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11월 2024 >>
     12
3456789
10111213141516
17181920212223
24252627282930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보물 + 뒷간

[작문써클선생님들께] -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가문은?...
2017년 10월 31일 01시 01분  조회:5093  추천:0  작성자: 죽림

                    노벨상 수상자 배출한
               인도 교육명문 - 타고르 가문

엄청난 재력을 소유한 타고르의 할아버지는 캘커타에 교육 시설을 세웠고 종교 개혁가이자 사업가였던 타고르의 아버지는 문화예술의 후원자였다. 캘커타의 르네상스를 연 가문에서 태어난 타고르는 어린 시절 학교교육에 적응하지 못해 졸업장을 받지는 못했지만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던 아버지와의 히말라야 여행을 통해 자신의 재능을 키울 수 있었다.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가문은 어떤 자녀교육을 했을까?



여느 날 아침보다 한 시간이 더 지나도 하인이 오지 않았다. 타고르는 시간이 갈수로 점점 화가 났다. 그는 하인에게 줄 여러 가지 벌을 생각했다. 세 시간이 지나자 타고르는 벌에 대해서는 그 이상 더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이제 여러 말 않고 해고시켜서 내쫓기로 마음먹었다. 한낮이 되자 마침내 하인이 나타났다. 하인은 말 한마디 없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을 했다. 타고르는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소리를 버럭 질렀다. “다 그만 두고 나가!” 하인은 그제야 뒤돌아서서 마지막 인사를 올린 후 “정말 죄송합니다. 어젯밤 제 딸년이 죽었습니다”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캘커타의 르네상스 연 타고르가
타고르는 하인의 말을 듣고 경솔했던 자신을 크게 책망했다. 부끄러워 하인을 볼 수 없었다. 이 충격적인 일이 있은 후 타고르는 어떠한 경우라도 상대방의 사정을 알아보지 않고는 남을 탓하거나 독단적인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고 한다. 

동양인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라빈드라나드 타고르(1861~1941)도 한 사람의 평범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그가 하인에게 화를 낸 이 일화는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게 하는 에피소드이다.

타고르 가문은 우리나라 경주 최부잣집이나 이탈리아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과 같이 엄청난 재력을 가진 양반계급의 부자였다. 타고르가는 인도의 명문가였지만 종교적 요인으로 브라만 계급에서 추방당했다가 타고르의 할아버지가 캘커타의 대부호가 되면서 가문의 명예를 되찾았다. 타고르의 할아버지 드와르카나드는 자선 활동뿐만 아니라 캘커타 국립도서관과 캘커타주립대학을 세웠으며 캘커타 최초의 병원과 의과대학 설립에도 큰 기여를 했다. 현재 이 대학은 인도 의학교육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세 아들을 두었는데 장남이 바로 시인 타고르의 아버지인 데벤드라나드 타고르이다. 데벤드라나드는 종교 개혁가이자 사상가였다. 그는 사업수완을 이어받아 사업가로서 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의 후원자 역할도 물려받았다. 그의 대저택에는 늘 시인과 학자, 종교개혁가, 철학자, 무용가 등 예술인, 화가와 천재들이 몰려들었다. 음악가들이 초대되어 연주회도 끊이지 않았다. 즉, 타고르의 할아버지에 이어 아버지도 캘커타의 르네상스를 연 후원자 역할을 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사업수완과 문화예술에 대한 후원 등을 배우고 자란 타고르는 정치가로서 뿐만 아니라 예술가, 문학가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존경받는 부자의 모범을 보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주 최부잣집은 12대 300여 년 동안 재력을 바탕으로 주변의 가난한 이웃들을 도왔다.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은 엄청난 재력을 바탕으로 15세기에서 18세기 초반까지 300여 년 동안 피렌체를 다스렸을 뿐만 아니라 예술인들을 지원해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열었던 것이다. 타고르가는 바로 인도의 메디치가라고 할 수 있다.

‘왕따’가 근대교육의 기틀 만들어
타고르가를 보면 우리나라 대부분의 명문가들처럼 3대에 걸친 노력과 헌신으로 명문가로 발돋움 했고 그 중심에는 사회에 대한 기여와 함께 남다른 자녀교육의 열정이 있었다.

