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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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나의 정신세계 고백서》

1-4. ‘고완’주의
2012년 10월 21일 10시 21분  조회:4997  추천:21  작성자: 김문학

4. ‘고완’주의

 

고전(古典)주의는 아니다. 더구나 고환(睾丸)주의는 아니다.

새것에서는 卽今적인 젊음의 감흥을 느끼지만, 옛것에서는 시간이 침전된 古遠의 역사 감을 느낀다. 그래서 새로운 新香도 좋지만 나는 오래된 古香이 좋다. “옷은 새것이 좋고 벗은 오래된 것이 좋다”라는 말과 같이.

새 옷은 새로 돈 주고 사면되지만, 옛 벗은 돈 주고 못 산다. 옛 물건도 그러하다. 옛 물건이 옛 물건다운 것은 그 옛 사람들과 함께 같이 숨 쉬고 손때가 묻은 시공의 중후(重厚)가 축적 돼 있고, 거기에 배인 것은 윤택 나는 인간의 덕성과 지성 그것이다.

내게 있어서 이것이 고완(古玩)의 낙취(樂趣)일 것이다. 나의 고완 이력은 어언 25년이 가까워 온다. 30대에는 광기(狂氣)이다시피 고완 에 심취돼 있기도 했다.

 

중국에서는 당시 별로 고완 의 낙을 여의케 하는 사회적 풍토나 여건이 결여 했으나 일본에 와 보니 고완 의 문화 분위기가 매우 농후해 있었다.

일본에서의 신발견은 고완 의 옛 발견에 이어진 묘미가 있었다. 명문장가 주작인(周作人)은 일본에서 중국 唐風의 옛 문화를 발견 했다고 쾌재를 불렀으나, 나는 중국 뿐 만 아닌 옛 조선의 고완 을 즐길 수 있는 보지(宝地)여서 무등 희열했고 열광했었다.

골동(骨董)에 관한 책도 많이 읽었다. 알고 보니 “골동”이란 어원이 중국어의 “古董”<고동>이라 했는데 뼈자 붙은 것보다 나는 고색창연, 역사의 옛 정취가 묻은 “古”자가 더 좋았다. “古董”은 “古銅”의 음전이라 하니, 중국 문명의 기물은 뭐니 해도 古銅으로 주조된 것들이 도자기 이상으로 옛 됨을 자랑하고 있지 않은가.

실제적으로 나는 古銅器의 청동녹이 쓴 창연한 모습에서 어떤 육중한 문명의 감각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도자기에서 감지되는 옛 사람의 그런 따스한 숨결과 체온이 감지된 온기(溫氣)는 전혀 느낄 수 없었다.

화려하고 사치의 극을 나타낸 중국의 명청의 도자기보다도 나는 송나라의 비취색의 자그마한 화병과 연병(硯屛)에서 더 잔잔하고 은은한 부드러운 정취의 미를 느낀다.

그러나 중국 도자기보다도 나는 감정상으로, 아니면 본능적으로 인지 우리 겨레의 고려청자와 이조백자에서 인간의 정과 옛 선조들의 땀 냄새와 따사로운 몸의 체온을 느껴서 너무 좋다.

하다못해 손바닥 안에 들어가는 이조(李朝)의 난초가 그려진 연적(硯滴)이라도 좋다.

막 청색이 괴어오르는 듯 한 흰 색이에 또는 계란껍질 바탕에 청색으로 그려진 심플한 아름다움, 여백의 미!

균형을 잃은 일그러진 조선항아리에서 우리 할머니들의 등급은 키 낮은 모습을 방불케 함, 그것이 나는 너무 좋다. 이들이야말로 만날 수도 없는 몇 세대 몇 십 세대의 옛 겨레들과 만나는 대체물인 것이다.

내가 고완 을 사랑하게 된 계기는 전적으로 우리 집에 “가보(家寶)로 전해 내려오던 조부의 애용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청나라의 단계(端溪)벼루이다. 유학자로서의 조부는 한(漢) 의학자(醫學者)이기도 했는데, 31세에 16세의 조모를 만났으며 43세의 짧은 생을 마쳤다.

조부님의 얼굴은 사진에서나 보아온 나였지만, 백의의 두루마기를 입으신 조부님은 오세창의 풍모가 풍기는 선비였다. 만주 봉천에 건너온 강릉출신의 이민 1세로 해방 전에 봉천에서 약국을 경영하기도 하다 시골로 내려갔다가 집중 호우를 만나 洪水에 떠내려가셔 水鬼로 돌아가셨다.

