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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년만에 발굴된 민족시인 - 심련수 / ...
2016년 05월 16일 20시 20분  조회:5172  추천:0  작성자: 죽림
-55년만에 발굴된 항일민족시인 심련수(沈連洙)

   
기자는 2000년 7월 연변 조선족 자치주 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우리 민족의 민족적 서정의 시세계를 펼쳐 보여주고 있는 연변의 시인들을 만나기 위해 중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뜻밖에도 항일 민족 시인 심련수 시인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아래의 글은 지난해 기자가 한국 방송대학교 학보를 통해 지상에 소개한 기사이다. 오마이뉴스를 방문하고 있는 많은 독자들에게 심련수 시인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이미 지상에 보도된 내용을 상당 부분 인용하고 그때 소개되지 못한 시편들을 추가로 소개하고자 한다.

또한 이후 심련수 시인의 동창이신 이기형 시인과의 만남에 대한 후일담을 소개하고자 한다. 추가로 가필한 내용에 대해서는 '-'로 표기하여 원고를 작성하기로 한다.


55년만에 발굴된 항일민족시인 심련수(沈連洙)

1945년 8월 8일 일본인의 손에 피살된 시인. 도대체 왜 일본인은 해방을 불과 며칠 앞둔 시점에서 그를 살해했으며, 그는 누구인가? 전언했듯 그는 윤동주, 이육사 등 일제에 시로써 항거한 시인들과 동시대를 살다간 시인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지금까지 그가 시인이었다는 사실을 밝혀줄 수 있는 것은 1940년대 초 만주의 <만선일보>에 발표되었던 <려창의 밤>, <대지의 여름>, <대지의 가을> 등 다섯 편의 시 뿐이다. 그런 그가 지금에 와서 `용정에서 솟아난 또 하나의 별'이라는 애칭을 갖고 우리 앞에 `불쑥' 나타난 것은 대체 무슨 연유인가?

침략과 수탈로 점철되었던 민족의 역사가 우리를 의인의 품으로 이끌어 주었다. 그리고 만주벌은 그 역사적 정점으로서 살아있는 흔적이기도 하다. 오늘 여기 `심련수'라고 하는 시인이 나타나 우리들에게 다시 만주를 자각하게 하는 것 또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라 생각된다.

필자가 연변을 찾은 것은 <시와 혁명> 연변지부 시인들과의 만남을 위해서였다. 그런데 거기서 뜻밖의 시인을 알게 되었다. 연변의 민족시인인 조용남 선생께서 넌지시 말씀하신 심련수라는 시인의 이력을 듣자니 너무나 설레고 놀라웠다.

심련수는 1918년 5월 20일 강원도 강릉군 난곡리에서 소작농이던 심운택 씨의 일곱 자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심련수는 일제의 압박과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1924년 가족들과 함께 러시아로 이주, 그후 중국 용정에 뿌리를 내리고 유소년기를 보냈다. 1941년 일본 유학길에 올라 일본대학 예술학원 창작과에서 공부했으며 이 때 심련수는 시와 조국과 민족해방에 대해 뜻을 세우고 분출하게 된다.

그의 동생 심호수 씨는 지금 연변 조선족자치주 용정시에 살고 있다. 심호수 씨는 형이 죽은 후, 언젠가 떳떳하게 세상에 밝힐 수 있는 날이 오리라는 기대감으로 항아리 속에 담아 두었던 시 3백여 편, 소설 3편, 평론 1편, 기행문 1편, 편지 2백여 통, 일기 3백여 편을 알뜰살뜰하게 보관해 오고 있었다고 전한다.

그럼 여기서 한두 편의 작품을 엿보는 것으로 심련수 시인의 족적을 우리가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길 기대하면서 그의 시를 읽어보자.

빨래

빨래를 생명으로 아는
조선의 엄마 누나야
아들 오빠 땀 젖은 옷
깨끗이 빨아주소
그들의 마음 가운데
불의의 때가 있거든
사정 없는 빨래 방망이로
뚜드려주소.

이 시가 바로 55년 동안 항아리 속에 묻혀 있었던 3백여 편의 시 중 한 편이다. 소박하고 정갈한 정이 배어 있는 시이다.그러나, 그 절박한 시적 호소력은 빼앗긴 나라에 대한 구원의 마음이 너무나도 절절하게 스며 있다는 자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불의의 때가 있거든/사정없는 빨래 방망이로/뚜드려주소”의 부분에서는 식민지 조선의 청년 정신을 간직하고 살아가기 위해 식민지 조선의 청년들이 간직해야 할 뼈아픈 고통의 감수까지가 스며있는 것이다. 이는 엄마와 누나가 얼마나 절박하게 바라보는 광복에의 희망인가? 이는 자기 각성과 식민지 조선청년 모두에게 각성을 요구하는 자기점검자적 요구를 시적으로 형상화해서 이야기 해내고 있는 것이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던 그는 고국에 부모로부터 보내온 돈을 받아든 순간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오늘 호수로부터 돈을 받았다. 손이 떨리고 가슴이 떨린다. 집에서 준 것일까 쌀을 판 것일까. 편지에는 번연히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지만 내 어찌 걱정하지 않을 수가 있으랴. 몸이 고달프지만 일요일엔 꼭 밀차를 밀어야겠다.”

이 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어려운 집안 환경을 떠받치고 살았던 그는 이주민 조선인의 가난한 모습을 이겨내기 위해 자신의 실체적인 경험 속에서 부단하게 항일운동에 매진했었으며 또한 작품 속에 용해시켜내고 있었다.

가난한 거리

내가 걷는 좁다란 골목
까아맣게 끄슬은 처마밑길
울타리 없는 몽둥이집들마다
새까만 나무쪽문패가 초라하고
누덕발대 걸린 밑엔
주름진 낯이 얼른거리고
헐벗은 애들이
맨땅에 주저앉아 발버둥친다
가난한 거리
때물에 함빡 젖은 살림
번화를 자랑하는 뒤골목에는
말못할 비극이 도리질하고
탄력잃은 창백한 혈관으로
죽은 피가 쩔룩거리나니
그것은 일에 지친
이 거리의 사내였고
빛 잃은 좁은 거리는
조폐국(造幣局) 뒤골목이었다

이 시는 당대의 척박한 식민지 조선의 이주민들이 겪은 삶의 진상을 소상하게 고발해 주고 있는 시다. 지친 거리의 사내란 어쩌면 시인 자신은 아닐까? 그러나, 지친 시인 자신으로서 멈추어 버리지 않고 그 지친 이주민들과 함께 일어나고야 말겠다는 시인의 심성은 보다 더 적극적으로 대항하며 싸우는 민족의 운명과 함께 하는 일체감을 갖고 나아가고 있다.

그렇게 그는 살았다. 적어도 그가 일본인에 의해 피살된 1945년 8월 8일까지 그는 그렇게 살아갔던 것이다. 그의 시적 진실은 그가 썼던 일기와 기행문, 편지, 평론 등에 다양하게 증거로 나타나 있다. 머지 않은 장래에 그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리라 믿는다. 또한 이는 민족정신의 복원과 맞물려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남북의 통일과 민족 정신의 회복은 우리에게 요구되는 21세기 민족의 철학적 모티브를 제공하는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그러한 전제를 더욱 분명하게 해주는 것은 우리가 가져야 할 정신 문화적 자산을 발굴하고 그 영역을 확보하는 데 선결적인 과제가 주어지는 것이라 생각하면서 오늘의 심련수 선생의 이름에 값할 수 있는 연구 성과들이 나올 수 있도록 문학을 하는 사람들이나 문학연구가들의 관심을 기대하면서 소개를 마친다.


"이 기사가 나간 후 알게 된 사실은 참으로 한심하고 답답한 언론의 유통구조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실제 심련수 시인의 존재가 알려진 것은 지난해 4월 그러니까 2000년 4월이다. 그 당시 연변 조선족 자치주 문화인들을 돕는 일에 앞장서 온 서울의 이상규 시인이 연변을 방문했을 당시 심련수 시인이 생존하고 있는 동생 심호수 선생에 의해 그 작품과 당시의 경과들이 소개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상규 시인이 국내의 여러 신문사에게 보도를 청했으나 국내의 유력 언론사들이 그 기사의 실체를 증명해서 알려주면 보도하겠다며 보도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상식으로 보면 제보만으로도 그 제보의 신빙성이 확인된다면 기자를 파견하든지 취재를 하여 허물어진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희생된 한 민족시인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알리려는 노력을 했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렇게 되지 못하였던 것이다.

기자가 연변에서 알게 된 이상규 시인을 찾아뵌 것은 위 기사가 방송대학교 학보에 소개된 이후이다. 기자가 이상규 시인에게 신문을 펼쳐 보이자 너무나 즐겁고 반가워 하면서 자신이 보도 요청을 했던 자료들을 내놓으시며 마치 기자가 큰 일을 해낸 것처럼 기뻐하였다.

이후 주요 일간지 기자들에게서 기자에게 전화가 걸려와 자료를 청했다. 그러나, 당시 해당 기자들이 무성의한 태도로 자료만 건네줄 것을 청해 자료를 제공하지 않고, 지역에 강원도민일보에서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여 기자가 직접 강원도민일보에 자료 일체를 건네주기도 하였다.

