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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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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재생의 경례
2013년 05월 13일 11시 25분  조회:1881  추천:0  작성자: 김재진
  34.  재생의 경례
 

 
07년에 잡아들면서 곡물가격이 급증하고 짐승 사료값도 50%나 올랐다. 사료값이 오름에 따라 돼지고기값도 오르기가 마련이다. 그만큼 성본이 많이 드니 할 수 없는  일이다. 돼지고기는 민생에 없어선 안 될 필수 부식품이다. “로임은 한알짝 올려주고 물가는 하늘만큼 올린다”고 돼지고기 문서도 모르는 백성들은 아우성이다.
농림어목부와 국무원에서 통지를 내여 양돈업을 대폭 지지 할 것을 호소 하였다. 양돈업에 종사 하려는 사람에겐 산골짜기를 눅거리로 떼여주고 종돈은 재산보험에 참가 할 수 있게 하였으며 굴암돼지는 한마리에 50원씩 보조 해주었고 반년 후엔 100원씩 보조 해주었다. 흥농의 굴암돼지가 천여마리니 십만원을 보조 받았다.
방 화네는 양돈업에서 땡풍을 만난 것이다. 그들의 주사료는 값이 오를줄 모르는 감자찌꺼기이다. 만약 감자값이 오른다고 해도 당면값을 올리면 되고 찌꺼기 값은 오르지 않는다. 흥농에선 사료공사의 건사료는 20%밖에 쓰지 않는다. 그러니 남들은 사료값이 50%나 올랐다고 아우성이지만 흥농의 사료성본은 10%도 안 오른 셈이다.
전해 양돈에서 순리윤 3백 55만원을 냈으니 금년에 5백만을 넘길 것이 뻔하다.
방 화는 전해에 돈사를 하나 더 지으려다가 만 것이 썩 후회 되였다.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돼지고기 가격이 오르내림은 5년을 주기로 변한다고 하므로 5년간 매년 천만원씩 벌걸 놓친 셈이다. 사실 돈사를 더 짓지 않고 물앉은 원인은 돈사를 곱절 늘이려면 공장도 곱절 늘여야하고 인원도 곱절 늘여야하고 직공 숙사나 식당도, 감자 수구도, 물 사용량도, 운수력도, 뭐나 다 곱절로 늘여야 하니 곤난이 많았다.
방 화는 돈사를 더 늘이지 못하고 소형 쏘세지 생산공장을 하나 새로 세웠다.
그들의 양돈장에서 매달 도태 되는 굴암돼지가 30마리씩 된다. 그것들을 시내의 통졸임 쏘세지 공장에 고기돼지의 3분이 일의 가격도 안 되는 헐값으로 팔았었다.  
쏘세지의 주요 원료인 돼지고기와 감자 전분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돈벌이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멍청이 짓이다.
박 창범이와 리 영섭을 내보내 쏘세지 공장을 고찰 하는 한편 설비들을 구입하게 하고 집에선 김 천수와 리 련길이 농민공 50명을 불러다가 당면공장 동쪽 낡은 학교 운동장에 햄공장 건물을 짓게 하였다. 이리하여 동사회의 결정이 떨어져 두달반만에 첫 상품이 나올 수 있게 되였고 일년도 채 못 되는 사이 순리윤 15만원을 냈다.
흥농표 쏘세지 종류가 이미 여섯가지이다. 요즘은 “매운 햄”을 개발 한다고 공장장인 리 영섭이 바삐 돌아치고 있다. 돼지고기가루에 감분을 섞고 맛내기와 오향면을 넣은 쏘세지는 일률로 한 맛이다. 그리하여 일부 공장들에서는 그 표면에 물고추를 발라 매운맛을 내여 사람들의 구미를 맞추려고 애쓰고 있다. 어린이는 간식으로 어른들은 안주로 쏘세지를 많이 찾는데 모두다 매운맛을 좋아한다. 리
 
영섭은 표면에 물고추를 칠하면 지저분해 보기 싫을뿐만 아니라 먼지나 잡질이 묻을 수 있어 비위생적이라고 먼지처럼 보드러운 고추가루를 다른 조미료와 함께 속에 넣어버렸다. 리 영섭은 이미 “마라햄(麻辣火腿肠)” 특허권 신청을 하였다.
슈퍼나 음식점들 마다에서 물건 독촉이 사람을 죽일 지경이다.   
2007년 8월, 광철이가 연변일중에 입학하여 집을 떠나자 방 화는 어머니 강 련옥을 갑수동 양로원으로 모셔왔다.
박 동규의 목제품공장이 문을 닫게되여 방 숙이도 방 화한테로 와 회계일을 하게 되였고 반년전에 입국한 형부 리 홍국을 데려다 쏘세지공장의 리 영섭 아래에서 일하게 하였다. 리 홍국은 한국에 가 지루하게도 12년이나 뻗히다가 돌아왔다.
방 화는 박 동규 공장의 낡은 설비들을 헐 값으로 사다가 낡은 교실에 안장 하였다. 항목이 늘어나고 비여있던 낡은 교실이 유용하게 되였고 박 동규도 목돈을 쥐게 되였다. 방 화는 박 동규를 목제품공장의 경리겸 회사의 고문으로 초빙 하려 했으나 동규는 마다하고 시가지 생활 맛보러 간다고 가버렸다. 그는 오른팔을 잃은 로 전사이니 놀고 먹어도 문제 없고 60세가 다 되였으니 휴식 할 때도 되였다.
박 동규가 하던 리화 목제품공장 같은 경우에는 나무장판과 대패밥 합판이라는 단일 경영이다보니 무너졌지만 방 화는 여러다리로 뻗히고 섰으니 넘어질리가 없다.
방바닥에 더운물을 순환시켜 방을 덮히는 한국 온수난방 기술이 들어오기 전에는 동규네 나무장판이 불이 펄 나게 팔려 나갔었다. 나무장판을 콩크리트 방바닥에 펴면 상대적으로 차겁지가 않고 기름칠을 해놓으면 보기도 좋다. 헌데 인젠 합판을 펴고 나무장판을 펴고 두벌로 덮어놓으면 바닥에서 순환하는 온수열기가 올라오지 못한다.
남이 안 된다고 버리는 항목과 설비를 방 화는 사왔다. 동규의 은공에 저그만한 보답이라도 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나무장판이 온돌난방을 하는 북방에서 안 팔리면 륙 학명을 시켜 남방이나 동남아에 가져다 팔라고 할 판이다. 멋 모르고 사귀였던 친구들이 오늘에 와서는 사업의 향도가 되고 버팀목이 되고 징검다리가 되여준다.
김 장만이가 나무조각 용구도 살겸 직공식당과 양로원식당의 남새도 살겸 작은 짐차를 몰고 오래간만에 시내로 갔다왔다. 돌아온 후 어쩐지 말수가 적어지고 낯선 사람처럼 안해와 눈 마주치기를 꺼려함을 방 화는 느꼈다. 필경 “산사상”이 생긴것이 분명한데 시내에서 대관절 무슨 일이 있었을지 갸늠이 가지 않았다. 방 화는 장만이 입이 절로 터지기를 바라며 다른 때보다 많이 그의 앞으로 다가섰다. 그리고 자기를
검토 해보기도 했다. 아무리 생각 해봐도 그가 꺼려 할 일을 한 것 같지가 않다.
밤에 한침대에 누웠을 때 방 화는 참지 못 하고 말을 꺼냈다.
“신애아빠, 무슨 일이 있으세요? 제가 알면 안 되는거얘요?”
“아니요, 응당 알아야 하는건데 내가 아직 정리를 하지 못해서 고려 중인게요.”
“말씀 하세요, 함께 고려하고 정리하면 더 쉽게 풀릴 수도 있을텐데요.”
“동무한테 부담 될까봐서… 인제야 뭐 말이 났으니 터놔야지. 말 안 하면 동무가 더 근심 할게 아니겠소? 오늘 장에 갔다가 감옥에서 사귄 친구를 만났댔소…”
리 청산이라고 부르는 그친구는 금년에 서른살이니 장만이보담 열살이나 아래다.
그도 살인죄로 십년 판결을 받고 스무두살 먹은 해 장만이와 거의 같은 때 잡혔었다.
 
