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료녕문보 <명인 탐방>
한 시인이 피워 올리는 중한 양국 시의 향기
올 여름 김금용시인을 만난 것은 참으로 큰 행운이었다. 김시인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틈이 생길 때마다 그녀의 시를 음미하다보면 무더운 이 여름날도 시원하게 보낼 수 있겠다는 예감에 나는 마냥 행복해진다. 시 하나로 행복해질 수 있다는 사실 앞에 김시인이 내게 던져준 메시지는 경건함과 그 경건함 너머 가벼워지는 마음이었다.
우리는 시로 만났다. 지난 5월 한국 성남문화원과 심양시조선족문학회가 공동 주최하고 주심양한국총영사관이 후원한 시 낭송회에서였다. 심양에서 처음으로 진행된 한국의 시인들과 심양의 시인들이 어우러진 시 낭송회에 김금용시인이 참석한 것이다. 그 날 시 낭송과 행사 후 뒤풀이장소에서 그녀가 부른 "옛시인의 노래"를 들으며 시가 왜 두루 오랜 세월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려주고 있는 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김금용시인의 시사랑은 개인에게 국한되지 않았다. 그녀의 시에 대한 사랑이 피워올린 시의 향기는 이미 국경과 민족을 뛰어 넘어 중국과 한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하고 있다.
한국시단에 피워올린 한떨기 꽃--“중국 현대시”
2006년 김금용시인은 “문화혁명이 낳은 중국 현대시”란 번역시집을 출간하며 한국시단에 중국의 현대시를 번역 소개한 첫 시인으로 자리매김했다.
1998년 첫 개인시집 “광화문 쟈콥”을 발간한데 이어 2006년 두 번째 개인시집 “넘치는 그늘”을 발간한 그녀는 한국시단에 널리 알려진 시인이다. 1991년부터 남편을 따라 북경, 청도, 심양 등지에서 거주하며 지금까지 10년 넘게 중국에서 생활한 그녀가 유독 중국 현대시에 빠져들게 된 것은 순전히 시인다운 호기심 때문이었다.
“중국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무엇보다 현대 중국시단이 궁금하였어요. 1920년대부터 시작된 중국 근대문학사의 발전과 그 경향에 대해서는 관련 논문이나 서적들이 많이 있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지만 1967년부터 1977년까지 10년간 겪은 문화혁명 당시와 80년대초까지 그간의 문단 흐름이나 시 경향에 대해 많이 궁금하였어요.” 이런 궁금증을 풀기 위해 김금용 시인은 2000년 3월 중앙민족대학에 입학하며 연구대상을 6, 70년대 이후의 중국현대시로 선택했다.
“한국에서 중국시를 연구하는 사람은 적지 않아요. 하지만 대부분 당.송시에 국한되어 있지요. 한국의 저명한 한학자 허세욱선생님의 중국현대문학연구도 문화혁명 이전까지만 소개되어 있더군요. 당연히 6, 70년대 이후의 중국시들이 한국에선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고 공백으로 남아있었죠. 저는 이것이 바로 중국의 특정적인 역사 시기의 사회현상과 문화특색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기에 연구가치가 아주 크다고 생각합니다.” 중국 현대시에 대한 김금용시인의 궁금증 저변에는 그녀의 시인다운 사명감이 깔려있었다.
중국 현대시의 생성과 발전에 대해서 중국 조선족시인으론 할빈의 한춘시인이 비교적 상세한 연구를 진행해왔다. 한춘 시인의 연구에 따르면 70년대 말 80년대 초 조용하던 중국 시단이 흔들리며 한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한다. 이름 없는 청년시인들이 맘속에 문화대혁명의 상처를 안은 채 암흑의 과거와 타협을 거절하는 결단을 이색적인 시로 토로했는바 이들이 바로 "몽롱시"다.
