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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作에서 관념은 가고 이미지만 남아라...
2016년 05월 27일 20시 02분  조회:4194  추천:0  작성자: 죽림
[16강] 시의 소재와 주제


한 잔의 커피/ 용혜원


하루에 한잔의 커피처럼
허락되는 삶을
향내를 음미하며 살고픈데
자고나면
어느새 마셔버린 쓸쓸함이 있다

어느 날인가 빈잔으로 준비될
떠남의 시간이 오겠지만
목마름에 늘 갈증이 남는다

인생에 있어 하루하루가
터져오르는 꽃망울처럼
얼마나 고귀한 시간들인가

오늘도 김 오르는 한 잔의 커피로
우리들의 이야기를
뜨겁게 마시며 살고 싶다


오늘부터는 시의 소재에 대해서 공부하기로 하겠습니다.

1.시의 주제와 소제
여러 책을 보아도 시의 소제(제제)에 대해서 설명
하지 주제에 대해선 따로 설명한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제와 소제는 엄연히 다릅니다.
오늘은 이에 대해서 공부를 하겠습니다.
그 동안 하던 공부와는 달리 조금 까다로울 수가
있습니다만, 늘 말씀 드렸지만 시험도 없으니
외울 필요도 없고 그냥 이해만 하시면 되니 걱정
마시고 강의를 들으시기 바랍니다.

1)주제의 의미
먼저 영어의 테마(theme)와 서브젝트(subject)가
다 주제로 번역되기는 하지만 문학비평 사전에서
보면 테마를 말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상섭의 [비평용어사전]을 살펴보면
"원래 테마는 나무의 잎과 잔가지들을 달고 있는
중심 줄거리란 뜻을 가진 낱말이다. 그러니까 문
학작품의 소리, 낱말,비유,문장 등의 요소들이
나뭇잎새와 잔가지라면, 그것들을 다 흩어지지
않게 하면서 그 자체는 눈에 뜨이지 않는 중심의
큰 줄기가 테마라고 할 수 있다. 즉 테마는 구조
적 개념이다"고 설파되어 있습니다.

정한모 박사는 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시에 있어서 테마라고 하면 보통은 시 가운데
표현된 기본적인 관념, 혹은 태도를 가리킨다.
다시 말하면 시 속에 형상화된 중심 사상 혹은
의미가 바로 테마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
문에 테마는 이미지나 상징, 비유 등에 대해서
보다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성격을 갖는다.

그런데 문제는 주제라는 것이 이처럼 관념, 태도,
사상 혹은 의미의 성격을 지니기는 하지만 시 속
에서 생경하고 직접적인 모습 그대로 드러나서
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유기적인 총체로서의
시 작품 속에 구체적으로 형상화되면서 적절하게
용해될 필요가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어떤 시를 보았을 때 그 시를 읽고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중심 사상, 의미 그런 것들이 시의 주제
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주제와 소제는 무엇이 다른가 알아보겠습니 다.

2)소제와 주제

김춘수님의 [시론]에 나온 이야기를 먼저 읽어보
지요.
"시는 좁고 답답한 것이 아니라, 넓고 큰 것이다.
자연만이 또는 자연 중의 어떤 부분만이 또한 우리
행동의 어떤 부분만이 시의 소재가 될 수 있다든가
하는 구속은 원래 없는 법이다. 돌멩이와 같은
무기물에서부터 하루살이와 같은 미물에 이르기까
지 시의 제재가 다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우주 삼라만상 모든 것과 우리의 행위나
마음 먹은 것, 바라는 것, 느끼는 것 모두가 시의
소제가 된다고 할지라도 이 같은 것들이 그대로 머
무른다면 그 것들은 아직도 시 이전의 소재, 즉 제
재의 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이 됩니다. 여러분이
그 소재를 자신의 상상력 속에 끌고 들어와서 그
것을 시로 만들어 낼 때 비로소 소재는 주제가
되는 것입니다.

김현승님의 <파도>의 1.2연을 읽어보지요.

아, 여기 누가
술 위에 술을 부었나.
잇발로 깨무는
흰 거품 부글부글 넘치는
충추는 땅-바다의 글라스여.

