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춘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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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유묵에 담긴 중국적 요소 연구
2015년 03월 15일 12시 57분  조회:1389  추천:2  작성자: 남춘애
Ⅰ. 들어가며:
 안중근 의사 순국 105주년을 맞으며 여순 러일감옥구지박물관 안중근 전시관을 방문할 기회를 가졌다. 전시관의 벽에는 안중근의 유묵과 함께 주은래의 친필 제사 인《中日甲午战争后中朝人民反对日本帝国主义侵略的斗争,是在20世纪初,安重根在哈尔滨刺杀伊藤博文开始的≫(중일갑오전쟁 후 중조 인민이 일본 제국주의 침략에 맞서 투쟁의 봉화를 올렸다면 그것은 바로 20세기 초반, 안중근이 하얼빈에서 이등박문을 사살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가 눈에 띄었다. 전시관의 유묵을 보며 안중근 연구에 약소하나마 힘을 보태야 겠다는 생각이 이 논문을 쓰게 된 계기라면 계기라 하겠다.

  안중근에 대한 연구가 오래 지속된 까닭으로 본 연구가 고루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모든 연구는 언제든지 그 나름의 의의를 갖고 있기에 문제 될 건 없다. 필자는 본 논문을 쓰는데 필요한 <안응칠역사>, <안중근평전>, 장편 전기소설 <불멸1,2> 등 원전 텍스트를 비롯하여 중, 한 학계에서의 안중근 연구에 관련된 연구성과들을 두루 살펴보게 되었다. 그 결과 기존 연구의 갈래는 크게 여섯 개로 분류해 볼 수 있었다. 

   첫째는 안중근의 의거에 초점을 맞춘 사상과 관련된 연구, 둘째는 안중근의 천주교 의식을 바탕으로 연구한 종교사상과 관련된 연구, 셋째는 안중근이 옥중에서 집필한 <동양평화론>을 바탕으로 한 안중근의 동양평화사상 연구, 넷째는 안중근의 교육구국과 의병운동을 비롯한 민족독립운동에 관련된 연구, 다섯째는 안중근 유묵 작품에 숨어있는 미학적 가치와 관련된 연구, 여섯째는 안 중근 의거에 대한 국내 외 인식에 관한 연구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연구들 중, 학술 논문이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바, 백여편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안중근 유묵에 담긴 중국적 요소에 대한 연구논문은 현재까지 전무한 상태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본 논문에서는 대련 여순러일감옥구지박물관 안중근 전시관에 보존된 안중근 유묵 53점을 연구 대상으로, 그에 담긴 중국 문화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Ⅱ 중국 문화와 유묵

  21. 안중근의 學書 과정과 중국 문화 형상.
안중근의 유묵은 사형선고를 받고 사형 집행 직전까지 옥중에서 남긴 것들로  옥중 안중근의 심사를 담아내는 의사 전달의 매개로 역할했다.“書는 散(풀어놓는 것)이다. 書를 하고자 한다면 우선 懷抱(마음)을 풀어 놓아야 하며 성정에 맡긴 연후에 書하여야 한다”는 동한의 서예가 蔡邑(132-192)의 서예 이론에 따르면 최후를 앞둔 안중근이 마음을 평온하게 다스리고 200여점의 유묵을 남겼다는 것은 초인의 의지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의 유묵은 거의가 王羲之, 欧阳询, 颜真卿의 필체를 닮아 있고 해서를 중심으로 해행이 섞여있으며 초서가 병행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말하자면 안중근의 서체부터가 중국 문화의 요소를 다분히 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안중근이 살았던 시대는 한글 창제가 되었음에도 한문 중심의 역사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선택의 여지가 없이 중국 문화를 받아들여야 했던 구한말이라는 시대적 흔적이기도 하다.     
     