청산이는 옥중에서 반사공일을 하면서 장만이와 자주 만났고 많이 따랐다. 2년을 감형 받아 팔년이란 긴긴 세월을 일기로 반년전에 만기 석방된 그는 친구의 동생, 자기보담 열살 어린 처녀애와 결혼도 하였다. 그는 룡화시가지 나부랭이들의 “큰 형님”이다. 무직업인 그는 날마다 안해와 함께 “로인활동실”에서 마작치기로 시간을 보내고 “동생”들이 효도하는 돈으로 술을 마시고 놀았다.
그는 장만이를 보자 사람들이 북적이는 동시장마당 아스팔트 한 복판에서 무릎을 털썩 꿇고 큰 절을 하였다. 그거리에서 청산이를 모르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하기에 사람들은 장만이를 둬번씩 다시 돌아보면서 지나갔다. 청산이가 무릎 꿇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사람들은 알고 싶었다. 사람들이 청산이를 잘 알고 있는 까닭은 악명이 있어서가 아니였다. 그와 반대로 소란을 피우고 말썽을 이르키는 나부랭이 악당들을 나쁜짓 못하게 움켜쥐고 있기 때문이였다. 사람들은 그래도 청산이를 꺼려 하고 무서워 하고 멀리 하였다. 하기에 그를 감히 써주는 곳이 없다.
“큰 형님!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찾아뵙지 못한 동생을 용서 하십시오!”
“일어나라, 짜식! 반갑다!”
장만이와 청산이는 포옹 하였다. 길가는 사람들은 새 드라마 촬영이나 보는 듯한 눈길이다. 그들은 길가의 자그마한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청산이는 핸드폰 번호를 누르고 귀에다 댔다. 장만이가 핸드폰을 나꾸어챘다.
“야! 이자식아, 누굴 또 부르자는 거야?”
“아니요, 내마누랍니다. 형님께 인사 올려야지요.”
장만이가 귀에 대보니 녀자의 “여보시요” 소리가 맞는지라 핸드폰을 돌려주었다.
“빨리 총알 같이 오나, …동시장 정문 맞은켠 개미 식당… 빨리 막 날아오나.”
“청산아, 언제 잔치했니?”
“한 둬달  형님돼유. 한테 통지하고 싶었는데 주소를 알아야 어쩌죠? 형님, 근데 무슨일루 나오셨습니까? 며칠 푹 쉬구 가십시오. 이 동생이 능력은 없어두 형님만은 책임 질 수 있어요. 지금 내전화 하나면 몇십명이 달려와 저 대통로에 줄을 섭니다.”
“허튼 소리 집어치워! 아직두 새끼들 두목질이나 하구 사니?”
“아닙니다. 애들이 따르는걸 어째요? 이름도 모르고 면목도 없고 한데 형님형님 하는데 고개를 끄덕여 줄뿐이죠. 난 널 모른다, 형님이라고 부르지마, 할 때도 있죠. 그러면 어쩌구 저쩌구 나를 안다고 늘여놔요. 그래서 고개를 끄덕이는게 쉽다는걸 알았습니다. 그러니 또 내가 싹 다 받아주는 걸로 되지 않습니까? 어찌 할 도리가 없어요. 어느 무인도에 가서 살던지 아니믄 산속에 들어가 중질이나 하든지. 나온지 반년이나 되는데 아직도 무직업입니다. 인제는 벌어서 안해를 먹여 사려야 할텐데…”
“엣다, 너무 적어서 미안하다. 잔치 했다니 사발이래두 둬개 사서 써라.”
장만이는 백원짜리 스무장을 청산의 손에 쥐여 주었다. 청산이가 순순히 받을리 없다. 밀고 당기고 하는데 청산의 안해가 헐레벌떡 뛰여와 상옆에 서서 의혹스런 눈길로 두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돈은 식탁위에 떨어졌다.
“산옥아, 빨리 인사 드려라. 나의 큰 형님이시다. 내가 세상에서 숭배하는 사람은
아부지 엄마 외에 딱 이 형님 한분밖에 없다.”
 
“안녕하세요? 첨 뵙겠습니다.”
“안녕하오? 제수씨.”
“녜, 아주번님!”
장만이는 악수하며 한손으로 돈을 주어다가 산옥의 손에 쥐워주었다.
“잔치 하는 줄 알았드믄 참가 했겠는데… 적은대로 받아넣소.”
“감사합니다. 아주번님! 잘 쓰겠어요.”
청산이는 반찬을 한상 그득 차렸다. 별 다섯개짜리 고려촌술도 한병 샀다. 큰 잔 세개에 술을 골고루 부었다. 한병이 굽났다.
“형님, 이렇게 만나서 정말 반갑습니다! 오늘 형님 준 돈으로 술과 안주를 샀지만 언젠가는 진짜 내가 번돈으로 대접 할께요. 자, 상봉과 우정을 위하여 듭시다.”
장만이는 마시지 않고 입에 댔다 떼였다. 청산이는 억지로 권하려고 들었다.
“이놈아, 안 된다. 나 차 몰고 왔거든. 차 몰고 가야지?”
“예? 장춘에서요?”
“나 이사 나온지 오래다.”
“그래요? 연길에요? 그럼 우릴 데려가줘요. 형님 시키는 일이면 뭐나 다 할께요. 형님은 내성질 잘 아시잖습니까?”
“그러세요, 아주번님. 우리 연길에 세집 잡고 살면서 일 할께요. 똥푸는 일이라도 좋아요. 우릴 살려주세요! 아주번님!”
산옥이는 눈물을 흘렸다. 그눈물을 일자리 없는 고통을 겪어본 사람은 다 안다.
산옥이는 안성마춤한 체격에 스무살 갓 넘긴 나이에 이쁘게 생겼다. 반면에 청산이는 우둑지고 거무틱틱하고 말소리도 웅글지다. 부부간을 앉혀놓고 피끗보면 부녀지간 처럼 두세대의 사람으로 돼보인다.
“울지마라, 형님한테 억지 부리면 못 쓴다.”
“울지마오, 제수씨.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구 살길이 있겠지 뭐. 내
연길이 아니구 무서운 산골안에서 일 한다. 너네 젊은게 산골안에서 못 산다.”
“형님, 사실 살기는 산골이 더 좋습니다. 나는 언녕부터 혼자라두 이불짐을 메고 무인지경 두메산골에 들어가서 땅 뚜져 감자나 심어 먹구 아들딸이나 하나씩 낳아서 키우구, 좀 크믄 엄마가 애들 일이삼사 그느드르 가르치구 나는 농사두 짓구 약초두 캐구 그러면서 살고 싶었습니다. 사회 인간 관계라는게 정말 지겹구 피곤 합니다.”
“내가 로반이 아니니 가자 말자 못한다. 제수씨는 산골에 가기 싫지?”
“아닙니다, 우리 실랑재 어디 가믄 어디 가요. 산골이 아니라 지옥이래두요.”
“봐요, 형님. 거기에 형님이 계신데 우리 뭐가 무서워 못 갑니까? 그리구 이 청산이가 언제 뭘 무서워 하는걸 봤습니까? 형님, 가시믄 사장님하구 말씀 드려봐요, 좋은 일군이 있는데 받자구요. 받기만 하면 형님 얼굴에 먹칠 안 할겁니다.”
“글쎄, 사장이 여잔데 원칙성이 강해놔서 받잘런지 모르겠다.”
“먼저 내 출소한 놈이라는걸 말 마시요. 내 일 잘 해 위신 얻은다음 내절로 말씀
드릴께요. 출소한 놈이라면 누구나 꺼려요. 더군다나 여사장님인데. 휴ㅡ”
“내가 출소한 놈인걸 사장님이 다 아는데 니일 말 안 한다구 모를까?”
 
