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11월 2024 >>
     12
3456789
10111213141516
17181920212223
24252627282930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詩人 대학교

시는 발효와 숙성의 간고하고 처절한 시간과의 결과물이여야...
2017년 02월 21일 00시 42분  조회:2765  추천:0  작성자: 죽림

 빈둥거리고 어슬렁거리고 게을러져라

 

 

발효와 숙성 -

 

젊은 이형기 시인이 대선배 조지훈에게 어떻게 하면 시를 잘 쓸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것은 그저 방치해둘 수밖에 없는 일이오라고 말했다 한다시를 방치하는 일그게 시를 잘 쓸 수 있는 길이라니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그러나 오해하지 마라좋은 시를 쓰기 위해 무조건 한가하고 낭만적인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빈둥거리며 노는 시간을 발효와 숙성의 시간이라고 부르고 싶다만약에 당신이 맛있는 술을 마시고 싶거든 술이 제대로 익기를 기다려라좋은 술일수록 절대로 혼자 병마개를 따고 홀짝이며 마셔서는 안 된다함께 마실 친구가 저녁 어스름에 당신을 찾아올 때가지 기다려라.

 

나는 어슬렁거리며 걷는 시간을 좋아한다어슬렁거려야 미세한 데 눈길을 줄 수 있고 세상의 뒤편을 응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시를 공부하는 학생에게 나는 특별한 이유 없이 되도록 많이 걸을 것을 주문한다한적한 오솔길이나 들길이 아니더라도 좋다모든 길은 세상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훌륭한 통로그러나 시가 오지 않으면 아등바등 시를 찾아 나서지 마라그냥 놀아라시를 써서 무슨 이름을 얻겠다는 허영심을 버리고 시가 실패할지 모른다고 초조해하지도 마라.

 

 

쓰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시간 -

 

 

시를 쓰다가 슬럼프에 빠지면 어떻게 해결하나 물어보지 마라시를 한 편 한 편 쓸 때마다 슬럼프인 것이니 정말 시를 쓰고 싶거든 슬픔마저 사랑하고 즐길 도리밖에 없다.

 

시를 다시 쓰면서부터는 신문을 끊었고 티브이를 거의 끊었고 외출을 거의 끊었다내가 문밖으로 나오는 것은 아침저녁 아파트 옆 구릉 위로 난 산책로를 걷는 때로 한정되어 있었다그 길을 걸으면서 시를 생각하고 머릿속에다 집을 짓듯 시를 짓고 지는 시를 외우며 돌아와서는 외워온 시를 입력하고 한 밤중에도 일어나 앉아 시를 고쳐 쓰곤 했다.

 

이렇게 말하는 위선환 시인은 30년간 시를 끊었다가 근래에 빛나는 시를 생산해내고 있는 분이다.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김종삼, <묵화전문

 

비록 여섯 줄밖에 안 되는 짧은 시이지만 행간과 행간 사이에 여백은 무한하고 시행은 끝났지만 마지막 쉼표는 소와 할머니의 상처와 그 둘 사이의 적막이 오래 지속되리라는 것을 암시한다.

이러한 적막을 사랑하라적막에 사로잡힌 적막의 포로가 되라. 적막 속에서 빈둥거리다보면 문득 소란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그렇다고 세상의 소란 속으로 단번에 뛰어 들지 말고 가능하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라그러다보면 시를 쓰지 않고는 못 배길 시간이 찾아올지 모른다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을 알면서도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사람이 시인이다.

 

 

감정을 쏟아 붓지 말고 감정을 묘사하라

 

함축인가비유인가 -

 

교과서에서 시를 이렇게 정의한다시는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함축적이고 운율적인 언어로 표현한 글이라고. ‘함축과 운율은 시의 형식적 특성을 나타내는 용어임에 틀림없다.

시에서의 함축은 긴 내용을 줄여 말하기가 아니라 비유해서 말하기이다시의 함축은 감추어 말하기에 가깝다독자의 입장에서 함축의 의미는 시인의 말을 듣는 게 아니라 시인의 마음을 읽는 것이다즉 함축이란 겉으로 드러난 언어의 뜻을 좇는 게 아니라 언어가 내포한 속뜻과 암시하는 바를 살피는 일이라 할 수 있다행간을 읽으라는 말이다시의 함축성보다는 오히려 시가 비유적 표현을 뚜렷이 할 필요가 있다긴 이야기를 짧게 말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비유적인 표현의 사용이 시의 특성에 가깝다는 말이다라고 이남호는 강조한다매우 정확하고 적절한 의견이다.

