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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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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사랑의 배신자
2013년 04월 10일 08시 45분  조회:1498  추천:0  작성자: 김재진
 14.  사랑의 배신자
  

 
    두번째 공인 모집이 시작되였다. 두개의 흐름선에 앉을 공인 160명과 A공단과 B공단에 보충 할 공인 34명까지 194명을 모집하기로 하였다. 그들을 4월 1일부터 정식으로 출근시킬 예정이다. 그래야 먼저 입사한 애들보다 딱 반년 늦어지고 로임도 백원씩 적어진다. 지난 춘절 마 효리 피랍사건 교훈에 근거하여 될수록 가까운 곳의 애들을 모집하고 한마을에서 최저로 3명이상 모집하는 집단법을 채용하기로 하였다.
해연이와 송자는 서시장의 옷매대를 가지런히 하나씩 샀다. 마침 3년간 옷장사를 하다가 한국비자가 내려 급히 떠나려는 자매가 있어 매대를 넘겨받은 것이다.
잔전이 한푼 두푼 모아지는 것도 재미지고 아줌마들과 옴니암니 흥정반에 롱담반 해가며 시간 보내는 것도 재미진데 처음이라 자고 깨는 시간이 잘 습관 되지 않는다. 중요한건 정당하고 훌륭한 직업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자부심으로 둥둥 떠서 나날을 보내는 것이 좋았다. 그들은 구원 되였다.
방 화는 기뻤다. 자그마한 돈이 두친구의 인생을 바로잡아 놓았으니 어떻게 하든 더욱 많은 돈을 벌어 더욱 많은 사람들의 삶을 도와주리라 마음 가지게 되였다.
4월 중순, 새로 입사한 처녀애들의 기능공 훈련이 잘 진행되고 있었다. 
방 화는 처음으로 송자의 전화를 받았다. 지금까지 전화는 해연이가 먼저 걸고 송자가 이어치고 했었다. 그러다보니 중심사상은 해연이가 다 하고 송자는 감사의 말 몇마디 롱담 몇마디 한 후 빠이빠이를 부르는 역활이였다.
“방 화언니, 내 인제야 핸드폰 샀다아. 언니한테 날마다 전화치구 싶어서 산게요. 이제 좀 시끄러울테니 각오를 단단히 하오… 언니야, 그런데 나 걸렸소… 누기는 뭐, 젬스지. 그후론 한게 없는데… 호호호… 식칼콘가 두고 보오. 근데 나는 너무 큰 식칼코 말구 언니처럼 이쁜 여자애 낳고 싶소… 양, 전화가 그냥 통하고 다음달엔 내 출국 서류까지 만들어갖고 온다우. 대련 분사로 일보러 왔다가 우리 부몬데 인사하고 나를 잡아 가겠다우… 좋으멘서두 영 심란하우. 사실은 나 갸가 진짜로 달려드는줄 몰랐지뭐. 다른 남자들처럼 한두판 하구 떨어질게다 했지, 이렇게 끈질기구 씨까지 박을줄을 누가 알았겠소? 그래서 골치 아프오. 글쎄 언니 덕분으루 금방 일궈놓은 매대도 아깝고 새로 시작한 재미진 생활도 아깝고… 아침과 점심은 식당에서 매대로 배달 해주고 저녁은 먹고 싶은걸루 골라 먹고 올라오우. 인젠 주방이 소용 없소. 또 매대일을 할라니깐 주방에 들어갈 시간도 없고… 미국에 가서 결혼하고 돌아와서 그냥 매대나 할까하우, 그런데 젬스가…일년에 한두번 하믄 되지뭐… 글쎄 젬스는 아니겠지? 날마다 하잘게요. 못 참으믄 첩이나 두라지 뭐, 호호호… 잠간, 해연 언니 바꿔줄게. 내 임신 했다니깐 이언니 시샘이 나서 야단이요.”
 
사실 방 화도 질투가 난다. 여자의 본성인가부다. 방 화는 애기 낳고 싶어도 인젠 방법이 없다. 남편이 감옥에 살아 있으니 임신 할 수 없는 것이다. 장만이가 자유를 얻을 때면 다 늙어졌을 때일 것이다. 방 화는 세차게 도리질을 하였다. 멍청스런 궁리를 하고있는 자기를 나무랐다. 자기에겐 양아들도 있고 정 강이와 같은 조카들도 있고한데 뭐가 부러운가? 다음 달엔 강 평이 하구 정 강이 한테 돈 좀 보내줘야겠다. 정 강이는 곧 중학교에 올라갈거니깐 공부 잘하게 고무해줘야 할 것이다.
방 화는 시부모님과 딸애의 생활에 보탬하도록 일월달부터 달마다 삼천원씩 부쳐 보내고 있었다. 언니 방 숙이가 주소를 늦게야 알아서 보내준 것이였다. 춘절 전에는 시부모님한테 세배편지도 썼고 설 직후 시아버지의 회답편지와 신애사진도 받았었다.
“며늘아가, 몸무사히 잘 있다니 시름 놨다. 신애도 잘 크고 있고 애비도 건강히 개조 받고 있단다. 벌써 두번째로 너의 돈을 받고보니 미안하고 눈물이 난다. 인제는 돈 부치지 말거라. 나는 아직도 밥벌이를 할 수 있으니 근심 말고 네 몸이나 챙겨라. 신애 사진은 어제 웃 마을에 가서 찍었다.”
방 화는 짬짬이 시아버지의 편지와 신애의 사진을 꺼내여 넋을 잃고 보군한다.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방 화는 더없이 궁금 하다. 김 병국이가 편지에 쓴 웃 마을이란 작은 현성이다. 방 화가 딸애를 얼마나 보고싶어하랴 하여 촌마을에서 현성으로 업고 가 사진을 찍어 보내준 것이였다.
천동곡에서 빈털털이로 온 신애네 세식구는 버려진 초막집을 수리하고 들었다. 겨울에 잡아들면서 먹을 것이 없고 아궁이에 넣을 것도 없었다. 늙은이들은 한끼니씩 넘길 수도 있고 조금 추워도 견딜 수도 있으나 신애만은 한끼라도 굶겨서는 안되고 조금이라도 춥게 해서는 안 된다. 영양 실조라도 오면, 감기라도 걸리면 큰 일이다.