“그렇긴 하군요. 안되믄 안되더라도 속이지는 말아야겠습니다. 미쪄야 본재지 뭐, 시원히 싹 터놓고 말씀 하세요. 근데 산속에서 무슨 일을 합니까? 공장은 아닐께고.”
“돼지 먹인다. 어때? 싫지 않어?”
“싫긴? 내 뭐나 다 한다 했잖습니까? 우리 산옥인 똥푸개 시키십시요. 허허허…”
방 화는 장만의 소개를 대강 듣고나서 말 하였다.
“신애아빠, 당신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면 저도 믿을 수 있어요. 앞으로라도 이런 일은 당신이 결단을 내리고 나한테 영문을 알려주기만 하면 돼요. 큰 형님이라 부를 때는 큰 형님의 기세를 부리세요. 만약 간혹 틀렸다해도 인츰 시정 하면 되거든요.”
“감사하오, 리해 해주고 믿어주고하니. 가석방 전해 내가 5년 감형 받을 때 2년 감형 받은 친구요. 내뒤를 따라 3층에서 뛰여내리고 다리 부러진 나를 안아 차에 실어준 놈이란 말이요. 전화 쳐서 래일 당장 오라고 해야겠소.”
“아니요, 당신이 가서 직접 싣고 와야 해요. 큰 형님이시라면서 그런 것도 못 해줘요? 짐을 꾸려 놓으라고 지금 전화 치고 래일 아침 일찍 가서 싣고 와 여기에서 아침 먹게 만들어요. 그러니 우리는 그들의 숙식과 공작을 어떻게 안배 할 것인가를 먼저 결정 지어야 해요. 만약 그들이 자취 하려 하면 림시로 우리가 수리해놓은 낡은 집에 들게 하고 직공 식당에서 먹겠다고 하면 양로원 2층에 안배 합시다. 새해엔 아무래도 아파트 한채 져야 겠어요.”
“아파트 짓는건 후에 토론 하구 갸네 일은 내 장에서 오면서도 생각 해보았는데 청산이는 강쓰프 제자로 넣고 산옥이는 내 데리고 일 하면 어떨까 생각 했소. 그리구 정아바이 투디(徒弟)도 안배 해야 하오. 나무를 베여오는 힘든 일도 그렇고 그아바이 기술을 배워둘 사람이 있어야 하오. 그 두분은 확실히 손재간이 뛰여나단 말이요. 그 보귀한 기술을 이어가지 못하고 실전 되면 막심한 손해요.”
“당신의 기술도 실전 되면 안 되죠 뭐. 우리아들 크면 가르쳐야지롱. 호호호…”
“롱담 마오, 내건 기술도 아니요. 제일 쉬운게 근조(根雕)라는건데 볼줄 알고 상상력이 있으면 되오. 손재간이 크게 필요 없다는 말이요. 아니, 그건 그렇구. 갸덜 부부는 일 안배를 그렇게 하는게 일없겠소? 뿌리조각일이 없을 땐 호텔이나 휴가촌 복무원으로 써도 제격이요. 이쁘게 생겼거든.”
“어쩐지 이쁘니깐 데리고 있겠다는것 같으게 들리네요. 아니죠? 호호호…”
“롱담 말래두. 가만히 있소, 청산이한테 전화나 쳐보기요.”
청산이와 전화 련결이 인츰 되였다.
“청산이 맞냐? …나 니 형이다… 그래 맞어… 뭐? 노래방? …이자식아! 여직껏 술 처먹고 있단 말이야? 정신 좀 차려! 사장님께서 비준 했다. 래일 아침 데릴러 갈테니 일찍 짐 싸놓고 기다려라. 너 여기 와서 술 마시믄 안된다, 알고 와라응!”
“형님, 내 오늘 저녁 평생 마지막으로 술 먹는 겁니다. 존경하는 여사장님께서 날 받아줄줄 알았거든요. 안 받는다믄 내 찾아가 해낼라구 했어요. 왜 장만형님은 받고 그 동생은 안 받는가? 장만형님하구 무슨 관계인가? 하하하…사장님은 내 가 따질거
알구 절에 비준해 버렸군요. 똑똑한 여잠다. 전해줘요, 나같은놈 받아 손해 없다구요, 앞으로 충성 다 할거라구요. 형님, 감사 합니다. 수고 했어요! 드디여 새 생활의 첫
 
