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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시론을 재정리하여 알아보다...
2017년 02월 21일 00시 51분  조회:3159  추천:0  작성자: 죽림

 

안도현시론 정리

시는 이야기를 구성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감정의 순서를 정하는 것이다.

시는 감정의 배설물이 아니라 감정의 정화조다.

묘사란, 사물이 하는 이야기를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언어로 그려내는 것.

시인은 감정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물이 하는 이야기를 받아적는 사람.

시인은 묘사한 언어를 보고 독자는 머릿속에 어떤 그림을 그리게 되고, 그 그림을 이미지라 한다.

시인은 자기가 말하고 싶은 것을 최대한 정확하고 절실하게 언어로 그릴 책임이 있다.

시인은 “시적이라는 말을 배반하는 방식을 통해 시적이라는 말을 진화시킬 수는 없을까”(이원,
<시와 세계> 2007년 가을호)를 고민하는 사람이 시인이 아닐까?

좋은 시란?
첫째, 새로운 언어로 표현된 시. 
둘째, 새로운 인식을 도출하는 시. 
셋째, 새로운 감동을 주는 시. 
여기에다 시인의 시작 태도가 공자의 말씀대로 ‘사무사’(思無邪) 바로 그것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의 감동은 일차적으로 시인과 독자와의 교감, 즉 소통 위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소통이 이루어졌다고 해서 모든 시가 다 울림을 갖는 것은 아니다. 
허망한 소통보다는 고독한 단절이 오히려 서로를 행복하게 할 때도 있으니까 말이다. 
시를 보는 미학적 관점과 언어에 대한 경험이 자연스럽게 일치할 때 시적 감동은 증폭될 것이다.

“시란 개인적인 욕망에서 이루어지는 욕망의 발산 형식이 아니라 개인적인 ‘나’의 욕망을 억제하고,
‘나’의 욕망 가운데 가치 있는 어떤 경험을 선택하고 객관화하는 작업을 통해서 남과 다른 세계를 유형화해 보여주는
의도적 행위이다.”(오규원, <현대시작법>, 문학과지성사)

무비 스님은 <임제록 강설>에서 ‘나 아닌 다른 경계에 동요하지 말라’는 말이고, ‘일체를 부정하고 벗어나라’는 말이며,
‘그 어떤 권위나 관념들로부터도 벗어나라. 인정하지 말라’는 뜻이라고 풀이하였다. 
즉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서는 ‘안에도 있지 말고 밖에도 있지 말고 중간에도 있지 말라’는 것이다. 
일체의 얽매임으로부터 벗어나야 깨달음에 이르듯 시로 접어드는 길도 그러한 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시는 절대자와 부모,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바치는 양식이 절대 아니다. 
시의 초보자일수록 ‘무엇을 위해서’ 쓰려고 한다. 
또 ‘누구를 위해서’ 쓰려고 한다. 
시가 천박해지는 순간이다.

창의적 사고의 기능은 크게 다섯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민감성이다. 주변 환경에 예민한 관심을 보이는 능력을 이른다. 자명한 듯한 현상에서도 문제를 찾아보고,
나와 친숙하지 않은 이상한 것을 친밀한 것으로 생각하는 일이 그렇다. 
둘째, 유창성이다. 특정한 상황에서 가능한 한 많은 양의 아이디어를 산출하는 능력이다. 초기의 아이디어가
최선의 아이디어인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한층 많은 아이디어를 얻고자 하는 과정에서 최선의 것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대상이나 현상들로부터 많은 것을 연상하기, 문제 상황에서 가능한 해결 방안을 있는 대로 많이 찾기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셋째, 융통성이다. 고정적인 사고방식이나 시각 자체를 변환시켜 다양한 해결책을 찾아내는 능력이다.
상투적이고 고정적인 사고의 틀을 깨고 발상의 전환을 꾀하는 것이다. 전혀 관계없는 사물들의 유사점을 찾아본다든지,
사물의 구체적인 속성에 주목하는 일과 관련이 있다. 
넷째, 독창성이다. 기존의 것에서 탈피하여 참신하고 독특한 아이디어를 산출하는 능력이다. 다른 사람과 같지 않은
나만의 것을 찾고, 기존의 생각이나 가치를 부정하는 사고를 말한다.
-현대창의성연구소장 임선하 박사의 '창의성의 초대'에서

관념어는 진부할 뿐 아니라 삶을 왜곡시키고 과장할 수도 있다. 
또한 삶의 알맹이를 찾도록 하는 게 아니라 삶의 껍데기를 어루만지게 한다. 
당신의 습작노트를 수색해 관념어를 색출하라. 
그것을 발견하는 즉시 체포하여 처단하라. 
암세포 같은 관념어를 죽이지 않으면 시가 병들어 죽는다.
상상력을 옥죄고 언어의 잔칫상이어야 할 시를 난장판으로 만드는 관념어를 척결하지 않고 시를 쓴다네, 하고 떠벌이지 마라.