어린 시절 타고르는 학교에 대해서 좋지 않은 기억을 갖게 되었다. 타고르는 7살이 되기도 전에 당시 명문가들이 그렇듯이 가정교사를 두고 공부를 했다. 학교에 입학한 타고르는 얼마 안 돼 선생님에게 그만 크게 실망하고 말았다. 선생님은 늘 짜증을 내거나 신경질적이었고, 학생들을 편애하거나 불공평하게 대했다. 타고르는 유년시절 학교교육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14살 때 학교를 그만두었다. 타고르는 17살에 영국에 유학을 갔지만 거기서도 적응을 하지 못했다. 타고르는 단 한 개의 졸업장도 따지 못했다. 

이는 타고르가 평생 교육문제에 심혈을 기울이게 된 계기가 되었다. 타고르의 학교에 대한 좋지 않은 추억이 오히려 인도 국민들에게는 약이 되어 인도 근대교육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초석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또 ‘왕따’를 당했던 타고르를 동양인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로 만든 것은 아버지의 지혜 덕분이었다.

먼저 타고르를 키운 것은 학교가 아니라 집이었다. 학교교육을 그만 둔 타고르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다름 아닌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당시 캘커타의 문화예술인들을 초청해 거의 매일 산스크리트어 경전과 철학, 과학에 대한 토론을 벌였다. 한쪽에서는 인도의 전통 음악이 연주되었다. 타고르가의 응접실은 어린 타고르에게 ‘살아있는 학교’ 그 자체였다. 또한 타고르는 집에서 독서를 통해 학교에서 배우는 것보다 더 많은 지식과 사상을 흡수했다. 집은 타고르에게 더할 나위 없는 산교육의 장소였다. 음악가이자 사상가, 수학가인 형들(타고르는 14남매 중 막내)의 도움도 컸다. 

타고르 아버지의 이러한 자녀교육으로 형제들은 대부분 자신만의 재능을 폈다. 형제들은 각자 화가와 시인 또는 음악가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타고르의 큰형은 시인이자 음악가, 철학자, 수학자이면서 사상가로 타고르에게 큰 영향을 준 인물이다. 둘째 형은 인도 고등문관(고시)을 통과한 최초의 주인공으로 산스크리트 학자였다. 다섯째 형은 음악가이자 시인, 극작가, 화가로 이름을 날렸고 다섯째 누나는 음악가이자 작가로서 벵골 최초의 여류 소설가였다. 

우연인지 몰라도 막내 가운데 위대한 인물들이 많다. 우리나라는 퇴계 이황은 8남매 중 막내였고, 톨스토이는 4남 1녀 가운데 4남으로 태어났다. 공자는 이복형제가 10남매 있었고 아들을 원한 아버지가 세 번째 부인을 맞이해 낳았다. 공자 역시 막내인 셈이다. 세계적인 가족기업인 발렌베리 그룹을 일군 안드레 발렌베리도 막내였다. 300년 가까이 음악명문가를 이룬 바하는 8남매의 막내다. 이는 막내의 경우 성장기를 통해 형들로부터 지적 자극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풀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집안의 분위기에서 자란 타고르는 동양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한 시집 〈키탄잘리〉를 비롯해 소설, 단편, 희곡, 평론, 전기, 철학, 종교 등 다양한 분야에 관한 책을 냈다. 또 뮤지컬을 비롯해 2000여 곡의 음악뿐만 아니라 인도와 방글라데시의 국가도 작곡했다. 그림에 대한 열정도 남달라 수채화 3000여 점을 남겼다.

성공의 원동력 된 히말라야 여행
어린 시절 어린 타고르에게 가장 영향을 미친 결정적인 사건은 아버지와 떠난 4개월 동안의 히말라야 여행이었다. 타고르는 11살 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와 함께 여행길에 올랐다. 타고르 부자가 처음 도착한 곳은 샨티니케탄으로 후일에 타고르의 대안학교가 세워져 세계적으로 알려진 바로 그곳이다. 아버지는 그곳에서 먼저 아들에게 대자연의 한가운데서 우주의 신비와 무한한 상상력을 맛보게 했다.