김 병국은 날마다 쪽바리차를 끌고 현성에 가 쓰레기통이나 쓰레기 무더기를 뒤지며 페철이나 페지를 주어 팔았다. 그래서 땔나무도 사고 쌀도 샀으며 신애의 먹을 것도 조금씩 샀다. 그러던차 년초 방 화가부쳐온 돈 삼천원을 받았다. 그것이면 세식구가 아끼며 한겨울을 무사히 날 것이라 안도의 숨을 쉬였다. 석탄도 몇톤 사고 쌀도 몇주머니 샀다. 김 병국은 신애와 안해에게 새 겨울옷도 한벌씩 사 입혔다.
3천원을 보태 어려운 고비를 무사히 넘기게 되였는데 달마다 3천원씩 부쳐주니 풍족하게 되였다. 춘절 후엔 병국이 자신도 새 외투를 사입고 세식구가 새옷차림으로 장만이 속옷과 먹거리를 사들고 면회하러 갔었다. 면회하는 날이면 새벽에 당도하여 신청하고 줄을 서야한다. 면회실 크기가 제한 됐으니 륜류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장만이는 콩크리트 바닥에 엎드려 늦어진 세배를 올렸고 두로인은 신애더러 아빠에게 절을 하게 하였다. 면회상에 마주앉자 김 병국은 방 화가 보낸 편지부터 꺼내보였다. 장만이는 신애를 안고 말 없이 눈물만 흘렸다. 신애는 “아빠, 울지마!”를 되뇌이며 고사리 같은 두 손으로 아빠얼굴의 눈물 방울을 깨뜨렸다. 
“울지 말고 힘 내여 일 잘 하고 교육 잘 받고 하루라도 일찍 나오도록 하그라.
애를 보더라도 애에미를 보더라도 몸 성히 나와야 한다. 애에미가 이렇게 도와주니 아무 곤난 없이 살게 됐으니 집 근심은 말그라.”
“아부지, 엄마, 정말 죄송합니다! 꼭 교육 잘 받겠습니다. 지금 낮에는 일 하고
 
저녁엔 공부합니다. 그리구 하나도 힘들지 않구 배불리 먹구 그래요.”
“일은 그냥 목수일이냐?”
“예, 목형공입니다. 기술일이라서 힘들지 않고 깨끗합니다.”
“공부는 무슨 공부요? 이재사.”
“엄마두, 공부라는건 평생 해도 끝이 없습니다. 지금은 기계설계를 배우고 후에는 건축설계도 배우고 그담엔 복장설계도 배우고 주택 장식설계도 배우고 설계라는건 다 배울 생각입니다. 목형공도 설계도를 볼줄 알아야 일 할 수 있는겜다. 아빠 엄마 도웁지 못 해 죄송합니다만 이놈이 공부하러 갔거니 하고 근심 마십시요.”
“알겠다. 그런데 애 먹이거나 못살게 구는 작자들은 없느냐?”
“아부지두, 어느땝니까? 온지 반년 다 됐는데. 아부지 엄마 근심 하실까 말씀은 드리지 않았지만 처음엔 그렇게 까부는 놈 몇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전혀 없어요.”
“싸우지 말그라, 서로 사랑하고 도리로 하고 해결 못 하믄 령도를 찾고.”
“제가 언제 싸움질 합디까? 싸움을 말리면 말렸지요. 아부지 엄마, 근심 마시고 너무 자주 오지도 말아요. 저두 날마다 만나면 좋겠지만 아부지 엄마 힘드시잖아요?”
“힘들거 없다, 농사일도 안 하는데, 시간이 많잖으냐. 너의 일에만 영향이 없다면 날마다라도 오겠다. 령도에서두 자주 와 감정 교류를 많이 하라고 했다. 령도에서 못 만나게 하고 네 일에 지장이 된다면 우리도 참고 기다릴 수 있는게다. 자주 만나자고 우리가 이곳에 이사 온게 아니고 뭐냐?”
“아부재, 부끄러운 부탁이 있습니다. 신애엄마하구 련계 할 수 있으시면 근간에 찍은 사진 한장 있으면 보내달라고 해주겠습니까? 정말 죄송합니다. 이런부탁 다…”
“너 수요되면 내 체면불구하고 편지 쓰마. 설 그때 신애 사진을 부쳐보내주었다. 아마 이미 받았을게다. 그애도 너를 그냥 생각하고 있는게 사실이다.”
방 화가 부치는 돈은 김 병국 가정에 커다란 경제적 지원일 뿐만 아니라 지대한 정신적 지원이였다. 로부부와 장만이는 온 가족이 다시 모일 그날을 바라며 희망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였다. 이것 또한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조금이라도 압력을 덜 수 있기를 바라는 방 화의 마음이였다.
“며늘아가, 너무 체면 없는 부탁이다만 너의 근간 사진 한장 있으믄 보내주렴아. 신애하구 신애아빠 아주 보구싶어 한다. 먼곳에서 일이 바쁠터이니 오라곤 못하고, 갈 수도 없고. 그러니 네가 마음에 내킨다면 애비 개조를 돕는셈 치고…”
시아버님 김 병국의 편지를 받은 날 밤, 방 화는 밤을 새웠다. 자기방에 촬영기를 세워놓고 복장도 바꾸고 화장도 바꾸고 자세도 여러가지로 취해보며 찍고 또 찍었다. 죄 지은 몸일지라도 마음속엔 사랑하는 사람이 있은 법, 제일 아름답고 멋진 모습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회사에서는 신입사원 80명을 B-B공단으로 B동221-230번 침실에 들게 하였고 또 80명을 C-C공단으로 B동 231-240번 침실에 들게 하였다. 그다음 34명은 336-340번 침실에 들었다. 반년전에 모집한 288명에 새로 모집한 194명을 합쳐 순공인 482명이 되였다. 신입사원애들의 기능공 훈련이 끝나자 침실을 조절하고 리 려나, 정 설아, 마 효리등을 새로 온 애들 속에 넣어 여성사업위원이나 부공단장으로
 
안배 하고 선배와 스승의 모범대두 작용을 충분히 발휘하게 하였다. 달마다 산품 5만건-한콘테이너씩 한국에 보내던 것을 이젠 두콘테이너씩 보내게 되였다. 한달에 7백여만원씩 리윤을 올리게 된 것이다.