후일에 출판사 업무차 시인이시며 독립운동가이신 이기형 선생을 찾아뵙고 또한 의외의 이야기를 전해듣게 되었다, 다름아닌 심련수 시인과 동기동창생이셨다는 사실이며 이기형 시인과는 일본에서 함께 유학을 했으며 신문팔이 등을 통해 학비를 충당하고 손수레꾼 노릇을 하며 함께 학업을 하였다는 것이다. 이기형 시인은 이미 <실천문학사>에서 간행된 몽양 여운형 선생의 평전에 몽양 선생과 심련수 시인, 그리고 이기형 선생이 함께 유원지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었다. 그 내용은 당시 우리 민족의 운명과 일제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기형 선생께서는 해방 후 소문으로 그의 존재에 대해 죽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바 있다고 말씀 하셨다. 너무나 놀랐던 사실에 대해 자랑삼아 심련수 시인을 알게 된 계기를 말씀 드렸다가 선생께서 그 심련수 시인과의 또렸했던 과거를 기억하고 계신다는 데 대해 다시 한번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아! 역사가 이렇게 구체적으로 재생되는구나. 그후, 각지에서 심련수 시인의 작품을 보내달라고 하여 전해주기도 하고, 이메일도 보내주었다. 또한, 작년 연말에는 강릉에서 최초로 문학세미나가 개최되기도 하였다.

다음은 본문에 없는 시편들을 추가로 소개하고자 한다. 추후에도 기행문과 일기, 시편들을 소개하도록 하겠다.


방랑(放浪)

나는 가련다 정처없이 또
이 발길 가는 곳 어데냐
맞아줄 이 없는 낯선 땅
머물 곳 정함없는 타향에서
호올로 헤매고저 또 떠나노라

떠나는 나그네길 서글퍼도
안갈수 없는 방랑의 신세
어제 머물던 오막살이엔
박꽃이 수없이 피였건마는
서리전에 굳을 열매
과연 몇이나 될고.

소화 17년 8월 4일


귀한 그들

이 땅에 귀한이
몇몇이던가
묻노니 이 마음 차거니 그들을
세비로양복에 당나귀발통 신고
고리를 흔들거리는 멋쟁이보다
적동색 억센 몸에 호미쥐고 서 있는
농촌의 젊은이가 얼마나 귀하더냐
뾰족구두 색양장(色洋裝)에
가는 허리 한들거리는 아가씨보다
툭툭한 무명옷에 고무신 신은
물 긷는 농촌아가씨가 얼마나 귀하더냐
몸가짐 거칠다 깔보지 말라
수수한 그들속엔
아름다운 참마음 빛나고 있어
겉이 귀한 그들보다 속이 더욱 귀하여라.

소화 7년 4월


저녁의 부두

노동자의 지친 모습 휘청이는 부두
후줄근한 옷자락에 피곤이 흘러
콩크리트 바닥에 떨어지고
부두의 저녁은 저물어간다

먼길 떠나는 짐실은 배
떠나는 기적소리 처량도 해
모든 것 실어서 보내고 싶어
바다가 전토(戰土)는 한숨짓더라.

소화 16년 10월 21일


들불

임자모를 불
거침없이 타는 천리 저쪽녘
누가 놓은 불씨기에
저토록 꺼짐없이
밤하늘을 붉히느뇨
사정없이 타오르는
불길! 불길! 불길!
끌래야 끌 수 없는 위대한 작탄!

언제까지 이 들판에 살아있을지
어두운 저녁 혼자 보는 들불
그 불똥이 이 가슴에 튀여오기를
삼가 경건히 머리숙이고
말없이 숭엄히 바라보노라.

소화17년 1월4일


수평선

부풀어오는 수평선너머
그 님이 계신다고
내 마음이 흰돛을 달고
네 가슴을 헤쳐가리라
그 가슴에 안겨지러 가리라.


거리에서

출렁거리는 인파에 밀려
생의 활극인 막을 열면서
모두가 유명무명의 배우가 되어
스스로 즐기는 화장을 하였다
울 때는 웃고 웃을 때는 우는
극속에 극을 연출하고 있다
누구나 될수 있는 배우
누구나 볼수 있는 관중
모두가 분별없는 한곳에서
울고 웃고 먹고 자고 사랑하고 있는
땀이 쬐쬐한 그 상판에서
무슨 커다란 표정이 있을가
휩쓸려 한바탕 뒹구는 것이
무슨 경향이 있을소냐...

소화 17년 10월




밤비 내리는 이향거리
흐린 추억에 뻗는 고적
젖어드는 옷섶을 꺾으며
고향밤 별하늘에
님의 샛별눈 그리노라

가라앉던 그리움
설레이는 가슴속에
웃는 초상 어리는 듯
기다려 참는 고비
넘으리라 지나면 사랑의 웃음.

소화17년 6월 23일


기적(奇迹)

인간사회에는 기적이 없다
그러나 있으면 있을수 있다
네 손으로 만든 것이 그것이며
네 마음으로 아는 것이 그것이다
참다운 기적은 평범가운데서 나고
그 평범은 부단한 노력에서 온다.

소화17년 10월 5일
강무(江武)에 앉아서


네가 할 일

바줄은 끊어졌다
지말은 빨대는 먼지속에 떨어졌다
버텼던 장대도 맥없이 넘어졌다
버티어야 한다
이어야 한다
씻어야 한다
널어야 한다
끊어진 바줄!
장난군아이가 얄밉게 저지른
저주의 악극(惡劇)
사명의 줄
어느 한쪽을 풀어야만
동강난 두토막을 이을수 있을게다
키 못믿는 억센 매듭을
어떻게 풀리
이어서 씻어서 매여야 하지
장대를 버티고 널어야 하지
불쌍한 고아의 설음
꾸지람을 무서운 일에 씻어
애타는 초조의 작은 가슴을!
누구의 힘으로
누구의 손으로
누구의 귀로써
오! 너는 불쌍한 소녀
아프도록 지친 몸도 쉬더냐.

소화 18년 2월 8일밤



//////////////////////////////////////////////// 
연변의 민족 시인 조용남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 민족문학인들이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우리로 치면 문협과 작가회의와 같이 치열한 당파성(지금 그런 게 있기나 한가?)도 존재한다. 그런 면을 보면 문학에서의 치열한 자기 돌파 노력속에는 내적으로 필연적인 갈등이 존재하는 모양이다.

사실 필자가 작년 7월 연변을 방문했을때 연변문학의 총편집장으로 부터 점심 초대를 받았다가 종무소식으로 한나절을 보낸 적이 있는데 우리로 치면 민작과 같은 민족적 입장에 충실한 연변문학의 총편집장께서 연변의 사정을 전혀 모르는 필자가 조용남 시인댁에서 일주일을 기거하게 된 것을 두고 홀대하게 된 것이란 사실을 나중에야 연변문학 한국 지사장 석화 시인에게서 이야기를 듣고 알게 되었다.

그러나 조용남 시인은 우리의 민족의 입장을 정면으로 배반한 그런 시인이 아니라, 다년간 민족문학을 통해서 작품을 널리 펼쳐오셨음에도 불구하고 한때의 과오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조국인 우리 한국에서는 그런 부분의 평가를 극단적으로 한다는 것이 좀 가혹하다 싶다.

허허벌판 만주에서 우리의 삶터를 닦아오시던 분들이 우리의 운명적 고난을 감내하지 못한 애석함은 갔되 완전히 무시하여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조용남 시인의 작품을 소개한다.

일주일간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함께 두만강변을 거닐기도 했다. 조용남 시인의 한때의 과오가 짐이되고 있지만, 그는 많은 후학들에게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있으면서 동족의 미래를 위해 여러가지 일들을 열심히 수행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조용남 시인의 큰 아들은 지금 원광대 약학대에서 석사과정을 수련중이다. 그럼 조용남 시인의 웅대한 민족적 기상에 찬 시편들을 감상하시길 바라며 앞으로도 지속해서 북한 시인들의 시편과 연변 시인들의 시, 그리고 재일교포 시인들의 시를 연재해서 통일 제1세대가 될 대학생들이 민족적 동질성을 확립하는 데 일조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면서 대학생들이 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서 저 미제국주의자들과 보수 우익세력들의 책동에 민족의 이름으로 단일한 대오를 굳건하게 해 나가길 기대한다.

백두산석

분출된 암장의 덩어리
이글거리던 분노는 식었으나
쩡쩡 울리는 쇠소리속에
반항의 넋은 아직도 살아있는가?

남이장군이 검을 갈던 돌
애국지사 의지와 신념을 갈던 돌
한 많은 겨레의 뼈가 된 돌
불멸의 역사에 얼이 된 돌

나도 오늘 성스러운 이 돌 위에
천지물 끼얹으며 마음을 간다
유구한 족속의 이념에, 정감에
새파란 날을 세운다


오 겨레여, 우리 어데서 살든
끌날같은 백두의 얼로 살자!
우리 어데서 죽든
쇠소리 나는 백두산 돌이 되자!


옹달샘

갈수록 어지워지는 세상에서
너는 아직도
그렇게 정갈하고
그렇게 성결하다

일찍 내 혈관의 피가 되었고
내 마음의 눈물이 된 샘물
너의 물맛은 오늘도 변함없이
어머니의 젖 맛이구나

샘가에 앉아
맑디맑은 물속을 들여다보면
땅속에서 송골송골 솟아나
고로한 옛동요를 지절대며 흐르는 샘물

그립고 소중한 것이, 순결하고 천진한 것이
하나 둘 소실되어가는 이 세상에서
너는 나의 애련한
마지막 눈물방울 아니더냐

너는 안다, 태평양의 물로도 못다 씻을
오염된 이 세상의 때를
어찌 너의 이 작은 샘물로
씻어낼 수 있으랴

하지만 다음 번엔 기어코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오리라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너의 샘물로
그것들의 마음을 닦아주리라


산꽃
- RS에게 바침

지금도 나는 알지 못한다
네 이름이 무엇인지를
아무렴 그 고장 사람들처럼
그저 산꽃이라 불러두자

나의 먼 오솔길에
그 거치른 운명의 고개 위에
꿈인 듯 황홀하게 피어나
내 기억에 뿌리 박은 산꽃

너의 담대한 꽃이었다.
능욕도 짓밟힘도 두려움 없이
세월의 길목에 조용히 피어나
기다리였지 갈망하였지

나는 놀랐다
해 짧고 구름 많은 북녘 하늘아래
이 버림받은 척박한 진흙땅에
어찌 이렇듯 어여쁜 꽃이 피어날 수 있느냐고?

