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11월 2024 >>
     12
3456789
10111213141516
17181920212223
24252627282930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文人 지구촌

무명 작고 시인 윤동주 유고시 햇빛 보다...
2016년 02월 19일 05시 25분  조회:4846  추천:0  작성자: 죽림
경향신문 강처중 기자와 정지용 주필이 아니었다면 오늘날의 윤동주는 있을 수 없다."

한국인의 애송시를 선정할 때면 늘 선두를 다투는 '국민 시인' 윤동주(1917~1945). 그는 59년 전 오늘인 1947년 2월13일자 경향신문에 유고시 '쉽게 씌어진 시'가 게재되면서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당대 최고 시인으로 경향신문 주필이던 정지용은 이날 시인 소개글에서 "시인 윤동주의 유골은 용정동 묘지에 묻히고 그의 비통한 시 10여편은 내게 있다. 지면이 있는 대로 연달아 발표하기에 윤군보다도 내가 자랑스럽다"고 썼다. 경향신문은 같은 해 3월13일자, 7월27일자에 그의 유작 '또 다른 고향'과 '소년'을 실었다.

경향신문, 정지용, 당시 무명의 작고 시인 윤동주를 연결한 데는 경향신문 조사부 기자였던 강처중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그러나 강처중은 월북했다는 이유로 우리 역사에서 잊혀졌다. 그의 존재는 윤동주 연구가인 송우혜씨('윤동주 평전'의 저자)에 의해 학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

대시인 정지용, 고민에 빠지다

1947년 2월, 정지용은 며칠째 낯선 시 10여편을 눈앞에 펼쳐 놓고 고민에 빠져 있었다.

이미 작품을 가려 뽑는 일이라면 이골이 난 그로서도 처음 겪는 일이었다. 이미 서른도 되기 전인 1930년에 박용철, 김영랑 등 내로라 하는 시단의 총아들과 함께 '시문학'을 창간, 무수한 시들을 천거하고 평해 온 그였다. 39년 창간된 '문장'지의 시 심사위원으로 나서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 등 청록파 3인과 이한직, 박남수 등 쟁쟁한 신인들을 뽑아 올린 공적은 벌써부터 문학사적 기록이 될 정도였다. 그런 그가, 해방 이후 좌우익으로 갈린 문단의 틈새에서 문학적 지향점도 열정도 잃어버렸다고 자학하던 차에 신기하게도 문학작품 선발 때문에 갈등을 겪는 셈이었다.

 

용정제1중학교에 있는 윤동주 시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육필 시집 원고.
룡정
명동의 윤동주 생가.

그는 해방 직전 유명을 달리한 한 젊은이의 시 원고를 보고 있는 중이었다. 40대 중반 나이로 당대 최고의 권위를 누리고 있는 시인이었지만, 그보다는 전해에 창간한 경향신문의 주간(현재의 주필)으로서 비명에 죽은 한 시인이 남긴 시편들 중 한 편을 뽑아 이 세상에 처음으로 내세우는 일을 맡은 것이다.

시인으로 등단하는 순간 이미 그 이름 앞에 '故'(고) 자를 붙여야 하는 사람은 1917년 간도 출신으로 서울 연희전문 문과를 졸업했다. 일본 도쿄의 닛교 대학에서 수학하다, 교토의 도시샤 대학 영문과로 편입해 다니던 중 독립운동 혐의로 체포돼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복역 중 44년 2월 옥사한 그의 이름은 윤동주였다.

정지용은 읽을수록 그의 시가 슬픔과 열정을 불러일으켰고, 생각할수록 그 생애는 뜨겁고 비통했다. 소리를 내어서 시를 읽으면 눈앞에 병든 세상을 아파하고 괴로워하고 참회하는 젊은이의 표정이 살아나는 듯했다.

#죽은 시인을 되살리려는 친구들

정지용에게 맨 처음 이런 갈등을 선물한 사람은 윤동주의 연전 동기생으로 46년 10월 경향신문 창간 때부터 조사부 기자로 있은 강처중이었다. "시를 잘 쓰는 동기생이 있었는데 선생님 시를 무척 좋아했어요."

