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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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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감 형
2013년 04월 22일 09시 25분  조회:1667  추천:0  작성자: 김재진

 21.  감     형


세월은 류수와 같느니라 하더니 또 한해가 흘러갔다. 2002년 춘절이 다가온다.
전해보담 순 리윤 이천만원을 더 올렸다. 전해엔 밤일을 반년밖에 못했었으나 이천공 일년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곱대거리 생산을 하였기에 산량이 전해보다 30%나 제고 되였고 새제품의 가격도 원제품보다 10%나 더 높았던 것이다. 하여 공인들의 장려금은 전해보다 30% 제고 되였고 주주들의 분홍도 30% 늘어났다. 하지만 방 화는 200만원밖에 타지 못했다. 전해보다 30% 적어진 것이다.
주주들의 분홍 할 돈에서 2천만원을 떼여 부동산에 투자하기로 여 수군이 제기 하였고 동사회에서 통과 되였다. 왕 한빈이 건설부 부장으로 임명되였고 방 화의 소개로 로 길봉을 건설부 재무과 과장으로 채용 하였다. 왕 한빈이 하던 공회주석은 방 화가 겸하고 대외련락부 부장일은 공응판매부 양 광재부장이 겸하기로 하였다.
방 화에게 이백만원을 주고 동관구락부를 회사에서 접수하기로 하였다. 방 화는 구락부에 백만원을 투자 하였었다. 여사장의 제의가 아니고 회사에서 접수하는 것이 아니라면 방 화는 적어도 삼백만원을 받든가 세를 주든가 하고 싶은데 여 수군이 이백만원으로 정하니 더 말 할 수가 없었다. 여 수군은 방 화가 애까지 데리고 너무 고생 한다고 돌봐주느라고 한 짓이였다.
회사에서 접수 한 후 길봉이 대신 려나와 공 만석을 들여보냈다. 해연의 로임을 5천원으로 정하고 리 영섭과 공 만석, 리 려나의 로임을 각각 이천 오백원으로 정하였다. 려나는 부경리겸 회계였던 것이다. 리 영섭이 전기절약 아이디어는 매달 천여원씩 절약 할 수 있다는 것이 이미 실증 되여 구락부가 회사로 넘어가기전에 만원의 장려금을 발급 하기로 방 화가 결정 지었었다. 방 화는 첫달 전기료금표와 그 후 두달의 전기료금표를 가지고 여 수군을 찾아가 사실을 회보하고 이미 결정 한 것이니 집행 해주기를 청구했다. 여 수군도 아무런 의견이 없었다.
로 길봉의 로임도 5천원으로 되였다. 회사에서 여럿이 건설부로 건너가 직무를 맡았다. 인사안배와 자금조절은 회사에서 통일적으로 하고 단위마다 단독 경영하고 단독 핵산하게 된다. 방 화가 독단하던 구락부도 인젠 여 수군과 동사회의 직접적인 령도하에 여성사업부부장이고 공회주석이며 사무실주임인 방 화가 분관 하게 된다.
부동산 기금 이천만원중 이백만을 내고 구락부를 샀고 천만원을 주고 땅을 샀다. 회사 울안에도 집을 짓자면 자리가 많으나 개발구 정책상에 공업단지 내엔 주택을 못 짓게 되여 있었다. 낡은 주민구 서북쪽 작은 산등성이 앞에 찌그러져가는 초갓집 몇채가 산을 등지고 앉았다. 회사에선 초막집과 산등성이를 사고 “왕관화원”이라 이름 지었다. 길이 천메터에 너비 사백메터라 40만 평방메터나 된다.
젊은이들이 모두 공업단지에 들어가 일하고 농경지도 묵어나는 시기라 땅 값이

제일 눅은 때이다. 여 수군은 경영자의 시력으로 이기회를 보아낸 것이다. 하기에 제일 먼저 제일 눅은 값으로 제일 좋은 자리에 제일 큰 땅을 산 것이다.
농경지는 묵어 있더라도 건축용지로 쓰지 못하게 규정되여 있었다.
성시들에서는 부동산업이 마른 쑥대밭의 불길처럼 타번진지가 오래고 이미 재만 남은 곳도 많지만 농촌들은 마른쑥대밭 그대로 잠잠하다. 이같이 큰나큰 공업단지를 세우는 농촌이 그냥 잠자고만 있을리가 없다. 여 수군은 방 화가 구락부를 사고 남녀 청년들을 마주 세우는 일에서 추동을 받았다. 마주선 남녀는 잠자리가 있어야 한다. 그냥 회사 숙사에서 갈라져 살 수는 없다. 자기네 회사만 보더라도 5백가구가 생길것이고 5백가구가 살려면 큰 층집 다섯동은 지어야 한다.
건설부에서는 대형 해방패트럭 석대를 사고 불도젤 두대, 굴착기 두대, 승강기 두대, 미끼샤 두대를 샀다. 로무시장에 가서 건축 일군 백명을 모집 해왔다. 벽돌과 기와, 철근과 세멘트, 모래와 자갈을 실어 들이기 시작하고 불도젤로 바닥을 밀었다. 제일 먼저 직공 숙사와 식당, 야외화장실을 지었고 그다음 사무실과 창고를 지었다.
첫해인 이천공 이년엔 백가구가 입주 할 종합청사 한채를 짓기로 결정 하였다. 한가구를 평균 백평방메터씩 치고 백가구면 만평방메터이고 한평방메터의 성본을 천원으로 친다면 천만원이 있어야 한다. 장비를 사고 작업복과 안전모까지 사고나니 부동산기금 6백 50만원이 남았다. 쉽게 쳐도 3백 50만원이 부족 한지라 회사내의 직공들 중에서 한평방메터당 천원 표준으로 집금 하기로 결정 되였다.
방 화는 일층 영업집을 가지려고 40만원을 집금하였다. 영업집은 한채에 2백 평방메터이고 한평방메터에 2천원씩이였다. 집금에 참가하려는 직공이 넘쳐나기에 한직공이 한집씩밖에 할 수 없도록 규정 지었다. 방 화는 해연이와 길봉의 이름으로 20만원을 냈고 려나와 만석의 앞으로 20만원을 냈다. 효리와 정정이도 자기들이 번 돈과 남자친구의 저축금을 합쳐 10만원씩 집금하였다. 돈을 벌어 가난한 황토고원에 계시는 부모들을 모셔오겠다던 효리의 희망하는 그날이 한보한보 다가 오고 있었다.
건설부에서는 2천평방메터 동관구 정부청사 시공을 350만원에 맡고 동서남북 중심거리 포장도로 공사를 350만원에 맡았다. 동관구 정부에서는 땅 판 돈을 지구 기초건설에 투자 하였고 신라신 건설부에선 땅 사는데 들인 돈을 회수하고 있었다.
방 화는 시아버지 김 병국의 전화를 받았다.
“며늘아가, 우리 손주 탈 없이 잘 크고 있는거지?”
“녜, 아버님. 아버님 어머님 무고 하세요?”