6월 초순, 방 화는 여 수군부부와 함께 한국 방문길에 올랐다. 신라그룹 회장인 김 상호로인이 상무 상담 명의로 여사장과 비서를 요청 한 것이다. 신라그룹 해외 사업사 중국부부장 최 동길과 기계연구실실장 김 동원이 김 상호회장을 대신하여 인천공항으로 나왔다. 최부장은 지난해 10월 1일에 백주에 왔었고 김 실장은 지난해 11월 말에 조 연방을 데리고 백주를 떠났었다.
김 동원은 여사장부부와 악수를 나눈 후 방 화와 포옹 하였다.
“반가워요, 방비서님!”
“김부장님, 안녕하세요? 조언니도 무사 하시죠? 두분 모두 정말 보고펐어요!”
“우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는 쩍 하면 꿈에서 미스방을 보군합니다.”
김 동원이 운전하는 새하얀 신라표 승용차는 약 두시간을 달려 서울 중구에 우뚝 솟은 신라호텔 문앞에가 멈추었다. 서울은 백주보다 대개 시간반은 일찍 해가 지고 뜨는 곳이다. 호텔에 들어설 때는 이미 하늘이 검어지고 마천루들과 길가에 전등이 켜질 때였다. 최 동길과 김 동원은 여 수군네를 호텔에 들이고 조금 후 김회장님 내외가 저녁식사를 초대 할거라고 알리고는 가버렸다. 저녁행사가 끝난 후 전화를 쳐달라고 김 동원은 명함장을 방 화에게 남기였다.
방 화가 샤워를 방금 끝내고 작은 타월로 몸을 싼채 머리의 물기를 털고 있는데 호텔방의 전화벨이 울렸다. 김 상호회장님께서 10분 좌우 지나면 도착 할 것이니 시간을 맞춰 호텔 0488번 방으로 내려오라는 최 동길의 전화였다. 방 화는 2008번인 건너방 전화번호를 누르고 내려갈 시간을 여 수군부부에게 알렸다. 그들은 삼분을 앞두고 방에서 나와 엘리베이터를 탔다. 주인과 손님의 관계를 떠나서 김 회장은 그들보다 년상이니 년하인 그들이 먼저 도착해 공손히 기다리고 있는 것이 례의에 맞는 것이다. 방 화네가 최 동길이 기다리고 있는 0488번 방에 들어선지 반분도 안 되여 김 상호 로부부가 따라 들어섰다. 큰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시간을 아끼고 지키는 것이 특점이다. 자기의 시간을 허비 하는 것은 자살 하는 것과 같은 것이고 남의 시간을 빼앗는 것은 살인과 같은 것이다. 오래 사느냐 적게 사느냐 하는 것은 시간적 개념인지라 시간은 곧 생명이라는 것을 누구나 다 안다.
서로 악수를 한 후 한메터 너비에 두메터가 넘을 길이의 장방형 상을 사이에 두고 두나라 사람들은 마주 앉았다. 온돌방에 앉을뱅이 상을 놓고 올방자 틀고 앉아 식사를 하는 것이 한국인의 풍속습관이고 쪽걸상이라도 놓고 걸상에 앉아 먹거나 턱 높은 온돌방에 걸터앉아 먹는 것이 중국인의 습관이다. 중국인은 다리 틀고 앉는 것을 불편해한다. 한국인도 젊은 세대들은 올방자 틀고 앉는 것을 버리고 있다. 어려서부터 올방자 틀고 앉는 습관을 하면 두다리가 “O”형으로 되여버려 미관에 영향이 있게 된다는 것이다. 하여 고급이다 싶은 음식점에 들어가 앉을뱅이 밥상을
마주하고 앉아보면 상밑을 움푹하게 파놓았다. 늙은이들은 다리를 토시고 앉을 수 있고 여성이나 젊은이들은 구덩이에 아래다리를 심고 앉을 수 있게 만든 것이다. 김
 
상호회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리를 세우고 앉았다. 그래서인지 올방자를 틀고 앉은 김회장의 모습이 제일로 위풍이 있어보였다.
“오시느라 수고들 했수. 업무상담은 래일 오전에 해버리고 열흘간 구경도 하고 푹 쉬고들 가시우. 스케즐은 동길이 이애가 잡을거유. 뭐든 요구가 있으면 이애한테 말하시우. 동관공장에 있는 곤난이라든가, 한국에 체류하는 기간 뭘 어떻게 하고 싶다든가, 뭐든 상관 없수. 우리는 오랜 친구이니 사양 할 것이 뭐가 있겠수?”
김 상호가 말하는 구경이란 신라그룹의 여러 공장들을 돌아보는 것과 명승지와 관광지를 도는 것이다. 업무상담은 동관회사의 두개 흐름선중 하나를 새로운 산품을 생산 할 수 있도록 전환시키는 일을 토의 하는 것이다.
“감사합니다! 김회장님의 관심으로 우리 공장은 정상적인 궤도에 들어섰습니다. 어떠한 새로운 산품을 주던 원산품 산량을 유지하면서 받아넘길 수 있게 됐습니다. 새 산품은 곧 기업의 생명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김 회장님께서 우리에게 새 산품을 맡긴다는 것은 우리들을 그만큼 믿어주고 관심 하여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기대에 어긋남이 없이 우리는 잘 받아안을 정신적 준비가 되여 있습니다. 그리고 두분께서 건강이 여전하시니 기쁨니다. 작은 성의지만 이걸…”
여 수군은 말을하며 쇼핑빽에서 작으나 정교한 지함 두개를 꺼내여 김 상호에게 건늬였다. 김 상호는 두손으로 정중히 받아 오른켠에 앉은 안해에게 넘겼다.
“고맙수, 뭐 이렇게까지야.”