몽롱시가 사회의 전면적인 승인을 받기까지는 결코 순풍에 돛단 격이 아니었다. 전국 시단을 석권하기까지 많은 설전과 필전을 겪었다. 몽롱파 시인들은 과거의 직설과 이론적 서정방식에서 탈피하여 생활의 비밀을 이미지에 용해시켜 심각하고 다층차적인 정감을 암시와 상징 속에 용해시킨 시작품을 퍼내였다. 현실의 시공간 질서를 그대로 재현, 분석한 것이 아니라 시인 주체의 정서흐름과 상상의 론리에 따라 세계를 새롭게 조립했다. 이들의 시작품은 거의 다 언어의 생소화를 도입한 이색적인 작품들이여서 "몽롱시"라는 중성명칭이 생기게 되였으며 몇 년동안 중국 시단의 장안화제로 긍정과 부정의 도마 우에 놓여 이런 저런 주목을 받는 와중에 드디어 생존 입지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김금용시인은 중국 시단의 발전 전환점을 예리하게 보아낸 것이다. 김금용시인은 중앙민족대학에 입학하여 석사과정를 지도해주던 우극곤교수의 도움을 받아 중국 당대시라 할수 있는 70, 80년대 시작품들을 대량으로 접하며 중국시단에 대한 인식을 깊이하고 중국의 현대시를 한국에 소개하기에 이른다. 그때의 심경을 김금용시인은 다음과 같이 토로했다.
"중국이 문혁시대를 넘기며 중국 시단엔 '귀거래파'가 등장하고, '몽롱시파'가 나오고, 다시 혼돈의 '신세대파'가 나왔어요. 그들만의 시대 상황 변화에 따라 시인들의 사회적 위치에도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던 것은 나에게도 적지 않은 충격이였어요. 중앙민족대학의 우극곤지도교수님으로부터 현대시를 한 편 한 편 소개받고 해석을 해나갈 적마다 나는 그들의 시대적 아픔과 인성에 대한 련민에 빠져들었고 그것은 또 내 것이 되고 내 고통이 되였어요. 그때부터 시인으로서의 감수성과 리해만을 내 힘이라 믿고 중국 시인들의 작품을 번역하기 시작하였어요."
김금용시인은 애칭, 고성, 북도, 서정, 류사하 등 시인들의 시를 특별히 좋아하였는데 김시인은 매달 이들의 시를 한수씩 번역하여 한국에서 월간으로 나오는 "우리시"에 발표하기 시작하였는데 그렇게 한국에 소개한 시가 무려 70여수에 달한다. 2006년 김시인은 그중의 40수를 엄선하여 "문화혁명이 낳은 중국 현대시"란 단행본을 출간하였다. 우극곤교수는 김금용시인의 단행본 출간에 즈음하여 "김금용녀사의 중국 신시집은 16명 시인의 40여편 작품만 수록하였지만 20세기 80년대 이래 중국 신시의 정수로서 같은 시기 시의 변화와 발전을 측면적으로 보여주며 한국 시인이자 학자인 김시인의 독특한 시각을 보여주고있다."고 높이 평가하였다.
중국시단에 주는 큰 선물--“나의 詩에게”
김금용시인은 "중국시를 공부하면서 오히려 우리시에 대한 애정이 날로 더해갔다."고 고백했다. 김시인의 이러한 애정은 당연하게 2008년 김남조, 정진규, 이승훈, 문효치, 박제천, 문정희, 조정권 등 저명시인의 대표시들을 묶은 "나의 詩에게"란 중문판을 발간하기에 이른다.
"한국 대표시인들의 시를 건드린다는 것은 외도에 주제넘는 짓임을 잘 안다. 더군다나 시의 행간에 숨겨진 온갖 응축과 비유, 상징의 시어들을 어찌 감히 건드릴 수 있으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도를 멈추지 못한 건 순전히 시에 대한 욕심, 사랑, 정열 때문이였다. 죽을 때까지 시를 놓을 수 없을 것이기에 외국에 나가있는 동안이라도 멈출 수 없었다."는 김시인은 시를 업으로 삼은 사람으로서 한국 현대시단의 경향과 위상을 중국어로 해외에 알리는 일에 동참했다는데 큰 기쁨을 느낀다고 심중을 토로했다.