못 다하신 많은 일들을 두고 무한의 限을 안고 돌아가셨을 것이다. 할머님께서 장롱에서 조심스레 보자기로 싼 벼루를 꺼내 보이시며 “니 할배가 쓰던 것으로는 이것과 넥타이 밖에 없다” 라고 하신다. 넥타이는 일본의 식민지시절 벗으로부터 받은 줄무늬의 모양이 멋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허락을 받고 일본 유학으로 올 때 그것을 소중히 지니고 왔다. 강릉김씨의 장손인 내가 이 家寶들을 일본에서 특별히 오동나무 함을 얻어서 잘 소장하고 있다.

古人의 苦樂과 땀띠와 숨결이 숭배인 것이 어찌 내 선조의 한 개 벼루뿐이랴!

나는 그래서 대학 졸업 후 부터 古人들의 물건을 존경하게 되었다. 유학생으로 수입이란 장학금이었다. 행운스럽게 얻은 20여만 엔의 장학금은 많은 액수였다.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고서도 제법 유적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아르바이트 하는 대신 다신 京都의 고사찰, 정원을 배낭 메고 답사하였다.

만약 내 발자국이 도장이라면 온 쿄토시내의 구석구석에 내 신발자국의 붉은 도장으로 도배했을 것이다.

또 짬이 나면 古書街와 골동 가를 돌아다니면서 사냥물을 노리는 사냥꾼 같이 맘에 드는 것들을 사들여서 수집하곤 했다.

특히 書畵(서화)에 애착을 느낀 나는 근대 조선 인물을 비롯해 중국과 일본의 서화 족자를 많이 보고 때로는 사들이기도 했다.

고완 의 공부는 진짜 진품이나 명품 또는 명진품이 아니더라도 진짜를 사놓고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직접 느껴야 마음에서 느끼는 법이다. 삶의 모든 것은 상응한 대가를 안 치르고 쉽게 얻으려는 요행은 허용하지 않는 법이다. 얻은 만큼 지불을 해야 하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고완 은 이런 의미에서 인생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묘미가 있다. 나는 이중에서 또 많은 것을 배웠다.

고완 의 길은 기실 배웅의 길이었다.

나는 서울 인사동의 고색창연한 옛 거리와 청계천의 먼지 묻은 고서들에 풍기는 책장의 냄새가 좋았다.

북경의 유리창의 영보재나 중국서점의 화려하고도 중후 장대한 文化의 그 古色이 좋았다.

그리고 동경의 간다(神田)의 고서점가를 거니는 문화의 길이 좋았다. 노신과 곽말약과 근대의 중국 문화거인들이 거닐었던 그 발자취를 느낄 수 있어서 또 유쾌했다. 육당최남선과 춘원 이광수의 발자취를 느껴서 좋았다.

누가 지식인, 학자가 가난하다고 했는가? 나는 이 모든 문화의 옛 재부들은 한꺼번에 마음에 담은 듯 하여 좋다. 억만장자의 거액도 어찌 이런 문화재부에 비길 수 있으랴?! “學富5車(학부5거)”란 말이 너무 좋다.

책이 지루해질 때 필이 막힐 때, 신심이 고단할 때, 고서화와 연적, 벼루와 연병을 바라보거나 닦아주는 것이 가장 유쾌하다.

부부싸움을 하느니 차라리 나에게는 벼루를 닦아주고 연병(硯屛)의 먼지를 터는 일이 더 좋겠다.

아글타글 안 되는 일을 궁리하기 보다는 차라리 서화를 바라보면서 명상에 잠기는 멋이 더 좋다. 안 되는 글을 억지로 짜내기 보다는 차라리 고묵(古墨)의 묵향을 맡는 것이 더 좋다.

한밤중 뗠쳐 버릴 수 없는 고뇌에 불면하기보다는 차라리 고서의 책장을 번지는 일이 더 좋다.

2005년 11월 나는 위독한 간염질환에 걸린 것을 건강진단 때 발견되었다.

오랫동안 입원, 약물치료로 나는 2006년 봄부터 수개월간 격심한 약물반응에 고생하게 되었다.

체중 12kg감량, 모발이 탈락하고 전신(全身)이 끔찍한 두드러기가 나고 또 나고... 부작용은 나를 오히려 죽음으로 몰았다.

그러나 나는 그래도 책 읽기와 글쓰기를 견지했다. 물론 주위 독자들의 성원과 물심양면의 도움을 받아 참 고마웠다.

