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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쉽고 군더더기 없는 시어로 다듬어야...
2017년 05월 11일 22시 46분  조회:2108  추천:1  작성자: 죽림
 

 

 

西安, 서안시 취장(曲江)구 구완청古玩城---

광기의 나날에 핀 아픔이라는 꽃
ㅡ이승하론


주 영 숙


  1. 고통에서 사리 건지기 

  니체가 지적했듯이, 미래가 우리에게 어떤 희망을 주지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의 신비스러운 현존재는 자기의 척도와 법칙에 따라 살아가도록 우리를 강하게 고무한다. 그리고 아무리 해도 알 수 없는 수수께끼는, 우리가 생겨나기까지 앞서 있었던 시간의 길이이다. 우리는 한 뼘 길이도 안 되는 오늘을 소유하고 있지만 그 '오늘' 속에서 오히려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하여 살아가야만 하는 실존적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이다. 

  이승하의 일련의 시를 미술작품과 대조해보면 신표현주의 기법의 서양화로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비교한다면 한국 현대미술관에 소장·전시되어 있는 독일 신표현주의 화가 바젤리츠(Georg Baselitz)의 그림 [동방 여인] 같다. 그 그림을 본 나의 소감은 다음과 같다. 


  여자는 거뭇거뭇하게 그을린 것 같은 벽돌을 배경으로 언뜻 거꾸로 매달려 있다고 보아지지만, 무릎이 약간 꺾여 있는 다리로 미루어 딱히 매달려 있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밑으로 쏠리지 않은 머리칼은 만유인력의 원칙을 단적으로 불식시킨다. 눈썹은 벌겋지도 검붉지도 불그스레하지도 않은, 그저 갓 익은 앵두 색깔이다. 껍질을 벗긴 삶은 계란 색깔의 흰자위만으로 통일된 눈 두 개가 이마의 양편 귀퉁이로 각각 찢어진 것이 여덟 팔(八)자 아니면 들 입(入)자를 거꾸로 갈겨놓은 것 같다. 두 허벅지와 아랫배가 만나는 곳의 작은 삼각형도 익을 대로 익은 토마토의 피막을 조심조심 벗겨낸 빛이다. 나체가 분명한데도 젖가슴이 없다. 가슴이 있어야 할 자리엔 핏방울 흔적도 없이 뜬금없는 초록색이 어지러이 칠해져 있다. 흰 페인트가 움직이는 것 같다. 어깨 부분에서부터 밑으로 낭자하게 흘러내려, 밑으로 쏠리지 않은 머리칼 사이로 슬금슬금 스며드는 형상이다.


  그런가 하면 피카소의 [게르니카] 같은 끔찍한 고통의 도표를 그리고 있기도 하다. 이 예술품들의 소재는 여러 양상의 폭력이나 질병, 전쟁, 고문, 기아 등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이승하의 시와 연관성을 지닌다. 질병의 병원균은 우리의 몸에 들어와 활동을 함으로써 우리의 에너지를 소진시킬 법도 한데, 시인은 그런 현상조차도 새로운 탄생을 위한 통과의례로 보고 있다. 고통의 현상학이라고나 할까. 폭력이나 질병, 전쟁, 고문, 기아 같은 외재적 고통뿐만 아니라 "수면제와 절교하자 수면제의 두려움을 알자"([밤의 유희]), "달콤한 잠 한번 자보았음 좋겠어요"([어떤 유서]) 하면서 내재적 고통인 불면증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필사의 노력을 하기도 한다.

  2005년 6월에 펴낸 시집 {인간의 마뼁?nbsp;밤이 온다}의 제일 앞머리의 시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에서 "오죽했으면 죽음을 원했으랴" 하고 서두를 뗀 시인 이승하. 그의 작품만으로 시인을 분석한다면 이러하다. 첫째, 榴?nbsp;겪거나 보거나 들은 폭력을 적발하여 시로 고발하려는 사명을 띠고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다. 둘째, 그는 폭력으로 인한 다층 구조의 인간들, 또는 사물들의 아픔을 낱낱이 드러내어 시로 형상화해야만 잠을 이룰 수 있는 생체 리듬을 가진 사람이다. 어떤 평자는 이승하의 시에서 시적 울림을 기대하는 것은 포기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시인이 폭력 그 자체만을 말하는 시를 쓰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아니다. 이승하의 시에는 터지기 직전의 봇물처럼 울림이 가득하다. 시에 있어서 울림이 필연의 조건이라면 바로 그 이상의 울림도 드물 것이다. 화가 뭉크의 [절규]처럼, 귀를 꽉 틀어막아도 온 천지를 쥐고 흔들 울림이다. 비록 그것이 모종의 시적 울림과 상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일지라도 '시적 울림이 없다'는 단정적인 표현을 쓰는 것은 부적절하다. 

