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송화가 부서진 화분 밖으로 기어 나오고 오래된 골목 냄새가 코를 찌른다 고층 아파트가 전기 끊긴 집에 달빛마저 끊는다고, 붉은 욕창처럼 문드러진 비닐장판에 누운 잠 다시는 깨지않기를 바라는 서러운 잠이라고, 재개발 때문에 떠나야 하는 사람들 이야기가 조간신문 두 면에 가득하다.
아니나 다를까, 창구멍 숨구멍도 없이 반지하방 쪼들리는 햇빛에 겨우 키가 크는 애들이 활개치고 놀던 골목에서 한 아이가 무릎에 얼굴을 묻고 있다 햇빛은 멀고 얼마나 걸어 나가야 이 골목을 빠져 나갈 수 있느냐고, 기어 나오다 기어 나오다 어느 날 멈춰 버린 키 작은 채송화처럼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시평///
따스한 배려와 공감, 어떤 동정심마저도 가 닿지 못하는 안타까운 풍경을 본다. 재개발을 앞둔 이 땅의 많은 도시 빈민촌의 골목마다 이러한 그림은 살아있는 것이다. 햇빛은커녕 달빛도 잘 들지 않는 골목 깊이 피어난 키 작은 채송화로 평생 살아왔거나 살아가야하는 인생들이 아직도 이땅에는 많다. 안타깝게 아픈 풍경들을 눈 속에, 가슴 속에 담는 시인의 답답한 시심을 느낄 수 있는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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