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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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은폐규칙(潜规则)”은 중국사회의 사각(死角)인가? [오사 김문학 대담]
2017년 02월 28일 17시 20분  조회:3389  추천:28  작성자: 김문학
문화대담
 
“은폐규칙(
潜规则)”은 중국사회의 사각(死角)인가?

오사(吴思)+金文学



 
O들어가면서
 
오사(1957년 생 )는 재야 학자로서 “潜规则”(은폐규칙), “血酬定律”(혈수법칙)을 발견한 유명지식인이다.

정규적 역사학전공코스를 밟지 않은 저널리스트출신의 역사학연구자로서 이러한 학문적발견은 한다하는 역사학 대가들도 미처 해내지 못한 업적이다.
 
오사는 중국현대사회와 역사의 터브를 과감히 깨고 있는 잡지 《염황춘추》(炎黄春秋)의 주필을 최근까지 맡았는데 요즘은 글쓰기와 강연으로 바삐 보내고 있다고 한다.
 
북경의 어느 한 호텔커피숍에서 첫 대면 했을때 오사의 인상은 조용한 기품에 신사의 풍채가 풍기는 사나이였다. 차분한 어조로 조리정연하게 말을 엮어가는 그는 허심하고 두뇌명석한 지식인이 틀림없었다. 의외로 오사씨도 나를 알고 있고 내책도 읽었던터라 우리의 대담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1978년 오사는 중국인민대학 중문학부에 입학, 작가로 될 지향을 품고 입학했으나 개학 첫 날 선생님은 중문계는 작가를 육성하는 곳이 아니고 문학비평가를 육성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신문학부로 전학을 요구했지만, 아버지와 친구인 신문학부 주임이 신문학부에 와봤자 배울게 없으니 차라리 중문학부에서 공부하는게 낫다고 타일렀단다.

중문학부 졸업차로 《농민일보》기자로 입사했다. 그가 가장 숭배하는 기자는 유명한 류빈안(刘宾雁)이었다. 진실을 까발리는 용감한 기자의 사명감으로 오사는 현실생활을 반영하려 애썼다.

그러나 현실에서 오사는 은폐규칙(潜规则)에 조우하면서 이러한 현실을 초래한 역사적 근원을 캐기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신문기자라는 직업생활에서 봉착한 현실적 사례를 통해 역사를 결부하여 연구에 심혈을 기울였다. “은폐규칙”에서 “혈수법칙”(血酬定律)을 발견하여 일약 전국적으로 유명한 재야 역사학자로 거듭나게 된다.

역사를 통해 오늘의 현실을 짚어보는것이 오사의 글쓰기의 큰 특징이다.

오사는 대담에서 어떤 탁월한 견해를 얘기했을까? 자, 이제부터 대담의 세계로 들어가 보기로 하자.
 
1. “은폐규칙”(潜规则) 어떻게 발견했나?
 
김: 오선생님이 발견한“은폐규칙”(潜规则)은 현재 전중국인이 다 아는 명사로 보급되고 있습니다. 중국 현대사학자들도 미처 발견하지 못한 중국역사의 하나의 숨은 법칙을 발견한 업적이라는 평도 있어요.
 
   그렇다면 “은폐규칙”은 어떻게 발견하였으며, 구체적으로 어떤 뜻인지를
얘기해주시면 합니다.
 
오: 실례지만 김선생은 농촌으로 하향한적이 있으세요?
 
김: 없지만 농촌에서 태여나고 자랐습니다.
 
오: 그럼 이해하기가 쉽겠네요. 난 고등학교 1학년때 북경 창평현 농촌에 지식청년으로 하향갔어요. 농촌에서 노동에 시달리면서 세상에 내가 미처 모르는 암흑한 곳을 보게 되었고 자신의 두눈과 두뇌로 보고 사고하게 되었지요. 세상은 겉 말고도 뒤면에 또 다른 양상이 있다는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김: 그 뒤 기자로 뛰면서 농촌 취재중에 “은폐규칙”을 발견했다면서요?
 
