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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적 상상력을 키워야...
2016년 06월 25일 19시 07분  조회:4790  추천:0  작성자: 죽림
상상력 연습

1. 동물의 시체를 방치 하면 어디선가 구더기가 생겨나서 그것을 
해체 시킨다.구더기는 지구의 청소자라 할 수 있다.
이런 구더기를 우리는 더러운 것으로만 보고 있으니 딱하다.지구를 깨끗이 치워주는 청소자가 왜 더럽단 말인가.치워지지 않은 상태, 그리하여 동물의 시체가 자꾸만 쌓여 가는 그 상태야 말로 더럽다면 더러운 것이다.이런 사실은 관점을 어떻게 설정 하느냐에 따라 미와 추가 근본적으로 달라 질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그러니 자기에게 익숙한 어느 한 관점만을 고집하는 것은 어리석은 편협일 뿐이다.

2.사물은 수많은 형상과 내포를 가질 수 있다. 비근한 예를 들어 한 종지의 물을 보자.
코끼리 한테는 눈에 띄기도 어려운 소량의 그것이 개미 한테는 빠져 죽을 수도 있는 홍수의 재앙을 의미하는 것이다.같은 물을 각자의 위치와 관점에서 결코 같지 않게 받아 들일것이 분명하다.시인은 이와 같이 다양한 사물의 모양을 함께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코끼리의 눈도, 개미의 눈도.그리고 다른 온갖 사물의 눈도 자신의 것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

3. 시인은 기다리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 기다림은 끝없는 지연으로 이어진다. 오지 않는 님과도 같은 것이다.오지 않기에 천만 다행이 아니냐. 님이 만일 온다면 그날로 시인은 끝장이다.
님은 결코 오지 않기 때문에 시인은 언제 까지나 죽지않고 살아서 그 님을 기다릴 수 있다.

4.돌은 말이 없다.
허공도 말이 없다. 그러나 귀를 잘 기울이면 그것들은 모두 말을 한다. 그것도 참으로 오묘한 말이다. 상상력이란 그런 말을 알아 듣는 귀의 다른 이름이다.

5.이미 씌어진 한편의 시는 완성품이라는 일면을 갖는다.
그러기 때문에 시인들은 흔히 “내 시에는 토씨 하나도 보태거나 빼거나 할 수 없다”고 말한다.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보면 시는 언제나 미완의 가능성으로 존재 한다.
이때 시를 완성 시키는 것은 시인 자신이 아니라 독자의 상상력이다. 그 상상력이 제대로 불타오르기만 하면 한 편의 시는 그 불꽃의 크기와 뜨거움에 비례하는 내포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런 뜻에서 시는 독자의 상상력을 촉발 시키기위한 한 개비의 위험한 성냥이라 할수 있다.

6.영향을 받는다고 두려워할 까닭은 조금도 없다. 영향을 두려워 할 만큼 허약한 정신은 아무것도 창조해 내지 못한다.겨우 모방꾼이 될 뿐이다.참으로 독창적인 정신은 영향을 두려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대로는 뻔뻔 스럽게 남의 것을 훔치기도 한다.훔친것도 삼켜서 소화 해 버리면 내것인 것이다.

* 이형기 시인의 시집 <절벽>중.산문 ‘불꽃속의 싸락 눈’에서 발췌


땅 위를 기어가는 것들에는

                 김 영남

땅을 기어가는 것들에는
기둥에 붙들어 맬 수 없는 고집이 있다.
황토밭을 달리다가 잠시 뒤돌아 보는 고구마
순,
벽을 기어 오르며 허공에 내미는 담쟁이 손,
이것들에게는 허리가 꺽이고 발목이 묶이더라도
오로지 가고야 말겠다는 강인한 근성이
무섭도록 꿈틀댄다.

