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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류 트로트 통속 야매 련애시인>>
2015년 04월 26일 00시 06분  조회:4791  추천:0  작성자: 죽림

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거네

작가
  류근
출판
  곰
발매
2013.07.30

 

 

 겨우 100만부 팔리는 무협지 한권 만 쓰겠다는 소박한 소망을 품고 있는 자칭 <<삼류 트로트 통속 야매 련애 시인>>인 류근의 산문집을 만났다. 시인으로 등단 한지  22년이지만 그가 그동안 출간 한 책은 이 책을 포함해서 단 두권 뿐이다. 첫 시집이 줄간 되기까지 무려 18년이 걸렸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골때린다. 술 안마실 때만 골라 쓰느라 18년이나 걸렸다는 거다.  술을 얼마나 마시길래 그런걸까?라는 의문은 책을 읽기 시작하면 금세 풀린다. 매일 매일을 술과 함께 하기에 글을 쓸 시간이 없다는 그의 일상. 정말 술을 마셔도 너무 마신다. 어금니 하려고 3년간 모아 두었던 돈도 술값으로 탕진하는 저자. 월세가 밀려 쫓겨나게 생겼어도 술만큼은 밀리지 않는, 일주일의 반 이상 필름 끊긴 폐인의 일상을 사는 저자는 책을 통해 자신의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류근을 알게 된건 그의 책이 아니라 책에서도 등장하는 소설가 겸 시인 김도언의 산문집 [나는 잘 웃지 않는 소년이었다]를 통해서다.  김광석의 노래'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작사한 류근이 산문집을 집필하고 있다고 해서 특별한 산문집이 나올거 같다는 기대를 하면서 출간이 되면 만나봐야 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금세 잊어버리고 있다가,책을 보면서 다시 생각이 났다. 

 

저자는 중학교때 장래희망이 시인이 되고 부터는 절대로 욕을 입에 담지 않았다고 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이 책엔 욕이 넘쳐난다. 무수히 많은 욕이 있지만 그가 시종일관 내 뱉는 욕은 '조낸 시바'다. 그의 글은 대부분이 이 욕으로 끝난다. 그러나 이 욕은 거슬리지 않는다. 오히려 읽는 즐거움을 주는 조미료 역활을 톡톡히 한다. 비가 오는 날은 비의 사람과, 바람이 부는 날은 바람의 사람과  꽃이 피는 날은 꽃의 사람과 햇살이 눈물나게 좋은 날엔 햇살의 삶과 술을 마신다는 저자. 구속받지 않으며 자유롭게 사는 그의 삶. 구군가는 부러워 할 수 있지만 누군가는 왜 저러고 사냐고 혀를 찰 수 도 있는 그의 코미디 같은 일상을 만나면서 시인은 어떻게 사는지 엿보는 즐거움이 있는 책 ,'술이 다시 내게 말을 거네'라는 제목이 더욱 어울릴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거네].

 

 이 책은 그의 책들 중 가장 많이 팔린 책이될듯하다.  18년만에 나온 시집이 7쇄 인쇄가 되어 수입이 생긴다고 무척이나 좋아 하던 저자. 그런데 이 책은 출간된지 불과 2달이 조금 넘었는데 벌써 7쇄를 넘어 섰으니 어디선가 기쁜 마음으로 술을 마시고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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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힘

   류근

애인에게 버림받고 돌아온 밤에

아내를 부등켜 안고 엉엉 운다 아내는 속 깊은 보호자답게

모든 걸 안다는 듯 등 두들기며 내 울음을 다 들어주고

세상에 좋은 여자가 얼마나 많은지

세월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따뜻한 위로를 잊지 않는다

나는 더 용기를 내서 울고

아내는 술상을 봐 주며 내게 응원의 술잔을 건넨다

이 모처럼 화목한 풍경에 잔뜩 고무된 어린 것들조차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노래와 율동을 아끼지 않고

