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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作初心 - 좋은 詩 없다... 있다...
2016년 02월 26일 22시 08분  조회:4206  추천:0  작성자: 죽림
감동 • 상상 • 아름다움
—좋은 시의 몇 가지 유형





강 인 한










디지털 시대에 들어서서 문학의 위기 내지 시의 위기가 도래하였다고들 합니다. 확실히 문학, 그 중에서도 시가 차지하는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는 것은 서점에 가보면 실감할 수 있습니다. 시집 코너가 예전에 비해서 훨씬 줄어든 게 눈에 보입니다. 물론 시집이 예전보다 더 안 팔리고 일반 독자들이 외면하고 있는 게 현실이지만 시를 쓰고자 하는 이들의 열정은 오히려 더욱 활활 불붙는 것 같습니다. 시의 독자보다 시인이 더 많다, 이게 지금 우리 시단의 이상한 현실입니다. 시도 예전보다 훨씬 많이 창작되고 그만큼 많이 발표되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요즈음의 시단과 그 주변을 살펴볼 때 1920년대의 동인지시대와는 또 다른 동인지 시대가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처음 출발할 때부터 ‘편집동인’ 체제로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종합 문예 계간지들—창작과비평, 문학과 사회, 문학동네, 실천문학 등. 뜻이 맞는 동인들의 잡지로 출발한 것들이었습니다. 솔직히 대형서점에서 찾아볼 수 없지만 꾸준히 발행되고 있는 유명 무명의 계간지들이 따지고 보면 동호인들이 서로 힘이 돼주고 밀어주어서 명맥을 유지하는 동인지에 다름 아닙니다.
하도 많은 잡지가 발간되고 거기에 시도 그만큼 발표되고 보니 가지각색의 시들이 다양한 목소리를 내며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또한 그 가운데에는 세계적 수준의 우수한 작품도 있는가 하면 골방에서 혼자 지껄이는 수준의 독백이나 비밀일기 같은 작품도 있습니다. 좋은 시도 있고, 평범한 보통의 시도 있고, 저급한 시도 있습니다. 난해한 시가 있는가 하면 이해하기 쉬운 시도 있습니다. 독자에게 편안하게 다가가고자 하는 시가 있는가 하면 어떻게든지 독자가 읽어내는 것을 방해하려는 불편한 시도 있습니다. 이해하기 어렵거나 쉬운 정도를 떠나 아예 떡장수 엄마를 잡아먹은 늑대가 문틈으로 내미는 털투성이 앞발처럼 시도 아닌 것을 시라고 내놓는, 가짜 시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가관인 것은 그런 가짜 시에 그럴싸한 상도 주고 등 두드려주는 희한한 정경도 벌어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제 시의 독자는 단순한 독자의 자리에 만족하지는 않습니다. 나는 시인이면서 독자임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오늘의 우리나라 시 독자는 단순히 시를 피동적으로 읽는 데 그치지 않고 능동적으로 시 창작에도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연히 알게 된 인터넷으로 나는 2002년 3월 '다음(daum)' 사이트에 카페 하나를 개설했습니다. 카페 <푸른 시의 방>, 여기에 나는 하루에 한 편 혹은 이틀에 한 편, 내 눈으로 본 좋은 시를 ‘좋은 시 읽기’라는 코너에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용악, 백석, 정지용 등 우리 현대시의 태동기부터 연대순으로 시인 한 사람에 한 편씩 대표시를 올리는 일은 1980년대까지 진행하였고, 그 이후는 잡지나 시집에서 순서 없이 좋은 시를 찾아 올리게 됐습니다. 요즘 그 ‘좋은 시 읽기’는 4350 편을 돌파하고 있으며 어떤 경우에는 두세 편을 한꺼번에 올리기도 했으므로 지금까지 실은 7천여 편 혹은 그 이상의 ‘좋은 시’를 올린 셈이라 하겠습니다. 시 전문잡지 한 권에서 적게는 두 편 많게는 다섯 편, 그리고 시집 한 권에서 적게는 두 편 많게는 다섯 편 정도를 찾아 올리고 있습니다. 기증 받은 시집 한 권에서 한 편도 못 올릴 때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에게는 퍽 미안하게 생각하면서도 내가 꾸리는 ‘좋은 시 읽기’ 코너는 정말 누가 봐도 공정하게 작품을 선별하고 있음에 존재 의의가 있다고 자부합니다.
내 나름대로 오늘의 시 중에서 ‘좋은 시’로 꼽는 건 대체로 크게 세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는데 그건 첫째 감동이 있는 시, 둘째 상상의 재미가 있는 시, 셋째 아름다움이 있는 시입니다. 시인 또는 평론가에 따라 좋은 시의 분류는 더 자세히 나눌 수도 있겠지만 나는 좋은 시를 나누는 기준을 그렇게 정해 본 것입니다. 한 편의 시를 쓰고 나서도 나는 가끔 이런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집니다. 내가 방금 쓴 이 시는 감동이 있는 시인가? 그게 아니면 상상의 재미가 있는 시인가? 그도 아니면 아름다움이 있는 시인가?





