의 의견은 이 부분을 반드시 보존해야한다는 겁니다. 림표동지가 모주석의 계승자라는 것은 온 사회가 공인하는 것이니 부끄러울 것 없습니다.”
    
강생이 말했다. 
   
“나의 의견은 림표동지는 모주석의 계승자니 응당 당장에 써넣어야 합니다.”
    
보고를 기초하는 사람들도 모택동에게 정도부동하게 가짜말들을 했다. 
   
“대부분동지들이 림표동지를 계승자라고 당장에 써넣고 9대보고와 결의에 써넣어 그의 위망을 진일보로 높이자고 합니다.”
    
강생이 림표를 춰올렸지만 내심은 그닥좋지 않았다. 한것은 처음에 후선인을 제출할적에 강생이 들었는데 무기명투표를 하고 보니 몇표가 모자랐던 것이다. 그는 당날밤에 왕동흥을 향해 어떻게 된 일인가고 물었다. 
   
이에 왕동흥이 말했다.
    
“누가 투표를 하지 않았는지 내가 그걸 어떻게 아는가?”
    
모택동은 림표의 일름을 당장에 써넣는가 써넣지 않는가 하는 문제를 놓고 장밤을 고려하다가 나중에는 “사작조”에 말했다. 
   
“대다수동지들의 의견이 그러하다니 그러면 림표의 이름을 써넣지.”
    
사실은 그 몇 사람이 소란을 피운것이라는 걸 모택동이 어찌알았으랴. 적잖은 사람들이 림표가 계승자라는건 모택동이 제출했으니 구두로 동의를 응부했을 뿐 당장에 까지 써넣는데는 그리찬성하지 않았던 것이다.
    
림표는 여러해나 어록과 구호와 “천재”라는 것으로 모택동을 불어댔고 엽군과 같이 여러 부동한 회의장소에서 강청을 높이 평가하면서 그녀에게 많은 계관을 씌워주었다. 이는 부주석이 되려는 꿈을 품어 온 강청을 춰준것이였다. 한데 모택동은  이미 강청은 부주석으로 될 수 없다고 공개적으로 말한바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강청으로 놓고 보면 지금이 매우 얻기 어려운 기회였다. 그녀는 림표와 엽군이 자기를 떠올려 “위망”을 높혀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한편 림표의 눈에는 강청이 근본 대단한 인물로 돼보이지 않았다. 그는 그녀가 모택동의 부인이니 그저 중하게 여길 뿐이였다. 
   
강청은 허다한 일들에서 부득불 림표에게 의뢰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하기에 림표와 강청 그 둘은 마치 손을 바꿔 등을 서로  긁어주듯이 서로 리용하는 것이였다. 
   
까놓고 말해 강청은 림표가 부주석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지만 그는 부주석이 된 것이다. 아무리해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그녀는 부득불 많은 장면에서 림표를 지지한 것이다. 그러니 그녀의 심리는 모순속에 있은거다.   강청과 림표의 관계는 이같이 미묘했다. 
       
1970년 8월에 열린 중공 9기 2중전회(로산회의)에서 진백달이 극력 림표를 불어대니 모택동이 말했다.
   
 “이 사람이 성심으로 진상을 헛트려놓는다. 낮에는 림표가 와서 돌연습격하더니 진백달은 밤에 습격한다. 그들이 구경 어떻게 하자는건지 모르겠다.”
   
 당년의 11월 16일, 중공중앙에서 하달한 <<진백달의 반당문제의 지시에 관하여>> 에는 진백달을 “가짜맑스주의자, 야심가, 음모가”라고 그 성질을 규정했다. 
   
1971년 여름, 강청은 림표가 그래도 “확고”하고 튼튼해 보였기에 당장에 써넣은 것이 쓸데있다고 생각했다. 하여 그녀는 림표가 모택동저작을 학습하는 장면을 사진찍어 제7,8기 <<인민화보>>합간과 <<해방군화보>>합간에다 냈던 것이다. 제목은 “피로를 모르고 부지런히”라 달고 서명은  “준령(峻岭)”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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