걸음 뗄 수 있게 되였네요. 형님 같이 축배 들었으믄 좋겠는데 섭섭 합니다. 잠간…”
“아주번님! 산옥입니다. 고마워요! 은공 영영 잊지 않고 열심히 살게요! 아주번님
지켜봐주세요, 그리구 잘 못 하는거 있으믄 제때에 꾸짖어주세요. 아주번님, 감사 합니다! 저의 아들을 대표하여 감사 드려요! 완전 검진을 받었는데 제가 임신이래요. 아주번님께서 축복 해주세요! 오늘은 저의 행운의 날이네요! 아주번님…”
“동생”들과 함께 노래방에서 장만이가 준 돈으로 행운을 축하 하는 모양이였다. 흥분한 그들은 장만의 통지를 겨우 듣고 련속 형님을 불러대고 아주번님을 불러대며 장만에겐 말 할 찜도 주지 않았다. 핸드폰을 귀에 대고 아무 말도 않고 있으니 방 화는 영문을 몰라 “뭐 해요?”하며 핸드폰을 뺏으려 들었다. 장만이는 한손으로 방 화를 물리치며 산옥이의 말을 다 듣고는 핸드폰을 닫으며 허허 웃었다.
“허허허… 쐉시 린먼(双喜临门)이구만! 두가지 경사가 겹쳤단 말이요. 허허허…”
“임신이래요?”
“엉? 허허허… 동무 정말 귀신 다 됐소. 어떻게 단통 알아 맞출 수가 있소?”
“피끗 생각하면 알죠, 왜 몰라요. 신혼부분데 뭐 다른 희사가 있게요? 호호호…”
“그 명석한 두뇌를 따를 사람이 없소. 근데 청산이 해낼라 올번 했소.”
“왜요? 내 뭐 잘 못 했게?”
“왜 형님은 받구 나는 안 받는가? 장만이 형님하구 무슨 관계인가? 허허허…”
“호호호… 웃기는 젊은이네요”
이튿날 아침 일찍이 장만이는 피카를 몰고 룡화에 도착 하였다. 약속대로 일백화 앞에서 청산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가리키는대로 몇개 골목길을 에돌아 단층집 구역에 이르렀다. 붉은기와 지붕에 흙벽으로 된 옛집이였다. 찌그러진 널판자 울바자 안팍에 사람들이 우글거렸다. 보니 몽땅 이삼십대의 청년들이다.
“다 왔어요, 형님. 새끼들이 오지 말라고 지지 말했는데 싹 쓸어왔습니다.”
“가만, 여기 뉘 집이냐?”
“우리 아버지 어머니집인데요?”
“계시니?”
“예.”
“그럼 내려서 인사 해야겠구나. 안 내릴라 했댔는데. 너네 재빌루 끓여 먹을라믄 사발이나 둬개 가지구, 집체식당에서 먹을라믄 아무것도 필요 없다. 바꿔입을 옷이나
둬개 들구 가면 된다. 치솔컵이나 가지구. 뭐나 다 있다. 가서 아침 먹게 서둘러라.”
“예, 알겠습니다.”
장만이가 차에서 내리니 청년애들이 량켠으로 갈라서며 찌그러진 사립문으로부터 정주문까지 통로가 났다. 정주문에 70세 좌우의 량주가 나란히 나타났다. 장만이는 애들이 내여준 통로로 곧게 걸어들어갔다. 늙은 량주도 문밖에 나섰다. 장만이는 로인들 앞에 이르러 한무릎을 꿇고 앉아 머리를 푹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아버님 어머님! 청산이 친구 장만입니다.”
“이게 무슨 짓인가? 일어나우, 어서 일어나.”
두로인이 함께 다가서며 장만이를 붇들어 일으켰다. 그리고는 그대로 집안으로
 
끌었다. 들어가 아침을 먹고 떠나라는 것이다.
“아닙니다. 회사에 돌아가 먹기로 계획 했습니다.”
“다 갖추어 놨다니깐. 그저 장국에 쌀밥이요. 청산이 친구믄 내자식 한가진데 어찌 부모집에 왔다가 밥 한 술 안 뜬단 말이요? 잔말 말고 들어가세.”
로인들은 놓아주지 않았다. 독자아들이 무리쌈에 투옥 돼 속 태우고 요행 출옥을 기다렸는데 나와서 일자리를 못 찾아 또 속 태웠다. 헌데 좋은 친구가 있어 일자리를 안배 해준다니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부모들이다. 할 일 없이 놀다가 굽은 길이나 걸으면 어쩌랴 하는 부모님들의 근심인 것이다.
정주문에 들어서니 밥상을 차리고 있던 산옥이가 몸을 일으키고 목을 굽혔다,
“어서 올라오세요, 아주번님!”
“잠간, 아버지, 그손 놔요. 우리형 도망 안 가요. 아직 상 덜 차렸으니 형님 이리 잠깐 나와 봐요. 애들이 보자네요.”
청산이가 다시 밖으로 끌었다. 장만이는 끌면 끄는대로 따르는 수 밖에 없었다. 장만이가 문밖에 나서자 2-3십명 젊은이들이 일거에 한다리를 꿇고 몸을 낮췄다.
“형님! 반갑습니다!”
방금 장만이가 로인들한테 인사하던 동작을 그대로 모방하였다.
“됐다, 모두 일어들 나라!” 청산이가 소리질렀다. “그리구 잘 봐라, 이분이 나의 큰 형님이시다. 앞으로 시내에서 만나면 무릎 꿇어야 한다. 그리구 내 없다구 해서 절대 아무짓이나 망탕 하지 말라. 실수두 좋구 잘 못두 좋구 범하면 안 된다. 우리는 콩밥 먹어봤으니 안다, 얼마나 먹기 바쁜지 너넨 모른다. 절대 콩밥 먹을라 가지말라. 이게 형님들 부탁이다. 그리구 인젠  집에 가 아침들 먹구 제 할 일들을 해라. 나두 아침 먹구 떠나야겠다. 형님 애들한테 한마디 하시죠.”
청산이가 장만이의 강화를 요청 했다. 마주 섰던 애들이 한결 같이 박수를 쳤다. 장만이는 난감 하였다. 애들의 놀음인지 조폭인지 전혀 습관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나 몰라라 할 수도 없었다. 어제밤 방 화는 누가 큰 형님이라 부르면 큰 형님 기세를 부리라고 했다. 한번 부려보고도 싶은데 방법을 모른다. 한손을 들어 박수를 끊었다.
“형제들, 처음 만나 형님이라 불러주니 기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형님이란 동생들을 위하여 뭔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이여야 한다. 헌데 나는 형제들을 위하여 한
일도 없고 또 할 수도 없고 그런 사람이다. 나는 지금 가석방 중이다. 조금만 걸려도 다시 들어가야 하는 몸이다. 아직 사오년이나 남았거든. 우리들의 전과를 교훈으로 삼아 누구나 법을 위반하지 말고 실수 하지 말고 살자. 됐다, 이만이다.”
애들이 또 박수를 쳤다. 장만이는 돌아서면서 핸드폰을 꺼내 번호를 눌렀다.
“방 사장님, 제 장만입니다. 아마도 아침을 먹고 가야 하겠습니다. 로인님들께서 그냥 놔주지 않아서요… 예, 밥을 먹고 곧 떠나겠습니다.”
고급적인 반찬은 아니지만 이가정의 음식습관과 주부의 음식솜씨를 잘 보여주는 깔끔하고 입맛 당기는 아침상이였다. 남자 셋이 큰상에 삼각으로 앉고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작은 상에 마주앉았다. 청산이가 아버지와 장만의 잔에 반지술을 부었다. 장만이는 잔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술병을 가져다 로인의 잔에 한잔 붓고
 
