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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자의 말】
오늘부터 "사진으로 보는 남방 겨레발자취" 를 련재합니다. 절강을 중심으로 한 남방땅에는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겨레발자취가 쫘악 깔려 있습니다.
첫회는 항주의 서호가에 있는 고려사입니다. 2006년 10월 초에 처음으로 항주고려사를 현지답사했는데 그때는 정식 개방하기 전이여서 들어갈수 없었고 외경만 보았을 뿐입니다.
리해의 편리를 위해 이미 올린 론문요지--"항주고려사와 고려명승 의천연구"를 다시 펼쳐 보입니다.
항주 고려사와 고려명승 의천 연구
1. 문제의 제기
절강 항주의 서호가에는 근 1000년의 역사를 기록하는 송나라의 고려사(高麗寺)가 있다. 옛 고려사는 1087년 고려의 명승(名僧) 의천(義天)이 거액을 들여 일떠세운 것인데 오랜 세월 속에서 그 형체가 사라지고 주춧돌만 남았다가 2005년 9월부터 한국의 여러 지성인들과 항주시 정부의 노력에 의하여 서서히 웅장한 참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절강 천대산에도 1400여 년의 역사 가지며 중국 불교 성지의 하나로 “불국 선경”이라고까지 불리우는 국청사가 있고 1085년 고려 명승 의천이 발자취를 남기게 된다. 그럼 고려 명승 의천은 어떤 사람이고 어찌하여 항주 서호가와 천대산 국청사에 발자취를 남기게 되었을까?
2. 고려명승 의천은 어떤 사람인가?
알고보면 고려의 명승 의천(1055-1101)은 오늘의 한국 천대종의 개종조사(开宗祖师)이고 대각국사(大觉国师)로서 고려 제11대 임금 문종(文宗)의 넷째아들이다. 성은 왕씨이고 본명은 후(煦), 11살에 출가하여 불교에 입문하니 13살에 우세승통(祐世僧統)시호를 받기에 이른다. 불전에 정통하고 천대종에 뜻을 두니 불교 천대종의 발상지이고 시조의 나라인 송나라에 가서 불도를 닦고 싶었다. 하지만 료나라와 송나라가 대립되여 있는 현실에서 임금인 아버지의 윤허를 받지 못했다.
3. 송나라에 머무른 14개 월
의천은 물러설 수가 없었다. 그는 고려 선종 2년(1085년)4월에 사복하고 밤으로 조용히 빠져나와 상선에 올랐다. 그해 7월에 송나라 수도 변경(汴京)에 이르러 송황제 철종의 뜨거운 환대를 받고 송나라 수행인원들 배동하에 각지를 돌아보게 된다. 그해 의천은 송나라에 왔다가 항주에 잠시 머물렀고 1086년 4월에 다시 항주에 이르러 서호가의 남고봉 혜인원에서 정원(淨源)의 화엄종대의를 청강하고 천대산(天台山)에 올라 불교 천대종 시조 지자대사 육신탑을 배알하면서 환고향 한후 천대종설교에 힘다 하겠다고 맹세한다. 의천은 송나라에 머무르는 14개 월 간 고승 50 여 명을 뵙고 화엄종교의, 천대종, 유식종(唯識宗)등을 배웠다. 의천의 크나큰 공적은 고려의 대장경을 각인한 것인데 송나라에서 구한 불경과 유서가 대단히 많다. 삼장장소(三藏章蔬)만 해도 3,000 여 권이나 된다.
1085년 전 후 시기에 의천은 일행 10 여명과 함께 항주에 와서 혜인사에 출판기구를 세우고 경륜, 장소 등 각종 책들을 7,000 권 수집, 간행하여 고려에 보내기도 했다. 의천은 금자서적 화엄경 300 부를 기록하여 항주 혜인사에 남기고 거액을 들여 화엄대각과 장경탑을 세우도록 한다. 항간에서 말하는 고려사의 건축이다.
4. 귀국활동과 대각국사 시호
의천이 송나라체류 14개 월 만에 귀국하니 형님인 임금과 모후(母后)는 성대한 환대를 베푼다.의천은 흥왕사 주지(住持)를 맡고 “고려속장경”(續臟經)을 간행하며 송나라와 불경을 교환한다. 고려 숙종 2년(1097년) 2월에 고려국청사가 일떠서고 의천이 주지를 맡는다. 의천이 천대지관(止觀)학설을 설교하니 불교계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의천은 고려천대종을 개설하고 고려국청사를 중심으로 나라 안에 6대 본산(本山)을 일떠세운다. 고려 숙종 6년(1101년)에 고려 천대종이 정식 창립되니 허다한 고승 및 사찰들이 분분히 천대종에 가담한다. 천대종은 크게 흥하다가 300여 년 후 지금 한국 불교의 주류를 이룬다. 의천이 죽은 후 고려임금 숙종은 의천에게 “대각국사”란 시호를 내리였다. 대각이란 부처라는 뜻이고 국사란 임금의 스승을 말하는데 여기에서 이르는 대각국사는 불교 승려로서의 최고 영예를 뜻한다.
의천의 저서로는 유고를 정리한 문집 20 권과 외집(外集) 13권이 있다. 문집에는 그의 서문, 정론, 불교 교의의 일부가 수록되여 있고 외집에는 그의 업적과 친우(友人)들의 시문 등이 수록되여 있다. 불교에 관계되는 저술로는 “원종문류” (圓宗文類)22권과 “석원사림”(釋苑詞林)5권, “유식론단과”(唯試論單科) , “천대사교의경”(天台四敎儀涇) 3권이 있다.
5. 의천 대각국사의 거대한 기여
고려명승 의천은 생전에 송나라와의 밀접한 관계속에서 항주고려사를 세우고 송나라와의 두터운 문화교류, 고려 불교문화의 발전, 고려 화페 개혁 등 면에서 거대한 기여를 하였다. 이를 기리여 1995년 6월 17일, 한국, 일본 등 해외천대종 인사 300여명이 절강 천대산 국청사에 모이여 중국 국내 각 명산장로(名山長老), 승려들과 더불어 성대한 의식을 가지고 “중한조사(祖師)기념당” 락성을 경축했다. 기념당내에는 천대종 시조 지자대사와 함께 의천 대각국사, 현대 한국천대종 중흥시조 원각국사 세사람 청동불상을 모시였다.
이같이 의천 대각국사를 중심으로 한 고대 송나라와 고려 두나라 천대종의 뜨거운 친선교류는 중국 천대종의 부흥을 가져오고 고려천대종의 창립에 큰 기여를 하였다. 이로 보아 “항주고려사와 고려명승 의천 연구”는 그 자체의 력사적 의의와 현실적 의의를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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