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시 속에는
<당신>이 등장합니까,
<다른 사람>이 등장합니까?
피이, 그것도 질문이라고 하느냐구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 체면을 봐서 그냥 대답해 보세요.
시인 자신을 등장 시킨다구요? 히히히…. 땡입니다. 만일 이제까지 그런 방식으로 써왔다면 고급 독자들로부터 낡았다고 외면을 당했어도 불평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서정 장르는 화자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하여 탄생된 장르이고, 그래서 <작가적 어법>을 채택하고, 모든 사람들이 시인을 등장시키는 장르라고 믿어 왔으니까 말입니다.
이와 같은 서정 장르에 <허구적 인물(fictional character)>의 개념이 도입되기 시작한 것은 현대로 접어들어서부터입니다. 그리고, 그 이전의 작품도 좀더 자세하게 살펴보면 결코 작가 자신이 등장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이 문제를 좀 더 정확히 알아보려면 먼저 일상적 담화의 구조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러시아 형식주의 문학이론을 출발시킨 사람 중 한 사람인 야콥슨(R. Jakobson)에 의하면, 일상적 담화는 <화자(speaker)-정보(message)-청자(hearer)>의 역동적 관계에서 탄생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관계를 문학에 대입시키면 <작가-작품-독자>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학적 담화, 특히 <극>이나 <서사>는 <정보>에 해당하는 <작품> 속에 작가가 꾸며낸 인물들이 등장하여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다시 말해, <정보> 속에 다시 <화자-화제-청자>가 들어있고, 그들끼리 이야기를 주고받고 행동하는 것을 독자가 엿보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를 좀 더 알기 쉽게 그리면 다음과 같이 그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서정 장르도 등장 인물이 제한되고, 청자는 그냥 듣기만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날 뿐, 마찬가지 구조를 취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낡았다고 치부하는 김소월(金素月)의 [진달래꽃]만 해도 그렇습니다. 김소월은 남자 시인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싫어 떠나는 님에게 꽃을 뿌릴 테니 '사뿐히 즈려 밟고' 가라고 애원하는 여성화자(女性話者)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아니, '내 님이 그리워 밤 늦게 울며 쏘다닙니다'라는 고려 시대의 [정과정곡(鄭瓜亭曲)]도, 임금님을 님으로 비유한 조선 시대 정철(鄭徹)의 [사미인곡(思美人曲)]과 [속미인곡(續美人曲)]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문학의 3대 장르인 시·소설·희곡 등은 <허구적 화자>를 채택하고, 작품 속에 다시 <화자-화제-청자>가 들어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작품 속의 화자를 완전한 허구(虛構)의 산물로 보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리고 작가 자신이 등장하는 것처럼 보이는 교술적 장르도 정도 차이가 날 뿐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상상력을 발휘하여 꾸며 쓴다 해도 결국 작가의 경험을 재구(再構)한 것에 불과하고, 사실대로 쓰려 해도 그 작품의 목적과 구조에 맞추어 수정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사실대로 쓴다고 믿는 일기(日記)를 살펴보아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일기를 쓸 때에는 그 당시에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것들도 그렇게 생각한 것처럼 부분적으로 꾸미고, 어떤 부분을 강조하거나 약화시킵니다. 따라서 문학 작품 속의 화자는 시인 자신의 반영도 아니고, 허구적 존재도 아닌 <시인≒화자>의 절충적 존재(折衷的存在)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이론일 뿐, <자전적(自傳的) 화자>을 내세운다고 생각한다고 해서 무엇이 그리 잘못되었냐구요? 네에, 그건 제가 질문하려 했던 건데, 독자들이 먼저 하셨으니 대답할 수밖에 없군요. 우선 시인 자신이 작품 속에 등장한다고 믿으면 화제를 제한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다시 말해, 자기가 경험한 것이 아니면 작품으로 쓸 수 없을 뿐더러 자신을 등장시키면 자신을 돋보이도록 만들고 싶어하는 심리 때문에 고상하고, 우아하고, 진지하고, 영웅적인 화제만 택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작품 전체를 통일시키기 어려워진다는 게 문제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이야기도 남의 이야기처럼 하면 훨씬 객관적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왕 꾸미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시간적 공간적 배경은 물론, 거리와 어조, 어법, 어휘까지 조절할 수 있습니다. 그로 인해, 허구적 화자를 택할 경우 자전적 화자를 택할 때보다 의미적 국면에서부터 조직적 국면에 이르기까지 훨씬 유기적인 작품이 될 수 있습니다.