청산의 잔을 쥐고 몸을 돌려 청산이 어머니에게도 한잔 부어올렸다.
“청산아, 이잔 니가 마셔버려. 나 차운전 해야니깐. 아버님 어머님, 제가 부은 잔
드세요. 건강 하시구 오래오래 앉으세요!”
“고맙소, 우리 아이들 잘 부탁하네.”
“안심 하십시요. 우리사장님 마음 고와요. 그리구 아버님 어머님 일 있으시믄 청산이 한테 전화 주세요. 청산이두 자주 전화 드릴거구요.”
“물론 안심 하지, 안심 하구 말구.”
“일요일은 보통 휴식 하니깐 아들며느리 뵈러 올겁니다. 그리구 이사람들이 가서 일도 손에 잡히고 생활도 습관 되여 정상이 되고 하면 제가 아버님 어머님 모시러 올게요. 그곳에 가셔 하루 쉬면서 아들 며느리도 보고 놀다 오시게요.”
“고맙소, 우리 근심은 말게.”
아침을 먹고 나와보니 애들이 반쯤 줄어들었다. 남아 있는 애들은 차가 떠날 때 다같이 경례하고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제수씨, 축하하오. 청산아, 너두 축하한다.”
장만이가 입을 열었다. 보조석에 앉은 청산이가 눈을 슴뻑거린다.
“감사합니다! 많이 부탁드리겠습니다.”
산옥이가 축하의 인사를 받았다. 청산이는 그제야 내용을 알고 히죽이 웃었다.
갑수동에 이른 청산이와 산옥이는 눈을 크게 뜨고 야야하며 경탄소리만 냈다. 그들은 들가방 하나씩 들고 장만이를 따라 사장사무실로 들어갔다. 사장 같아보이는 여자에게 깎듯이 경례한 후 그여자가 권하는 쏘파에 앉았다.
“나는 이회사의 책임자 방 화라고 불러요. 수선 청산씨와 산옥씨가 우리 회사에 입사 하는 것을 열렬히 환영하는바입니다. 김 장만총경리님 한테서 두분의 소개를 잘 들었어요. 특히 김경리님은 청산씨를 친동생처럼 철석같이 믿더군요. 내가 경리님을 믿는 이상 그의 말을 믿어야 할거고 청산씨를 믿어야 하는거죠. 우리의 믿음이 틀림 없기를 바라며 공동히 노력합시다. 신입 공인은 월급이 팔백입니다. 적은것 같지만 그것도 다 쓰지 못해요. 호호호… 숙식을 다 공급하는데다가 노래방이 없지 술집이 없지 상점이 없지 마작청이 없지 돈 쓸 곳이 없습니다. 이것이 무공해 산촌이라는 것이지요. 근검절약 하고 간고분투 하는 곳, 웃음과 사랑ㅡ행복이 넘쳐나는 고장이 여기입니다. 지금 사람들은 무공해 입쌀이요, 록색 식품이요 하는 말을 많이 하는데 무공해 정신 환경에 대해서는 뒤전입니다. 록색남새를 먹고 무공해 입쌀을 먹는다고
건강하고 오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정신상태가 건전해야 합니다. 정치는 이만하고요 먼저 짐을 침실에 가져다 두고 로동 인사부에 가서 입사수속을 하세요. 최부장한테서 규장제도 설명이랑 잘 듣고 합동서에 싸인 하도록 하시요. 입사 수속을 끝낸다음 총경리님의 공작 안배에 따르면 됩니다. 앞으로 무슨 곤난이나 문제가 있으면 김 장만총경리님과 많이 련계하세요. 그리고 산옥씬 갓 임신 했으니 몸 조심해야 합니다. 특히 첫 애이니깐 많이 조심하고 남편되는 사람은 안해를 많이 돌봐주어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방사장님!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잘 할게요.”
“고마워요. 저두 잘 할게요. 원래 농사짓던 여자 돼나서 일은 신심이 있어요.”
 
그들은 일어나 오래도록 머리를 숙여 방 화에게 경례 하였다. 이런것을 재생의 경례라 불러야 할 것이다. 진정으로 삶의 길 희망의 길을 찾은 것이 아니겠는가?!
“형님, 방사장님 형님을 좋아하는것 같더구만요. 인물체격이 일등이구, 능력이
일등이고 게다가 돈도 많겠다…”
“하하하… 뭐 같더라구? 멍청한 자식, 안해가 남편을 좋아 하잖으믄 어찌 사니?”
“예?! 안해? 우리형수님?…”
청산이는 장만이를 따라 양로원으로 짐을 두려 갔다. 직공 숙사에 자리가 없기에 양로원의 방에 빌어 들고 밥은 직공식당에 와 먹게 되는 것이다.
10월 중순, 장백산엔 단풍도 일찍이 든다.
갑수동 “송자호텔”이 전부 완공 되였다. 갑수동”흥농휴가촌” 일기 건설도 마무리 되여 손님들을 영접 할 수 있게 되였다. 헌데 시운영 가운데서 문제가 생겼다. 물이 딸렸던 것이다. 호텔 윗층엔 2차 급수기로 옥상에 물을 끌어올려 다시 아래로 공급 하게 되여 있다. 그런데 끌어올릴 물이 없었다. 3만여마리의 돼지가 하루 종일 물을 먹어야하고 하루에 한번씩 천여㎡ 되는 돈사 바닥을 물로 쏴야하고 하루에 한트럭의 감자를 깨끗이 세척 해야하며 열돈짜리 보일러에 24시간 물을 공급 해야 한다. 하루 다섯돈 물을 비닐병에 담아 팔아야 할 뿐만 아니라 산동에서 온 농민공들까지 합쳐 이백여명 되는 사람들의 음수와 생활용수를 공급해야 한다. 
사람들은 골머리를 앓았다. 심층양수기를 박을 것인가 아니면 천동하의 물을 끌어 올릴것인가? 공정비용은 어느쪽으로 하든 다 만원좌우로 많지 않는데 천동하의 물은 겨울에 밑바닥까지 얼어붙을 수가 있고 심층 양수기를 박는다는 것은 물길을 찾지 못해 실패 할 가능성이 많다. 결국 두가지 방법을 동시에 사용 해보기로 결정 지었다. 보일러실에 심층양수기를 박는 한편 천동하의 물이 상류로부터 흘러들게 지하 인수로를 깊게 팠다. 거기에 물은 모두 돼지와 기계가 쓰는 것이고 한켠에 집중되여 있으니 강물을 끌어다 쓰는 것이 편리하다.
정석이는 여름 내내 굴토기를 몰고 촌민직공들이 일년 전에 버려둔 집과 림업국 가속이 십여년전에 버리고 간 집들을 짓뭉개버리고 현재 촌민직공들이 사는 단층 온돌방 주택 남쪽으로 족구장 둬개만큼이나 큰 정차광장을 닦았다. 정차광장이란 정차도 하고 광장으로도 사용하고 그러리란 뜻이다.
007년도엔 고기돼지 생산에서만도 5백만원의 순리윤을 넘겼다. 돼지고기 가격은 여전히 멈출줄 모르고 상승하고 있으니 08년에는 백만원을 더 예상 해야 할 것이다. 기타 종목의 생산에서도 70만원을 내여 전해보담 5만원을 더 냈다.
방 화는 확대 재생산 비용으로 백만원을 떼여놓고 몽땅 분배 하였다. 사람마다 장려금이나 분홍액이 전해보담 배로 늘어났다. 누구라 할 것 없이 좋아서 야단이다.
청산이와 산옥이도 반년사이 5천원씩 로임을 타고 장금도 만원씩 탔다. 산옥이의 배는 완전히 다 불렀다. 이제 두달이 있으면 나오게 되는 것이다. 방 화는 산옥에게 열달 휴가를 주었다. 애기 낳아서 젖을 뗀다음 다시 출근 하게끔 한 것이다.
첫 눈이 내리자 스키 썰매장 시운영을 하였다. 정식운영은 일년 후에 할 것이다.
옛날 산촌의 아이들은 자연 썰매장에서 뒹굴며 겨울을 났다. 자연의 품속에서   
 