그런 얘기는 정지용으로서는 자주 들어온 편이었다. 게다가 일제에 개죽음을 당한 청년이 한둘도 아니던 터라 그저 가슴만 먹먹할 뿐 별로 호기심이 일지 않았다. 특히 해방 후 좌익 문사들이 문학가동맹을 창립하면서 중앙위원으로 정지용의 이름을 올린 일로부터 좌우익 모두에게 농락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 문학 얘기는 애써 피해오던 차였다.

도쿄에 있을 때 윤동주가 강처중에게 보냈다는 시는 모두 다섯편이었다. 부드러운 듯하면서도 안으로 힘이 꽉 차 있는 듯 보이는 윤동주의 육필을 보고 나서야 정지용의 마음 속에서 알 수 없는 사명감 같은 것이 꿈틀거렸다.

"저희들은 동주가 쓴 시를 모아 시집을 내려고 합니다." 유고 시집 발간 뜻을 밝힌 강처중은 며칠 뒤 윤동주의 연전 후배로 서울대에 편입해 다니던 정병욱(서울대 교수 역임)을 데려왔다. 정병욱은 윤동주가 연전 졸업 한 해 전 발간하려 했다는 친필 시집 원고를 정지용에게 펼쳐보였다.

"사정이 여의치 않아 시집을 내지 못한 동주형은 대신 필사본으로 세 권을 만들어 본인이 한 권, 은사 이양하 교수 한 권, 그리고 제게 한 권을 줬습니다. 그 뒤 동주 형은 감옥에 갇혔고, 저는 학병에 끌려갔지요. 우리가 다 죽어도 이 시집만은 남겨져야 한다는 생각에서 어머니에게 신신당부해 남겨 두었습니다."

지은이도 죽고, 보관하던 사람도 사선을 넘어서는 우여곡절 끝에 남은 시집 원고에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고, 모두 19편이 들어있었다. 모두 쉽게 보아 넘길 수 없는 것들이었다. 윤동주라는 생면부지의 시인의 시와 생애가 준 감동과, 그 친구들의 적극성이 결국 정지용 입에서 책임 있는 말을 하게 하고 말았다.

"시집을 내기 전에 우선 신문에 실어서 세상에 알리도록 하세."

이후 정지용은 윤동주의 돋보이는 시편들을 베껴 쓰고 빌리고 해서 10여편을 가방에 넣고 다녔다. 이제 윤동주의 사후 2주기를 앞두고 있었다.

#시인 탄생, 우리의 자랑

정지용은 고심 끝에 윤동주가 42년 6월에 쓴, 유작 중에서 가장 마지막에 쓴 것으로 추측되는 시 한 편을 택했다. 바로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육첩방은 남의 나라"로 시작되는 '쉽게 씌어진 시'였다. '육첩방'은 일본의 다다미 방을 뜻한다. 자기 나라를 빼앗은 침략국에 유학가 있으면서 참다운 삶의 길을 찾으려는 자의 몸부림이 잘 묻어나는 시였다. 아마도 정지용은 특히 시의 마지막을 보았을 것이다.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어두운 시대를 욕되게 살아가는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을 딛고, 이제 새로 태어날 자신과 만나고 있는 역동적인 전환으로 정리된 대목이다. 이 전환은 현실 삶에서 시인의 죽음으로 탈바꿈하고 말았다.

정지용은 그 비극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당시 경향신문은 목·일요일에만 4면, 다른 날은 2면을 발행했다. 정지용은 2월 13일 목요일자 4면에 이 시의 전문을 싣고, 간단한 해설을 달았다. "간도 명동촌 출생. (……) 복강(지금의 후쿠오카)형무소에서 복역 중 음학한 주사 한 대를 맞고 원통하고 아까운 나이 29세로 갔다. 일황 항복하던 해 2월26일에 일제 최후 발악기에 '불령선인'이라는 명목으로 꽃과 같은 시인을 암살하고 저이도 망했다. 시인 윤동주의 유골은 용정동 묘지에 묻히고 그의 비통한 시 10여편은 내게 있다. 지면이 있는 대로 연달아 발표하기에 윤군보다도 내가 자랑스럽다-지용."

