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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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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명작 동시 감상하기 2
2016년 05월 26일 23시 18분  조회:2806  추천:0  작성자: 죽림

바다

강소천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도
또 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도
바다는 저렇게 마냥
출렁대고만 있었을 거야.

그 할아버지의 손자들도
또 그 손자의 손자들도
―바다는 언제부터
출렁대기 시작했을까?
지금 나처럼
생각들 해 보았을까?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기 전부터
지구가 돈다는 것을
알기 전부터
바다는 저렇게 마냥
출렁대고만 있었을 거야




꽃사슴

김녹촌

향내 나는 풀잎만

뜯어먹고 살아서

바람처럼 매끄러운

몸매

 

알락달락 흰 점은

어느 풀밭을 가다

찍히운 꿏자국일까.

 

여우며 이리떼가 싫어

아홉 아홉 고개 주름잡던

날캉한 다리에선

아직도 풀냄새

향기로운데,

 

지금은

쇠우리에 갇힌 몸

산이 그리워

먼 바람결 산메아리에

귀를 모으면

 

이끼 낀

뿔가지 끝

깃발처럼 걸리는

구름

한 조각.



 

엄마야 누나야

 

김소월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한가위의 오늘 밤

박목월

달을 보며 생각한다

마을마다 집집마다

한가위의 오늘 밤

달을 보는 어린이들.

 

한라산 기슭에도

태백산 골짜기 두메 산골에도

오늘 밤 달을 보는

어린이 어린이들.

 

몇 명이나 될까

헤아릴 순 없지만

오늘 밤 달을 보는 어린이 어린이들.

 

성도 이름도

얼굴도 모르지만

달빛에 빛나는 하얀 이마

달빛에 빛나는 까만 눈동자

 

모르는 그 누구도

달을 보면서

오늘 밤 달을 보는

나를 생각할까.

 

모르는 그 누구도

달을 보면서

오늘 밤 달을 보는 내게로

따뜻한 마음의 손을 내밀까.

 

그야 모르지

그야 모르지만 오늘 밤

달을 보는 모든 어린이들이

어쩐지 정답게 느껴진다.

 

언제 만날지

어떻게 사귀게 될지

그야 모르지만 오늘 밤

달을 보는 나는 따뜻한 마음의 손을

서로 잡고 있는 것 같다.

 



 

귀뚜라미 소리

방정환

귀뚜라미 귀뜨르르

가느단 소리

달님도 추워서

파랗습니다.

 

울밑에 과꽃이

네 밤만 자면

눈 오는 겨울이

찾아온다고

 

귀뚜라미 귀뜨르르

가느단 소리

달밤에 오동잎이

떨어집니다.

 



 

가을 밤

방정환

착한 아기 잠 잘 자는

베갯머리에

어머님이 혼자 앉아

꿰매는 바지

꿰매어도 꿰매어도

밤은 안 깊어.

 

기러기떼 날아간 뒤

잠든 하늘에

둥근 달님 혼자 떠서

젖은 얼굴로

비치어도 비치어도

밤은 안 깊어.

 

지나가던 소낙비가

적신 하늘에

집을 잃은 부엉이가

혼자 앉아서

부엉부엉 울으니까

밤이 깊었네.

 



 

구름

 

윤석중

달달달달

아기 수레.

 

엄마는 뒤에서 밀고 ㅇ오고

아기는 편안히 누워 가고

 

송이송이 흰 ㄱ구름은 하늘에 둥둥 떠서 가고.

 

아기가 한잠 자고 나 봐도

구름은 둥둥 떠서 가고.

 

아기가 또 한잠 자고 나 봐도

엄마는 뒤에서 밀고 오고

 

잘도 잘고 굴러 간다.

달달달달 수레바퀴.

 


 

 

연꽃

윤석중

연꽃은

해만 뜨면 부시시 깨지요.

연꽃은 연꽃은

세수를 안 해도 곱지요.

 



 

꿏밭과 순이

이오덕

분이는 따리아가 제일 곱다고 한다.

경식이는 칸나가 제일이라고 ㅎ한다.

복수는 백일홍이 아름답단다.

그러나 순이는 아무 말이 없다.

 

순아, 넌 무슨 꽃이 더 예쁘니?

채송화가 제일 예쁘지?

그래도 순이는 아무 말이 없다.

소아마비로 다리를 저는 순이.

 

순이는 목발로 발 밑을 가리켰다.

꽃밭을 빙 둘러 새끼줄에 매여 있는 말뚝

그 말뚝이 살아나 잎을 피우고 있었다.

거꾸로 박혀 생매장당한 포플러 막대기가!

 



 

강물

이원수

강물은 밤낮 없이 흘러만 가오.

어디서 어디까지 가는 걸까요.

 

낮에는 해님의 금빛 옷 안고

밤에는 달님의 은빛 옷 안고

 

강물은 옛날부터 가는 나그네

세월이 흐르듯이 끝이 없어요.

 

바람이 간질면은 잔웃음 짓고

우리가 장난하면 찰랑거리고

 

종알종알 속삭이며 가는 강물아

너따라 머나먼 곳 가고 싶구나.

 

낮에는 구름 보고 노래부르며

밤에는 별님 보고 옛 얘기하며.

 



 

저녁 노을

이해인

있잖니, 꼭 그맘때

산 위에 오르면

있잖니, 꼭 그맘때

바닷가에 나가면

활활 타다 남은 저녁놀

그 놀을 어떻게

그대로 그릴 수가 있겠니.

 

한번이라도 만져보고 싶은

한번이라도 입어보고 싶은

 

주홍의 치마폭 물결을

어떻게 그릴 수가 있겠니.

 

혼자 보기 아까와

언니를 부르러 간 사이

몰래 숨어 버리고 만 그 놀을

어떻게 잡을 수가 있겠니.

 

그러나 나는

나에게도 놀을 주고

너에게도 놀을 준다.

 

우리의 꿈은 놀처럼 곱게

타 올라야 하지 않겠니.

때가 되면 조용히

숨을 즐도 알아야 하지 않겠니.

 



 

달밤

조지훈

순이가 달아나면

기인 담장 위로

달님이 따라 오고,

 

분이가 달아나면

기인 담장 밑으로

달님이 따라 가고,

 

하늘에 달이야 하나인데....

 

순이는 달님을 데리고

집으로 가고,

 

분이도 달님을 데리고

집으로 가고.

 



 

샘물이 혼자서

주요한

샘물이 혼자서 춤추며 간다.

산골짜기 돌 틈으로

 

샘물이 혼자서 웃으며 간다.

험한 산길 꽃 사이로

 

하늘은 맑은데 즐거운 그 소리

산과 들에 울려 온다.

 



 

달팽이 3

권정생

달팽이 마을에

전쟁이 났다.

 

아기 잃은 어머니가

보퉁이 등에 지고 허둥지둥 간다.

아기 찾아간다.

 

목이 메어 소리도 안 나오고

기운이 다해 뛰지도 못하고

아기 찾아가다.

 

달팽이가 지나간 뒤에

눈물 자국이

길 게 길 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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