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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되놀이" - 문득 "되놀이" 하고싶어짐은 또...
2017년 08월 18일 01시 02분  조회:2008  추천:0  작성자: 죽림


조선족민속문화-되놀이에 대한 고찰

                                           전 병 칠


중국조선족은 월경민족으로서 자기들의 고유의 민속문화를 갖고 조선반도로부터 중국의 동북지방에 정착하였다.
그네뛰기,널뛰기,씨름,활쏘기, 줄다리기,제기차기, 등 경기놀이와 장기, 바둑,윷놀이 등 겨루기놀이,연띄우기,팽이돌리기,썰매타기,바람개비놀이,숨바꼭질,자치기,줄넘기,공기놀이, 실뜨기 등 아동놀이를 포함한 허다한 민속놀이들은 중국조선족이 집거한 곳들에서 오랫동안 류전되면서 오늘까지도 그 맥락을 이어가고 있다.
 조선족민속문화의 하나인 되놀이에 대해서 어떤 사람들은 우리 민족의 고유의 민속문화의 하나로 보고 어떤 사람들은 중국조선족의 력사에서의 자연 발생적인 산물로서 특이한 민속문화로 보고있다. 
                                되놀이의 기원에 대하여
조선이나 한국의 “우리말 사전” “대국어사전” 등에는 “되놀이”란 올림말이 없으나 1973년 조선 사회과학출판사 출판으로 출판된 “조선문화어사전”은 “되놀이”(273P)를 올림말로 올리고 그 해석을  “(낟알같은것을) 여러 사람이 한몫씩 내서 그것으로 음식을 장만해 놓고 함께 즐기며 노는 놀음놀이”라고 달았다. 유감스운것은 아직까지 되놀이 기원에 관한 상세한 력사기재가 없는것이다.
필자는 되놀이 기원에 관한 상세한 력사기재를 보지 못한 상황에서 되놀이의 기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천박한 견해를 제기한다.
첫째되놀이의 어음적기원
리조시기의 기록에는 “되”를 “승”이라고 씌여있고 “말”은 “두”라고 씌여있다. 리조시기의 “말”은 네모난것인데 그 용량은 지금의 3.5리터정도, “되”는 말이 10분의 1이였다. “되”의 모양은 “말”과 같은데 작았다. “말”과 “되”는 낟알을 팔고 사는데는 물론 가정마다 수시로 쓰는 도구였다. 끼니마디 밥을 지을 때는 “되”로 한정한 쌀의 량을 꺼내는 일상도구로서 쌀독안에는 반드시 쌀되박이 있기 마련이였다. 지난시기 쌀되박은 나무로 만들었지만 나무대신 바가지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것을 민간에서는 되바가지라고 불렀다. 되놀이를 할 때는 되놀이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저마끔  집에서 자기의 몫의 낟알을 쌀되박이나 되바가지로 떠 가지고 가서 그번 놀이에서 정해논 음식을 만들었다. 되놀이란 어원은 이로서 산생되였다.
둘째되놀이는 두레의 호미씻이에 기원을 두고있다.
지난날 우리 농민들은 황두, 두레와 같은 공동로력협조조직을 무어가지고 모내기,김매기,가을걷이와 같은 한꺼번에 많은 노력이 요구되고 힘이 드는 농사일을 서로 도우면서 제철에 해내였다.건삶이를 많이하던 서북조선의 별방지대에서는 황두라는 공동로력협조조직을 무었
                                     (1)
고 중이남조선이나  일부 서북조선지역에서는 두레라는 공동로력협조조직을 무었다.
이러한 황두나 두레는 농호들의 로력과 축력, 농기구의 부족울 타개하고 일손이 많이 들며 시간을 다투는 모내기와 김매기를 제철에 끝낼수 있게하는데서 큰 역할을 하였다. 농민들은 공동로동과정에서 집단로동과 호상부조의 우월성을 더욱 느꼈으며 이웃사이에 더욱 화목해지고 친근하게 지냈다. 황두와 두레는 이러한 우월성으로 하여 오래동안 농촌에서 특유의 공동로동풍습으로 계승되여 왔다.
