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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광수님, 커피값 오천원 척척 내면서 책 안 사보려고 하고...
2017년 09월 21일 03시 15분  조회:2989  추천:0  작성자: 죽림
   
 
지난 3월초 연세대 학생들의 커뮤니티인 세연넷에 한 편의 글이 올라왔다. 한 학생이 ‘(마광수 교수님 수업은) 책을 산 영수증을 꼭 붙여야 하네. 인터넷 서점에서 사면 같이 날아오는 스티커를 붙여야 하나’라는 글을 남겼다. 이 사실이 마 교수가 자기 저서를 학생들에게 강매한다는 내용으로 기사화됐고, 마 교수는 즉각 학교 홈페이지에 반박글을 올리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대체 무엇이 문제였던 걸까? 

 

우리나라 대학교수들 가운데 마광수 교수만큼 언론에 많이 오르내린 인물도 없을 것이다. 그가 처음 세간의 주목을 받은 것은 1992년 소설 <즐거운 사라>를 발표하면서부터였다. 주인공 여대생이 교수와 관계를 맺는다는 내용은 성 의식이 많이 개방된 지금 생각해도 다분히 파격적인 설정이다. 하물며 20년 전에는 어떠했을까? 즉각 언론과 문인, 대학교수 등을 중심으로 큰 반발이 일어났고, 그는 결국 음란물 제작 및 배포 혐의로 구속되기에 이른다.
1998년 김대중 정부의 사면복권으로 연세대 교수로 복직해 학생들을 가르치던 마 교수는 2000년 6월 정교수 재임명 심사에서 탈락하며 교수인생에서 두 번째 위기를 겪는다. 표면적인 탈락 이유는 ‘연구실적 부족’이었지만 실제 이유는 동료교수들과의 불화 때문이었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학생들이 반발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탈락이 보류되긴 했지만, 마 교수는 이 일로 우울증을 앓으며 두 차례 휴직을 하게 된다. 2004년 건강을 회복하고 강단에 복귀한 그는 현재 정년까지 3년 반을 남겨 놓은 상태다.
그런 그가 지난 4월, 다시 한 번 언론의 도마에 올랐다. 한 일간지가 “‘내 책 산 영수증 내야 학점 준다’는 황당한 교수”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올린 것이 발단이었다. 마 교수가 <문학과 성>, <카타르시스란 무엇인가> 등 자신의 저서 2종을 교양수업인 ‘문학과 성’, ‘연극의 이해’ 교재로 채택하면서 책 장사를 했다는 것. 이에 마 교수는 연세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학생들의 뻔뻔스런 수강 태도에 분노한다’는 제목의 반박문을 올렸다. ‘매 학기마다 교재 및 레포트 서적 안 사고서 버티는 학생들에게 실망했다. 자유를 주면 자율이 생긴다고 믿어 왔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것이 글의 주 내용이다. 대체 무엇이 문제이고, 어디서부터 갈등이 시작된 걸까?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서울 동부이촌동에 있는 그의 집을 찾았다.

 

   
 

 

군인에게 총이 없다는 게 말이 될까? 책 없는 학생이 바로 그렇다
마광수 교수의 자택을 찾은 것은 4월 9일 오전이었다. 마 교수가 수업교재로 쓰는 자신의 저서를 구입한 영수증을 레포트에 첨부하지 않는 학생에게는 F를 주겠다고 한 사실이 논란이 되면서 연일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고 있다고 했다. 모 케이블 방송은 카메라를 세 대나 가져와 인터뷰를 촬영하는가 하면 9일 오후에도 한 건, 11일에는 두 건의 인터뷰가 잡혀 있었다.
>>교수님께서 교재를 구입하지 않은 학생은 F 학점을 주겠다고 하신 것 때문에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오죽했으면 그랬겠어요. 제가 가르치는 수업이 ‘문학과 성’과 ‘연극의 이해’인데, 이 두 과목 수강생을 합치면 650명 정도 됩니다. 그 중 교재를 산 학생이 몇 명인 줄 아세요? 겨우 50명이에요. 제가 쓴 <문학과 성>, <카타르시스란 무엇인가>를 교재로 쓰고 있는데 이 책들은 수업교재로나 쓰이는 책이다 보니 구내서점을 통해서나 판매가 가능해요. ‘선배들 책을 물려받아 쓰겠다’는 학생들도 있지만, 선배 중에 누가 마광수 교수 수업을 들었는지 어떻게 알아요? 더구나 그 선배들도 책을 안 산 사람들이 대부분인데요. 학교 도서관에 책을 기증할까 생각도 해 봤지만, 꽂을 데가 없다는 이유로 같은 책은 3부 이상 받아주질 않아요.