아, 여기 누가
가슴을 뿌렸나.
언어는 선박처럼 출렁이면서
생각에 꿈틀거리는 배암의 잔등으로부터
영원히 잠들 수 없는,
아, 여기 누가 가슴을 뿌렸나

이 시에서 소재는 제목 그대로 파도이겠지요. 그
러나 파도란 소재 자체만으론 아직 시가 아닙니다.
김현승의 상상력과 결부되어서 도취와 정열이라는
주제의 단계로 바뀌면서 시가 태어납니다.
이처럼 소재가 주제로 발전하는데에는 시인에
의한 동기화(motibation)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동기화는 낯설게하기를 주장했던 러시아의 형식
주의자들이 주장한 개념인데 여기에서는 생략을
하겠습니다.

3)주제의 내용
주제의 내용을 생각하는데에 있어서는 사실 여러
가지 각도에서 접근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시에 있어서 주제란 한정이 있을 수 없기때문에
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려는 자체가 무리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한모박사님의 분류
에 따르면 시의 주제가 인간의 정신작용 중, 知,
情, 意의 어느 측면으로 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주지시, 주정시, 주의시 이 세가지로 나누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시를 분류하고 이론화하는 것이
꼭 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김춘수님은 "시를 이해하는데 편리한 방법이란
있는 것이 아니다. 흔히 유형학적 분류에 따라
시를 이해해 보려는 사람들이 있지만, 대단히
편리한 듯한 이 방법은 그러나 대단히 불편할
뿐만 아니라, 시를 이해하는 데는 무용지물이란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도 공부하시는데 어려운 이론이 있더라도
너무 부담을 갖지 마시고 편안한 마음으로 하십
시오.늘 말씀드리지만 많이 잊어버리시면서
공부하십시오. 참고만 하면 됩니다.
여기 이론을 다 외운다고 시를 잘 쓰는 것이
아니라 좋은 시를 많이 읽고, 자기 나름대로 시를
많이 써보시고, 또 여러 사람 앞에 많이 발표해
보시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일 것입니다.
물론 소재들을 무심히 볼 것이 아니라 많은
생각을 해야하는 것도 아주 중요하지만요.

그러면 그런 의미에서 좋은 시 한 편을 읽어보기로
하지요.
안도현님의 <살구나무 발전소>를 읽어보겠습니다.

살구꽃......
살구꽃......

그 많고 환한 꽃이
그냥 피는 게 아닐 거야

너를 만나러 가는 밤에도 가지마다
알전구를 수천, 수만 개 매어 다는 걸 봐

생각나지, 하루 종일 벌떼들이 윙윙거리던 거.
마을에 전기가 처음 들어오던 날도
전깃줄은 그렇게 울었지

그래,
살구나무 어디엔가에는 틀림없이
살구꽃에다 불을 밝히는 발전소가 있을 거야

낮에도 살구꽃.......
밤에도 살구꽃.......

정효구님의 해설을 덧붙입니다.
"안도현은 살구꽃 앞에서 <불의 상상력>을 한껏
가동시키고 있다. 그는 살구꽃을 보면서 수천,수
만 개의 알전구를 떠올린다. 그는 또한 살구꽃의
벌떼들을 보면서 전깃줄이 웅웅대는 소리를 떠
올린다. 그는 살구꽃을 매달고 있는 살구나무를
보면서 그 속에 들어 있음직한 발전소를 연상한다.
살구꽃은 이런 발전소를 숨기고 있기에 낮에도 피
어나고 밤에도 피어난다.
꽃 앞에서 불의 상상력이 자극되는 것은 매우 흔한
일이다. 그러나 안도현이 가동시킨 불의 상상력은
진부하지 않고 이채롭다.