묘사는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화할 수도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소리와 냄새는 오로지 묘사를 통해서만 언어로 그릴 수 있다. 
장미 꽃잎이 열릴 때 나는 소리, 단풍이 햇볕에 빨갛게 물드는 소리, 배고플 때 맡는 짜장면 냄새, 감나무에서
우는 매미소리가 내 귓가에 닿기까지의 길, 나비가 날개를 너울거리며 날아가는 허공의 길을 언어의 연필로 그리는 게 묘사다.
또한 묘사는 개념을 해체한다. 
밤은 어둡다, 여름은 덥다, 꽃은 아름답다, 개나리는 노랗다와 같은 문장은 고정관념이 만든 개념적 표현이다. 
묘사는 개념을 구체화하거나 해체하는 데 기여한다. 예를 들면 ‘시장에는 여러 가지 채소가 많다’고 쓰면 죽은 문장이다.
‘가락시장에는 배추, 시금치, 상추가 많다’고 쓰기 시작해야 문장에 조금이라도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시는 하나의 창조적 생명으로서 시인을 간섭하고, 가르치고, 지시하고, 격려하고, 고무하고, 나아가게 하고, 물러서게도 한다. 
그래서 한 편의 시를 완성하는 순간, 시인은 자신의 시가 가리키는 방향대로 살아갈 운명에 처하게 된다. 
이 무서운 진리 앞에서 시인은 엄숙해질 수밖에 없다.
몰입과 열정이 필요하다.

이태준은 산문 <무서록>에서도 퇴고에 대해 힘주어 말한 적 있다. 
“아마 조선문단 전체로도 이대로 3년이면 3년을 나는 것보다는 지금의 작품만 가지고라도 3년 동안 퇴고를 해 놓는다면 그냥 나간 3년보다 훨씬 수준 높은 문단이 될 것이다.”
“글은 다듬을수록 빛이 난다. 절망하여 글을 쓴 뒤, 희망을 가지고 고친다”고 한 이는 소설가 한승원이다.
니체는 “피로써 쓴 글”을 좋아한다고 했고, <혼불>의 작가 최명희는 “원고를 쓸 때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다”고 말했다. 
시를 고치는 일은 옷감에 바느질을 하는 일이다. 끊임없이 고치되, 그 바느질 자국이 도드라지지 않게 하라.
꿰맨 자국이 보이지 않는 천의무봉의 시는 퇴고에서 나온다는 것을 명심하라.

시적 허구(詩的虛構) 속에서 노래하고 연출가·배후 조종자가 되라
시 속에서 말하는 사람을 화자라고 한다. 
화자는 때로 ‘서정적 자아’ ‘시적 자아’ ‘시적 주체’ ‘서정적 주인공’ ‘페르소나’(persona)와 같은 용어로 다르게 부르기도 한다. 
어떻게 부르든 시인과 화자를 따로 구별하는 것은 그 둘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습작기에 있는 사람일수록 시인과 화자를 의식적으로 구별하는 공부가 꼭 필요하다. 
시를 쓰는 시인은 화자를 통해 말해야지 스스로 시 속에 뛰어들면 안 된다. 
그러면 시가 시인의 사적인 발언으로 전락하고 만다. 
시인과 화자를 동일하게 여기지 말고 구별하기 위해서는 먼저 시라는 형식이 하나의 허구임을 전제로 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문학교과서는 ‘소설은 허구’라는 명제를 강조하면서도 ‘시는 허구’라는 말을 기술하는 데 인색하다.
모든 시가 허구가 아니라면 시가 예술로서의 자주성과 독립성을 보장받을 수가 없다. 
신변잡기 같은 사사로운 글을 문학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시는 시인의 사적이고 주관적인 체험의 바탕 위에 만들어지는 것일 뿐, 시인의 체험이나 감정을 단순히 나열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시인의 사소한 체험은 작품 속에서 치밀하게 재구성되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그것을 우리는 시적 허구(詩的虛構)라고 부른다. 
오규원의 말대로 “시 속의 ‘나’는 현실 속의 ‘나’가 아니다. 시 속의 ‘나’는 허구 속의 존재이며, 어디까지나 창조적 공간인
작품 속의 존재이다. 
그러므로 그 ‘나’는 객관화된 ‘나’이며 화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어떤 국면 속의 형식화된 인간으로서의 ‘나’이다.”
따라서 일상의 경험을 시로 표현할 때는 일상 속의 ‘나’가 아닌, 구체적 경험 속의 ‘나’를 그리는 시인의 형상적 시각이 필요하다. 
시인은 현실 속의 ‘나’를 죽이고 구체적 경험 속의 또 다른 ‘나’를 살려 형상화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형기는 또 “사실의 세계가 신의 창작물이듯 허구의 세계는 인간의 창작물”이라고 했다. 
이 말을 조금 바꾸면, 신은 ‘사실’을 만들고 인간은 ‘진실’을 만드는 자라고 할 수 있다. 
즉 시인은 사실보다 진실에 복무하는 자라는 말이다. 
어떠한 진실을 그리기 위해 시인은 사실을 일그러뜨리거나 첨삭할 수 있다. 
사실과 상상, 혹은 실제와 가공 사이로 난 그 조붓한 길이 바로 시적 허구다. 
이 시적 허구를 인정하지 않고 사실 속에 갇혀 있으면 시인은 숨을 내쉴 수도 없고, 상상의 나라에 가지 못한다.
물론 진실을 노래할 기력도 사라진다. 
그의 시는 제자리걸음을 하느라 아까운 세월을 다 보내게 된다.