오: 그래요. 내가 《은폐규칙(潜规则)》머리 말에서도 밝혔지만, 농촌에서 화학비료를 분배할 때, 그 분배규칙이 있어요. 서면으로 돼 있는 규칙이 있는데 사실 실제로 분배할 때는 또 다른게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명문화된 분배규칙을 한쪽으로 내세우면서 밑에서는 또 다른 규칙이 있어요. 누가 쪽지를 써주고 누가 쓴 쪽지가 쓸모 있고 또 얼마나 화학비료를 가져갈수 있도록 양까지도 규칙이 있습니다.
     이런 규칙은 화학비료 분배결과 이를테면 천톤이라면 정식 서면규칙으로 분배된 양과 밑에서 슬쩍 은폐된 숨은 규칙으로 분배된 양이 얼마란걸 백분비로 계산해낼수 있지요.
     내 발견에 따르면 화학비료분배문제에서 은폐규칙의 역할이 더 큰거지요. 그때는 “은폐규칙”이란 단어 말고 내부규칙(内部章程)이란 말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다가 1997년경에 역사를 읽으면서 특히 명나라 역사를 읽으면서 유사한 수평면하의 규칙이 큰 작용을 하고 있다는걸 알고 고민끝에 “潜规则”(은폐규칙)란 명사를 창안해냈습니다.
 
김: 중국 역사의 사회현상을 개괄해낸 낱말로서 의미심장한 용어이지요. 신문을 다루는 저널리스트로 어떻게 역사에 심취하게 됐습니까?
 
2. 명사(明史)에서 중국의 룰을 찾다
 
오: 현실은 역사에 근원을 두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명나라 역사에 관심을 둔 계기는 우리 현대사와 지근거리에 있고 또 청나라 원나라와는 달리 한족 중국인의 참모습이 보이기 때문이에요.
 
김: 원나라처럼 이민족의 지배가 없기때문에 명료하고 사료도 복잡하지 않지요.
 
오: 그렇죠. 원조가 물러난 뒤 주원장이 창시한 명조는 당조의 정치규장제도를 도입하여 대명률을 제정하게 되는데 그 취사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면서 주원장의 개인숭배로 인해 그의 입법이 실제상 효과를 상실하게 됩니다.
    주원장이 실시한 통치방식은 사실상 모택동시대의 정치운동과 유사했는바, 모택동시대 주원장을 답습한건 분명하지요.
 
김: 미국의 화교 학자 황인우(黄仁宇)의 《万历十五年》(만력15년)등 명나라 역사에 대한 연구는 정말 개척적인 연구를 보여준 역작이지요. 황씨의 연구도 오선생의 연구에 참고가 되셨는지요?
 
오: 당연하지요. 1986년에 황씨의 이 책을 접하고 크게 개안(开眼)을 했습니다.
   명나라를 쭉 보면 청렴한 관리를 도태시키거나 청렴한 관리가 추락부패하는 그런 양상을 그대로 현재 중국이 답습하고 있어요. 현재 중국의 현실은 역사를 캐보면 다 존재하고 있었지요. 황인우선생의 명나라연구를 보면 아주 뚜렷하게 우리 현실을 수백년전의 역사로 끌고가는 느낌입니다.
    명나라의 은폐규칙을 보고 두터운 역사적 축적과 전통이 있는 중국현실의 은폐규칙이 얼마나 일맥상통한가를 인식하게 되었고 “은폐규칙”을 과감히 자신있게 쓰게 되었답니다.
    현실을 인식하기 위하여 그 뿌리를 캐다 보니까 결국 역사를 캤고 역사와 현실을 다 어우러 썼습니다.
 



3. 은폐규칙의 위험성
 
김: “은폐규칙”이란 중국 사회현실에 뿌리깊은 객관적 구조라할까 그 존재양상이 사회나 사회도덕에 대한 어떤 악영향이 있다고 보시는지요?
 