  안중근의 유묵에서 중국 문화형상이 가장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부분은 그 유묵의 내용들에서이다. 
안중근은 자신의 학력에 대하여 옥중 자서전 「안응칠 역사」에서 “6-7세 때부터 漢文學敎에 들어갔으나 8-9년 동안에 겨우 보통 한문을 깨우쳤을 뿐 이었다”라고 회고하였다. 이 자서전에 의하면 그는『千字文』,『四書 五經』 『萬國歷史』, 『資治通監』,『朝鮮歷史』를 공부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것이 그의 한문을 공부한 전부였다.

   안중근은 공부에 뜻을 두기보다는 어려서부터 사냥과 말 타기 등 활동적인 것을 즐겨 하였다. 그의 나이16세에 김아려와 결혼하여 두 아들과 딸을 두었고 18세에 부친 안태훈이 무고를 당하고 위험에 처하여 천주교 교리를 믿게 됨으로써 안중근도 온 가족과 함께 천주교의 교리를 듣게 된다. 29세에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는 백성 들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고향의 가산을 정리하고 진남포로 옮겨, 삼흥학 교와 돈의학교를 설립하고 교육 사업에 투신한다. 1895년의 을미사변으로 국권이 위태로워지고, 1905년 을사조약으로 외교권을 박탈당하고, 1907년 한일신협약을 계기로 조선은 국권상실의 나라로 전락한다. 이러한 국내 외의 급박한 사정으로 안중 근은 교육 사업을 포기하고 북간도, 해삼위 등 지를 다니면서 의병활동에 참여한다. 그가 소속한 의병부대가 인력과 자원부족으로 큰 타격을 입게 되자 더 적극적인 독 립운동 방법을 모색하기에 이르른다. 그는 서양 열강들의 동양과 조선 진출을 경계했고, 한,중,일 3국이 힙을 합쳐서 서양 세력이 차츰 동쪽으로 옮기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이때 이등박문은 일본 최고권력의 위치에서 정책을 주도하여, 조선의 합병을 획책하고, 청나라와의 전쟁을 확장시켜 나가고 있었다. 미미한 의병활동으로는 조국을 지킬 수 없다고 생각한 안중근은 단지동맹을 맺고 이등박문을 제거할 것을 결의한다. 이등의 야욕을 끊어야만 전쟁을 막을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조국이 독립을 하고, 동양의 평화가 지켜질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판단에 따라 안중 근은 1909년 10월 26일 중국 흑룡강성 하얼빈역에서 의거를 단행한다.
안중근은 의거이후 현장에서 체포되어 하얼빈에서 열하루 갇혔다가, 대련 여순의 러일감옥에 수감되었다. 그는 관동 여순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은 결과 1910년 2월 14일자로 사형이 선고되었고, 이후 사형이 집행된 1910년 3월 26일까지 약 40일 동안 서작을 하여 유묵을 남겼다. 

   이처럼 안중근의 일생 동안의 행적을 살펴보면 學書의 기회를 충분히 갖지 못한 듯하다. 그가 학업을 한 시간도 따져보면 7-8년간에 지나지 않는다. 말하자면 학업 을 할 수 있었던 기간은 漢文과 經書를 공부했던 십 칠세 이전까지의 7-8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함에도 막론하고 그의 유묵에는 ‘고상한 서체미는 결여되어 있지만 중국 당조때의 4대 해서가 중 일원인 안진경체에서 보이는 장수의 기개를 표현한 堅質浩氣하고 沈着通快한 陽剛美를 지니고 있’어 오랜 기간 상당한 수련이 있지 않고는 이루기 어려운 높은 수준의 실력이 드러난다. 이것은 그에게 선천적인 재능이 있었겠다는 추정을 하게 하는 부분이 된다. 그의 이러한 선천적 재능은 옥중 에서 짧은 시간에 완성한 자서전 <안응칠 역사>와 미완작 <동양 평화론>, 그리고 몇 편의 한시에서도 지식과 문장의 수준 또한 공부를 대충해서 이룰 수 있는 천박한 정 도를 넘어서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박은식은 안중근의 어린시절을 평가 하기를 “총명이 과인하고, 經史와 서예에 통달하였으며, 서법에도 능하였다”고 하였다. 비록 어린 시절에 대한 기록이기는 하지만 안중근의 유묵이 안진경의 忠節의 글씨로 불리는 顔體가 배어 있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안진경은 중국 서예의 대표자이다. 중국의 서예는 중화문화의 정신적 근원으로서 필수 수양이기도 하였다.