나는 병상에 누워서도 수집해온 고완(古玩)을 바라보고 어루만지면서 힘을 얻었다.

지루하게 긴 어둠의 터널 속에서 고완(古玩)은 나에게 빛살 같은 밝음을 선물해 주었다.

지금도 피골상접 동연의 나의 체중은 2005년의 수준으로 돌아서지 못했지만, 마음만은 언제나 여유가 있는 것 같아. 그래서 체중이나 그런데 신경을 덜 쓰고 나를 자신하는 연구와 일에 몰두하게끔 하는 마음의 여유, 나는 그것을 고완 을 통해 얻은 것만 같다.

“筆量精良 人生一樂”라는 말이 있다 거기다 나는 한마디 더 보태고 싶다

“博覽群書 人生大福”라고 하는 말이다. 나는 늘 자신이 21세기를 살지만 시대와 어울리지 않은 전통적인 文人趣味의 남자라고 느낀다.

나는 문인취미로 서재를 꾸려 놓기도 하고, 아호(雅號)도 몇 개 갖고 있다.

일테면 海東(해동) 怪人(괴인), 曉靜(효정) 居士(거사), 무한(無澣) 老師, 秋月堂主人 등등.

그리고 장서, 印章, 閑章(한장) 등 만해도 모양과 크기가 각기 다른 30여개를 갖고 있다. 책의 사이즈, 내용에 따라 자서장을 박는 재미는 별미다.

요전번에 히로시마의 한 문화재단에서 내가 소장한 유묵으로 명사 유묵 전을 열자는 제안이 들어왔는데 나는 완연히 거절했다.

왜냐하면 그 일은 나중에 공개해도 좋으니, 지금은 역시 나의 취미의 “비밀보고(宝庫)”로서 고이 지킬 생각이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누구나 자가 자신에만 속한 비밀은 있어야 한다. 마음을 키우는 지성의 샘물 같은, 비밀의 화원 같은.

지난 9월에 나의 애독자가 “고완 이 왜 그렇게 좋은가?”라고 물은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이렇게 답했다.

“고인과 직접 대화를 하는 것이 좋다” 라고.

그렇다. 고완 은 내게 있어서 취미를 넘어, 수집벽을 넘어선 일종 옛 문화와의 만남이다.

만남이란 것은 연인이나 아는 친지들과 얼굴 맞대고 오차를 마시고 식사를 하는 그런 생신(生身)의 만남만은 아니라.

만나지도 못한, 아예 생각지도 못한 옛 물건, 그리고 그를 곁에 두고 애용하던 옛 사람과 만나게 하는 것, 그것을 고완 의 몫이다.

수백 년, 수천 년의 고인의 넋과 호흡과 만날 수 있으니 얼마나 상심열목(賞心悅目)인가!

그러나 완물상지(玩物喪志)란 말과 같이 너무 탐닉하여 스스로 품은 바 뜻을 잃어버리면 본말전도의 “우(愚)” 가 아닌가!

우리의 선대들은 이미 완물상지의 교훈을 남겼으며, 그를 “완물생지(玩物生志 )”의 에너지로 바꾸는 지혜를 또 가르쳐 준다.

아무리 제언(贅言)을 늘어놓아도 고완 이라 “상심열목” 과 “상심생지” 의 즐거움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무리하여 재력에 넘치는 진품명품을 수집하는 것으로 허영심을 채워주는 고완 은 나는 싫다. 그보다 賞心悅目과 賞心生志의 “以堂主義”가 내가 추구하는 고완 의 진가이다.

이런 고완 주의는, 내게 있어도 글쓰기와 또 다른 知的축적과 머나먼 현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知的方法의 하나이기도 하다.

고완 에 흥취가 없으신 이들은 아마 나의 이런 “고완 주의” 를 잘 체감 할 수 없을 것이다. 고완 주의 때문에 나와 생활, 지적 창조의 삶은 나름대로 윤택이 난다.

고전문화를 사랑하듯 나는 고완 을 사랑한다.

“고(古)는 역사 문화의 古이기도 하며, 또 考,故,高,孤,唐,稿,鼓,苦와 이어져 있다.

“玩”은 完,緩,浣,頑, 라도 통한다.

이 모든 글자의 키워드로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지적 세계, 정신적 세계, 時空의 세계를 이룬 것이 곧 古玩의 美이다.

고완 을 통해 나는 또 時空을 넘은 세계에서 살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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