  이승하의 시는 개성적이고 특징적인 터치로 서양미술사의 한 장을 그었던 반 고흐나 뭉크를 닮아 있다. 미술사전에서 '터치'라는 것을 찾아보면 작가의 감동과 감격을 단적으로 화면에 전하는 구실을 하는 중요한 유화 기법의 한 가지이다. 그리고 터치는 표현 기술의 유력한 수단일 뿐 아니라 작가의 주관적인 심정을 종종 화면에 나타냄으로써 그 작가의 개성을 잘 드러낼 수 있다. 모네·반 고흐·뭉크 등이 바로 각각 개성적이고 특징적인 터치를 써서 독자적인 표현을 전개했다. 표현주의의 선구자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뭉크는 불안·공포·애정·증오 같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감정을 격렬한 색채와 왜곡된 선으로 표현한 화가로서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 [절규]다. 자신의 강박관념을 그림으로 나타내고자 한 뭉크의 작품은 특히 독일 미술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시인 이승하에게도 깊은 영향을 주었다. 1984년 중앙일보 지상에 발표되었던 그의 데뷔 시 [畵家 뭉크와 함께]가 그것을 잘 설명하고 있다.


  어디서 우 울음소리가 드 들려
  겨 겨 견딜 수가 없어 나 난 말야
  토 토하고 싶어 울음 소리가
  끄 끊어질 듯 끄 끊이지 않고
  드 들려와

  야 양팔을 벌리고 과 과녁에 서 있는
  그런 부 불안의 생김새들
  우우 그런 치욕적인
  과 광경을 보면 소 소름 끼쳐
  다 다 달아나고 싶어

  도 同化야 도 童話의 세계야
  저놈의 소리 저 우 울음 소리
  세 세기말의 배후에서 무 무수한 학살극
  바 발이 잘 떼어지지 않아 그런데
  자 자백하라구? 내가 무얼 어쨌기에

  소 소름 끼쳐 터 텅 빈 도시
  아니 우 웃는 소리야 끝내는
  끝내는 미 미쳐버릴지 모른다
  우우 보트 피플이여 텅 빈 세계여
  나는 부 부 부인할 것이다.
                                      [畵家 뭉크와 함께] 전문


  다른 내적인 요인은 차치하고라도 말더듬이, 앙상한 외모, 그런 것들에서 오는 동병상련을 감지할 수 있는 이승하의 뭉크에 대한 남다른 애정은 시집 {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와 {폭력과 광기의 나날}에서 더욱 도드라지고 있다. {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에는 '에르바르트 뭉크의 그림'을 부제로 한 [병든 아이], [불안] 같은 시가 나오고, {폭력과 광기의 나날}에는 뭉크의 그림 제목과 그림을 그대로 차용하여 쓴 시 [미역감는 남자들] 같은 시가 있다. 그리고 2권 시집에 각 5편씩이 실려 있는 '정신병동 시화전' 시리즈에는 뭉크뿐만 아니라 고흐, 니체까지도 들어 있다. 

  시적 울림을 전해주든 그렇지 않든 그의 시는 거대한 역사적 의미를 함유한다. 그가 시라는 장치를 통해 지상에서 행해진 각종 폭력과 광기를 기록해왔다는 사실은 {인간의 마을에 밤이 온다}말고도 사진과 도판까지 이용한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시집 {폭력과 광기의 나날}에서 이미 입증된 바 있다. 그러나 시인은 갖가지 형태의 폭력으로부터 그 대상물을 구해낼 힘도 방법도 찾지 못한다. 이 사회의 폭력에 항거한 신표현주의 화가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시인 한 사람이 온 인류를 폭력에서 구해낼 수 있다면 그것은 언어도단이다. 

  그래서 시인은 랭보가 시 [취한 배]에서 했던 것과 같이, 비탄에 차 울음을 터뜨릴 뿐이다. 랭보는 "여명들은 비통하고, 달은 온통 잔혹하고, 해는 온통 가혹하고, 쓰디쓴 사랑은 취기 어린 마비 상태로 나를 부풀린" 이 세상을 향해 "오, 나의 용골을 터뜨려라! 오 나를 바다로 가게 하라!"라고 부르짖지 않았던가. 