그리고 나는 탄식하였다
너에게는 정말 이름이 없는지?
꽃의 족보에 오르지 못해
정말 아무 목, 아무 과에도 속하지 못하는지?

그때는 나도 너처럼
집없이 떠돌던 서러운 나그네
알아볼 겨를조차 없었구나
설혹 알아본다 해도 누가 나서 대답해 주었으랴

너의 미소의 부드러운 애무를 받으면서
나는 아픔 상처 마물구었고
너의 숨막히는 그 향기에 취해
나는 고달픈 세상일을 잊어버렸다

소치는 사람들은 너를 그저 산꽃이라 불렀다
그 투박한 손이 어쩌다 너를 꺾어
소뿔바에 꽂아주면 너는 거기서
수줍게 웃다가 반날도 못 가 시들어버렸다

하지만 너는 완강히
다시다시 길가에 피어났고
길지 못한 생명의 한철을
고집스런 기대 속에 지나 보냈다

너는 다만 이슬만 먹고 자라
맑은 향기를 세상에 남기었다
너의 꽃은 볼수록 예뻤으나
너의 뿌리는 기가 차게 쓰거웠다

이젠 너의 오솔길은 끝나
넓은 포장길 시원히 트이고
길녘 화단들에는 뭇꽃이 요염하게 웃고 있네만
나는 진정을 오로지 먼 추억에만 바친다

산꽃, 이름도 없는 산속의 꽃
이 세상 가장 꽃다운 꽃
너는 올 봄도 그 적막한 산길에 피어나
막연한 세월을 외로이 기다리리라
 
 
 
 
조용남

1935년 중국 길림성 훈춘시 출생
1951년 초중학생시절 <연변문예>지에 처녀작 발표
1957년 정치 풍파 후 장기간 추방생활
1984년부터 연변인민출판사 <아리랑> 문학 총간 편집
시집으로 <그 언덕에 묻고 온 이름> 외 다수
그 밖의 수필 아동문학, 번역작품 다수가 있고,
연변작가협회 문학상, 전국 소수민족문학상 수상 등 다양한 수상경력이 있음.

중국작가협회회원, 중국소수민족작가회의 이사, 연변작가협회 부주석, 시분과위원회 주임 역임 현 연변시조시사 회장, 연변자치주정협 제7기~제8기 상무위원

시작노트: 시의 기발에 씌여진 눈부시게 빛나는 두 글자는 곧 <서정>이다. 한 편의 시의 생명은 그 시가 표달한 진실한 감정에 있다. 우수한 시는 가장 쉬운 말로 가장 깊은 뜻을 표현한다

/////////////////////////////////////////////////////

민족이라는 뿌리는 사적 감정으로 뿌리 뽑힐 일이 아니다
   
 
 
한국인, 조선족, 고려인은 한민족이란 기사에 대한 댓글이 너무나 악의적인 느낌이다. 혹자가 사적 감정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한다. 그가 누구일지는 모르나, 정상적인 사고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아울러 그러한 사적 이해의 태도가 대다수의 불특정한 중국교포 모두에게 덧씌워져서도 안될 일이다.

시인의 시적 대상으로서 역사란 왜곡해서도 안되고 왜곡할 수도 없는 서정의 발로라는 측면에서 석화시인이 갖는 서정을 보여줄 수 있는 대표적인 시 세 편을 소개한다.

먼저 "발해를 만나다1"과 "발해를 만나다2"를 보라! 누가 중국인이라 할까? 혹여 발해의 역사와 민족의 역사에 대해서 전혀 문외한인 바가 아니라면 한 시인의 사적 성장과정에 민족이 각인된 거짓없는 진실한 체험과 그에 대한 정의에 대해 몰찬 지탄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독자들의 객관적인 판단을 기대한다.

지금 우리의 문단에 역사가 사라지고 시적 토대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분명한 역사성을 보여주는 민족적 서정을 확보한 아래의 시에 대해 본인은 큰 공감과 한민족으로서의 자긍심이 시적으로 승화되고 있음을 깊이 목도하게 되었음을 고백하고자 한다.

발해를 만나다 . 1

-東京城역에서-



기적소리 한줄기
베개머리를 스쳐간다
열차의 칸마다에 실려서
반짝반짝 눈을 뜬 꿈들이
여래보살 옥구슬로
목덜미 따라 줄지어 가고
큰소리치는 기차가
어둠 속에 지워진다

발해를 만나려
동경성역에 내리면
나를 싣고 온 밤 기차
해가 뜰 때까지
굽이굽이 몸 속을 굴러가며
울먹이는 기적소리를 듣게 한다


2000.5.2


*동경성: 발해국 동경부가 있었던 고을이름


발해를 만나다 . 2

-씨앗-


잃어버린 것이 아니다
밭고랑사이에 묻어둔 것 일뿐
우리들의 눈에 잠시 보이지 않아도
사라진 것이 아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 서리는 기운 껴안고
씨앗들은 가만히 눈을 감고 누었다
구름이 비로 내리고
꽃은 열매로 모양을 바꾼다
천년이 간들 어떠리
오동성 담벼락에 부서지는 햇살이
늘 저러하지 않았다고 누가 말하리

*오동성: 발해국의 첫 서울

다음의 시 "꼬리에 대하여"는 소시민들이 꽉찬 서울의 혹은 도심의 변두리 포장마차에서 술잔을 깊이 들이마시며 사회주의 문학에서 찾아보기 힘든 모던한 상징성을 보여주고 있다. 아무튼 연변문학과 한민족으로서의 동질성이 중요시 되는 우리의 민족 상황에서 단점을 극구 가릴 일이야 없다하더라도 희생과 고난으로 점철된 이민족의 삶을 견디고 살아낸 민족을 모독하는 태도는 바람직한 것 같지 않다. 설령, 사적으로 판단될 일이 있다하더라도 그것을 일반화 하기에는 무리가 아닌가 생각된다.


꼬리에 대하여

1.
TV속 동물세계를 들여다보다가 저도 모르게 엉덩이께로
손이 갔다. 밋밋한 미추 골이 만져질 뿐 아무 것도 없었다.
우리는 꼬리가 잘리 왔기 때문에 그들로부터 추방당하여 이
곳에 온 것 일가. 그네들 아름다운 세계에는 이미 꼬리가 삭
제된 우리들이 설자리가 없다. 모두가 아름답고 힘찬 그것을
달고있는 그들 속에 궁둥이가 밋밋한 우리들이 위치는 이젠
아무 데도 없다.

2.
꼬리곰탕 집을 나오며 피-시식 헛웃음이 나왔다. 누가 우리에게
그것이 없다고 하더냐. 이렇게 맛있는 꼬리곰탕을 먹으니 배가
뿌듯하고 혈색이 돌고 그것이 꿋꿋해지고 힘이 뻗히는데 누가
우리에게 그것이 없다고 하더냐. 그저 그 짓을 하려고 에덴동산
에 살금살금 기어 들어가기 위하여 사타구니에 깊숙이 감췄을
뿐인데 누가 우리에게 그것이 없다고 하더냐. 헛웃음을 피-시식
웃으며 꼬리곰탕 집을 나오던 것이 엊그제 일 이였는데 지금은
아니다.

3.
꼬리를 달아볼까. 줄무늬 곱게 간 다람쥐꼬리는 예쁘장한 아가
씨 엉덩이에 달아보고 굵직하고 꾿꾿한 물소꼬리는 이마 번듯한
어르신 궁둥이에 붙여 보고 그밖에 쥐꼬리, 소꼬리. 개꼬리, 토끼
꼬리, 여우꼬리, 말꼬리, 염소꼬리, 코끼리꼬리, 도야지 꼬리, 락타
꼬리, 당나귀꼬리, 범 꼬리, 사자꼬리, 양 꼬리 꼬리꼬리 꼬리마다
마춤한 궁둥짝들이 따로 다 있겠지만 어쩐지 아닌 것 같다.

4.
꼬리가 있으면 TV화면 속 저 해 빛 찬란한 언덕에 뛰어 가서 꼬
리 달린 그네들 흥겨운 춤판에라도 끼여들어 보겠는데 아무래도
자신이 없다. 그 숱한 줄말들과 캥거루들과 하이에나들과 노루, 사
슴들이 "에-익 꼬리도 없는 자식" 하듯이 눈도 한번 흘겨보지 않고
저희들끼리만 무리를 지어 화면 밖으로 내달아 가버린다. 그래서
빈방에 혼자 남겨져 심심해진 나는 저도 모르게 손이 자꾸만 궁둥
이를 만져 보지만 꼬리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영 자신이 없다.

5.
그래서 늘 뒤가 허전하다.


위트와 재치, 그리고 해학이 넘치는 시적 구성력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또한 우리의 가락이 넘치는 반복적 열거가 주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시작법은 평범한 말잇기가 시적으로 승화되어 독자로 하여금 웃음이 넘쳐나게 하고 있다. 서울 생활, 아니 팔도를 누비며 생활하고 있는 석화 시인의 2년 조금 넘는 한반도의 남쪽에서의 생활에서 얻어낸 시적 성과로서 너무나 빛나는 웃음을 주는 작품이다.

오늘도 석화 시인과 중국 교포들의 뒷뚱이는 어깨 넘어로 서산에 해는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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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의 민족 시인들(9) 윤청남 시인

   
 
그리움의 서정은 어디인들 다르랴, 인간이 살아가는 곳 그 어느 곳엔들 그리움이 없을까, 그런데 윤청남 시인의 시적 정한은 여전히 한민족의 그 모습이다. 그것은 우리 민족 여성이 보여주는 그리움의 서정인 것을 어쩔 수 없이 드러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페미니즘 미학으로 포장되는 요즘에도 여전히 우리에게는 남녀노소 할 것없이 사랑하는 상대에 대한 어쩌지 못하는 인내와 애타는 그리움들을 내면으로 깊이깊이 곰삭이고 있음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흔히들 세상살이의 풍경과 세태가 완연하게 변모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리고 그러한 자신의 모습을 외부적으로 강하게 발언하면서도 여전히 자신의 내적 정한의 세계 속에서는 참고 참고 또 참는 그런 그리움의 모습을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만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도 모자라 그러한 정한을 간직하고 참고 인내하느라 속 깊은 울음을 남 몰래 참아내느라 애태우는 것이 우리 민족의 서정인 것만은 속일 수 잆는 진실인 모양이다.