두레에는 호미씻이라는 특수한 놀이가 있었는데 김매기를 끝낸 다음 두레 일을 총화하고 여름내 농사에서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해 두레군들이 벌리는 놀이였다. 김매기를 끝내고 호미나 후치 등 농기구들을 깨끗이 씻어 광속에 넣어둔다고 하여 호미씻이라고 불렀다.
17세기전반기에 활동한 학자이며 관리였던 장유(호 계곡 1587-1638) 자기의 문집 “계곡집”에서 “농가에서 김매기가 끝나면 남녀로소가 다같이 모여서 음식을 함께 먹는데 세서희(洗鋤戱-호미씻이놀이)라고 하였다고 썼으며 “천일록”은 “산간지대나 평야지대를 막론하고 매년 7월 보름날에는 농가의 남녀들이 음식을 차려놓고 모여서 노는데 이것을 세서연(洗鋤宴-호미씻는 잔치)라고 하였다.”라고 전하고 있다. 알수있는바  호미씻이는 17세기이전부터
전해오는 농사와 관련된 오랜 풍습의 하나였다.자료에 의하면 호미씻이에는 공동식사와 집단적인 춤과 노래, 씨름경기 등을 하였는데 공동식사의 준비는 매 집에서 없는 살림이지만 별식들을 성의껏 차려가지고 나오는것으로 하였고 술과 고기, 떡 같은 것은 집집에서 얼마간의 낟알이나 돈을 모아가지고 준비하였다고 한다.이날 농민들은 농기가 펄럭이는 넓직한 풀밭우에서 배불리 먹고 마시며 농악에 맞추어 춤도 추고 노래도 불렀으며 씨름판에 뛰여들어 힘을 겨루기고 하고 꽹과리와 징을 울리면서 씨름군들을 응원도 하였다.이러한 놀이는 농민들이 여름철 쌓인 피로를 풀어주고 이웃간의 친목을 두텁게 해주는 의의있는 계기로 되였다.이러한 호미씻이는 7월 15일인 백중날에 논다하여 일명 백중놀이라고 하였으며 두레군들이 논다하여 두레놀이라고도 하였다. 두레군들이 두레놀이에 참가하기 위해 쌀되박에 낟알을 담으면서부터 두레놀이가 되놀이로 되였을수 있고 두레놀이가 점차 서북조선지역으로 옮겨지면서 “두레”가 “되”로 와전되였을 가능성이 있다.
셋째되놀이는 일제 탄압시기 간도땅에서 자연 발생하였다.
필자는 지난 7월 19일과 20일 행운스럽게 심양시에서 펼쳐진 “동방민족 전통민요의 현대적 재조명” 학술세미나에 참가하여 반도의 남북학자를 대상으로 되놀이에 대한 조사를 할수 있는 기회를 가질수 있었다. 아래의 도표는 조사한 내용이다.