   “書는 사람의 학문과 같고, 재주와 같고, 뜻과 같다”는‘書如其人論’ 의해 생각 해 보면, 안중근의 유묵을 통해 서자(書者)인 안중근의 인격을 알 수 있고, 인품, 철학, 학문 등 내재된 정신세계까지 들여다 볼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이른 바 ‘서여기인 서위심서(書如其人,書爲心畵)’라는 것일 것이다. 이같이 書體와 書者의 성품은 닮는다는 말이니 안중근 유묵의 풍격은 곧 그의 人品이 되는 것이다.

안중근 집안의 유가 학풍은 안중근에게 올곧은 유가적 정신세계를 형성하게 하는 데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특히 공판을 앞두고 두 동생을 면회 보내면서 “의를 행 한 것이니, 항소를 하여 일본인들에게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지 말라”고 한 어머 니의 말에서 안중근이 그 절의의 정신을 이어받았음도 알게 된다. 이처럼 중근은 충절정신의 소유자이므로 당나라 顔眞卿의 충절의 서체를 이어받는데 남달랐던 것일 것이다. 안진경을 포함하여 중국은 시대마다 대표적인 서예가들이 출현하였다. 

안중근의 유묵에 담긴 중국 문화형상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그의 인생철학과 사상에 대한 이해가 수반되어야 하고, 그의 성정 형성과정을 이해하는 것은 그의 모든 것을 이 해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필자는 안중근의 學書과정을 먼저 살펴보았다. 하지만 안중근 유묵의 서체에서 보이는 중국 문화의 형상은 미술과의 연관 속에서 논술을 피면할 수 없게 된다. 필자에게 관련 지식이 부족한 탓으로 진일보의 논술은 이에서 피하기로 한다.

  2.2. 유묵에 담긴 중국 유교문화 형상

  안중근 의거의 정신적 근간이 되어준 유가사상적 문화형상을 연구한다는 것은 안중근 연구에 또 하나의 의의를 더해 주게 될 것이다. 본 쳅터에서는 안중근의  유묵에 체현된 중국 유교문화사상을 연구하고 확인함으로써 유묵에 숨어있는 문 화적 가치를 인식하는데 일조하게 된다. 유가사상적 문화요소는 일생의 목표가 대한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라고 했던 안중근의 뜻이 어떻게 중국 유가문화 사상 과 융합되어 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이로서 유묵의 정신적 배경으로 되어 있는 유가문화에 대해 짚어볼 것이다.
여순 러일감옥 구지박물관 안중근 전시관을 가득 채우고 있는 53점 옥중 유묵 중 다수의 유묵을 통해 안중근은 조선선비의 정신 을 지니고 있고 조선의 선비로써 의리사상에 정신적 기반을 두고 살았다는 것도 짐작할 수 있다. 맹자는 선비의 도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선비는 인의에 뜻을 두는 것일 뿐이다. 한 사람이라도 죄 없는 사람을 죽이면 仁한것이 아니며, 자기의 소유가 아닌데 그것을 취하면 義로운 것이 아니다. 거처해야 할 곳이 어 딘가? 인이 그것이며, 길은 어디에 있는가? 의가 그것이다. 인에 거처하며, 의로 말미암 으면 大人의 일이 갖추어진것이다.

   위의 인용문에서 맹자는 선비는 인의에 따라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맹자가 말하는 이상적 인격자의 표본인 선비는 바로 仁에 居하면서 義의 길을 걷는 사람이다. 이와 같이 선비는 인과 義에 뜻을 두고서 도덕적 가치를 실현하는 사람이다. ‘선비는 의리사상을 정신적 뿌리로 삼아, 평화시대에는 吟風弄月을 하며 자연과 하나 되어 浩然之氣를 기르고, 국가가 위기에 빠졌을 때에는 節義精神으로 仁과 忠을 실행하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으로 義를 실천하는 것’이다.
안중근은 선비로서 인의의 성품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맹자가 말한 선비의 덕목으로 ‘인에 거처하며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 대인의 품위인 유가사상을 지닌 것이다.