아버지는 이미 샨티니케탄에 땅을 사둔 상태였다. 타고르가 태어난 후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는 캘커타에서 약 100마일 정도 떨어진 샨티니케탄의 친구집을 가다 광대한 평원을 접했다. 그는 그만 그 광경에 압도당하고 말았다. 그는 결국 그 땅을 친구로부터 사들였다. 요즘처럼 단순히 땅 투기를 하려고 한 게 아니었다. 그는 그곳에 집을 짓고 ‘평화의 집’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미래에 타고르 가문이 학교를 세운 교육도시 샨티니케탄은 그의 아버지에게서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가 첫 여행지로 타고르를 데리고 샨티니케탄에 들른 것은 아들을 위해 미리 계산된 여정이었던 것이다. 

다음으로 아버지는 그 여행지에서 타고르에게 산스크리트어나 영어로 된 문학작품을 가지고 가서 읽게 했다. 그리고 밤하늘에 찬란한 별들이 빛나기 시작하면 아버지는 아들에게 우주의 신비로움 등 천문학을 들려주었다. 

아버지는 여행지에서 타고르에게 특별한 체험을 하게 했다. 그것은 자신의 아버지가 그랬듯이 상인집안의 후예답게 돈에 대한 책임감을 길러주기 위해 여행경비를 관리하게 하는 것이었다. 돈지갑을 맡기고 매일 지출을 적게 하면서 아들에게 어릴 때부터 경제교육을 한 것이다. 할아버지가 상업으로 거부가 된 가문답게 어릴 때부터 돈 관리 교육을 철저하게 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실전경험만큼 소중한 것이 없다. 

타고르 부자는 히말라야로 가는 도중에 시크교도의 성지에도 오래 머물렀다. 인도는 불교뿐만 아니라 힌두교의 발상지이다. 또 힌두교와 이슬람의 신비사상을 접목한 시크교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다양한 종교로 인해 종교 간 갈등이 심한 인도에서는 다른 종교에 대한 이해와 존중심이 중요하다. 다른 신을 존중하는 것은 갈등을 해결하는 중요한 길이기 때문이다. 

종교 개혁가였던 타고르의 부친은 아들에게 시크교의 황금사원을 참배하고 때로는 신도들의 모임에 참석해 찬송가를 불렀다. 이는 후일 타고르의 사상에 큰 영향을 주었음은 물론이다. 아이에게 종교에 대한 포용성을 갖게 해주는 것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존중하게 하는 기본적인 덕목이라고 할 수 있다.

여행 중에도 계속된 자녀교육
집을 떠나 한 달간 여행을 한 타고르 부자는 4월 초봄에 히말라야에 도착해 3개월을 보냈다. 해발 2000m 고지의 산장에는 작은 마을이 있었다. 그곳은 온통 히말라야 삼나무로 울창했고, 소년에게는 처음 보는 꽃들로 가득했다. 눈을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면 그곳에는 흰 눈에 덮인 히말라야 봉우리의 신비스런 모습이 눈앞에 다가왔다. 11살 소년은 대자연의 신비로움에 매료돼 절로 경탄의 감정이 일렁거렸다. 소년 타고르는 히말라야의 아름다움과 웅대함에 빠졌고, 대자연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여행의 목적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 소년은 대자연의 신비와 경이로움을 호흡하게 하면서도 아침이면 어김없이 일찍 일어나 공부하게 했다. 대자연속에서 뛰놀게 하면서도 교만이나 나태함, 게으름을 피우지 않게 자녀교육에 나선 것이다. 

타고르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정신을 차린 후에 인도의 고대 언어인 산스크리트어 공부를 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기원전 1000년 전에 산스크리트어로 쓰인 〈우파니샤드〉를 읽었다. 아버지가 낭송하면 소년은 이를 들으면서 음률을 듣게 했다. 이어 태양이 떠오를 때쯤 아버지와 아들은 히말라야의 정기를 호흡하면서 아침 산책에 나섰다. 산책에서 돌아오면 아버지는 아들에게 다시 영어를 가르치고 히말라야의 눈을 녹인 찬물에 목욕을 하게 했다. 오후에도 수업을 진행하며 마냥 놀게 하지 않았다. 히말라야의 대자연으로 여행을 가서도 아버지는 아버지의 교육방침대로 아들을 교육했던 것이다. 