감동이 있는 시




시의 내용은 정서입니다. 아기자기한 줄거리를 지닌 서사가 아닙니다. 도덕적 교훈이나 철학적 인생의 깨달음도 아닙니다. 우리 삶의 한 장면에서 우연히 부딪혀 우러나는 정서, 그뿐입니다. 시가 말하는 이야기란 사실 시시한 얘기입니다. 사별한 가족들을 생각하니 서글프다, 아름다운 계절의 풍경을 대하고 기분이 상쾌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못 만나니 섭섭하다, 이런 따위 지극히 사소한 정서에 지나지 않습니다. 억울하고 비통한 일을 당했을 때 자기 심정을 토로할 뿐, 어떤 방식으로 앙갚음을 해야 한다고 꼬드기지도 않습니다.
나는 정서를 노래하되 그 시의 울림이 큰 시를 ‘감동이 있는 시’라고 부릅니다. 이런 시의 장점은 시인과 독자 사이에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일 테고, 또한 메시지가 강한 점에서 말한다면 다른 무엇보다 주제가 선명하다고 할 것입니다.




그 해 겨울 영랑호 속으로
빚에 쫓겨온 서른세 살의 남자가
그의 아내와 두 아이의 손을 잡고 들어가던 날
미시령을 넘어온 장엄한 눈보라가
네 켤레의 신발을 이내 묻어주었다





고니나 청둥오리들은
겨우내 하늘 어디선가 결 고운 물무늬를 물고 와서는
뒤뚱거리며 내렸으며
때로 조용한 별빛을 흔들며
부채를 청산한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인근 모래기*까지 들리고는 했다





얼음꽃을 물고
수천 마리 새떼들이 길 떠나는 밤으로
젊은 내외는 먼 화진포까지 따라나갔고
마당가 외등 아래서
물고기와 장난치던 아이들은 오래도록 손을 흔들었다
그러나 애들이 얼마나 추웠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나의 뺨을 적신다





그래도 저녁마다
울산바위가 물속의 집 뜨락에
오래 가는 놀빛을 떨어뜨리고 가거나
산 그림자 속 화암사 중들이
일부러 기웃거리다가 늦게 돌아가기 때문에
영랑호는 문을 닫지 않는 날이 많다





그런 날은 물속의 집이 너무 환하게 들여다보였다






* 모래기는 영랑호 주변에 있는 마을 이름.





