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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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친일파’의 무덤에도 봄은 오는가
2013년 06월 26일 07시 44분  조회:5545  추천:43  작성자: 김문학

4. ‘친일파’의 무덤에도 봄은 오는가

 

식민지 체험은 피식민 민족에게 기나긴 어둠의 회한을 낳는다. 따라서 그것은 그만큼 내면의 양태로 풀기 어려운 숙제들을 남기기도 한다.

필자가 근대 아시아를 재조명 하는 동기의 하나가 이런 풀지 못한 숙제를 풀어보자는 소박한 의도에서 이기도 하다. 100년이 지난 오늘까지 “친일”은 “반일”의 음지에 있는, 우리 민족의 치욕이자 통한의 주제로서 항상 우리의 가슴을 비분하게 만든다.

이렇듯 우리 민족 사회의 덧나는 상처처럼 괴롭히는 “친일파”문제, 그에 대한 처우 문제에 대해 필자는 근대 100여년을 읽으면서 다시금 재고하게 되었다.

“친일파=매국노”, “친일파를 처벌주고 척결해야 된다” 라는 주장이 지금까지 성세를 이루고 있는데, 이런 의식 주장이 과연 얼마나 합리적일 수 있는가?, 과거 역사의 진실에 얼마나 접근한 발산인가? 하는 반추와 반문조차 제기 되지 않은 채 무조건 맹종하고 있다.

필자가 근대사를 읽으면서 재 발전되는 역사사실(史實)에서 “친일”행위 보다도 오히려 “친일”에 대한 인식, 반성에 대한 현대인의 문제도 문제 삼아 타당하다는 점이다.

조선총독부의 그 건물을 기억에서 영구히 지우려고 인공적으로 철폐하는 한편, 독립기념관을 세워 일제의 만행을 또 영구히 기억하려는 단순한 모순. 누구나 이 모순을 지적하지 않았지만, 필자는 이 모순적 사실에서 현대 우리 민족의 과거 역사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의 “모순”을 읽는 듯 했다.

“친일파=매국노”의 등식의 대극에 있는 우리의 최대의 민족 영웅 안중근 의사. 그의 양상은 “친일파”의 모습을 다시 조명하는 거울 내지, 지금까지 미처 하지 못한 “발견”을 하게 되리라고 필자는 믿는다. 필자는 “국제안중근 기념협회” 일본지회장으로 수년 동안 그의 사상을 비롯해 이등박문 관계에 대해 연구를 해왔다.

안중근이 왜 우리에겐 위대한 영웅인가?

이등박문은 1905년-1909년 일제의 대표로 한국정부에 임한 침략자로서, 한국의 최대의 침략자의 원흉, 상징이었다. 따라서 이등 저격, 말살은 일본의 침략에 대한 저항, 반일을 상징한다.

필자는 또 이런 “발견”을 했다. 안의사가 그렇게도 많은 한국독립 투쟁사의 김구, 안창호, 박은식, 여운영, 이승만, 서재필 등 쟁쟁한 인물을 누르고 최정상의 영웅지위를 획득 할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 문제는 한국 근대사에 답안이 있다. 19세기 후반, 말기와 20세기 한국 식민지 시기 1945년까지 통 털어 개화파와 보수파, 저항파와 친중파, 친러파 및 친일파가 역동의 드라마를 펼쳤다. 특히 3.1운동의 민족 운동가, 독립운동가 들이 그 후에는 일본제국 통치에 적극 내지 소극적 협력, 이른바 “부일협력”으로 전락 해버린다.

그래서 김옥균으로부터 김성수, 이승만 등에 이르기까지 많은 민족운동가 들에게는 기필코 “더럽힌 과거”를 묻고 있다.

그러나 이와 지극히 대조적인 것이 바로 안중근이다. 그가 우선 일제 침략의 세계사인 이등을 처단한 것이고, 이는 최대의 독립의 심벌적 행동이었으며, 또 하나는 그가 불과 5개월의 짧은 투옥생활을 거쳐 깨끗하게 순국한 것이다. 여기에는 앞서 말한 쟁쟁한 독립운동가 들에게 있는 “더럽힌” 과거 같은 것이 일말도 없다.

