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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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名詩들 앞에 선 초라하고 불쌍한 자아의 詩여!!!
2016년 07월 02일 20시 40분  조회:3574  추천:0  작성자: 죽림

수정작품과 단번에 완성한 작품/정호정 


나는 시를 어림으로 고친다. 무슨 이유로 어떻게 고친다는 이론이나 전문 용어는 잘 모른다. 그러므로 ‘나의 시 이렇게 고쳤다’고 하기보다는 ‘나의 시 이렇게 썼다’고 밝히는 것이 마땅할 것 같다. 시를 완성해 가는 길이라는 동질성에서 감히. 
써 놓은 시에 수정을 가한 것과, 초점이 잘 맞아 단번에 완성할 수 있었던 작품 두 편을 예시하기로 한다. 


‘능견난사(能見難思)’라는 유기 응기(應器)를 보았다. ‘잘 살펴보고도 보통의 이치로는 추측할 수 없는 일’이라는 뜻을 가진 ‘능견난사’의 정보에 충실하기로 한다. 
송광사 박물관 소장. 고려 후기. 전남 유형문화재 제19호. 구경 16.7cm, 높이 4.7cm. 두께 1mm. 송광사 구전에 의하면 금(金)나라의 장종황제의 황후가 쓰러져 기도할 때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사용했던 접시라 한다. 
숙종조에 사찰을 중창하며 나라에 진상하였으며, 어떤 대장장이도 그대로 만들어내지 못함에 왕이 어필로 ‘能見難思’라 써 내린 것이 이름이 되었다 한다. 어필은 남아 있지 않다. 
송광사 기록에는 500개, 1828년 충청도관찰사 홍석주의 기행문 「여천옹유산록」에서는 50개를 보았다 하나, 지금의 송광사에는 30개가 현존한다. 

조계산을 넘어 선암사로 가고 있었다. ‘능견난사’는 내내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날아갈 듯이 고운 살결에 나의 모습이 어려 있었다. 그것은 나의 별이며 나의 시였다. 조계산의 밤하늘에서 총총히 빛나던, 나의 유년의 별이 아니라, 살아오는 동안에 갈개다 찢긴, 상처자국들 그득한, 빛을 잃은 별이었다. 부득부득 태어나고 있는 나의 시집이 세상에 나와 어떤 수모를 당할지, 많은 좋은 시들 앞에서 얼마나 초라할지 모를 불쌍한 나의 시였다. 

조계산을 넘으며①(초고분) 

능견난사能見難思에서 너를 본다② 
(너는 많이 일그러져 있다 
능견난사는 송광사 박물관이 소장한 
방짜유기접시 
숙종때 사찰을 중창하며 진상한, 
어떤 장인도 그대로 만들어내지 못해 
왕이 어필로 써서 내렸다는 이름) 
고운 살결에 가장자리를 가는 실금으로 말아올렸다③ 
(16.7cm의 구경이며 4.7cm의 높이, 1mm의 두께가 
한결같다 차곡차곡 겹쳐진다) 
겹쳐지는 놋쇠덩이를 주무른 망치의 힘을 본다④ 
스치며 날아앉는 얇은 사의, 
스미는 물소리의, 
깊이 가라앉은 하늘빛의, 
유년의 냇가에 구르던 웃음소리의 
춤, 
춤의 흔적같은 
너의 살결은 뭉쳐 있는가 하면 창이 나려 한다 
돌산이 들판이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다 

(‘능견난사’에 비치는 나의 너) 
돌각다리 길을 오르며 내릴 때 
내 안에서 이는 물 소리 바람 소리, 
갈대의 서걱임마저 나를 깨운다 
(누구도 재현하지 못한 신기만이 사랑이 아니라고 
잘 생기지 못한 너를 다독인다.) 
(괄호는 수정에 필요한 것임. 

⑴ ①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지 못하는 제목을 버리고, 구전을 참작하여 ‘누군가 방짜유기접시를 능경난사라 했네’로 개작하였다. 
⑵ ②에서 ‘능견난사’를 ‘방짜유기접시’로 수정하였다. 
⑶ 구전이나 사실의 서술 또는 군더더기로 여겨지는 괄호 안의 부분을 모두 삭제하였다. 
⑷ ③과 ④의 순서를 바꾸어 놓았다. 

누군가 방짜유기접시를 ‘能見難思’라 했네 (수정분) 

방짜유기접시에서 너를 본다 
겹쳐지는 놋쇠덩이를 주무른 망치의 힘을 본다 
고운 살결에 
가장자리를 가는 실금으로 말아올린 
스치며 날아앉는 얇은 사의 
스미는 물소리의 
깊이 가라앉은 하늘빛의 
유년의 냇가에 구르던 웃음소리의 
춤 
춤의 흔적같은 
너의 살결은 뭉쳐 있는가 하면 창이 나려 한다 
돌산이 들판이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다 

돌각다리 길을 오르며 내릴 때 
내 안에서 이는 물소리 바람소리 
갈대의 서걱임마저 나를 깨운다. 


