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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史에서의 미래파시인
2016년 01월 02일 02시 45분  조회:5000  추천:0  작성자: 죽림
 

우리는 '미래파 논쟁' 에 갇혀있지 않겠다"  
  
 
계간지 '시로 여는 세상' 미래파 시인 9명 기고

 

"결국 같은 서정시인데… 이면엔 정치적 의도" 지적-"젊은 시인들, 이미지보다 현실 탐구를" 주문 눈길도

 

2005년 초 문학평론가 권혁웅씨가 낯선 시풍으로 무장한 일군의 젊은 시인을 ‘미래파’로 명명한 이래 한국 시사(詩史)엔 ‘미래파 논쟁’이란 굵은 획이 그어지고 있는 중이다. 명칭이 적절한지, 이들 시인을 한 무리로 묶을 수 있는지 등의 기초적 문제부터 미래파의 작풍에 대한 미학적 가치판단까지 논의는 무성하지만, 많은 논쟁이 그렇듯 ‘미래파 논쟁’에 미래파의 목소리는 없는 상황이었다.

최근 발행된 시 전문 계간지 <시로 여는 세상> 가을호가 마련한 특집 ‘미래파의 자기 진단과 미래파의 미래’는 미래파로 거명되면서도 논쟁의 객체에 머물렀던 시인들이 작심하고 자기 입장을 밝히고 있어 흥미롭다. 기고한 시인은 김언, 서영처, 유형진, 이근화, 이민하, 장석원, 장이지, 조동범, 진은영씨 등 9명.

기고자 대부분은 시인들을 범주화하는 움직임을 경계했다. 유형진씨는 “개성적 시인들을 카테고리화해서 그 담론에 묶어두는 일은 그들의 행보를 위축시키고, 나아가 문단 내부의 단절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동범씨는 “미래파 논쟁이 과거 참여-순수 논쟁처럼 자기 영역을 고집하는 양상을 보인다”고 우려하며 “젊은 시인들의 작품은 기존의 시적 흐름과 분리된 것이 아니라 그것을 계승해 새롭게 만든 것”이라고 썼다.

장이지씨는 “부정과 파괴를 통해 새로운 전통을 세우려는 전위적 충동이 미래파라면 황병승, 김민정, 김경주 등 세 명의 시인만 이에 해당할 것”이라며 “결국 모두 서정시를 쓰고 있는데 미래파의 시는 서정시가 아닌 듯 말하는 것은 묘한 기만”이라고 비판했다.

미래파 담론 이면의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는 의견도 있었다. 김언씨는 “미래파 논쟁을 시단의 중심에 떠오르게 한 일등 공신은 다름아닌 그 반대파 평론가들”이라며 “이들이 스스로 일으킨 논쟁을 감당하지 못하면서 가장 싫어했던 시인들을 띄워주는 우를 범한 것”이라고 조소했다.

이근화씨는 미래파 담론을 “그 속에 무엇이든지 채워넣을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음식인 만두”에, 장석원씨는 “먼 곳에서 널 사랑한다는 주문을 외며 나를 협박하는 님의 사랑 고백”에 빗대며 논의의 ‘불순함’을 지적했다.

서영처, 이민하씨는 젊은 시인들의 시풍이 이전과는 차별된다는 점을 인정하는 입장이다. 서씨는 “이들의 다양한 불협화음과 추함은 새로운 표현양식이자 미의 추구”라고 규정했고, 이씨는 “뻔한 맛보다는 뻔뻔한 맛을 즐기는 감각의 전문가”들에 대한 동질감을 표했다. 하지만 이들 역시 다채롭고 변화무쌍한 시적 흐름을 고정된 틀에 가두려는 시도에 대해선 부정적 견해를 보였다.

다른 필자들과 달리 진은영씨는 젊은 시인들에게 낯선 이미지들의 수집에 머물지 말고 현실에 대해 집요한 탐구를 할 것을 주문해 눈길을 끌었다. 시 작업을 낚시에 비유한 진씨는 “풀의 배내옷으로 덮은 바구니에 담아온 물고기처럼 신선한 이미지들에 깔려 예감됐지만 의지박약 때문에 발견되지 못한 현실이 죽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보라고 권했다.

이번 특집에 기고하지 않았지만 미래파의 대표 주자로 꼽히는 김경주 시인은 지난달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한국 시 역사에서 반복되고 있는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의 싸움에서 현재는 ‘미래파’란 이름으로 모더니즘이 앞서나가는 형국”이라며 “그런 경향은 전혀 중요하지 않은 문제이며, 시인은 예술의 전위로서 정형화되지 않기 위한 긴장을 부단히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훈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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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웅

‘미래파 옹호’ 평론가가
              시로 풀어낸 ‘세속 박람기’ 

 

권혁웅 평론가. ⓒ양윤의- 실험적 시인들 편에 섰던 권혁웅, 까다로운 상징과 거리두기,  도봉공원·불가마·감자탕집 같은 세상의 잡스러운 이모저모 묘사, 4대강 사업 등 비판한 시도 실어 

 

 

평론가 권혁웅은 2000년대 젊고 실험적인 시인들에게 ‘미래파’라는 이름을 붙여 주고 적극 옹호하면서 논쟁의 한복판에 선 바 있다. 그런데 정작 시인 권혁웅이 쓰는 시는 그가 옹호하는 미래파와는 거의 정반대라 할 경향을 보이고 있어 흥미롭다.


