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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아프지 말고 꼭 다시 만나.”
“몸조심하고, 나중에 봐.”
26일 아침 7시40분께 강릉 올림픽선수촌 앞 웰컴센터는 울음바다가 됐다.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북한 선수들이 20m 거리 앞의 버스까지 이동하는 데 10분이 걸렸다. 배웅 나온 남한 선수들은 북한 선수들과 부둥켜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세라 머리 총감독과 박철호 북한 감독도 울며 포옹했다. 버스에 타자, 창문이 열렸고 선수들은 다시 손을 뻗어 잡으며 이별의 아픔을 달랬다. 대한아이스하키협회 관계자는 “누가 선수들을 울게 하나요? 정말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지난달 25일 북한 선수 12명이 충북 진천선수촌에 합류할 때만 해도 2018 평창올림픽의 최대 유산은 평화올림픽이라는 것을 실감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국내 여론이나 팀 내부 반발까지 남북 단일팀의 성공 여부는 불확실했다. 23일 강릉 올림픽파크 내 코리아하우스에서 만난 머리 총감독은 “올림픽을 보름 앞두고 단일팀이 구성돼 걱정과 불안이 많았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남북 단일팀은 평창올림픽 성공의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었다. 올림픽 개최 이후의 유산을 중시하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평창 대회를 평화올림픽으로 기록할 것이 확실하다. 단일팀의 B조 리그 일본전 첫골 퍽은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명예의 전당에 보관된다. 단일팀 경기를 지켜보던 외국 기자들이 단일팀을 응원하던 모습도 새록새록하다.
머리 총감독은 팀을 하나로 묶는 작업을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단일팀이 20일 스웨덴과의 7~8위전 패배로 올림픽 여정을 끝냈을 때 선수들은 서로 껴안고 위로했고, 25일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주재한 오찬에서도 많은 선수들이 울었다. 머리 총감독은 “같은 코리아의 피가 흐르지 않나. 처음엔 내부 반발이 있었지만 밝고 순수한 북한 선수를 만나더니 마음이 변했다. 우리는 금세 하나가 됐다”고 설명했다.
머리 감독의 영어를 우리말로 옮기고, 북한 선수들에게도 전했던 조수지 선수는 “처음에는 화법과 억양이 달라 혼란스러웠지만 그들의 순수함을 알고는 마음으로 다 통했다”고 했다. 머리 총감독은 남북 선수들을 한 식탁에 모으고, 생일파티를 열어주고, 공정하게 대하면서 신뢰를 얻었다. 70개 이상의 남북 아이스하키 용어를 담은 프린트를 나눠주자 남한 선수들은 북한의 용어를, 북한 선수들은 남한의 용어를 외우고 익혔다.
17살 고교생 3인방인 이은지, 김희원, 엄수연은 “선입관과 다른 북한의 언니들을 알게 됐다”고 고백했다. 셋은 지난해 4월 강릉에서 열린 국제아이스하키연맹 세계대회 때 북한팀을 만난 적이 있다. 각국 선수단이 묵는 호텔 뷔페 식당에서 북한 선수들을 만났을 때는 차가웠다. 단일팀 수비수 김희원은 “지난해에는 아는 체를 해도 냉랭했는데 이번엔 친언니처럼 잘해주었다”고 했다. 부상으로 본선에 뛰지 못했던 공격수 이은지는 “북한 언니들이 나에게 ‘재미지게 생겼다’고 했다. 언니들한테 장난을 많이 쳤다”고 소개했고, 수비수 엄수연은 “북한 언니들이 나를 ‘깜찍하게 생겼다’며 귀여워해줬다”고 말했다.