 

 

고백 · 감상 · 현학 -

 

감정을 드러내고 쏟아 붓는 일은 시작법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이다슬프다 기쁘다 보고 싶다 아름답다거나 하는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을 우리는 고백이나 넋두리’ 혹은 하소연이라 부른다그런 것은 시의 일부분이 될 수는 있어도 시의 모든 것은 아니다.

 

시가 고백적 양식이라 믿는 사람들이 범하기 쉬운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 과장이다제발 그리운 척하지 마라혼자서 외로운 척하지 마라당신만 아름다운 것을 다 본 척 하지 마라그런 것들은 우습다.

두 번째감상(感傷)이다세상의 모든 슬픔을 혼자 짊어진 척하지 마라아프지도 않은데 아픈 척하지 마라질질 짜지 마라그런 것들은 역겹다.

세 번째현학이다무엇이든 다 아는 척유식한 척하지 마라시에다 제발 각주를 좀 달지 마라그런 것들은 느끼하다.

시는 감정의 배설물이 아니라 감정의 정화조다. 속에서 터져 나오려는 감정을 억누르고 여과시키는 일이 바로 시인의 몫이다.

 

 

묘사의 힘 -

 

내가 내 감정을 말하지 않아도 사물이 대신 이야기 해준다.” 고 말한 이는 연암이다그렇다면 시인은 감정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물이 하는 이야기를 받아 적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이 때 시인의 받아 적기는 언어를 통해 이루어지고 감정을 언어화 하는 과정을 묘사라고 한다묘사란 감정을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언어로 그려내는 것이다시인이 묘사한 언어를 보고 독자는 머릿속에 어떤 그림을 그리게 되고 그 그림을 이미지라고 한다.

 

달개비 떼 앞에 쭈그리고 앉아

꽃 한 하나를 들여다본다

이 세상 어느 코끼리 이보다도 하얗고

이쁘게 끝이 살짝 말린 수술

둘이 상아처럼 뻗쳐 있다.

 

황동규, <풍장58> 부분

 

혹시 들길을 걷다가 당신은 달개비 꽃잎 속에 코끼리 한 마리가 들어 앉아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식물을 자세히 들여다봐야 하고 귀에 들리는 새소리를 언어의 그림으로 그릴 준비를 해야 한다.

 

어떤 시가 언어예술로서의 기본적인 꼴을 갖추었는가의 여부는 묘사의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사물에 대한 묘사능력으로 시의 품격을 판단할 수 있다는 말이다묘사는 시를 습작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오랜 시간을 들여 공부해야 하는 필수과목이다시인은 세상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자가 아니라 세상을 세밀하게 그리는 자이기 때문이다시인은 자기가 말하고 싶은 것을 최대한 정확하고 절실하게 언어로 그릴 책임이 있다내 마음 속에 있는 감정을 그대로 까발려 드러내면 시가 추해 진다내 마음을 최대한 정성들여 그려서 보여주기그게 바로 시다.

 

산등에 붙은 오막살이 까치둥지 같다

그래도 울타리에는 가지마다 봄꽃이 곱다

집이 너무 헐어서 바람도 딱하게 여기나 보다

꽃이파리 휘몰아다가 낡은 지붕을 깁는다

 

조선 후기 한욱의 한시

 

서정시에서 자아가 대상에 스미는 것을 동화’ 혹은 감정이입이라 하고대상한테 자아를 맡기고 비춰보는 것을 의탁’ ‘투사’ 혹은 투영이라 한다주체와 객체의 동일시라는 전통적인 서정시의 문법이 여기서 발생한다이 시에서 1, 2연은 자아가 풍경에 동화되는 순간을 제시한다. 3, 4연은 자아의 감정을 바람에 의탁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산등성이 오막살이집의 낡은 지붕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화자의 심정을 바람이라는 자연현상에 투사하고 있는 것이다애처롭고 딱한 감정을 단순 토로하는 게 아니라 꽃잎이 낡은 지붕을 덮는 객관화된 풍경과 동일시하는 이 기법은 묘사가 아니면 불가능하다묘사는 무엇보다도 구체적 형상화에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다시에서 구체성은 감동의 원천이고 삶의 생생한 근거이기 때문이다.