시인은 이미 그리움의 대상을 어디론가 보내고 나서 그 그리움의 대상을 못내 아쉬워하며 그리워 그리워 하면서 봄, 여름, 가을, 겨울마다 예민하게 계절마다 함께 했던 추억들을 되새기고 있는 듯하다.

가을이거나 봄이거나 사람이 간직한 그리움은 언제나 뭉게뭉게 피어오르나 보다. 게절이 가고 또 갈 때마다 더욱 더 깊은 그리움으로, 연기처럼 피어오르나 보다.

당신이 떠나고 돌아오는 봄 1


윤청남(중국 길림성)

강물은 흰 빛으로
머언곳에 서있고 산은 안개속에
두웅둥 떠있다.

기억에 없던
플랫폼의 종소리는 서간마다 다앙당
산간을 울리고

사토길 굽이굽이
남향작 내려앉은 해살이
어쩌면 이다지 이쁠수 있을까.

래일 앞서
꽃을 홀로 보는 마음
이 봄은 모르리.



당신이 떠나고 돌아오는 봄 2


꽃병에 꼿혀 피는 꽃이
가련하다.

당신이 없는 마당의 동요는
눈물겹다.

흙이 없어도 꽃은 피지만
산이 없어도 꽃은 피지만.



당신이 떠나고 돌아오는 봄 3


지난 가을
가을 바람속에 한잎두잎
동만자 기슭에 피던 진달래 꽃이 불현 듯
이 밤에 떠오른다.

기실
진달래 꽃이 가을에 피는데는
아무런 리우도 없다.

편벽한 기슭에
볕이 들면 한밤에도
슬퍼질뿐이다.

그런데
지난 가을
가을 바람속에 한잎두잎
동만자 기슭에 피던 진달래 꽃이 불현 듯
한밤에 피어난다.


당신이 떠나고 돌아오는 봄 4


그리워도 애타하지 말자
그대가 비워놓은 자리만큼
봄은 온다.

외로워도 흔들리지 말자
그대가 그리운 하늘만큼
꽃은 핀다.

너무 쉽게 슬퍼하지 말자
그대가 알면
아파할라.


당신이 떠나고 돌아오는 봄 5


더펄더펄 더펄더펄
나래 하나로 온 몸이 숨을 쉬는
이 봄의 호랑나비
장모님이 입선때 보약을 람용해서
왈패로 자랐다는 안해
더펄더펄 더펄더펄
호랑나비 이 창가를 스쳐가면
마주오는 해드라이트 불빛이
이 밤의 앞길을 꽈악 매워라
더펄더펄 더펄더펄
서있는 이 낮밤 바람 그 속을
호랑나비 꽃을 찾아 날아가면


당신이 떠나고 돌아오는 봄 6


호수가에 마알간 해살이
얼마나 진한 어둠인지를
누구도 모르리.

홀로 마주하기에는
너무나 푸진한 주안이
너무너무 목이 매라.

굶주린 저 노을 아래
어머님의 여윈 영상은
오늘도 사막에 일어서는 신기루 루각인가.

이 봄에는 설련화꽃이
한송이 두송이 눈속에 피는 사연을
조금은 알듯싶다.


당신이 떠나고 돌아오는 봄 7


간밤
창공을 수놓았던 별들이 이 아침에는
산과들에 반짝이는 이슬로 내려왔다.

한데
저녁이 아슬아슬 돌아와도 꽃은
하늘로 돌아가지 않는다.

꽃은
송이송이마다 모두
너무나도 살뜰한 천당 빛 거울이다.

이 봄에는
푸른잎에 맑은 령혼인 당신이
내 곁에 돌아와 바람으로 되어있다.


당신이 떠나고 돌아오는 봄 8

여보
우리집 창가에 홀로
초롱을 지키고 있던 새 한 마리를
기억하고 잇겠지

여보
그 연두빛이 해살을 몰고
우리 신혼의 푸른숲으로 날아왔던 그때는
어느해 해맑은 봄이 였던가

그리고 여보
그 연두빛이 짝을 잃고 쓸쓸했던
그 진붘은 황혼무렵은 또
어느해 황금빛 가을이 였고

여보
내 오늘 그 새를 놓아보낸다오
꽃이 피어 구름고운 저 하늘로
내 오늘 늦으나마 소리쳐 보낸다오

여보
그 연두빛이 울음 곱던
외로움의 찬란한 그 창가를
아직 잊지않고 있겠지

당신이 떠나고 돌아오는 봄 9

응달에는 이슬이
이 봄의 애수로 정오에도
푸른잎에 고여있다.

욕설을 나온 바위가
해살에 그림으로
곱다.


바람이 불어오는
끝을 따라
물은 흘러가고

파아란 수평선우로
파도가
하얗게 밀려온다.

속깊이
눈물을 다아 말린 새들이
또 운다.


당신이 떠나고 돌아오는 봄 10


그대도 떠났지만
나도 떠났다.
돌아오는 것은 봄이 아니라
내가 돌아오는 것이리.

해는 지구를 향해 오지 않는다
지구가 그의 곁을 돌뿐이다.
해는 앞뒤면이 따로 없다.
지구가 밤낮이 있을 뿐이다.

언제면 돌아간 어머님이
이 아들의 기억속에 지워질까
그것은 나와 어머님이 또다시
천당에서 만나는 순간이리.

당신이 떠나고 돌아오는 봄 11

잘 익은 과일나무 한구루를
애수의 눈매로 바라보는
바위속의 원숭이

유기형
5배년의 종점은 어딜까
한 낮에 내리는 애잔한 운석비

바다는
온 세상 끝물이 모여온
황금빛 가을

초원의 꽃밭우를 내닽는
바람의 쪽밭이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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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의 민족 시인들(10) 송미자 시인
   
 
 
길림성 용정시는 우리 민족 문화가 개화(開花)한 본거지이다. 그것은 한국에 있는 우리에게만 알려진 사실이 아니라, 중국내 교포사회에서도 여전하게 중요시 되고 있는 지역이다.

그러나, 문명 개화의 흐름이 빨라지면서 용정사람들은 어느새 소외의 쓴맛을 겪으며 용정에 대한 관심을 가져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연변과 우리 사회의 교류가 급속하게 발전되면서 상대적인 소외감을 겪고 있는 것이 용정시에 사는 우리 교포들의 현실이다. 우리의 더 큰 관심이 필요한 때인 것이다.

송미자 시인이 바로 용정에서 태어나 용정에서 살고 있는 시인이다. 대개의 교포 작가들이 그러하듯 그도 역시 수필과 산문도 많이 선보이고 있다. 그가 쓴 아래의 시편에서 보여지듯 그는 여전히 눈물 많은 시인인 모양이다.

그가 쓴 수필 박 꽃의 한 부분을 인용한다.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혈육의 피, 그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는 육친의 정이다. 천리만리 떨어져 있어도, 철조망이며 국경이 가로 놓여도 박꽃은 해마다 피여나고 혈육의 정을 잇는 뉴대로 되고 있다.

하기에 할머니께서는 해마다 박꽃을 피우셨고 언제나 박바가지를 쓰셨다. 조선(북한)에 계시는 큰 어머니도 해마다 박을 심으시면서 남편과의 상봉을 고대하고 있단다.

하얀 전수건을 하얀 머리에 두르시고 꼬부라진 허리도 펴시지 못하시면서 담너머로 강너머로 산너머로 기다림에 지치신 할머니, 오늘은 흩어진 혈육의 정한이 서린 이 자리를 어머니께서 메우며 서 계신다.

하얀 박꽃이여, 어서어서 열매 맺어라.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의 기다림으로 이루어진 숙명의 완성을 위하여, 피맺힌 수난의 력사에 종지부를 찍는 혈육의 만남을 위하여.....,"

위의 박꽃에서 우리는 여전히 현 세기나 지난세기나 할 것없이 우리 한 민족이 숙명적으로 이산의 한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것이 결국 우리 민족이 살고 있는 땅이라면 만주벌이든 남과 북이든 일본이든 세계 어느 나라에서든 유효한 민족 갈등의 요소이면서 우리가 극복해야할 과제란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그러해서 눈물에 맺힌 시적 정한을 풀어내느라 무던히 애를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젊은 시인은 이미 늙은 노인의 눈을 깊이 있게 응시하고 바라보는 처지에 다다른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눈물이 맺히고 천리 만리 홍수라도 질 정도로 눈물을 쏟아놓고 무지하다할 정도의 큰 화해의 강을 간절하게 염원하면서 눈물을 쏟아낼 그날을 기약하며 박꽃이 피기를 고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시인이여, 조금 이제는 조금만 더 참고 서로를 바라보노라면 우리가 염원하던 민족의 대동세상이 오지 않겠습니까? 시인이여. 이제 서로 바라볼 생각은 하는 때이니, 조금 더 참고 기다리며 앞장 서 나가십시다. 슬픈 시인이여!