그 구불구불한 줄기를 들치면
대나무 뿌리 같은 손이 있고,
그 손 속에
들녘으로 나가는 어머니
호미자루가 쥐어져 있다.
꺽인 자리를 지우며 푸른 하늘을 향해
날개 펴는 새순 속에는 또
얘야, 손발이 부르트도록 땅을 뒤져 네게 올려 주마
하시던
고무 신발 같은 말씀이 달리고 있고,
주렁주렁 열매 달린 묵은 순 속에는
딱딱한 매듭으로 남거나 삭정이로 부러지는
줄기의 마지막 모습이
아프게 숨어 있다.

땅을 기어 가는 것들,
절벽을 기어 오르는 줄기들에는
어둔 싹들을 이 세상으로 업어낸
아름다운 등이 있다.


변환 스위치가 필요하다

                김 영 남

좋은 사고를 제조하기 위해선
우선 작동이 잘 되는
변환 스위치가 여럿 필요하다.

관점을 신속하게 거꾸로 바꿀줄 아는 reversal
스위치
진부한 상상을 버리고 컬러풀한 상상으로 이동
을 모색하게 하는 po 스위치
적개 적소에 디딤돌을 놓아 건너 뛰게 하는 stone
스위치
무작위 대입을 통해 제 작을 찾게 하는 random
스위치
고정관념으로부터 탈출을 모색하게 하는 domi-
nant 스위치

자, 준비가 끝낫으면 파워를 넣고
한번 시험 가동을 해 보자.
연료로는
뚱둥한 여자, 주근깨, 토종개, 달빛, 누룩, 청
포도, 홍시 ,장작불, 개오동 열매
잠시 경험, 지식, 정보의 작업 라인이 분주히
움직이더니
창조적 접근만 허용하는 관리 체계의 결재가 떨어졌다.
그리고 품질 좋은 사고가 제조 되었다.

< 토종개 한 마리, 검정깨 네 홉, 청포도 3kg,
누룩 두 되 가웃, 대추 한 사발을 달빛에 발효시
켜 가양주(家釀酒)를 양조 하겠다>는 개오동 열매 
같은 시(詩),

허약체질과 발기부전에 특효인.


모두가 들국화 시인이 되게 하라
                          김영남


이번 가을은 농부들 마음위에서
귀뚜라미 울음 소리가 데굴데굴 굴러가게 하라.
그리하여 섬돌 아래에서 사발로 줍게 하라.
튕겨 낼 듯 댓가지 휘고 있는 가을 과일들도
그 꽉 찬 결실만 생각하며 따게 하라.
혹 깨물지 못할 쭈그린 얼굴이 있거든
그것은 저 빈 들녘의 허수아비 몫으로만 남게 하라
더 이상 지는 잎에 까지 상처 받지 않고
푸른 하늘과 손 잡고 가고 있는 길 옆 들국화처럼
모두가 시인이 되어서 돌아오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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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츠오 바쇼 작품(1644~1694년) / 시인 최윤희

 

 

 

 

 

마츠오 바쇼  松尾芭焦  (1644~1694)

 

 

