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에서 나무껍질 벗기는 고된 밤일 마치고
새벽에 퇴근해 눈 좀 부쳤다가
아버지의 아침 출근 위해 부엌에서 서성이던 엄마가
챵! 졸도해 쓰러졌다, 이남박이 나동그라지고
노란 강냉이 쌀이 금알처럼 부엌 한가득 널렸다
가마 덮개에 맞은 이마에 닭알 하나 생겼다
애들은 놀란 병아리 되여 파닥거렸고
엄마는 인차 눈을 떴다
이마를 만져보더니 닭알 하나 생겼네… 히히…
아파? 아파? 죽지마! 죽지마!
안 아파, 안 죽어! 닭알까지 생겼는데 왜 죽어… 히히…
눈물 범벅이 된 다섯 오누이들을 한품에 안는다
요 닭알에서 이제 병아리가 까날꺼야
잘 키워 큰 닭 되면 알 많이 낳을걸
니들 닭알 좋아히니 많이 먹이고 남는거 부화시켜
또 병아리 깨워 닭무리 만들걸
앞마당 뒤마당 꼬꼬댁 꼬꼬댁 구구구 구구구…
우리 집 닭공장 되겠다…히히…
하하하… 호호호…킥킥킥…
닭공장 꿈 꾸며 맛있게 아침 밥 먹던 그날 같은 아침
몇 백, 몇 천 개 흘러 지나가고
큰 닭이 되여 푸닥푸닥 날아가 버린 자식들 기다리다
구름 된 엄마, 엄마…
엄마 된 구름, 구름…
섣달 하늘이 병아리떼 가득 품고 있다
집
여자는 자신이 한 줄기 샘인줄 알고 있었다. 별들도 내려와 놀다가 너무 맑아 놀라워 하는 티없는 샘인줄 알고 있었다. 샘이라면 솟자마자 몸을 낮춰 자신을 숨기겠는데 결 고운 소리에 깜짝깜짝 정신 잃으면서 솟대가 되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부끄러운 마음에 어깨를 내렸다
여자는 빛으로 지은 집에서 살고 있었다. 너무 빛부셔 누구도 쳐다보지 못하는줄 알고 있었다. 거미줄에 얽힌 이슬 속에 담긴 빛들이 뛰쳐나와 팍팍 터질 때 누리가 그토록 아름답다는 걸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랐다
여자는 어둠 속에 갖혀 이 세상에 없는 문자를 만들고 있었다. 자신도 읽을 수 없는 문자들이 숨이 되여 할딱거렸다. 숨은 면도날처럼 아찔했고 송곳처럼 예리하기도 했다. 베여지고 찔리운 자리에서 돋은 혈은 생리의 강이 되여 흘렀다.
여자는 자신이 눈물이라는 것을 드디여 알았다. 그리고 이 세상에 없는 하나의 숨에 밀리여 어디까지라도 갈 수 있는 자신을 알게 되였다.
꽃.1
나는 프레이크를 힘껏 밟았다
굉음과 함께 차창에 날아든 것은 진붉은 한 송이 꽃이였다
활짝 터뜨러진 붉은 숨은 만개(滿開)의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눈을 꽉 감아버렸으나 화향(花香)은 마냥 눈에, 아니 뇌에 보였다
모년 모월 모시에 이 세상에 생겨날 때 뉘나 다 하나의 피덩이였다
봉오리를 터뜨리지 않은 피덩이였다
뼈와 살의 부름을 받은 피덩이였다
꽃나무가 꽃을 피우는 것은 언제나 순간인 것이다
365일 중 한 댓새를 위해 봄부릠치는 것이다
나는 손을 뻗어 차창의 꽃을 만졌다
뜨거운 기가 손가락으로부터 쭈우욱 흘러온다
활짝 폈던 꽃이 쭈르륵 운다
붉은 눈물이 줄줄줄 흘러 지도를 그린다
이 세상에 없는 행정구역이 생긴다
어느 별의 거리일 수도 있다
이제 한 20년, 50년, 100년 후이면
드라이브 할 수도 있을 우주의 어느 한 모퉁이!
벌써 나는 거기에 와 있다
이 한순간을 위해 내 앞을 막아선
그 한 그루의 꽃나무, 꽃나무가 만들어준 한 개의 눈
나를 저토록 진지하게 쏘아보는 피발이 선 한 개의 눈
붉은 눈물을 흘리는 한 개의 눈!
울 필요가 없다, 우리는 늬나 다 한 송이의 슬픈 꽃이다
눈(眼)같은 꽃이다!
꽃.2
봄이건만 꽃은 없다
봄이 아니여도 꽃은 꽃으로
울긋불긋 잘도 피여나던 그 시절
샛바람에 실려오는 숫 냄새 한 올에도
온 마을이 꽃동네 되였는데…
축 처진 이파리들의 나무만이
꽃 없이 시들어 늘어진 마을 길
암캐라도 지나가길 바라던
꽃맛 못 본 총각의 빈 눈에
씹욕이 사라진지 오라다
그러니, 이제 꽃이 꽉 찬들,
꽃이 질질 애액 쏟은들 무슨 흥취랴
꽃이건만 봄이 없다
바다
이슬도 하나의 바다라는걸 나는 아는가?
이슬도 바다의 노릇 다 할줄 안다는걸 나는 아는가?
이슬 속에 바다보다 큰 하늘이 담겨있는걸 그만 두고라도
수천수만개의 별들의 잔치 벌어지고있다는걸 나는 아는가?
바다도 할줄 모르는것을 이슬이 할줄 안다는걸 나는 아는가?
이슬이 굴러떨어지는건 넘 많은걸 담아서 그 무게 못이겨서가 아니라
땅에 자신의 정보를 전해주는 행위라는걸 나는 아는가?
이슬로 떠지는 눈, 그 눈에 보이는 모든것이
이슬 속에 다 있다는걸 나는 아는가?
사실 바다는 커다란 한알의 이슬이라는걸 나는 아는가?
세월
뒤 사람은 앞 사람의 옷자락을 잡고 걸었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걸었다
우린 다 장님이였으니깐
눈을 펀히 뜬 장님이였으니깐
가시에 찔리고 물에 빠지고
낭떠러지에 굴러 떨어지면서도
말없는 대오는 흘러갔다
장님의 부대는 흘러갔다
심청이를 만나야 밝음을 알텐데
세상에 무슨 심청이가 그렇게도 많겠는가
장님이 되기란 쉬운 노릇이다
제가 제 갈 길 모르면 다 장님이 되니깐
남의 옷자락만 잡으면 다 장님이 되니깐
옷자락 놓는 순간 눈이 번쩍 띄일텐데
여태 그것을 모르고 산 일 괴이하다
억만의 장님부대에 비하면
제 눈 뽐고 속죄한 오이디푸스*가 오히려 지혜로웠다
동서남북으로 비틀거리는 이 무방비의 무리
장님의 두목도 장님이였으니…
*오이디푸스ㅡ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베테의 왕. 신의 저주를 받고 태여나 이 저주를 피하려고 애썼으나 신의 부탁대로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안해로 취함. 뒤에 그 죄를 깨달아 스스로 눈알을 빼고 딸 안티고네와 외국을 방랑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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