모방을 배워라. 
모방을 배우면서 모방을 괴로워하라. 
모방을 괴로워할 줄 아는 창조자가 되라. 
모방의 단물 쓴물까지 다 빨아들인 뒤에, 자신의 목소리를 가까스로 낼 수 있을 때,
그때 가서 모방의 괴로움을 벗어던지고 즐거운 창조자가 되라. 
모든 앞선 문장과 모든 스승과 모든 선배는 당신이 밟고 가라고 저만큼 앞에 서 있는 것이다. 
당신은 그들을 징검돌 삼아 그들을 밟고 뚜벅뚜벅 걸어가라. 
시인은 모든 세계를 파괴하고 새로이 구성할 임무를 타고난 사람들이다.

시마와 동숙할 준비를 하라!
시는 실용과 경제의 반대편에 똬리를 틀고 있는 그 무엇이다. 
때로는 어슬렁거림이고, 때로는 삐딱함이고, 때로는 게으름이고, 때로는 어영부영이고, 때로는 하릴없음인 것이다.
시는 실용적이고 도덕적인 가치와는 다른 시적 가치를 요구한다. 
그것은 세상의 미학적 가치를 탐구하는 일인데, 우리는 그것을 시작(詩作)이라고 하거나 시적 순간을 찾는 일이라고 말한다.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에 묻혀 살다 보면 시적인 순간은 쉽게 우리를 찾아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조바심을 낼 필요는 없다. 
영감(靈感)이나 시상(詩想)이 떠오르는 시적 순간은 의외로 곳곳에 산재해 있다. 
초보자는 시적 순간이 수시로 입질을 하는데도 그것을 낚아채는 때를 놓쳐버리기 일쑤다. 
“영감이 오는 순간에 당신은 신과 하나가 될 수 있다.
번득이는 첫 생각과 만나는 순간 당신은 자신이 알고 있던 것보다 더 큰 존재로 변화한다. 
우주의 무한한 생명력과 연결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나탈리 골드버그,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한 편의 시는 한 사람의 시인이 쓴 것이지만 그 시는 시인의 것이 아니다. 
시인은 우주가 불러주는 감정을 대필하는 사람일 뿐이다. 
시에다 쓴 언어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의 것이며 독자의 것이지 시인의 개인 소유물이 아니다. 
그러니 마음에 드는 한 편의 시를 완성했거든 그 순간 그 자리에서 그 시를 잊어버려라. 
당신은 그 시로부터 미련 없이 떠나라.

김춘수는 <시의 이해와 작법>에서 시행 구분의 원리에 대해 심도 있는 의견을 제출한 적 있다. 
그는 일본 시인 기다조노 가즈에의 말을 인용하면서 시의 각 행은 ‘사상의 분량’ ‘의미의 분량’ ‘이미지의 분량’에 따라
결정된다고 하였다. 
이것만 봐도 계산된 의도 없는 시행 바꾸기가 시를 얼마나 허약하게 만드는지 이해가 될 것이다.
문장의 빛깔과 무늬를 문채(文彩)라고 한다. 
시의 문채는 행과 연의 배치, 어휘의 선택 등을 통해 나타난다. 
1980년대 이후 우리 시에 대폭 도입된 ‘양행 걸침’ 형태는 시의 형식과 내용에 엄청난 변화를 불러왔다.
그것을 선도한 것은 이성복의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1980)이다. 
이 양행 걸침 기법은 한국시에 고질적으로 스며 있던 관망과 관조의 태도를 일시에 혁파하였다. 
행갈이의 변화가 한국시의 질서 전체를 역동적으로 바꿔버린 것이다. 
그 파급력은 기형도의 <입 속의 검은 잎>(1989)에 와서 거의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오랫동안 시작활동을 멈추었다가 최근에 좋은 작품을 발표하고 있는 세 시인이 있다. 
서정춘, 위선환, 신현정 시인이 그들이다. 
이 시인들의 시가 왜 좋은가? 
다른 것 다 젖혀두고, 행과 연부터 다르다. 
문채가 다르다. 
오랜 시간의 내공이 개성적인 형식을 낳았다.

[출처] 안도현시론 정리|작성자 조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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