오: 우리가 잘 아는 공식적인 도덕규칙을 실례로 들오봅시다. 예를 들어 군신부자(君臣父子)가 예의인데, 만일 서로 예의가 분수를 넘어서 군자를 신하가 범해도 안되고 반대로 군자가 신하에 대해 침범해도 안되지요. 만약 10%의 과세를 30~50%로 인상하면 그건 폭군이며 정책이 맹호처럼 사나운바, 이게 하나의 규칙이지요. 이 규칙을 준수하지 않을수도 있지만, 진(秦)나라가 14.5년으로 망해버렸어요. 그러니 “인의 도덕” 이러한 체계는 모두가 서로 연결중 형성된 경계선(边界)이지요. 이건 백성이나 정부에 다 유리한 존재이지요.
   그렇다면 “은폐규칙”은 무엇인가? 우리가 공식적 공인하는 규칙,또는 도덕따위를 정의(正义)의 경계선이라고 치고 황제가 각 관리들에게 이 권리를 수여했다고 합시다. 여기엔 대리인, 대리인이 다 있지만 실제 수행할때 수하 사람들이 슬쩍 뽑아내고 갈취하고 하여 백성들을 업신여긴다면 이런것은 다 정의의 경계선을 이탈한것이고 불온정이 여기서 나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이 정부가 신용없는 정부로 인식하게 되고 인심을 잃게 되죠.힘없는 개인들이 반항심이 있고 반항의 힘은 없다하더라도 나중에 결과는 사회토대가 불온해지고 극단에 이르면 사회는 붕괴되고 말지요.
 
김: 과연 살상력이 대단하군요!
오: 그렇죠. 은폐규칙이 있는한 매개 관원은 다 이 경계선을 침범할수 있기때문에 나는 거기에 “합법적상해권(合法伤害权)”이란 명칭을 덧붙였어요. 매 관원수중에 모두 이런 모호한 권한이 있어요.상황에 따라 당신에게 5년6년 징역이거나 벌금을 안기는 그런 모호한 권리, 그러나 아무 일이나 도가 있는 법이지요.
    “은폐규칙”은 주로 관장(官场)에 유행범람하는 안보이는 규칙을 제시했는데 문제는 우리의 생활영역은 관장뿐이 아니지요. 선악응보사상이 있는데 현실은 또 다 그렇진 않죠.
 
김: 중국 현실의 관원의 부정부패도 다 이런 은폐규칙과 연관이 있겠군요? 그럼 오선생님은 기자생활중 은폐규칙에 따른 좌절과 곤란에 봉착한적도 있으시겠죠?
 
오: 당연하죠. 만약 농촌독자가 부정부패를 적발하는 고발편지가 왔을때 정말 하나 하나 실제로 처리를 하고 도와주지 못하는게 안타깝지요. 백성들이 밀고를 해도 관원은 “니들 암만 고발을 해봐, 날 어쩌질 못 할거야...”하면서 태연하게 있어요.백성들이 악한 관리를 고발해도 그 본전이 많이 들어도 별 효과를 못보는게 중국이잖습니까?
    우리 기자, 편집자들도 우리 앞에 놓인 진실규칙이 무언가를 너무 잘 알지요. 헌법에 쓴거나 우리가 어떻게 보도를 해야하는가 완전 별 세계니까요. 우리 자신도 매일 갈등과 충돌속에서 헤매이고 있어요. 이런 의미에서도 우리 중국인은 매일 “은폐규칙”속에서 생활하고 있지요.(웃음)
 
4. “혈수법칙”이란 무엇인가?
 
김: 오선생님은 “은폐규칙”외에 또 “혈수법칙”이란 개념을 창안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그에 대해 말씀 해주시겠어요?
 