험악한 세상을 뜻깊게 살려고 몸부림치다 비명에 간 한 젊은 시인을 소개하는 뛰어난 선배 시인의 자랑. 윤동주는 이렇게, 우리에게 슬픔과 분노로 와서 어느덧 그런 자랑을 선사하는 존재로 살아남게 되었다.

〈박덕규/ 소설가·단국대 교수〉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2283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1563 詩作을 할때 한쪽 다리를 들고 써라... 2016-07-28 0 4119
1562 詩속에 음악성을 듬뿍듬뿍 띄워야... 2016-07-27 0 3933
1561 흑룡강의 시혼과 함께...강효삼론/허인 2016-07-26 0 3955
1560 詩의 文脈은 山脈, 血脈 등과 간통해야 한다... 2016-07-26 0 4222
1559 보리피리 시인=파랑새 시인 2016-07-25 0 3718
1558 詩의 리론을 깨끗이 잊는것도 공부이다... 2016-07-25 0 4081
1557 詩의 언어는 암시성을 강하게 장치해야 한다... 2016-07-25 0 4207
1556 詩作은 도자기를 만드는것과 같다... 2016-07-23 0 3821
1555 詩作을 할때 詩적 은유를 많이 리용하라... 2016-07-21 0 4324
1554 詩란 진부한 표현을 말살하는 작업이다... 2016-07-20 0 4389
1553 詩란 內美之象적 언어를 뿜어내는 것... 2016-07-19 0 4202
1552 詩作은 그림을 그리는 것... 2016-07-18 0 4116
1551 詩란 의미전달목적과 론리설명언어표현도 아닌 정서적 울림! 2016-07-17 0 4186
1550 시어의 운률미/최균선//방순애시집평론/허인//김금용... 2016-07-15 0 4622
1549 詩란 전례를 타파하는것, 고로 쓰기가 힘든것... 2016-07-15 0 4043
1548 詩作은 풍부한 사유를 많이 하는 것... 2016-07-14 0 4104
1547 詩에 상상의 날개를 달아주자... 2016-07-14 0 3822
1546 詩란 나와의 싸움의 결과물이다... 2016-07-12 0 3979
1545 詩作는 날마다 숙제를 하듯 쓰는 습관을 가져야... 2016-07-11 5 4056
1544 詩는 예리한 눈에서 탄생한다... 2016-07-11 0 3969
1543 詩作은 많은 문학적 경험에서 나온다... 2016-07-11 0 4209
1542 詩란 언어와의 사랑이다... 2016-07-07 0 4019
1541 詩란 고정관념틀을 깨고 그속의 비밀, 맘의 눈으로 보기 2016-07-06 0 4367
1540 [재미있는 詩뒷이야기]-杜牧 唐代詩人의 詩 <淸明>과 련관되여 2016-07-05 0 5141
1539 詩는 제천의식(祭天儀式)에서 유래 2016-07-05 0 3584
1538 李相和와 李陸史 2016-07-04 0 4554
1537 詩는 문학의 정점, 곧 시작과 끝... 2016-07-04 0 4110
1536 名詩들 앞에 선 초라하고 불쌍한 자아의 詩여!!! 2016-07-02 0 3579
1535 詩란 유산균이 풍부한 잘 곰삭은 맛깔스러운 국물! 2016-07-01 0 4090
1534 詩는 안이 밖이 되고 밖이 안이 되는 것... 2016-06-30 0 3993
1533 가짜 詩人과 진짜 詩人 2016-06-29 0 3726
1532 [생각하는 詩 여러 컷] - 탁발 / 소금 ... ... 2016-06-27 0 4343
1531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없다? 있다!... 2016-06-27 0 4088
1530 <조문(弔問)과 죽음 묵상> 시모음 2016-06-26 0 4124
1529 詩적 상상력을 키워야... 2016-06-25 0 4820
1528 詩作은 금기를 풀고 틀을 깨는것... 2016-06-25 0 4489
1527 詩는 時와 空을 초월해야... 2016-06-23 0 4998
1526 詩는 광고정보 전달 수단이 아니다... 2016-06-23 0 4386
1525 [장마전, 한무더운 아침 詩 둬컷] - 밥 / 산경 2016-06-23 0 3832
1524 詩란 천장을 뚫고 하늘의 높이를 재보는것... 2016-06-21 0 4409
‹처음  이전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