“오냐, 우리는 다 잘 있는다. 너 호분자서 아기 달고 얼매나 힘드냐?”
“괜찮아요, 아버님. 절대 아무런 걱정 하지 마세요. 혼자 아니라 인젠 방철이와 나 둘이잖아요? 아들은 부담이 되는게 아니라 힘이 된답니다.”
“참 수고 많겠다. 그라구 설에 나올거지?”
“죄송한데요 아버님, 이번설엔 갈 것 같지 못해요. 일도 많고 방철이가 길에서 힘들까 겁나서요. 저도 몹시 가고 싶은데 참는 수 밖에 없어요.”
“알겠다. 아무쪼록 몸 조심하고 설 기쁘게 쇠거라. 너 시에미 바꾸란다.”
허 봉녀가 전화를 바꿔쥐였다.

“이보우 며느리, 애기는 잘 크오?”
“녜, 어머님. 인젠 막 웃기도 하고 야야야하며 뭐라구 중얼거리기도 합니다.”
“밤에는 보채지 않습데?”
“예, 너무 순해서 걱정이얘요. 아마 방철이 아버지 애기때 순했는가 보죠?”
“양, 옳소. 애기때부터 순하구 애먹이는 일이라구 없었소. 갸두 제애비 닮았는 모이구마. 젖은 모자라지 않소?”
“그냥 젖 절반 우유 절반 먹입니다.”
“에미 잘 먹어야 젖이 팍팍 나겠는데, 내 곁에 있으믄 돼지발쪽이라두 팍 고아 먹이재이켔소? 며느리 절루라두 그래우, 여나문개 사다가 깨끗하게 씻어서 참멱하구 같이 끓이오. 소금은 넣지 말구. 물이 뽀얗게 될 때까지 끌여서 먹소.”
“예, 어머님. 해 먹을께요. 근심 말아요.”
“설에 못 온다구? 설에라두 나오믄 좀 뭘 해 먹였으면 좋겠는데…”
부모들이란 언제나 자식들을 근심하고 걱정하게 된다. 그들은 그것이 부질없는 노릇이라는 것을 젼혀 모른다.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것의 십분의 일만큼만 자식이 부모를 생각 한다면 그는 효자로 된다고 사람들은 말 한다.
사람들은 “가는 것이 있으면 오는 것이 있다”고 말한다. 조 연방과 김 동원은 한국으로부터 일회용 기저귀 한토리를 보내왔다. 높이, 넓이, 두께가 한메터씩인 립방체 포장물이라 침실문으로 들어갈 수가 없어 복도에다 터뜨려놓았다. 들고 올라온 경비과원 둘이 한동안 분주히 드나들어서야 침대 이층에 다 장질수 있었다.
방 화는 그때 태여나지 않은 김 방화 오누이에게 옷 한벌씩 사주고 왔었고 두번째로 갔을 때엔 분유 두봉다리씩 사주고 왔었는데 그값이 몇배로 갚아져 왔다. 연방은 무엇이 필요 하느냐고 컴퓨터로 몇번을 물었다. 유아용품은 여사장 사모님이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다 샀기에 아무것도 필요치 않으니 신경을 끄라고 방 화는 강요 했지만 연방네는 듣지 않고 연구하던 끝에 기저귀 만개를 보내온 것이였다.
방 화는 김 방화(方华)와 김 방화(方花)의 양어머니였다. 애의 이름을 김 방철(方哲)이라고 지었다고 하니 조 연방은 이름마저 방화네의 친동생과 같다며 좋아 야단이였다. 그러니 방철이한테 기저귀라도 사 보내고서야 조 연방네 부부는 한 시름 놓을 수가 있었다.
방 화와 연방은 경상 컴퓨터로 통화 하고 동영상도 오고 갔다. 방 화는 이층침대 위에 천정에 닿도록 높이 장져놓은 기저귀를 사진찍어 조 연방에게 전송하며 함께 웃었다. 그것도 사자면 하나에 일원 오십전씩이다. 그러니 그것이 공장가격으로 한다고 해도 만원이 넘는다. 돈을 떠나 그들에겐 우정이 소중한 것이였다.
“언니, 며칠 후 우리회사 연수생들이 가게 돼요. 내가 덱고 가야 하는데 방철이 때문에 못 갑니다. 내 친구 해연이가 갈 가능성이 있는데 가면 많이 도와 줘요.”
“알았어, 내 전화번호나 똑똑히 알려줘서 보내요. 힘이 되는만큼 돌볼께요.”
조 연방은 이미 한국말을 통달 하였고 신라전자 비서처에 출근 하고 있었다.
방 화는 해연이를 한국 출장 보내자고 여 수군에게 제기 하였는데 여 수군은 수속도 시끄럽고 구락부 관리도 돌봐야 한다며 친히 30명 여직공들을 한국에 데려다

주었다. 한국에 진수가는 처녀애들은 방 화가 해산하기 전까지 저녁마다 꾸준히 가르친 덕에 한국어로 적잖은 대화를 할 수 있었고 많은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인천 공항으로 조 연방이 직접 마중을 나오기에 여 수군이 간다해도 곤난이란 없었다. 여러번 다녀본 사람이 가는 것이 수속도 쉽고 업무도 더 익숙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여 수군의 선택이 정확한 것이였다.
“그러고 도급제를 실시하는 마당에 한회사의 직원이라해서 다른 일에 불러다 쓰는건 타당치가 않다. 네 친구 한국 갈 기회는 앞으로도 많을 것이니 급해 마라.”
여 수군이 한 말이다.
건설부와 구락부는 왕 한빈부장과 최 해연경리가 도급경영 하도록 맡겨버렸었다. 건설부에선 년말에 5백 만원의 순리윤을 회사에 바쳐야 하고 구락부에선 5만원이란 돈을 회사에 바치기로 했다. 회사에 바치고 남은 부분에서 도급자가 50%를 소유 할 수 있다. 이것은 왕부장이나 최경리가 여사장과 손도장까지 찍고 체결한 합동이다. 그러니 해연이를 한국구경 시키고 싶어 한 것은 짧은 생각이였다.
춘절에 방 화뿐만 아니라 해연이네 부부와 리 영섭도 집으로 가지않았다. 회사의 직공들도 린근에 집이 있는 이들만 가고 외지에서 온 사람들은 대부분 가지 않았다.
구락부에서는 그믐날 저녁부터 초이튿날 저녁까지 사흘 쉬고 초사흗날 부터 문을 열었다. 건설부에서도 닷새를 쉬고 일을 계속 하였다.
려나는 만석이를 따라 예비 시부모들 한테로 인사하러 갔고 정정이도 철주를 따라 매가현으로 갔는데 광동이와 효리를 데리고 갔다. 그외에도 많은 외지애들이 한공단이나 한침실에서 친해진 린근마을 친구의 초청으로 함께 설을 쇠러 갔다.