   중국의 공자에 의해 개시되는 유교사상은 일종의 가장 주목받는 문화적 요 소로 오랫 동안 한국에 존속되어 왔다. 이러한 유가철학은 현실적으로 한국사회 경 영의 윤리 규범으로 실용되어 오면서 인간의 옳은 삶이 무엇인가를 제시하는 준거 역 할을 수행해 왔다. 유가는 공자의 사상을 종주로 ‘인’을 주창하였고, 인은 유가철학의 핵심사상이 되었다.

   仁은 ‘타인에 대한 사랑’이다. 이러한 인의 사상은 안중근의 유묵 에서 많은 수량을 찾아볼 수 있다. ‘仁’은 또 ‘忠’과 ‘恕’와 더불어 같은 맥락을 이루는데, ‘충’은 자기 내면에 있는 본성의 깨달음을 통한 사랑이다. 또 ‘恕’는 타인과 자기를 동일시 하는 일체감을 통한 사랑의 실천으로 이루어진다. 즉 ‘인’ ‘충’ ‘서’의 궁극적인 실천 목표는 ‘사랑’이다. 공자의 인사상은 맹자로 이어지면서 구체적 실천 강령 인‘義’의 개념으로 발전한다. 義는 인간 사회와 구체적 관계가 맺어진 표현이다. 義란 마땅함 이란 뜻으로 사람이 행해야 할 가장 마땅한 도리, 즉 가장 옳은 길을 의미한다. 

   안중근은 仁한 사람이었고 義를 실천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인과 義의 정신만으로는 한국의 독립을 이루기 어려운 실정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안중근은 살신성인하는 방법을 통하여 자기가 목적하는 바를 실천한다. 그의 이러한 인생 행보는 유묵들에 그대로 담겨있다. 

    안중근 유묵을 내용에 근거하여 갈래를 나누어 보면 아래와 같은 다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유가사상의 격언을 빌어 자신의 심정을 나타낸 유묵, 둘째는 하늘을 노래한 천주교신앙의 유묵, 셋째는 조국산천에 대한 애착과 그리움을 담은 유묵, 넷 째는 일본 정부의 침략 정책을 질책하는 내용을 담은 유묵, 다섯 째는  조국을 위해 헌신하려는 영웅사상을 담은 유묵 등. 이 중에서 중국 유가문화의 형상이 가장 잘 체 현된 부분은 첫째와 다섯 째 유묵들인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을 골라 살펴보려 한다.. 

   안중근의 유묵에는 주로 중국 유가문화 중에서도 ‘仁’의 형상이 잘 드러나고 있다. ‘仁’은 중국 전통 유가사상의 최고 이념으로 “인지위인人之爲人”의 최고 실천으로 평가 받고 있다. 상술에서 ‘인이란 사랑’이라고 한 말을 풀어서 말한다면 인이란 “여 러 사람을 널리 사랑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을 단속하여 군자의 인격을 형성하고 인생의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증자는 ‘잠시 부유한 것은 빈곤을 거울로 삼기보다 못하고, 치욕을 받으며 사는 것은 영광스럽게 죽는 것만 못하다. 피할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피하지 못한다면 군자는 죽음을 초개같이 여긴 다’고 말했다. 맹자는 공자의 ‘인’의 사상을 계승하고 발전시켰다. 그는 생과 사를 논하면서 “생은 내가 원하는 것이니라, 의 또한 내가 원하는 것이니라. 이 둘을 동시에 갖출 수 없거늘, 의를 위하여 생을 버릴지어다.’라고 했다.  안중근은 바로 이러한 사람이었다. 
 