 

시에서 묘사에 충실해야 하는 이유는 대상의 현상을 생생하게 그리기위해서만 아니라 대상의 본질에 이르는 관문이기 때문이다묘사는 시의 화자인 를 객관화하는 데 기여하는 형상화 방식이므로 묘사를 통해서 대상과 시적 화자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게 된다시로써 말할 수 있는 게 많은가처음부터 끝까지 묘사 한 줄 없이 뱃속에 든 것을 줄줄이 쏟아 놓기만 하는 시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570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410 오늘의 시는 하나의 시적 세계어의 성립을 지향해야.. 2017-04-18 0 1889
409 시가 려과없이 씌여지면 시가 산만해지고 긴장감을 잃는다... 2017-04-18 0 1829
408 불쌍한 시들을 위하여 시인들은 장인정신을 갖추어야... 2017-04-18 0 2134
407 시는 쉬지않고 살아서 움직이는 생명체여야... 2017-04-18 0 2025
406 시는 소박하고 꾸밈없는 필치로 속이 꽉차게 써야... 2017-04-18 0 2236
405 시는 삶의 희노애락이 얼룩진 보물상자에서 나온다... 2017-04-18 0 2371
404 시는 상투적인 설명에 그치지 말아야... 2017-04-18 0 2403
403 시인들이 착하게 사는지 별들이 오늘도 많이 떨어지고... 2017-04-18 0 2092
402 초현실주의는 문학예술운동을 넘어선 삶의 한 방식이다... 2017-04-11 0 3660
401 [작문써클선생님들께] - 영화를 본후 시쓰기... 2017-04-10 0 2797
400 단시 모음 2017-04-10 0 3053
399 시는 온몸으로 온몸을 다해 밀고 가는것이다... 2017-04-10 0 2111
398 장 콕토는 시인이자 화가이자 영화감독이였다... 2017-04-10 0 2927
397 "...뼛가루 한점이라도 원쑤의 땅에 남길수 없다"... 2017-04-09 0 3380
396 "부끄럼 없는 인생"과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 2017-04-08 0 2346
395 시는 압축과 생략의 문학이다... 2017-04-08 0 2713
394 시작은 조탁(彫琢)과 사랑이다... 2017-04-08 0 2509
393 윤동주의 무기는 "시"였다... 2017-04-06 0 2325
392 시는 정서의 흐름으로 내면을 솔직하게 드러내야... 2017-04-06 0 2445
391 [시문학소사전] - "그로테스크"란?... 2017-04-05 0 2615
390 [시문학소사전] - "아라베스크"란?... 2017-04-05 0 3499
389 현대시를 알려면 현대시의 구조를 알아야... 2017-04-05 0 3208
388 시인은 추한 명예를 베고 눕지 않는다... 2017-04-05 0 2435
387 시를 쓰는 기본자세는 사물에 대한 애정이다... 2017-04-04 0 2575
386 현대시는 전통과 현대 서구적인것의 접목작업을 공감하기 2017-04-04 0 2265
385 시작하기전 철학공부를 하지 안아도 된다?... 꼭 해야 한다!... 2017-04-03 0 2250
384 시작은 섣부른 감정을 억제하고 간접화법으로 노래하라... 2017-04-03 0 2154
383 시는 멀리에 있는것이 아니라 가까운 삶속에 있다... 2017-04-03 0 2647
382 어머니의 말은 풍성한 시의 원천 2017-04-03 0 2051
381 시에 우리 겨레의 숨결을 옮겨 놓아야... 2017-04-03 0 2355
380 시작은 생활로부터의 도피이며 해방이다... 2017-04-03 0 2605
379 시를 짓기전 들여마셔야 할 공기와 내뱉어야 할 공기가 어떤지 생각해보기... 2017-04-03 0 2237
378 "쉬운 시"는 눈으로 쉽게 읽히고 가슴속에 깊은 향기를 풍긴다... 2017-04-03 0 2381
377 시는 정보의 전달 수단이 절대 아니다... 2017-04-03 0 2691
376 시인은 한편의 좋은 시를 위하여 수백편의 시를 쓰고 버릴줄 알아야... 2017-04-03 0 2555
375 혼을 불사르지 못하는 시인은 그 생명력이 짧을수밖에 없다... 2017-04-03 0 2344
374 시인은 구도자로서 억지를 부려 결과물을 얻어서는 안된다... 2017-04-03 0 2307
373 시적 령감은 기다리는 자의것이 아니라 땀흘려 찾는 자의 몫... 2017-04-03 0 2405
372 시를 쓰는 행위는 신과의 씨름이다... 2017-04-03 0 2323
371 시는 시인의 삶을 반추하는 그 시대의 사회적 산물이다... 2017-04-03 0 2220
‹처음  이전 25 26 27 28 29 30 31 32 33 34 35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