국       가 조사인수 되놀이 경력 유 되놀이 경력 무 되놀이를  모름
조         선       5명       1명        4명       3명
한         국       5명       0명        5명       5명
도표에서 보여준바와 싶이 조사중 한국의 5명은 모두 되놀이를 모르고 있었고 그 경력도 없었다.올해 65세에 나는서울대 조동일교수는 한국경내에서 민요수집으로 남쪽땅을 다 밟은 명성있는 학자인데 시골마을을 돌며 민요를 수집할 때 혹시 되놀이라는 말을 들어본
                                     (2)
일이 있는가 하는 물음에 “죄송하지만 한번도 들어 못 봤다”고 말했다. 반대로 조선의 학자들중 평양음악무용대 안병균 부학장은 되놀이를 알고 있었고 고향인 함경북도 새별군에서 어릴적 되놀이를 해본 경력을 갖고 있었다. 사회과학자협회 오영일처장은 되놀이를 직접 해본 경력은 없지만 너무나 잘 알고 있다면서 필자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조선의 위대한 항일투사  김정숙어머니는 1917년 조선 회령에서 태여나 22년도에 부모를 따라 중국 연변의 팔도의 베이궈에 갔다가 27년도에는 서산에 옮기고 29년도에는 팔도 부암동에서 살았다고 한다.1930년도 가을에 마을에서 있은 되놀이에 참가해야 하겠는데 자기 몫으로 갖고갈 곡물이 없어 김정숙어머니는 나어린 남자동생이 밭에서 뜯어온 풋강냉이를 가루내 가지고 갔다고 한다. 그런데 그 밭이 소작받고 있는 밭이라고 지주한테 걸려들어 100일간 그 지주집에 들어가서 머슴살이를 했다고 한다. 오처장은 되놀이는 함북도에서만 하는 놀일거라고 주장했다. 필자가 조사한데 의하면 조선에서의 두레놀이는 두만강과 가까운 회령, 무산, 새별 등 곳에서 많이 볼수 있었고 두만강과 멀리 떨어질수록 적거나 거의 볼수 없었다.
지난세기 한일합병후 일제는 조선의 본토에 가혹한 헌병정치를 펼쳐 반일 항쟁을 막고 우리 민족의 사소한 단합의 요소라도 철저히 탄압하였다.그러다보니 간도지방은 우리 인민들과 일제가 사활을 겨루는 주요한 곳이였다. 일제의 탄압을 피하기 위하여 우리의 선구자들이 되놀이라는 이 음식놀이로 일경이나 반역자의 눈을 피해 민중의 단합의 자리를 마련하고 항일력량을 키웠을수 있다. 간도에서의 되놀이가 조선반도의 북부지역으로 흘러들어갈수 있고 항일투사 김정숙어머니의 되놀이 일화로 “조선문화어사전”에 되놀이라는 올림말이 올려졌을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할수 없다.오늘까지 조선에서 출판한 민속놀이를 소개한 허다한 서적에는 되놀이라는 민속놀이가 없다.
중국동북지역에서의 되놀이의 류전과 보존
1).되놀이의 류전과 보존 구역
필자는 본 론문을 준비하는 기간 출장길로 2차에 걸쳐 연길에서 북경으로 다시 북경에서 연길로 24시간씩 기차를 타면서 근 90여명 인원들의 되놀이경력을 쉽게 조사할수 있었다.
아래의 도표는 필자가 동북3성의 부분적 사람들을 만나 조사한 내용이다.
지     역 조사인수 되놀이 경력 유 되놀이 경력 무 되놀이를  모름
길림성 연변지구       52명       50명        2명  
길림성 통화지구        5명        1명        3명       1명
길림성 사평지구        4명        1명        3명  
길림성 길림지구       8명        1명        7명  
요녕성 단동지구       2명        1명        1명  
요녕성 심양지구       6명       2명       3명       1명
흑룡강성 할빈시       5명       2명       3명  
흑룡강성 상지시       1명         1명  
흑룡강성 계서시       1명         1명  
흑룡강성 목단강       8명       7명       1명  
이상이 도표가 보여주다싶이 되놀이는 연변지구와 목단강지역의 사람들이 잘 알고 있었고 또 그 경력이 있는 사람도 많았다. 연길시 영락구역의 한 휴식터에서 2차에 걸쳐 (04,7,6일,11일) 13명의 할머니들과 6명의 할아버지들을 마주하고 조사를 벌린데 의하면 이 로인들중 1명을 제외한 18명이 되놀이를 해 본 경력을 갖고 있다고 하면서 필자와 흥미진진하게 자기들의 되놀이를 하던 과정을 이야기했다. 이 로인들은 대부분 연변의 타 현시의 농촌에서 자식들을 따라 연길로 이주해 온 로인들이였다.
