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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는 이유
2014년 03월 31일 19시 27분  조회:1456  추천:0  작성자: suseonjae
[최보식기자 직격인터뷰]
 
 
지현곤씨
 
방안에서 40년 동안을 엎드려 지내온 만화가 지현곤씨(7월 28일 보도).
그 뒤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마산의 경남대학 정문 옆 골목으로 들어가 후미진 주택 2층 단칸방에서 그는 여전히 살고 있다.
 
2m×3m 크기의 방,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야 닿는 방이다.
척추결핵으로 뼈와 살이 말라붙은 그의 하체는 담요 속으로 숨었다.
머리맡에는 펜과 연필 들이 담긴 통, 잉크, 화판, 작업 중
통증을 완화해줄 물파스가 그대로 놓여있다.
 
“글쎄요, 뭐, 순식간에 ‘천지개벽’할 수가 없겠지요.
전에 봤던 그대로 틈틈이 만화를 그리고, 크게 바뀐 게 없어요.
사람들의 관심에 비해 내가 부응하지 못해 아쉽네요.”
 
방 안에서 엎드린 그의 낙(樂)은 열린 방문을 통해 달을 보는 것이었다.
겨울에는 그쪽 방향으로 달이 뜬다.
인터뷰 당시 그의 카메라 액정 속에는 달 사진들이 들어있었다.
 
“망원렌즈가 없어, 쌍안경을 구해가지고 카메라 렌즈에 연결해 찍었어요.
수십, 수백억 원을 들여 하늘에 떠있는 달에 며칠간 머무는 호사를 누리는 사람들도 있다는데,
나도 만약 그런 금전적 여유가 있었더라면 꼭 그렇게 했을 겁니다.”
 
그때 나는 이렇게 물었다.
 ―하필 달이 왜 보고 싶은가?
 
“해는 눈이 부셔 볼 수 없지 않는가?
도시에서는 반짝이는 별도 보기 힘들고. 그러니 달뿐이다.”
 
―달을 보고 있으면 어떤 기분이 드나?
 
“만월(滿月)이었다가 줄어들고 없어지고,
그런 달의 변화를 보면 내 생활에 변화가 없어서인지 좋더라.
일반 사람들은 달을 보고서 ‘아, 좋다’고 하는 이가 드물지만,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그대 일상에 평범한 게
다른 사람에게는 소중한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평범한 것을 귀하게 여기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
지난겨울에는 만화 그리는 일보다 그냥 방문을 열어 놓고 밤새 달만 쳐다봤다.
마냥 자유롭고 편안한 느낌이 든다.”
 
그와의 약속으로 나는 천체망원경을 사서 보내줬다.
그가 달을 더 즐길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망원경은 ‘장식품’이 됐다.
거동이 불편한 그에게 천체망원경은 너무 크고 지지대는 너무 높았다.
이런 사실에 그는 미안해했고,
“천체망원경이 있으니 방 안이 그럴듯하게 보여 좋다”고 말했다.
 
그의 계좌로는 알음알음 600여만원이 들어왔다고 한다.
 
장애인 만화가 지현곤씨는 지난 7월 인터뷰 후 노트북 컴퓨터를 기증받았다.
그는"몸이 이래서 한 손가락으로 치지만,
홈페이지도 들어가고 인터넷으로 다른 분들의 만화를 보는 게 재미있다"고 했다.
 
―그 성금으로 갖고 싶은 물건을 좀 샀나?
 
“성금으로는 신장 계통의 약만 사먹는다.
내 돈이라는 생각이 안 들어서, 다른 용도로는 쓸 수가 없다.”
 
그는 만성 신장(腎臟) 질환도 앓고 있다.
단백질이 몸에 저장되지 못한 채 빠져 나오는 증상이다.
40년 동안 방 안에서 지내며 이를 그냥 안고 살아왔다.
그는 외출을 두려워했다.
서울 남산에 있는 ‘서울 애니메이션 센터’에서 그의 카툰(만평) 작품이 전시됐을 때,
평자(評者)들은 “정규 학력으로는 초등학교 1학년 1학기가 끝인,
말 그대로 못 배우고 방 안에서만 지낸 사람이 이 경지에 오른 것은 불가사의”라고 했다.
주최 측은 전시회에 그의 참석을 원했다.
세인들의 주목을 더 받게 함으로써 그에게 어떤 도움이 됐으면 했던 것이다.
그는 거절했다.
그 뒤 앙코르 전시회가 열렸고 훨씬 더 강한 참석 요구가 있었지만,
역시 그는 몸을 사렸다.
 
