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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의학
2016년 03월 19일 08시 13분  조회:4592  추천:0  작성자: 죽림

보들레르,시인이었던 그, 왜 말 잃고 욕만 했을까

 

보들레르, 45세때 언어 장애 와 반신 마비·실어증 앓다 생 마감

언어 기능하는 왼쪽 뇌 이상 오면 적절한 단어 못쓰고 마비까지
뇌경색, 가벼운 증상 때 치료 중요


 19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시인 보들레르의 초상화와 그가 쓴 시집‘악의 꽃’(가운데). 언어장애를 유발하는 좌측 중뇌동맥 뇌경색이 발생했을 때의 뇌 MRI 사진(오른쪽). 흰 부분이 뇌경색으로 손상된 부위다.

19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시인 보들레르의 초상화와 그가 쓴 시집‘악의 꽃’(가운데). 언어장애를 유발하는 좌측 중뇌동맥 뇌경색이 발생했을 때의 뇌 MRI 사진(오른쪽). 흰 부분이 뇌경색으로 손상된 부위다. /조선일보 DB

 


 김상윤 분당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

김상윤 분당서울대병원 신경과 교수

 
'악의 꽃'으로 유명한 샤를 보들레르(1821~1867)는 19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시인이다. 그는 시인뿐만 아니라, 수필가·비평가 등 다양한 문필 활동을 했다. 그는 명석한 분석력과 상상력을 동원해 인간 심리 심층을 탐구했다. 문학적 유산은 다음 세대인 베를렌·랭보 등 시인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보들레르는 기이한 생활과 독특한 성격으로도 이름이 나 있다. 훗날 그러한 행태는 매독에 의한 뇌병증과 관련지어 설명되곤 했다. 하지만 그는 뇌경색으로 생을 마감한다. 뇌동맥이 막혀 뇌조직에 혈액이 공급되지 않아 뇌손상이 오는 질환이다.

보들레르가 문학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하던 45세에, 그는 벨기에 여행을 갔다. 여정 중에 가벼운 마비 증상이 있었고 곧 회복됐다. 하지만 며칠 후에 다시 증상이 발생했고 점차 심해졌다. 결국 오른쪽 팔·다리의 반마비를 동반한 언어장애가 생겼다. 2주 후에는 전혀 말을 할 수 없게 된다. 프랑스 파리로 돌아와서 치료를 계속했으나, 5개월여 만에 죽음을 맞았다.

보들레르의 병세는 현재의 신경과학으로 봤을 때, 좌측 중(中)뇌동맥 폐쇄에 의한 좌측 뇌경색이다. 당시 보들레르는 아편 흡연과 폭음, 과로가 계속되는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이런 것들이 뇌경색 발생 위험인자로 작용했을 것이다.

우리의 뇌신경 시스템은 복잡한 연결 구조를 갖고 있다. 왼쪽 뇌가 몸의 오른쪽 운동과 감각 등을 총괄하고, 오른쪽 뇌는 왼쪽 반 기능을 주로 담당한다. 이외 많은 기능도 오른쪽과 왼쪽 뇌가 나누어 담당하는데, 언어 기능은 왼쪽 뇌가 담당한다. 따라서 좌측 중뇌동맥 이상으로 뇌경색이 발생하면 오른쪽 반신 마비와 언어 기능 상실이 동시에 나온다. 오른손잡이라면, 언어와 주요 신체 기능을 한꺼번에 잃는 셈이다.
보들레르에게서 나타났던 언어장애를 의학적으로 분석해보면, 처음 뇌경색 초기에 나타난 언어장애는 '의미성 언어장애'로 생각된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긴 하는데, 적절한 단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증상이다. 이후 점차 심해지면서 '운동성 언어장애' 상태가 된다. 남들이 하는 이야기는 어느 정도 알아듣고 이해하나,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이 입으로 나오지 않는 상태다.

보들레르는 이 상태에서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시설에 입원했고, 하고자 하는 말을 전혀 하지 못했다. 시인이었던 그가 반복적으로 할 수 있는 말은 역설적으로 특정한 욕이었다. 간혹 하고자 하는 말은 못 해도 버릇처럼 나오는 욕이나 잘 아는 노래는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현상을 보인다. 이후에는 이런 욕도 나오지 않는 완전 실어증이 됐다.

만약 보들레르가 현대인이라면, 그래서 첫 번째 뇌경색 증상이 나타났을 때 바로 병원을 방문해 치료를 받았더라면, 추가적인 뇌경색은 막을 수 있었다. 그러면 언어장애로 그렇게 고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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