오: 이 두 개념은 다 중국역사를  관통한 법칙을 분석귀납한것이죠. 명문으로 명시한 법칙은 아니지만 현실사회에서 확실히 큰 작용을 일으키는 게임규칙입니다.
    나는 《혈수법칙(血酬定律)》이란 저작에서 하나의 오래된 문제를 착중하여 답안을 찾으려 했어요. 즉 왜 어떤 사람은 폭력으로 임대료(租金)을 갈취하고 또한 사람들이 이에 협력하는가?
     《은폐규칙(潜规则)》에서는 회색수입을 얘기했는데 더 심입하여 왜 어떤 사람은 이런 회색수입을 획득하는 자격을 갖게 되었는가에 대해 탐구해야 했지요.
    “혈수법칙”은 바로 인간 심중에 깔린 모종의 계산방식을 탐지해내는 것입니다.노동으로 벌어들인 수익이 노임(工资)이라면, 땅으로 환취하는 수익이 지세(地租)이고, 자본으로 얻는 수익이 이자(利息)라 한다면, 유혈과 목숨걸고 획득한 수익은 무엇이라 불러야 될까요? 난 이를 혈수(血酬)라고 정의 했어요.
 
김: 이 개념으로 비적, 강도, 깡패들이 금전재물을 갈취하는 본질을 규명 할수 있겠군요.
 
오: 그럼요. “혈수법칙”의 시각에서 역사를 개괄한다면, 역사를 엮어가는 과정이 바로 유혈과 생명으로 생존의 자원을 바꾸는 과정이고, 사회를 다스리는 제도가 바로 폭력으로 갈취한 생존자원을 합법화시키는 과정이지요.
김: 완전 동감입니다. 중국사를 관통한 룰이 바로 겉표면의 유교나 윤리도덕이고, 오선생님이 창안한 “은폐규칙”이나 “혈수법칙”이야 말로 중국사의 과거와 오늘날 면면이 이어진 폭력구조를 잘 체현했습니다. 왕학태선생이 제기한 “또 하나의 중국”과 잘 맞먹습니다.
    왕학태선생의 또 하나의 중국이 “흑색의 사회”라면 오선생이 제기한건 “회색사회”이지요.
 
5. 회색지대에서 흑색사회로
 
오: 맞어요. 난 예전에 “회색사회”라는 용어로 설명한적이 있습니다. 중국의 각종 사회에서 “흑색”의 정도는 각기 구별이 있어요. 내 책이 혹시 독자들에게 모든 사회가 다 까마귀같이 검다는 인상을 줄수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겁니다.
 
김: 그렇죠. 세부나 정도에서는 다 차이가 있으니까요.
 
오: 그래서 우리가 한가지 현대의 관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어요. 즉 정부, 정권은 일방적으로 백성을 통제관리하는 기능만 있는게 아니라, 백성들에게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면도 있습니다. 백성들이 정부에 납세를 하는건 신복을 표하는게 아니라 공공서비스를 획득한기위한 교역행위이지요.
    이런 정부와 서민의 관계는 “흑사회화”(黑社会化)라고 절대 말할수 없거든요. 왜냐하면 그것은 일종의 공평한 교역이니까요. 그렇다면 이 양자관계는 어떻게 회색 내지 흑색으로 변질 할까요?
    하나의 전제정권이 있다고 칩시다. 폭력수단으로 정권을 잡은 이 집단이 정권을 수중에 장악한 뒤 절대권력을 확고하게 유지하면서 백성들의 불만을 사게 됩니다.
    정권의 계승자들이 지적장애자거나 잔혹한 독재자거나를 막론하고 서민들은 정권을 선택할 권리가 없어요. 이렇게 정권이 회색, 지어 흑색으로 변질되고 서민들은 힘 없으니까 그냥 현실을 묵인할수 밖에 없습니다. 폭력, 무력으로 인민을 탄압하고 정권을 유지 하는게 특징입니다.
 
김: 문화대혁명시기의 중국정권이 그러했지요. 사실 중국의 역사도 쭉 고찰하면 하나의 폭력의 역사였습니다.
 



