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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까짓 1000억, 그 사람 '시' 한줄만 못해"...
2019년 11월 18일 22시 37분  조회:2730  추천:0  작성자: 죽림

 

 
 
▲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사랑하는 연인 나타샤를 남겨두고 홀로 먼길 떠나는 백석의 흉리는 과연 어떠했을까
ⓒ 박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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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雪國)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1968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일본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의 눈 내리는 겨울 풍경을 아름답게 묘사한 소설, '설국(雪國)'의 첫 문장이다. 환상적이고 섬세한 문체가 그려낸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겨울 풍경은 그야말로 아름다운 설경의 극치다.

함박눈이 쌓인 시골 간이역사의 하얀 겨울밤과 기차 차창에 비친 여인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눈과 기차와 여인'의 아름다움을 극적으로 표현한 소설의 첫 구절은 겨울이 되면 널리 회자되고 인용되고 있다.

백석과 자야의 사랑
 
 젊은 시절 자야와 백석
▲  젊은 시절 자야와 백석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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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설국(雪國)' 못지않게 겨울이 오면, 흰 눈이 푹푹 날리는 겨울밤이면 희미한 백열전등이 졸고 있는 옛날식 목로주점에 앉아 소주잔 기울이며 읊조리고 싶은 한 편의 시가 있다. '겨울밤의 밑바닥'을 온통 하얗게 칠해 놓은 시가 있다. '기차와 여인' 대신 순수하고 아름다운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나오는 시 말이다. 각설하고, 이쯤에서 어떤 시인지 한 번 감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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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 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한국인의 애송시 목록에 들어 있고,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백석(白石, 1912~1996)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다. 김광석이 불렀던 '이등병의 편지'를 작사 작곡한 싱어송라이터 김현성의 음반으로 나왔고, 요즘에는 동명 타이틀의 뮤지컬로도 선보였다.

여인과 흰 눈, 흰 당나귀를 통해 눈 내리는 겨울밤의 환상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시다. 아름답고 순수한 여인 나타샤와 함께 눈이 푹푹 내리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출출이(뱁새) 우는 깊은 산골 마가리(오막살이)로 들어가 방해받지 않고 사랑을 이루고 싶은 백석의 마음을 담고 있다.

어찌 백석의 마음만 그러하겠는가. 누구의 훼방도 없는 곳에서 아름다운 여인과 사랑을 이루고 싶은 것은 모든 남자들의 로망이다. 그러나 어쩌랴. 현실은, 세상은, 그리 녹록지 않다. 여러 가지로 누추하기 짝이 없다. 뾰족한 수가 없다. 혼자서 쓸쓸히 쓰디쓴 소주(燒酒)잔을 기울이는 수밖에는.

짧은 만남 긴 이별
     
시인 백석, 본명은 백기행(白夔行)이다. 1930~40년대 한국 문단을 풍미했던 모더니즘 시인이다. 김소월의 고향인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다. 조선일보 사진부 기자였던 아버지 덕에 오산중학교를 거쳐 일본 아오야마 청산학원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조선일보 기자로 활동했으며 시집 <사슴>을 비롯하여 약 백여편의 주옥같은 시를 남겼다. '모던 보이(Modern boy)'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문단 내 최고의 미남(美男) 시인으로 통했다. 1936년 함흥에 있는 영생여고에서 영어교사로 재직하던 중 운명의 여인, '나타샤'를 만난다.

어느 날 학교 교직원들이 다른 학교로 전근 가는 교사를 위해 요정(料亭)으로 송별식을 하러 갔다. 백석 옆에 문학을 이해하는 인텔리 출신의 '진향'이라는 기생이 앉았다. 둘은 보자마자 문학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빛의 속도로 가까워지며 불꽃 같은 사랑에 빠진다.

백석은 진향이 들고 다니던 이태백의 시집 '자야오가(子夜吳歌)'를 뒤적거리다가 진향에게 '자야(子夜)'라는 새로운 이름을 지어준다. 머잖아 닥쳐올 그들의 운명을 예감한 것일까. 자야오가는 전쟁터에 나간 남편의 무사귀환을 비는 여인, 자야의 애타는 심정을 담고 있는 시다.

서울에서 태어난 자야(본명 김영한 1916~1999)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와 할머니 슬하에서 어렵게 자랐다. 열여섯 살이 되던 1932년 일제 강점기 때 기생 조합인 조선 권번(券番)에 들어가 기생이 되었다. 당시 조선 정악(正樂)의 대부, 하규일의 문하에서 궁중무와 가곡을 배웠다.

문학적 감수성이 뛰어난 김영한은 '삼천리문학'에 수필을 발표하기도 했고, 훗날 중앙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하규일 선생 약전>과 <내 사랑 백석> 등의 저술을 남겼다.