나는 애인에게 버림 받은 것이 다시 서러워

밤 늦도록 울음에 겨워 술잔을 높이 드는 것이다

다시 새로운 연애에 대한 희망을 갖자고

술병을 세우며 굳게 다짐해보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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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

 

    류근

 

이상하지

시깨나 쓴다는 시인들 얼굴을 보면

눈매들이 조금씩 찌그러져 있다

잔칫날 울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처럼

심하게 얻어맞으면서도

어떤 이유에서든 이 악물고 버티는 여자처럼

얼굴의 능선이 조금씩 비틀려 있다

 

아직도 일렬횡대가 아니고선 절대로 사진 찍히는 법 없는

시인들과 어울려 어쩌다 술을 마시면

독립군과 빨치산과 선생과 정치꾼이

실업자가 슬픔이 과거가 영수증이

탁자 하나를 마주한 채 끄덕이고 있는 것 같아

천장에 매달린 전구알조차 비현실적으로 흔들리고

빨리 어떻게든 사막으로 돌아가

뼈를 말려야 할 것 같다 이게 뭐냐고

물어야 할 것 같다

 

울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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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사유

    
류근

 

다시 연애하게 되면 그땐

술집 여자하고나 눈 맞아야겠지

함석 간판 아래 쪼그려 앉아

빗물로 동그라미 그리는 여자와

어디로도 함부로 팔려 가지 않는 여자와

애인 생겨도 전화 번호 바꾸지 않는 여자와

나이롱 커튼 같은 헝겊으로 원피스 차려입은 여자와

현실도 미래도 종말도 아무런 희망 아닌 여자와

외향선 타고 밀항한 남자 따위 기다리지 않는 여자와

비 오는 날 가면 문 닫아걸고

밤새 말없이 술 마셔주는 여자와

유행가라곤 심수봉밖에 모르는 여자와

취해도 울지 않는 여자와

왜냐고 묻지 않는 여자와

아,

다시 연애하게 되면 그땐

저문 술집 여자하고나 눈 맞아야지

사랑 같은 거 믿지 않는 여자와

그러나 꽃이 피면 꽃 피었다고

낮술 마시는 여자와

독하게 눈 맞아서

저물도록 몸 버려야지

돌아오지 말아야지


-----------------------------------------------------

 

 

너무 아픈 사랑


       류근


동백장 모텔에서 나와 뼈다귀 해장국집에서

소주잔에 낀 기름때 경건히 닦고 있는 내게

여자가 결심한 듯 말했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

라는 말 알아요? 그 유행가 가사

이제 믿기로 했어요.

믿는 자에게 기쁨이 있고 천국이 있을 테지만

여자여, 너무 아픈 사랑도 세상에는 없고

사랑이 아닌 사랑도 세상에 없는 것

다만 사랑이 제 힘으로 사랑을 살아내는 것이어서

사랑에 어찌 앞뒤로 집을 지을 세간이 있겠느냐

택시비 받아 집에 오면서

결별의 은유로 유행가 가사나 단속 스티커처럼 붙여오면서

차창에 기대 나는 느릿느릿 혼자 중얼거렸다

그 유행가 가사,

먼 전생에 내가 쓴 유서였다는 걸 너는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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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처럼 울다

       류근 
 


벌레들은 죽어서도 썩지 않는다
우는 것으로 생애를 다 살아버리는 벌레들은
몸 안의 모든 강들을 데려다 운다
그 강물 다 마르고 나면 비로소
썩어도 썩을 것 없는 바람과 몸을 바꾼다
 
나는 썩지 않기 위해 슬퍼하는 것이 아니다
살아서 남김없이 썩기 위해 슬퍼하는 것이다
 
풍금을 만나면 노래처럼 울고
꽃나무를 만나면 봄날처럼 울고
사랑을 만나면 젊은 오르페우스처럼
죽음까지 흘러가 우는 것이다
울어서 생애의 모든 강물을 비우는 것이다
 