  내 체온을 전했던 생명체들이여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이치는 너희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누추하기 짝이 없는 
  노래 몇 곡조 목쉬도록 부르는 일
  이 고약한 일뿐이로구나. 


  시집 {인간의 마을에 밤이 온다}의 자서를 이렇게 쓴 시인에게 죽어가는 생명, 즉 죽음 그 자체에는 '가치'라는 것이 개입할 틈새가 없다. 그런데도 시인은 번번이, 이미 무의미해지고 있는 죽어가는 생명의 아픔을 붙들고, 생명을 죽어가게 한 온갖 폭력에 대항하여 위로의 언어를 찾아내느라 안간힘을 쓴다. 그러면서 시인 자신 끙끙 앓는다. 그러나 그의 아픔에 대한 인식은 그 자신의 경험에서만 나온 것이 아니다. 인간다운 삶이란 실상 끔찍한 것이며, 어차피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그 끔찍한 삶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대승적 인식에서 나온다. 


  조금만 더 아프면 오늘이 간단 말인가
  조금만 더 참으면 내일이 온단 말인가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부분


  오늘이 가고 내일이 오면 이 아픔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역설적으로 말한 이 시에는 단기간의 아픔이 아닌 오랜 기간의 아픔이 내재되어 있다. 언제나 그랬듯이 시인은 오늘도 아프다. 자신의 몸이 아플 수도 있고 타인이 당하는 폭력 때문에 아플 수도 있지만 말이다. 오늘밤만 자고 나면 혹 아픔이 가실지도 모른다고 소망하지만, 직접 아파보지 않고는 아픔의 정도를 알 길이 없다. 세상 모든 일은 끝이 있게 마련이고, 그 아픔의 끝은 오늘로 종지부를 찍으면 좋을 것이다. 이런 소망은 기어이 '꽃'으로 피어난다. 시의 제목 그대로 오랜 진통 끝에 피어난 생명으로 고통이 승화되는 것이다. 마치 아픔이 깊을수록 더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행운목'을 보는 것 같다. 

  시인은 이러한 고통의 일상을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순백하다 못해 무맛일 지경인 직설적 화법은 그 체험적 사실성에서 오히려 독자의 마음을 쉽사리 잡아버리는 효과를 얻는다. 보편성이 없는 신비적인 체험이나 연극 무대 뒤(인생의 뒤안길)의 어떤 끔찍함을 목격했을 때, 그 경험이 준 인상은 시인을 옴짝달싹 못하게 할 것이고, 그것이 그의 시 세계 전부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 그래서 그의 시는 차라리 아픔의 꽃을 피우고자 한다. 아니면 그 아픔의 재에서 사리(舍利)를 찾아내고자 한다. 

  시인은 {인간의 마을에 밤이 온다} 제 24쪽부터 29쪽까지에 자신이 찾고 있는 것을 피력하고 있다. 문명의 튼튼한 몸이 덮친 아들의 피부에서, 태어나자마자 만난 가려운 세상에서, 고기와 달걀이 빠진 김밥을 싸줘야 하는 아들의 소풍날에서 그것을 찾으며 전전긍긍하고 있다. 


  2시에 깨었다 3시에 깨었다 
  밤새 집 안 곳곳을 뺑뺑이 돌면 
  어미는 부채 들고 따라다니며 존다 
  아이가 자면 그 옆에서 웅크리고 잔다 
  이 녀석아 짐승도 밤에는 잔단다 
  잠이 들어야지 좀 덜 긁지 

  아침 햇살이 깔깔 웃어대면 
  까만 색 소파에 인공 눈처럼 뿌려져 있는 
  가루 가루 흰 가루 
  손가락에 침 묻혀 모으다 
  사리라는 느낌이 들어 무릎 꿇는다 
  네 몸에 깃든 인내천의 뜻을 알 듯도 하다. 
                                      [짐승은 자고 난 흔적을 남긴다] 부분 