노인의 눈(眼)

송미자

기인 긴
그리움의 터널
기인 긴
서러움의 터널
그 눈속(眼里)을 다시
걸어 들어간다해도
장-장
반백년이 걸리리


눈물

고목의 눈에서 흐르는 것은
뼈가 녹은 뼈물이요
피가 려과된 피물이리
반 백년 삭여낸
마을의 정수(淨水)로
사책(史策)에 얹힌
먼지 씻어낼 듯


홍수

칠천만의 눈에서
쏟아지는 눈물에
반도가 잠긴다
태평양 수위가 오른다

그리움이 터진
서러움이 터진
정감의 홍수여

지심(地心)이 흐느끼는가
이글거리는 용암같은
뜨거운 피 걸죽한 피

쏴-쏴
마지막 방파제를 터친다

피를 속일수 없더라
다섯 번 변한 강산이라도
피는 변할 수 없더라 
 
 
 
송미자(宋美子):
중국 길림성 용정시 개산툰 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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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의 민족 시인들(8) 홍용암 시인
 

그를 만나지는 못했다. 그것은 전적으로 그가 바쁜 탓이다. 그저 이메일을 통해 받은 시편 정도로 그를 안다.

연변의 작가들을 통해 들은 풍월은 있다. 그는 아래 이력에서 보듯 70년 생이다. 그런 그가 5개 회사를 갖고 있는 연변 조선족의 거부가 될 때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고 한다. 그럼 그렇지, 그런 우여곡절이 결국 그를 문화에 기여하게 하고 연변 문화인들의 풍요한 삶의 일부를 보장하고 있는 것이겠지.

그는 연변에서 행해지는 여러 문화 행사에 대해서 많은 기부를 하면서 그 또한 문화인으로서의 본색을 유감없이 보여주듯 틈틈이 시편을 정리해가고 있다고 한다. 그는 연변 최초의 외국어 학교를 세우면서 많은 사람들의 시기 속에서 무난하게 버텨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족이 지배하고 있는 중국이란 나라에서 자치주라고 해서 완전한 자치체제도 아닌 이민족이 그만한 사업을 이루었다는 것은 참으로 장한 일이다. 그러한 일이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닐 뿐 아니라 엄청난 경계의 대상인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남북관계가 좋아지면서는 더욱 그들의 경계가 노골화 되어가고 있고, 주요 부처의 장은 중국 내 거주 교포들이 맡아 하지만, 최소한 서열 2위의 직 정도는 맡아 보는 것이 일상화하는 추세라고 하니, 본국이라 할 남북한에서의 연변에 대한 대응 태도는 어떤 것인지 깊이 있게 생각해 볼 문제인 것이다.

홍용암, 필명 백운, 그야말로 조선적인 닉네임들이 아닌가? 이제 그가 이룬 대업이 중국 내 교포들의 생활과 문화적 토양을 굳건하게 하는 토대가 되도록 우리가 더 많은 관심과 성원을 보내주어야 할 것이다. 연변조선족 자치주 인민대표위원회 상임위원이며 중국연변인민출판사 문예편집부장의 말에 따르면 그와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서는 공동으로 문예창작학과를 두고, 문학상 등을 제정하는 등에 대한 논의를 수차례 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중국 내 공안 당국의 방해로 그 결실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이지 않게 저항의 뿌리는 지속성을 갖고 뻗쳐 내려오는 데 우리는 너무도 작아져 버린 것은 아닌가? 남북으로 갈라져 서로의 등을 돌린 지도 반세기가 지났다. 그런 마당에 남쪽 내부에서의 토착화된 지역 감정의 벽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우리의 내적 구심을 더욱 강화하고 우리의 시선을 저 멀리 만주나 시베리아로 돌려 바라볼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어려운 여건 하에서 기업을 일으켜 민족 문화의 내적 자산을 키워가고 있는 젊은 미래의 희망은 우리 민족의 젊은 기상으로 꽃 피어날 것이라 기대하면서 그의 건승을 기원한다.

그의 시가 수작은 아닐지언정, 그의 시의 내면에 담긴 동화적 상상력은 인정되어야 할 것으로 보이며, 그의 진실한 고백이 담겨져 있는 것 또한 그의 진실성을 보여주는 창작으로 인정하고 싶다.


하루살이가 되고 싶었던 그 날

홍용암

나는 그 어느 가장 청명한
여름날의 하루살이가 되고 싶었다
우리는 순간적인 그 하루만
사슴처럼 새처럼 사랑했다
이튿날 헤여져야 했으니깐
그 아름답게 사랑했던 하루
그날 새벽 0시에 태어나
자정 24시에 죽었다면
나의 기억속에는
다음날의 비애가 없을 것이다
영원히 그 행복했던 하루만
내 한생에 전부로 길이 남아
그러면 나는 단 하루를 살아도
행운스럽게 길한 날 태여나서
유감 한점 없는 삶을 마칠 것이다....


꽃무덤

무수한 관광객들이 드나드는
초가을 공원 길거리에
깨끗하게 늙은 어멈 한 분이
떨어진 꽃잎을 쓸어모아 무져서는
한무더기 꽃무덤을 만든다
아무래도 무심히 지나칠수 없다
어쩐지 그 한잎한잎의 꽃무덤이
그 어멈이 스쳐지난 자취같이 보인다
얼마나 아름다운 나날들을
그윽한 향기속에 흩날렸을가...


녀자

가장 가냘픈건
고독한 녀자다
고독한 녀자보다 측은한건
버림받은 녀자다

버림받은 녀자보다 불쌍한건
죽은 녀자다

죽은 녀자보다 불행한건
잊혀진 녀자일게다 까맣게...


물고기

륙지의 자그마한 개울물에 살던
물고기 한 마리가
바다가 번화하다는 소문을 들었다

꾀죄죄한 개울을 떠나
한번 그곳에 가서 보람있게
버젓이 살아보리라 마음먹었다

항구도시에 이르러
사품치는 바다격류에 휘말려들자마자
물고기는 그만 지각을 잃고말았다...




인간들이
서로 욕지거리 한다
--개같은 것이!

개들도
물고 뜯을 땐
개나라에서
가장 험한 쌍욕을 할 것이다
--인간같으니라구야
에잇 퉷퉷...


홍용암: 필명 백운(白云)

1970년 6월 26일 중국 흑룡강성 동녕현 삼차구향 동방룡촌에서 출생
16세에 첫동시집 「꽃무지개」를 출판
서정시집 「흰구름이 된 이야기」, 「려행자」,
동시집 「나는 시골아이」, 「사슴뿔 나무」등 출판
전국, 성, 주 및 해외문학상 수차 수상
현재 「청춘극장」신문사 사장, 「별나라」특약편집, 연길시외국어학교 등
5개 회사의 리사장, 흑룡강작가협회회원, 연변작가협회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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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의 민족 시인들 7> 임금산 시인
   


중국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동명이인의 교포작가로 임금산이 있다. 심양에 임금산과 연변에 임금산이 그들이다. 오늘은 연변의 임금산 시인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화끈하다. 그러면서도 뒤가 좀 무르다는 느낌도 주는 사나이다.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이런 일, 저런 일, 겪는 것이 인지상정이리라. 본인은 임금산 시인을 만나자마자 뜨거운 환대의 정을 받았다. 그것은 심양의 임금산 시인도 마찬가지였다. 심양의 임금산 형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 하기로 하자.

오늘 언급하려는 연변의 임금산 시인은 거나하게 마신 술에 급하다 싶을 정도로 본인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일터인 연변작가협회로 아니, 월간 연변문학 사무실로 초대를 해주었다. 그런데 약속한 시간이 다 지나도록 아니 일년이 가까워지는 지금까지도 연락이 두절이다.

우리의 역사를 따르는 것인지, 아니면 한민족의 애환의 역사가 저 만주벌이나 세계 만방에 한민족이 사는 곳 어느 곳에라도 어두운 그림자를 하고 따라 다니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다름이 아니라, 이념성을 전제로 하고 양갈래로 나뉘어 서로가 서로의 적인냥 형성되는 이념적 기류에 휘말려든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쩔수 없이 그러한 현실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본인이 나중에 연변문학 한국지사장을 통해 안 사실이 참으로 우습고 기가 막히다. 사실인즉 연변에도 우리처럼 문단의 갈래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주요 갈등 요인의 하나인데 흔히 말하는 민족문학파라든가? 문협파라든가 하는 식의, 그런데 그것이 우리의 경우와 상통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이국의 땅에 사는 민족간의 갈등 요인인 것을 분명하다.

누가, 아니 무엇이 우리 민족을 이렇듯 뼈저리 고통 속에 가두었던가? 중국의 사회적 변화, 문화적 변화 속에서 특정한 입장에 대하여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에서 어떤 입장을 택한 사람을 본인이 가깝게 만나서 함께 만나게 된 것이 그 이유라니, 아무런 사정도 모르고 중국에 있는 반가운 교포 시인들을 만난 본인의 입장에서는 일면 억울하기도 한 일이지만, 본인에게는 모두가 한결같은 민족시인이었다.

나중에 임금산 시인을 만나거든 이런 저간에 이야기조차 다 털어놓고 술 한잔 진하게 마셔야겠다. 슬픔을 머금은 <사슴의 귀띔>을 하듯 한번 살짝이 말을 건네볼 일인 것이다.

사슴의 귀띔

임금산

아지치는 나무가
자꾸 하늘 속에
손을 뻗치잔다.

또 하나의
언덕이
불쑥 솟는다

잊으려 해도
못잊을
사람아

너는 언제가야
새들의 노래랑
내 물의 속삭임과
흙의 향기랑

먹을 줄
알 것인가

나는 지금
불타는
서산기슭에서

슬피 우는
사슴의 울음소리에
귀가 솔깃해진다

야, 내일은
우리 함께
청산에 또다시
꽃이나 심어볼까!


불새가 난다

빨랫줄에 하느작이는
꽃 적삼에
눈 뿌리가 빠진다

코마루선이 반짝거려
활랑이는 가슴
고운 목청은 잔디밭에 구운다

님아
그 퍼덕이는 날개 밑에서
싱싱한 바람 한줌
쥐여보고 싶구나

그 청청한 잎을 뜯어
이 한 몸에
푸른 피를 수혈하고프다

총알처럼
가슴 짜개고 빠져 나오는
불새

하늘 끝은
구름 한 점 없다


시작노트: 시는 내 마음의 등불이다. 걸어가는 내 인생비탈에 시는 지팡이며 친구다. 시의 영혼을 부르며 나는 살아있음을 깨친다. 야박한 《인간》들 무리 속에서 시만이 나를 호흡하게끔 틈서리를 준다.