백석과 자야는 결혼을 약속했다. 그러나 현실은 소주처럼 쓰디 썼다. 함흥 제일의 명문가 집안에서 기생 출신을 며느리로 받아들일 일은 만무했다. 두 사람은 서울로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벌인다. 서울에서 3년 동안 동거하며 사랑을 불태운다. 이때 백석은 여러 편의 서정시를 발표한다. 그중에서 <바다>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자야와 관련된 시다.

백석의 부모는 백석과 자야를 갈라놓을 심사로 강제로 결혼을 시킨다. 두 번이나 결혼을 시켰지만 그때마다 백석은 자야 곁으로 돌아온다. 백석은 자야에게 '만주로 떠나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자야는 백석의 구만리 같은 인생길에 걸림돌이 될 것을 염려해 거절한다.

결국 백석은 1939년 홀로 만주로 떠났고 자야는 서울에 남게 된다. 사랑하는 연인을 남겨두고 먼 길 떠나는 백석의 흉리는 과연 어떠했을까. 그렇게 두 사람은 3년간의 꿈같은 사랑을 뒤로 한채 영영 만날 수없는 긴 이별의 시간을 맞이한다.
 
 서울 성북동에 있는 길상사 극락전. 여인들이 옷을 갈아입던 곳이 기도의 도량으로 바뀌었다. 자야는 대원각을 법정스님에게 시주하며
▲  서울 성북동에 있는 길상사 극락전. 여인들이 옷을 갈아입던 곳이 기도의 도량으로 바뀌었다. 자야는 대원각을 법정스님에게 시주하며 "천억 원의 돈도 백석의 시 한 줄만 못하다" 했다
ⓒ 박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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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각 시주하고 백석문학상 제정한 자야

사랑하는 사람을 멀리 떠나보내고 서울에 홀로 남은 자야는 성북동에 있는 한식집 청암장을 사들여 요정으로 바꾼다. 삼청각, 선운각과 함께 제3공화국 시절 '요정 정치'의 본산인 대원각은 그렇게 탄생한다.

자야는 빼어난 미모와 수완으로 정·재계 거물들을 상대하며 많은 돈을 벌었지만 마음속에는 늘 백석이 자리하고 있었다. 한국전쟁으로 남과 북이 갈라지면서 북에 남게 된 백석을 평생 잊지 못한 자야는 그가 그리울 때면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애송하며 그리움을 달랬다.

그러던 1980년대 후반 자야는 법정(法頂, 1932~ 2010) 스님의 수필집 <무소유>를 읽고 크게 감명받아 법정 스님에게 "아무 조건 없이 대원각을 시주할 테니 절로 만들어 달라"라고 부탁한다. 평소 무욕을 강조하던 법정 스님은 "나는 아무것에도 매이지 않고 살아온 사람"이라며 이를 사양한다. 이후에도 자야는 뜻을 굽히지 않고 시주 의사를 밝히자 법정스님이 시주를 받아들여 1997년 '길상사(吉祥寺)'가 창건된다.
 
 길상화(김영한)가 여생을 보냈던 길상헌
▲  길상화(김영한)가 여생을 보냈던 길상헌
ⓒ 박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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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상사에 세워진 길상화(김영한) 공덕비
▲  길상사에 세워진 길상화(김영한) 공덕비
ⓒ 박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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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야가 대원각을 시주한 대가로 받은 건 염주 하나와 '길상화(吉祥華)'라는 법명이었다. 낙성 법요식 때 한 기자가 물었다. "천억 원에 달하는 재산을 시주하셨는데 아깝지 않으십니까?" 길상화는 "그까짓 천억 원, 그 사람 시 한 줄만 못해! 다시 태어나면 나도 시를 쓸 거야"라고 한 말은 유명한 일화가 되어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또한 자야는 남은 돈 2억 원을 창작과 비평사에 출연해 '백석문학상'을 제정했다. 시인 안도현과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이 문학상을 받은 바 있다.
 
 말년의 백석과 자야
▲  말년의 백석과 자야
ⓒ 백석기념사업회. 길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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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분단 이후 평양에 남아 있던 백석은 당 충성심이 약한 인민들을 숙청하는 이른바 '붉은 편지'를 받고 양강도 협동농장으로 쫓겨갔다. 백석은 그의 천재적 문학성을 인정받지 못한 채, 1996년 84세를 일기로 양강도에서 쓸쓸히 삶을 접었다.

'천억 원의 돈도 그 사람 시 한 줄만 못하다'며 백석과 그의 시에 무한한 사랑을 보였던 자야도 백석이 이승을 떠나고 3년이 지난 1999년 겨울, 첫눈이 푹푹 나리던 날 순백의 길상사 뒤편 언덕에서 흰 당나귀 타고 평생 그리워하던 연인, 백석의 곁으로 돌아갔다.

세상에는 많은 사랑 이야기가 있다. 백석과 자야의 아팠지만 아름다웠던 문학적 사랑은, 시가 되고 연가가 되어 차디차고 황량한 겨울밤의 밑바닥을 훈훈하게 덥혀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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