벌레처럼 울자 벌레처럼
울어서 마침내 화석이 되는 슬픔으로
물에 잠긴 한세상을 다 건너자
 
더듬이 하나로 등불을 달고
어두워지는 강가에 선 내 등뼈에 흰 날개 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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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칙

 

                   류근


물방울 하나가 죽어서

허공에 흩어진다

물방울 하나가 죽어서

구름에 매달린다 물방울 하나가 죽어서

빗방울 하나로 몸을 바꾼다

 

빗방울 하나가 살아서

허공에 흩어진다

빗방울 하나가 살아서

잎사귀에 매달린다

빗방울 하나가 살아서

물방울 하나로 몸을 바꾼다

 

모였다 흩어지고

흩어졌다 모인다

사는것도 죽는것도

한 몸

우주 안에서

 

도망갈 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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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운 나날

 

류근

 
 

가끔은 조조영화를 보러 갔다

갈 곳 없는 아침이었다

혼자서 객석을 지키는 날이 많았다

더러는 중년의 남녀가 코를 골기도 하였다

영화가 끝나도 여전히 갈 곳은 생각나지 않아서

혼자 순댓국집 같은 데 앉아 낮술 마시는 일은

스스로를 시무룩하게 했다 아무도 오지 않았다

나날은 길었다 다행히 밤이 와 주기도 하였으나

어둠 속에서는 조금 덜 괴로울 수 있었을까

어떤 마음이든 내가 나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서

밖에서 오는 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는 시간은 공연했다

심야 상영관 영화를 기다리는 일로

저녁 시간이 느리게 가는 때도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는  식민지 출신이었다

아프리카엔 우리가 모르는 암표도 많을 것이다

입을 헹굴 때마다 피가 섞여 나왔다 나에겐

숨기고 싶은 과거가 아직 조금 남아 있다

어떤 밤엔 화해를 생각하기도 했다

나는 언제나 한 번도 실패한 적 없는 미래 때문에

불안했다 그래도 과거를 생각할 때마다

그것이 지나갔다는 것 때문에 퍽 안심이 되었다

심야 상영관에서 나오면 문을 닫은 꽃집 앞에서

그날 팔리지 않은 꽃들을 확인했다 나 또한

팔리지 않으나 너무 많이 상영돼 버린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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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적 체질

     
            류근

 

나는 빈 들녘에 피어오르는 저녁연기 
갈 길 가로막는 노을 따위에 
흔히 다친다 
내가 기억하는 노래 
나를 불러 세우던 몇 번의 가을 
내가 쓰러져 새벽까지 울던 
한 세월 가파른 사랑 때문에 거듭 다치고 
나를 버리고 간 강물들과 
자라서는 한번 빠져 다시는 떠오르지 않던 
서편 바다의 별빛들 때문에 깊이 다친다 
상처는 내가 바라보는 세월

 

안팎에서 수많은 봄날을 이룩하지만 봄날,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꽃들이 세상에 왔다 가듯 
내게도 부를 수 없는 상처의 
이름은 늘 있다 
저물고 저무는 하늘 근처에 
보람 없이 왔다 가는 저녁놀처럼 
내가 간직한 상처의 열망, 상처의 거듭된 
폐허, 
그런 것들에 내 일찍이 
이름을 붙여주진 못하였다

 

그러나 나는 또 이름 없이 
다친다 
상처는 나의 체질 
어떤 달콤한 절망으로도 
나를 아주 쓰러뜨리지는 못하였으므로

 

내 저무는 상처의 꽃밭 위에 거듭 내리는 
오, 저 찬란한 채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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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우체국

 

