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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문]두만강은 이렇게 시작된다(김철호)
2009년 03월 05일 10시 05분
조회:2140
추천:17
작성자: 김철호
약류하와 홍토수 정답게 몸을 섞어
적봉 ( 赤峰 ㅡ일명 紅土山 , 해발 1321.4 메터 ) 은 구릉 한가운데 우뚝 솟아있다 . 백두산화산분출에 의한 부석은 거개가 검은빛인데 적봉을 덮고있는 부석은 이상하게도 적갈색이라 한다 . 그러나 푸른 숲에 싸여있기에 보기에는 그대로 푸른산이다 . 산정의 수평면적은 0.8 평방킬로메터 , 그 둥두렷한 산정에 올라 사위를 둘러보면 멀리로 크고 작은 연지봉과 백두봉이 손에 잡힐듯 가깝고 서쪽으로 몸을 돌리면 손거울같은 원지가 해볕에 반사되여 눈부시다고 적봉에 올라본적 있는 류연산씨가 말했다 .
금방 보고온 원지가 저 산봉우리에 오르면 볼수 있다는 말에 마음이 불같이 달아올랐으나 사정이 그러하여 참을수 밖에 없었다 .
원지의 직경은 180 메터 , 맑고 얕 은 못속에는 꽃무늬가 돋힌 산천어가 자란다고 한다 . 이 원지를 일명 천녀욕궁지 ( 天 女 浴躬池 ) 라고 하는데 원지기슭에 돌비석이 세워져있다 . 옛이름은 만족어로 푸러후리 , “ 룡구 ( 龍狗 ) ” 라는 못이라 한다 .
못가에는 매죽이라는 산열매가 아주 많았다 . 둬자쯤 되는 작은 나무에 다락다락 달린 감푸른 매죽은 완두알만큼 했는데 새큼새큼한것이 먹을수록 맛났다 . 철에 따라 산딸기며 들쭉들이 익는데 그 맛 또한 별미라고 안내원으로 나선 숭선진 김송춘진장이 자랑했다 . 그러면서 일행중 녀 성들을 돌아다보면서 이곳에 와서 녀성들은 무턱대고 열매를 따먹어서는 안된다고 짐짓 엄숙한 얼굴을 보였다 . 어쩌구려 잘못 열매를 따먹고 임신할수도 있다는 말에 일행은 원지가 떠나갈듯이 폭소를 터뜨렸다 .
알고보니 원지에는 아름다운 전설이 깃들어있었다 . 400 년전 , 세 자매가 원지에서 목욕을 했다 . 푸쿠륜이라고 부르는 막내동생이 붉은 열매씨를 먹고 그만 임신하게 되였다 . 남편없이 임신한 푸쿠륜은 아들 쿠리옹순을 낳았다 . 쿠리옹순은 어엿한 사나이로 장성하여 부락의 수령으로 되였다 . 그는 어머니의 분부에 따라 삼성 ( 三姓) 이라는 지방에 가서 그곳의 내란을 평정하고 국주로 되였으며 나라이름을 만주라고 하였다 . 지금도 만족들은 쿠리옹순을 시조로 받들면서 “ 성자 ( 聖子)” 로 , 푸쿠륜은 “ 천녀 ( 天 女 )” 로 모신다 .
20 세기에 와서 원지는 우리 민족의 현대전설을 전해주고있다 . 항일전쟁시기였다 . 한 시골마을에는 남편을 유격대에 보내고 의롭게 사는 옥녀라고 부르는 절색의 녀인이 살고있었다 . 이웃마을 일제주국놈은 옥녀의 미모에 반해 겁탈하려 집착거렸다 . 옥녀는 남편찾아 적봉으로 떠났다 . 토벌대를 이끌고 적봉에 이른 주구놈은 옥녀를 보자 눈이 뒤집혀졌다 . 깎아지른듯한 적봉이 병풍처럼 막히고 뒤는 원지인지라 더는 도망칠 길이 없게 된 옥녀는 치마를 머리에 둘러쓰고 늪에 뛰여들었다 . 남편이 유격대를 거느리고 나타났을 때는 못우에 비낀 아름다운 무지개를 타고 옥녀가 언녕 승천했을 때였다 . 그때로부터 사람들은 원지를 옥녀늪이라 불러왔는데 지금도 원지보다 옥녀늪으로 더 많이 불리운다 .
옥녀늪으로부터 약류하 ( 弱流河 ) 가 몸을 감췄다 나타냈다 하면서 적봉을 향해 흘러간다 . 그 적봉기슭에서 겨우 30 메터되는 발치에 “21 호변계비석 ( 二十一邊界碑石 ) ” 이 세워져있다 . 새하얀 돌비석 남쪽면엔 “ 조선 ”, 북쪽면엔 “ 중국 ” 이란 글자가 새겨져있다 . 몸을 훌쩍 움직이기만 해도 금방 조선땅을 딛고 서있게 되는곳이다 .
국경선표식이 처음 선것은 1712 년 봄이였다고 류연산씨가 말했다 . 청나라 우라총관 무커덩이 리조의 군관 리의복일행과 함께 백두산 5 킬로메터 되 는곳에 세운것이 첫 “ 정계비 ” 였다 . 너비가 한자여덟치 , 높이가 두자세치되는 돌에 78 자의 글을 새겼다는 정계비는 문헌에만 남아있고 실물과 원지점은 찾을 길이 없다는것이다 . 그리고 광서 13 년 (1887 년 ) 에 두만강발원지의 암류가 흐르는곳에 경계석 10 개를 세우고 비석마다에 “ 화하금탕고하산대려장 ( 華夏 金 湯固河山帶旅長 ) ” 이라는 글자를 새겼다는데 역시 찾을길 없다는것이다 .
21 호변계선에서 조금 가면 옥녀늪에서 흘러오는 약류하와 조선측 서남쪽에서 흘러내리는 홍토수 ( 紅土水 ) 가 적봉기슭의 개바닥에서 련인마냥 정답게 손을 잡는다 . 두만강은 이때로부터 한몸이 되여 곧추 천리를 흐르게 되니 바로 여기가 두만강이 시작되는 곳이다 .
약류하와 홍토수가 정답게 몸을 섞는 맑고 정갈한 개울을 마주하면 누구라 없이 숭엄한 기분이 된다 . 남북 길이가 4 메터 , 동서 길이가 2 메터인 합수목 , 무릎을 넘을가 말가 하는 이 개울물이 나라와 나라의 지경이고 수많은 한을 싣고 흘러야 했던 천리강줄기의 1 번지였던것이다 . 이제 자기가 가닿아야 할곳에 어떤 이야기가 깃들어있는지 모른채 즐거운 첫발작을 떼버리는것이다 . 철부지마냥 호기심 가득한 눈길을 또릿거리면서 버들가지를 휘여잡기도 하고 풀잎을 꼬드기기도 하면서 꼬지깽이가 울끈불끈 솟은 개활지로 숨었다 나타났다 숨박꼭질하면서 잰걸음을 치고있는 두만강 , 소꿉장난에 심취된 사내아이마냥 수없는 이야기를 조잘댄다 .
합수목에 띄운 노란 금잔화 한송이가 눈깜박할새에 두 기슭의 버들과 버들이 맞대인 밑으로 숨어버렸다 . 내 마음도 금잔화와 함께 두만강에 싣긴 기분이다 . 천리길을 떠나는 심정이다 .
아 , 두만강 너는 이렇게 시작되는구나 !
연변일보 1998 년 10 월 1 일 제 3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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