조선족 넷은 그믐날 저녁 여 수군의 집으로 쳐들어가서 먹고 놀고 밤을 새우고는 춘절날 점심엔 송자네 집으로 쳐들어가 복새판을 벌렸다. 남편도 미국에서 오지않아 족족하던차에 뜻밖의 손님들이 한무리나 들이닥치니 송자는 꿈만 같았다. 해연이가 남편까지 얻어가지고 방 화한테로 왔다는 소식은 전화로만 들었지 처음 만났다. 그사이 방 화는 임신 말기라 그래 해산 하느라 그래 년말 총결을 짓느라 그래 사실 해연이를 데리고 송자보러 올 사이가 없었다.
송자네 집에서 점심이나 먹고 회사로 돌아 와 저녁엔 집에 가지 않은 처녀애들과 함께 설을 쇠려고 하였는데 송자가 놓아주지 않았다. 기어이 하루밤을 자고 가라는 것이다. 두 아기를 가지런히 재워놓고 아지미 박 순녀와 방 화는 저녁 준비를 하고 그들 넷은 홍십 돈먹기를 놀았다. 리 영섭이 나이가 많아서인지 지는 추세였다.
“아저씨, 정신 차려요. 리과장 최경리 돈 많이 탄다는데 우리 그걸 이겨야죠.”
송자가 리 영섭을 두둔하자 해연이가 불복한다.
“야, 우리공정사님 기술혁신 해 장금 만원이나 탔다야, 왜 우리것만 먹자니?”
“언니네 둘이 한편 할게 뻔한데 우리라구 한편 못하겠소? 우리를 분렬 시키구 다 먹어치우자는 심뽀지? 아저씨, 우리 부커판 커플 해요. 경각성 높이자구요.”
“맞다, 차라리 둘둘 편을 짜자. 홍십으로 편찾기 하지 말구 편을 고정하자구.”
해연이가 새로운 방안을 제기했다.
“오케이, 공정사아저씨 신심 있죠? 언니 공정사님 머리를 따를것 같아서요?”

“야, 이지집애야, 넌 회계사아저씨 머리를 따를것 같냐?”
“길고 짜른건 대봐야 알지비. 자, 그럼 진짜부부대 가짜부부 누구 것이 더 길고 실팍한가 대보는 홍십 대결을 시작 하겠습니다! 이긴 편에서 저녁술 사기입니다.”
송자가 선포 하였다. 그들은 웃고 떠들며 트럼프를 쳤다.
저녁엔 박아지미까지 여섯이 누구하나도 사양하지 않고 술을 마셨다.
송자가 처음 대련 별장에 있을 때 해연이가 송자의 요구대로 고향에서 찾아보낸 박아지미도 리 영섭과 같이 40대 후반이였고 같은 내성적인 성격이였다. 그녀는 좋은 일자리를 알선 해준 해연이 한테 감사를 표시 했고 주인 마님이 한집 식구처럼 잘 대해주어 고맙다고 인사를 드렸다. 나이가 비슷한 사람끼리 공통어가 있게 되고 마음이 통하기 마련이다. 술상에 나란히 앉은 리 영섭과 박 순녀는 서로 가정사도 물어보고 나이도 알려주며 인생사를 론하고 반찬 그릇도 앞으로 당겨다 준다.
리 영섭의 안해는 일본으로 돈벌이 간지가 5년이 된다. 3년철 되던 해엔 고중에 다니고 있는 하나밖에 없는 딸애까지 데려갔다. 그리고는 소식이 끊겼다. 그해 그가 출근하던 공장이 개인 손으로 넘어가면서 정기실업을 당했고 직업도 집도 가정도 없는 보토리 신세로 되여버렸다. 백주로 오기전에 리 영섭은 정기실업시에 탄 돈 3만원과 형님네돈 만원을 얻어 4만원을 내고 “한국 상무고찰단”에 들었다. 그런 가짜고찰단으로 건너가 도망쳐 불법체류하며 일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한국 공항에서 문밖에도 나가지 못하고 잡혀 돌아오고 협잡군들은 많은 사람들의 돈을 갈취 해가지고 자취를 감추었다. 중국 공안부문과 해관부문을 매통해 비행기에까지 오르긴 했으나 한국 해관부문을 잘 고시지 못했던지 누가 고발 한 통에 한국땅을 밟자마자 십팔명 “고찰단”성원이 몽땅 잡히고 말았던 것이다.
박 순녀의 남편은 간경화복수로 몇년을 앓다가 숨지었다. 그러다나니 가진거란 목숨과 두 주먹밖엔 아무것도 없게 되였다. 그녀는 중학교를 곧 필업 할 아들을 시형집에 부탁 해놓고 아들의 학비라도 벌어보려고 연길로 들어왔다.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뙤약볓에 앉아 누가 자기를 사가기를 기다려야 했다. 하루 이틀 팔려 갔다가는 일이 끝나면 돌아 와 또 그거리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만 쳐다보아야 한다. 손가방이나 자개미에 끼고 반반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멀리에서 나타나면 아낙네들은 비단바지에 닥살처럼 달라붙는다. 자기를 써달라고. 박 순녀는 그러지 않고 멀리에 앉은대로 그들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래서 남들의 절반도 벌지 못했다. 신체가 튼튼해 보이고 수줍어 보이는 박 순녀가 해연의 눈에 걸려들었던 것이다.
“아저씨, 우리 아지미와 사귀세요. 우리아짐 일 잘 하고 마음이 최고 고와요.”
눈치 빠르고 입이 빠른 송자가 추겼다. 영섭이와 순녀는 처녀 총각처럼 얼굴이 빨개진다. 순녀는 머리를 숙이고 외면 하는데 영섭이는 아니라고 두 손을 내저었다.
“아저씨, 아니라면서 얼굴은 왜 빨개져요?”
“엉? 거야 술을 마셔 그렇지. 송자도 빨갛구만 뭐…”
“영섭아저씨, 박 순녀여사는 우리집 식구이니 나의 태도가 중요하다는 걸 명심
하세요. 위신 얻으시고 아지미와 사귀시려면 내잔에 술을 부으세요. 호호호…”
“그래서 붓는게 아니라 우리를 이렇게 초대 해 주니 감사하다는 의미에서…”

제일 년장자가 제일 막내에게 술을 부었다.
“자, 여러분, 여러분! 리 영섭선생님과 박 순녀여사님의 만남을 위하여 그리고 로 길봉선생님과 최 해연여사님의 영원한 행복을 위하여 이잔을 다 함께 듭시다!”
송자의 제의에 누구도 반대 하는 사람이 없이 호응 하였다.
저녁을 먹은 후 송자는 옷장을 열고 자기 아이가 일년전에 입던 깨끗한 옷들을 한무더기 꺼내놓았다. 미국식 한국식 중국식 고급 옷들이다.
“언니 이걸 가져다 방철이 입힐만하믄 입히오. 한두번씩 밖에 안 입었는데 그저 버리자니 아깝구 그래서 뒀댔소. 낡은 옷이라구 께름직 하믄 언니 버리오.”