 올해 80세에 나는 조도수(趙道洙)로인은 안도현 자흥촌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는데 15,16세때에 동네청년들과 함께 되놀이를 자주 했다고 했다. 주로는 메밀국수 되놀이를 했는데 바람이 크게 부는 날이면 사전에 준비한 삼줄그물로 새밭에 내린 꿩들을 잡아서는 꿩탕 메밀국수를 해먹었다고 했다.로인은 바람부는 날이면 새밭의 바람소리에 꿩들이 그물을 끄는 소리를 잘 못 듣기에 그물을 끌면서 힘차게 달리면 새밭에 숭어있던 꿩들이 많이 걸릴 때는 7,8마리씩 그물에 걸려들었다고 하면서 당시 추억으로 흥분했다.
되놀이라는것을 해 본 경력이 없다고 대답한 1명의 로인은 흑룡강성 계서시에서 온 할아버지였다. 그 옆의 시장에서 만난 80세나는 윤주순할머니도 경상북도 예천군에서 태여나 9살에 흑룡강성 상지시 하동촌에 이주와 평생을 농사질을 했지만 되놀이를 한 경력이 없다고 했다. 
부모의 고향이 충청북도 청주시인 올해 84세인 이형봉로인은 훈춘시 량수진 출생인데 되놀이 한 경력이 많았고 어린시절 소학생시절에 메밀국수되놀이도 했고 참새를 잡아서는 참새되놀이도 한적이 있다고 했다.
북경행 기차에서 만난 73세의 방금손할아버지는 왕청 신흥향 룡천촌 태생인데 16,17세좌우에 마을 친구들과 되놀이를 자주 했는데 메밀국수 되놀이를 많이 했다고 했다. 그는 1955년 사범을 졸업하고 류하현 조선족중학교에 가서 교편을 잡았는데 류하현의 조선족들은 되놀이라는걸 몰라 그 후에는 못해봤다고 했다. 조선어문 교원으로 퇴직한 방선생님은 되놀이는 함경도풍속이기에 햠경도사람이 많은 연변에서만 류전되는것이라고 찍어 말했다.
연변의 40대,50대 60대들은 대부분 60년대와 70년대 80년대에 되놀이를 많이 해왔다. 필자는 60년대 중기와 말기 화룡시 두도진 연풍촌에 있었는데 남녀 청년들이 함께 모여 조개떡되놀이, 언감자떡되놀이 등을 많이 했다.
2).되놀이 군체
필자의 조사에 의하면 50년대와 그 전후를 포함해 되놀이를 제일 많이 하는 군체는 녀성들이였다. 아마 녀성들이 음식을 자체로 만들수 있고 또 가정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기들끼리 앉아 스트레스를 풀기에는 되놀이 그 이상이 없었던것과 관계되는가 싶다.  그다음으로
50년대 후반부터 80년대말 좌우까지는 청춘 남녀들이 주체로 민병이나 공청단조직의 이름을 달아 함께 모여서 처녀들은 떡방아를 찧고 총각들은 나무를 패거나 등 힘든 일을 했다.떡가루가 도착하면 처녀총각이 마주 앉아 떡을 만들었다. 
3).되놀이의 음식
                                       (4)
필자가 조사한 되놀이음식을 보면 1, 메밀국수 2,가랑잎떡(가람떡) 3,송편 4,언감자조개떡(당콩을 밖는다) 6, 만둑 7,입쌀밴새 8,시루떡(설기떡) 9,언감자밴새 10,오그랑죽 11,찰떡 12,계피떡 등이 많았고 개별적인 사람들은 김치나 참새로 되놀이를 하기도 했다.