임금산(林錦山)
1960년 중국 길림성 도문시 출생.
1984년 연변대학 조선어문학부 졸업.
1982년부터 작품활동.
서정시, 동시, 수필, 실화 400여편 발표.
동시집 《사랑의 동그라미》펴냄.
현 중국 조선족 소년보사 주임편집. 연변작가협회 이사.
《두만강 여울소리상》,《한국월간아동문학상》등 10여 차의 문학상 수상.

연변의 민족 시인들(6) 이성비 시인

   

 
어머니가 휴전선에 계시데요. 아! 이 연변의 하늘에서도 시인은 분단의 어머니를 떠 올리고 있건마는, 우리는 지금 무엇하고 있는 걸까요.

"발 길이 닿는 곳마다 나는 시의 얼굴을 봅니다. 그대로인 그 모습에 시가 있다는 것은 우리가 머무는 곳 마다, 우리의 온 천지가 민족의 얼굴과 민족의 영토였기 때문입니다."

이성비 시인의 말이다. 깊이 패인 눈빛에서 부터 그의 진지함은 드러난다. 혹여 그가 거친 얼굴과 거친 말투를 가지고 있는 시인이라 생각하진 말아 달라. 그는 은은한 미소와 잔잔한 파문조차 머물지 않을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성비 시인, 그의 시편에서 볼 수 있는 것은 가는 곳마다 시의 열매로 화(化)하는 것이다. 내가 어디 갔다. 그는 그것을 시로 말한다. 시인이 시에만 갇히는 것은 자칫 자가당착에 빠지기 쉬운 면이 없지 않으나, 그가 머무는 시를 향한 눈길에는 질곡과 역사의 살가운 체험과 실질의 마음이 함께 하고 있음에서 그는 온통 진정성이 몸 안에 박혀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연변의 시인들이 대개의 경우, 문학일군으로 자리잡고 있듯 그도 마찬가지로 출판일을 하고 있다. 어떠한 체면과 겉치레에도 아랑곳 없는 그의 고집은 연변의 시인들 속에서도 은밀하게 감춰져 보이는 진실이다. 그저 자기만의 시적 세계에 집착이 또 다른 고집으로 나타난 것은 아닐까?

다시 그를 본다면 말벗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싶다. 그와는 짧은 술잔을 나눈 것 말고 이야기가 없었다. 어쩌면 그는 만남의 그 순간에도 시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의 기행 시편과도 같은 아래의 시들은 우리가 오가지 못한 휴전선까지 오가면서 쓴 시이다.

감나무
- 옥천에서

이성비

손이 델가 두려워
그저 쳐다만 보데

주인님 계시냐 물어도
대답이 없데

뚝 뚝 뚝
속살까지 무르익은 사랑

뜰안에 떨어져
뭉클하니 터지데

밤이면 고양이 눈에
불덩이가 맺히데


장승
- 순천에서


설음이 욱실거릴 때
할배할매 설음만 잡아먹고
느러지게 배부르고 살찌고
장수한 액막이 천하대장군
지금은 설음이란 놈이
야생동물처럼
총을 맞고 잠만 자기에
한해에 겨우
한두 번씩 맛보는 신세
굶주린 창자 끌어안고
목쉰 장승 앞에
나는 술 부어 올리고
쌓인 한을 한마당
토해 놓는다.


어머님
- 휴전선에서


남쪽에 계시기도 저어하시고
북쪽에 계시기도 저어하시네
꿈이면 꿈마다
하얀 갈꽃 날리시며
휴전선에 서 계시는 어머님
그 옛날 귀한 자식 때리시던 손바닥으로
그 옛날 가갸거겨 가르치시던 손끝으로
가슴 찌르는 가시철망 움켜잡으시고
남몰래 검붉은 피 흘리시네
얄리얄리 동동
남에도 귀여운 내 새끼
도리도리 동동
북에도 귀여운 내 새끼
어머님은 오늘도
중얼중얼 하루해를 서산에 지우시네


시작노트: 시는 내 인생에 민족정신의 구세주와도 같다. 이 구세주를 잘 모시는 것은 나의 시적 자존심과 정직성과 양심을 개발하는 것과 정비례 될 것이다.


이성비(李成飛)
1955년 중국 길림성 연변 출생.
시집《나는 당신의 고무지우개인가》, 《이슬 꿰는 빛》등 다수.
《길림성 인민정부 장백산 문예상》등 30여차 문학상 수상. 
연변작가협회 회원.
연변민간 문예가 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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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의 민족 시인들(5) 박정웅 시인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간극들이 조금씩 틈을 벌이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간극을 좁히기 위해 한 켠에서는 피와 땀을 흘리며 애쓰는가 하면, 다른 한켠에서는 그 간극을 좀 더 벌려서 호화로운 삶을 영위하려고만 한다. 그것이 물질적이건 정신적이건 분명한 사실이다.

여기는 사회주의 중국이다. 박정웅 시인이 살고 있는 곳은 분명 중국이란 땅이다. 그의 자화상 속에서 우리는 보편적인 인간의 속성을 볼 수 있다. 그가 중국이란 땅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시를 통해서 알 수 있는 대목은 없다. 오히려 우리에게는 저 울산의 노동 현장이나 구로동 노동현장, 그리고 도시 서민들의 억눌린 서정을 더 쉽게 보여주고 있다고 해야 할 것만 같다.

그러나, 그는 분명 사회주의 중국, 개혁과 개방의 조화로운 자본주의(?) 시장 시스템을 어느정도 수용해가고 있는 나라에서 살고 있다. 그런 그가 쓴 시를 보면서 우리가 갖게 되는 생각은 인간적 보편성을 통해 그의 시가 구현되고 있다는, 창작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는 30대 초반의 청년 시인이다. 그리고 그는 한민족의 후예다. 끊임없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꿈꾸고 있는 시인 박정웅이 애달파하는 모습을 굳이 시적 해설이란 수사로 설명하지 않아도 될 듯 싶다. 우리에게 저 박정웅 시인과 같은 고민과 고독한 인내가 지금 존재하고 있는지 자문하면서 한 통일<크게 통일>되는 날, 그와 함께 고락의 술 한잔을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하얼빈에 가시거든 안중근 의사만 찾지 말고, 이 시대를 사는 안중근이라할 우리의 교포들 자랑스러운 안중근의 후예들과 정성으로 만나보시기를 권한다.

자화상


그림자처럼
밟히고 무시당하는 사람

그림자처럼
수상하고 불길한 사람

그림자가 길어
늘 지치고 외롭고 추운 사람

마침내 자신이
그림자로 되여가는 사람





뉘시오?
내 꿈의 삼림에서
쩡쩡 나무를 찍고 있는 것은
거 뉘시오?

어서 나오시오
꿈밖에 없는 시인에게서
꿈만큼은 제발
앗아가지 마시오


락엽


현실의 나무가지를 떠난
락엽 하나가
투명한 대기속에서
류랑자처럼 떠가다가
취한처럼 휘우뚱거리다가
신부처럼 사뿐
내 마음에 내려앉는다

겨울이 왔나부다


박정웅
1990년 할빈공업대학 본과 졸업.
현재 "대중과학"잡지 편집,
서정시, 수필, 문학평론 다수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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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의 민족 시인들(3) - 김현순 시인

 
 
 
낮은 눈높이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인 김현순, 그는 연변의 중국 교포 사회에서 아이들의 동심을 키우는 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는 시인이다.

그가 복무하고 있는 일 또한 그의 시심대로 행해지고 있다. 그는 아동 출판 관계 일을 하면서 계속적으로 아동문학의 발전을 위해 여러가지 행사도 기획하고 백일장 같은 문예창작 의욕을 북돋우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

그가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에는 이념도 국경도 없다. 그저 편안하고 아늑하게 바라보는 아이들에 나라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그의 시는 동시가 아니라도 동화적이다. 우리가 읽는 그의 시가 동화적인 세계로 투영되어 바라보이는 것은 순전히 그의 따스하고 다정한 눈길에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사랑스럽고 천진한 눈으로 바라보는 아이들에 서정 안에서 언제나 밝고 투명한 김현순 시인은 함께 부른 노래를 부를 때도 재기발랄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래서 어깨라도 감싸주고 싶은 그런 시인이었다. 토실토실한 토실이의 몸뚱이를 한 시인은 아직 총각이다.

그가 바라보는 선한 눈매에 어울리는 배필을 이 봄에 맞았을 지도 모르겠다.




봄은
기다림이 있는 곳으로
찾아온다

때로는
기다림이 없는 곳에도
찾아온다

보잘 것 없는 한 송이 피고 보면
얄미운 나비가 날아와 화심을 짓이기고

짓이기우는 아픔이 싫어 지고 보면
어찌할 수 없는 슬픔의 향수

봄은 두살박이 아이가 어머니 품에 안기듯
타박타박 어푸러지며 달려오고

때로는 빛깔 곱고 맛갈스러운
새까만 까마귀 열매로도 열린다


낙엽

푸른 하늘 우러러
한껏 펼친 나뭇가지에 매달려
푸르름을 뽐내다가
온 몸을 불태워, 빨갛게 불태워
엄마의 자장가 즐겨듣던
태초의 아침에로
서슴없이 뛰어내릴 일이다

우수수 우수수
귀 맛 좋게 들려오는
낙엽의 노래
허무함과 고독함
헐벗은 나뭇가지에 걸어두고
스핑크스처럼 야릇한 미소지으며
흙에로 찾아드는 장엄한 모습이랄까

세월의 길목에서
사람들에게 짓밟히고
이리저리 바람에 불리어도
한 움큼 하늘을 껴안고
태동하는 봄을 꿈꾸는 낙엽이야기

이제 꿈보다 더 곱게
사랑보다 더 밝게
소문 없이 피어날 일이다
그리고 봄 오는 날
뾰족뾰족 눈뜰 햇순들을 위하여
포근히 꿈을 덮어줄 일이다

한잎 두잎 날아내리는 가을 낙엽
제 이름을 기억할 새도 없이
단풍은 오늘도 빨갛게 탄다


안경알

때로는 크게 때로는 작게
때로는 뚜렷이 때로는 희미하게
안겨오는 세상이 있었습니다

시력이 0.5 밖에 안 되는
사내 콧등에
도수 높은 안경 얹어 놓았을 때
세상은 비로소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두 개 밖에 안 되는 안경 알 속에
세상이 그렇게 쉽게 담기는 것은
웬 까닭일까요?