“야 무슨 소리니? 너무 좋구나. 방철인 옷이 몇개 없다. 젬스 입는거 싹 둬둬라. 지금 애기옷이 얼매나 비싸다구. 우리 방철이 입은담에 해연이네를 주자.”
“야, 이 미친지집애, 우리 어디 애기 있니?”
“하나 나야지.”
“둘이면 딱이다. 너네나 더 낳아라.”
“언니 맘대루요? 아저씨 맘대루지.”
이번에는 송자가 끼여들었다. “여자 셋이면 나무 접시가 드논다”고 하였다.
박 순녀가 설거지를 끝낸 후 커피를 끓여가지고 거실로 들어왔다. 그들은 커피를 마시며 다시 트럼프 놀이를 시작 하였다.    
방 화가 운전을 하다보니 해연이가 방철이를 안고 우유며 옷이며 기저귀를 담은 큼직한 가방과 송자가 챙겨준 옷보자기를 길봉이가 들었다.
“방부장동무, 감사합니다! 덕분에 설을 즐겁게 잘 쇠였구만요.”
보조석에 앉은 리 영섭은 방 화에게 충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별 말씀을요, 함께 객지 생활을 하면서 조금이라도 즐거우셨다면 그건 누구의 덕분이 아니라 다 리선생님의 분복입니다. 리선생님께서 좋은 분이시니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참, 그런데 선생님 보시기엔 박녀사분 어떠세요?”
“어떻게 함부로 초면에 이렇다 저렇다 평가 합니까?”
“그렇군요. 료해 해볼 의향은 있으세요?”
“불가능한 생각입니다. 아무리 호감이 있다고 해도 내가 이먼곳으로 다닐 수도 없고 그도 회사에나 구락부에 올일이 없고 그저 기억속에 묻어 두어야죠.”
“적극적으로 조건을 창조해야죠. 세상엔 불가능한 일이란 없다고들하던데요.”
“마음만은 고맙습니다만 신경 쓰지 마시요. 연분이 닿잖으면 별 수 없습니다.”
“공동히 노력 해봅시다.”
방 화는 해마다 춘절 휴가가 끝나고 출근이 시작 될 때면 근심이 앞서게 된다. 다행이도 이해 춘절엔 결혼식을 치르느라 닷새만 휴가를 연기 해달라는 처녀애 하나 외엔 모두다 제시간에 출근 하였다. 방 화는 큰 시름을 놓았다.
직공 모두가 신라신 새아빠트에 들어 생활하고 출근 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고 생각 해보았다. 허지만 이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방 화도 잘 안다. 방
화는 한가지 새로운 구상을 품고 여 수군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사장님, 한가지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그래? 무슨 말씀인지 어디 들어보자. 거기에 앉거라. 헌데 오늘은 또 무슨 기발한 생각인지 좀 엄숙한 표정이다야.”
“우리 회사 장정을 한조목 고칩시다.”
“오, 그러니 그렇게 정색 한게로구나. 회사 장정이나 규장제도를 감히 고치자는 사람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게고 한데, 좀 구체적으로 말 해보거라.”
“우리 회사에서 휴가제도를 실시 하는 것이 좋을것 같아 장정에 새로 써넣자는 겁니다. 휴가제도는 국가의 특별한 공무원이나 향수하는 것인데 우리 같은 기업에서 왜서 해야 하는가 하면요, 사장님께서도 아시다 싶이 우리 회사의 3분의 1이상의 직공은 먼거리의 타지방 사람들입니다. 마치 나본신이 외지에서 왔다고 이런 제안을 하는것 같기도 한데 그건 아니구요, 해마다 춘절 때면 애들이 사고 날까봐 겁이나서 못 살겠어요. 이것이 기본 원인인것 같습니다. 춘절기간 려객 운수가 제일 복잡 할 때 일주일이나 열흘을 가지고 집에 갔다오자면 힘든 곳이 많아요. 우리네 곳 같은덴 더 말 할 나위도 없구요. 그래서 입사 하여 만 일년이 된 직공은 일년에 반달이란 휴가를 가질 수 있게끔 하자는 것입니다. 두해치를 합쳐서 한꺼번에 30일을 쉴 수도 있구요. 로임은 제대로 주고 로비는 자 부담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면 회사에 손해가 생길게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앞으로는 춘절이나 국경절 등의 휴가를 줄이고 지금 주말이면 토요일 오후부터 일요일까지 하루반을 쉬던 것을 일요일 하루만 쉬고 토요일 하루를 정상 출근 하도록 합시다. 그러면 일년치고 로동일을 15일이 아니라 30일이라도 늘일 수 있을 겁니다. 거기에서 직공들의 휴가로임이 곱절로 나온다는 것입니다. 직공들은 물론 환영 하겠지요. 자기가 휴가 맡고 싶을 때 집에 일이 있을 때 갔다 올 수 있으니깐요. 그러나 반드시 회사의 안배에 복종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 해야 할 것입니다. 휴가를 신청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회사의 수요에 따라 먼저 휴가를 보낼 수도 있고 휴가를 신청한 사람이라도 회사의 수요에 따라 비준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특수 정황을 제외하고는 말입니다. 삼촌, 제가 헛소리를…?”
“아니야, 잘 했다. 우리 그방향으로 나가자. 준비를 잘 해가지고 이번 동사회 월회 때 제기 하거라, 내가 보충 발언을 하마. 저 헌장은 이 회사를 세우기 전에 조 연방이 작성하여 비닐제품 공장에서 쓰던 것인데 책가오리만 바꾼거다. 그땐 모두 본지방 공인이고 인원도 적었거든. 고쳐야 할 부분이 많다는걸 알면서도 시끄러워 놔둔 거다. 그러니 이번에 먼저 휴가제도에 대해 보충하고 뒤이어 전면 수개 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공작 시간에 술을 마시지 말고 트럼프를 놀지 말고 담배꽁초를 아무 곳에나 버리지 말고, 이런것들이 인젠 다 소용 없는 소리잖니? 니가 다음 달엔 새로운 장정하구 규장제도 작성을 시작 해봐라. 급할께 없이 시간이 나는대로.”
직공 휴가제도는 동사회와 전체 직공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회사의 리익에 손해 없이 직공들의 리익을 도모 해주는 좋은 방침이였다. 방 화는 컴퓨터에 회사 장정과 규장제도를 타자 해넣고는 수개하기 시작 하였다.
“백주일보”일면에 방 초가 쓴 “여 수군 민영기업 직공휴가제 실시”란 기사가
실렸다. 첫머리엔 여 수군의 큼직한 채색사진도 박았다. 방 초는 문장에서 개혁개방 이후 로동력의 대 류동으로 이루어진 당면 민영기업들의 인원 구조에 대해 분석하고

마 효리가 랍취 당했던 무서운 안건도 실례로 들어가며 직공 휴가제의 리해득실을 설명 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 민영 기업에서는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규장제도를 타파하고 새로운 규장제도를 다시 세우고 있다고 덧부쳤다. 문장 구절마다 방 초는 여 수군 사장의 결단성과 창의성 그리고 직공들을 친형제 자매처럼 사랑하는 마음과 행동을 많이 찬송 하였다. 여사장의 지명도가 높아져야 화사의 발전에 리롭다는 것을 방 화는 알고 있었다. 기사에 실린 여 수군의 사진은 기자가 전날 급급히 와서 찍어 간 것이였다. 일보론평원은 직공 휴가제를 개혁개방의 신생 사물이고 필연적인 추세라면서 여 수군을 개혁개방의 선두에서 달리는 본보기이라고 칭찬 하였다. 방 화는 처음으로 써본 기사가 합격되고 이같은 좋은 반응을 일으킬 줄을 몰랐다.