안도현님처럼 누구나 보는 살구꽃에서 이런 훌륭한
시를 상상해내듯, 우리도 우리 주위의 모든 것이
시의 좋은 소재가 될 수 있음을 알고 그 보는
눈을 먼저 길러야겠습니다.
그럼 다시 강의에 들어가겠습니다,

주제에 따른 시 분류를 시도한 학자들 가운데서
특히 개성있는 이론을 펼친 사람은 노드롭 프라
이(Northrop Frye)입니다. 그는 "劇은 서사적(이
야기 중심적)인 양식, 서정시는 주제적인 양식
으로 되는 경향이 있다"고 전제하면서 서정시의
주제를 무려 24개 유형으로 분류했습니다. 이는
다만 그의 분류를 제목 정도만 나열하니 이런
분류도 있겠구나 하는 정도로만 읽고 넘어가시기
바랍니다.

*託意的(탁의적)인 시-다른 것에 비기어 상징적
으로 나타낸 시
*공적인 종교시
*찬미시
*공동사회의 시
*참가의례:국가, 군가 등의 가사
*주문(술사들의 주문)
*만가, 혹은 애가:애도시
*장송, 송시
*碑銘詩(비명시);비문
*영탄
*우울의 시
*경구
*풍자
*역설의 시
*전원시(pastourelle)
*향락의 시
등 무려 24가지로 구분하였으나, 이는 프라이의
분류일 뿐입니다. 우리와 시대적, 지리적, 정신적
차이가 있으니 다만 이렇게도 나누었구나 하는
정도로만 일고 싸악 잊어버리시기 바랍니다

주정시,주지시, 주의시에 대해선 내일 강의하겠습
니다. 오늘 너무 길어졌군요.
마지막으로 또 좋은 시 한 편을 읽고 마치기로
하겠습니다.

오규원님의 <새와 날개>를 한번 읽어보지요.

강에는 강물이 흐르고 한 여자가
흐르지 않고 강가에 서 있다
안고 있는 아이에게 한 쪽 젖을 맡기고
강이 만든 길을 보고 있다

길은 강에만 있고 강둑에는
흐린 하늘이 바짝 붙어 있다

아이는 한 손으로 젖을 움켜쥐고
넓은 들에서 하늘로 무너지는
강을 보고 있다

강에는 강물이 흐르고
물속에는 날개가 젖지 않는
새 한 마리가
강을 건너가고 있다

정효구님의 해설입니다.
"최근 들어 오규원은 <날이미지의 시>를 이야기
하였다. 짧게 말하자면 그가 이야기한

<날이미지의 시>란 진술<관념>이 배제되고
묘사(이미지)만 있는 시를 뜻한다.


오규원이 1999년도에 발간한
그의 시집 [토마토는 붉다 아니 달콤하다]는 이런
<날 이미지의 시>로 이루어져 있다.

< 날이미지의시>는 한 폭의 풍경화를 연상시킨다.
시인의 대상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담담한 어조로
그 풍경만을 묘사하는 것이 시의 전부이기 때문
이다. 오규원의 시 <새의 날개>도 이런 <날이미
지의 시>의 일종이다. 그는 이 시에서 강과, 그
강을 중심으로 한 주변 풍경을 파스텔풍의 울림을
독자들에게 은밀히 안겨 준다. 그가 묘사한 이런
풍경을 이 시에서 응시하는 기쁨은 그 어느 기쁨
보다도 진하고 오래간다.

잘 읽으셨습니까? 오규원 박사님의 <날이미지의
시>란 그 분의 새로운 주장입니다만 매우 생경
하면서도 신선한 감각입니다. 앞으로 주의 깊게
그의 시들을 살펴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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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4. 절망의 빛깔은 아름답다 / 이태수
 
    
 
        
 
 
 
 
 

 
 
 
 
절망의 빛깔은 아름답다
 
                              이 태 수
 
이룰 수 없는 꿈은 아름답다.
팔을 뻗고 발을 구르는
이 목마름은 아름답다.
뜬눈으로 밤을 건너거나
입술 깨물며 돌아서도
가눌 수 없는 이 눈물은 아름답다.
저만큼 가고 있는 네 등 뒤에
눈길을 주며, 강의 이쪽에서
돌이 되는 가슴은 아름답다.
지워도 지워도 되살아나는
아픔과 상처, 강의 저쪽과
이쪽, 그 사이의 하늘에 번지는
절망의 빛깔은 아름답다.
 
 
이태수 시집 <안 보이는 너의 손바닥 위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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