자연을 만끽한 것이다. 오늘의 아이들은 자연과 멀어지고 있다. 어른들은 머리속에 동년을 떠올릴 수 있고 애들은 아름다운 추억을 가슴속에 품을 수 있는 그런 갑수동 썰매장이 되여 보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으면 하는 방 화의 바램이다.
방 화는 4월 12일에 개업식을 하려고 서두르다가 석달을 미루었다. 생각 해보니 산골짜기의 눈도 채 녹지 않고 잔디도 살아나지 못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백두산 천지의 눈도 녹지 않아 관광객도 없다. 그러니 조급해서 될 일이 아니였다.
5월 12일 오후 새참에 방 화는 가장 불행한 소식을 들었다. 사천성 문천지구에 8급 특대 지진이 일어난 것이다. 지진이 가져다주는 재앙은 말 할 수 없이 가혹하다. 몇초 사이에 수많은 가옥을 박산내고 무수한 목숨을 앗아간다. 인류는 어찌하여 자연의 노예로 살아야 하는가? 방 화는 한숨이 나갔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자식을 잃었고 또 얼마나 많은 어린애들이 고아로 되였을까? 방 화는 가슴이 아팠다.
북경 올림픽운동회 개막이 석달도 남지 않았다. 올림피클 성화가 세계를 휩쓸며 사랑, 평화, 분투, 진보는 더 빨리 더 높게 더 세게 하고자 화기를 뿜고 얼마전 귀국 하여 신주의 남단으로부터 중화민족의 자부심과 애국주의를 불러 일으키고 부강하고 조화로운 사회를 만들고자 념원을 뿌리며 북으로 올라오고 있다. 온 사회는 올림피클 열기로 끓고 올림픽의 동풍을 빌어 경제, 문화, 국방과 과학기술, 전반 사업이 한단계 껑충 뛰여 오르리라 저저마다 주먹에 침을 뱉어 움켜쥐고 정신을 도사린다.
올림피클 운동회를 계기로 대도약을 꿈꾸는 중화민족 앞에 재난이 떨어진 것이다. 중국인민은 당의 령도 아래 재해를 전승 할 뿐만 아니라 전진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한곳에서 곤난에 봉착 했을 때 사면 팔방에서 구원의 손길을 뻗혀야 한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안다. 국무원 총리가 구재사업을 직접 지휘 하고 있으며 당중앙 주석도 지진 난 곳에 찾아가 피해민들을 위문 하고 구재 전투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을 고무 격려 하였다. 방 화도 당금 자원봉사자의 일원으로 되여 현장에서 박투 하고 싶었다. 생명을 구하고 남을 위하는 페허속에 자신을 던지고 싶었다.
오랜 시간을 페허속에 묻혔다가 구원된 어린아이는 자기를 담가에 들고 뛰여가는 해방군 아저씨들을 향햐여 누운채로 오른손을 머리 위에 들어 소선대 대례를 올린다, 강의한 어린 생명의 숭고한 재생의 경례이다!
방 화는 저녁마다 밤 늦게까지 남편과 함께 TV의 “항진구재 중지성성(抗震救灾 众志成城)”이란 전문프로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방 철이아빠, 우리도 재해지구에 돈 좀 보내는 것이 어때요?”
“응당한 일이지. 돈을 버는 것이 그런 일에 쓰려는 것이 아니겠소?”
“얼마나 보낼까요?”
“동무가 알아서 결정 하오. 근데 우리 말고도 많은 직원들이 헌금 하고퍼 할텐데 우리가 조직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글쎄요… 급해 말고 조금 천천히 봅시다. 우리가 시켜 집금 하는걸로 되지 말고 직공들이 자원으로 일떠나게 합시다. 아마 시에서도 이제 무슨 지시가 있을거얘요.”
방 화는 이튿날 은행에 가 중국 홍십자총회 사천지진 구재 전문 계좌에 지원금
이백만원을 넣고 나서야 저그마한 안위를 얻을 수 있었다.
 
나라의 정책이 좋고 좋은 시절을 만나 돈깨나 벌었다는 자신이 나라가 곤난에 봉착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페허 속에서 구원의 손길을 바랄 때 모르는척 수수방관 한다는 것은 가슴에 내려가지 않는 죄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방 화는 무슨 일을 하나 남들 몰래 조용히 하기를 좋아한다. 민간엔 옛적부터
“돼지는 살 찌는 것이 무섭고 사람은 이름 나는 것이 무섭다”는 말이 있다. 방 화는
살찐 돼지가 되여 잡혀 먹히고 싶지 않았다. 헌금 하는 일도 일부 사람들은 돈 자랑 한다며 비난 할 것이고 또 돈이 조금 있는 줄을 알면 가착 없이 뜯어내려고 하는 축들이 꾸역꾸역 몰려 들 것이다. 자기가 하고픈 일을 하는데 남들이 이렇쿵 저렇쿵 손가락질 하는 것을 누구도 원치 않을 것이고 하고 싶지 않는 일에 억지로 끌려든는 것은 더더욱 원치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방 화는 모금 활동을 조직 하자는 남편의 제안을 참고 미루자고 한 것이다.
사천 특대지진이 일어나 닷새 되는 날, 방 화가 헌금 한 이튿날 오전 정 설아가 방 화의 사무실로 찾아왔다. 사무실에서는 해연이와 방 화가 군중 모금활동 문제를 한참 담론 하고 있는 중이였다.
“사장님, 우리는 모금활동을 안 합니까? 문천 대지진 구재 말이얘요.”
“글쎄다, 하면 좋겠니?”
“해야죠, 전국에서 다 하는데 우리라고 빠져서 돼요?”
“니 생각일뿐이지 모두 그렇게 생각 하겠니?”
“아래에서 공인들도 일하면서 지진 이야기밖에 없다고 우리련길씨 말 하데요.”
“지진 이야기 하는거야 당연하지. 돈 내는 것과 같으니? 사실 우리도 모금활동 문제를 토론 하던 중이다. 직공들이 모두 참여 하겠다고 하면 조직 하고 그렇잖으면 우리끼리만 몇이 할까 한다.”
“안돼요, 다 하잘거얘요. 군중들을 몰리고 간부들만 좋은 일 하면 욕 먹어요.”
“우리는 군중들을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인데 욕한다고?”
“그럼요. 회사의 덕분에 모두 부자가 되였는데 회사에서 조직 하는 일에 빠질 사람이 어데 있어요? 그러면 량심도 없지요.”
“설아야, 니 말 맞는데 이런 일엔 누구나 추호라도 억압감을 가져서는 안되거든, 그러니 조급해 말고 천천히 하자. 하기는 꼭 할거니깐 근심 말고 기다려라.”
퇴근 후이면 집집마다 텔레비를 보는터라 특대지진이 가져다 준 참담한 피해와 피해와 맞서 싸우는 감격적인 사적들을 사람들은 똑똑히 알고있다. 하루 사이 설아의
입을 통해 지진 재해지구를 돕는 모금활동을 곧 할 것이라는 소식이 온 사무청사에 전해지고 여러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 회사에 퍼졌다. 많은 사람들이 모금활동을 언제 하는가, 얼마씩 내야 한는가를 서로 탐문 하고 방 화나 장만이를 직접 찾아와 묻기도 하였다. 방 화는 때가 되였다고 생각 하였다.
군중들이 발동 된 것은 회사의 지도부가 동원 한 것이 아니였다. 중앙 TV프로가 그들로 하여금 모든 것을 알게 하고 일어나게 하였다. 그들이 절로 일어나기 전에 모금활동을 벌렸다면 질적이나 량적으로 손해가 클 것만은 사실이다.
마침 중앙에서는 지진이 폭발한 이레날인 19일부터 3일간을 애도의 날로 정하고
 