두 사람의 생 그 사이에 피어난 벚꽃이어라

오래된 연못 개구리 뛰어드는 물소리
장맛비 내려 학의 다리가 짧아졌어라
가는 봄이여 새는 울고 물고기 눈에는 눈물
고요함이여 바위에 스며드는 매미의 울음
자세히 보면 냉이꽃 피어 있는 울타리여라
들판의 해골 되리라 마음먹으니 몸에 스미는 바람
여행자라고 이름 불리고 싶어라 초겨울 비
무덤도 움직여라 나의 울음소리는 가을바람
너무 울어 텅 비어 버렸는가 매미 허물은
죽은 사람의 소매 좁은 옷도 지금 볕에 널리고
한밤중 몰래 벌레는 달빛 아래 밤을 뚫는다
흰 이슬도 흘리지 않는 싸리의 너울거림
첫눈 내리네 수선화 잎사귀가 휘어질 만큼
휘파람새가 떡에다 똥을 누는 툇마루 끝
여름에 입은 옷 아직 이를 다 잡지 못하고
산길 넘는데 왠지 마음 끌리는 제비꽃
야위었지만 어쩔 수 없는 국화는 꽃을 맺었네
소금 절인 도미의 잇몸도 시리다 생선 가게 좌판
모란 꽃술 속에서 뒷걸음질 쳐 나오는 벌의 아쉬움이여
마른 가지에 까마귀 앉아 있다 가을 저물녘
여름 장맛비 다 모여서 빠르다 모가미 강
둘이서 본 눈 올해에도 그렇게 내렸을까
나무 뒤에 숨어 찻잎 따는 이도 듣는가 두견새 울음
더 보고 싶어라 꽃에 사라져 가는 신의 얼굴을
울적한 나를 더욱 외롭게 하라 뻐꾸기
봄비 내려 벌집 타고 흐르네 지붕이 새어
쇠약함이여 치아에 씹히는 김에 묻은 모래
날 밝을 녘 흰 물고기 흰 빛 한 치의 빛남
말을 하면 입술이 시리다 가을바람
일어나 일어나 내 친구가 되어 줘 잠자는 나비
이쪽으로 얼굴을 돌리시게 나 역시 외로우니 가을 저물녘
땅에 떨어져 뿌리에 다가가니 꽃의 작별이라
몸에 스미는 무의 매운맛 가을바람
죽지도 않은 객지 잠의 끝이여 가을 저물녘
불을 피우게 좋은 걸 보여 줄 테니 눈 뭉치
자, 그럼 안녕 눈 구경하러 넘어지는 곳까지
잊지 말게나 덤불 속 피어 있는 매화꽃을
나팔꽃이여 너마저 나의 벗이 될 수 없구나
의지할 곳은 언제나 잎사귀 하나 벌레의 노숙
손에 잡으면 사라질 눈물이여 뜨거운 가을의 서리
일생을 여행으로 쟁기질하며 작은 논을 가고 오는 중
어리석게도 어둠 속 가시 잡은 반딧불이
제비붓꽃을 이야기하는 것도 여행의 하나
나무다리 위 목숨을 휘감는 담쟁이덩굴
나의 집에서 대접할 만한 것은 모기가 작다는 것
첫 겨울비 원숭이도 도롱이를 쓰고 싶은 듯
얼마 동안은 꽃에 달이 걸린 방이겠구나
조만간 죽을 기색 보이지 않는 매미 소리
이 가을에는 어찌 이리 늙는가 구름 속의 새
흰 이슬의 외로운 맛을 잊지 말라
한겨울 칩거 다시 기대려 하네 이 기둥
겨울비 내리네 논의 새 그루터기가 검게 젖도록
가을 깊어져 나비도 햝고 있네 국화의 이슬
이 길 오가는 사람 없이 저무는 가을
방랑에 병들어 꿈은 시든 들판을 헤매고 돈다
가을 깊은데 이웃은 무얼 하는 사람일까
겨울 해여 말 위에 얼어붙은 그림자
물들었구나 두부에 떨어져서 옅은 단풍잎
기다리지 않았는데 야채 팔러 왔는가 두견새
오징어 파는 이의 목소리 헷갈리는 두견새
두견새 정월은 매화꽃이 피고
겨울 모란 물떼새여 눈 속의 두견새
바위 철쭉 물들이는 눈물이구나 두견새
논이랑 밭이랑 그 속에도 여름의 두견새
나무에 가려져 차 잎을 따는 이도 듣는구나 두견새
두견새 가다랭이를 물들였던 것이구나
꽃의 화려한 얼굴에 감동되어 으스름달
산길에 와서 왠지 마음 끌려라 제비꽃