6. 폭력원리의 원규칙 (元规则)
 
오: 그렇습니다. 양계초도 지적했지요. 중국의 역사를 펼치면 역사 자체가 곧 상작(相斫)사이라고, 한페이지 한페이지가 모두 전쟁인바, 공개되거나 숨겨진 폭력의 싸움이었습니다. 그러므로 1949-1976년의 중국 당대역사에서도 “혈수법칙”의 실례를 무수히도 찾아낼수 있지요. 토지개혁, 대약진, 반우파투쟁, 문화대혁명... 거의다 폭력을 최종위협수단으로 제도를 변화하고 강제적으로 제도변경을 강행했습니다. 그리고 거의 반항능력이 없는 인민대중 개인들에게 폭력은 여지없이 탄압하는 무기였지요.
    나는 이같은 폭력으로 제도를 결정하는 도리를 원규칙(元规则)이라고 명명했는데, 원규칙이란 바로 규칙을 결정 짓는 규칙을 가르키는거지요. 원규칙이란 바로 폭력이 강한자가 일체를 결정하는 규칙입니다.
 
김: 미국의 저명한 경제사회학자 OISON(1932~1998)교수가 그의 저작 《권력과 번영》에서 중국의 비적을 실례로 폭력집단과 현지 시민들사이의 상호이익관계를 지적했는데 중국현실사회의 폭력원규칙이 이렇게 창궐할수 있는 이유는 그 전제적 권력정부와 함께 아래서 서민들의 “합작”을 누락시킬수 없다고 봅니다. 더 넓은 시야에서 고찰하면 중국의 폭력 원규칙은 말 잘 듣는 대다수 백성이 있기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오: 그렇죠. 이런 원규칙과 혈수법칙 그리고 은폐규칙이 하나같이 순순히 생기고 발전유지해온 근저에는 아무래도 사회, 역사, 대중의 토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7. 중국은 여전히 “원규칙”권에서 살고 있다
 
김: 오선생님께 한가지 여쭙고 싶은 문제는 중국이 1976년 문화대혁명 또는 모택동시대가 종식된후 역시 이와 같은 원규칙- 은폐규칙-혈수법칙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보나요?
 
오: 물론 아직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문혁이 종결된 표징이 바로 “4인방”의 분쇄인데, 그 뒤 개혁개방정책의 결책자들 역시 총을 지휘할수 있는 그런 권력자들이지요. 어디까지 개방하고 어디까지 개혁하냐? 이 경계선은 어떻게 설정하냐? 예를 들어 보면 결책자에 유리한 지도가가 꼭 농민의 치부(致富)에 유리하다고는 말할수 없어요. 만약 농민대중의 치부와 결책자의 지도자와 이익이 일치하다면 개방은 거기까지입니다.
    만일 좀 더 심입하면 농민대중의 치부에는 유리하다하더라도 개방은 거기까지는 안 할수 있어요. 결책자의 차원에서 볼때, 의연히 우리가 말하는 “원규칙”의 작용을 받거든요.
 
김: 그렇다면 중국의 현실은 역시 원규칙, 은폐규칙권안에서 맴돌고 있다고 해야겠군요!
 
오: 그래요! 개혁개방 30여년을 쭉 보면 여러제도의 변천, 규칙변화, 개혁은 모두 규칙의 조정에 불과 한바, 사실 수평면하에서는 모두 이런 규칙(원규칙 등)의 테두리에서 이탈하지 못했어요. 우리는 종시 이런 원규칙의 지배하에서 있으며 이런 의미에서는 그냥 그자리서 답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김: 그래도 관념, 이데올로기차원에서는 많은 변용을 했을텐데요?
 
오: 그건 그렇습니다. 지금 30여년전과 현저하게 다른건, 이데올로기의 색깔이 퇴색해가고 있는 점이지요.




 
8. 퇴색해가고 있는 이데올로기
 
김: 이데올로기의 퇴색에 대해 좀 더 상세하게 얘기해주시겠어요?
 
