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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 슬픈 詩 한수]- 병상록
2016년 03월 26일 06시 35분  조회:4101  추천:0  작성자: 죽림
병상록(病床錄)
- 김관식(1934~70)


기사 이미지
(…)

방안 하나 가득찬 철모르는 어린 것들.

제멋대로 그저 아무렇게나 가로세로 드러누워

고단한 숨결은 한창 얼크러졌는데

문득 둘째의 등록금과 발가락 나온 운동화가 어른거린다.

내가 막상 가는 날은 너희는 누구에게 손을 벌리랴.

가여운 내 아들딸들아,

가난함에 행여 주눅들지 말라.

사람은 우환(憂患)에서 살고 안락(安樂)에서 죽는 것,

백금(白金) 도가니에 넣어 단련할수록 훌륭한 보검(寶劍)이 된다.

아하, 새벽은 아직 멀었나 보다.


///호랑이표 시멘트 종이를 바른 방바닥에 “오연(傲然)히” 앉아 호피(虎皮) 위에서 산다며 “기호지세(騎虎之勢)”를 자랑하던 김관식 시인의 시다. 이 시는 그가 세상을 뜨던 해에 발표되었다. 세검정 꼭대기에서 병마와 기행(奇行)으로 세상을 질타하던 시인이 자식들에게 남긴 말이다. “가난함에 행여 주눅들지 말라.” 자본 지배의 세상에서, 이 목소리는 아직도 너무 외롭다. “새벽은 아직 멀었나 보다.”

<오민석·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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