입춘이구나 신년 묵은 쌀 다섯 되
새해 첫날이여 생각하면 쓸쓸한 가을 해질녘
나이는 사람에게 주고 언제나 젊은 에비스신
장식 소나무여 생각하면 하룻밤 삼십년
많은 서리에 사려 깊은 장식 소나무
누구의 아내인가 풀고사리에 떡을 얹은 소띠 해
곤약에 오늘은 이기는 풋나물인가
오오츠 그림의 첫 그림은 어떤 부처
저울이여 쿄토 에도를 재고 천년의 봄
오두막집도 주인이 바뀌는 시절이요 하나 인형의 집
영험하게도 녹음과 신록 위에 빛나는 햇빛
잠시 동안은 폭포 속에 틀어박히네 초여름
여름 산에 수행 나막신을 배례하는 출발이어라
딱따구리도 암자는 쪼지 않고 여름 숲
들판을 가로질러 말머리 돌려다오 두견새
풍류의 시작이여 오쿠의 모내기 노래
세상 사람이 찾지 않는 꽃이여 처마 밑 밤꽃
모내는 처녀의 손이여 옛날 베 치치던 정취
카사지마는 어디메뇨 오월의 젖은 길
벚꽃보다 소나무는 두 갈개를 하고 삼월 넘기다
여름풀이여 무사들의 꿈꾸던 자취
고맙구나 눈의 향기 감도는 마다마다니
서늘함이여 초승달의 하구로산
구름 봉우리 수없이 무너져 내리고 츠키노야마
이야기할 수 없는 유도노에 적시는 옷소매구나
키사카타여 비에 서시가 자귀꽃
시오코시여 학의 다리 젖고 바다는 시원하도다
칠월의 밤이여 칠석 전야 초엿새도 평소와는 다르네
거친 바다여 사도섬을 가로지르는 은하수
올벼 향기여 헤쳐 들어간 오른쪽은 아리소 해변
가을은 시원하도다 모두 손에 들고 벗기세 참외와 가지
따가운 햇살은 변함없이 가을바람
어여쁜 지명이여 어린 소나무 나부끼는 싸리꽃 억새꽃
참혹하도다 갑옷 아래의 귀뚜라미
석산의 바위보다 하얗도다 가을바람
야마나카여 국화 꺾을 일 없네 온천의 향기
오늘부터는 글자를 지워야겠다 삿갓의 이슬
달이 밝도다 유우교 고승이 지고 온 모래 위
망월이여 호쿠리쿠 날씨는 알 수가 없네
쓸쓸함이여 스마보다 더 심한 해변의 가을
파도 사이여 조가비에 섞이는 싸리꽃 조각
대합조개가 두 몸으로 헤어져 가는 가을이로다
여름 장맛비 누에는 뽕나무 밭에서 병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나비의 현실이여 애처로워라
아홉 번 달 때문에 일어났어도 아직 새벽 4시
나비의 날개 몇 번이나 넘는가 담장의 지붕
종 치지 않는 마을 무엇을 하나 봄날 저녁
풀잎에서 떨어지자마자 날아가는 반딧불이
고추에 날개를 붙이면 고추잠자리
매화 향기에 쫒겨서 물러가는 추위여라
나팔꽃 보며 나는 밥 먹는 사나이
나팔꽃은 솜씨 없이 그려도 애틋하여라
떠나는 가을 손을 벌렸구나 밤송이
두 손으로 뜨자 벌써 이가 시린 샘물이어라
일 년에 한 번 소중하게 뜯는구나 냉이풀
한들한들 더 이슬 같아라 마타리꽃은
눈 그친 사이 연보라색으로 돋아나는 땅두릅나물
볼만하구나 폭풍우 지난 뒤의 국화
초겨울 찬 바람에 향기 묻어나는 늦게 핀 꽃
이슬 방울방울 시험 삼아 덧없는 세상 씻고 싶어라
찬 바람 분다 이 몸은 돌파리 의사 같아라
국화꽃 빨리 피어라 국화 축제 다가오니
작별의 시 부채에 쓰고 찢는 아쉬움이여
도롱이벌레 소리 들으러 오라 풀로 엮은 움막
파 뿌리 하얗게 씻어서 세워 놓은 추위여라
어찌 되었든 죽지 않았다 눈 속의 마른 억새꽃
구름처럼 친구와 헤어져 기러기 잠시 생이별하네
두견새 울고 울다가 또 날다가 분주하여라
봄밤은 벚꽃에 날이 새며 끝이 나누나