오: 모택동시대에 생산성보다도 더 중요시한게 이상(理想)-공산주의를 조속히 건설하는것이었습니다. 모씨는 또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수령으로 되려고 애썼는데 그는 명확히 이런 말을 했어요. “우리가 군중노선을 걸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전적으로 군중의 말을 들어서는 안된다. 농민의 자유를 요구한다면 우리는 사회주의를 요망한다”고요.
 
김: 농민에게 자유를 안 준다는건 왜서이죠?
 
오: 왜냐면 공산주의와 충돌되기때문입니다. 모택동이후, 개혁개방시기에 이렇게 부르짓던 이데올로기도 점차 박약해졌지요. 대신에 핵심적 목표, 최대 가치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에서 경제발전으로, 현대화 실현으로, 경제건설이 가장 큰 이념으로 전변되었습니다.그래서 이에 상응하게 경제적자유도 개방되고 우리 대중들도 확대된 자유의 모습을 보게 되었어요.
    농민, 노동자, 상인, 자본가, 학자도 자유가 있게 되었는데 하지만 자유라해도 규칙경계선의 조정에 지나지 않지요!
    최고 결책자 또는 지배자집단의 이런 조정은 농민의 이익에 부합될뿐만아니라 지배집단의 이익에도 부합되는 상부상조이지요.
    개혁개방전과 개혁개방후의 제일 중대한 변화는 최고가치관의 변화지요. 이 변화로 인해 자신이익에 도움을 주는 변화가 생긴겁니다.
 
김: 그러니까 “원규칙”따위가 계속 작용을 하고 있다는 얘기겠군요.
 
오” 그렇죠! 권력에 제일 유리한 변화가 생기고 각종 조종도 따라 나선겁니다. 그러나 “원규칙”은 여전히 규칙을 결정하는 규칙으로서 가장 근본적인, 본원적인 규칙임은 변화가 없습니다.
 
9. 관가주의 (官家主义)라는 신개념
 
김: 오선생은 최근에 “관가주의”란 신개념을 제출했는데, 어떤 얘긴지 설명해주시겠습니까 ?
 
오: 은폐규칙, 원규칙 및 혈수법칙의 시각으로 중국사를 관찰하면 또 다른 모습이 보이는데 나는 “관가주의”라는 신개념으로 정의했어요. 교과서적 설법으로 말하면 진나라 한나라 이래 청조말기까지 줄곧 중국은 봉건사회라고 했지만 이건 틀린거지요. 왜냐하면 고대한어와 접목시켜 보아도 고대인들이 찬성할리 없죠. 왜냐하면 봉건제도는 진나라때 이미 “폐봉건, 입군헌”(废封建,立郡县)이란 제도와 같이 폐지해버렸기 때문입니다.
    봉건사회가 폐지된 군헌제에서 주인은 바로 관가 집단이니, 당연히 관가주의라 해야 타당하지요.
  “관가(官家)”란 낱말은 고대한어에서 3가지 차원의 뜻이 있어요. 하나는 황제를 가리키고 두번째는 아문(衙门)이고 (현재의 공립,국립)과 같이 도로가 관가의 것이라면 관도(官道)라 했지요. 세번째는 관원 개인의 존칭이었습니다. 이 삼자가 다 주인으로 되고 법을 제정하고 규칙관념을 세울수 있었으니 “관가주의”입니다. 이런 중국사회를 나는 “관가주의 사회”라고 부릅니다. 이건 “봉건주의”나 “전제주의” “황권(皇权)전제주의”보다 더 적절하지요.
김: 관가주의가 봉건주의보다 더 적절하게 중국 역사의 사회특질을 규명하는 명칭으로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현실의 중국사회의 지배체제로 볼때도 이 개념은 더 정확한 제시를 했다고 보는데,관료주도의 사회인만큼 중국이 관가주의 체제하에서 은폐규칙, 원규칙 그리고 혈수의 룰이 더 스므드하게 범람할수 있는 환경과 토대가 된다고도 생각해요.
 
오: 맞는 말씀입니다.
 