>>본인이 쓴 책을 교재로 지정한 것 때문에 더 큰 문제가 된 건 아닐까요? 
교재로 쓰는 책들 중 <문학과 성> 초판이 2000년도에 나왔는데 그때 가격이 1만2천 원이었어요. 출판사에도 책값을 올리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어요. 지금도 그 가격 그대로입니다. 1997년에 나온 <카타르시스란 무엇인가>는 책값이 7000원이었는데 7,8년 전에 딱 한 번 9000원으로 올렸어요. 
영화는 악착같이 보면서도 책 사는 걸 아까워해요. 1백만 원이 넘는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한 잔에 5천 원인 커피값은 안 아까워하면서 말이죠. 경제학과, 경영학과나 공대에서 쓰는 10만 원 넘는 원서와는 비교가 안돼요. 학술서적이라서 수요도 많지 않아 한번에 많아야 1000~2000권 정도 찍는 게 고작이에요. 더구나 저는 학생들과 함께 책을 읽고 제가 해설을 곁들이는 강독식講讀式으로 수업을 진행합니다. 책이 없으면 수업 자체가 진행이 안돼요. 그런데 책을 안 갖고 수업에 들어온다면 총 안 들고 전쟁터로 가는 군인과 무엇이 다릅니까? 수강신청 동안은 제 수업을 듣고 안 듣고는 학생 개개인의 자유입니다. 하지만 일단 제 수업을 듣기로 했다면, 제가 정한 지침을 따라야 하는 것은 그 학생의 의무가 됩니다. 
인세 얘기를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 몇 푼 챙기려고 싫은 소리 들어가며 자기 책 사라고 강요하는 교수가 몇이나 될까요? 교수가 수업하는 데 자기가 쓴 책보다 더 좋은 교재가 어디 있어요? 오히려 자기 책이 없어 남이 쓴 책 갖고 수업하는 게 불성실한 교수죠.
이번 사태가 기사화되면서 격려 메일이나 전화, 문자도 많이 받고 있어요. 미국에서 유학 중인 어떤 학생은 제가 책을 강매한다는 기사를 읽고 너무 화가 났대요. 그런데 책값을 보고 깜짝 놀랐대요. 고작해야 2만원밖에 안 하니까. 자기네 학교는 한 학기에 책값으로만 몇백 달러가 든다는 거죠.

마광수 교수의 책 <문학과 성>, <카타르시스란 무엇인가>를 발간하는 ‘철학과현실사’의 전춘호 대표에 의하면, 이들 책의 저자 인세는 정가의 10%라고 한다. ‘연극의 이해’ 수강생은 약 500명, ‘문학과 성’ 수강생은 약 150명이다. 이 650명이 모두 교재를 구입한다고 했을 경우 마 교수가 받는 인세는 73만5000원이다. 결코 크지 않은 액수다.

     
 

 

교수가 더 이상 학생들을 믿을 수 없다는 게 슬프다
물론 마광수 교수가 처음부터 레포트에 교재를 구입한 영수증을 첨부하도록 하는 초강수를 둔 것은 아니었다. 이번 학기가 처음이다. 그는 ‘예전 학생들은 교재도 없이 수업에 들어가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런 학생들의 태도가 2000년대 중반부터 바뀌었다고 한다. 학생들의 마인드가 지독한 얌체주의, 이기주의, ‘약육강식’주의로 바뀌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 좌) 서재 한켠에 놓인 사진 속 젊은 시절의 마광수 교수.

>>스승으로서 대학생들을 보면 안타깝고 서글프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을 것 같습니다.

