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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란 나와의 싸움의 결과물이다...
2016년 07월 12일 23시 50분  조회:3934  추천:0  작성자: 죽림

[7강] 시 창작의 바탕.1 

강사/김영천 


어제 강의 중 多作은 
무조건 시를 많이 쓰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요즘 기성 시인들 중에 일년에 한 편도 작품을 안 쓰는 
경우도 있어요. 시란 것은 아무리 마음 속에 시심을 가지고 
있어도 쓰지 않으면 필요가 없는 것이고. 
시인은 시를 써야 시인이지 
시를 좋아한다고 시인이 아니거든요. 

그러니 숙제를 하듯 늘 시를 쓰라는 것입니다. 
하루에 한 편이라도 쓰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는 매우 
어려운 일이고 며칠 만에 한 편씩, 적어도 1주일에 
한 편씩은 써야한다고 봅니다. 
좋은 작품을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계속 써보라는 것이지요. 

시를 쓰지 않을 때엔 시작품을 읽고, 생각하고 
자기 작품을 고치고 
이런 것도 저는 시를 쓰는 행위의 연속으로 봅니다. 
다작을 멸시하는 시인들도 있지요. 
그러나 불과 수십편 밖에 없는 윤동주도 80까지 사셨다면 
수 백, 수 천편을 남겼을 것입니다. 

현금의 조병화님, 김남조님, 김춘수님들과 타계하신 서정주님도 
아주 다작입니다. 
그래도 그 중에 보석 같은 시는 몇 편 안되는데 
일 년에 두 세편 써서 어떻게 하겠습니까? 

다작에 대해 너무 부담은 갖지 마시되 
열심히는 쓰셔야지요. 
왜냐하면 한 번 필을 놓으면 영 다시 잡기 힘드니까요.- 


저는 이미 이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강의 계획에서 
조태일님의 『알기쉬운 시 창작 강의』를 
사용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그 외에도 여러 시 
이론 책을 참고하고 있습니다. 다만 모든 서적들이 
너무 어려운 표현으로 되어 있어 그대로 옮기지 못함을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우선 교재에서는 시 창작을 체험과 기억, 상상력의 
세 가지 바탕으로 나누었는데, 우린 이미 제4강에서 
<많은 문학적 경험을 하라>는 강의를 들은 바가 있으니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하겠습니다. 

다만 복습하는 차원에서 간단히 설명하면 시를 창작 
하는 이들에겐 의미있고 인상 깊은 체험, 고향이나 유년 
시절의 경험처럼 가슴 속 깊은 곳의 체험, 결코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체험들이 시상이 되고, 시 창작의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전에 설명했으니 여기서는 체험을 씨앗으로 쓴 시를 
한 번 감상해보지요 

順伊가 떠난다는 아침에 말못할 마음으로 함박눈이 내려, 
슬픈 것처럼 창 밖에 아득히 깔린 地圖 위에 덮인다. 
방안을 돌아다 보아야 아무도 없다. 壁과 天井이 하얗다. 
방안에까지 눈이 내리는 것일까. 정말 너는 잃어버린 
歷史처럼 홀홀히 가는 것이냐, 떠나기 전에 일러둘 말이 
있던 것을 편지로 써서도 네가 가는 곳을 몰라 어느 거리, 
어느 마을, 어느 지붕밑, 너는 내 마음 속에만 남아 있는 
것이냐. 네 조그만 발자욱 자리마다 눈이 자꾸 내려 덮여 
따라갈 수도 없다. 눈이 녹으면 남은 발자욱자리마다 
꽃이 피리니 꽃사이로 발자욱을 찾아 나서면 1년 열두달 
하냥 내 마음에는 눈이 내리리라 
윤동주,<눈오는 地圖> 전문 



이토록 우리의 체험은 우리의 가슴 속에 기억으로 남고 
그 기억이 상상력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릴케조차도 "시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감정이 아니다. 
시가 만약 감정이라면 젊은 나이에 넘쳐 흘러 버릴 정도 
로 시를 갖게 될 것이다. 진실로 시는 체험인 것이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시창작의 두번째 바탕인 기억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기억은 과거의 경험들이 잘 보존된 창고입니다. 

과거의 경험이 기억으로 발전하고 이 기억은 다시 
상상력의 근원이 되어 결국은 시를 창작하는 씨앗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의 재료가 되기 위해서는 체험들도 의식 
속에서 잘 삭아야 합니다. 모든 발효식품처럼 좋은 식품이 
되기 위해서는 적당한 숙성과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아무리 체험이 중요하다고 당장의 체험은 오히려 감정 
에 휩싸여 객관성을 잃을 뿐만 아니라, 자기의 감정만 
노출되는 아주 좋지 않은 시가 될 수 있습니다. 