―이상국, 「물속의 집」전문










“―95년 1월 빚 때문에 영랑호에 와 자살한 한 가족을 위하여”라는 부제를 달고 이 시는 《현대시학》1996년 2월호에 발표되었습니다.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일가족 네 식구가 겨울 영랑호에 투신한 동반자살. 아마 신문기사에서 시인은 그 슬픈 소식을 접했겠지요. 죽어서도 젊은 내외는 돈을 벌기 위해 새떼들을 좇아 “먼 화진포까지 따라나갔고” 부모를 배웅하며 “물고기와 장난치던 아이들은 오래도록 손을 흔들었다”고 합니다. 이중섭의 천진스런 그림 같은 그 정경이 떠올려지면서 마침내 시인은 자기감정을 감추지 못하여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나의 뺨을 적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감동’을 보여주는 시를 찾아보자면 백석의 「여승」, 김종삼의 「민간인」등을 볼 수 있습니다.
대체로 감동이 있는 시를 지향하는 작품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은 시적 긴장의 이완으로 말미암은 산문화 경향일 것입니다. 그런 유형의 시들은 행 구분을 무시하고 모두 다 산문처럼 줄줄이 이어 붙여보면 금방 시의 허술함이 드러나기 십상입니다. 자기는 시라고 썼는데 짤막한 수필이거나 철학적인 짧은 산문일 경우가 많습니다.



거실 화장실 수건은 늘 아내가 갈아두는데
그중에는 근래 직장에서 받은 입생로랑이나
란세티 같은 외국물 먹은 것들도 있지만
1983 년 상주구계서원 중수 기념수건이나
(그때 아버지는 도포에 유건 쓰고 가셨을 거다)
1987년 강서구 청소년위원회 기념수건도 있다
(당시 장인어른은 강서구청 총무국장이었다)
근래 받은 수건들이야 올이 도톰하고 기품있는
태깔도 여전하지만, 씨실과 날실만 남은 예전
수건들은 오래 빨아 입은 내의처럼 속이 비친다
하지만 수건! 그거 정말 무시 못할 것이더라
1999년, 당뇨에 고혈압으로 장인어른 일년을
못 끌다 돌아가시고, 2005년 우리 아버지도
골절상으로 삭아 가시다가 입안이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가셨어도 , 그분들이 받아온 낡은
수건들은 앞으로도 몇 년이나 세면대 거울 옆에
내걸릴 것이고, 언젠가 우리 세상 떠난 다음날
냄새나는 이부자리와 속옷가지랑 둘둘
말아 쓰레기장 헌옷함에 뭉쳐 넣을 것이니
수건 그거 맨 정신으로는 무시 못할 것이더라
어느 날 아침 변기에 앉아 바라보면, 억지로
찢어발기거나 불태우지 않으면 사라지지도 않을
옛날 수건 하나가 이제나 저제나 우리 숨 끊어질
날을 지켜보기 위해 저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소멸에 대하여 1」





이 시의 시인은 젊은 시절 한때 패기에 찬 시를 발표하여 일찍이 문명(文名)을 날렸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회갑을 지나고 나서 갑자기 조로 현상이 왔는지 이렇게 포에지가 묽은 시를 어엿한 대가의 시인 양 내놓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이 시(?)를 행갈이 한 것을 그냥 다 붙여보면 이게 시라기보다 산문 쪽에 훨씬 가까운 글임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시적 긴장감이 없는 시를 쓸 바에야 차라리 침묵하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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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 감자떡 / 이상국










감자떡

이 상 국

하지가 지나면
성한 감자는 장에 나가고
다치고 못난 것들은 독에 들어가
가을까지 몸을 썩혔다
헌 옷 벗듯 껍질을 벗고
물에 수십번 육신을 씻고 나서야
그들은 분보다 더 고운 가루가 되는데

이를테면 그것은 흙의 영혼 같은 것인데

강선리 늙은 형수님은 아직도
시어머니 제삿날 그걸로 떡을 쪄서
우리를 먹이신다


이상국 시집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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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4. 있는 힘을 다해 / 이상국








있는 힘을 다해

이 상 국

해가 지는데
왜가리 한마리
물속을 들여다보고 있다

저녁 자시러 나온 것 같은데

그 우아한 목을 길게 빼고
아주 오래 숨을 죽였다가
가끔
있는 힘을 다해
물속에 머릴 처박는 걸 보면

사는 게 다 쉬운 일이 아닌 모양이다


이상국 시집 <어느 농사꾼의 별에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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