머뭇거리다가는 여러분들이 다시 질문하실 테니, 먼저 질문하겠습니다. 자아, 받아보세요. 뿅!
□당신은 <허구적 화자>를 설정할 때 무얼 먼저 염두에 두십니까?
'그냥 대충…'이라구요? 그러시겠지요. 작품 속에 자신이 등장해야 한다고만 믿어 왔으니까.
제일 먼저 생각해봐야 할 것은 자기가 쓰려는 작품의 주제에 적합한 인물의 <성(性)>·<연령>·<계층(階層)>입니다. 어떤 계층의 인물을 선택했느냐에 따라 화제는 물론 시적 공간·어조·시어· 시의 형태 등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가령 시골 여자 어린이로 정했다고 합시다. 이런 화자를 선택하면, 성이라든지 폭력 같은 화제는 다룰 수 없습니다. 소설의 경우이긴 하지만, 주요섭(朱耀燮)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만 해도 그렇습니다. '옥희'라는 어린 여자 아이를 등장시켰기 때문에 어머니가 사랑방 손님 이야기만 나오면 얼굴이 빨개지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은 것입니다. 다른 요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가운데 무엇보다 먼저 유의해야 할 것은 화자의 성(性)입니다. 성에 따라 지켜야 할 화자의 특성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시의 의미적 국면
ⅰ) 화자의 태도와 정서 : 남성화자를 등장시키면 대상으로부터 독립하여 옳고 그름을 따지면서 이성적(理性的) 능동적(能動的)으로 대응하는 태도를, 여성화자를 등장시키면 대상과의 관계를 중시하면서 보살핌의 원리로 감성적(感性的) 수동적(受動的)으로 대응하는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ⅱ) 화제의 성격 : 남성화자를 등장시키면 국가 사회 윤리 같은 공적(公的) 추상적(抽象的) 화제를, 여성화자를 등장시키면 이별 사랑 아름다움 같은 사적(私的) 구체적(具體的) 화제를 택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② 시의 형식적 국면
ⅰ) 시형과 율격 : 남성화자를 등장시키면 상대적이지만 자유율(自由律)의 경우 자유분방한 시형을, 여성화자를 등장시키면 정제된 시형을 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정형율(定型律)의 경우우 남성화자는 4음보처럼 균형적(均衡的)이며 대응적(對應的)인 음보를, 여성화자는 3음보처럼 가변적(可變的)이며 대응된 짝이 없는 음보를 택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ⅱ) 음성 조직 : 남성화자를 택하면 기능적이고 소박한 음성을, 여성화자를 택하면 섬세하고 장식적인 음성을 택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물론, 이와 같은 주장에 대해 여성 독자들은 상당히 불만스러워할지 모르겠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여성주의자들이 남성중심주의적인 가치관을 담고 있다고 해서 반대해온 프로이드(S. Freud)와 융(C. G Jung)의 분석심리학(分析心理學)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처럼 보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석심리학만 참조한 게 아닙니다. 남성화자의 '대상으로부터 독립하여 옳고 그름을 따지면서'라는 조건이나, 여성화자의 '대상과의 관계를 중시하면서 보살핌의 원리'로 행동한다는 조건은 길리건(C. Gilligan)을 비롯한 여성 심리학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좀더 생각해보면 여성심리학자들의 주장은 같은 특징을 달리 설명하고 있을 뿐입니다. 대상으로부터 독립하여 옳고 그름을 따질 경우에는 능동적이고 이성적일 수밖에 없으며, 관계를 중시하고 관계되는 것들을 아낄 경우에는 자연히 수동적이고 소극적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배우자의 바람에 대한 반응을 가지고 생각해봅시다. 남자든 여자든 그런 기미를 눈치채면 분노하기 마련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 와이셔츠 깃에 묻은 루즈 자욱을 보고도 용서하는 것은 내가 이혼하면 어린 자식들은 누가 돌보나, 친정 어머니는 얼마나 상심하실까, 친구들이 뭐라고 수군댈까를 생각해서 참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타자와의 관계를 생각하고, 그들에 대한 '보살핌의 윤리(ethic of care)'로 행동하기 때문에 참는 것입니다. 그리고, 맨 날 늦게 들어오는 남편이 아내의 늦은 귀가를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자기 잘못은 돌아보지 못하고 아내의 일이 옳은가 그른 가만 따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차(性差) 무시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그 차이를 인정하되 나름의 가치를 지녔다고 받아들이는 의식구조가 더 중요합니다.