“아-니- 이렇게 귀중한 물건을! 포장도 너무나 아름다워요. 정말 감사합니다!”
김 상호의 안해 안 순희도 앉은대로 머리를 숙이며 사례하였다.
여 수군이 넘겨준 례물은 방 화가 백주로 처음 올 때 가져왔던 리화촌 박 동규가 여 수군부부에게 선물 한 백두산 록용 두뿔과 산삼 두뿌리였다. 몇만원씩 하는 이런 물건은 약용가치 뿐만 아니라 관상과 수집보관 가치가 상당하다. 거실의 진렬장에 이런 명물을 척 올려놓으면 주인의 품위가 한층 더 올라가게된다. 여 수군 자신도 이런 명품을 집에 두고 싶지만 김 상호 로부부에게 선물 할만한 것이 없기에 방법 없이 가져온 것이다. 부자이고 년세 높은 사람에게는 딱 맞는 선물이였다.
저녁을 먹고 침실에 돌아온 후 오 경경은 방 화와 함께 밤거리 구경을 나가자고 전화를 쳐 왔다. 헌데 김 동원과의 약속대로 행사가 끝났다고 전화를 쳤더니 곧바로 호텔로 올거라며 기다리라는 것이라 밤거리 구경은 뒤로 미루고 말았다.
잠시 후 김 동원이 안해와 함께 방 화의 방에 들어섰다. 그들은 호텔과 한구역인 멀리 떨어지지 않은 신라 아빠트에서 살고 있었다. 임신한지 반년인 조 연방의 배는 확연하게 불룩 하였다. 방 화와 조 연방은 오래도록 말 없이 껴안고만 있었다. 말 보다도 더욱 열렬한 감정이 오가고 있는 것이였다. 그들은 건너방으로 갔다.
“여 사장님, 사모님, 안녕하셨어요? 만나게 되여 정말 기쁨니다.”
“쑈초오, 잘 보내고 있었소? 반갑구만.”
“연방이 몸이 무거운데 오기는, 쯧쯧쯧… 기색이 좋구만, 여기에 앉소.”
오 경경은 조 연방의 손을 잡아끌며 침대가를 다독였다.
“김부장도 앉소, 다 앉으라구.”
 
여 수군도 손님들에게 자리를 권하느라고 야단이였다.
“아니얘요, 앉지말고 다 함께 거리에 나갑시다. 이제 외지로 나가시면 언제
만날지도 몰라요. 저의 집에 가 커피라도 마시구요.”
조 연방은 오 경경의 손을 끌고 김 동원은 여 수군의 팔을 잡아 끌었다.
“마침 밤거리 구경 나가고 싶었던 참이였는데 그러지 뭐. 근데 몸이 무거워 갖고 괜찮겠소? 우리 때문에 무리 해선 안되요.”
오 경경은 적극 따라나섰다. 여 수군은 방법 없이 뒤를 따랐다. 남자들이란 원래 맥이나 빼고 헛돈이나 팔고 하는 시내 돌이를 썩 즐기지 않는다. 언제나 형세를 못 이겨 안해의 짐군으로 따라서기가 일수이다. 오 경경이로 놓고말하면 업무상담이나 고찰 같은건 전혀 모르는 일이고 관광이나 유람에 대해서도 그럭저럭이다. 그가 남편을 따라 한국까지 온 것은 다름이 아닌 쑈핑을 위해서이다. 하기에 딸라만도 5만루불을 넣고 왔고 갖고 싶은 것을 기껏 사볼 예정이다. 길지 않은 시간에 남편의 행사에 끌려 다니다보면 자기가 하고픈 일을 다 할 수 없을것 같아 그는 첫날밤부터 거리로 나가자고 방 화에게 전화를 쳤던 것이다. 거리로 나간다해도 방 화가 인도 해주고 통역 해줘야지 그렇찮으면 촌보난행일 것이 뻔연하다.
“적당히 운동해야 한다고들 합디다. 방금 집에서 오는 것도 걸어왔는걸요. 어서 가요, 오늘 사모님 통역은 제가 맡겠습니다. 방 화씬 사장님을 맡아요,호호호…”
엘리베이터에서 일층 대청으로 나서니 흥쾌한 풍악소리가 은은히 들려왔다. 
신라호텔 일층 대청과 신라그룹 청사 일층 대청 그리고 신라마켓 일층 대청은 “ㄷ”자로 사이문도 없이 련결돼 있었다. 호텔은 동쪽으로 향하고 신라그룹 청사는 남향작이고 쇼핑마켓은 서쪽으로 돌아앉아 있었다. 북쪽면인 “ㄷ”자의 빈 자리에 김 동원네가 사는 아파트 앞으로 네채의 고층 아파트가 나란히 세워졌다. 그러니 그들의 “밤거리 구경”이란 신라집단 구역을 한바퀴 돌면 끝나는 것이다.
“저기에선 왜 나팔을 불고 북장단을 치는거지?”
오 경경은 조 연방의 팔을 끼고 풍악소리가 울리는 방향으로 걸으며 물었다.
“조금 가 보시면 알겁니다.‘만국 문화예술쇼’라는 것인데요, 만개국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고 아마 열개국은 될겁니다. 우리 중국에서 보면 명절이나 기념일이면 거리나 광장에서 양걸춤을 추고 사자춤을 추고 잡기도 하고 그러잖습니까? 형식은 그와 같겠는데 종목이 많으니 아마 만국이란 말을 부친것 같아요. 한달에 한두번씩 저래요. 오늘은 충혼절이란 것인데 국정 휴일이랍니다. 그래서 오늘밤 저렇게 떠드는것 같아요. 명절이 아니래도 한국에선 늦게자고 늦게 깨여나요. 금방 왔을 때 그것이 습관되지 않아 고생 했어요. 우리고장에서는 밤 아홉시만 되면 거리가 조용 하잖아요? 여기에선 새벽 두시 세시가 되여도 거리에 사람들이 북적거려요. 누가 말 했던지, 그래서 중국에는 인구가 많이 는대요. 호호호… 반년간 중국말을 안하다가 하니 흥 나네요. 사모님, 여 빈이 그애는 공부 잘 하고 있죠?”