 
유묵 <志士仁人,杀身成仁>의 경우; 
이 유묵은 《论语·卫灵公위령공편》에 나온 <志士仁人,无求生 以害仁,有杀 身以成仁>” (지사와 어진 사람은 살기 위해 인을 해치는 일이 없고 몸을 죽여 인을 이룩한다)는 공자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이것은 공자가 제자의 질문에 답한 데서 온 성구이다. ‘仁德과 생명이 충돌될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라고 학생이 물 었을 때 공자는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이에 무슨 의문이 있단 말이냐? 무릇 진 정한 지사와 어진 사람은 죽음이 두려워 인의를 욕되게 하지 않을 것이며, 인의 를 위해 자기의 생명마저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답하였다. 바로 이에서 이 성구가 유래하였다. 생과 사에 대한 공자의 인식에서 ‘생사’라는 것은 사람의 생명의 가치와 고상한 품격을 추구하는 정신적 가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생명 의 가치와 고상한 품격은 모두 사람의 생존과 발전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필요한 것들이지만 두 가지를 동시에 갖출 수 없을 때는 모름지기 仁義를 위하여 선뜻이 몸을 이바지해야 한다는 사상이다. 이로부터 사람의 정신적 가치는 생명의 가치 보다 더 높은 차원에 있다는 것을 알수 있다. 중국의 공자와 맹자의 이 사상은 후세의 수많은 사상가들과 志士仁人들에 의해 계승되고 널리 전파되었다. 그들 의 사상은 중국 뿐만 아니라 한자문화의 영향을 받고 있는 주변 지역에까지 심원한 영향을 미치였다. 안중근 의사가 옥중에서 쓴 이 부류의 유묵들, 그 중에 서도 <志士仁人,杀身成仁>은 중국 유교문화의 정수의 체현이며 또한 안중근이 자신의 하얼빈 의거에 대한 총화와 개괄이기도 하다. 

   유묵 <见利思义 见危授命>(이익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바쳐라)의 경우:
이 유묵에 체현된 안중근의 사상은 그 전에 쓴 “지사인인, 살신성인”의 계속이 라고 볼 수 있다. 민족을 진흥시키고 다 같이 힘을 모아 나라를 구하는 일은 안 중근의 영혼 깊은 곳에 뿌리 박고 있었다. 안중근은 나라가 위험에 처했을 때 이 익 앞에서 義를 잊는가 아니면 생각하는가, 선뜻이 앞장에 나설 것인가 아니면 죽음이 두려워 숨어 살 것인가 하는 것은 한 사람을 검증하는 시금석이라고 여겼 다. 왜냐하면 당시 일본 검사는 안중근에게 이등박문을 사살한 것이 잘못된 일이라고 승인만 하면 죽음은 면할 수 있다고 수차 권고하였으나 번마다 그의 단호한 거절을 당하였다. 그는 중국 <논어>의 위령공편과 獻文篇에 나오는 “杀身 成仁” “见危授命” 의 용기로 자신의 사상승화를 실현하였고 따라서 자신도 정정 당당한 사람임을 세상에 알렸다.

   유묵 <戒愼乎其所不睹>(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근신한다)의 경우:
이 유묵은 중국 문화 중 일상생활적인 이치를 담고 있다. 즉 “心平 气和”해야 마음과 행실을 닦고 어떠한 경우에도 변함 없이 자기의 소망을 이룩해 갈수 있다는 이치가 담겼다.

 이 유묵의 원형 중 마지막 한 말을 보면 “故君子慎其独也”로 끝난다. 이 말을 줄이면 고대 중국의 유가 학설에서 가장 중요시하였던 “신독慎独” 이 되는데 이는 마음과 행실을 바르게 하는 방법론이다. 위의 유묵의 본래의 뜻은 ‘설사 곁에 아무도 없어도 자신에 대한 요구를 늦추지 말며 자신의 마음가짐과 행실에 주의하고 도덕에 어긋나는 생각과 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함으로써 항상 道義가 몸을 떠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신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사람에게 있어서 ‘신독’을 할 수 있는가, ‘신독’을 행하는 태도가 어떠한가 하는 것이 사람들이 마음과 행실을 닦고 있는가, 마음과 행실을 닦는 과정에 얻은 성과가 어떠한가를 가늠하는 중요한 표준으로 되고 있다.