요즘 자녀들과 함께 세계일주 여행에 나서는 일부 부모들의 경우 여행 그 자체만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년이나 6개월 혹은 한 달 등 기간을 잡아 해외여행을 하더라도 타고르의 아버지와 같이 대자연속에서 모험을 체험하게 하면서도 정해진 계획이나 원칙에 따라 공부하는 여행을 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여행이나 모험의 경험만 강조하다보면 단순한 여행으로 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무리한 일정으로 심신이 지쳐 제대로 여행을 못하는 경우도 있다. 

아버지와 함께 한 대자연속에서 머문 4개월 동안의 모험여행은 소년 타고르에게는 가장 행복한 날들이었다. 특히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타고르에게 아버지는 최고의 스승이 되어주었다. 그는 아버지를 통해 학교에서 배워야 했던 모든 것들을 짧은 4개월간의 여행기간에 배울 수 있었다. 캘커타에 돌아온 소년 타고르는 더 이상 4개월 전의 철없는 소년이 아니었다. 

요즘도 도보로 전국 산하를 누비면서 극기여행에 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방학에는 초등학생 대상의 도보체험도 있다. 이러한 여행을 다녀오면 아이들이 훌쩍 자란 것을 볼 수 있다. 인내심과 책임감이 강해질 뿐만 아니라 단체 활동에서 오는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심도 높일 수 있다. 아이들은 여행을 하면서 온몸으로 체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한 단계 성숙한 아이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아버지와 함께한 타고르의 여행은 훗날 그를 시인이자 사상가, 교육가로 만들게 한 원동력이 됐다. 아버지에 대한 무한한 존경과 신뢰, 대자연에서 호흡한 경이로움, 아버지로부터 흡수한 지식에의 열정, 종교에 대한 이해와 인간에 대한 배려 등은 모두 이 여행에서 비롯되었다고 타고르는 훗날 회상했다. 

100년 전 대안교육 시작한 교육가
타고르의 아버지는 여행지에서 타고르로 하여금 자유롭게 자연과 호흡하게 했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히말라야 산장에서조차 영어수업을 직접 할 정도로 자녀교육에 원칙과 목적을 가지고 실천했던 것이다. 이러한 자녀교육으로 타고르 가문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3대째 타고르라는 큰 인물을 배출했다. 그리고 타고르는 인도에 근대교육을 뿌리내리게 하면서 시인뿐만 아니라 교육가로도 큰 명성을 얻게 됐다. 현재 캘커타의 중심부에 있는 타고르의 저택은 대학교로 변모했다. 또 샨티니케탄은 인도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대안교육도시로 각광받고 있다. 

타고르는 샨티니케탄에 우리나라의 ‘간디학교’와 같은 대안학교를 이미 100여 년 전에 세워 자연 속에서 교육을 시작했다. 그는 1901년 그곳에 학교를 세우고 그의 다섯 자녀를 비롯해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1921년에 비슈바바라티대학교로 확대되어 동양과 서양의 문화를 연구하는 대학으로 발전했다. 특히 이곳에서 두 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타고르가 1913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데 이어 빈곤 문제로 아마르티아 센(Amartya Sen)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1998년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또 세계적인 영화감독, 예술가들이 이곳 출신들이다. 

오늘날 교육이 단순히 획일적인 인간보다 창의적인 인간을 원한다고 볼 때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배우며 상상력을 키우는 샨티니케탄은 그 어느 곳보다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아이들은 규제보다 자유로운 분위기에 더 궁합이 맞다. 억압하는 분위기가 아니라 상상력을 자극하는 분위기에서 더 성숙하는 것이다. 