올해 78세인 정금숙로인은 위자구 장안촌에서 살았는데 배추랑 속에 넣는 만둑떡놀이를 많이 했다고 했다. 가람떡만 그 만드는 방법을 소개한다. 먼저 집집에서 가져온 입쌀을 물에 불구어 씻은후 건기를 들이고 발방아나 절구에 가루를 낸다. 그 다음 거기에 찹쌀을 약간 섞어서 떡을 빗고 그 우에 새파란 가둑나무잎이나  깨잎 혹은 보드라운 옥수수잎사귀를 붙이고 가마에 찐다.이런 가람떡은 잘 쉬지 않고 또 맛이 특별했다, 가람떡에 당콩을 밖지않았을 경우는 따로 콩고물을 만들어 찍어 먹기도 했다.
4).되놀이 방식
  되놀이기본방식이라면 입쌀, 메쌀,언감자 등 낟알들을 여러 사람이 한몫씩 낸후 미리 정해 논 집에 모여 그것으로 음식을 장만해 놓고 함께 즐기며 노는 것이였다.
되놀이끝에는 보통 모여서 북을치고 퉁소를 불면서 춤추고 노래부르고 하였는데 퉁소나 북이 없는 마을에서는 물함지에 바가지를 엎어놓고 북대신 그걸 두르리면서 흥을 돋구었다.  화룡시 두도진 연풍촌부녀들은 되놀이 뛰끝이면 꼭 북장단에 맞춰 춤을 췄다. 마을에 북을 잘 치는 전고분할머니가 있었기 때문이란다. 또 되놀이끝에는 공기놀이, 윷놀이, 화토놀이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올해 79세인 오경숙할머니는 왕청현 서위자촌에  살았는데 처녀때 대부분 찰떡되놀이를 하고 되놀이 끝에는 돌을 숨기는 놀이를 놀았다고 했다. 돌을 숨긴 사람이 노래를 부르는 유희였다.
그리고 과거에는 쌀 같은 낟알을 사람마다 한몫씩 내서 그것으로 음식을 만들었으나 지금의 경우는 생활형편도 좋아지고 현금 류통이 많은지라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곤 자기 몫으로 현금을 내고 되놀이에 참가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 도시 로임족들도 가끔 돈을 거두어 사전에 정해 논 집에서 개를 잡고 개 되놀이를 한다던가 또는 특별한 음식상을 차린다든가 하면서 놀음판을 벌리는데 되놀이의 잔류로 볼수 있다.
지금도 연변의 농촌들에서는 부녀들이 되놀이를  많이 하고 있다. 농촌에 청년들이 적다보니 청년들이 하는 되놀이는 매우 적다. 상대적으로  지금은 독보조로인들이 남녀 함께 하는 되놀이가 많다.
되놀이의 미학적가치 
 되놀이를 해 본 사람들 대부분이 똑 같은 체험을 이야기 했다 귀납해 보면 다읔과 같다. 첫째, 마음이 서로 통하는 사람들이 되놀이를 한다. 둘째, 조용한 집을 찾는데 외딴집일수록 좋다. 셋째,말성이 많거나 성질이 고약한 사람은 참가시키지 않는다. 넷째, 지나치게 가난하여 자기 몫을 내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그의 몫을 담당하거나 되놀이군들의 상의를 걸쳐 몫을 내지 않아도 참가할수 있었다.다섯째, 음식이 남으면 로인을 모시고 있는 집이나 환자가 있는 집에 우선적으로 보내주었다.
 아래에 되놀이가 갖고있는 미학적가치를 적어본다.
                                       (5)
1,실향민의 애환을 달래주고 고국과 민족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다분히 키워주었다.
기아와 가난 그리고 조국을 빼았겨 낯설은 타국 땅에 쪽지게를 내린 우리의 1세들은 되놀이를 하면서 그리운 자기의 고향과 보고싶은 형제, 친척들을 그리며 떠난 고국에 대한 열애를 되새겼다.올해 73세인 화룡시 토산진에 산 주장권할아버지는 일찍 어렸을적에 화룡시 남평진 가마골에서 살았는데 자기의 아버지 주철운(1906년생)이 마을사람들과 함께 되놀이를 하면서 고향에 두고 온 동생들을 그리며 눈물을 흘리는걸 보아왔다고 했다.