19일 14시 28분부터 3분간 묵념 한다고 전국에 공포 하였다.
3분간의 묵념이 끝나는 즉시로 모금활동을 개시 하기로 방 화는 결정 짓고 14시
15분에 회사의 모든 작업을 정지 하고 전체 직공들이 사무청사 마당에 모이도록 각 직장장들에게 지시 하였다. 강위를 확실히 떠날 수 없는 사람은 강위에서 3분간만
일을 정지 하고 일어서서 자각적으로 묵념 하도록이 통지 하였다.
양로원 로인들도 규정된 시간이 되면 당신들의 침실에서, 휴식터에서 자각적으로 묵념 하시도록 통지 하라고 홍 성자원장에게 지시 하였다. 헌데 오후 두시가 되자 로인들이 서로 부축하며 떼를 지어 제일 먼저 사무실 마당으로 왔다. 3층 사무실에서 몰려오는 로인들을 보자 방 화는 급급히 뛰여 내려왔다.
“아버님, 로인님들께선 집에서 묵념 하시란데 기어이 나오셔요?”
방 화는 제일 앞장에선 병찬로인의 팔을 잡으며 나무람조로 말하였다. 보나마나 양회장의 책동임이 뻔하였다. 양로원에 로인협회를 설립하고 양 병찬로인이 회장으로 당선 된지도 3개월이 되였고 한달전엔 문 복순 할머니와 잔치를 하고 한방에 들기도 하였다. 제일 뒤에서 설아시어머니가 설아의 할아버지 국영로인을 부축하고 이야기 나누며 걸어오고 있었다. 왕 계란과 정 국영은 한고향 사람들이고 사돈간이라 부녀 사이처럼 친근하게 보낸다.
“아가야, 옛적부터 잔치집엔 안 가더라도 제사집엔 꼭 가야 한다고 했다. 하물며 오늘은 국상 날인데 나라의 덕에 살고 있는 우리가 어찌 문상 하지 않겄냐?”
양로인의 말에 방 화는 대꾸 할 말이 없었다.
로인들의 신체에 무리 할까봐 고려 하다보니 그들의 마음에 신경을 쓰지 못 했다. 아직도 삼십여분을 서서 뻗혀야 하니 일부 로인들로서는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방 화는 직공 식당으로 달려 들어가 허 미옥이네를 동원 하여 걸상들을 들고 나와 여기 저기에 놓고 로쇠 하신 로인들은 앉아서 기다리도록 하였다.
사무청사 정문 밖의 층층계 평판에 그늘을 지우고 비를 막는 평탁이 있는데 그 평탁 두 기둥 사이에 검은천을 걸었다. 거기에는 “5.12지진으로 숨진 동포들을 삼가 추모 한다!”라고 흰종이 글씨가 부쳐져 있다. 14시 25분경, 사무청사 마당에는 이백 여명 사람들이 모였고 돈사나 공장에서 나와 둔덕아래에서 뛰여 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장만이가 걸상 위에 올라서서 높은 소리로 말 하였다.
“여러분! 시간이 곧 되여옵니다. 모두들 가운데로 모이시요! 제가 이제 곧 ‘묵념!’ 하고 웨칠테니 다 같이 저 검은천을 향해 머리를 숙이고 지진 재해에 목숨을 빼앗긴
불쌍한 사람들을 생각 하며 엄숙히 서 계셔야 합니다! 제가 ‘그만!’ 하고 웨칠 때까지 말입니다. 젊은 분들은 로약하신 어르신님 한분씩 팔을 잡아 드리시요!”
장만이는 걸상에서 내려 검은천을 향해 돌아서서 “묵념!”을 높이 웨치고 머리를 숙였다. 사람들은 따라 하였다. 장엄하고 비통한 기분이다. 청사도 청산도 머리 숙이고 침묵에 빠져 우는듯 하였다.
방 화는 장만이가 걸상에 올라섰을 때부터 촬영기로 그를 묘준 하였다. 검은천 프랑카드를 찍고 장만이를 찍고 머리 숙이고 서있는 사람들을 찍었다.
장만이가 머리를 들며 “그만!” 하고 웨치자 사람들도 머리를 들었다. 장만이는
 
다시 걸상 위에 올라섰다. 사람들을 한바퀴 둘러보고는 높은 소리로 말 하였다.
 “여러분! 우리는 비통한 마음으로 사천 ‘5.12특대지진’에 세상을 뜬 사람들을 추모 하였습니다. 우리는 비통을 힘으로 바꾸어 맡은바 일에서 성과를 거두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들이 TV에서 본바와 같이 이번 특대 지진은 수많은 사람들이 친인을 잃게 하고 부상을 입혔으며 삶의 터전과 보금자리를 빼앗아 갔습니다. 우리는 중화 대가정의 일원으로서 재난에 빠진 우리 부모 형제 자매 자식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보내야 합니다. 오늘 여러분들의 념원에 따라 모금함을 준비 했습니다. 조건이 허락 되시는 분들은 백원도 좋고 십원도 좋고 일원도 좋으니 넣어주면 감사하겠습니다. 우리는 돈보다도 사랑의 손길을 보내고 사랑의 마음을 나누자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서로서로 손 잡고 나누면 커지고 곤난이란 서로서로 손 잡고 나누면 작아지는 법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도 재해지구의 복구건설에 저그마한 힘이라도 보태줍시다! 이함이 다섯시까지 이 자리를 지킬터이니 여러분들께선 자원의 원칙에서 돈을 넣어주십시요. 절대로 어려운 일들은 하시지 말길 바랍니다.”
장만이가 연설 하는 사이 청산이가 붉은 종이로 감싼 빡스를 내여다 걸상 위에 놓았다. 종이함 앞면에 “구재모금”이라 쓰고 위에 구멍을 내였다.
장만이는 연설을 마치고 걸상에서 내려섰다. 그는 품속에서 붉은색 돈 한묶음을 꺼내여 맨 처음으로 모금함에 넣었다. 그뒤를 청산이와 사무실 일군들이 한줄로 서서 따랐다. 누가 규정이라도 한듯 너남 없이 만원씩이였다. 직공들도 질서 있게 모금함 뒤로 하나하나 지나갔다. 그들도 토론 결정이나 한듯 일률로 이백원씩 넣었다.
직공대오의 뒤에 양로원 로인들도 한줄로 이어섰다. 일부 로인들에겐 친척이나 친구가 준 소비돈이 조금씩 있을 것이다. 다수의 로인들은 빈손이다. 빈손으로라도 그들은 모금함 뒤로 지나가고 싶었다. 하여 양 병찬로인의 지휘하에 줄을 서서 뒤를 따르고 있는 것이였다.
방 화는 촬영을 계속하며 장만이를 눈더듬질 하였다. 마침 사무청사에서 뛰여 나오는 장만이와 눈길이 마주쳤다. 장만이는 돈 한묶음을 추켜들고 방 화에게 흔들어 보였다. 방 화는 환히 웃으면서 머리를 한번 끄덕였다. 장만이는 로인들에게 차례로 백원짜리 두장씩 뽑아 나누어 주었다. 로인들도 그뜻을 잘 안다. 로인들 마다 허리를 굽혀 감사를 표하며 사양 없이 돈을 받아 쥐였다. 그들도 당당하게 모금함 뒤로 지나며 웃으면서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마치 유아원 어린애들의 놀음 같아 보이지만 로인들의 마음이나 방 화나 장만이의 마음을 뭐라고 형용 할 수 있겠는가?
“난 돈 있으니 안 줘도 된다.”
제일 마지막 사람으로 뒤따르는 양 병찬로인이 장만이가 나눠주는 돈을 받으려 하지 않았다. 그의 손엔 이미 천원가량의 돈이 쥐여져 있었다.
“아버님, 이돈 자식이 드리는 것이니 사양 마시고 받아 보태여 내요. 모금활동에 안 참가시킬라고 집에서 묵념만 하시라 했었는데요, 우리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로인들을 제사에 빼놓으면 안 되고 또 제사에 와 부조 안 하는 법이 없는거지.”
“그럼요, 잘 알겠습니다. 로인님들의 부조돈은 자식들이 챙겨드리는 법이죠?”
“옳은 말이다만 느그들 돈 너무 많이 쓰는거 아니냐? 페물짝 같은 늙은이를 하도
 