“당금 필업이요. 실습을 끝내고 지금 론문을 쓴다고하데.”
이야기를 나누며 천천히 걸어 남단에 와 오른쪽 신라그룹청사 대청으로 들어섰다. 대청의 앞면은 유리벽이고 뒷면은 아름드리 대리석 기둥들로 30층되는 높은 청사를
 
 
받들고 섰다. 기둥 밖 주택구 남쪽은 로천 놀이터 광장이였다. 남쪽 유리벽 밖의 중심에 층계가 있어 신라그룹 사무청사 이층으로 직접 오르내리게 되여 있었다.
“만국 문화예술쇼”는 청사 일층 대청과 로천놀이터 광장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꽹과리와 북 관악장단에 맞춰 한쌍의 큰 사자가 날뛰고 있고 경극 복장을 하고 칼과 창을 휘두르는 관 우와 리 규가 있는가하면 치마저고리 두루마기에 탈을 쓰고 팔을 휙휙 저으며 돌아가는 탈춤군들도 있었다. 이동하는 무대위에서 검은 피부색의 남녀들이 쌈바인지 댄스인지 쌍쌍이 각이있게 돌아가고 차머리 높은 곳에는 세점만 막은 고운 여자가 자기 허리보담도 더 실팍한 구렁이를 전신에 칭칭 감고 서서 손을 흔든다. 한점만 가리운 성성이 같이 검은 남자가 불방망이를 휘두르다가는 이따금씩 입으로 불길을 길게 내뿜곤 하는데 그뒤로는 풀잎으로 한점이나 세점을 감춘 검붉은 색 피부의 사람들이 대나무창과 같은 것을 아래 위로 흔들며 두발 뜀질로 따라온다. 모자위에 달린 길다란 끈나풀을 머리를 저어 돌리며 나아가는데 그뒤엔 두루마기를 입고 등거리에 베개를 진 여인들이 꽃양산을 돌리며 게다를 딸깍거리며 따라간다. 쇼대오의 좌우에서 영국 왕실의 경호원처럼 차려입은 희멀쑥한 남자들이 백마를 타고 세발을 나갔다간 두발을 들어오고하며 자기네 굿놀이 마당을 지켜주고 있었다.
방 화는 붐비는 인파 속에서 헤여질까봐 한팔로는 여 수군의 팔을 끼고 다른 한 팔로는 김 동원의 팔을 끼고 조 연방과 오 경경의 뒤를 바싹 따랐다. 삼십여분 만에 서쪽 쇼핑마켓청사로 왔다. 일층은 식품 매장이였고 이층은 화장품 매장이였고 금은 보석 장신구 매장, 가전제품 매장, 컴퓨터 전자제품 매장, 패션 매장, 신발 매장, 문방구 매장등등 층층이 배치되여 있었는데 하나하나 다 돌아 볼 수 없는 것이라 화장품을 조금 구경하고 의복 몇개를 만져보고 아무것도 사지 못한채 내려와 보니 어느사이 두시간이나 흘러갔다. 진렬된 물건이 하도 많으니 무엇을 봤으면 좋을지, 사고 싶은 것도 너무 많으니 정작 무엇을 샀으면 좋을지 몰라 오 경경은 빈손으로 자리를 떠버린 것이다. 자기를 위해 헛 시간을 파는 사람들께 민망하기도 하였다.
백이십평방메터 되는 아파트는 김 동원이 결혼하기 삼년전에 회사에서 싼 값으로 분양받은 것이였다. 거실도 크고 침실도 세칸이나 되였다.
“쵸제야, 애기 빨리 낳고 하나 더 낳아야겠어요. 침실이 너무 많잖아요.”
“아니요, 한번에 둘을 낳고 시름놓을걸요. 호호호…”
“녜?! 정말요? 김부장님, 참말인가요?”
“뭐가요? 방부장님.”
“우리 언니 쌍둥이 가졌어요?”
“글쎄요, 그런가 봅니다. 이걸 봐요.”
김 동원은 책장에서 노트 하나를 내려 방 화에게 주었다. 두꺼운 가오리를 번져 보니 첫장에 “방화일기”라고 한국글로 크게 쓰고 아래에 부부의 이름을 썼다.
“형부, 이거 뭐얘요? 임자의 허락도 없이 이렇게 가져가면 안되죠.”
“언니는 애기 낳으면 김 방화로 이름 지을거라 처제를 알게 된 그때부터 나하구 말도 못 걸어본 처지에 혼자 생각 했답니다. 딸애를 낳으면 꽃 화자를 쓰고 아들을
 
낳으면 빛날 화자를 쓴다고요. 처제가 아니면 우린 서로 마음 뿐이지 짧은 시간에
성사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린애가 처제처럼 이쁘고 똑똑하고 마음씨 곱기를 바라는것 뿐이죠. 부산과 진단에 따르면 언니는 남녀 쌍둥이를 가졌다네요.
네모 방자에 꽃 화자와 빛날 화자를 다 쓰게 되였습니다. 한국 이름으로는 남매가 모두 같은 방화가 되지요. 처제씨 생각엔 어떻습니까? 지지 하죠?”
김 동원은 원래 롱담 할 줄을 모른다. 그의 진지한 태도에 방 화는 말문이 막혔다. 일기책을 한장 더 번지니 몇달전 임신임을 알았을 때의 감상을 썼고 몇장 더 번지니 근간에 초성파 촬영을 한 태아의 사진이 붙혀져 있었다.
조 연방은 쟁반에 김이 몰몰 피는 커피잔을 담아들고 주방에서 나왔다. 방 화는 초성파 사진을 오 경경에게 보이였다.
“숙모님, 맞춰봐요. 남자애인가요, 여자애인가요?”
“내가 그걸 어떻게 알고? 오ㅡ 남자애이겠지 뭐.”
“50%밖에 못 맞혔어요. 호호호…”
“엉? 50%라니? 쌍둥이요? 쑈초오, 참말이요?”
“녜, 산부인과의 진단에 의하면 그렇다고 하는데 그때 봐야 알죠.”