2,반일사상을 선전하고 민중의 단합해 항일의 힘을 키워주었다.  
도문시 79세에 나는 박령감은 2,30년대 되놀이는 혁명인들이  반일사상을 선전하거나 반일투쟁, 폭동 등을 조직하기 위해 모임을 가지는 주요 수단의 하나였다고 했다. 그들은 일군의 눈을 피하기 위해 항상 “오늘 저녁에 김아무개네집에서 되놀이를 하니 참가하라”는식으로 모임을 가졌다고 했다..
3,봉건적인 세습에서 벗어나 사회에 참여하려는 부녀자들의 소박한 념원을 반영하였다.                          되놀이는 부녀들이 제일 많이 했다. 장시기 동안 우리 민족의 부녀들은 봉건적인 유교제도아래 가정에서 우로는 시부모들을 모시고 아래로는 시누이 시동생과 자기의 어린 자식들을 키우면서 허리 한번 시원히 못 펴면서 큰소리 한번 치지 못하고 꼭두새벽에 일어나 저녁 늦게까지 가무일에 시달렸다.그들에게 있어서 되놀이는 쌓인 스트레스를 풀고 피곤이 실린 허리를 쭉 펼수 있는 더없이 좋은 자리였다. 백두산처럼 높은 시아버지, 고추 후추처럼 매운 시어머니,배추잎처럼 푸른 맏동서, 올콩볼콩 발라메이 시애끼, 벼개 벼고 눈물 짓고 이불 쓰고 통곡하던 시집살이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공명감을 주었고 또 사회적인 남녀불평등에 대한 똑 같은 원망의 마음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가 되게 하였다. 그들은 자기들이 만드는 자유롭고 평화로운 세상에서 동네소식이며 나라소식,세계소식을 듣느것이 더없이 행복했다. 그들은 자기들이 만든 이런 자유와 평화속에서 사회에 참여하려는 자기들의 소박한 념원을 반영하면서 마음껏 노래 부르고 춤을 췄다. 그들은 자기들의 소유한 이 소천지를 보호하기 위해 조용한 집, 외딴집을 찾고 말을 나르는 입 빠른 녀인을 싫어하면서 그런 녀자는 될수록이면 되놀이에  참가시키지 않았다.
 4,자아를 찾고 인생의 향샹을 위해 노력하는 계기가 되였다.
 “인생은 만남에서 이룩된다”는 말이 있다. 공자는“3인지행필유아사”(三人之行必有我師)라고 했다 .되놀이는 여러 사람이 함께하는 자리라 서로가 배울 점이 많았다. 다른 사람이 살아온 인생에 자기가 살아온 인생을 반성도 하게 되고 남의 좋은 권고와 충고로 새로운 인생 출발도 할수 있었으며 또한 남의 음식만드는 법, 노래재간 ,춤재간 등을 배워 자기를 향상
시킬수도 있었다.
 5. 주위 사람들과의 친목을 도모하고 호상부조의 정신을 키워주었다.
인간은 더불어 산다고 한다. 주위 사람과의 친목을 도모하는 것은 인간의 도덕이면서 또한 지혜이다. 되놀이는 여러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 음식을 만들고 이야기를 나누고 놀이같은것을 함께 하면서 기쁨과 슬픔을 주위 사람들과 함께 나눌수 있는 자리였을뿐만아니라 
                                      (6)
불쾌했던 일은 서로 리해해 주고 량해를 빌수 있는 자리, 숙적이였던 사람들을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다시 화해시켜 다정히 보낼수 있게 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또한 어려운 사람을 도와  묘책을 낼수 있는 자리, 도와 줄수 있는 자리이기도했다. 되거리 경력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되놀이를 할 때 지나치게 가난하여 자기 몫을 내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그의 몫을 담당하거나 되놀이군들의 상의를 걸쳐 몫을 내지 않아도 되놀이에 참가시켰다고 하면서 음식이 남으면 로인을 모시고 있는 집이나 환자가 있는 집에 우선적으로 보내주었다고 했다.로인을 존경하고 약자를 도와주는 우리 민족 미덕이 되놀이에서의 체현이 아닐수 없다.