앞 서 말했듯이 시는 체험이라고 주장했던 릴케도 
되도록 체험을 빨리 잊어버리고 그에 대한 기억이 
무의식 속에서 익어 과일처럼 떨어지는 그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려 시를 쓰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처럼 시는 체험 그 자체가 아니라 체험의 기억인 것입니다. 
조금 길지만 김종길의 <성탄제>를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마치 내 체험과 내 기억으로 쓴 시처럼 생각하고 읽어 보세요 


어두운 방 안엔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 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 것이란 거의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봄이면 피는 산수유의 노란 꽃과 붉은 열매입니다. 
----------------------------------------- 
화자는 어린 시절 심하게 앓던 열병의 체험을 
특별한 사건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의 체험의식 속에 사랑으로 기억되고 있는 
가난한 젊은 아버지, 약 한 첩 사오지 못하고 
눈밭을 얼마나 헤메어 그나마 따온 빠알간 
산수유 열매가 약효가 있었는지는 몰라도 
지금껏 화자의 혈액 속에 뜨거운 사랑으로 
녹아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화자가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보니 더욱 새록 
새록 느껴지는 사랑. 열병에 몹시 앓는 아들을 
위해 약 한 첩 사지 못하는 가난한 아비의 마음과, 
혹독한 추위에도 불구하고 한 두 알 남았을 
산수유 열매를 찾아 헤메었을 아버지의 절대적 
사랑이 이제는 성인이 되어버린 화자에게 기억으로 
다시 살아나 한 편의 아름다운 시가 된 것입니다. 

아무래도 상상력에 대해선 내일 강의해야겠군요. 
박의상님의 짧은 시 하나 더 읽고 강의 마치겠습 
니다. 

< 나는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다> 

나는 이 사람을 본 적이 있다 
이른 새벽 꽃밭이었다 
물을 한 잔 들고 있었다 
꽃 한 포기에 그 물을 
천천히 주고 있었다 
주면서 반짝 웃고 있었다 

그리곤 갔다 

해가 떴다 

-이어서 작가는 자신의 시에 "기억의 위대함에 대하여" 
라는 제목으로 해설을 붙입니다. 

아내를 잃고 나서 그가 맞는 세상은 꽃도 꽃이 
아니고, 돈도 돈이 아니었습니다. 자신도 자신 같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힘이 되는 것은 기억이란 
힘이었습니다. 
『나의시, 나의 시쓰기』란 책에 있는 그의 해설을 잠깐 
옮깁니다. 

"세계가 없었던 느낌, 당연히 그 속의 나도 아이들도 
<없다>는 느낌이 어떻게 그렇게 <있다>는 쪽으로 달라 
졌느냐. 기억의 힘 이외에 다른 설명의 방도가 없다. 
기억, 추억, 회상, 반성 이런 힘, 에너지가 아니었으면 
아이들이나 나나 전혀 새로운, 낯선 존재였을 것이다." 

여러분, 기억이란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요?. 우린 
우리 안에 잠재해 있는 많은 기억들을 일깨워야겠습니다. 
시의 씨앗을 영원히 창고에 잠재울 것이 아니라 깨워서 
상상력의 날개를 달아주어야 겠습니다. 
다음 시간에 그 상상력에 대해서 공부하기로 하겠습니다 

==========================================================

 

 

 
 
나의 싸움 
―신현림(1961∼ )

삶이란 자신을 망치는 것과 싸우는 일이다

망가지지 않기 위해 일을 한다
지상에서 남은 나날을 사랑하기 위해
외로움이 지나쳐
괴로움이 되는 모든 것
마음을 폐가로 만드는 모든 것과 싸운다

슬픔이 지나쳐 독약이 되는 모든 것
가슴을 까맣게 태우는 모든 것
실패와 실패 끝의 치욕과
습자지만큼 나약한 마음과
저승냄새 가득한 우울과 쓸쓸함
줄 위를 걷는 듯한 불안과

지겨운 고통은 어서 꺼지라구!


 
화자는 외로움과 슬픔에 취약한 사람이다. 그래서 ‘외로움이 지나쳐 괴로움’이 되고 ‘슬픔이 지나쳐 독약’이 되는 지경이다. 이러다간 내 삶이 망가질 거야! ‘망가지지 않기 위해 일을’ 하는데, 우울하고 쓸쓸하고 불안하기만 해서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러니 속이 까맣게 타고 죽을 맛이다. 그래도 일은 해야 먹고살지. 이럴 때 따뜻한 생기를 나눠 줄 한 사람이 그립구나. 내 처지가 어쩌면 이리도 외롭고 슬픈가. 마음이 습자지처럼 나약해진 화자, 삶을 갈아엎을 결연한 의지도 실행할 힘도 안 나니까 소리를 빽 지른다. ‘지겨운 고통은 어서 꺼지라구!’ 힘없는 사람이 악이나 쓰지 뭐. 그러고 나서 다시 첫 행으로 돌아가 투지를 다진다. ‘삶이란 자신을 망치는 것과 싸우는 일이다.’ 두둥! 박수치고 싶게 멋진 말! 

일하는 건 망가지지 않은, 버젓한 사회인으로 사는 기본 조건일 테다. 그런데 대다수 사람은 망가지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돈이 생기기 때문에 일을 한다. 일하다 몸이나 정신이 망가지기도 한다. 망가져도 일을 한다. 그게 생업(生業)이라는 거다. 생업에 시달리는 사람은 그다지 외롭지는 않다. 괴로울 뿐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사람은 행운아다. 그들은 일을 하면 할수록 튼튼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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