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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여, 이 시만 남았다...
2016년 10월 12일 21시 54분  조회:3720  추천:0  작성자: 죽림

 

명태여, 이 시만 남았다
                     /고형렬

 


  졸짱붕알을 달고 명태들 먼 샛바다 밖으로 휘파람 불며 빠져나간다 덕장 밑 잔설에 새파란 나생이 솟아나올 때 바람 불면 아들이랑 하늘 쳐다보며 황태 두 코다리 잡아당겨 망치로 머리 허연 꼬리 퍽퍽 두드려 울타리 밑에 짚불 놓아 연기 피우며 두 마리 불에 구워 먹던 2월 어느날

  개학날도 다가오고 나는 오늘을 안 듯 눈구덩이 설악으로 끌려가는 해를 무연히 바라보다 오만 데 바다로 눈길 준 지 잠시인걸 엊그제 속초 설 쇠고 오다 미시령 삼거리서 사온 누렁이 두 마리 돌로 두드려 혼자 뜯어 먹자니, 내 나이보다 아래가 되신 선친이 불현듯 생각나

  아버지가 되려고 아들을 불러 앉히고 그 중태를 죽죽 찢어 입에 넣어주었다 그 황태 쓸개 간 있던 곳에서 눈냄새가 나고 납설수 냄새도 나자 아버지 냄새가 났다 슬프다기보다 50년 신춘에 이렇게 건태 뜯어 먹는 버릇도 아버지를 닮았으니, 아들도 나를 닮을 것이다

  명태들이 삭은 이빨로 떠나는 새달, 그렇게 머리를 두드려 구워 먹고 초록의 동북 바다로 겨울을 보내주면, 양력 2월 중순에 정월 대보름은 달려왔고 우리 부자는 친구처럼 건태를 구워 먹고 봄을 맞았다 남은 건 내 몸밖에 없으나 새 2월은 그렇게 왔다 가서 이 시만 이렇게 남았다

========================
 

 

감평

 

이 시를 접하면 아버지-시인-자식이 각각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손이라는 울타리에서 가정의 평화를 오버랩하게 한다.

덕장에서 아버지와 자식의 사랑을 면면히 이어주는 매개체 황태가 선친을 생각하게 하는 것은 시인도 아버지를 참 그리웠나보다.

황태를 누렁이라고 표현한 시적감각이 참 탁월하고, 부자간의 많은 대화는 없지만 자식의 입으로 넣어주는 중태가 이 세상에서 최상의 음식이 아닐까. 나도 미시령 고개 덕장 아래에서 황태를 즐길 수 있는 사내아이 하나 있었으면 참 좋겠다.

 

 

고형렬

1954년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났다. 1979년 『현대문학』에 「장자」등이 추천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대청봉 수박밭』『해청』『사진리 대설』『성에꽃 눈부처』『김포 운호가든집에서』, 장시집 『리틀 보이』, 동시집『빵 들고 자는 언니』등이 있다. 2003년 제3회 지훈상을 수상했다. 현재 계간 『시평(詩評)』을 편집하고 있으며 명지전문대 문창과 겸임교수로 출강하고 있다.
졸짱붕알을 달고 명태들 먼 샛바다 밖으로 휘파람 불며 빠져나간다 덕장 밑 잔설에 새파란 나생이 솟아나올 때 바람 불면 아들이랑 하늘 쳐다보며 황태 두 코다리 잡아당겨 망치로 머리 허리 꼬리 퍽퍽 두드려 울타리 밑에 짚불 놓아 연기 피우며 두 마리 불에 구워 먹던 2월 어느 날 … 엊그제 속초 설 쇠고 오다 미시령 삼거리서 사온 누렁이 두 마리 두드려 혼자 뜯어 먹자니, 내 나이보다 아래가 되신 선친이 불현듯 생각나 

 '명태여, 이 시만 남았다' 중에서 

■ 오랜 동안 조기는 서해였고 명태는 동해 그 자체였다. 대한민국 사람들마다 한평생 입 속으로 헤엄쳐들어간 평균 숫자는 몇 마리쯤 될까. 1백 마리는 지져먹고 졸여먹지 않았을까. 명태 1백 마리 지나가는 동안, 인생에 치는 물보라가 왜 없겠으며 가라앉는 기억의 앙금 또한 어찌 없겠는가. 시인은 아버지와 먹던 명태의 기억이 어느덧 아버지 전부가 되어 먹먹한 시간의 살을 씹는 중이다. 명태 알이나 난소는 곤(鯤)이라고 하는데, 이건 장자에서 북해의 명(溟)이라는 곳에 사는 몇 천리나 되는 사이즈의 물고기다. 그러던 명태가 언제 졸짱붕알로 쪼그라 들었는지 모르지만, '애'(간) 주고 '이리'(수컷의 정소) 주고 다 내놓으니 그 육보시 정신만은 통째 하염엾는 바다이다.  
명태 구워먹으니 겨울 가고 봄이 왔다...