  <회남자>에서는 “난초는 심산유곡에서 자라지만 복종하지 않는다고 하여도 향기를 잃지 않고, 쪽배가 바다와 강에서 항행하더라고 사람이 타지 않았다고 하여 뜨지 않는 것이 아니다. 군자가 의를 행함에 있어서 사람들이 모른다고 하여 멈추지 않는다” 고 하여 심독에 이르려면 남들이 없는 곳에서의 언행 모두를 엄격하게 요구하고 조금도 방심하여서는 안됨을 말하였는데 이는 <중용>에서 요구한 “신중하 기를 남들이 보지 않는 작은 것 부터 주의하며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하는 것도 신중 하여야 한다”는 것과 일맥상통하다. 당나라의 유명한 사상가 이고(李翱)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것이 제일 크게 보는 것이다. 남들이 듣지 못하는 것을 듣는 것이 제일 크게 듣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이 있으면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 것이고 남들이 듣지 못하는 것을 듣는 것으로 이와 반대로라면 더욱 멀어지는 것으로 군자는 ‘신독’하여야 한다.”라고 했다. 

   남송의 朱喜는 “신독하는 사람은 남들이 모르지만 자기는 아는 경지에 이른 것을 말한다. 말이 명확하고 일이 미소해서 형체 가 아직 명확하게 형성되지 못하였지만 그는 이행하고 행동한다. 다른 사람은 비록 모르지만 유독 그만이 알 수 있다. 이는 천하의 일들이 비록 명확하지 않지만 신독한 사람들은 이미 다 알 수 있다. 그러기때문에 군자는 경상적으로 신독하고 그 기초 위 에 더욱 신중하여 진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억제하려는 욕망은 그 생각이 생길 때에 없애버려야지, 무성하게 자라게 내버려두어 도덕과 멀어지게 하여서는 안된 다”라 고 했다. 신독에 대하여 康有为도 이르기를 “中庸은 처음으로 사람의 천성의 수양 근본은 사람의 본성을 극복하기 위한 신독에서 찾아야 한다.”라고 말한적이 있다

   상술한 옛 성현들의 말들에서 신독이 인간의 자아수양법에서의 중요한 가치를 알 수 있다. 안중근이 옥중에서 ‘신독’으로 자신을 다스릴 수 있었다는 것은 그의 고상한 사상경지를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중국 유가철학인 ‘신독’을 빌어 자신이 이등 박문을 사살한 행동을 전면적으로 긍정하고 있다.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바쳐라 (见危授命)’,‘살신성인(杀身成仁)’‘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근신한다(戒愼乎其 所不睹)’란 유묵은 바로 안중근이‘신독’을 통하여 몸과 마음을 닦아서 얻은 결과이다. 

   우리는 안중근이 유묵을 쓸 때 빌려온 <논어>, <중용>,<맹자>등 명언 경구, 그리고 안중근이 주장한 忠과 義 등으로부터 중국 전통 유가사상이 그에게 미친 영향을 보아낼 수 있다. 그는 유가사상의 영향 하에 충의의 신심과 책임감을 형성 하였을 것이다. 이로하여 “국가의 안위를 위해 노심초사 (國家安危 勞心焦思)”할 수 있었고, 사형에 임하여 마지막으로 남긴 유묵에서처럼 “나라위해 몸 바침은 군인 의 본분이다<爲國獻身軍人本分>”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상술한 것 외에도 그의 유묵에서의 이러한 유가 문화형상은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유가 사상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바 이러 한 사상의 정수는 중국 문화 중‘인’의 문화를 가장 빛내여 준 사상 체계이다. 이에 속하는 안중근의 유묵으로는 “어질지 못한 자는 궁한 곳에서 오래 못견딘다. <不仁 者不可以久处约 >”, “담백한 밝은 뜻이 편안하고 고요 하여 오래 전수된다 <淡泊明志,宁静致远>”.“가난 하고 천한 것은 사람들이 싫어한다”<贫与贱人 之 所恶者也>”등이 있다. 이러한 유묵은 공자의 『논어』 「이인편」>의 것을 인용한 말이다. 그리고 “민첩하고 배우기를 즐기며 아랫사 람에게 묻는 것 을 부끄러워 말라 <敏而好学,不 耻下问>”,는 상무의 기질을 가진 안중근이 학 문을 중시하였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글귀이기도하다.

