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秀吟
ㅡ훔쳐본 그녀의 일기
김철호
정글엔 길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곳에 발을 내디뎠다
독사의 꼬리가 방울소리를 낸다
여우의 신음이 비단을 찢는다
해볕 한올 없는 숲은
길을 내줄 마음 없어하지만
밑둥 굵은 나무등걸에 앉은
원숭이 눈속에 해살이 담겨 반짝인다
눈먼 부엉이가 푸등 날아 저쪽 나무
가지에 날아가 앉고 놀란 말벌떼가
아우성치며 몰려왔다 몰려간다
저 먼 곳서 들려오는 울부짖음은
사자의 포효일가 범의 발광일가
정글엔 길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곳에 길을 만들었다
질펀한 풀밭을 딛고 지나간 자리에
한줄기 가느다란 길
해살 없이도 눈을 부시게 하는
빛 지나간 자리
정글에 그녀의 길이 생겼다
2014년 <장백산> 제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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