“진실 하지 못하다. 휴가제를 네가 제출 한건데 왜 나한테 덮어씌웠어?”
“사장님께서 비준하고 지지해서 된거잖아요.”
방 화는 재미를 얻었고 신심을 얻었다. 하여 그날로 두번째 기사를 썼다. 그것 역시 일면 아래 반장에 실렸다. “여수군 신형의 구락부를 운영”이란 제목이고 역시 방 초라고 서명하였다. 자기의 딸자식처럼 누이동생처럼 여겨 아끼는 직공들의 련애 혼인을 위하여 2백만원을 투자하여 만남의 장소 사랑의 장소를 만들었고 회원증 우대권을 발급하여 적극성을 불러이르키고 고객들과 손잡고 구락부를 꾸려 나간다고 썼으며 몇달 안되는 사이 이 구락부에서 이미 60여쌍이 짝을 지었다고 썼다.
두번째 원고가 발표 되는 날 방 화는 세번째 기사를 썼다. 제목은 “여수군은 왜 집을 짓는가?”였다. 여 수군사장님은 주주들을 동원하여 좋은 일에 재투자 하도록 하였고 직공들의 안락처를 마련하려고 부동산업에 입장 했다. 날새도 자기의 둥이가 있다. 사람이 집이 없이 어떻게 생활하고 어떻게 후대를 배양 하겠는가? 여 수군은 신라신그룹의 전체 직공들을 령도하여 동관촌을 세계의 으뜸인 공업단지로 건설하고 아름답고 편안한 생활의 요람으로 꾸려 나가기 위해 모든 힘을 다 바칠 것이다.
방 초가 쓴 세개 계렬보도는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기자가 륙속 찾아오고 소 기업가들도 경험을 배우러 찾아왔다. 처음날 여사장과 방 화는 긴장감을 느꼈다. 점심식사를 대접하고 공장과 구락부 건설부 거처를 구경 시킨 후 돌려보냈다. 훗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찾아 올지, 혹은 하나도 오지 않을지 아무것도 예상 할 수가 없는 일이였다. 여 수군은 방 화를 꾸짖었다.
“방 초동무, 그래 왜서 벌둥이를 건드렸어? 무슨일이나 조용히 해야하는 것이지. 아무튼 네가 터쳐놓은 벌둥이니깐 막는 일도 네가 해야지. 어때, 되겠니?”
“녜, 실사구시적으로 밀고 나갈겁니다. 사장님 몇냥 몇근인가 그대로요.”
방 화는 속이 싹 얼었으나 여 수군에게 부담감을 주고 싶지않았다. 하여 오래 전에 조 연방이 한테서 들었던 여 수군이 한 좋은 일들, 아들과 함께 강탈범을 잡고 차 수리비 일전한푼 받지 않던 일, 일이삼사 순서로 제강을 짜고 채방 하러오는 기자나 배우러 오는 사람들에게 사랑의 마음이라는 주제를 불어넣었다. 여 수군의 이야기는 날마다 신문에 실리고 날마다 새로운 이야기들이였다.
방 화는 여 수군의 당안을 찾아 보았다.
69년도라 그러니깐 방 화가 태여나던 해였다. 여 수군이 가입한 부대는 가혹한

전투에 참가하게 되였다. 적진으로 밀고 나가던 아군은 대형적인 포위망에 빠져 참상을 입었다. 철퇴 명령이 내렸으나 철퇴 할 길이 막히고 부대는 많이 살상되고 산산히 흩어졌다. 여 수군도 대오 없이 박반장의 인솔하에 다른 한 전우와 함께 북으로 철퇴하고 있었다. 그들은 적군의 눈을 피해 산길과 나무 숲속으로만 걸었다. 헌데 산비탈 길에서 불현듯 총소리가 나고 한무리의 적군이 나타났다. 여 수군네 세 사람은 맹사격을 가했다. 십여명의 놈들을 쓸어눕히고 총소리가 멎으니 알아들을 만한 말소리가 건너편 산굽 숲속에서 들려왔다.
“개놈들아! 너무 빨리 되진다! 죽은척 하는거 아니야?!”
“아니다! 다 뒈졌다!”
“뒈진놈이 대답질이야?!”
“하하하… 너넨 어느부대야?!”
그들은 합쳐서 여섯이 되였다. 헌데 놈들이 설치한 지뢰구역에서 넷이나 희생 되였다. 그 지뢰구역만 벗어나고 일이리만 더 가면 아군 진지인데…
거기에서 살아 남은 것이 반장 박 봉규와 신병 여 수군이였다. 여 수군은 오른쪽 아래다리가 끊어지고 박 봉규는 오른 작은 팔이 절반 없어 졌다. 그들은 구급붕대로 지혈 시키고 포복전진 하였다. 기고 살피고 기고 살피고 미심한 점이 없는 풀밭을 골라 한보한보 기여 적의 지뢰구를 벗어났고 서로 부축하고 이끌면서 기고 뒹굴면서 아군의 진지로 살아서 돌아왔다. 그들은 사흘을 굶었었고 행군하고 전투하느라 맥도 많이 뺏고 지뢰 파편에 맞아 피도 많이 흘렸다. 그들이 로상에 쓸어지지 않고 살아 돌아 올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전우의 사랑이 있었고 둘도 없는 전우가 의지였기 때문이였다. 하기에 그들은 전우를 사랑 한다.
방 화는 깊은 감촉을 받았다. 
련 며칠 여론계의 손님들을 접대하고 마지막 날엔 전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여사장님에 대해 깊이 료해하고저 하시는 분들께선 근간의 신문을 많이 보시고 더 이상 찾아오지 마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제가 비서로서 알고 있는 이야기는 다 했어요. 어느 기자분께서 보도매체를 리용해 저의 미안한 이뜻을 꼭 사랑의 마음을 가진 많은 사람들께 전해주었으면 감사 하겠습니다…”
… …
11월 1일 방철의 첫 돐 생일날 아침 방 화가 잠자리에서 일어날 시간을 맞추어 해연이가 찾아왔다. 들어서자 방철이를 둘쳐안고 “가자.” 한마디 하고는 나갔다. 방 화는 따라 나가다가 돌아와 촬영기를 꺼내들고 뒤쫓아 갔다. 분명히 애의 생일을 쇠여주려 하는 것이니 사진이라도 찍어두어야 할 것이였다. 몇발자국 나가다가 또 다시 들어와 방철의 새 옷 한벌과 기저귀 몇개를 들고 뛰여갔다.