   그 외에도 “가난하되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되 교만하지 않는다<贫而无谄,富而 无骄>”, “눈보라가 친 후에서 송백이 시들지 않음을 안다<岁寒然后知松柏之 后 调也>”, “사람이 멀리 생각하지 못하면 큰 일을 이루기 어렵다.<人无远虑必有近 忧>” ,”일을 도모하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고, 완성하는 것은 하늘의 뜻에 달려있다. 谋事在人 成 事在天” “나물 먹고 물 마시니 그 속에 낙이 있다< 吃蔬 飮水 乐在其中>”, “해마다 계절따라 같은 꽃이 피건만 해마다 사람들은 같지 않 고 변하네,<年年岁岁花相似 岁岁年年人不同>” 등 안중근의 유묵은 천주교 신앙 을 대표한 유묵를 제외하고 거의가 중국의 유가문화에 대한 새로운 이해로 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그의 유묵을 보면 아름답고 늠름한 느낌을 준다. 아름다움 속 에는 수양을 담고 있고 늠름한 속에는 민족정신으로 넘쳐난다. 그의 유묵들 속에는 중국 유가사상이 고스란히 살아 숨쉬고 있다.
 
Ⅲ .나가며
본 논문에서는 대련 여순러일감옥구지박물관 안중근 전시관에 전시된 안중근 유묵 53점을 상대로, 그의 유묵에 담긴 중국 문화형상에 대해 크게 두개 방면으로 살펴보았다. 그 첫 번 째는 안중근 유묵의 서체에 입각하여 중국 서예가들의 흔적을 찾아 보는 것으로 유묵에 담긴 중국 문화형상을 알아보았다. 안중근의 서체는 왕희지, 구양순, 안진경, 황정견 등의 필치을 하나로 만든 ‘안중근 필체’로 자리메김하여 서체 속에 본인의 모습을 담는데 성공하였다는 결론을 얻었다. 말하자면 침착하고 호기롭고 통쾌한 안중근 모습은 그의 서체에서 볼 수 있는 경지에까지 간 것이다. 8-9년 밖에 공부하지 않은 한문으로 자서전 <안응칠 역사>와 저서 <동양 평화론>까지 쓸 수 있는 경지에 이른 안중 근은 하얼빈 의거로 영웅적 이름을 남겼지만 유묵의 체현된 서체의 개성으로서도 그 나름의 풍격을 갖추고 있음은 필자가 연구하면서 느낀 점이다.

   다음은 유묵에 담긴 내용에 입각하여 중국 유가 문화형상을 살펴보았다. 먼 저 유묵을 내용에 따라 다섯 가지로 분류하고 중국 문화와 관련 없는  천주교 신 앙을 담은 유묵은 연구에서 예외화하였다. 그리고 유묵의 출처와 담긴 내용에 집중 입각하여 중국의 유가 문화형상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안중근 유묵의 내용은 소수 부분을 제외하고 중국의 경전으로부터 온 것임을 알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안중근 유묵에서 중국 문화의 경전들을 내면화하여 시대적 감각과 민족적 기개가 넘치는 자아의 사상체계를 수립하고 있음도 알게 되었다.

