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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와 詩評으로 여는 토요일]- 봄 셔츠
2016년 04월 23일 07시 43분  조회:3606  추천:0  작성자: 죽림

끝내 모를 것을 사랑하

 

나의 시를 말한다, 이원

 

 

봄 셔츠

 

 

이 원

 

 

당신의 봄 셔츠를 구하고 싶습니다
사랑을 만져 본 팔이 들어갈 곳이 두 군데
맹목이 나타날 곳이 한 군데 뚫려 있어야 하고
색은 푸르고
일정하지 않은 바느질 자국이 그대로 보이면 했습니다

 

봄 셔츠를 구하고 싶었습니다
차돌을 닮은 첫 번째 단추와
새알을 닮은 두 번째 단추와
위장을 모르는 세 번째 단추와
전력(全力)만 아는 네 번째 단추와
잘 돌아왔다는 인사의 다섯 번째 단추가

 

 

눈동자처럼 끼워지는 셔츠

 

 

들어갈 구멍이 보이지 않아도
사명감으로 달린 여섯 번째 단추가
심장과 겹쳐지는 곳에 주머니가
숨어서 빛나고 있는
셔츠를 입고

 

 

사라진 새들의 흔적인 하늘
아래에서
셔츠 밖으로 나온
당신의 손은 무엇을 할 수 있나요

 

 

목에서 얼굴이 뻗어나가며,
보라는 것입니다

 

 

굳지 않은 피로 만든 단추.
우리의 셔츠 가장 안쪽에 달려 있는

 

 

-<문학동네> 2014 여름호 수록

 

 

우선 발음해보자. 셔츠, 하고. 당겨진다. 팽팽해진다. 연이어 몇 번 소리 내어 부르면 찢어질 것 같다. 망설임도 없이. 한 방향으로 정갈하게. 셔츠. 셔츠. 다시 발음해보자. 베어질 것 같다. 깊숙이 아니고 슥슥. 사방으로 그어진다. 슥슥. 슥슥. 어디를 열심히 닦고 있는 것 같다. 펀치가 되려고 뭉치는 것 같다. 슥슥. 눈(眼)이다. 슥슥. 슥슥. 눈(雪)이다.

 

셔츠를 찬찬히 바라보면 비로소 셔츠가 보이기 시작한다. 셔츠를 구하려면 먼저 보이지 않는 셔츠부터 만나볼 것. 원하는 셔츠를 떠올려보자. 셔츠는 옷걸이에 걸려 있다. 옷걸이가 어디에 걸렸는지는 보이지 않는다. 꽤 넓은 곳이라는 것. 분명 ‘있다’는 것. 바람은 하나가 아니라는 것. 그것들에 셔츠는 흔들린다. 섞인 바람들 소리가 난 듯도 하다.

 

셔츠는 반으로 갈라진 옷이다. 온건한 듯 보이지만 맨 위에서 맨 아래까지 정중앙을 열어젖힌다는 면에서 조끼만큼이나 단호한 옷이다. 반반을 봉합하는 방법. 한쪽에는 단추. 한쪽에는 구멍. 둘은 영 다르다. 하나는 단단하고 동그랗고 하나는 비어 있고 길쭉하다. 다른 모양이 서로에게 개입되면 안이 생긴다. 단추가 떨어지면 구멍은 내내 단추를 기다린다. 구멍이 막혀 있다면. 단추는 그곳을 견디면서 수평의 연대를 기다린다.

 

셔츠를 옷걸이에서 꺼내, 반반에 각각 있는 단추와 구멍으로, 반반을 봉합한다. 이렇게 셔츠를 입을 사람과 그 모습을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 이상의 <오감도-시제 3호>의 호흡을 빌린다면, 셔츠를 입은 사람은 셔츠를 입은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는 사람이다. 셔츠를 입은 사람을 보고 있는 사람은 셔츠를 입은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모르는 사람이다. 셔츠를 입은 사람과 셔츠를 입은 사람을 보고 있는 사람은 서로 들여다보는 몰두를 알아채지 못하는 거울이다.

 

 

셔츠를 입은 사람과 셔츠를 입은 사람을 보고 있는 사람.

 

이쁘다. 마주 서서 단추를 하나하나 채워줄 때.

 

잘 다녀와. 어깨를 쓸어줄 때. 알맞은 길이의 셔츠 소매를 괜히 걷었다 다시 내릴 때.

 

재미있는 시간 보내고 와. 채워진 단추에 시선을 주며 시간을 세어볼 때. 손 아니고 소매 깃을 살짝 잡아볼 때.

 

그리고는 금방 와. 구겨진 곳 없는 등을 쓰다듬으며 따라갈 때.

 

남겨지는 적막. 발소리. 슥슥. 슥슥. 셔츠의 팔 안쪽과 옆구리 스치는 소리.