그러므로 안중근이 근대 반일독립의 최고의 영웅이 되는 것은 당연한 흐름이리라. 안중근은 “동양평화론”의 사상가였다. 이 의미는 지대하다. 그런데 냉철히 말해, 그렇게 아름다운 “동양평화론”이 권총 탄환의 형태로 밖에 나타나지 못한 것이 안중근에게도, 이등에게도, 그리고 모두 조선인과 일본인에게도 비극이었다. (김기협《망국의 역사 조선을 말하다》)

그리고 문제는 “친일파”가 왜 “친일파”로 되었는가 하는 역사적 상황, 이유를 따져야 한다.

1860년대 이후 명치유신을 거친 근대 일본과 양무운동을 겪은 청국에 뒤진 조선은 제국주의 식민주의 시대에 미처 따라가지 못해 스스로 많은 내부 문제를 내포하게 만든다.

또한 조선 조정의 재정은 일본이나 청국 조정에 비해 취약했으며 자신들이 스스로 의도했던 개혁도 일본이나 러시아 또는 청국에 의지해야 할 만큼 역량이 빈약했던 절박성을 알고 있었다. 김옥균, 박영효 등 개화파가 “친일파”로 된 데는 그 역사적 배경에서 오는 심각한 번뇌를 안고 있었다. 이를 외면하고 단순히 “친일파=매국노”로 지탄해도 의미가 없다.

더욱이 동일맥락에서 한일 병합 이후 이 문제는 더 두드러진다. 1919년 3.1독립운동 이후 상해에서 망명 독립가들이 만든 임시정부는 불행하게 국제 열강의 승인을 받지 못했으며, 일제의 통치 또한 갱연 양면으로 교묘해져 많은 독립 운동가들은 독립운동을 지속하기 위해 하는 수 없이 적응시켜 “친일파”로 전향해야 한다. 당시 “친일”은 숱한 독립운동가, 지식인 엘리트들의 생존방식이었다. 3.1독립선언문의 기초자 최남선이 그랬고 근대문학의 대부 춘원 이광수, 그리고 백철, 김동리, 모윤숙, 노천명, 이병도 역시 그랬다.

왜 독립운동가 들이 자치운동, 최종적으로 전쟁 시기에 대일 협력자로 전향해야 했을까?

조선을 대표하는 천재들로서 최고의 국제적 시야와 명석한 두뇌를 가진 그들이 한 부일협력을 무엇을 의미할까? 이광수가 훗날 “민족보존을 위해 친일했다”는 변언에 그 누구도 외면하고 그 말의 진의를 부정하기만 한다. 사실 이 한마디에 이광수 같은 당대 최고 엘리트들의 “열길 물속”의 속궁리가 들어 있는 것이다.

“친일파”를 매국노로 이제 추세가 된 우리가 비판, 지탄함은 너무도 쉽다. 그러나 여기에는 우리 추세의 현재의 심정을 그대로 역사의 과거에 투영시켜 버린 그 우(愚)가 남을 뿐이다.

인간의 문화사가 입증해주는 바와 같이, 인간은 현실과 타협하여 적응시키는 자만이 살아남는 법이다. 그 어떤 민족적 이상주의나 고상한 이념만으로 인간이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을 보존할 줄 모르고 어찌 다시 싸워 이길 수 있는가? 역사가 거울이고, 앞으로의 지침서라 외치기를 즐기는데, 그 시대의 역사 인물들이 어떻게 현실과 격투하여 적응하면서 지혜롭게 살아왔는가를 배우는 것이다.

지금도 “친일파”의 무덤에는 차디찬 겨울의 엄동설한이 맴돌며, 무덤에 침 뱉고 채찍으로 타매하기에 여념이 없다. 실로 슬픈 일이다. 이제 역사에 대해 좀 더 현명하고 이분법적(二分法的) 편협한 인식에서 탈피하는 날, 필자는 믿는다. 그러면 얼어붙은 삭막한 “친일파”의 무덤에도 봄은 올 것이라고. 그리고 진달래가 만발 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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