“축하 하오! 정말로 대단한 희사구만!”
방 화와 김 동원이 나누는 이야기는 한국어이다 보니 오 경경은 알아들을 수 없었던 것이다. 국제결혼이 그들이 사랑하는 남녀가 아름다운 결실을 맺고 있음을 보았을 때 그들은 기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튿날 오전 신라그룹 사무청사 해외사업사 회객실에서 상담이 있었다. 방 화와 여 수군이 참가했고 본사에선 최 동길부장과 김 동원실장이 참가하였다. 김 동원은 동관에서는 부장이였으나 본사에 와선 한급 아래인 실장직에 있었다. 실장직이라고 해도 그같이 큰 그룹에서 놓고보면 대단한 직위로 된다. 상담은 너무도 간단하였다. 량측에서 준비공작을 한 후 7월 1일 김 동원이 새제품 생산기술을 지니고 기술일군 둘과 함께 중국에 건너와 흐름선 하나를 조절하고 두달 사이에 실험생산까지 완성 하기로 결정지었다. 7월 1일 김 동원이 동관에 도착 하는 날 동관 신라신회사에서는 30명의 처녀애들을 본사에 와 진수하도록 한국으로 떠나 보내게 된다.
그들의 상담은 두시간도 안 걸려 끝났다. 협의서에다 싸인 한다든가 그런 절차도 필요 없었다. 계획서 같은 것을 작성하여 나누어 가지고 집행하면 그만이였다. 쌍방 모두가 공동 계획을 집행하지 않을리가 없도록 되여 있었다.
그들은 점심을 함께 먹고 한승용차에 앉아 서울시내의 몇개 공장을 돌아보았다.
한국의 공장들은 동관의 공장에 비해 말 할 수 없이 비좁았으나 매우 질서 정연하고 깨끗했으며 사원들의 작업 열정도 드높았다. 사람들이라야 몇십메터 되는 흐름선에 두셋 뿐이다. 여 수군네 공장의 흐름선엔 애들이 줄지어 앉아 분주히 손을 놀려야 하는데 이들의 생산 흐름선은 모두가 기계손이 움직이며 일을 하고 몇몇 사람이 기계손들을 감시하고 있을 뿐이였다. 중국에로 건너오는 칼도마만한 주회로판을 만드는 것도 쌀알 만한 라사못을 깎는 것도 또 신라표 승용차를 조립하는 것도 죄다 로봇트 자동화 공작 흐름선이였다. 로봇트 자동화 공작 흐름선과 인공 수동화 공작
 
흐름선, 이같이 두나라의 흐름선은 완전히 다른 생산 시스탬이다.
인공화 생산 시스탬을 새 제품 생산 시스탬으로 전환하는 것이 로봇트 시스탬을 뜯어고치고 버리고 바꾸는 것보다 훨씬 쉽고 싸고 빠르고 더욱 효과적이라는 것은
불보듯 뻔한 짓이다. 이러한 원인으로 말미암아 신라그룹 본사에선 새 제품 생산을 동관분사의 흐름선에 투입시키는 것이였다. 여 수군네를 놓고 말하면 생산 시스탬 전환의 기술이나 비용따위는 본사에서 책임지는 것이고 새 제품 생산을 받아안으면 자기회사의 발전에 유익한 것이므로 달갑게 접수하는 것이다.
오 경경은 하루종일 조 연방의 배동하에 신라 쇼핑마켓을 깐깐히 누비였다.
이튿날 여 수군네는 여전히 최 동길과 김 동원의 인도하는대로 지방을 돌면서 지사와 분공장들을 참관 하였으며 신라건설의 시공현장에도 가보았다. 옛날엔 이런 것을 말타고 꽃구경이라 했었는데 현대에는 차타고 꽃구경이라 일컷는다. 옛날엔 차가 없고 말이 많았으며 지금은 말이 없고 차가 많다. 이제 멀잖은 장래엔 비행기 타고 꽃구경 다니고 로게트 타고 별구경 다닐 것으로 과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그들은 한국의 많은 명승 고적들을 돌아보았다. 또 제주도 관광도 하고 판문점 참관도 하였다. 세인들의 공동한 념원과 같이 지구상에 유일한 분단국인 조선반도의 통일을 그들도 두손 모아 충심으로 기원하였다.
신라그룹 김 상호회장은 그들이 귀국 할 때 신라표 자동형 승용차 두대를 선물 하였다. 검은색과 흰색, 한쌍의 승용차는 여 수군이 김 상호에게 증정한 인삼록용에 비기면 딱 열배의 가격인데 입국하면 해관세가 붙기에 스무배로 늘어난다. 신라그룹 동관 분사에서 자체로 사용하는 자기본사의 산품이니 해관세도 내지 않고 들여 올 수 있었다. 오랜 친구인 여 수군에게 한대만 선물하여도 무방한 일이지만 비서겸 통역이고 동관 회사의 부장급 간부이며 동행자인 방 화를 전혀 모르는척 한다는 것도 말이 안된다. 뿐더러 김 상호는 방 화를 처음 보았을 때 벌써 마음에 들었고 곁에 두고 싶었었다. 그때 김 상호 밑으로 왔더면 지금쯤 방 화는 승용차 한대가 아니라 훌륭한 아빠트도 가졌을 것이고 없는것 없이 잘 살고 있을 것이다. 방 화는 이런 것을 알지만 의리를 알기에 자기를 춰세워준 여 수군의 곁을 떠나지 않았었다.
전후 시말이 어떠하던 인삼록용이 선두작용을 한 것이니 박 동규를 잊어서는 안된다고 방 화와 여 수군부부는 생각하고 있었다.
방 화는 시내로 갈 때면 새하얀 새 신라표 승용차를 몰고 다녔다. 중국 자동차 시장에서 백여만원씩 하는 고급 승용차이다. 방 화는 그것을 팔아 륙 학명의 빚도   갚고 신애 할아버지한테 집을 사라고 부쳐주고 싶었으나 그차는 해관세를 내지않고 외자기업 전문용으로 입국한 것이기에 매매 할 수가 없게 되여 있었다. 차의 주인은 방 화로 되여있으나 사용권만 있고 양도권이나 매매권이 없다는 정책이다. 위반하면 벌금하고 몰수 당한다. 요즘은 여 빈이가 그차를 몰고 다닌다. 류학 나가기 전까지 사용 하라고 빌려준 것이다. 여 수군도 낡은 차를 처리하고 새 차를 몰고 다녔다.