꿈을 깨고 보면
모든 것이 정다운 모습들인데
덩치 큰 가슴이
아닌 밤 중 쓸쓸해지는 것은
사랑에 근시인 마음의 콧등에
안경알이 얹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라 하겠습니다.
 
 
 
 
김현순

1968년 중국 길림성 안도현 만보향 공영촌 출생
연변대학 조문학부 졸업
300여 편의 문학작품 발표
해란강 문학상, 한국계몽아동문학상 등
해내·외 문학상 수차례 수상
시집으로는 <나무잎 신화>, <풀 아이들의 여름이야기>가 있음
중국 연변작가협회 회원


시작노트

시는 인생공부의 흔적이다.
한편의 좋은 시를 쓰기 위해 모지름 쓴다는 것은
그만큼 인생에 대하여 열심을 보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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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의 민족 시인들(2), 권순진 시인

   
연변의 토비라 불리는 왕발 권순진 시인

젊은 시인이다. 연변에서는 별명이 토비로 불리는 데, 토비란 우리말로 조폭(?)이란 의미 쯤으로 해석해도 될 듯하다. 물론, 실제 토비는 아니다. 그는 연변작가협회 회원으로 연변이나 용정 등 우리 민족의 자취에 대해 세세한 항목까지 모르는 바가 없다. 그러하기에 그의 가이드를 받는다는 것은 행운이다. 하다못해 땅의 평수, 인구수, 그리고 세세한 민족의 역사에 대하여 꿰뚫고 있는 해박한 지식의 소유자이다.

그는 연변의 가무단에서 한 때 무용을 하기도 했을만큼 여타 예능에도 뛰어난데, 그가 가는 곳마다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필자는 그와 함께 민족의 성산 백두산을 찾았다. 연변에서 백두산까지는 약5시간 가량이 소요되는 거리인데, 길거리에 노점부터 백두산의 공안까지 모르는 이가 없었다. 덕분에 식사는 무료 접대를 받았고, 백두산 천지를 택시로 오르는 것도 공안의 협조를 받아서 가능했다.

그는 정이 넘치고 노래와 춤에 일갈을 하고 있어 흥겨움도 넘치는 젊은 친구다. 그의 아내는 중학교 선생, 연변의 교원이다. 그는 지난 봄까지 중국에서도 남쪽지방인 해남도에서 한국의 신혼부부를 위한 가이드를 도맡아 해주었다. 그리고 지금은 다시 연변에 돌아와 글쓰기와 가이드일을 하고 있다.

젊은 그가 우리 민족의 구성체로서 긍지를 갖고 살아가는 것을 보고 도울 길이 없나 늘 생각하는 필자는 그를 생각하면 항상 미안한 마음뿐이다. 그가 보여준 정성스러움이 그 어릴적 고향의 정에 넘치는 맏형 같은 품이 넓은 도량을 보여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필자보다 나이가 어리지만, 두만강변을 지날 때나, 용정에 명동학교에서나 그가 우리 민족정신을 꿰뚫고 열변을 토하는 것을 볼 때, 망연자실 나의 모자람에 고개를 수그리게 되었다.

연변의 낯선 하늘에 우리 민족의 긍지가 살아 숨쉬고 있으니 이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멀리서나마 그의 건필을 빈다. 그리고 올 여름에는 꼭 가서 다시 만나야 하겠다. 그의 시들 속에서 사랑이 넘치는 데, 그는 시달린 민족의 지난날 속에서 빠져 나와 이제 어여쁜 사랑을 노래하는 시인이고 싶단다.

천사

폭포 같은 머리를 곱게 드리고
수줍은 듯 몸을 꼬는
버드나무를 보면
그녀 생각이 난다

귤쪽 하나를 집어
잘근잘근 씹으니
여린 그녀 입술 씹던 느낌이다

그녀 누웠던 자리에
달빛을 조용히 펴놓고 있노라면
그녀가 살아 움직인다

거리에 나서면 사내들 눈뿌리 빼던
향기 그윽한 아름다운 자태로
조용히 내게 걸어온다
하얀 티셔츠에
까만 미니스커트
떠날 때의 차림대로

언제나
내게는 유혹으로 와 닿던
예쁜 가슴을 쑥 내밀고
스타킹도 신지 않은
예쁜 다리를 잔뜩 드러내고

그 모습 너무도 눈부셔
나는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가고 없었다
제 자리로 간 게다
아득히 먼 천국으로

그녀는 오늘도 스무살이다
천국에 간 사람은
나이를 먹지 않는단다

그녀는 천사로 된 게다
아니
그녀는 워낙 천사였다




해거름
강가에 동그마니 앉아
명상에 잠겨 있는 소녀 하나

강바람에
날려오는 향기는
소녀향기일까 봄향기일까

가만히 다가서면
놀란 사슴처럼 달아날까
아니면 웃으며 반겨줄까

해거름
강가를 거닐며
이름 모를 소녀한테 나는
마음을 빨리웠고
혼을 앗기었다

무궁화같이
이쁜 소녀
봄 가슴 설렌다

그리움

멀리 간 숙이가 그리워
남 다 자는 밤
그리움을 밤하늘에 걸어본다
그러면 그리움은 별이 되어 반짝인다

저 빛이 숙이 있는 곳까지 갈까
숙이가 저 빛을 볼 수 있을까
바보스런 생각 굴리다
담배를 붙여 문다
그리움은 또 담배불이 된다
빨면 빨수록 가슴 태우는 빠알간

이윽고
날이 밝는다
그리움은 또 해가 된다
그리움은 이글이글 누리에 타 번진다
그래서 식을 줄 모르는 영원한 존재가 된다

숙아

겨울을 좋아했던 숙아
바람속에 세월은 흘러
계절은 가고 또 오지만
너는 왜 돌아오지를 않느냐?

솜같은 눈송이가 그대로
그리움이 되어 내려 쌓이는 밤
아름다운 추억이 하얗게 깔린
거리를 홀로 거닌다

숙아
애단로 길모퉁이엔
이 밤도 구운 고구마 파는 아저씨의
사구려 소리가 귀 맛 좋다

숙아
기억나니?
어느 동지달 눈 오던 날
해방로 포장마차에서 먹던 팥죽이

얼마나 걸었던가
삼꽃거리를
눈 속에 묻혀
행복에 묻혀

언제나 정답게 느껴지는 하얀 눈
우리의 만남을 축복해주던 하얀 눈
마주보며 눈 속을 거닐 때
유난히 긴 네 눈초리에 맺히던 하얀 눈

너무나 익숙했던 너의 모든 것들
갈라진지 오래지만
잊혀지지 않는 그 모든 것들이
시시각각 내게로 다가와
내 마음 괴롭힌다

제발 잊어달라는 너의 마지막 부탁
미안해! 들어 줄 수 없어
아무리 세월이 흐른다해도
너만은 잊을 수 없어

이제 다시 만난대도
난 사랑한다고 말할 거야
숙아
영원한 내 사랑아

권순진
1967년 중국 길림성 훈춘 출생
1989년부터 작품활동 시작
서정시, 동시, 수필 60여편 발표
현재 연변작가협회 회원
<연변문화생활> 신문 편집부 주임


**시작노트**

시는 나의 사랑이다
시와 함께 울고 웃으며 한 생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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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수 시인의 봄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온다(?)

     
 
 
식민 치하의 봄은 대개의 시인들의 시에서 조국광복의 기대에 찬 상징적 은유로 일반화 되고 있다. 또한 식민 치하가 아니라도 보편적으로 사람들은 억압과 굴종 속에서, 혹은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두루 쓰는 상징으로 봄을 가져온다.

제 1 편

소년아 봄은 오려니


봄은 가까이에 왔다
말랐던 풀에 새움이 돋으리니
너의 조상은 농부였다
너의 아버지도 농부였다
전지(田地)는 남의 것이 되었으나
씨앗은 너의 집에 있을 게다
가산(家山)은 팔렸으나
나무는 그대로 자라더라
재밑의 대장간집 멀리 떠나갔지만
끌 풍구는 그대로 놓여있더구나
화덕에 숯 놓고 불씨 붙여
옛소리를 다시 내여봐라
너의 집이 가난해도
그만한 불은 있을 게다
서투른 대장쟁이의 땀방울이
무딘 연장을 들게 한다더라
너는 농부의 아들
대장의 아들은 아니래도...
겨울은 가고야만다
계절은 순차(順次)를 명심하자
봄이 오면 해마다 생명의 환희가
생기로운 신비의 씨앗을 받더라.


지금 우리에게도 봄은 오는가? 눈물겨운 한탄에 강력한 응집력을 보이면서 봄을 끌어다라도 맞이하겠다라는 상징적 표현들이 이미 우리가 보아온 많은 시편들에 있다.

심연수 시인의 시편들에도 예외가 아닌데, 그 절절함이 목소리 높이 처절한 절규에 가까울 것 같기도 하건마는, 왠지 심연수 시인은 너무도 담담하다. 그래서 필자는 이렇게 보았다.
"이육사 시인 같기도 하고 이상화 시인같기도 하고 윤동주 적이기도 하다."