많이 거두다나니 고생이 크구나…”
모금활동이 끝나 사람들은 모두 자기강위로 가고 로인들도 양로원으로 돌아갔다.
재무과에서 책상 하나를 들고 나와 넷이 둘러앉아 모금된 돈을 정리하고 있었다.
“방금 호주머니에 넣고 온 돈이 없어 산옥이 한테서 급급히 이백원을 꿔서 냈소. 이것이 오천원인데 적은대로 보태오.”
강 석범이 돈 한줌을 쥐고 뛰여 와 책상 위에 놓았다. 조금 후 정 국영로인이
저금통장을 가져다 방 화의 손에 쥐여주며 말 하였다.
“이돈 나한텐 소용 없으니 령도에서 몽땅 찾아서 재해 받은 사람들한테 보내주게. 내내 남의 도움만 받으며 살아왔는데 나도 조금이나마 남을 도와주고 싶은거요.”
방 화가 받아 펼쳐보니 만 사천원이 적금 되여 있었다.
“아버님, 감사 합니다! 아버님 말씀대로 할께요. 아버님, 그 통장을 저 부장님께 드리면서 방금 하신 말씀 다시 하세요… 그리고 로부장님, 천천히 받으면서 감사의 말씀을 드리세요. 호호호… 제가 뭐 텔레비죤 기자나 된 듯한 기분이네요.”
모금함의 돈을 다 정리 하였고 시간도 저녁 다섯시를 넘겼다. 그사이 장만이가 10만원을 더 내고 해연이네 부부가 10만원을 더내고 설아네 부부가 10만원을 더 내고 방 숙이네 부부가 10만원을 더 냈다. 전기 공정사 리 영섭이 4만원을 더 가져왔고 련길이 어머니도 5천원을 더 가져왔다. 그러다보니 설아네 세식구는 12만 5천 이백원을 헌납 한 셈이다. 방 화는 정 강의 할아버지를 대신하여 만 사천원을 내고 그의 저금통장을 보관 하였다.
“방사장님, 지금까지 모금 총액은 67만 구천 팔백입니다. 어데다 납부 할까유?”
“래일 민정국에 가셔 윤국장님을 찾으세요. 리재민 문제는 언제나 민정부문에서 관할 하더군요. 모금행사도 그들이 조직 하지 않을까요? 청산이와 련길이를 데리고 함께 가세요, 안전을 위해서 말입니다. 그리구 이 촬영 한걸 테프로 만들어 드릴테니 윤국장님께 넘기세요. 혹시 유용 할런지? 알아서 처리 하겠죠.”
22일 아침과 저녁 텔레비 뉴스에 방 화가 촬영한 흥농회사에서 수재민들을 위해 묵념 하고 모금 하는 화면과 대화가 7-8분간 나왔고 편집자의 론평도 방송 되였다.
그날 오전이였다. 방 화의 사무상 위에 놓인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흥농회사의 방 화입니다.”
“안녕 하세요? 여기는 시홍십자회입니다. 사장님을 바꿔주세요.”
한 여인의 고운 목소리였다. 방 화가 사무실 전화를 가설 할 때엔 114에 등록 하지 않았었는데 근년에 우전국에서 등록 시켜놓았는지 흥농회사라는 이름만 알면
전화를 들이 칠 수 있게 되였다.
“무슨 일이신지 저하고 말씀 하세요.”
“아닙니다. 사장님께 직접 말씀 드리고 싶은데요.”
“잠깐 기다리세요, 제가 총경리님을 모셔올께요.”
방 화는 장만이를 불러 데리고 오면서 사연을 말 하였다.
“아마 아침 뉴스를 봤을거고 당신을 사장으로 여겼을 겁니다. 보나마나 구재 모금일일거얘요. 혹시 당신의 멋진 모습에 반한거나 아닌지 모르겠어요. 호호호…”
 
“동무 눈엔 그남자 그렇게 멋지오? 내 보기엔 별로더구만 뭐. 허허허…”
장만이는 롱담을 받으며 방 화의 사무실에 들어서서 송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전화 바꿨습니다.”
“안녕 하세요? 총경리님. 저는 시홍십자회 비서처의 리 하늘이얘요. 바쁘실텐데
이렇게 전화를 드려 죄송해요. 오늘 아침 뉴스를 봤는데요…”
 “여보시요, 간단히 용건만 말씀 하시요. 구재금을 헌납 하라는 것이 아닙니까?”
“맞아요, 바로 그일입니다…”
“뉴스를 보셨다면서요? 민정국에 바쳤다고 했잖습니까? 67만 구천 팔백을요.”
“알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사랑의 마음을 좀 더 표현 할 수 없으실런지 해서요.”
“제가 사랑의 마음이 부족 했다는 뜻이군요. 허허허… 동무들이 재해민들을 위해
수고 많은줄 알겠는데요, 그런 일을 왜서 먼저 전화 받은 사장님과 말씀 드리지 않고 그분이 자기와 말씀 하라는데도 마다하고 기어이 사장님을 바꿔 달라고 하셨습니까? 그리고 지금 전화 치는 분이 진짜 홍십자회 분인지 누가 알겠습니까? 아마도 당신들 계좌에 헌납금을 넣으라고 할터인데 어떻게 믿죠? 다음은…”
“못 믿으시면 우리가 증명서류와 령수증을 지니고 찾아 가겠어요…”
“우린 이미 중화홍십자총회에 돈을 보냈습니다. 그러니 수고 안 하셔도 됩니다.”
“그랬군요. 원래는 우리를 거쳐 보냈더면 좋았을텐데요… 얼마를 보냈어요?”
“밝혀야 합니까? 우리는 남들 모르게 한 것인데요.”
“우리만 알고 있을께요. 계통별, 지구별로 통계를 하라고 하기에 그러는 거얘요.”
“그럼 꼭 비밀로 해주시요. 이백만원 보냈습니다.”
“녜?…”
하늘이라 부른다는 여자가 놀란 소리를 지른 후 숨이나 넘어간듯 오래도록 아무 말 없이 감감한지라 장만이는 송수화기를 놓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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