밤 미시령

고형렬 시집|창비|129쪽|


 

산 돌을 밟으며 나는 상상할 수 있다, 이것이 화산이었다는 것을
이 돌들이 심장을 단숨에 연소시킨 불이었다는 것을
나무들은 그럼 어디서 왔는가 나는 모르지
그것이 설악의 화두다 알 길 없는
이 물음을 찾아 나는 설악의 돌을 밟고 걷는다


(시 ‘하늘에 떠 있는 수많은 돌’ 부분)


강원도 속초 출신인 고형렬<사진> 시인은 설악산에서 화강암 지대의 돌길을 걸으며 명상에 빠진다. 돌의 침묵 속에서 아주 오래된 어떤 소리를 들으려 하지만 쉽지 않다. 그 돌들은 아주 오래전 엄청난 불바다 속에서 ‘입이 불에 데어 말할 수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시인의 발걸음에 닿는 돌의 존재 그 자체가 마치 타오르는 불처럼 시인의 심장 속에서 뜨거운 비밀을 일깨운다. 불바다가 휩쓰고 간 뒤에 남은 돌은 비록 말을 못하지만, 세월의 풍화를 견디면서 마치 물음표와 같은 기호이거나, 말하는 혀를 연상케한다. 그 형상에서 시인은 정물이면서도 죽은 사물이 아닌 생명체로서 돌의 새 이미지를 빚어내 한 편의 시를 완성한다.

뼈의 나뭇가지들 아래 뒹구는 불타버린 이빨, 등골 자국들


널려있는 설악의 세계, 검은 화강암이 된
죽음의 길바닥을 만든, 울퉁불퉁한 혀들을 밟는다

나는 캄캄한 밤하늘로 올라가 돌아오지 않는 빛의 영혼들을 본다
머리를 들어, 아 하늘 속에 떠 있는 수많은 돌들을 쳐다본다

 

예로부터 인간은 죽은 영혼이 밤하늘의 별이 될 거라고 믿어왔다. 그런데 시인은 그 별들이 하늘에 떠있는 돌 덩어리라고 본다.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는 우주는 무수한 돌들이 깔려있는 산길과 같은 것이 된다. 시인은 설악산의 돌길에서 우주의 별밭을 감지한다. 그는 하나의 돌에 귀를 기울여 오랜 시간 여행 끝에 지구에 당도한 어느 별의 음악 소리를 듣는다. 

 

▲ 
고형렬 시인은 작은 생명의 숨결에서 거대한 창조의 손길을 느끼거나, 먼 별의 흔들림에서 깊은 내면의 떨림을 감지한다. 그는 여치를 들여다보면서

하느님이 처음 만들 때 눈빛과
손길이 보인다


고 하고,

저녁별 보고 있으면 나뭇잎들만 눈꺼풀에서 출렁여요
내 가슴속에서 나뭇잎 하나 흔들려요


라고 노래한다. 실제로 고형렬 시인은 여치처럼 연약한 눈웃음을 짓고, 나뭇잎처럼 얇은 음성으로 말한다. 설악과 동해로 표상되는 고향 강원도를 떠나 오랫동안 서울에서 일상을 영위하고 있는 시인은 고향의 명태를 시의 자양분으로 삼는다. 이를테면, 속초에서 설을 쇤 뒤 미시령에서 시인은 건태를 불에 구워 아들과 나눠 먹는다. 마치 그의 아버지가 어린날의 시인과 그러했듯이.


명태들이 삭은 이빨로 떠나는 새달, 그렇게 머리를 두드려 구워먹고 초록의 동북 바다로 겨울을 보내주면, 양력 2월 중순에 정월 대보름은 달려왔고 우리 부자는 친구처럼 건태를 구워 먹고 봄을 맞았다 남은 건 내 몸밖에 없으나 2월은 그렇게 왔다 가서 이 시만 이렇게 남았다


(시 ‘명태여, 이 시만 남았다’ 부분)***

 

/// 박해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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