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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는 말을 넘어서 상징과 음악성속에 존재한다...
2016년 11월 07일 21시 59분  조회:5419  추천:0  작성자: 죽림

<언어의 미로 속에서, 나이 여든의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 인터뷰>

 

 

보르르헤스의 말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시인

 

 

1899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났다. 생전 그는『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열기』『심문』『정면의 달』등의 시집,『불한당들의 세계사』『픽션들』『알레프』등의 소설집, 『영원의 역사』 등의 에세이집을 발표했다.

 

이 작품들은 세계의 주요 언어로 번역되었다. 그의 단편소설은 종종 박식한 에세이처럼 읽히고 에세이는 시처럼, 시는 짧은 이야기처럼 읽힌다. 보르헤스는 시와 산문의 구분이 무의미하다고 주장, 몇몇 시집에 산문을 포함하기도 했다. 실제와 상상이 뒤섞인 그의 작품들은 문학 / 철학사에 혜안을 제공했고 자크 데리다, 미셸 푸코, 움베르토 에코 등 걸출한 옹호자들을 낳았다.

 

1937년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립도서관에서 사서 경력을 시작했으나 페론을 비판하여 해고당했고, 페론정권이 무너진 뒤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 관장으로 취임했다. 1955년부터 조금씩 시력을 잃었는데, 그해는 앵글로 색슨어와 고대 노르드어를 공부하기 시작한 해로 이러한 정황들이 작품에, 특히 시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1961년에 국제출판인협회가 수여하는 포멘터(Formentor)상을 사뮈엘 베케트와 공동 수상했고,1971년에는 예루살렘상을, 1980년에는 스페인 국왕이 직접 수여하는 세르반테스상을 수상했다. 영국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기도 했는데, 이로써 가장 친한 친구이자 존경하는 기사인 알론소 키하노와 동지가 되었다. 컬럼비아대학교, 옥스퍼드대학교, 파리대학교로부터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6년 6월, 여든여섯에 스위스 제네바에서 사망했다.

 

 

 

윌리스 반스톤(Willis Barnstone) 인디아나 대학 교수 

'보르헤스의 말'을 엮은이. 인디아나대학교 비교문학 교수이자 시인, 철학자. 미국 구겐하임재단 연구원을 지냈으며, 저서로 숨겨진 성서』『하느님의 시The Poems of Jesus Christ』 등이 있다. 말년의 보르헤스와 많은 시간을 함께하며 문학, 철학,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창렬 번역자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옮긴 책으로 『축복받은 집』『저지대』 『엄마가 날 죽였고, 아빠가 날 먹었네.』『토미노커』『이곳이 아니라면 어디라도』『제3의 바이러스』『암스테르담』『촘스키』『벡터』『쇼잉 오프』 『마틴과 존』 『구원』 등이 있다.

 

 

책 소개

 

 

“보르헤스의 생각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는 게 우리에게는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작가 보르헤스가 말년에 나눈 대화를 묶은 책이다. 애초 이 책을 소개할 수 있을까 걱정하기 시작했는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과연 이 책을 소개해도 되는 걸까 싶은 의구심에 사로잡혀 여전히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의 작품이 “미로와 수수께끼로 가득하고, 심지어 짓궃은 속임수도 있다”는 평을 듣듯, 그가 “이 세상의 많은 것들에 늘 당황하고 깜짝 놀”라듯, 그의 말을 읽고 듣는 독자도 마땅한 출구를 찾지 못해 당황하기 십상이다. “보르헤스를 읽는다는 것은 모든 방향으로 뚫려 있는 정신을 만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문학평론가 황현산의 설명을 들으면, 내가 느낀 의구심과 독자가 마주할 당황스러운 상황이 조금은 이해가 되지만, 피식 웃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내가 왜 그러는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을 달갑게 여길 이는 많지 않을 게다. 보르헤스의 마법(이렇게밖에 표현하지 못하겠다.)은 여기에서 시작되는데, 골치 아프고 멀미가 나야 할 상황인데도 다음 이야기가 계속 궁금하고 이전 이야기가 쉼 없이 떠오른다. 이렇게 소개하는 게 (만약 그런 게 있다면) 이 책의 핵심에 가 닿았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지만, 어쩐지 보르헤스라는 구체적인 사람을 알게 되었다는 느낌이 든다면, 나만의 착각 혹은 얼치기 독자의 거짓말일까.

