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물어 볼/ 이야기가 몇 가지 있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을/ 사랑했는지에 대해 물을 것입니다/ 그때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대답하기 위해/ 나는 지금 많은 이들을 사랑해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 때 얼른 대답하기 위해/ 지금 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말과 행동을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삶이 아름다웠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 때 기쁘게 대답하기 위해/ 지금 내 삶의 날들을/ 기쁨으로 아름답게 가꿔가야겠습니다 (후략)
지난 주말 MBN을 보다가 회사 이미지 광고로 이 시의 일부를 인용하면서 저자를 윤동주 시인이라고 밝힌 걸 목격하고 깜짝 놀랐다. 이 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서시’와 ‘별 헤는 밤’의 그 윤동주 시인의 작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시의 작자를 잘못 표기할 경우 현존 시인에겐 정신적 고통을, 윤동주와 같은 민족시인에게는 명예에 큰 손상을 가져올 수 있으므로 사실 관계를 밝히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또 마땅하다. 나도 유사한 사례로 인해 곤란을 겪은 일이 있다. 먼저 글에서 좀 간지럽고 오글거리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아무리 윤동주 시인이 요절하여 20대의 청춘만을 살다간 시인이지만 그의 삶과 대표작 몇 편을 알고 좋아하는 ‘정상적인’ 독자라면 미심쩍은 생각이 들어야 온당하다. 학교에서 입시 위주의 교육을 받는 대신 시를 제대로 감상하는 시간만 가졌더라도 시의 어조에서 어렵지 않게 의문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우선 내용의 상투성(물론 나쁜 글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아니지만)이 느껴진다. 그리고 표현기법의 얼개가 얼핏 윤동주의 분위기를 연상케도 하지만 자세히 보면 주제의 심오함이 현격히 떨어져 윤동주 시인의 시와는 거리가 멀고 동시대와 어울리지 않는 ‘상처’ 운운 등의 표현도 눈에 거슬린다. 윤동주 시인은 1945년 사망하여 생전엔 시집을 묶어내지 못하고, 1948년 유고시집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출간되었다. 이후 여러 판본의 ‘윤동주 시집’이 나왔으나 그 어느 시집 목록에도 같은 제목의 시는 없었다. 그동안 인터넷뿐만 아니라 일부 언론과 책에서도 윤동주의 시라면서 인용된 사례가 있었다. 윤동주를 연구하는 분이 적지 않고 확실히 정리해 매듭을 짓자고 한다면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닐 것이다. 더구나 모교인 연세대학교 측이나 ‘윤동주 기념사업회’ 등도 이 문제를 잘 인지하고 있다고 들었다. 몇 년 전 한국일보 논설고문인 임철순 선생께서 인터넷한국일보에 ‘그건 윤동주의 시가 아니다’라는 칼럼을 쓴 바도 있다. 그럼에도 오류가 방치된 채 인터넷을 중심으로 지금껏 유포되고 방송사에서 그걸 회사 이미지 광고에 인용한다는 것은 여전히 문제의 심각함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의 원작자가 ‘좋은 생각’ 정용철 발행인이란 설도 있고 뇌성마비 장애시인 김준엽이란 말도 있다. 어쩌면 동명이인의 한 젊은 여성의 글인지도 모르겠다. 이참에 진위가 밝혀지길 바란다.
지금 ...라고 말하고 있다. 원통한 죽음도 모자라 ...자리매김 되고 있는 이 현실에 말로만 우리가 제일 사랑하는 시인으로 추켜세울 게 아니라 최소한 이런 식으로 욕을 보이는 일은 없어야겠다. 올해 윤동주 시인 탄생 100년을 맞아 생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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