 

 

조금만 더 보이지 않는 셔츠를 떠올리자. 보이지 않는 셔츠는 구하고 싶은 셔츠. 마음이 원하는 형상. 한 땀 한 땀 바느질로 간절함 너머까지 닿아보자. 하나의 감각 기관이 박탈당하면 고도의 집중력이 생긴다. 이것은 절박한 생존이다. 비페이위 장편소설 <마사지사>에서, 눈먼 사람은 수술실에 들어갔고 눈먼 동료들은 수술실 앞까지 일렬로 손을 잡고 걸어간다. 손은 하나가 아니어서 오른손을 잡히면 왼손을 다른 이에게 내밀었다. 본 적 없는, 볼 수 없는 이들은 침묵한다. 전력을 다해 생각하기 위해. 생각의 형상에 닿기 위해, 생각의 형상을 만들 때까지.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수술실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눈먼 사람은 괴로워했다. 마사지센터에 온 영화감독이 눈먼 여자 마사지사의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던진 한마디, 정말 아름다워라는 탄식을 들은 후부터다. 남자는 단 한순간도 본 적이 없는 아름다움을 깊이 사랑하게 된다.

 

본 적 없는 아름다움은 끝내 모를 것인가. 끝내 모를 것을 사랑하면 아름다움이 될 것인가. 시선을 조금 멀리 펼쳐 놓고. 셔츠가 나타날 때까지 셔츠를 떠올리는 일. 셔츠를 만지는 일. 셔츠가 생겨날 때까지 셔츠를 생각하는 일.

 

불쑥 팔부터 넣고 본 상태. 목은 나타나지 않은 상태. 그러므로 얼굴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 그러므로 표정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런데, 아니 그러니까, 맹목의 힘으로 셔츠, 발음하면 불모(不毛)가 찢어지기 시작한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불모를 찢고 나오는 눈빛. 새싹. 단추부터 하나 만들기 시작하자.

 

이원
이원

 

이원 / 1992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 <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 <불가능한 종이의 역사>를 냈다.

 

 

 


 

텅 빈 주체의 얼굴을 그리다

 

 

 

“얼굴이 거울을 열고 들어간다 나도 따라 들어가려고 하니 얼굴은 어느새 거울을 잠가버린다”(‘얼굴이 그립다’). “제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의 시선은/ 안으로 향해 있다 제 안의 어둠이 유일/ 한 경전이 되는 세계.”(‘얼굴 속으로’)

 

얼굴은 ‘나’를 앞서가거나 ‘나’의 뒤에, 너머에 남아 있다. ‘나’는 얼굴이 없는 대신, 잃어버린 얼굴을 들여다보는 시선, 즉 눈을 갖고 있다. 얼굴 없이 홀로 방황하는 발을 갖고 있기도 하다. 얼굴을 잃고 분해된 기관으로 존재-부재하는 ‘나’는 “제 안의 어둠”만을 들여다보며 그 어둠에 포위된다. 얼굴 없는 자의 어두운 내면은, 단적으로 말하면, 상실과 부재의 존재 방식을 주입하는 현대문명의 메커니즘의 산물로, 현대적 자아와 주체의 텅 빈 내부를 의미한다. 내면은 인간의 깊이와 인간성을 보장하고 시를 탄생시키는 무한한 심연에서, 인간 존재와 주체의 소멸이 진행되는 황폐한 사막으로 변했다. 시의 형질과 시 쓰기의 방법, 시적 주체의 위상이 달라져야 할 것은 자명하다.

 

디지털 시대의 초입에 이 원은 ‘클릭의 코기토’와 ‘마우스의 존재 선언’으로 이런 정황을 압축했다. “나는 클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집 속에 마우스와 내가 있다.” 클릭으로 존재 근거를 확보하고, 마침내 마우스와 등가의 존재가 된 ‘나’는 디지털이라는 거대 기계의 한 부품이다. 일상에서 종종, “가볍고 사소해/ 마치 인간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는 비인간이다. 다음은 비인간 시인의 시적 신념의 한 대목. “내가 노래하는 방식으로서가 아닌 용접의 방식으로 시를 쓸 수밖에 없는 것은 언어에 함부로 피와 살을 이식하는 일을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세계는 표현하는 만큼 존재한다’)

 

 

‘나’의 부재를 응시하면서, 허구와 가상의 “없는 안을 만들어내”(‘살가죽이 벗겨진 자화상’)지 않고, 오직 표현함으로써 세계를 다시 존재하게 만드는 것. 이원의 시는 지금, ‘없는 나’가 건설하는 ‘있음의 세계’에 “불쑥 팔부터 넣고 본 상태. 목은 나타나지 않은 상태”. 조만간 얼굴이 만들어질 상태.

 

 

김수이 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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