 

 

아르헨티나의 시인이자 소설가, 평론가로 세계 문학사와 지성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노년의 목소리를 담은 기록으로 1976년과 1980년에 한 인터뷰 열한 개를 모은 책이다. 시력을 잃어가던 시기에 대한 담담한 회고뿐 아니라 말년에 이른 보르헤스의 문학, 창작, 죽음에 대한 견해까지 담고 있다.

 

그는 인터뷰마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조지프 러디어드 키플링, 에드거 앨런 포, 월트 휘트먼,에밀리 디킨슨에 대한 애정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그러면서 유아론과 영지주의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는데, 이 과정에서 보르헤스는 자신의 말이 하나의 주장으로 굳어질까 염려하여 ‘오늘은 그래요’ 라는 식으로 대화를 마무리 짓곤 했다.

 

“아, 그럴지도 몰라요. 오늘은 영지주의자, 내일은 불가지론자이면 어때요? 다 똑같은 거예요.” 이런 식의 불분명한 태도는 그의 작품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모호성, 사실과 허구 사이의 틈새라는 우주적 수수께끼를 연상시킨다.

 

 

목차 ; 서문 / 후기 / 옮긴이의 말 / 보르헤스 작품 목록 / 찾아보기

 

비밀의 섬 / 내가 잠에서 깰 때 / 그건 여름날의 더딘 땅거미처럼 왔어요 / 나는 그저 타고난 대로의 나를 나타내지요 / 군중은 환상 / 그러나 나는 꿈을 더 선호해요 /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기다리고 있어요 / 시간은 본질적인 수수께끼 / 나는 늘 낙원을 도서관으로 생각했어요 / 악몽, 꿈의 호랑이 / 나는 항상 거울을 두려워했어요

 

 

책속으로

 

우리는 승리를 얻을 수도 있고 재앙을 겪을 수도 있지만, 그 두 가지 허깨비를 똑같이 취급해야 해요. -104쪽

책은 상상력의 연장이고 기억의 연장이에요. 책은 아마도 우리가 과거에 대해 알고 있는 유일한 것일 거예요. -122쪽

우리에게 금지된 것은 없어요. 그걸 하는 것은, 적어도 시도해보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답니다. -155쪽

작가는 순수한 자세로 써야 해요.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생각하지 않아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자기가 하고 있는 게 자신의 시가 아닌 거예요. -170쪽

난 미학이라는 게 없어요. 나는 단지 시와 이야기를 ‘쓸 수 있을 뿐’이에요. -181쪽

시는 말을 넘어서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말은 단지 상징일 뿐이니까요. 시는 말의 음악성 속에 존재하는 거예요. -183쪽

궁극적으로 우정이 사랑보다 중요할 거예요. 어쩌면 사랑의 진정한 기능은, 사랑의 의무는 우정이 되는 것인지도 모르죠. 그렇지 않으면 사랑은 도중에 끝나버릴 테니까요. -186쪽

난 의무적인 독서는 잘못된 거라고 생각해요. 의무적인 독서보다는 차라리 의무적인 사랑이나 의무적인 행복에 대해 얘기하는 게 나을 거예요. 우리는 즐거움을 위해 책을 읽어야 해요. -212쪽

나는 시를 매우 사적이고 중요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답니다. 물론 그걸 느낄 수도 있고 못 느낄 수도 있죠. 만약 느낀다면, 그걸 설명할 필요는 없어요. -274쪽

나는 이 문제를 풀기 위해 계속 노력할 거예요. 나의 모든 시도가 쓸데없으리란 것을 알지만, 기쁨은 해답이 아니라 수수께끼에 있으니까요. -303쪽

 

 

서평

 

눈먼 보르헤스에게 말은 유일한 소통 방식

말하기는 글쓰기 못지않게 내밀한 언어 형식

 

1980년에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여든의 나이로 대담을 위해 뉴욕, 시카고, 보스턴을 여행했다.수많은 청중들 앞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군중이라는 것은 환상이에요.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아요. 나는 여러분에게 개인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거예요.” 당시 눈이 먼 보르헤스에게 ‘말’은 유일한 소통 방식이었다.