    학계에서의 안중근에 대한 연구는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모든 연구는 그 의의 와 가치를 가지는 만큼 앞으로도 안중근에 대한 연구는 지속될 것이다. 또한 그 에 대한 연구업적도 놀랄만큼 많다. 본 논문에서는 이러한 선행 연구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고 노력하였다. 하여 사람들이 연구의 보습을 대지 않은 안중근 유묵의 중국문화 형상을 알아보고자 하였다. 하지만 새로운 영역인 만큼 자료의 부족함을 심히 겪었고 또 이로하여 본 논문을 써가는 과정에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마무리하는 이 시점에서도 본 논문이 많은 미흡한 점을 동반하고 있을 것임을 알고있다. 하지만 작으나 연구의 새 시작에 일조한 것은 의의가 있다. 
 
 
여순러일감옥 구지박물관 안중근 狱中遗墨目录
1) <志士仁人杀身成仁>,
2) <见利思义 见危授命
3) <戒愼乎其所不睹>
4) <人无远虑难成大业>
5)  <岁寒然后知松柏之后调也> 
6) <贫而无谄,富而无骄>,
7) <贫与贱人之所恶者也>
8) <敏而好学,不耻下问>
9) <不仁者不可以久处约>
10) <澹泊明志,寧靜致遠>
11) <百忍堂中有泰和>
12) <敬天>
13) 《極樂》
14) 《雲濟》
15) 《忍耐》
16) <百事淸風>
17) <天堂之福 永远之乐>
18) <第一江山> 
19)  <獨立>
20) <青草塘>
21) 《仁 智 堂》
22) <年年歲歲花相似 歲歲年年人不同 >
23) <思君千里 以表寸诚, 望眼欲穿,幸勿负情>
24) <山不高而秀丽 地不光而平坦,水不深而澄清>
25) <卧病人事绝,嗟君万里行。  河桥不相送,江树远含情>
26) <弱肉强食 風塵時代>
27) <言語無非菩薩,手段擧皆虎狼>
28) <日出露消兮 正合運理 日盈必仄兮 不覺其兆>
29) <東洋大勢思杳玄 有志男兒豈安眠 . 和局未成猶慷慨 政略不改眞可憐>
30)<欲保東洋 先改政略 時過失機 追悔何及> 
31)) <長歎一聲 先弔日本>
32)<孤莫孤於自恃> 
33)<國家安危 勞心焦思>
34)<爲國獻身軍人本分>
35)<丈夫雖死心如鐵 義士臨危機似雲> 
36)《自爱宝》
37)《人類社會 代表重任》
38)《一勤天下无难事》
39)《通情明白 光照世界》
40)《白日莫虛渡靑春不再來》
41) 《劍山刀水 慘雲難息》
42)《人无远虑必有近忧》
43)《謀事在人 成事在天》
44)《黃金百萬兩 不如一敎子》
45)《博學於文 約之以禮》《喫蔬飮水藥在其中》
46)《五老奉爲筆 靑天一丈紙 三湘作硯池 寫我腹中詩》
47))《日韓交誼 善作紹介》
48)《年年點檢人間事 惟有東風不世情》
49)<天與不受,反受其殃耳> 
50)<臨水羡魚,不如退結網>
51)《臨敵先進 爲將義務》
52)《恥惡衣惡食者不足與議》
53)《日不讀書口中生荊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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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1 ]

1   작성자 : 남춘애
날자:2015-03-15 13:15:07
올해는 안중근 의가 의거 105년이다. 10여일이 더 지나면 그가 항일사에 굵은 한 획을 그어 사람들을 깨워 身以成仁한 의거 기념일이다.
안중근 의거 후, 그의 영웅적 사적을 노래하고자 그 역사시기에 중국에는 많은 위인들의 제사와 함께 다양한 쟝르로 된 수많은 문학 작품들이 나왔었다. 그 중에서도 참 잊혀지지 않는 제사가 있다. 그것은 바로 고 주은래 총리의 《中日甲午战争后中朝人民反对日本帝国主义侵略的斗争,是在20世纪初,安重根在哈尔滨刺杀伊藤博文开始的≫ 라는 제사이다.
한편의 졸고로 안중근을 새롭게 알리기에는 파워 미달이 되겠지만, 영웅적 의거, 그리고 미완의 <동양평화론>으로 오늘의 세계를 그려본 안중근 의사에게 경의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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