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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적 없는 남극 펭귄 경계심 낮아
살금살금 걸어가 잠자리채로 포획
수심기록계 회수하러 다가갔더니
순간 뒤돌아 도망가는 젠투펭귄
펭귄 인지력은 사람 알아볼 정도
펭귄에게 위치추적기나 수심기록계를 부착하려면 반드시 포획해야 한다. 동물의 몸에 부착한 기기로부터 수집한 자료를 받을 수 있는 기기도 있지만 대부분의 기기들은 해당 장치를 직접 수거해야 자료를 얻을 수 있다. 또 1회용이 아닌 기기들은 충전해서 다시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같은 개체를 두 번 이상 포획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남극 동물들은 인간에 대한 경계심이 매우 낮은 편이다. 오랜 진화의 역사 동안 인간을 경험해본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또 남극에는 북극곰 같은 육상포식자가 없기 때문에 물범과 펭귄이 마음 편히 눈 위에서 낮잠을 자기도 한다. 덕택에 연구자들도 일하기 한결 수월하다. 살금살금 걸어가서 커다란 잠자리채로 낚아채기만 하면 원하는 펭귄을 얼마든지 잡을 수 있다. 특히 번식기에 찾아가면 펭귄들이 둥지에서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기 때문에 양손으로 슬쩍 들어 올리면 끝이다.
하지만 2015년에 만났던 젠투펭귄 ‘G12B’는 달랐다. 이 부호는 젠투펭귄(Gentoo penguin)의 ‘G’, 12번째로 잡혀서 ‘12’, 검은 테이프(Black tape)로 표시해 ‘B’를 차례로 붙여줬다. 다른 펭귄들처럼 붙잡아 수심기록계를 달아주고 1주일 뒤 수거를 위해 둥지에 갔는데 보이지 않았다. 죽었거나 실종된 줄 알았는데 새끼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었다. 보름이 지나자 조급해졌다. 번식기가 끝나면 장비와 데이터를 함께 잃어버릴 수도 있다.
펭귄이 자주 다니는 언덕에서 기다렸다. 정신 없이 눈 위를 걸어서 올라오던 펭귄과 길목에서 마주쳤다. 순간 펭귄이 뒤를 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나도 함께 달렸다. 잠자리채를 들고 정신 없이 눈밭을 뛰었지만 펭귄이 더 빨랐다. G12B가 헤엄쳐 달아난 바다만 망연자실 바라봤다.
그 후 펭귄의 조심성이 더 강화됐다. 다음에 만났을 때 이미 100여m 밖에서 나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어느 덧 장비를 부착한지 3주가 지났고 녀석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 것 같았다.
펭귄번식지에 간 적이 없는 동료연구자에게 부탁했다. 모든 인간에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괴롭혔던 특정인만 싫어하는 거라면 다른 사람이 갔을 때 다르게 반응할 것으로 생각했다. 다행히 예상이 들어 맞았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G12B는 느슨하게 경계심을 풀고 둥지 근처에 누워 있었다고 한다. 비록 직접 잡지 못했지만 그렇게 동료의 도움을 받아 수심기록계와 데이터를 무사히 수거할 수 있었다.
펭귄은 사람을 알아보는 걸까. 속단하기에 이르지만 적어도 G12B는 나와 내 동료를 구분했던 것 같다. 펭귄의 인지능력을 확인하기 위해, 그웰프대학의 행크 데이비스 교수 연구팀은 뉴욕 센트럴파크 동물원에 있는 젠투펭귄 27마리를 대상으로 시험을 해봤다. 펭귄들은 매일 2시간 이상 사육시설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 익숙한 사람과 처음 시설에 온 새로운 사람을 보여주자 대부분 익숙한 사람에게로 갔다.
펭귄은 겉모습 때문에 종종 멍청하다고 오해를 사지만 그렇게 어수룩하지 않다. 괴롭혔던 인간을 피해 도망갈 줄 알고 먹이를 주는 사육사도 쉽게 구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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