향기 찾다가 매화를 바라보는 헛간 처마 끝
물이 불어나 별도 객지 잠 자네 바위 위에서
작은 새끼 게 발등에 기어오르는 맑은 물
저 떡갈나무, 꽃에는 아주 관심 없는 모습이어라
파도 사이 작은 조개에 섞인 싸리 꽃잎을
물풀에 모이는 흰 물고기 잡으면 사라지겠지
남의 말 하는 사람마다 입 속의 혀 아래쪽 붉은 단풍잎
어디서 겨울비 내렸나 우산 손에 들고 돌아온 승려
재 속의 불도 사그라드네 눈물 끓는 소리에
여름 장맛비 한밤중에 물통테 터지는 소리
문학적 재능은 내려놓으라 모란꽃
국화 진 후에 무 뿌리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객지 잠 자면 내 시를 이해할 수 있으리 가을바람
첫눈 내리네 다행이 오두막에 있는 동안에
평소 얄밉던 까마귀도 눈 내린 아침에는
바다 저물어 야생 오리 우는 소리 어렴풋이 희다
대합조개가 입을 다물고 있는 무더위여라
외로움을 물으러 오지 않겠나 오동잎 한 잎
주인 없는 집 매화조차 남의 집 담장 너머에
나팔꽃 피어 낮에는 자물쇠 채우는 문의 울타리
가진 것 하나 나의 생은 가벼운 조롱박
나를 닮지 말라 둘로 쪼갠 참외일지라도
물 항아리 터져 한밤중 빙결에 잠을 깸이여
어두운 밤 둥지를 잃고 우는 물떼새
보름 다음 날 밤 적지만 어둠의 시작
온갖 풀꽃들 제각기 꽃 피우는 공덕이어라
무슨 나무의 꽃인지는 몰라도 향기가 나네
돌산의 돌보다 하얗다 가을바람
돌산의 돌에 세차게 흩날리네 싸라기눈
정월 초나흘 죽기에 이보다 더 좋은 날 있을까
하룻밤 묵을 곳 구해 이름을 말한다 첫 겨울비
두견새 사라져 간 쪽에 섬 하나
색이 묻는구나 두부에 떨어져 옅은 홍단풍
달과 꽃을 아는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주인들
나무 끝에서 덧없이 떨어지는 매미의 허물
병든 기러기 추운 밤 뒤쳐져서 길에서 자네
오늘만은 사람도 늙는구나 초겨울 비
서리를 입고 바람을 깔고 자는 버려진 아이
부러워라 속세의 북쪽에 사는 산벚나무
때때로 나 자신의 숨을 본다 겨울의 칩거
나비 날 뿐인 들판 한가운데의 햇살이어라
좁은 길 씨름꽃 위에 얹힌 이슬
첫 겨울비 내가 처음 쓰는 글자는 첫 겨울비
생선 가시 햝을 정도로 늙은 자신을 보네
사람 소리 들리네 이 길 돌아가는 가을 저물녘
나비가 못 되었구나 가을이 가는데 이 애벌레는
싸락눈 듣네 이 몸은 본디 늙은 떡갈나무
흰 물고기 검은 눈을 뜬 진리의 그물
파초에는 태풍 불고 대야에 빗물 소리 듣는 밤이여
교토에 있어서 교토가 그리워라 소쩍새 울음
이슬 한 방울도 엎지르지 않는 국화의 얼음
춥지 않는 이슬이어라 모란꽃의 꿀
벼루인가 하고 주워 보는 오목한 돌 속의 이슬
초겨울 찬 바람 볼이 부어 쑤시는 사람의 얼굴
오래된 마을 감나무 없는 집 한 집도 없다
물은 차갑고 갈매기도 쉬이 잠들지 못하네
야 아무렇지도 않네 어제는 지나갔다 복어 국이여
구름이 이따금 달구경하는 사람들에게 쉴 틈을 주네
사람들 보이지 않아도 봄이구나 손거울 뒤에 그려진 매화
여러 가지 일 생각나게 하는 벚꽃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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