다시 본 이야기로 돌아갑시다. 작품 속의 화자는 이와 같은 성적 특질을 그대로 반영해야 자연스러워집니다. 그것은 다음 김소월의 작품들을 비교해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 [진달래꽃] 1, 2연
ⓑ마소의 무리와 사람들은 돌아들고, 적적(寂寂)히 빈 들에
엉머구리 소리 우거져라.
푸른 하늘은 더욱 낮춰, 먼 산(山) 비탈길 어둔데
우뚝우뚝한 드높은 나무, 잘 새도 깃들어라.
볼수록 넓은 벌의
물빛을 물끄러미 드려다 보며
고개 수그리고 박은 듯이 홀로 서서
긴 한숨을 짓느냐. 왜 이다지!
- [저녁 때] 1.2연
ⓐ는 상대가 '님'인 점으로 미루어 여성화자로, ⓑ는 '-어라'와 같은 남성적 어미를 택한 점으로 미루어 남성화자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비슷한 시기에 쓰여졌고, 시인 자신이 골라 시집 {진달래꽃}에 수록한 작품인데도 전혀 다른 특질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선 화제를 살펴보면, ⓐ는 개인적인 사랑을 다루는 반면에, ⓑ는 일제(日帝)의 토지 수탈 정책에 의해 농토를 빼앗긴 농민의 문제인 공적·사회적 화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는 님이 떠나는 것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변함없는 사랑을 다짐하는 반면에, ⓑ는 한숨을 지으며 물끄러미 바라보는 행위를 통해 땅을 빼앗긴 것이 과연 정당한가 따지려 하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앞에서 지적한 특징 그대로 들어맞고 있지요? 그리고, 형식과 율격 면에도 역시 달라지고 있습니다. 두 작품 모두가 4연시지만, ⓐ는 하나의 율행(律行)을 2개의 층량(層量) 3보격으로 나누고, 2개의 율행(律行)을 한 연으로 구성하여 정형성이 강하게 드러납니다. 반면에, ⓑ는 각행이 2음보(音步)에서 6음보 사이를 불규칙하게 넘나들면서 자유시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가 대응(對應)되는 짝이 없는 3보격을 규칙적으로 택한 것은 여성의 가변적(可變的)이면서도 정제된 정서를 나타내기 위해서이며, ⓑ가 자유시 형식을 택한 것은 남성의 자유분방하면서도 격렬한 정서를 표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 이런 차이는 시어와 통사 구조(統辭構造)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국어에서 화자의 행위와 정서를 잘 드러내는 문장성분은 서술어(敍述語)입니다. 이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는 전(轉)의 '가시옵소서'를 제외하고 '보내드리우리다'·'뿌리우리다'·'흘리우리다'와 같은 극존칭(極尊稱) 종결어미와 음성모음 및 활음조 현상(euphony)이 우세한 시어들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술어를 수식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는 '-져라'·'-어라'·'-느냐'와 같은 오연(傲然)한 어미와 투박하고도 실용적인 어휘들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푸른 하늘은 더욱 낮춰, 먼 산 비탈길 어둔데/우뚝우뚝한 드높은 나무, 잘 새도 깃들어라'와 같이 행 가운데 쉼표를 찍고, '긴 한숨을 짓느냐. 왜 이다지!' 같은 구절에서는 도치법(倒置法)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가 극존칭 어미를 선택한 것은 청자(님)가 화자(나)보다 상위임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음성모음이 우세한 어휘를 선택한 것은 화자의 서럽고도 어두운 심정을 반영하기 위해서이며, 활음조 현상이 일어나기 쉬운 어휘를 선택하고 통사 구조를 정제시킨 것은 이별의 순간에도 아름답게 보이려는 여성적 태도를 반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에 ⓑ가 거친 문장과 실용적인 어미를 택한 것은 남성화자의 자유 분방한 성격을 나타내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작품은 화자에 따라 의미적 국면에서부터 조직적 국면에 이르기까지 모두 조정됩니다. 그러므로, 각 유형의 화자가 어떤 기능을 지니고 있는가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면, 그리고 화자에 맞춰 모든 것을 조정할 수 없다면 결코 좋은 시인이 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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