  이 참담한 현실에서 시인은 마치 인생의 숙제를 푸는 것 같은 명분을 찾는다. "나도 이 도시에서의 나날을/ 행복해 해야만 한다"([늦은 귀가])라고 하면서 행복을 의미를 탐색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고 나면 찾아올 것도 같은 이 작은 행복에의 열망은 좀처럼 이뤄지지 않는다. 그래서 신음을 내뱉기도 하고 때로는 귀를 틀어막고 절규한다. 비중 있는 알레고리의 시, 이승하의 시가 바로 그런 것이다. 이러한 시 창작 방법 속에는 한 개인의 시적 편력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단순한 변화 이상의 그 무엇인가가 담겨 있다. 게다가 아무리 사적인 글일지라도 이미 인쇄되어 나오면 그것은 시인 자신의 전유물이 아니게 된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잠이 들어야 덜 긁지, 잠을 좀 자렴, 하는 애소는 모든 불면증 환자들의 속사정을 대변해주고 있기도 하다. 불면증을 일으키는 요인은 각양각색이겠으나, 그 어떤 고민이 있거나 아픔이 있을 때에, 또는 신경이 곤두섰을 때에 그것이 찾아오기 십상이다. 이 세상 어떠한 고통이며 고민도 잠이 들면 사라질 수 있겠지만, 바로 그 뻔한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를 잠들지 못한다. 이승하의 시에는 차라리 눈을 감고 억지로 잠을 청하고 싶을 만큼의 지긋지긋한 진실이 적나라하게 펼쳐져 있다. 그래서 독자는 개인적인 고통으로 분류 받은 모종의 아픔을 고스란히 끌어안고 밤을 꼬박 샐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고해(苦海)에 떨어져 고행(苦行)을 하는 것이 대부분 인생의 모습일 것이고 보면 시인은 그 자신의 시 안에서 고행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럼으로써 고통의 꽃을 피워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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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이 얼굴 ―김연희(1981∼ )

돈이 없어서 힘들었다
맛있는 거 못 사 먹고
기저귀도 못 사고

갑자기 똑 떨어지니 어떡해
이럴 줄 몰랐는데 어떡해

난 몰라
난 몰라
생기겠지
생기겠지?

저녁에 해지고
애들이랑 구루마* 끌고 온 그이 마중
문 앞에서 그이가 웃는다
그을린 얼굴엔 찌든 땀이 가득

 

 

돈 많이 벌었어
십만 원 가까이 벌었다
그래서 맛있는 거 먹고
기저귀도 사고.

* 내 남편 한받은 ‘구루부 구루마’를 끌고
홍대 앞을 다니며 음반과 책을 판다




 

 

화자는 젊은 여자지만 어린애가 딸렸으니 일거리를 찾기 힘들 테다. 젊은 남자일 화자 남편도 일자리가 불안정하다. ‘난 몰라/난 몰라’, 화자는 속수무책으로 애를 태운다. 아기 기저귀도 떨어져가고 어쩌면 쌀도 간당간당하고. 지난 세기의 60년대나 70년대 얘기가 아니다. ‘삼포세대’ 남녀가 부잣집 자식도 아니면서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지 않아 처한 작금의 현실이다. ‘생기겠지/생기겠지?’, 문 앞에서 작은애를 업고 큰애의 손을 잡고 일 나간 남편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늦저녁. 다행히 ‘그이가 웃는’단다! 힘없고 쓸쓸한 웃음이 아니라 활짝 갠 웃음일 테다. 빤한 살림을 모를 리 없는 남자도 온종일 속이 탔겠지. ‘돈 많이 벌었어/십 만원 가까이 벌었다’! 의기양양한 남편의 보고에 아내 얼굴이 환해졌겠지. 애들도 영문 모르며 까르륵거렸겠지. ‘그을린 얼굴엔 찌든 땀이 가득’, 고맙고 안쓰러운 내 남편, 애들 아빠! ‘그래서 맛있는 거 먹고/기저귀도 사고’, 당분간의 다행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소박한 기쁨을 만끽하는 화자다. 

내가 알기로 김연희는 일반적인 등단 과정을 거치지 않은 시인이다. 삶을 섬세한 촉수로 더듬는 자세를 잃지 않고 살려는 이가, 그 일상을 일기 쓰듯 시로 써서 그게 모이면 혼자 작은 시집으로 내는, 말하자면 ‘재야’ 시인이다. 이 시는 2년 만에 낸 그의 두 번째 시집 ‘작은 시집’에서 옮겼다. 쉽고 군더더기 없는 시어로 다듬은 시들에서 편편이 전해지는 시인의 여리고 따뜻하면서도 견결한 심성이 독자를 기어이 정들고 편들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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