 

그에게 말하기는 글쓰기 못지않게 내밀한 언어 형식이자 세상과의 통로로 자리하고 있었다. 이를 본 시인이자 철학자 윌리스 반스톤은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예전의 사상가와 철학자들은 생각이움직이는 것이어서 파도 위의 잉크와 마찬가지로 고정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에게 남겨진 현자들의 기록은 대부분 그 시대에 우연히 그들의 말을 받아 적고 기록하게 된 익명의 사람들에게서 나온 것이다.” 실제로 반스톤은 보르헤스와 나눈 대화에서 여전히 반짝이는 사유와 정신을 발견했고, 이를 하나의 작품처럼 남겨두고자 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의 말을 받아 적던 플라톤을 자처하며 직접『보르헤스의 말』을 엮었다.

 

그의 말마따나 “보르헤스의 생각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는 게 우리에게는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보르헤스의 말』은 그가 1976년과 1980년에 한 인터뷰 열한 개를 모은 책이다. 시력을 잃어가던

시기에 대한 담담한 회고뿐 아니라 말년에 이른 보르헤스의 문학, 창작, 죽음에 대한 견해까지 담고

있다. 그는 인터뷰마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조지프 러디어드 키플링, 에드거 앨런 포, 월트 휘트먼, 에밀리 디킨슨에 대한 애정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그러면서 유아론과 영지주의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는데, 이 과정에서 보르헤스는 자신의 말이 하나의 주장으로 굳어질까 염려하여 ‘오늘은 그래요’ 라는 식으로 대화를 마무리 짓곤 했다.

 

“아, 그럴지도 몰라요. 오늘은 영지주의자, 내일은 불가지론자이면 어때요? 다 똑같은 거예요.” 이런 식의 불분명한 태도는 그의 작품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모호성, 사실과 허구 사이의 틈새라는 우주적 수수께끼를 연상시킨다.

 

 

세계 시민적인 사고와 개방성

언어를 통해 아름다움을 모색한 보르헤스

 

보르헤스는 1899년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났다. 그는 영국 출신 할머니와 가정교사의 영향으로 모국어인 스페인어보다 영어를 먼저 배웠다. 이러한 유년기는 그에게 언어에 대한 개방성과 세계 시민적인 사고를 갖게 하는 바탕이 되었다.

 

나는 두 할머니 중 한 분과 얘기할 땐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말해야 하고, 다른 분과 얘기할 땐 또 다른 방식으로 말해야 한다는 걸 알았어요. 그 두 가지 방식을 스페인어와 영어라고 부른다는 걸 알게 되었죠. 그건 자연스러운 것이었어요. -244쪽

 

보르헤스는 고대영어, 라틴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도 꾸준히 공부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언어 간의 유의미한 차이뿐 아니라 개별적인 음악성에도 심취했다.

 

앵글로색슨인들은 로마(Rome)를 로마버그(Romaburgh)라고 불렀어요. 우린 그 두 단어에 흠뻑 빠졌지요. 그리고 『앵글로색슨 연대기』에서 아름다운 문장을 발견했어요. “줄리어스 시저는 브리튼섬을 찾은 최초의 로마인이었다.”라는 문장이었어요. 그런데 그 문장을 고대영어로 읽으면 더 멋진울림이 있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페루라는 거리를 달리며 소리쳤어요. “이울리우스 세카세르…….”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봤지만 우린 개의치 않았어요. 아름다움을 발견했으니까요! -197쪽

 

보르헤스는 언어를 통해 아름다움을 발견하고자 했다. 여기서 그가 쏟은 노력은 자신이 쓴 작품들의근원을 찾으려는 노력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보르헤스는 언어를 통해 예술을 탐구했던 학자이고,자신을 그대로 반영한 작품들을 꾸준히 써낸 작가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말년에 얻은 언어학적,문학적 통찰은 아이러니였다. 좌절 속에서도 지켜야 할, 생의 의지였다.

 

반스톤 / 당신은 마음 상태나 감정이나 지성에 관한 한 단어를 찾고 있나요? 당신이 이 세상을 뜨기

전에? 만약을 가정해서 드리는 질문이에요? 찾고자 하는 건 무엇인가요?