             류근

 
옛사랑 여기서 얼마나 먼지

술에 취하면 나는 문득 우체국 불빛이 그리워지고

선량한 등불에 기대어 엽서 한 장 쓰고 싶으다

내게로 왔던 모든 이별들 위에

깨끗한 우표 한 장 붙여주고 싶으다

지금은 내 오랜 신열의 손금 위에도

꽃이 피고 바람이 부는 시절

낮은 지붕들 위로 별이 지나고

길에서 늙은 나무들은 우편배달부처럼

다시 못 만날 구름들을 향해 잎사귀를 흔든다

흔들릴 때 스스로를 흔드는 것들은

비로소 얼마나 따사로운 틈새를 만드는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이별이 너무 흔해서

살아갈수록 내 가슴엔 강물이 깊어지고

돌아가야 할 시간은 철길 건너 세상의 변방에서

안개의 입자들처럼 몸을 허문다 옛사랑

추억 쪽에서 불어오는 노래의 흐린 풍경들 사이로

취한 내 눈시울조차 무게를 허문다 아아,

이제 그리운 것들은 모두 해가 지는 곳 어디쯤에서

그리운 제 별자리를 매달아두었으리라

차마 입술을 떠나지 못한 이름 하나 눈물겨워서

술에 취하면 나는 다시 우체국 불빛이 그리워지고

거기 서럽지 않은 등불에 기대어

엽서 한 장 사소하게 쓰고 싶으다

내게로 왔던 모든 이별들 위에

깨끗한 안부 한 잎 부쳐주고 싶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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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들은 살아남기 위해 잎사귀를 버린다

 

류근


나무들은 살아남기 위해 잎사귀를 버린다
친구여 나는 시가 오지 않는 강의실에서
당대의 승차권을 기다리다 세월 버리고
더러는 술집과 실패한 사랑 사이에서
몸도 미래도 조금은 버렸다 비 내리는 밤
당나귀처럼 돌아와 엎드린 슬픔 뒤에는
버림받은 한 시대의 종교가 보이고
안 보이는 어둠 밖의 세월은 여전히 안 보인다
왼쪽 눈이 본 것을 오른쪽 눈으로 범해 버리는
붕어들처럼 안 보이는 세월이
보이지 않을 때마다 나는 무서운 은둔에 좀먹고
고통을 고통이라 발음하게 될까 봐
고통스럽다 그러나 친구여 경건한 고통은 어느
노여운 채찍 아래서든 굳은 희망을 낳는 법
우리 너무 빠르게 그런 복음들을 잊고 살았다
이미 흘러가 버린 간이역에서
휴지와 생리대를 버리는 여인들처럼
거짓 사랑과 성급한 갈망으로 한 시절 병들었다
그러나 보라, 우리가 버림받는 곳은 우리들의
욕망에서일 뿐 진실로 사랑하는 자는
고통으로 능히 한 생애의 기쁨을 삼는다는 것을
이발소 주인은 저녁마다
이 빠진 빗을 버리는 일로 새날을 준비하고
우리 캄캄한 벌판에서 하인의 언어로
거짓 증거와 발 빠른 변절을 꿈꾸고 있을 때 친구여
가을 나무들은 살아남기 위해 잎사귀를 버린다
살아있는 나무만이 잎사귀를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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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


그대 떠난 길 지워지라고
눈이 내린다
그대 돌아올 길 아주 지워져버리라고
온밤 내 욕설처럼 눈이 내린다


온 길도 간 길도 없이
깊은 눈발 속으로 지워진 사람
떠돌다 온 발자국마다 하얗게 피가 맺혀서
이제는 기억조차 먼 빛으로 발이 묶인다
내게로 오는 모든 길이 문을 닫는다

귀를 막으면 종소리 같은
결별의 예감 한 잎
살아서 바라보지 못할 푸른 눈시울
살아서 지은 무덤 위에
내 이름 위에
아니 아니, 아프게 눈이 내린다
참았던 뉘우침처럼 눈이 내린다

그대 떠난 길 지워지라고
눈이 내린다
그대 돌아올 길 아주 지워져버리라고
사나흘 눈 감고 젖은 눈이 내린다

 

 

 

[출처] 류근 시인의 시 모음|작성자 느낌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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