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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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나의 정신세계 고백서》

1-6. 나의 독서방법
2012년 11월 12일 08시 34분  조회:5086  추천:16  작성자: 김문학

김문학《나의 정신세계 고백서》

6. 나의 독서방법

 

“당신은 어떤 방법으로 책을 읽는가?”

“독서에 무슨 방법을 사용하십니까?”

독자나 학생들, 기자로부터 자주 받는 질문이다. 이는 마치도 “밥 먹는데 어떤 방법으로 먹는가? 라고 하는 질문과 같다. 기실 평소에 거의 생각하지 않는 문제이다. 독서법 같은 것은 나중에 반추하여 귀납하는 것이지 처음부터 의식한 것은 아닐 것이다. 물론 모든 방법론도 역시 이 같은 반추성찰의 결론이 되겠다.

독서를 흔히 식사로 비유하는 발상이 있다. 여러 종류 메뉴의 요리를 골고루 먹음으로서 다양한 영양가를 섭취하는 것 좋다. 책 역시 여러 종류의 분야, 장르를 폭 넓게 읽으면서 정신적 에너지를 섭취하게 된다. 이는 지식인들이 독서생활에서 걸러낸 독서의 지혜일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독서란 방법으로서의 방법이기 보다는 생활방법의 하나이다.

정신적 공간을 한 칸 한 칸씩 메워가는 정신적 삶의 방법, 기교의 큰 덕목이다.

독서가 없는 나는 존재 할 수 없으며, 상상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독서는 자신에게 없는 정신세계, 세계관을 만나는 일이며, 이질화된 가치관을 먹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타자란 텍스트를 읽는 것으로 멀리 존재했거나 가까이 존재하고 있는 정신의 타자들과 한번 또 한 번씩 만나면서 대화를 나누게 된다.

인간이 문화생물인 것은 타자와의 접촉(교육, 전승, 학습 등) 을 통해, 문화를 이어 받아 문화를 전수받는 “문화화(文化化)” 의 프로세스를 통해야만 문화인으로 육성되는 법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文化화” 프로세스 중에서도 혼자 진행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이며, 이 같은 혼자 있기, 홀로서기(獨立) 를 통해 인간성이 육성, 시작된다.

독서는 인간성의 내면세계를 구축하는 정신적인 것과 행동적인 것의 결합이며 폭 넓은 독서는 어느 하나의 고집된 절대적 가치관의 함정에 빠지지 아니하고 넓은 시야에서 사고정지를 방지하며 자신의 사고양식의 부단한 탈피를 형성하게 된다.

인간의 지적 세계의 공간이 커지면 그릇도 크게 한다. (器)가 큰 인간이 큰일을 해낸다. 나는 “인간은 작게 태어나도 마음은 커야 한다” 라는 어머님의 모교를 나름대로 실천 해왔다. 내게 있어서 독서는 훌륭한 타자와 만나는 행위였으며, 이런 훌륭한 타자를 흉금에 많이 포용하고 있을수록 마음은 더 커지게 된다고 믿는다.

실생활에서 주위에 훌륭한 인간이 많으면 그것은 축복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책은 그 아쉬움을 메우는 구실을 하는 법이다. 좋은 책은 훌륭한 스승처럼 인간성 형성과 향상을 자극 주며 인간의 품위를 높일 수 있다. 인간의 향기는 독서라는 꽃을 통해 나타내기도 한다.

독서는 아득히 멀리 있는 타자와의 대화를 시켜주고, 그 사이의 무한한 시 공간은 삽시에 사라진다. 2천년전의 공자를 만나는 일은 그의 <<논어>> 를 위시로 한 저작을 읽는 것으로 쉽사리 이루어진다.

세상에 몇 푼 안 되는 돈으로 이런 기적적인 일을 성취할 수 있는 즐거움이 또 어디 있으랴!