때로는 지사적 풍모를 볼 수 있을 만큼 단호한 시어가 드러나는가 하면 할머니의 숨결 같고 어머니의 숨결같은 그런 자근자근한 목청으로 시를 써내려 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심연수 시인은 <소년아, 봄은 오려니>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담담하게 소근거린다. <소년아, 봄은 오려니>하고 읊조린다. 그래 분명 안 올 수 없다. 그런 당당한 기백같은 것이 숨겨져 있는 것 같다.

나즈막하지만, 단호하고 단호한 것 같지만, 너무나도 유유자적하게 걱정 말란 듯이, 봄이 올테니 걱정 마라! 소년아! 쯤으로 읽어도 전혀 무리가 없을 듯 하다. 그래서 많은 시인들이 제목에 그리 신경을 쓰는 것인가? 심연수 시인의 시에서는 대부분 상징이 강한 응집력을 보여주는 것은 물론, 편편히 경망스런 표현보다는 차분하고 가녀린 듯하면서도 단호한 느낌을 준다.

그럼 또 다른 시 두편을 감상해보자.

제2편

솔밭을 걸으며


솔밭엔 길 없어도 걷기만 좋더라
묵은 솔방울이 땅에 떨어져 굴고 있는데
뜻모를 골바람만이 이곳을 쓰다듬는다

새조차 안우는데 골바람마저 멀어
모를 곳 그 어디에서 바디소리 들려온다
망향에 쩔은 몸이니 갈줄을 몰라라.


제3 편

방랑(放浪)


나는 가련다 정처없이 또
이 발길 가는 곳 어데냐
맞아줄이 없는 낯선 땅
머물 곳 정함없는 타향에서
호올로 헤매고저 또 떠나노라

떠나는 나그네길 서글퍼도
안갈수 없는 방랑의 신세
어제 머물던 오막살이엔
박꽃이 수없이 피였건마는
서리전에 굳을 열매
과연 몇이나 될고.


구구절절하게 평을 써보기도 하겠지만, 이 시편들을 굳이 시평이라고 쓴다는 것이 왠지 서먹하다. 식민의 경험이 있는 조국에 사는 우리가 굳이 설명을 아니 평을 보아가면서 시를 감상한다는 것은 시인에 대한 모독이든 식민 조국에 살아온 조상들에 대한 모독이든 아무튼 그냥도 읽어 내려가 그 의미가 새록새록 우리의 뇌파에 전이될 만한 완벽한 시라는 생각에서 더 이상에 평은 쓰지 않기로 하겠다.

위의 몇자 정리한 것도 평이라기 보다는 심연수 시인의 작품들을 앞으로 소개해 나가려는데 일부 필요한 서설이 이라 생각해 주시길 바라면서 작품을 감상해 주시길 바라고 일본의 교과서 왜곡을 다시한번 되새김질해 보시길 권한다. 앞으로 틈틈이 시의 짧은 평과 시를 소개하기로 약속하면서 이만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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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편

고독의 향연 외 2편

김경희

산에 안겨
다소곳해지는
나무는
산그늘에 커간다

눈감으면
외로웠다는
너의 쓸쓸한 너의 목소리
날 울린다

산이 떠난
보이지 않는 자리에
나무는 말없이
무거운 그리움 심고

비인 하늘
바라보며
너처럼
눈감는 련습 해본다



제2편

플랫트홈에서



오는 자취 없이
한 자락
운무가 내린다

이슬이 자오록이 차 오르는
지평선이
흔들리고 있다

터지는 울음을
참는
진달래의 목 메이는 모습

어느 사이
하늘은 보이지 않는다
진한 아픔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흐르고 있다.



제3편

어머니



아프면 떠올리는
하늘이 있다

목마른 이에게
청신한 아침처럼

지치면 시름없이
누워도 좋은
잔디밭이 있다

해 빛 하나 넘겨주고
대신 젖어있는
행복한 그림자가 있다




시작노트--내가 나와 가까워 질 때면 시는 나를 부릅니다.
조용한 나와 대화합니다. 이슬처럼 령롱히 내 령혼을 깨웁니다.



김경희
1961년 중국 길림성 도문시에서 출생
1997년 〈은하수〉에 처녀작 단편소설 〈허공멜로디〉를 발표
이미 소설,수필,시 50수(편)발표 그 중 대부분이 시.
현재 중국연변작가협회회원
1999년 〈은하수〉의 〈엄마 아빠 되던 날〉짧은 글짓기 응모에서 1등 상을 수상.
중국 길림성 도문시국가세무국근무



제1편

짧은 절망 외 2편


김 충

벌레가
나를
눈뜨게 한다

뛰고 뛰여도
먼먼 무지개

날개 없는 이 아픔...

그래도 가야 하는가
꿈 찾아
기고 또 기는
저 뽕잎 위의 버러지처럼...


제2편
애기 엄마 되던 날



애기 엄마 되던 날
나는 엄마가 보구펐다

남편의 따스한 손
이마의 땀 닦아주어도
먼 곳의 엄마 손이 그리웠다

어릴적 내 뺨도 때리던 손이지만
그 뼈 앙상한 손이 그리웠다

애기 엄마 되던 날
나는 엄마가 보구펐다

시어머님의 다정한 목소리
조용조용 아픔을 씻어주어도
먼 고향집 엄마말소리 듣고팠다
---- 춘아, 조금만 더 힘내
애 엄마 될 애가 울기는...

애기 엄마 되던 날
나는 엄마가 너무너무 그리웠다
엄마의 포근한 숨소리가 그리웠다
엄마의 맑은 눈물이 그리웠다
말할 줄 아는 엄마 눈이 그리웠다
고운 눈 가진 남자애라며
하늘만큼 기뻐할 엄마모습 보고팠다
맨 딸만 키우느라 고생 많던 우리 엄마...


제3편
언덕 위의 풍경



먼데서 보면 나비 떼 같은 새무리들
흰 날개 꿈같이 펴고

입 다문 황소
바람 향해 무겁게 서있다

잔디는 살아남으려고
땅의 옷자락 꼭 붙잡고

나무는 잎새번뇌 쫓느라
여윈 팔 힘껏 내젓는다

가을해살 그대로 업어주는
허리 굽힌 나그네의 뒷 잔등



시작노트--푸른 하늘, 하얀 파도... 그리고 연분홍 살구꽃 같은 아가의
웃음이 너무 아름다워 시를 찾아 함께 지켜본다.




김 충
본명은 김영춘
1968년 출생
연변작가협회 회원
현재 중국 길림성 도문시 석현종이공장 신문중심에서 근무


제1편
그리움의 빛깔 외 1편


김추월

눈부신 봄 빛살에
산과 들 눈뜬다
담쟁이처럼 자라는
내 그리움도

부드러운 감촉으로
손끝에 닿는 내 그리움은
저 혼자 시냇물 마냥 밀려와
기쁨을 물 이랑처럼 번져놓는다

연초록 빛깔의
물 이랑은
불투명한 초록으로 성숙해서
끝없는 경험의 세계를 넓혀준다.


제2편
시골·초가·살구나무



밥짓는 향연
사라진지 이슥한
초가의 뜰 안에
살구꽃은 의구해

색동저고리 사다주마
도련님의 금의환향 귀 다듬어
떠나기가 싫은 듯
슬프게 피고 다시 또 피여

세련되는 시골냄새
꽃 냄새는 짙어만 가도
시골의 한 귀퉁이를 지켜
다소곳이 피고 다시 또 피네



시작노트
시는 내 그리움의 샘이다. 계절이 따로 없이 내 핏줄에 봄의 약동을 심어주고 헤아릴 수 없는 죽음을 경험하면서 새롭게 태어나는 내 세포의 샘이다.


김추월
1968년 중국 길림성 연변출생,
1991년 연변대학 조선어문학부 졸업,
시, 수필을 물덤벙 술덤벙 몇편 발표,
/////////////////////////////// = {자료} = //////////////////////

 
정몽호시비 제막식 및 제 26차 <두만강 여울소리>시가탐구회가 2009년 10월 12일 도문에서 있었다.

중국조선족의 저명한 시인인 고 정몽호선생의 시비는 아름다운 도문시 두만강공원에 세워졌다.  시비의 정면에는 정몽호의 시 《접어둔 날》이, 뒤면에는 도문시문련과 도문시 작가협회에서 소개한 정몽호의 간력이 새겨져있다.

정몽호(1935.7-2005.3)시인은 동북사범대학을 졸업한후 연변한어사범학교교원, 도문시문화관관장, 도문시문련주석을 력임, 중국소수민족작가협회회원, 연변작가협회리사였다.

 정몽호 시인은 《두만강여울소리》 시탐구회 발기자로서 시창작과 시리론을 결부하여 왕성한 창작활동으로 중국조선족문단에 모범을 모여주었고 후대양성에도 심혈을 쏟았다.

시인, 평론가, 아동문학가인 정몽호 시인은 《두만강의 아들》 등 4 권의 시집과 《실용수필창작의 기교》등 수 편의 론문을 발표하였다. 

연변작가협회 시가창작위원회에서 주최한 이번 제막식에는 연변작가협회 주석 허룡석, 도문시정무 부시장 정희수, 시가창작위원회 주임 김영건, 연변시인협회 회장 김응준이 제막을 하였고 허룡석주석, 정희수 부시장, 김영건 주임, 김응준 회장이 축사를 하였고 고 정몽호선생의 가족이 인사말을 올렸다.

이번 제막식에는 연변문단의 작가 시인들과 각 부분의 지도자 및 유지인사들 백여명이 참석하였고 연변작가협회, 연변작가협회 시창작위원회, 연변시인협회, 도문시 작가협회에서 시비에 꽃다발을 올렸다.

    - 출처: 연변작가협회,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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