 

보르헤스 / 참 단어를 발견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걸 찾지 않는 거예요. 우리는 현재의 순간을 살아야 해요. 그러면 나중에 그 단어들이 우리에게 주어질 수도 있어요. 안 주어질 수도 있고요. 우리는시행착오를 통해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해요. 우리는 실수를 저질러야 하고, 실수를 이겨내야 합니다. 그건 평생 해야 하는 일이지요. -188쪽

 

 

“기쁨은 해답이 아니라 수수께끼에 있으니까요” 죽음을 앞둔 문학가가 남긴 질문들과 답

 

『보르헤스의 말』은 눈멀고 나이든 문학가가 죽음을 앞두고 어떤 심정이었는지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나는 몸과 영혼, 모두 완전히 죽고 싶어요. 그리고 잊히고 싶어요. -92쪽

 

고통스럽게 삶을 유지해온 보르헤스에게 죽음은 “희망이 가득한 것”이었다. 그는 삶을 악몽처럼

견뎌왔기에 죽음을 매 순간 도래하는 어떤 것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난 사람이 늘 죽는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단순히 뭔가를 기계적으로 반복하고 있을 때 우리는 뭔가를 느끼지 않고 뭔가를 발견하지 않아요. 그 순간 우리는 죽은 것이에요. 물론 삶은 어느 순간에나돌아올 수 있어요. -38쪽

 

인터뷰 속에서 보르헤스는 수없이 자살을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의 말마따나 삶도 죽음처럼 매 순간 돌아오는 것이었기에, 그는 자신에게 남아 있는 삶을 긍정할 수밖에 없었다. 후 보르헤스는 글쓰기가 아닌 말하기를 통해 언어를, 아름다움을 탐구해나갔다. 말은 시력을 잃은 그에게 불가피한 선택이었지만 새로운 돌파구로써 작용하기도 했다.

 

직접적이고 내밀한 소통 방식이라는 점에서 글과 비슷하되 전혀 다른 매체였기에, 그가 삶을 대하는태도마저도 바꾸어놓았다. 그러므로 『보르헤스의 말』은 20세기 사상계에 큰 영향을 끼친 대기가남긴, 독특하면서도 유일한 형식의 ‘작품’일지 모른다.

 

나는 이 문제를 풀기 위해 계속 노력할 거예요. 나의 모든 시도가 쓸데없으리란 것을 알지만,

기쁨은 해답이 아니라 수수께끼에 있으니까요. -303쪽

.

 

.

황현산 문학평론가

 

보르헤스를 읽는다는 것은 모든 방향으로 뚫려 있는 정신을 만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보르헤스 본인은 정신이 늘 메말라 있었다고 말한다. 뚫려 있는 길의 끝까지 갔다는 말이 되겠다. 대화록인 이 책에서 그는 그 뚫린 길을 어떻게 만났고, 또 그 길에서 무엇을 만나고 무엇을 만들었는지 가볍고도 명석한 언어로 말한다.

 

그가 시력을 잃고 모든 글을 구술해서 쓰던 시절에 이루어진 이 대화는 구어가 문어의 논리성을 확보하고 문어가 구어의 구체성을 다시 회복하는 신기한 문체의 한 기적을 보여준다. 어느 페이지를 열어도 재미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면 더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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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과 후기구조주의 철학의 시조로 추앙되는
남미문학의 거장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JorgeLuis Borges.1899∼1986).

그는 생의 후반을 암흑 속에서 보내며 어둠을 질료로 환상의 세계를 구축한 20세기의 거장이었다. 그는 1955년 그토록 바라던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장에 임명됐을 때 서서히 약화되던 시력마저 완전 히 상실하고말았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고 「신은 빛을 여읜 눈 을/이 장서도시의주인으로 만들었다」며 「책과 밤을 동시에 주신/신의 경이로운 아이러니」를 시로 읊었다. 어린시절부터 과도하게 책을 본데 다 유전적인 이유까지 겹쳐생의 후반 30여년을 어둠 속에서 살아야 했던 그는 눈으로 볼 수 있는 세계를 잃은 대신 오히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지워버린 금세기 세계문학의 독특한 금자탑을 쌓은 것이다.
마르케스나 에코,푸코,데리다 같은 이들의 정신적 스승으로 추앙됐던 보르헤스는 90년대 들어 국내에서도 열광적인 신도들을 거느리며 「보르헤스붐」을 조성하기에 이르렀다. 
. 1935년 단편 「불한당 들의 세계사」를 발표하면서 소설가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그의 단편 「픽 션들」과 「알레프」는 유럽과 미국의 문학과 비평계에 커다란 영향을 끼 쳤다. 「픽션들」 속에 삽입된 「바벨의 도서관」「바빌로니아의 복권」 은 소설의 죽음을 외치는 금세기말의 문학세계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한 대표적 작품들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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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 내 삶은 실수의 백과사전이었어요. 실수의 박물관이었지요.