독서가 습관 된 인간에게 있어서 독서가 없는 생활은 상상할 수도 없이 궁핍한 생활이다. 가령 나는 무인도에 방치 당했다 해도 먹을 수 있는 식량과 책이 있으면 만족한다. 가끔 나는 무인도에서 독립생활을 상상해 본다. 가장 필요한 필수용품이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죽는다면 그보다 더 큰 행복은 없는 줄로 안다.

“讀書立人”을 신봉하는 나는 그 역설로 “立人卽郡讀書”로 표현하기도 했다.

독서는 인간을 키우고, 인간이 되려면 독서한다는 사상이다.

그럼 구체적으로 “독서의 방법”, “독서의 기술”은 어떤 것일까? 하면 나는 주로 아래와 같은 일들을 통해서 “독서의 세계” 를 즐기고 있다.

내가 존경하는 일본의 당대 문화인류학의 대가 우메사오 타다오(梅棹忠夫, 1920-2010) 는 이런 말을 남겼다.

“독서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저자의 사상을 정확히 이해하는 동시에, 그것에 의해서 자신의 사상을 개발시켜 육성시키는 것이다.”

우메사오 교수는 독서를 “발견”을 위한 촉매작용을 한다고 갈파한다.

“나는 독서란 전류의 감응현상과 같은 것으로 생각한다. 하나의 코일에 전류를 흘리고 또 하나의 코일에 감응전류라는 전혀 이질 된 전류가 발생한다. 양자의 직접 연결은 없지만, 중요한 것은 처음 흐르는 전류가 아니라 그 다음의 감응전류이다. 이를 잘 이용하기만 한다면 모터는 비로소 회전하게 된다.”

우메사오에게 있어서 독서는 자신의 창조적 행위의 “발견”, 사상을 개발하는 방법으로 되고 있다.

나는 이 방법에 대해 같은 체험을 공유하고 있다. 타자의 책을 읽으면, 읽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왕왕히 그 단 한마디의 글귀 절, 그 전체적 주제, 모티브, 사상에서 “아! 그렇구나” 하는 발견, 재발견의 섬광이 번뜩인다.

책에서 자신의 사고 속에서 잠재된 씨앗을 “발견”하게 되고 그 씨앗을 심으면 이내 또 다른 책이 탄생된다. 특히 글쓰기, 연구를 생업으로 하는 직업적 프로패셔널 지식인에게 있어서, 독서는 자기의 “창조적 지적 생산”으로 직결 되어 있다.

닭이 계란을 낳고 계란이 또 병아리를 낳고, 이런 순환반복이 작품탄생의 영구한 프로세스도 흡사하지 않은가.

직업이나 목적에 따라 독서의 방법과 기술은 제각기 달라도 독서가 각자의 정신적 식량이나 에너지로 전환되는 것은 별 다름이 없을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독서법을 이야기 해보기로 하자. 이는 내 자신이 지금까지 행해온 독서법을 귀납해 볼 것이다. 나의 “독서12법”이다.

 

(1) 단숨독법, 즉 단숨에 책을 내리 읽는 방법이다. 일반적으로 이런 방법은 책의 전체 내용을 이해하는데 좋다. 일단 읽기 시작했다면 쇠뿔은 단김에 빼랬다고 읽어 버린다. 책은 저자가 구축한 하나의 독립적 세계로서 이 세계를 인식함은 그만한 정열을 투입시켜야 한다. 나는 보통 200-300페이지 분량의 책은 줄 창 내리 읽어 글 전체상황을 파악한다.

 

(2) 필기독법, 읽으면서 중요한 구절이나, 신선한 대목, 관점에 대해서는 책의 상하여백부분에 자신의 감상이나 그 내용요약, 등을 작은 글씨로 적어 넣는다. 나중에 다시 읽으면서 이 부분을 다시 체크하면 책의 주요 주제를 이해하는데 매우 유효하다.

 

(3) 방선독법, 책 행간에 방선을 긋는 방법이다. 새 책에 방선 긋기를 주저하는 사람도 있으나 저자의 말하려는 포인트, 또는 자신이 멋있다고 느끼는 부분에 방선을 긋는다. 또한 빨강색, 파랑색으로 중요한 부분과 재미있는 부분을 긋는다. 이 줄을 그는 것으로 책은 자신의 책으로 안긴다. 마치 미지의 세계에 지도를 그리듯 이 책은 지도같이 환하게 안겨온다.