“세속이 그 지극한 경지 안에서 스스로를 들어올렸으면 했다.”

그의 다섯 번째 시집이 되는 <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에 붙인 ‘시인의 말’의 한 대목이다. 이 말마따나 그의 시는 세속(世俗)의 잡스러운 이모저모를 실제에 가깝게 재현하는 데에 치중한다. 미래파 시들이 특장으로 삼는 전위적 실험이나 까다로운 상징과 그의 시는 멀찌감치 거리를 둔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시가 그저 행갈이 한 산문적 진술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미래파와는 다른 방식의 시 쓰기가 가능하다는 것을 권혁웅의 시는 훌륭하게 보여준다.


“지금 애인의 울음은 변비 비슷해서 두 시간째/ 끊겼다 이어졌다 한다/ 몸 안을 지나는 긴 울음통이 토막 나 있다/ 신의주찹쌀순대 2층, 순댓국을 앞에 두고/ 애인의 눈물은 간을 맞추고 있다”(<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 부분)


“그는 자신을 마셔버린 거다/ 무슨 맛이었을까?/ 아니 그는 자신을 저기에 토해놓은 거다/ 이번엔 무슨 맛이었을까?/ 먹고 마시고 토하는 동안 그는 그냥 긴 관(管)이다”(<봄밤> 부분)


인용한 두 시는 권혁웅 시작법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시집 표제작 <애인은…>은 순댓국집에서 아마도 이별을 앞두고 마주 앉은 연인을 등장시킨다.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며 두 시간째 울음을 우는 애인과 그런 애인을 하릴없이 지켜보는 ‘나’의 처지를 다름 아닌 순대에 빗대 표현하는 솜씨가 능란하다.
지난해 미당문학상 수상작인 <봄밤>은 천변(川邊) 벤치에 누워 잠든 취객에게 바쳐진다. “전봇대에 윗옷 걸어두고 발치에 양말 벗어두고/ 천변 벤치에 누워 코를 고는 취객”의 “캄캄함 혹은 편안함”을 잔잔하게 그린 시에서 모종의 온기가 느껴진다면 그것은 대상을 보는 시인의 따뜻한 시선 덕분일 것이다. “침대와 옷걸이를 들고 집이 그를 마중 나왔다”거나 “어리둥절한 꽃잎 하나가 그를 덮는다/ 이불처럼/ 부의봉투처럼” 같은 구절을 보라.
이 두 시에서 보듯 권혁웅의 시는 우아함이나 고상함과는 거리가 먼, 소박하거나 누추한 서민들의 삶을 즐겨 다룬다. 도봉근린공원, 천변체조교실, 불가마 같은 변두리 공간 또는 의정부부대찌개집이나 조마루감자탕집, 포장마차 같은 식당이 그의 시가 태어나는 자리들이다. 이런 공간에 서식하는 이들이란 구조조정에 희생된 가장(<24시 양평해장국>), “투덜대길 좋아해서/ 소음기 뗀 오토바이를” 모는 중국집 청년(<야쿠르트 아줌마와 중국집 청년>), “종이상자가 주소지”인 노숙자(<삼국지 열전-노숙>) 들이기 십상이다. 
“시금치는 시큼해지고 맛살은 맛이 살짝 갔지”(<김밥천국에서>)라거나 “그녀가 어두육미도 아니고/ 내가 용두사미도 아니고”(<우동을 먹으며>), “조각난 조개의 조변석개”(<포장마차는 나 때문에>)와 같은 특유의 말장난 역시 시집 읽는 재미를 준다. 시인의 발랄한 언어 감각이 날선 현실 비판과 만날 때 <산해경>을 연상시키는 이런 시가 빚어진다.
“남해로 나가면 처음 만나는 나라가 삽질국(揷質國)이다 해내로 자식을 위장전입 보낸 아비 하나가 그리움에 못 이겨 큰 삽으로 흙을 퍼 강이란 강을 죄다 메우고 있다 그 너머에 고소영국(高所嶺國)이 있는데 이곳 사람들은 다리가 넷이요 집이 여섯이며 군이 면제다 강부자국(江富子國)이 인근에 있는데 둘이 같은 나라라 말하는 이도 있다 어린지국(魚鱗支國)이 그 남쪽에 있다 이곳 사람들은 몸에 어린이 돋아서 민망한 짓을 잘하며 그 말은 짖다 만 영어 같다”(<오호십육국 시대> 부분)


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 =권혁웅 지음, 창비.


최재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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