 한마디  더 이야기 하고 싶은것은 중국조선족의 되놀이에 가끔 다른 민족성원들도 끼워 우리 민족의 민족단결정신과 넓은 포옹력을 보여주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방금손할아버지는 왕청 신흥향 룡천촌에 있을 때 마을에 40%가 한족이였다고 하면서 자기들은 되놀이를 할적마다 왕상진(王尙進)이란 한족친구를 불러 함께 되놀이를 했다고 했다.
필자는 이상과 같이 조선족민속문화-되놀이를 초보적으로 고찰하면서 여러분들의 심도있는 연구를 기대하는바이다.
 
                                            
 
2004년 7월 11일 초고 / 7월 29일 수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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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6 {쟁명} - 하이퍼시는 자아가 아니라 타자와 노는것이다... 2018-01-05 0 2313
915 詩人 김파님께서는 갔으나 詩伯 김파님께서는 가지 않았다... 2018-01-05 0 2565
914 이상(李箱)의 시는 이상(李箱) 이상(以上)이었다... 2018-01-04 0 2382
913 "솔숲은 늘 푸른데, 숲에 난 발자국은 모두 다르더라"... 2017-12-28 0 3215
912 교육선구자 김약연과 명동학교를 아십니까?!... 2017-12-28 0 2810
911 <시간> 시모음 2017-12-28 0 2867
910 해골의 노래에 맞춰 무도회는 잘도 돌아간다... 2017-12-27 0 3141
909 "네 젊음을 가지고 뭘 했니?"... 2017-12-26 0 3027
908 <말(言)> 시모음 2017-12-24 0 2243
907 시와 시작론 2017-12-22 0 1892
906 친구들아, 어서 빨리 "동시조"랑 같이 놀아보쟈...7 2017-12-22 0 2130
905 친구들아, 어서 빨리 "동시조"랑 같이 놀아보쟈...6 2017-12-22 0 2040
904 친구들아, 어서 빨리 "동시조"랑 같이 놀아보쟈...5 2017-12-22 0 2278
903 친구들아, 어서 빨리 "동시조"랑 같이 놀아보쟈...4 2017-12-21 0 2401
902 친구들아, 어서 빨리 "동시조"랑 같이 놀아보쟈...3 2017-12-21 0 2298
901 [작문써클선생님들께] - 시조, 동시, 시 차이점?... 2017-12-21 0 3355
900 친구들아, 어서 빨리 "동시조"랑 같이 놀아보쟈...2 2017-12-21 0 2385
899 친구들아, 어서 빨리 "동시조"랑 같이 놀아보쟈... 2017-12-21 0 2107
898 세상에서 제일 보배로운 동요동시를 내 눈언저리에 붙혀주렴... 2017-12-21 0 2239
897 웃음은 모든 인간들의 모든 독을 제거하는 해독제이다... 2017-12-20 0 2269
896 <돌> 시모음 2017-12-19 0 2446
895 산골물 / 윤동주 2017-12-17 0 2762
894 애독자 비행기 조종사가 유명한 작가 비행기 조종사를 죽이다... 2017-12-17 0 3659
893 윤동주, 백석, 릴케 - "삼종(三鐘)의 종소리 웁니다"... 2017-12-16 0 3875
892 "암울한 시대에 시를 써보겠다고 생각했던 내가 어리석었다!"... 2017-12-16 0 3357
891 치욕의 력사에서 참회의 역사로 바꾸어 놓은 시인 - 윤동주 2017-12-16 0 3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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