방선법과 필기 법을 병용하면 더 효과적이다.

 

(4) 사선독법, 여기서 사선(斜線)이란 책을 빗으로 모발을 쭉 훑듯이 신속이 시선을 이동시켜 시선에 걸리는 문구를 포착한다. 독서의 양이나 질이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면 이 방법을 실행 가능하며 꼭 전체 페이지, 전부를 읽지 않고서라도 그 요점을 파악 할 수 있다.

 

(5) 목차독법, 새 책을 처음 읽을 때 우선 머리말과 후기를 쭉 읽으면 이 책의 내용이 대개 잡힌다. 먼저 서문, 후기를 읽는 것은 아주 유효한 독서법이다. 그리도 다음으로 목차만 훑어보고, 자신이 필요한, 흥미가 가는 목차의 페이지를 펼치고 읽는다. 시간이 긴박하거나 없을 경우 이것은 최고의 방법이다.

나는 대체로 서점의 매장에서 이런 방식으로 책을 보고 구매여부를 결정한다.

이는 또 써서 보기에 입독(立讀)이라고도 한다.

 

(6) 축적독법, 책을 일단 서가나 책상에 쌓아둔다. 관련서적을 몇 권내지 십여 권 쌓아 두었다가 읽고 싶을 때 한권, 한권씩 읽어 내려간다. 쌓아두면 눈에 뜨이기 때문에 읽기를 망각하는 실수 없이 자신에게 읽는 압력을 가하게 된다. 구체적 읽는 방법은 자신이 정한다.

 

(7) 통독법(通讀法) 통근의 전차 안에서 읽는 방법이다. 나는 자가용 운전을 할 줄 몰라 십여년 동안 대학 근무처로의 교통도구는 전차, 또는 버스를 이용한다. 통근의 전차 안에서 책을 미리 준비했다가 독파한다. 이런 식으로 나는 “통독”으로 일일일책(一日一冊)을 매일 실행하고 있으며, 많은 경우에는 一日三冊, 五冊이 되는 경우도 있다. 통근 공간과 시간을 유효하게 이용하는 독서법은 매우 좋다. 그러나 너무 몰두하여 목적 역을 지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도 망각하지 말 것. 하기야 다시 돌아오는 차에서도 책을 읽으면 되지만.

 

(8) 반독법(反讀法) 책의 내용에 관한 이야기인바, 책의 내용과 기술에 대해 그 견해를 백 프로 믿지 않는 것이다. “꺼꾸로 읽는 법”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늘 “이건 아닌데” “정말 그럴까?" "그 역설을?” 하는 의문을 품고 거꾸로 생각해 보고 뒤집어 생각한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이런 반독법, 역독법을 늘 실천해 와서 늘 어른들이나 선생님의 핀잔을 듣곤 했다. 중학교 때 중국의 항일 영화 “지뢰전”, “지도전” 을 자주 보았는데, 중국 농촌이 민병들이 빈약한 자작 지뢰작탄으로 정예무기로 전부 무장한 일본 정규군을 싸워 이기는 내용이었다. 나는 민병이 일본군을 이기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비논리적이라고 생각했다. 이 생각을 선생님께 터놓자, 선생님은 얼굴이 새파래지면서 “이런 얘길 다시 하지마라. 너 반동파로 몰린다” 라고 하셨다.

내가 그 뒤 중국 역사서, 근대사를 읽으면서 이런 反 독법으로 문제를 발견하면 그를 증명하는 문헌자료를 다시 찾아내고 읽었으며 또 하나의 새로운 “발견” 연구과제, 글쓰기로 이어졌다.