“야야!ㅡ 같이 가자, 이계집애야!”
 방 화가 층계를 내려와 문밖을 나서는데 운동하러 나오던 효리가 소리쳤다.
“언니! 언니 어데로 그리 급히 가요?!”
“오, 일이 있어서. 있다 봐 응?”
효리가 영문을 몰라 급급히 문밖에 나서서 보니 해연이가 방철이를 안고 대문을

나서는데 방 화가 달음박질로 뒷 따르고 있었다. 효리는 인츰 영문을 알아차렸다. 하여 “언니 나도 가요!” 소리지르며 달려갔다.
그들이 구락부에 다달을 때 방 화의 핸드폰이 호주머니에서 찌륵거렸다.
“예, 아버님! …지금 친구가 생일 쇠여 줄라고 안고 달아나서 막 쫓아 왔어요… 녜녜, 잘 쇨게요. 아버님 잠깐만요, 손자 목소리 들어보세요.”
방 화는 핸드폰을 방철의 입 앞에 곧게 세우고는 빨리 할아버지라 불러라고 독촉 하였다. 방철이는 이재 겨우 엄마아빠를 번지고 전화라는 물건도 모르는 수평이지만 엄마가 자기 입 앞에 세운 것이 할아버지가 아니임은 안다.   
여 수군은 년초에 보도 되였던 탓에 시창업자표병, 애심지사라는 두가지 영예를 안아왔다. 이건 전적으로 방 화가 선전하고 양보한 명예라는 것을 여 수군은 잘 안다. 여 수군은 상장만 가지고 3만원 장금을 몽땅 방 화에게 기어이 넘겨주었다.
건설부에서는 일년사이 순리윤 8백만원을 내였다. 왕관가원 첫머리에 “ㄱ”형 칠층 청사를 지어 열달 반 사이에 판매까지 끝냈다. 한변이 55메터씩이고 너비는 열다섯메터다. 둥근각에 “왕관가원(王冠嘉苑)”이란 커다란 황색금속으로 된 한어 글자를 내려 걸고 그옆에 조금 작은 글씨로 “신라신부동산”이라썼다. 일층 영업방 천륙백 평방메터 여덟칸은 직공이 집금한 세칸외에 다섯칸은 한평방메터에 4천원씩 팔았고 2층부터 7층까지 9천9백 평방메터의 주택방은 직공이 집금한 3천평방메터를 빼고 평균 2천원씩 불이 펄 나게 팔렸다. 여러 회사들에는 부자들이 퍼그나  많았다. 앞으로 칠층위에 20층을 더 쌓을 수 있도록 기초를 든든히 해 놓았다. 신라신의 첫 건물이고 대표 건물이며 공업단지와 네거리를 사이두고 각으로 마주하고 있다. 앞으로 이건물은 왕관가원과 신라신부동산의 얼굴로 될 것이다.
방 화는 해연이와 길봉의 이름으로 집금한 주택 두채를 대외에 팔아 40만원을 받았다. 20만원 본전을 찾고 해연이네와 절발씩 나누어 가졌다. 려나네와도 그렇게 10만원씩 나누어 가졌다. 해연이네와 려나넨 새해엔 자체로 집금 하고 처분 할 수 있는 자금이 마련 된 셈이다. 방 화는 영업방 한칸을 둥근면의 중심에 가졌다. 이층 중심의 주택방 두개도 방 화가 산 것이다. 일층 천정에 구멍 하나만 내면 상하층 일체인 멋지고 쓰기 좋은 영업방이 된다. 처분 할 것인가 경영 할 것인가에 대해 며칠을 고민 하였다. 위치가 너무나도 좋고 발전성이 크기에 내놓기가 아쉬웠지만 장식하여 가게를 꾸려 세를 주고 관리 하자면 품이 너무 먹기에 방철이를 키우면서 힘들것 같아 일층은 85만원에 팔고 이층 두집은 60만원을 받고 팔아버렸다.
해연이네 구락부에서도 임무를 초과 완성하여 6만원을 회사에 바치고 12만원을 남겼다. 해연이는 5만원만 가지고 나머지는 직원들의 장려금으로 나누었다.
회사에선 이천공 삼년엔 건설부에 삼천만원을 투자하여 4만평방메터의 아빠트와 아빠트 주위의 환경 건설을 철저히 할 것을 지시 하였다. 직공들의 리익을 위하여 부족되는 만평방메터의 건설자금은 내부 직공들 중에서 집금 하기로 하였다. 여전히 한평방메터당 천원으로 결정지었고 한직공이 두채씩 집금 할 수 있도록 하였다. 효리와 정정이도 첫해의 집을 팔아 두집씩 집금 하였고 해연이도 세집 값을 냈다.
방 화도 두집 값 20만원을 냈다. 일년 후면 그것이 40만원으로 되는 것이다.

첫 해에 3백만원을 타서 백만원 밑으로 쓰고 이듬해에 2백만원을 타서 구락부를 꾸려 백만원을 벌고 금년에 또 2백 50만원을 탔다. 주권 분홍을 50%씩 두번 부동산 투자를 한 것이 4백 50만원이다. 모두 합치면 방 화의 총재산이 천 이백50만원이 넘는다. 현금으로만도 8백만원이 있는 것이다. 방 화는 이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가 방향이 잡히지 않아 두통이 났다. 가정의 생활 비용과 애들의 양육비나 남기고 어느
희망공정에라도 후닥닥 기부 할거나 하고 생각 하다가 도리질을 했다. 아직은 때가 이르다고 생각 한 것이다. 그돈으로 돈을 벌어 사회에 더 큰 공헌을 해야 한다. 헌데 무엇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가가 문제이다. 돈은 돌아야 하지 묵여 두어선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을, 종이장에 불과 하다는 것을 그도 잘 안다.
방철이 할아버지 한테서 전화가 왔다.
“얘, 방 화야, 며늘아가, 좋은 소식이 있다. 애비가 감형 됐다. 유기도형으로 바뀌였다. 유기도형 16년이란다. 무기도형이니 거그서 죽는 줄로만 알았더니 희망이 있는게 아니겠니? 지금 4년철이니 4분의 일이나 지난셈이다.”
“감사해요, 아버님! 방철이 아빤데 축하 드린다고 전해주세요. 그리구 계속해서 열심히 하시고 더 감형 되게 노력 하시라 고무 해주세요. 그이가 그렇게 잘 할 수 있은 것은 다 아버님 어머님께서 고생하시며 거기에까지 가셔서 정신상으로 부추켜 준 덕분이 아니겠습니까? 아버님, 정말 감사합니다! 방철이두 벌써 일년 넉달이 다 되였습니다. 인젠 아빠 엄마 누나 할아버지 할머니 하며 말을 겨우 번지고 아장아장 걸기도 합니다. 아버님 어머님께서 꼭 건강 하셔야 합니다…”
방 화는 김 병국의 전화를 받은 후 인츰 보름 휴가를 맡았다. 구실은 방철이를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데려다 주고 오겠다는 것이였다.