고산(孤山)의 세연지(洗然池)는 매우 아름답다. 굴뚝다리로 보(洑)를 삼은 계담(溪潭)으로 물이 소리 없이 스민다. 이리저리 늘어놓은 바위들을 돌며 ㄹ자의 물길을 따라 다시 회수담(回水潭)으로 흐른다. 나는 동산에 떠오르는 달이며, 춤추는 무희의 너울이 잠기는 물을 그려 보기로 하였다. 아무리 그려 보아도 세연지의 아름다움일 뿐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나는 세연지의 홍보원이 아니지 않은가. 
문득 고요한 물에서 묵묵한 인종이 보였다. 할머니의 할머니로부터 이어온 아름다운, 그것은 바로 나와의 관계였다. 이 여인들의 인종이 고요하게 가라앉아서 모든 힘의 원천이 되고 있었다. 굴뚝다리에서 한바탕씩 갈등이 풀리고 있었다. 울리는 물소리를 즐기고 싶었을지, 물의 갈등을 풀어주고 싶었을지, 굴뚝다리를 놓은 고산의 의도를 내가 헤아릴 필요는 없었다. 나는 다만 물의 입장을 헤아리면 그만이었다. 

창으로 넘나드는 자연은 늘 신선하다 

고산은 흐르는 물에 굴뚝다리를 놓아 연못을 만들었습니다 
물이 고개를 숙이며 돌틈으로 스며듭니다 
숨을 죽입니다 발뒤꿈치를 듭니다 소리 없이 
이리저리 늘어놓은 바위며 배롱나무섬을 돕니다 
산에서 흐른 암반 위에서 물은 맑고 고요합니다 
맑고 고요한 물의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으신지요 
큰 소리로 외치고 싶은, 서로 얼싸안고 싶은, 
목놓아 울고 싶은, 위로받고 싶은, 
살아 있음이며 반가움 서러움 고달픔들 

두드리면 통통 소리가 납니다 속이 텅 비어 있습니다 
암반 위에 양쪽으로 돌판을 세우고, 다시 돌판으로 덮은, 
평소에는 건너다니는 다리가 되고, 물이 넘치면 
폭포가 됩니다 

물의 소리에 공명하는, 
모두 다 내어준 이의 가슴입니다 
때때로 차오른 나의 갈등이 풀리는 가슴으로 하여 
계담의 물은 늘 아름답습니다.◑ 

◇정호정 경기 안산 생. 98년 『문학과 창작』 신인상 당선. 시집 『프로스트의 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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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의 고향 
―최문자 (1943∼)

내가 나라는 때가 있었죠

이렇게 무거운 발도

그때는 맨발이었죠

오그린 발톱이 없었죠


 
그때는

이파리 다 따 버리고

맨발로 걸었죠

그때는

죽은 돌을 보고 짖어 대는

헐벗은 개 한 마리가 아니었죠

누구 대신 불쑥 죽어 보면서

정말 살아 있었죠

그때는

그때는

세우는 곳에 서지 않고

맨발로

내가 나를 세웠죠

그때는

내 이야기가 자라서

정말 내가 되었죠

불온했던 꽃 한철

그때는

맨발에도 별이 떴죠

그 별을 무쇠처럼 사랑했죠

날이 갈수록

내가 나를 들 수 없는

무거운 발

가슴에서 떨어져 나간 별똥별이죠

발도 고향에 가고 싶죠


아무것에도 매이지 않아 발 가볍던 젊은 날과 많은 일에 옭아 매인 현재를 대비해서 들려주고 있다. 내용은 화자가 몸도 마음도 지쳤다는 걸 짐작하게끔 무거운데, ‘∼죠’라고 되풀이되는 어미가 어린이처럼 무구한 느낌을 주고 리듬감이 있어 경쾌하게 읽힌다.

 
젊었던 ‘그때는’ 장식도 허위도 없고, 겁쟁이도 아니었단다. 그래서 가슴 닿는 데로만 갔었단다. 지금은 내키지 않아도 ‘세우는 곳에’ 서 있단다. 그런데 그게 강제로 세워졌던 걸까? 그걸 선택한 건 본인이 아니었나? 이익이나 의무감이나 체면, 혹은 허영 때문에 말이다. 화자도 그걸 알고 있다. ‘누구 대신 불쑥 죽어 보면서/정말 살아 있었’던 적이 있으니까. 화자가 들려주는 참으로 순수하고 거침없고 찬란했던 그의 젊은 날. 아, 옛날이여! 나이 든 남자들은 “내가 왕년에” 하며 잘나갔던 시절 얘기를 꺼내곤 하지.

맨발에는 별이 뜨고, 맨발로만 가슴에 들어갈 수 있는데, 이제 그 발 ‘가슴에서 떨어져 나간 별똥별’이 되었네. 아, 별똥별은 자기가 본래 있었던 머나먼 그곳으로 얼마나 돌아가고 싶을까! 다른 많은 나이 든 사람들처럼 삶은 틀에 박혀 있지만 언어감각은 발달한 시인이 문득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본래의 나’를 그리워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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