단일팀에서는 남북 당국의 통제가 통하지 않았다. 함께 생활하는 공간이나 10~20대 청년들의 소통까지 침해할 수 없다. 지난해 세계대회 남북전 때 엄수연이 강하게 때린 퍽에 목 부위를 맞았던 북한의 정수현은 엄수연에게 농담도 걸었다. 엄수연은 “수현 언니가 목 부분을 가리키며 ‘그때 너 때문에 크게 부어서 밥도 못 먹었다’고 했다. 내가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고 다시 사과를 하자 언니가 크게 웃었다”고 얘기했다. 경기 전 라커룸에서 큰 소리로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춰도 같이 어울리고, 2014 소치올림픽 아이스하키 결승전을 주제로 얘기해도 막히지 않았다.
갓난아기 때 미국의 가정에 입양된 박윤정은 북한 선수들과의 만남이 매우 특이한 경험이었다. 그는 “4년 전 한국 대표팀에 뽑혔을 때 나는 아무래도 이방인이었다. 이번에 북한 선수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외부인이라는 감정을 느낄 것으로 생각했다. 남쪽으로 내려와 합류하는 선수들의 어려움을 생각해 더 적극적으로 북한 선수들과 친해지려고 노력한 것 같다”고 했다. 또 “올림픽 기간 중 경포해변에서 남북의 선수들이 머리 감독을 물에 빠뜨리려 했고, 카페에서 차를 함께 마셨던 기억들이 새롭다”고 돌아봤다.
단일팀의 경기력 측면은 연구 과제다. 올림픽 첫 출전 대회에서 단일팀은 5패로 최하위인 8위로 마감했다. 세계 22위 남한, 25위 북한팀의 실력을 고려하면 다른 팀과의 격차는 당연했다. 그렇다면 감독이 보는 단일팀 전력은 어땠을까? 머리 총감독은 “북한 선수들 12명이 남한팀에 합류하면서 그동안 경쟁 무풍지대였던 대표팀 분위기가 바뀌었다. 살아남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위기의식을 불러온 점에서는 긍정적”이라고 했다. 단일팀에는 북한 선수가 경기당 3~4명씩 들어갔고, 나머지는 남한 선수들이 채웠다.
단일팀을 지휘하면서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진 머리 총감독은 앞으로 2년간 더 한국대표팀을 맡는다. 2022년 베이징올림픽에는 현재의 8개 팀보다 많은 12개 팀으로 진출국 수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대한아이스하키협회는 베이징 대회 출전을 위한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이 올림픽에 진출하기는 쉽지 않고, 더욱이 남북 단일팀을 구성하는 것은 남북관계 변수에 얽매여 있다. 그럼에도 머리 총감독은 “두 나라의 선수들을 하나로 엮어 훈련시키면서 배운 게 많았다. 북한에서 초청하면 언제든 달려가 북한 대표팀 선수들을 위한 단기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머리 총감독이 단일팀을 지도하면서 기억에 남는 북한말로 ‘문지기’를 꼽았다. 그는 문지기를 우리말로 발음하면서 웃었다. 이어 한국 생활을 하면서 익힌 좋아하는 말로 ‘거북이’를 들었다. 머리 총감독이 이끈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이 남북 간 대치 해소를 위한 먼 장정에서 ‘거북이의 첫걸음’이 될지도 모른다.
///강릉/김창금 김성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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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히 가 언니. 그만 울어요, 안 울기로 했잖아.”
26일 강원도 강릉 올림픽선수촌에서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이 ‘석별의 정’을 나누자 분단의 벽은 허물어졌다. 이날 새벽 북한으로 떠나는 선수들을 기다리던 한국 선수들은 살을 에는 칼바람에 볼이 빨갛게 물들었다. 일부 선수는 미리 준비한 인사말을 연습하기도 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이 성황리에 종료된 다음날인 26일 북한의 응원단, 선수단, 취재기자, 수행원 등 299명이 밝은표정으로 파주 남북출입사무소를 통해서 북으로 출경하고 있다. 파주=사진공동취재단 |
2018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에 참가한 북한 선수가 26일 강릉선수촌을 출발하는 버스에 올라 남측 선수와 손을 잡고 작별을 아쉬워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충북 진천 국가대표선수촌에 도착해 한 달 남짓 함께한 남북 선수들은 “꼭 다시 만나자”는 말과 함께 눈물로 이별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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