여 수군이 비행장까지 실어다주었다.
“삼촌, 그사이 수고 많으시겠어요. 될수록 빨리 돌아와서 일 많이 할게요.”
“몸 조심히 갔다 오너라. 방철이 할아버지 할머니랑 박사장님께 문안 전하구.”
방 화는 방철이를 가슴앞에 달았다. 조선족들이 아기의 다리를 벌려 등에 업고 헝겊띠로 칭칭 감던것도, 한족들이 네모난 방석 네귀에 끈을 달아 등에다 아기를 처매던것도 모두다 구식인가 지금은 캥거루식으로 앞에 달고 다닌다. 방 화는 작은 바퀴가 달린 려행가방 하나를 끌고 있었다. 방철의 옷과 우유, 빵, 과일이였다. 방철이는 반년전에 모유를 끊었고 한달전에 대소변을 가릴줄 알게 되였다. 연방이가 사보낸 기저귀는 십분의 일도 쓰지 못했고 송자가 준 옷도 다 입혀보지 못하였다. 기저귀를 채워가지고 려행 한다는 것은 모자에게 다 불편한 일이다.
방 화의 전화를 받은 호기사는 택시차를 몇분안에 비행장으로 몰고 왔다.
“룡광촌으로 가시죠? 어서 오르십시오.”
호기사는 려행가방을 뒷좌석에 올리고 보조석의 문을 열었다.
“그사이 안녕하셨어요? 호쓰푸. 가다가 부식품슈퍼에 잠간 들리게 해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방사장님.”
방 화가 룡광촌에 이르렀을 때는 오후 한낮이였다. 그녀는 집마당에 들어서면서 “어머님! 아버님!”을 소리 높이 불렀다. 허 봉녀가 뛰여나와 한덩어리인 방 화와

방철이를 안았다. 방 화도 손에 물건들을 팽개치고 마주 안았다.
“전화도 없이 이게 웬일이요? 아이구 기차라, 아이 달구 얼매나 고생 했소?”
허 봉녀는 소리지르며 방 화의 가슴에서 방철이를 뽑아냈다. 방 화는 헐렁 해진 빈 끈을 몸에 감은대로 버렸던 식품 주머니와 려행가방을 주어들고 허 봉녀를 따라 집으로 들어갔다. 집에는 다른 사람이 없었다.
“어머님, 아버님은요?”
“엉? 오ㅡ, 곧 올게요. 마실 나갔겠지. 신애 유치원에서 올때믄 같이 오오.”
“신애 유치원에 잘 다니는가 보군요.”
“양, 영 적극적이요. 명년이믄 학교 간다구 빨리 설을 쇴으믄 좋갰다오.”
“벌써 학교 갈 나이가 돼요? 세월도 빠르네요.”
“기차기두, 제딸 몇살인지두 모르는구만. 쯧쯧쯧…근데 어찌 불쎄루 이렇게…”
“모두 보구싶구, 방철이 맡겨둘라구요. 젖을 뗀지 오라구 기저귀도 안 차요.”
“잘 했소. 가찹았으믄 업어오기나 하재이캤소? 그냥 근심만 했댔는데.”
“어머님, 절 받으세요.”
“절은 무슨 절. 싹 걷어치우오. 있다 할아버이한테나 하오.”
방 화는 몸에 칭칭 감겼던 아기띠를 풀어버리고는 허씨가 말리던 외면하던 몸을 일으켰다 다시 앉으며 곱게 절을 하였다. 그제야 허 봉녀는 하는수 없다는 듯 앉은 자세로 아기를 품에 안은채 허리를 굽히며 절을 받았다.
김 병국은 마실을 나간 것이 아니라 몇집이 합쳐 지은 커다란 비닐하우스에 모상판 일을 하러 나간 것이다. 방 화가 근심 한다고 속여가면서 농사를 다시 짓기 시작 한지도 새집을 산 후부터이니 두해를 넘겼다. 방 화에게 발각되면 하지 말라는 농사질을 한다고 야단 칠것 같아 허 봉녀는 은근히 근심되였다.
집에 들어서는 시아버지의 차림새를 보고 방 화는 마실이 아니라 농사라는 것을 대뜸 알아차렸다. 김 병국은 마을 첫 집 조카며느리가 놀러 왔겠거니 여기고 눈길도 돌리지 않았다. 앞에 먼저 들어선 신애가 한동안 뜯어 보다가 “엄마!”를 불러서야 “엉?!”놀라며 머리를 돌렸다. 방 화가 일어나 다가오고 있었다.
“아버님! 저 왔어요. 안녕 하셨어요?”
“오냐, 얼마나 고생 했냐?”
“아버님, 힘드셔 농사일 그만두시란데 왜 말을 안 들으세요?”
“힘들게 안 한다. 심심풀이로 조금 한다. 전혀 안 하면 심심하잖냐?”
“아버님 그렇게 피로 하시다 앓기나 하시면 어쩔려구요?”
“못 들었냐? 일해서 죽는 사람이 없더라고. 아무것도 안하면 되려 병 날거다.”
방 화는 병국이에게 절인사를 올린 후 큰 집으로 인사하러 갔다. 마을 첫집에선 아들 며느리가 마당에서 터밭 울타리를 세우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아주번님, 형님.”
“누구…? 오ㅡ, 동생, 신애엄마다. 언제 왔소?”
언제 왔을지를 번연히 알면서도 사람들은 언제 왔는가를 주요한 인사말로 쓴다. 방 화는 집에 들어가 백부님께 절을 하고 인츰 나와 나무도 주어주고 벼짚도 비틀어

섬기면서 마당에서 일하는 팔촌시누이 부부네와 이야기를 나눴다.
“농사 차비에 몹시 바쁘시죠?”
“괜찮소. 우리야 조끔 먹을거나 심는게 뭐.”
시누이가 대답 하였다. 남편은 땅이 녹으면 시가지로 들어가 집짓는 일에 붙는다. 그는 벽돌 쌓기 고수였기에 돈을 잘 벌었다. 올케이가 혼자서 한마지기 푼한 논과 반마지기 될까말까하는 밭을 가꾼다. 밭일은 칠순이 넘은 시아버지가 아직 정정하셔
돕기도 한다. 방 화는 자기집 땅이 얼만가를 알고 싶었는데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신애 할아배는 힘들께오. 남이 버리는 땅이믄 다 걷어가지구 고생 하신단데.”
“얼마나 돼요?”
“모르긴 해도 아마 한 스무마지기는 될께요. 그래서 신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하루도 쉬지 못하고 바쁘게 돌아치시오.”
방 화는 가슴이 쓰리였다. 그리고 울분이 났다. 달음박질 치다싶이 잰걸음으로 돌아왔다. 집에선 저녁상을 차려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방 화는 마음을 달래며 참고 저녁을 먹었다. 저녁상을 물리고 시아버지 앞으로 다가 앉았다.