김 동원은 생산 흐름선 개조 공정을 원만히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안해의 해산 날자가 코앞에 다가오므로 그는 더 없이 조급하였다. 그사이 방 화는 한국에 네번을 갔다왔다. 처음엔 진수생 애들을 데리고 가서 본사에 맡기고 왔고 한달에
 
한번씩 두번을 애들의 정황을 보러 갔다왔다. 이번엔 김 동원이 일을 끝내고 돌아갈 때 함께 나가 애들을 데려왔다. 조 연방의 배는 당금 터져버릴 듯 불어나 있었다.
“언니, 출산하는걸 꼭 보고 갔으면 좋으련만 공가의 일로 다니다 보니 할 수
없군요. 출산시 절대 겁 먹지 말고 힘 내요. 출산 후 인츰 전화 해줘요.”
조 연방의 해산일이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으나 방 화는 애기옷 두벌을 사 두고 진수를 마친 처녀애들과 함께 돌아와야 했다. 양 정정이랑 마 효리랑 적잖은 애들이 조 연방이를 찾아가 보았고 조 연방의 큰 배를 흠모하며 만져보았다.
“조부장님, 우리 조카 태여나면 인츰 사진 찍어 보내 줘요.”
정 설아가 한 말이다.
“아기보모 쓰실라면 절 불러요. 저 아기 잘 봐요. 밥이나 빨래도 잘하고요.”
리 려나가 한 말이다.
“초졔, 한국실랑 하나 소개 해줘요. 나도 언니처럼 아기 갖고 싶어요.”
양 정정도 인젠 스물 네살이다. 중국농촌에서 이만하면 로처녀로 불리운다.
한국에서 석달간 진수를 마치고 돌아온 처녀애들은 새 산품 흐름선에 배치되여 솜씨를 피웠다. 원래 각 방면의 선진자로 선출하여 한국에 갔다 온 그애들은 석달간 돈도 만원씩 벌었고 새 흐름선의 조작기술만 배운 것이 아니라 로동기률과 자각성 능동성을 키워 회사의 골간력량으로 되였다. 정정이는 여전히 A공단의 여성위원겸 부공단장이고 려나가 B공단의 여성위원으로 되였으며 마 효리가 새 산품 흐름선 C공단의 여성위원겸 부공단장으로 되였다. D공단의 여성위원으로는 정 설아가 배치되였다. 이러한 애들이 자기 자체로 모든 일들을 척척 해 나가니 방 화는 많은
정력을 덜게 되였고 남은 정력으로 새로운 일을 할 수 있게 되였다.
그사이 여 빈이는 미국으로 류학 갔고 조 송자도 미국에 가 결혼식을 하고 대련 별장에서 배속의 새생명을 키우고 있었다. 어느덧 그녀가 칼.젬스 이세를 가진지도 여덟달이 다 되였다.
서시장의 복장매대는 해연이가 둘다 가졌고 영미라고 부르는 처녀애를 고용하고 있었다. 그녀도 직원 한명을 둔 사장으로 된 것이다. 매대에 선 덕에 해연이는 몇달 사이 체중이 10키로나 줄고 송자는 배가 불면서 체중이 10키로나 올라 그들 둘은 바라던대로 한근도 차이 없이 120근으로 되였다.
해연이는 송자가 떠나자 둘이 함께 쓰던 500원짜리 세방을 내놓고 벽돌공장 부근의 100원짜리 단칸 온돌방을 세 맡았다. 그리곤 칠월에는 아들애를 친정어머니 손에서 데려다 공원소학교에 부쳤다. 애의 상하학과 에미의 출퇴근을 월표로 뻐스에 함께 할 수 있어 편리하고 안전 하였다. 세방에 남자손이 필요하면 남북무역공사 김 현철사장한테 전화를 쳐 도움을 청하곤 하였다. 뿐만아니라 외지의 복장을 구입 해오는 일 같은건 김 현철이 회사원들을 시켜 무상으로 해주곤 하였다.
김 현철은 해연에게 아무런 요구도 없었다. 자기가 고와 하는 여자가 행복하게 잘 살아가기만을 바랄 뿐이였다. 하기에 도움을 아끼지 않았고 여자가 수요되는 술 장소가 있으면 해연이가 자기 김 현철의 돈이라도 벌도록 우선으로 부르곤 하였었다. 해연이가 매대를 사고 직업을 바꾼 후로는 그런 일에 한번도 부르지 않았다. 하루
 
종일 장사하느라고 피로 했을 해연이를 저녁일에 부를 수 없다는 것을 김 현철은 잘 알고 있었다. 해연이는 그런 현철이가 좋았고 사랑하고 있었다. 나이 차이는 너무나 많았지만 마음은 차이가 없었다. 해연이는 직업을 바꾼 후로 현철이가 주는 모든
돈을 거부하였다. 해연이는 현철이한테 자기도 돈밖에 모르는 그런 여자가 아니라 여자다운 여자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해연이는 련정의 번뇌에 모지름을 썼다. 자기의 일체를 현철이한테 들붓고 싶었으나 사모님한테 미안한 일이였다…
조 송자는 미국에 가 석달간 체류하고 대련으로 온지 두달이 되였다. 대련으로 젬스가 일보러 오면서 함께 건너와 젬스 아버지가 사놓은 로호탄 해변가 별장에서 보내고 있다. 별장에는 집을 지키며 정원을 가꾸는 아저씨 한분이 있었다. 송자는 가정 도우미아줌마 한분을 구해달라고 해연이한테 전화를 쳤다.
