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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 어딘가고여있는 인간냄새를 주어들고...
2015년 12월 17일 16시 04분  조회:2081  추천:0  작성자: 김영능
 

  김영능시인과 시 4수를 가운데 놓고 마주앉아

  심숙

  (흑룡강신문=하얼빈) 김영능시인의 시작업은 꾸준함 그 자체이다. 작품량이 많지 않지만 그렇다고 끊어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의 시에서는 뭐니뭐니해도 진하게 풍기는 인간냄새가 시독자들에게 떨칠수 없는 흔적을 남겨준다. 그 또한 하얀 이밥에 다문다문 박혀있는 완두알이 씹히듯이 현대적 시어조합으로 엮어져서 보다 구수하고 인상적이다. 시를 시로 대우해주는 진지한 태도와 시에 대한 깊이있는 숙고와 자신의 시습작에 대한 랭철한 반성을 시의 완성도로 업그레이드시킬줄 아는 시인이 바로 김영능시인이다.

  시 '첫눈'은 제목 그대로 첫눈이 내리는 정경을 수묵화로 그려보이고 있다. 시어들은 리얼하고 시적정서도 리얼하다. 그러나 시적사고는 현대적이고 비벼넣은 인간냄새는 오래된 청국장처럼 진한 향을 풍긴다. 만일 이 시에 시골 홀아비가 등장하지 않았더라면, 그 시골 홀아비의 독초연기가 피여오르지 않았더라면 그냥 한폭의 풍경화에 그치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는 시작부터 첫눈을 시골 홀아비 서리낀 창가에 휘뿌려주면서 오늘날 우리 사회상을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시인은 애절한 상념, 애타는 심정을 피눈물로 녹여 오늘날 조선족사회에서 로총각, 홀아비들이 장가들기 어려운 속사정을 호소하고 싶었으리라. 그러나 시인은 목갈린 호소를 잠재우고 첫눈 내리는 사뭇 아름다운 풍경속에 홀아비를 집어넣어 그런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시는 절제미로 안타까운 심정을 또각또각 베여내는가 하면 속절없는 담배연기로 눈을 녹이고 피눈물을 녹여낸다. 시인의 아픔이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시 '함박눈'에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인간냄새를 피워올린다. 바로 할아버지를 빌어 우리 민족의 이민사와 고난사 내지 백년사를 두런거리는것이다. 자칫 평범한 시로 되여버렸을 시 '함박눈'이 새콤한 의미로 살아날수 있었던것은 하늘나라 가신 할아버지가 울분과 설음과 머리발, 수염발, 가슴 태운 재가루 등을 섞어서 함박으로 쏟아놓는것이 바로 함박눈이라는 마지막 련에서 화려하게 새롭게 부활된다.

  시 '락엽'에서도 류사한 맥락을 찾아볼수 있다. 빨강 노랑 연분홍 등 오색의 랑만으로 시작되는 락엽은 락엽의 일생을 읊고있다. 이 시에서는 '빨강 미소', '노오란 추파', '연분홍 손짓'이라는 마감련에서의 시어조합이 앞부분의 평이함을 밭갈이하면서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락엽이 떨어지는 모습을 '추억을 날리네'로 표현한 여기에 이 시의 매력이 있고 시인으로서의 김영능시인의 재치가 빛을 발하는것이다.

  시 '가위'는 가위의 특성을 포착하고 그 속성을 파헤치면서 인간의 사랑 역시 녹쓸지 말고 서로 손잡고 한길로 가야 한다는 사랑철학을 읊조리고 있다. '두 마음 한뜻이여야' 하고 '등을 돌리면 아무 일도 할수 없다'는 가위의 속성으로 둘이 만나 하나의 마음이 되여야 반듯한 사랑의 의미를 다질수 있다는 인간의 사랑을 환원해낸 재치가 돋보인다.

  상기 4수의 시들은 한결같이 요즘 김영능시인이 추구하고 있는 절제미가 잘 지켜지고 있으며 매수의 시마다 한두가지 아름다운 시어조합이 들어있어 상큼한 맛을 더해주면서 시의 완성도에 기여하고 있다.

  세상 어딘가에라도 고여 있는 인간냄새를 주어들고 때론 슬프게, 때론 아름답게 시를 중얼거리는 김영능시인의 시적행보에 눈길을 걸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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