“아버님, 담판 좀 합시다. 왜서 그 많은 땅을 부치세요? 뭐가 부족 하세요?”
“며늘아가야, 이제 방철이까지 다 키우자면 돈이 얼마나 드는지 아느냐? 방철이 아비가 나오면 돈이 있어야 할게구 부칠 땅이 있어야 할게 아니겠냐?”
김 병국은 남들이 버린땅을 모으고 잘 걸구어 아들에게 물려 줄 생각까지 하고 있는 소박한 농민이였다. 방 화는 너무도 어이 없어 말이 나가지 않았다. 방 화는 자기가 만들어 준 적금통장을 보자고 하였다. 생활비용으로 쓰라고 십이만 오천으로 만들어 준 통장엔 돈이 줄어들 대신 만 오천이 불어나 십사만원으로 돼 있었다.
“답답하신 우리아버님! 돈은 제가 벌고 적금도 제가 한다고 했잖아요? 쓰시라고 드린 돈을 건드리지 않고 되려 보태시다니요? 이번에 왜 나왔는지 아세요? 방철이를 덱고 있고 싶으나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어서 정 부치라고요. 그리고 감옥에다 감형 해주어 감사하다는 의미로 돈 좀 기부 하려고요. 돈을 먹여도 구실이 있어야잖아요. 우리가 감옥에 잘 해주는 것 만큼 방철이 아빤데 유리 할게 아닙니까? 그리고 땅을 모아서 방철이 아빤데 준다는 생각 마세요. 방철이 아빤 농사 안 해요. 큰 사장님이 아니면 아무것도 안 해요. 우리방철이 아빠 출소 하시면 절대 고생 안 시킬거야요. 아버님 어머님께서도 인젠 편히 보내시고 건강히 오래 앉으셔야 하는데 왜 쓸모 없는 고생을 사서 하시는가 말입니다. 만일 아버님께서 꼭 일 하시겠다 하시면 전 아버님께 손잡이 뜨락또르나 한대 사 드리고 돈을 싹 고아원에 보내던지 그럴랍니다. 아버님께서 안 쓰시는데 더 벌어선 뭘 해요? 아버님, 대체 어쩌시렵니까? 결론을 내리세요. 제 말을 따르시렵니까, 아니면 그냥 놓사 하셔 돈 모으실랍니까? 성시에 집을 한 채 사고 농사 일과 떨어지시게 했으면 좋겠는데 아버님 어머님께서 두 아이만 데리고 적응하시기 힘들것 같아 그리 못합니다. 또 연길이라면 몰라도요.”
김 병국은 오래간 말없이 담배만 피우고 방 화는 말 없이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고맙다, 며늘아가. 니말 따르마. 니가 우릴 위해 고생 한다는걸 아는데 그렇게 돈을 잘 벌 줄은 몰랐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부담 덜어 줄라고 시작한 일이다. 이 

맘 알겠지? 전엔 내가 언제 널 일 시키더냐? 그런데 네가 우릴 먹여 살리고 돈까지 모은다고 하니 믿기지가 않고 가슴이 아프고 그런것 뿐이다. 인젠 네가 시키는대로 해야겠구나. 우린 아직 괜찮은데 널 마음 고생 시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 뿐이다.”
“감사 합니다, 아버님! 저같은 년을 버리지 않으시고 며늘이로 보아주신 것만도, 그 너그로운 사랑에 다 보답 할 수 없습니다. 내몸이 엉망이 되도록 일 해서라도 아버님 어머님 우리장만씨 고생시키고 싶지 않아요. 아버님 땅 누구한테 넘기시던지
버리시던지 하세요. 한일 농군이시니 그땅이 아까우실 줄 압니다만 저에겐 그땅보담 아버님 어머님이 더 소중합니다. 제맘 아세요?…”
이튿날 방 화는 감옥에 50만원을 헌납 하였다. 감형 해주어 감사하다고, 모두가 감옥장님과 교도관님들께서 잘 가르친 덕분이라고, 앞으로도 더욱 잘 가르쳐 달라고, 칭찬 하고 부탁 하였다. 그리고 방철이를 안고 남편을 면회 하였다. 모자는 감형을 축하 해주려 왔노라고 했다. 돌아오면서 김 병국의 적금통장에 십만원을 더 넣고 향파출소에 들리여 방철의 호구를 올렸다. 백주시 계획생육 위원회에서 내여준 임신 비준서라든가 부유보건원에서 떼여준 출생신고서라든가 있을 것이 다 있으니 부모의 호구부에 아들의 호구를 올리는 것은 지당한 일이였다. 파출소에선 방 화가 남방에 가 일하고 있다는 것과 장만이가 감옥에 있다는 것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두해전 춘절에 5일간 가석방 했었다는 것도 다 알고 있었다.
방 화는 애들과 함께 하루밤을 더 자고 일요일을 맞추어 연변으로 떠났다. 일이 바뻐 할 수 없이 친정 어머니 뵙고 그길로 안쪽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말 하였다.
“아버님 어머님, 절대 농사일 하시지 말고 옥체 건강히 계셔요. 그리고 신애나 방철이를 곱다고만 하시지 말고 꼭 엄하게 키워주세요. 어릴 때부터 습관 잘 시켜야 커서 좋은 애가 될겁니다. 그리고 아버님께선 애들 앞에서 담배 좀 줄이세요, 애들 페가 나빠지고 머리도 둔해 진대요. 애들 데리고 어찌 고생 하시겠어요!”
시부모님들은 집 근심 말고 몸 조심 하라는 부탁 뿐이였다.
방 화는 만 이천원짜리 휴대용 컴퓨터 석대를 샀다. 광철이와 강 화 그리고 정 강이에게 주려는 것이였다. 광철이는 금년에 중학교에 들어가고 정 강이는 고중에 붙는다. 현중에 갈런지 연변 이중에 갈런지 생활비와 학습비로 또 만원쯤 줘야 한다. 방 화는 이번에도 을봉의 해방패 차를 불러 타고 구석툰으로 갔다. 구석툰 애들을 만나보고 그길로 돌아져 리화촌에 와 언니와 한방에서 하루밤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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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31. 남 향 장 2013-05-08 0 1746
31 30. 새로운 도약 2013-05-07 0 1399
30 29. 골 물 2013-05-06 0 1661
29 28. 설아의 남자 2013-05-03 0 1737
28 27. 흥농의 길 2013-05-02 0 1703
27 26. 귀 향 2013-04-28 0 1722
26 25. 가 석 방 2013-04-27 0 1349
25 24. 귀 가 2013-04-26 0 1654
24 23. 아 들 2013-04-25 1 1718
23 22. 혼 례 2013-04-23 0 1450
22 21. 감 형 2013-04-22 0 1667
21 20. 출 생 2013-04-18 5 2326
20 19. 사랑의 장소 2013-04-17 0 1817
19 18. 구 락 부 2013-04-16 0 1687
18 17. 영웅 소 방방 2013-04-15 0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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