10. 핵심구조변혁의 미완성
 
김: 중국은 30여년의 개혁개방으로 거대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오선생의 지론대로 이를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오: 생태학과 진화론의 시각에서 보아 개혁개방전의 중국사회는 물종이 희소했어요. 농민이 아닌 공사사원, 노동자가 아닌 관판기업 직공, 그리고 관료 이런건 모두 관가주의 체제에 예속된 물종이었지요. 그러나 개혁개방후 공사사원이 자작농으로 변신하고 개체호, 농촌기업가, 농촌기업자본가, 농민공... 등 물종이 풍부해졌으며, 이데올로기가 느슨해지고 경제건설을 첫자리에 놓고 하여 풍부하고 복잡하고 창조력이 있게 된 사회생태를 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보면 관가주의의 핵심구조가 아직도 지속하고  진, 한시기이래의 2천년의 대구조가 개혁을 이루지 못하고 있어요.
 
김: 경제의 고도성장이 정치제도의 개혁을 환기시킬수 있을까요?
 
오: 서양에서 이런 관점이 유행했는데, 경제발전과 정치변혁 또는 헌정민주가 상관관계를 지니고 있다는 견해는 타당성도 있어요. 그러나 한조목씩 검증한다면 반증도 나오지요. 인구당평균수입이 수천 수만달러의 중동석유국가중에도 여전히 정치변혁이 없지요. 인도는 인구딩평균수입이 현저하게 낮은데도 정치변혁은 얼마나 빠릅니까?
    GDP나 중산계급의 비례를 들고 나와도 그 반증은 얼마든지 있어요! 그러니 민주, 헌정이 어떻게 탄생할까를 강조하기 보다는 전제정권이 어떻게 무너지는가를 얘기해야 할꺼 아닌가요? 전제권력은 꼭 무너지고 말아요. 왜냐하면 취약하기 때문에.
    전제가 붕괴된담 새로운 민주정권을 수립할 개율이 높으며,또 하나의 전제정권이 일어설 가능성도 있어요. 그러나 더욱 큰 가능성은 아무래도 민주정권이지요.
 
11. 은폐규칙 소멸되는
 
김: “은폐규칙” “원규칙”등 중국의 암흑한 룰이 어떻게 소멸될수 있을까요?
 
오: 예를 들어서 현재 전국적으로 군체충돌이 자주 일어나고 있는데 이것은 다 제가
   보건대 이익의 경계선을 조정하는 마찰이라고 생각해요. 농민의 토지권 경계선은 늘 모호했기때문에 최근 농민이 토지권익을 둘러싸고 항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런 권익은 농민의 소유가 아니라고도 안하고 그렇다고도 직설적으로 명시하지 않습니다.
    바로 이런 애매모호한 경계지대에서 트러불이 생기지요. 이런 쟁탈전와중에 맹 이익의 분계선이 뚜렷해지고 법규가 생기면 트러불도 적어집니다.
 
김: 중국 농민의 인내력 내지 감수력이 강한건 정부의 권력이 그만큼 강한 증명이 아닙니까?
 
오: 맞어요! 그러므로 가장 기본적인 관과 민의 관계조정을 하고 은폐규칙중 피해자의 반항을 안무할수 있다면 이런 은폐규칙들도 대폭적으로 소실될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의 은폐규칙, 원규칙 이런 거는 다 사각(死角)이기도 해요. 쉽게 때려서 떨어뜨릴수 없는 존재이지요. 왜냐하면 법적으로 그 “사각”을 겨냥하여 청소할수 없기때문입니다.
   
김: 긴 대담 감사합니다. 오선생님의 말씀이 과연 중국 미래의 방향에 유익한 조언이 될것으로 믿습니다.
 
대담자 소개:
오사 (吴思) 저명한 역사평론가, 저널리스트  1957년 북경출생. 1982년 중국인민대학
중문계 졸업후 《농민일보》기자, 편집   1996년부터 《염황춘추》주필,사장 역임
2009년 《염황춘추》잡지 법인 대표
주요 저작으로 《潜规则》《血酬定律》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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