1964년과 1992년 2차에 걸쳐 중역본 "한국시선"을 중국에서 출간한적 있는 한국의 저명한 한학자 허세욱교수는 "나의 詩에게" 출간을 두고 "중국이 점차 정치 이데올로기를 벗어나 인간과 시의 시대로 탈바꿈해서 이미 우리와 한길로 들어섰다는 느낌이다. 그럴수록 시의 교류를 통해 한중 두 나라 사이에 령혼의 깊은 리해를 다져야 한다. 이럴때 그 도랑을 파고 다리를 놓는 이가 있다. 우리 시단에서 촉망받는 현역 시인 김금용씨가 한국 시단에서 대표적인 시인 일곱 분의 대표작을 중역 출간하는 일이 그렇다. 그것은 두 나라 문학교류는 물론 한국의 전위에서 행동하고 고뇌하는 한국 시인의 살아있는 심금을 진솔하게 들려주는 미거로 보인다. 김시인의 역간은 나에 비해 더욱 의지적이요 더욱 발전중이다. 이 시집의 출간함으로써 두 나라의 독자는 물론 두 나라에서 한중 문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부교재로 제공되였으면 한다."고 평가하였다.
김금용시인과 수팅(舒婷)과의 만남
김금용시인의 시에 대한 사랑과 그녀의 인간면을 리해하는데 도움을 주고저 그녀와 서정사이에 있은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한다.
중앙민족대학에서 중국 현대시를 전공하며 김시인은 서정의 시에 빠져들게 된다. 서정의 시 "상수리나무에게"를 원문없이 줄줄 낭송하는 김시인은 졸업 론문 테마도 "서정의 시"로 정했을 정도다. 김시인은 론문을 완미하게 완성하기 위해 남편까지 동원하여 서정을 찾은 결과 서정이 사먼에 정착하였다는 것이였다. 얼마 후 북경에 회의하러 온 서정이 웬 한국 부인이 자신을 애타게 찾았다는 소식을 듣고 영사관에 연락하였지만 그때는 김시인이 이미 한국으로 귀국한 뒤였다.
2004년 남편따라 청도에 거주하게 된 김시인은 마침내 청도대학에서 교편을 잡고있는 서정의 친구이며 같은 몽롱파 시인인 조안나 교수를 통해 서정과 연락할 수 있게 되었고 이어 한국 영동에서 열린 아시아 시인대회에 서정이 참가하게 된다는 걸 알게 된 김금용시인은 중국 청도에서 한국 영동으로 나가 극적인 상봉을 이루게 된다. 서정의 시를 읽고 서정과 만나기까지 5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그 때 서정시인과 함께 온 중국 문학평론가인 부군과 함께 서울 시내를 돌며 주인으로서의 정성을 다했다.
김금용시인은 어디를 가나 시에 대한 뜨거운 열정만은 여전했다. 지금 심양에 거주하고있는 그녀는 올 9월 있게 될 심양 한국주에 맞춰 "심양한중시인대회"를 개최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있다. 한국에선 김 남조, 오탁번, 김종해, 이근배,..등 대표적인 시인들이 참석할 예정이며 중국 심양의 <시조>사 주간이자 시인인 이수산과 조선족시인들 대표인 시인협회장 김창녕 시인이 역시 함께 중국과 조선족 대표시인들을 모시고 진정한 한 중 문화교류의 장을 열어갈 참이다. 이에 중국,한국, 조선족 자치주 모두 많은 관심을 갖고 지켜봐 주리라 믿는다.
- 중국 심양 료녕성 료녕신문 이창녕 기자 -
[출처] 한 시인이 피워 올리는 중한 양국 시의 향기|작성자푸른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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