“방 안에서 늘 혼자 살아왔으니,
외부에 대한 공황(恐慌)장애일 수도 있고, 공포증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 못 간 이유는 대소변 문제 때문이다.
수십 년간 나 혼자 힘으로 그걸 해결해왔다.
다른 사람이 보는 앞에서 그렇게 하고 싶거나 도움을 받고 싶은 마음이 없다.
‘참 별나다. 까다로운 성격이네’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바꿀 수가 없다.
이는 내가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존엄성을 지키는 것이다.
 
방 안에 화장실에 딸려있어 씻는 것도 내가 씻는다.
머리도 내 손으로 깎는다.
내 머리가 짧은 것은 취향이 아니라,
신장(腎臟)이 안 좋아 몸 속에서 열이 생기면 머리가 조금만 자라도
머릿속이 화끈거려 참지 못해 밀어버리는 거다.
앞부분은 그런대로 깎지만, 뒷부분은 깎고 나면 오톨도톨하다.”
 
이렇게 말했던 그가 인터뷰 후 40년 만의 외출을 했다.
한 번은 방송사가 와서 ‘화면’을 위해,
그를 안아서 집 바로 옆에 있는 경남대학에 옮겨졌다.
다른 두 번은 신장 계통의 질병 치료를 위한 병원 행(行)이었다.
 
“복지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병원에 가게 됐다.
장정들이 저를 달싹 안고 계단까지 내려가 휠체어에 태우고,
리프트가 장착된 차량에 실었다.”
 
―40년 만의 외출은 어떠했나?
 
“경황이 없었다.
차에 실려서 거리 풍경을 봤는데….
뭐, 사람 사는 게 다 같지.
내 마음대로 찬찬히 둘러봤으면 모르지만. 동행한 분들이 모두 바쁜데,
어디 가보자는 말이 차마 안 나왔다.
병원에 볼일 보고 다시 오는 데 2시간쯤 걸렸다.”
 
40년 만의 외출은 우리의 기대보다 그에게 큰 의미로 남아있지 않았다.
대신 그의 삶을 바꿔놓고 있는 것은 ‘노트북 컴퓨터’다.
방송사를 통해 장애인복지단체로부터 기증받은 것이다.
그는 평생 처음 컴퓨터를 만졌다고 한다.
 
“조작하는 법도 모르고, 다들 바빠서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뒤집어엎기도 하고, 불통되기도 했다.
몸이 이래서 한 손가락으로만 친다.
얼마 전에 이메일을 보내는 방법을 알았고, 딱 두 번 보내봤다.”
 
그의 이메일 주소는 acdozzz@naver.com이다.
가장 손쉬운 자판을 눌려서 만들어진 주소다.
요즘에는 종일 인터넷을 끼고 산다고 했다.
 
―인터넷에서 뭘 하나?
 
“다른 홈페이지에 들어가고 검색도 하며, ‘주유천하(周遊天下)’를 한다.
어제도 인터넷으로 다른 분들의 만화를 보느라 새벽 4시까지 했다.
인터넷에 빠지다 보니 만화는 한 달에 한 점도 제대로 못 그린다.
전에는 두 점쯤 그렸는데. 나도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나는 만화를 열심히 그려야지, 그런 재주밖에 없는데.그래도 인터넷이 너무 재미있다.
옛날에 망원경이나 카메라에 굉장히 관심이 있어,
광고지를 보고 해당 업체에 카탈로그를 보내달라고 편지를 보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인터넷 사이트에 다 나오더라. 달을 보는 것도 그렇다.
카메라에 찍어 확대해 봤는데, 인터넷에 들어가니 망원렌즈로 찍은 달 사진이 많다.
내가 찍어 보는 것보다 이걸 보면 되겠더라.”
 
―만화 작품은 좀 팔렸나?
 
“아직 한 점도 안 팔렸다.
가진 사람은 없으면 불편하지만, 없는 사람은 없어도 금방 크게 불편할 것은 없다.
신문에 난 뒤로 마산시청 분들이 ‘정말로 그런 사람 사나’ 싶어 들르셨다.
그러더니 내년 초에 작품이 판매되도록 전시회를 열어주겠다는데….”
 
―외부 사람들로부터 전화가 걸려오나?
 
“나를 찾는 전화는 하루 종일 한 통도 안 걸려온다. (웃으며) 인기가 시들해져.
내 동생이 만들어준 홈페이지에는 하루 두세 명쯤 들어온다.”
 
―한 해가 저물어간다.
 
“한 살을 더 먹어가는 게 두렵다.
나는 원숙이나 성숙함과는 거리가 먼 삶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도움을 받았으니 사회 본보기가 돼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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