 

심지어 학생들 사이에는 ‘마광수 교수 수업 대처요령’까지 돌더군요. 일단 교재를 사서 영수증을 챙긴 뒤 환불하면 된다는 거예요. 거짓말 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거죠. ‘자유를 주면 자율이 생긴다’는 게 제 지론이었어요. 그런데 이젠 학생들 못 믿겠습디다. 교재도 잘 안 사고, 수업태도도 엉망이에요. 스마트폰 만지작거리고, 옆자리 친구들과 잡담하고…. 
그렇다고 학점에 관심이 없느냐? 그건 또 아니에요. 성적 정정기간만 되면 학점 올려달라고 별별 죽는 소리를 다 해요. ‘집이 가난한데 이번에 성적이 나쁘면 제적당하게 됐어요’, ‘아파서 결석했어요’ 등등. 공부하기는 싫고, 학점은 받아야겠고. 심지어는 우리 집 앞에까지 찾아와서 문을 두드리며 난리를 피우는 학생도 있어요. 
저야 정년이 보장된 정교수니까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강의담당 전임교수나 시간강사들은 강의평가를 열람할 때 마음이 떨린다고들 이야기합니다. 학생평가 점수가 평균의 90%를 넘지 못하면 더 이상 강의를 하지 못하거든요. 학생들이 강의평가를 권력처럼 삼는 건 아닌가 싶어 씁쓸해요. 자기 학점 잘 나오면 평가점수 잘 주는 식이죠.

>>평소 칼럼 등을 통해 자율적인 신세대 문화에 대한 기대를 자주 나타내셨습니다. 그런 분이 더 이상 학생들을 믿지 못하겠다고 하실 정도면 이번 사태를 통해 실망을 크게 느끼신 것 같습니다. 
단지 이번 일 때문만은 아니에요. ‘공부하기 싫은 사람 억지로 앉혀 둘 필요가 뭐 있겠나’ 싶어 전자출결로 출석을 체크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제가 빤히 보는 앞에서 학생증으로 출석만 찍고 도망가는 학생이 있더라고요. 제가 불러도 대답도 안 하고 가 버려요. 그 한 시간을 어디 유용한 데 쓰려는 건지, 몹시 궁금하더군요. 레포트만 해도 그래요. 요즘 학생들이 내는 레포트는 인터넷이나 컴퓨터가 없던 손으로 써서 내던 시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질이 떨어져요. 절반 정도가 문단나누기도 제대로 안되어 있어요. 문법에 맞지 않는 비문非文도 많고요. 독후감을 써 내라고 하면 인터넷서점에 올라온 책에 대한 해설이나 논평을 이리저리 갖다 붙여서 내요. 더구나 인터넷에 레포트를 파는 사이트가 있어서 ‘마광수’ 하고 검색해서 나온 자료를 짜깁기해서 내요. 본인이 쓴 건지, 베낀 건지 저도 구별할 자신이 없어요. 교수가 학생을 믿지 못한다는 거, 그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 마광수 교수

1951년 서울 출생. 연세대학교 국어국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를 취득했다. 1977년 시인 박두진의 추천으로 시 여섯 편이 <현대문학>에 게재되며 등단했다. 1984년부터 모교 교수로 재직하며 소설가로도 데뷔했다. 1992년 발표한 <즐거운 사라>가 외설 논쟁에 휘말리며 교수직을 잃었다가 1998년 복권됐다. 현재 연세대 국어국문과 교수.

 

교권이 무너진 것이 가장 큰 문제
마 교수가 처음 대학 강단에 선 것은 1979년, 홍익대학교 조교수로 임용되면서부터다. 그리고 어느새 34년이 흘렀다. 마 교수의 눈에 비친 대학생들의 모습은 과연 어떻게 달라졌을까? 
>>처음 교수가 되어 가르쳤던 학생들과 요즘 대학생들을 굳이 비교한다면 어떻습니까?
책을 읽지 않아서인지 전반적인 지식이나 교양, 글쓰기 수준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떨어졌어요. 스마트폰이 제일 큰 문제예요. 하루 종일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면서 댓글 달고, 트위터 올리고, 문자메시지 날리느라 통 책을 읽지 않아요. 진짜 반성해야 해요. 아무리 생각해도 독서 이외에 교양을 쌓는 방법은 없는데 인터넷에 올라오는 글이라고 해봤자 짤막짤막한 조각글뿐이잖아요. 
또 영상세대이다 보니 책보다는 게임이나 영화를 더 좋아합니다. 얼마 전 상영된 <레 미제라블>만 해도 그래요. 그 방대한 원작을 2시간 40분짜리 영화에 담으려고 하다 보니 장발장이 출소 후 뜻하지 않게 다시 범죄를 저지른 것이나 워털루전투처럼 빼먹은 부분도 너무 많고. 영화가 인기를 끄니까 그제야 원작소설을 찾는다고 해요. 대부분은 영화만 보지, 원작은 잘 보지 않거든. 그러다 보니 문학이 의미가 없어졌어요. 글만 써서 생계를 이어가는 전업작가 개념도 사라졌어요. 
요즘 대학생들은 한자실력도 과거에 비해 많이 부족해요. 한자어가 우리말의 70%인데. 한자는 뜻글자이기 때문에 글자 자체가 사색을 유도할 뿐 아니라 조어력造語力도 강합니다. 그런데 일상 속에서 한자를 쓰지 않다 보니 책에 한자가 나오면 읽지를 못해요. 출판사에서도 책에 한자 넣지 말자는 말을 많이 해요. 젊은이들이 싫어한다고요.
말로는 교양과 인문학을 강조하죠. 연세대만 해도 인생경험이 풍부한 원로나 중진급 교수에게 교양강의를 주로 맡기려고 하고. 가야금 명인 황병기 선생 등 외부인사를 초빙해서 교양과목도 개설하고요. 하지만 학생 수가 많은 대형강의를 개설하는 건 학교가 잘못하는 거예요. 작은 강의로 쪼개야죠. 모 대학교수는 자기네 학교 문과대생 90%가 고시를 준비하고 있대요. 마치 학교 전체가 거대한 고시원처럼 바뀐 거죠. 기초학문은 등한시한 채 말이에요.