자녀교육은 성적이 아니라 ‘원칙’이 중요하다. 아이에게 상상력을 키워주면서 지식을 풍부하게 해야 한다. 원칙만 있다면 아이가 입시나 성적 지옥에서 벗어나 독서와 다양한 산 체험을 통해 재능을 키울 수 있다. 아이들의 성적이 뒤처져 고민에 빠져있는 부모라면 한번쯤 노벨상 수상자를 두 명이나 배출한 타고르의 샨티니케탄을 떠올려보자. 그곳에 해법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끝으로 프랑스의 사회학자 르 드블레는 어머니와 자녀 간의 친밀한 관계를 ‘신비적인 관계’라고 표현했다. 아버지와 아이의 관계가 서먹서먹하다면 타고르처럼 아빠와 자녀만의 여행이나 등산을 떠나보자. 부자유친과 함께 아이에 대한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최효찬 자녀교육 컨설턴트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117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1677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곰같은 개"야, 마음껏 뛰여 놀아라... 2017-12-19 0 3485
1676 "축구의 고향"답게 연변 축구심판원들 전국무대 주름잡다... 2017-12-19 0 3045
1675 [그것이 알고싶다] - 윤봉길, 그는 누구인가?... 2017-12-19 0 4503
1674 "연변주조선어문사업위원회 정책규범처"라는 부서가 있구만... 2017-12-19 0 3330
1673 "세상의 모든 작가들은 모두모두 불쌍한 눔들이라니깐"... 2017-12-19 0 3660
1672 [쉼터] - 남극아, 나와 놀쟈... 2017-12-19 0 4274
1671 [타산지석] - 추운 년말에 주위를 훈훈하게 한 익명 기부자... 2017-12-19 0 4721
1670 [고향교정소식] - 민족심, 애국심, 희망찬 미래인, 그리고 詩碑 2017-12-19 0 3490
1669 [쉼터] - 간장, 된장 그림 만화... 2017-12-19 0 4881
1668 [그것이 알고싶다] - 한복과 한복 장신구 알아보기?!... 2017-12-19 0 3284
1667 그림을 판 돈으로 술을 퍼마셔대다... 2017-12-17 0 4354
1666 불가사의한것은 피라미드가 아니라 집요한 인간의 탐욕이다... 2017-12-17 0 5305
1665 [그것이 알고싶다] - "화투" 유래?... 2017-12-17 0 3547
1664 [그것이 알고싶다] - 중국과 한국 대학 입시 비교?... 2017-12-16 0 4884
1663 [그것이 알고싶다] - "막걸리" 뚜껑의 비밀?... 2017-12-16 0 4394
1662 [이런저런] - 예루살렘, 그 어떤 나라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2017-12-16 0 10088
1661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멧돼지 출몰" 남의 일이 아니다... 2017-12-16 0 3455
1660 시와 시인, 시인과 시 그리고 밥... 2017-12-16 0 4529
1659 [그것이 알고싶다] - 명왕성 발견자 명왕성 가다... 2017-12-16 0 3198
1658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소똥구리" 없는것 그저 일이 아니다... 2017-12-15 0 4593
1657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은???... 2017-12-14 0 3553
1656 [작문써클선생님들께] - 생활영어 2017-12-14 0 3705
1655 [타산지석] - 제도의 생명력은 집행에 있다... 2017-12-14 0 4459
1654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꿀벌 실종사건", 남의 일이 아니다... 2017-12-14 0 4952
1653 [문단유사] - 시비(詩碑)로 인한 시비(是非)는 언제나 있다... 2017-12-14 0 3340
1652 [연변 유적비 순례] - "나의 행동이 나의 유언이다" 2017-12-14 0 3506
1651 [그것이 알고싶다] - "노을" 은 어떻게 생기나ㅠ?... 2017-12-13 0 3452
1650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거부기야, 맘껏 놀거라... 2017-12-13 0 4518
1649 [타산지석]우리 연변에도 "사랑의 아저씨" 경비원이 있었으면... 2017-12-12 0 4346
1648 [이런저런] - 99쌍 = 36쌍 2017-12-12 0 3684
1647 [쉼터] - 한복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꽃... 2017-12-12 0 3421
1646 [록색문학평화주의者] - 당나귀야, 그만하고 쉬여라... 2017-12-12 0 3194
1645 [이런저런] -"동상이 웟째 마라도나를 별로 닮지 않았다카이"... 2017-12-12 0 3324
1644 [이런저런] - 연변식 "아바이" "아매"?!... 2017-12-12 0 3213
1643 [그것이 알고싶다] - "쇠뇌"?... 2017-12-12 0 4694
1642 [타산지석] - 우리 연변에도 "자매, 형제" 예술단 많이 있어야... 2017-12-12 0 3466
1641 [쉼터] - "우호사절" = "평화사절" 2017-12-12 0 3228
1640 독서는 마치 공원을 거닐듯 즐기라... 2017-12-12 0 4800
1639 [동네방네] - 아깝게 타버린 아시아 최고의 목탑 2017-12-12 0 3601
1638 [그것이 알고싶다] - 지진 진도?... 2017-12-11 0 3378
‹처음  이전 32 33 34 35 36 37 38 39 40 41 42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