반스톤 : 프로스트의 시구를 빌려서 물어볼게요. 숲 속에 난 길 중에서 우린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하나요? 살면서 당신이 잘못된 길을 선택했을 때, 그 결과로 나타난 재앙이나 행운에 대해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보르헤스 : 내가 쓴 잘못된 책들을 말하는 거예요?

반스톤 : 네. 그리고 당신이 사랑했던 잘못된 인연, 당신이 보낸 잘못된 나날에 대해서도.

보르헤스 : 알겠어요. 하지만 그것들에 대해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 잘못된 인연, 잘못된 행동, 잘못된 환경과 같은 그 모든 것들이 시인에게는 도구랍니다. 시인은 그 모든 것을 자신에게 주어진 것으로 생각해야 해요. 불행조차도 말이예요. 불행, 패배, 굴욕, 실패, 이런 게 다 우리의 도구인 것이죠. 행복할 때는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요. 행복은 그 자체가 목표이니까요. 그러나 우리에겐 실수가 주어지고 악몽이 주어지죠. 거의 밤마다 말이예요. 우리의 과제는 그것들을 시로 녹여내는 겁니다. 만약 내가 진정한 시인이라면 나는 내 인생의 모든 순간이 시적이라고 느낄 것이며, 주무르고 빚어서 형상을 만들어내야 하는 일종의 점토라고 느낄 거예요. 그러니 내 실수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군요. 매우 복잡한 인과관계의 사슬에 의해서,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끝이 없는 결과와 원인 - 원인에서 시작되지 않을 수도 있어요 - 의 사슬에 의해서 그런 실수들이 나에게 주어졌어요. 내가 그것들을 시로 바꿀 수 있도록 말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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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의 말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윌리스 반스톤
출판
마음산책
발매
2015.08.25.

 

 

내가 보르헤스의 작품을 읽지 못했던 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 어마어마한 깊이의 지성을 받아들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보르헤스를 본격적으로 만나보기 전 이 책을 먼저 집어 들었다.

보르헤스가 1976년과 1980년에 한 인터뷰 11개를 모은 이 책을 통해서 문학과 언어, 독서 등에 관한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이제는 보르헤스의 작품을 읽어볼 용기가 조금은 생겼다.

 

여러 인터뷰 내용 중에서도 특히 내 눈을 잡아끈 것은 악몽의 독특한 맛과 문학적 유용성이었는데, 이것이 보르헤스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을 될 것 같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에드거 앨런 포, 월트 휘트먼에 대한 개인적 관심 혹은 호기심이 커진 것도 이 책을 통해 얻은 즐거움 중 하나다.  

 

 

<손글 밑줄1-19세기 작가 보르헤스>

나는 나 자신을 현대 작가라고 생각하지 않아요난 19세기 작가예요나의 새로움은 19세기의 새로움이지요나 자신을 초현실주의나 다다이즘이미지즘또 다른 존경받는 바보 같은 문예사조들과 시대를 함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그렇지 않나요나는 문학을 19세기와 20세기 초반의 관점에서 생각해요버나드 쇼헨리 제임스의 애독자거든요. (84)

<손글 밑줄2-실수에 대하여>

잘못된 인연잘못된 행동잘못된 환경과 같은 그 모든 것들이 시인에게는 도구랍니다시인은 그 모든 것을 자신에게 주어진 것으로 생각해야 해요불행조차도 말이에요불행패배굴욕실패이런 게 다 우리의 도구인 것이죠행복할 때는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요행복은 그 자체가 목표이니까요그러나 우리에겐 실수가 주어지고 악몽이 주어지죠거의 밤마다 말이에요.우리의 과제는 그것들을 시로 녹여내는 겁니다만약 내가 진정한 시인이라면 나는 내 인생의 모든 순간이 시적이라고 느낄 것이며,주무르고 빚어서 형상을 만들어내야 하는 일종의 점토라고 느낄 거예요그러니 내 실수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군요매우 복잡한 인과관계의 사슬에 의해서좀 더 정확히 말하면 끝이 없는 결과와 원인-원인에서 시작되지 않을 수도 있어요-의 사슬에 의해서 그런 실수들이 나에게 주어졌어요내가 그것들을 시로 바꿀 수 있도록 말이에요. (23쪽)