>>세태가 이렇게까지 바뀐 원인은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런 말 하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가정교육이 바로서지 못해서 그래요. 윗사람 앞에서 자신을 지칭하면서 ‘저’라고 하지 않고 ‘나’라고 하질 않나, ‘수고하세요’라고 하질 않나. 그런 말은 어른한테 쓰면 안 되는 말이거든요. 다들 자녀를 하나만 낳으니까 과보호를 해서 그래요. 자녀가 어릴 때야 엄마가 따라다니며 뒤치다꺼리를 한다지만 중고생이 되어서까지 그런다는 건 잘못된 거죠. 
중고교 때 학생들이 통제불능이에요. 학원에서는 열심히 공부하고 정작 학교 오면 자거나 떠들고. 그렇다고 체벌을 가할 수도 없어요. 112에 신고하거나 사진을 찍으니까.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대학으로까지 이어지는 거죠. 우리 어릴 때만 해도 단체기합을 끼고 살았는데.

>>대학생들이 어떻게 바뀌길 원하십니까? 그들을 향한 바람이 있다면?
저는 ‘자유를 줄 테니 자율적으로 하라’는 말로 새 학기 첫 수업을 시작합니다. 시험을 칠 때도 학생들 스스로 문제 두 개를 내고 답을 쓰게 할 정도였어요. 그런데 요즘 학생들은 취업준비나 스펙쌓기에만 치중하고, 수업분위기가 아주 흐려졌어요. ‘내가 전공과목을 맡지 않아서 그런가? 시험문제 철저하게 내고, 레포트 과제 많이 내주는 식으로 몰아치면 학생들을 휘어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회의가 들 때가 있어요. 하지만 그것이 지성인들의 집단인 대학에서 옳은 방법인지 혼란스러워요. 
공부하는 것도 그래요. 공부란 원래 혼자 힘으로 하는 겁니다. 저도 옛날에 대학입시 공부할 때 수학문제 하나를 놓고 종일 씨름한 적도 있어요. 절대 답을 보지 않았어요. 그런데 동영상 수학강좌를 보니 선생이 다 풀어주더군요.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밥도 자기가 씹어 먹어야 하듯, 공부도 자기 힘으로 끝까지 해야 의미가 있죠. 
무엇보다 교권이 무너진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봅니다. 우리 대학 다닐 때만 해도 교수님 보기를 하늘 같이 알았어요. 교수님 말에 야유를 하거나 토를 단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어요. 불만사항이 있어도 제대로 말도 못하고, 심지어 학점 정정기간도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앞서 말한 것처럼 학생들이 강의평가를 통해 교수들을 장악하는 시스템도 재고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마 교수는 자신이 고수해 온 ‘자유를 주면 자율이 생긴다’는 원칙이 더 이상 교육현장에서 통하지 않는 현실이 안타까운 듯했다. 문득 ‘Freedom is not free자유란 공짜가 아니다’라는 격언이 생각났다.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뒤따르는 법이다. 
학생學生은 말 그대로 배우는 입장에 있는 사람이다. 배우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배우려는 준비와 자세를 갖춰야 함은 물론, 스승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건 기본 아닐까? 인터뷰를 마치며 든 생각이었다.

///김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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