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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의 시인 - 기형도
2016년 01월 05일 05시 16분  조회:3631  추천:0  작성자: 죽림


안개의 시인 기형도

 

 

 



이재훈(시인)

 

 

 

 




1989년 3월 7일 새벽. 서울 종로 파고다공원 근처의 한 심야 극장에서 한 남자가 숨진 채 발견되었다. 남자의 가방 속에는 시작메모로 채워진 푸른 노트, 외국에서 온 몇 통의 편지, 줄쳐 읽던 몇 권의 책과 소화제 알약이 들어 있었다. 사인은 뇌졸중. 그가 바로 시인 기형도였다. 그의 나이 만 29세. 기형도의 죽음을 두고 여러 가지 풍문이 떠돌았지만 모두 풍문에 지나지 않았다.

90년대에 들어서면서 기형도는 젊은 문청들에게 전설이 되었다. 기형도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우수에 찬 용모와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운 시편들이 젊은이들의 심장을 후벼 팠다. 기형도를 읽는 것은 시를 읽는 것뿐 아니라 90년대 이후 문화의 현상을 읽는 일이었다. 기형도를 가슴에 품고 다니는 젊은 대학생들은 세대적 공유의식을 가질 수 있었다. 좀 더 외연을 넓혀 말하자면 기형도는 동구권이 무너지고 이데올로기의 억압에서 벗어난 세대들의 상징적 코드였다. 90년대에 문학을 한 이들 중에서 기형도의 바이러스에 한번이라도 감염이 안된 자가 그 누가 있던가.(기형도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은 지금까지 무려 61쇄가 인쇄됐다. 약 40여 만 부가 팔렸으며 현재에도 해마다 1만부씩 팔리고 있다.)

기형도는 1960년 경기도 옹진군 연평리에서 출생했다. 부친의 사업 실패 이후 경기도 시흥군 소하리에 정착했다. 유년 시절은 가난하고 외롭게 보냈다.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진 <엄마 걱정> 등의 시편들은 당시 유년의 우울한 정서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학창시절의 기형도는 조용하고 노래를 잘 부르는 학생이었다. 교내에서 합창단 활동을 하기도 했다.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하고, 교내 문학동아리인 ‘연세문학회’에 입회하여 본격적인 문학수업을 시작했다. 대학문학상인 박영준 문학상(소설부문)에 <영하의 바람>이 당선없는 가작으로 입선하였고, <식목제>가 대학문학상인 윤동주문학상 시부문에 당선되었다. 안양 근교에서 방위병으로 복무하면서 안양의 문학동인인 ‘수리’에 참여하고 동인지에 <사강리> 등을 발표하고 시작에 몰두하였다. 대부분의 초기작이 이 시기에 씌여졌다고 한다.

1984년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중앙일보사에 입사했다. 신문사에서 정치부, 문화부, 편집부 등에서 일했는데 주로 문화부에서 일했다.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안개>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으며, 이후로 주로 젊은 문인들과 만나면서 문단 교유의 폭을 넓혔다.

그는 짧은 작품 활동기간에도 불구하고 정열적으로 작품활동을 한 시인이었다. 죽기 전까지 중앙일보 기자이면서 시인이었던 기형도는 성실한 젊은 문인이었으며 첫 시집을 준비 중에 있었다. 또한 당시 젊은 문학 그룹인 <시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가 죽은 후 1989년 5월에는 유고시집 <입속의 검은 잎>이 출간되었다. 시집 제목은 평론가 김현이 정했다. 이후 여행 중에 대학노트에 기록한 산문을 모은 <짧은 여행의 기록>(1990), 미발표 시들과 소설들을 기존의 시들과 함께 묶은 <기형도 전집>(1999)이 출간되었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 기형도, <빈집> 전문

 

기형도의 안개의 시인이다. 안개가 주는 막막함과 고통의 실체를 알 수 없는 생의 비애가 시 곳곳에 들어차 있다. 마치 안개 속을 걷듯 아무도 보이지 않는 길과 축축한 세계 속에서 저 혼자 고통을 짊어지고 걸어가는 시인의 보폭이 시 속에 선명하다. 우리 독자들은 누구나 기형도의 시가 전해주는 “안개의 주식”(<안개>)을 갖고 있다. 그렇기에 그의 시에는 죽음과 절망, 불안과 허무의 이미지와 진술들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당대 최고의 평론가로 일컬어지는 김현이 그의 시를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이라고 명명한 이유는 이러한 시적 분위기가 젊은 시인이 겪는 도시의 일상과 맞물려 시 속에서 형상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형도의 시 속에서 불안과 죽음의 이미지가 넘실대는 것은 불우한 가족사와 도시 변두리에서 살았던 경제적 궁핍, 죽음에 대한 체험 등이 큰 영향을 주었다. 1975년 기형도는 바로 손위 누이가 불의의 사고로 죽는 일을 체험하며 시 쓰기를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시 <빈집>은 기형도의 시 중에 독자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시이다. 이 시는 기형도가 마치 죽음을 예견하기라도 한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런 이유로 더없이 아프게 다가오는 시이다. 사랑을 잃고 시인은 무엇을 쓰는가. 시 속의 화자는 “잘 있거라”라고 이별의 말을 고한다. 무엇과 이별하는가. 짧았던 밤들과 창밖의 겨울안개들과 밤을 함께 한 촛불들과 흰 종이들. 그리고 자신의 눈물과 이제는 없어져버린 열망들과 모두 이별한다. 이별 후에 그가 하는 일은 장님처럼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는 일이다. 그 문 속에는 자신의 사랑이 있다. 빈집에 갇힌 것은 사랑이지만, 그 빈집을 통해 시인은 잃어버린 사랑을 가슴에 품고자 한 것이다.

우리는 늘상 가득찬 집에 살고 있다. 안개의 시인 기형도. 시인은 우울한 일상을 품고 도시의 안개를 헤치고 나와 빈집에 마주 섰다. 이별의 계절 가을. 이별은 버리는 게 아니라 가득했던 마음을 비우고, 그 빈집에 성숙한 사랑의 의미를 담는 그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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