송자는 시내로 나갈 일이 있으면 어느때든 회사에 전화를 쳐 승용차를 부르게 돼 있었다. 헌데 두달 사이 한번도 부르지 않았다. 나갈 일이라곤 없었던 것이다. 그는 양산 밑 그늘에서 바닷물에 발을 잠구고 앉아 책을 읽거나 서재에서 컴퓨터를 자습하였고 저녁이면 텔레비죤을 보든가 남편 젬스와 컴퓨터 통화를 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결혼 한 후 남편의 취향을 맞추기 위해 경제학 리론에 관한 큰 책들을 꾸준히 읽고 있었다.
젬스의 부친은 세계에 유명한 뉴욕 KD(kin.dle) 투자증권 금융집단의 총재이고 송자보담 두살 위인 젬스는 중국분사의 사장이였다. 영업소는 대련과 백주 그리고 상해에 있고 총부도 상해에 있었다. 하기에 젬스는 대부분 시간을 상해에서 보냈다.
송자는 상해의 기온이 나쁘다고 여름을 대련에서 홀로 보낸 것이다. 12월 초면 임신
열달이다. 제일 추운 겨울이면 상해나 백주에 가 보내며 거기에서 몸 풀 예정이다. 백주 영성호텔 나이트클럽에서 한번 만난적이 있는 강 룡은 무슨 곤난이나 수요되는 것이 없는가고 여러번 문안전화가 왔었다. 강 룡이가 대련영업부의 부장이였다.
10월말, 젬스는 송자를 데리러 대련으로 왔다. 일주일간 주요 관계호의 대표도 만나보고 영업소의 업무처리를 한 후 백주로 날아갈 예정이다. 때를 맞추어 송자의 어머니와 보모가 대련에 와 있었다. 그도 백주로 함께 가 딸의 해산 전 후의 거동을 돌보기로 한 것이다. 상해 총부에서 일하던 최 뢰가 백주영업부의 부장으로 되였다. 최 뢰는 젬스의 지시대로 백주 부자촌에 호화단독주택 하나를 사놓았다.
송자네가 백주로 떠나기 전날 저녁 별장에는 고귀한 부부손님이 과일바구니를 들고 팔을 끼고 찾아왔다. 이층에서 밤화장을 하고 있던 송자는 남편의 전화를 받고 손님 만나러 내려오게 되였다. 나무 층층계를 따라 천천히 거실로 내려오던 송자는 너무나도 놀란 나머지 까무라치고 말번 하였다. 젬스네를 방문 온 사람은 뜻밖에도 동팔이네 부부였던 것이다. 송자를 알아본 김 동팔이도 뒤로 나자빠질뻔 하였다. 송자는 층층계의 중턱에 멈추어 섰다. 계속 내리 걸을 것인가 돌아서서 올라가 버릴 것인가 하는 생각을 잠깐 한 것이다. 젬스가 “어서와요!”를 웨쳤다. 송자는 다시 내리 걸었다. 젬스가 다가와 송자를 부축하며 김 경팔이네 부부를 소개 하였다. 송자는 젬스의 손을 물리치고 곧게 동팔이네 부부 앞으로 걸어갔다. 그는 층층계를 내릴 때부터 차탁위에 놓여있는 과일바구니를 보았던 것이다. 송자는 열몇근 되는
 
과일바구니를 번쩍들어 동팔이의 면상을 향해 냅다 뿌렸다. 동팔이는 과일바구니가 얼굴에 와 닿기전에 질겁하여 뒤로 벌렁 나 자빠졌고 과일 바구니는 그의 면상에가 떨어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돌발적인 사태에 누구도 행방을 찾지 못하였다.
“나갔! 개자식! 배신자! 여기가 누구네 집인지나 알아보고 올 것이지, 죽고 싶어 바라왔어?! 이 똥파리보담도 못한 놈아!”
송자가 조선말로 소리질렀기에 젬스는 알아듣지 못하였다. 동팔이의 안해가 코피 흘리는 남편을 부축하고 “미쳤어요, 빨리 피해요!”를 되뇌이며 나가버렸다. 젬스가 다가와 안해를 껴안았다.
“송자씨, 진정해요.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제발 진정해요.”
“미안해요, 젬스씨! 당신을 보고 찾아온 손님인데 내가 너무 했군요. 동팔이는 칠년전 대학교 때 나의 련인이였어요. 나의 순진한 감정을 짓밟고 저 여자와 결혼 했어요. 산골 여자애라고 깔보고 갖고 논거지요. 나는 그 충격에 공부도 못 했고 일자리도 못 가지게 되였어요. 인생의 기로와 낭떨어지에서 허덕일 때 방 화언니가 나타나 길을 가르켜 줬고 당신이 나타나 절 구원 해주었어요. 언녕 잊었는데 이렇게 만나다니요, 나는 자제력을 잃었어요. 죽이고 싶었어요…”
“알았어요, 당신을 배신하고 사랑을 배신한 놈 나쁜놈입니다. 앞으로는 다시 래왕하지 맙시다. SD에서 백만딸러 대출 받으려고 보고서가 왔던데 ‘NO’로…”
젬스는 핸드폰을 눌러 귀에다 대였다.
“강 룡? 젬스입니다. SD의 백만딸러 대출은 좀 더 고려 해봐야겠습니다.”
“그럼요, 그들은 아직 50만 딸러를 채 갚지 않았습니다. 우리돈으로 우리돈을
갚자는 심산이죠. 기한 내에 갚으면 다시 100만딸러를 대출 줄까 고려 중입니다.”
“속한 기일내로 그들의 돈을 거두어 들이시오. 시간이 된 것이라면 재산이라도 차압하고 경매에 넘기시오. 우리네 돈은 신용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주어야합니다.”
강 룡과 젬스는 68년도에 출생한 동갑내기였다. 수백명 중국 직원 중에서 서로 호흡이 제일 잘 통하는 친구이다. 다음으로는 그들보담 두살 아래인 최 뢰이다.
동팔이는 SD 대련분사 상무리사였다. 동팔이의 장인은 사장이란 이름만 가지고 나앉아 논지가 오래다. 결국 동팔이는 50만 딸러를 제때에 돌리지 못해 회사를 말아먹고 안해를 따라 한국으로 갔다. 한국에 어떤 운명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한개 배신자, 불신용자의 결말을 잘 보여주고 떠나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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