 

<손글 밑줄3-악몽의 맛>

우리가 불행한 감정에 빠지는 경우는 아주 흔해요그러나 불행의 감정은 악몽의 느낌섬뜩하고 괴기한 느낌이 아니에요이런 느낌은 악몽 자체에 의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에요악몽에는 특유한 공포가 있어요악몽에는꿈의 호랑이에는 말이에요그것은 깨어 있을 때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아무 관계가 없답니다그 공포는 지옥의 맛보기일지도 몰라요나는 물론 지옥을 믿지 않아요하지만 악몽에는 매우 이상한 게 있는데그걸 알아차린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 같아요나는 꿈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지요.해블록 엘리스의 책을 예로 들 수 있겠군요하지만 그런 책들 어디에서도 악몽의 섬뜩하고 매우 이상한 맛에 대한 언급은 찾지 못했어요그렇지만 분명 그런 게 있고우리가 아는 한 그건 선물일 수 있어요나는 악몽에서 소설의 플롯을 얻곤 했지요난 악몽을 아주 잘 알아요그걸 자주 꾸는데늘 똑같은 패턴을 따르죠미로의 악몽을 꾸곤 한답니다. (283)

 

<손글 밑줄4-과거라는 보석>

우리의 손은 긴 시간 뒤에 만났어요그렇게 더없이 좋은 일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온 과거가 필요했다는 걸 나는 깨달았어요어떤 일이 일어날 때그 일은 심오하고 불가해한 과거에 의해 형성되어온 거예요인과관계의 사슬에 의해서 말이에요물론 제1원인이라는 것은 없어요모든 원인은 또 다른 것의 결과예요모든 것들은 가지를 쳐서 무한히 뻗어나가지요이건 추상적인 생각일 수 있어요하지만 이게 진실이라고 느꼈어요(117)

<손글 밑줄5-bilingual에 대한 이해> 

리드아버지는 당신과 얘기할 때 전혀 스페인어를 쓰지 않았나요?

보르헤스아니요썼죠물론 아버지는 영어와 스페인어를 모두 사용하셨어요그러나 나는 두 할머니 중 한 분과 얘기할 땐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말해야 하고다른 분과 얘기할 땐 또 다른 방식으로 말해야 한다는 걸 알았어요그 두 가지 방식을 스페인어와 영어라고 부른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되었죠그건 자연스러운 것이었어요.

리드당신은 그걸 서로 다른 말하기 방식으로 생각했을 뿐이군요.

보르헤스서로 다른 두 사람에 대한 서로 다른 말하기 방식이요.

리드그러니까 그 언어들은 자체적인 성질과 관련이 있는 것 이상으로 사람과 관련이 있다는 말씀이네요.

보르헤스아이는 자신이 무슨 언어로 말하고 있는지 알지 못해요당신이 아이에게 넌 중국어로 말하고 있어라고 하면 아이는 당신 말을 믿어요.

리드아이는 알 필요가 없으니까요.

보르헤스그래요아이에게는 어떤 상황이 주어질 뿐이죠. (244~245)

 

<손글 밑줄6-즐거운 책읽기>

아이들은 그저 즐거워서 책을 읽는 거랍니다내가 허용하는 유일한 책 읽기 방식이 그거예요책 읽기를 행복의 한 형태로기쁨의 한 형태로 생각해야 하는 거예요난 의무적인 독서는 잘못된 거라고 생각해요의무적인 독서보다는 차라리 의무적인 사랑이나 의무적인 행복에 대해 얘기하는 게 나을 거예요우리는 즐거움을 위해 책을 읽어야 해요나는 약 20년 동안 영문학을 가르쳤는데늘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책이 지루하면 내려놓으세요그건 당신을 위해 쓰인 책이 아니니까요하지만 읽고 있는 책에 빠져드는 걸 느낀다면 계속 읽으세요.” 의무적인 독서는 미신 같은 거예요. (211~212)

 

[출처] 보르헤스의 말 2|작성자 티르따 야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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