(9) 난독법(亂讀法), 연구서, 전문서만 읽는 것이 아니라 폭 넓게 여러 장르, 영역의 책, 잡지, 신문을 눈길이 가는대로, 닥치는 대로 읽는다. 학자, 전문가는 흔히 자신의 전공분야에만 관심이 가는 약점이 있는데, 나는 자신의 전공부야의 수백 배 이상의 타 분야를 읽기를 좋아한다. 어느 한 분야나 가치관에만 편 합되면 그것만 절대시 하는 위험성에 스스로 침몰되기 십상이다. 이것을 학계에서는 “전문바보” 라고 한다. 폭 넓은 독서를 통해 넓은 지견과 가치관을 접하면서 자신의 지견과 가치관, 사고를 넓은 시야에서 관조 할 수 있으며, 또한 독서의 경묘소탈의 묘미를 체득 할 수 있어 좋다.

이를테면 나는 전문영역 외에도 자연과학, 수학, 물리학, 골동관계, 서예 미술고서, 진서, 포르노그라픽, 춘화, 성애론, 에로스관계 책, 잡지와 글을 많이 수집하고 읽는다. 이런 분야를 읽다가 또 다시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라 신저작이 생기는 수가 많다. 난독, 잡독은 인생과 일의 일대 묘미이다.

 

(10) 분독법(分讀法), 자신의 전공, 일에 관계된 필요 서적은 맹렬한 스피드로 읽는다. 그러나 한편 전공, 일에 관계있는 책을 흔히 읽기에 어려운 책에 봉착하며 지겨울 때도 있다. 이때는 차라리 분독 법을 구사한다. 그래서 잠깐 전공분야의 책을 제쳐놓고 의식적으로 본 테마와는 멀리 하면서 일에 핑계 대는 책을 읽는 것이다. 이는 일본의 “知적 거인”이라 불리는 다치바나타가시(立花陸)의 방법론이기도 한데 책을 읽다가 거기서 또 새로운 아이디어 발상이 탄생한다. 이것이야말로 망외(望外)의 기쁨이다.

 

(11) 추독법(追讀法), 필요한 책, 자신의 관심분야의 책을 읽고 미지의 세계를 알게 되고, 그래도 어딘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이때 나는 그 책의 저자가 책 뒤에 <참고문헌, 자료>로 즉 나열 해놓은 책 리스트를 곰곰이 읽어본다. 그 속에는 오히려 이 책이 탄생된 지탱해준 우수한 책, 자료가 매장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이다 라는 책을 따라 추적하여 찾아 읽는다.

이 방법은 용이한 방법으로 매우 유효한 수단이다. 그리고 어느 작가나 지식인의 저작이 좋아서 읽고 나서 계속 추적하여 그 한사람의 저작을 추종하여 읽는다. 나는 “연쇄독법”이라고 명명하는 바, 하나 또 하나의 고기 꿰임을 먹는듯한 지적 자극을 연쇄적으로 받게 된다.

 

(12) 매독법(買讀法), 나는 책이란 자신이 돈으로 구매하여 읽는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도서관이나 자료실 따위를 이용하는 것도 좋지만, 나는 외려 자신이 구매하여 읽는 편이 좋다. 혹자가 공영도서관을 “시민의 식생활 같이 공영식당에서 식사 시킨다” 라는 발상으로, 시민의 독서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하는데, 그전 발상을 나는 우습게 본다. 독서는 지극이 개인적인 정신생활이며, 자신이 먹는 정신식사의 대가는 자신이 치러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자신이 선택하고 제 돈을 내고 사서 자신의 서가나 침상 옆에 놓아두는 것이어야 한다. 학생이면 몰라도, 그만한 돈 마저 쓰기 아까워하는 정신적 구두쇠는 책의 진가를 모른다. 제 돈 들여서 산 책 이라야 더 소중히 하고 읽을 맛이 나며 또 읽게 된다.

 

마치도 여성과 사랑하는 것과 같다.

연인은 너무 가까이 하면 도망가지만, 책은 너무 가까이 해야 도망가지 않는다.

연인은 가까이 두면 잔소리가 많고, 책은 가까이 두면 지성이 많아진다.

그대여, 연인을 사랑하는 정신으로 책을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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